<이파라파냐무냐무>에서 마시멜롱과 털숭숭이의 우정을 위트 있게 보여준 이지은 작가 신작. <츠츠츠츠>는 전작의 바로 그다음 이야기를 다룬다. 칫솔도 선물로 받은 털숭숭이는 바다를 헤엄쳐 고향 섬으로 돌아간다. 육지에 이르자 기다렸다는 듯이 털숭숭이 입안에서 마시멜롱들이 나타난다. 깜빡! 털숭숭이 입에서 잠이 들어 버린 것이다. 그러나 낯선 땅에 마시멜롱만 남겨둔 채 갑자기 쓰러진 털숭숭이. 이윽고 나타난 더듬이 한 쪽이 없는 분홍색의 큰 무언가가 "츠츠츠" 소리를 내며 다가온다. 츠츠츠츠 츠르르츠츠……. 우리가 츠르츠르 군침이 돌 만큼 맛있겠다는 거야. 싸우자! 그런데 그런 말이 아니라면 어떻게 해? 전 연령층의 전폭적인 사랑을 받았던 털숭숭이와 마시멜롱 앞에 나타난 츠츠츠의 정체는 대체 무엇일까?
외형과 쓰는 언어, 행동 양식 모든 게 다른 두 존재가 만나 우정을 쌓았던 전작처럼 <츠츠츠츠>에서도 예기치 못했던 타자의 존재가 서로에게 영향을 준다. 생김새가 달라도 쓰는 말이 달라도 우리는 오해로 인해 꼬인 관계를 풀 수 있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이지은 작가는 그런 이상하고도 다정한 세계로 우릴 매번 초대한다. 이번에도 털숭숭이가 사는 섬으로 다 같이 놀러 갈거지, 친구들아?
2024 서울국제도서전 화제작, 여름 첫 책으로 미리 독자를 만난 <음악소설집>이 서점에 도착했다. 파스칼 키냐르, 피에르 베르제 등의 책을 소개해온 음악 전문 출판사 프란츠가 김애란, 김연수, 윤성희, 은희경, 편혜영에게 음악을 주제로 한 소설을 청했다.
소설가는 삶에 음악이 스민 순간을 포착한 각각의 이야기로 화답했다. 김애란의 헤어진 연인들은 '러브 허츠'를 들으며 나눈 대화로 서로가 미묘하게 어긋난 그 순간이 헤어짐의 시작이었음을 지나고 나서야 안다. 김연수의 남자는 영천의 피아노 학원과 연인과 빠져나오던 노천극장의 밤길을 드뷔시의 '달빛'으로 기억한다. 윤성희의 여자아이는 자장가를 통해 엄마의 꿈에 들어서고 싶다. 은희경의 노인은 구스타브 홀스트의 '행성'을 오직 악보읽기로 듣고, KTX 4인실에서 그의 동행이 된 사람들은 이 음악에 얽힌 각자의 기억과 함께 목적지로 향한다. 편혜영이 그린 엄마는 젊은 적엔 정미조나 산울림의 노래를 부르기도 한, 카세트테이프에 목소리를 남겨두었을 사람이다. 결정적인 순간 그곳에 음악이 있다.
책 말미엔 음악이 소설이 된 순간에 대한 각 작가의 인터뷰도 실려있어 소설이 한결 풍성해진다. 1993년 활동을 시작한 김연수부터 2002년 활동을 시작한 김애란까지 20년 이상 소설을 써온 소설가들은 아름다운 책의 만듦새에 걸맞은 품위있는 소설로 멋진 하모니를 연주한다. 누구에게나 각자의 음악이 있을 것이다. 슬플 때 러시아 병정처럼 듣던 차이코프스키, 국도를 향해 차를 타고 달리며 재생한 페퍼톤스, 각자의 삶의 OST와 함께 소설은 삶을 악보에 수놓는다.
AI를 활용한 감시 시스템이 강화되어 사회 전반에 스며들어 있는 근미래의 일본. CCTV와 AI를 활용한 얼굴인식 시스템 덕분에 복잡한 수속 절차 없이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도서관에서 소년 리쿠마는 기이한 여자를 만난다. 멀리서 나무공을 굴려 정확하게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는 것을 막고, 갑자기 쏟아지는 비에 곤란에 빠진 리쿠마에게 정확하게 비가 멈추는 시간과 다시 내리는 시간을 알려주는 여자. 그날의 인상적인 만남 이후 친구 준야와 함께 아버지의 실종과 죽음이라는 충격적인 사건에 얽힌 진실을 추적하던 도중 그 기이한 여자 마도카를 다시 만난다. 마도카는 경찰의 수사가 지지부진한 가운데 범행 장소와 시각을 정확하게 추리해 내고, 놀라는 소년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어떻게 아느냐고? 나니까 알아. 그 밖에 달리 설명할 방법이 없어. 그래도 만족스럽지 않다면 이렇게 대답해둘까? 나는 마녀야.”
일본 미스터리의 거장 히가시노 게이고의 기념비적인 100번째 작품이자, <라플라스의 마녀>, <마력의 태동>에 이은 라플라스 시리즈 세 번째 작품이다. 데뷔 30주년 기념작으로 발표한 <라플라스의 마녀>에 이어 자신의 100번째 작품으로 라플라스 시리즈를 선택한 데에서 작가에게 이 시리즈가 지니는 애정의 크기를 짐작할 수 있다. 그간 공학도 출신으로써 상상력을 가미한 SF에서부터 과학, 미스터리, 범죄 심리, 판타지 등 다양한 작품을 써온 작가는 이번 작품에서는 ‘AI’라는 소재를 전면에 내세우며 한층 거대하면서도 현실에 밀착된 시의성 있는 이야기를 선보인다. 모든 물질의 역학적 상태와 힘을 알고 분석할 수 있는 무한한 지성의 소유자 마도카의 쿨한 매력도 여전하다.
한승태는 직접 노동하며 겪은 경험을 글로 써낸다. 몸으로 살아낸 현장으로부터 뽑아내는 글은 생생함의 정도가 다르다. 이렇게 말하자니 마치 맛집 요리에 대한 홍보 문구 같지만, 그의 글맛이 상당한 것도 사실이다. 전작에서 양돈장에서 일한 경험을 강렬하게 써내어 독자들의 찬사를 받은 그는 이번엔 근미래에 사라질 직업들을 말한다. 지난 시간 동안 그는 다음 일들을 거쳤다. 콜센터 상담, 택배 상하차, 뷔페식당 주방, 빌딩 청소.
아무래도 해당 직무의 일상이 다이내믹하고 외부인은 모르는 고충이 클수록 글은 더 펄떡인다. 말인즉슨 이번 책도 독자 입장에선 실패가 없다는 뜻이다. 이 직업들의 일상적 고충들은 읽다 보면 어질어질하다. 그럴 때면 한승태의 유머감각에 정신을 뉘듯이 기대어 읽어나가야 한다. 웃음과 괴로움을 오가며 이 직업들의 실태를 하나하나 거치다 보면 노동과 인간에 대한 여러 질문들을 품게 된다.
레이먼드 카버는 글에 대한 그의 취향을 이렇게 말한 적 있다. "저는 글쓰기에서 정직하지 않은 태도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전 속임수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전 정직한 이야기가 잘 서술된 걸 좋아합니다."(<레이먼드 카버의 말> 중) 카버의 취향을 속속들이 알진 못하지만 이 책이라면 그의 기준에도 무리 없이 안착할 수 있지 않을까. 잘 서술된 정직한 이야기, 한승태의 글은 독보적이다.
퓰리처상 수상 저널리스트 찰스 두히그의 <대화의 힘>은 8년 만에 출간된 화제의 자기계발서로, 다양한 분야의 '슈퍼 커뮤니케이터'들의 실제 사례를 심층적으로 분석하고 있다. 여러 가지 흥미로운 사례를 통해 효과적인 대화 기술의 비밀을 밝히고, 경청과 공감, 신뢰 관계 구축, 효과적인 질문 기술, 갈등 해결 방법, 비언어적 커뮤니케이션의 중요성 등을 상세히 설명한다. 또한, 이 책은 최악의 상황을 최고의 상황으로 반전시키는 대화 전략, 상대방의 관점을 이해하고 공통점을 찾아내는 기술, 상대방의 감정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방법 등 독자들이 일상생활과 직장에서 즉시 활용할 수 있는 실질적인 커뮤니케이션 전략을 제시한다.
저자는 모든 대화가 실제로 세 가지 유형 중 하나라고 말한다. 의사 결정을 위한 대화(무엇을 말하고 싶은가?), 감정을 나누는 대화(어떤 기분인가?), 사회적 정체성에 대한 대화(우린 누구인가?)가 바로 그것이다. 또 어떤 유형의 대화를 하고 있는지 모르면 제대로 소통하기 어렵다고 강조하면서 이 세 가지 유형을 인식하고 그에 맞춰 대화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결론은 간단하지만 강력하다. 올바른 대화의 기술을 자신의 것으로 만든다면 누구와도 잘 소통할 수 있다는 것! 소통의 가장 큰 문제는 '상대와 소통했다는 착각'이라는 것을 기억하길 바란다. 2024 상반기 아마존 최고의 화제작.
반도체 엔지니어로 직장생활을 하던 한 직장인은 첫 소설로 150만 독자를 만났다. <달러구트 꿈 백화점>의 작가 이미예가 속도감 있게 흘러가는 하이퍼리얼리즘 합숙 리얼리티 쇼로 돌아왔다. 이일권 PD의 QBS 오리지널 예능 '탕비실'. 탕비실 사용 매너로 각자의 회사에서 가장 많은 욕을 먹은 '빌런' 일곱과 가짜 빌런인 '술래' 한 명이 섞였다.
공용 얼음 틀에 콜라를 얼리는 사람
정수기 옆에 종이컵을 버리지 않고 쌓아두는 사람
인기 많은 커피믹스를 잔뜩 집어가는 사람
공용 전자레인지 코드를 뽑고 개인 무선 헤드셋을 충전하는 사람
탕비실에서 중얼중얼 혼잣말하는 사람
공용 냉장고에 케이크 박스를 몇 개씩 넣어두는 사람
공용 싱크대에서 아침마다 벼락 같은 소리를 내며 가글하는 사람
누구나 싫어할 법한 행동을 하는 인물들을 놓고 날카로운 질문으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누가 가장 싫습니까?” (내 기준으로 충전은 순한 맛, 가글은 매운 맛이다.) 하나같이 싫은 사람뿐이라 내려갈수록 미간이 찌푸려진다. 니체는 당신이 심연을 깊이 들여다 본다면, 그 심연도 당신을 깊이 들여다본다는 말을 했는데 이 말은 직장 생활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내가 빌런을 관찰하고 있는 탕비실에서 그 역시 나의 '빌런'적인 면모를 읽고 있다. '얼음'이라는 별명으로 이 쇼에 출연하게 된 서술자 '나'는 이 인간들이 정말 싫다는 생각, 내가 여기에 올 정도로 그렇게 잘못됐냐는 생각 사이에서 갈지 자를 그리며 쇼의 끝을 향해 달려간다. 인간은 너무도 복잡하고 우리는 생각보다 자기 자신을 잘 알지 못한다. 이야기의 끝에서 독자는 탕비실 거울에 비친 자기 얼굴을 다시 들여다보게 될 것이다.
2021 뉴베리 아너상 수상작 <어둠을 걷는 아이들>의 작가 크리스티나 순톤밧이 <마지막 지도 제작자>로 다시 한번 2023 뉴베리 아너상을 거머쥐었다. <마지막 지도 제작자>는 2023 월터 딘 마이어스 아너상도 수상하며 그 작품성을 확실히 인정받았다.
작품의 배경은, 엄격한 계급이 존재하고, 빈부의 격차가 극명한 '망콘' 국가다. 집안 배경이 좋은 아이들은 열세 살이 되면 한 세대의 자랑스러운 조상을 상징하는 황금 고리 '리니얼'을 받게 된다. 사기와 절도 범죄를 저지른 아버지를 둔 열두 살 주인공 '사이'는 자신의 출신 배경을 속이고, 지도 명장 '사이윤' 사부 밑에서 조수로 일한다. 사이는 아버지라는 굴레와 자신의 처지에서 벗어나고 싶은 강한 열망을 키우던 중, 새로운 땅을 정복하기 위해 떠나는 함선 위에 사부와 함께 오르게 되고, 바다 위 대모험에 기꺼이 뛰어든다.
어떤 책은 첫 장부터 매료시키고, 또 어떤 책은 흡입력 있는 시점에 닿기까지 약간의 시간이 필요하다. <마지막 지도 제작자>는 후자에 속하는데, 초반을 찬찬히 읽어 내려 가다 어느 지점에 도달하면 손에서 떼기 힘들 정도로 이야기에 깊숙이 빨려 들어가게 만든다. 욕망과 양심 사이에서, 믿음과 배신 사이에서, 자기 신념과 유혹의 손길 사이에서, 갈등하고 고뇌하고 결단하는 주인공 '사이'의 험난한 여정 속에서 다채로운 캐릭터와 신묘한 생명체가 등장하여 훨씬 더 풍성하고 다층적인 이야기로 완성된다. 환상적인 이야기에만 머물지 않고, 계급과 빈부격차, 인간의 욕망이 불러일으킨 환경 파괴 등 현실적인 문제에 대해서 함께 생각해 보는 기회도 제공한다. 청소년, 성인 독자의 마음까지 사로잡을 수 있는 매력 넘치는 작품이다.
20대의 엄마를 만날 기회가 나에게 생긴다면, 나는 주저 없이 그를 찾아가 말해줄 것이다. 나는 이 세상에 굳이 존재하지 않아도 되니 결혼해서 고생하지 말고 엄마의 삶을 살라고. 아마도 이 땅의 많은 딸들의 마음이 이렇지 않을까 싶다. 오랜 세월, 우리의 엄마들은 엄마라는 이름으로만 살아왔던 걸 아니까. 그 좋아했던 것들도 다 잊어버리고 말이다.
누구 하나가 사라지는 이런 비극적인 타임머신이 아니더라도, 50대라는 적지 않은 나이에 홀로 베트남으로 직업을 따라, 나를 찾아 떠난 엄마가 있다. 콘텐츠 창작 플랫폼 '투비컨티뉴드' 누적 조회수 17만 회, 알라딘 북펀드 747%를 달성한 <엄마만의 방>은 김그래 작가가 해외로 일하러 떠나게 된 엄마의 삶을 딸의 입장으로 쓰고 그린 에세이로 그림체는 언제나처럼 귀엽지만 마지막 책장을 덮었을 때 각자의 엄마의 삶을 시큰거리게 생각해 보게 하는 참 묵직한 책이다.
베트남에서 엄마는 자기만의 방이 생겼고, 혼자 여행을 할 수 있게 되었으며, 명절엔 전을 부치지 않고 여유롭게 보낼 수 있게 되었다. 자기의 자리를 떠나고 나서야 비로소 찾게 된 진짜 내 자리에 대한 이야기를 가득 담아내 인생은 생각보다 더 찬란하고 아름다울 수 있지 않을까라고 독자들을 자꾸만 부추기는 책이다. 우리 엄마에게도 수줍게 내밀고 싶은 책, 이토록 다정하고 단단한 책.
여름방학에 꼭 읽어야 할 책 몇 권, 누구 추천 도서 50종, 도서관 대출 목록 베스트 몇 위 등등 우린 그간 많은 도서 목록에 매여 살아왔다. 읽지 않으면 어쩐지 교양인 같지 않아 찜찜하고, 읽으려고 하면 어쩐지 재미가 별로 없을 것 같은 이 리스트엔 항상 '고전'이 들어있기 마련인데 2024년 이 여름에 우린 <말하기를 말하기> 김하나 작가와 '고전 읽기'라는 클래식에 도전해 본다, 이 책과 함께.
대학에서 국문학을 전공했고 오랜 기간 동안 카피라이터로 일해온 김하나 작가가 허투루 뭔가를 추천했을 것 같지는 않고, 어쩐지 작금에도 시의적절한 고전을 골랐을 것 같은 나의 생각은 적중했다. 김하나가 풀어놓는 고전 이야기는 참신하고, 독특하며, 매력적이고, 어딘가 모르게 힙하다. 이런 고전이라면 지금이라도 당장 읽기를 주저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그녀의 상상력처럼 고전이라는 넓은 바다에서 저마다의 상상력으로 여유롭게 유영하며 이 여름을 보낼 수 있다면 참으로 행복하고 즐거운 일이 아니겠는가.
1800년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약 두 세기 동안 서구는 세계를 지배하는 위치에 있었다. 그러나 새로운 천년이 시작되면서 역사는 극적인 전환점을 맞이했다. 경제 침체와 내부 정치적 분열에 직면한 서구는 과거 지배했던 변방에 비해 급격한 쇠퇴를 겪게 되었는데, 이러한 부상과 몰락의 패턴은 전례가 없는 일이 아니다. 로마 제국 역시 절정의 권력에서 붕괴에 이르는 유사한 궤적을 그렸다. 역사학자 피터 헤더와 정치경제학자 존 래플리는 로마의 역사와 현대 서구의 역사 사이에서 놀라운 유사점과 의미 있는 차이점을 발견하기에 이르렀다.
<제국은 왜 무너지는가>는 역사학자 피터 헤더와 정치경제학자 존 래플리가 공동 저술한 책으로, 로마 제국과 현대 서구 문명의 흥망성쇠를 비교 분석한다. 저자들은 에드워드 기번의 <로마 제국 쇠망사>에서 제시된 기존 이론들을 새로운 고고학적 증거를 바탕으로 반박하며, 제국의 몰락 과정에서 나타나는 경제적, 정치적, 문화적 패턴을 설명한다. 이 책은 부의 흐름에 따라 변화하는 제국과 주변과의 관계를 설명하고, 훈족의 확장이라는 외부 충격을 코로나 19 팬데믹과 비교하는 한편, 강대국 간 경쟁 관계(로마-페르시아, 미국-중국) 등을 심도 있게 다루고 있다. 저자들은 이러한 분석을 통해 현대 서구 문명의 쇠퇴 가능성을 진단하고, 새로운 세계 질서의 출현을 전망하며, 제국 체제의 모순을 해결할 수 있는 대안적 글로벌 질서를 제시한다. '파이낸셜 타임스' 선정, 2023 최고의 경제 도서!
강효미 작가의 <똥볶이 할멈> 시리즈를 아직 접하지 않은 독자는 있어도, 한 권만 읽은 독자는 없을 것이다. 엄청나게 재미있어서 한 권만으로는 멈출 수 없기 때문이다. <똥볶이 할멈>에 이어 새로운 캐릭터와 기발한 이야기로 다시 돌아온 강효미 작가. 이번 책은 무례함이 하늘을 찌르는 천재 의사 ‘시건방'과 비밀스러운 시골 노인들에 관한 판타지 동화다.
고래등 병원에서 가장 실력 좋은 의사 '시건방'은 실력'만' 갖춘 의사다. ‘대한민국의 훌륭한 사람 10인’에 빠지지 않고 뽑히는 아주 존경받는 의사 고래등 병원의 병원장 ‘김고래’는 도도하고 오만한 시건방 의사를 시골 마을 새우등 병원으로 내쫓는다. 그곳에서도 시골 마을의 노인들을 깔보고 무시하며 부려먹는 시건방. 어느 날, 노인들의 야간 운동회를 염탐하다가 염력, 분신술, 괴력을 가진 초능력자 노인들임을 알게 된 데다, 그들 앞에 복면 악당이 나타나는데…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흔한 말이 있다. 과연 시건방 의사는 초능력을 가진 노인들과 화합하여 변할 것인가, 그대로 줄행랑칠 것인가, 악당의 꿍꿍이는 무엇인가. 신나게 읽다 보면 이런저런 궁금증을 불러일으키며 1권은 끝난다. 이 책을 읽는다면 '작가님, 2권을 빨리 내주세요!' 하고 어린이 독자들도 분명 같은 마음의 소리를 낼 것 같다.
만성 염증, 원인 모를 피로감, 빠지지 않는 체지방 등 건강 문제에 봉착한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디톡스'라는 단어를 흔히 접해보았을 것이다. 이 책의 저자인 닥터 라이블리 최지영 박사 역시 가족의 투병 생활 및 본인의 원인 모를 두드러기를 겪으며 자연스레 디톡스를 연구해왔고, 다양한 채널을 통해 진료실 밖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정보들을 4년 동안 나눠왔다.
닥터 라이블리의 첫 책 <해독 혁명>은 이 디톡스라는 개념 뒤에 숨겨진 거대한 원리를 소개한다. 저자는 우리 몸속 여러 문제를 유발하는 원인 중 하나로 신체에 쌓이는 '독소'를 꼽고 독소 해방을 위한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을 알려준다. 염증에 시달리는 현대인들부터 장이 예민한 아이들까지 함께 마실 수 있는 스무디 레시피도 담겨있다. 내 입맛과 삶에 최적화된 디톡스 시스템을 갖추고, 단순하면서 확실한 건강한 삶을 만들어가 보자.
21세기 초의 일이다. 잘못 짠 시간표 때문에 학교에서 시간 죽이기를 할 때면 늘 도서관 800번대 서가에서 서성였다. 한국 소설이 연대별로 꽂혀 있는 서가에서 한 칸만 걸어도 최윤과 배수아의 거리만큼 시차가 생겼다. 20여 년 전 내가 읽던 그 소설들은 이미 2020년대에 일부 소실되었다. 언급되지 않는 문학은 사라진다. (고정희의 시집조차 절판의 운명을 맞았는데, 다행히 일부 작품은 시간을 이겨내고 문학동네포에지로 재출간되었다.) 1권의 김명순부터 7권의 한강까지 그 이름들이 놓인 시대와 자리를 눈여겨 보게 되는 이유다.
알라딘 북펀드로 먼저 독자를 만나 펀딩 목표치의 9배 이상 선판매되며 이런 기획을 기다려온 '우리'의 존재를 가시화한 <한국 여성문학 선집>이 정식 출간되었다. 한국 근현대 여성문학사 서술을 목표로 2012년 결성된 여성문학사연구모임의 첫 번째 연구 성과를 일곱 권의 책으로 엮었다. 개인으로서의 여성이 출현한 조선시대 말, 여성문학의 탄생기를 서술한 1권을 시작으로 최승자와 허수경, 김혜순과 이수명의 거리만큼이나 성차화된 개인이 출현한 1990년대를 엮은 7권까지, 한국 여성문학을 읽는 최초의 기준점을 세운다. 여성문학사연구모임이 만든 너른 운동장엔 시, 소설 등 기존에 문학으로 인정받던 작품 말고도 잡지 창간사, 선언문, 편지, 일기 등도 나란히 서 있다. 멋지지 않은 여성, 위대하지 않은 여성, 잘못한 여성의 문학도 함께 서서 다음 세기의 여성문학이 놓일 자리를 닦는다. 함께 걷는 길은 이제 외롭지 않다. 김초엽, 정세랑, 최은영 등 이 이름들 뒤에 올 여성들의 이름을 상상하며 글 쓰는 여자가 지나온 길을 따라 함께 걸어본다.
이 책은 전장연의 지하철 행동과 이를 막는 한국 사회의 싸움이 애초에 싸움이 될 수 없는 이유, 그 자체다. 이 싸움은 한 문장으로 정리되는 말대 말의 싸움이 아니다. 자극적인 이미지 한 장으로 정리되는 몸대 몸의 싸움도 아니다. 전장연의 투쟁을 말하자면 책 한 권 분량의 설명이 필요하다. 한쪽에선 역사와 맥락이 겹겹이, 존재와 사회에 대한 고민과 통찰이 겹겹이 쌓인 거대한 움직임을 내딛는데 다른 한쪽에선 알맹이 없는 혐오가 알량하게 맞선다. 체급이 안 맞는다. 논리의 대결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양쪽이 각각 이 싸움에 무엇을 걸고 있는지를 말하는 것이다.
역사에 선명히 기억될 것이다. 인간을 향한 무도한 폭력과, 폭력에 처절하고 우아하게 대항한 움직임, 혐오로 맞서던 자들마저 결국엔 이 투쟁의 은혜를 입는 모순을 맞이하는 모습까지. 그리고 이 책은 기록물로 남을 것이다. 책이 사람을 바꾼다고들 한다. 당연히 모든 책이 그렇진 않다. 사람의 생각을, 마음을, 행동을 바꾸어낼 수 있는 책은 극히 소수다. 조금 더 나은 고민을 하는 사람으로 변하고 싶은 모든 이에게 이 책을 권한다. 막연히 예상하는 그 모든 것을 넘어서는 내용이 들어있다.
온 세상의 장점을 최대한 그러모아 꽉꽉 채운 이 책은, 최백규 시인의 선한 글과 경혜원 작가의 귀여운 그림이 멋진 조화를 이룬다. 이 책을 가장 먼저 접한 현직 초등 교사 150명은 "학생 하나하나에게 '너는 소중해'라는 메시지를 보내는 것 같은 따뜻한 책" "작고 소소해 보이는 내 평범한 모습에서도 특별한 점을 발견할 수 있는 혜안을 얻을 수 있는 책" 등,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책의 주인공은, 사람들의 장점을 잘 찾는 것이 장점인 초등학교 5학년 '김서준'. 서준이는 엄마의 빠른 판단력, 아빠의 높은 집중력, 동생 서윤이의 솔직함, 강아지 코코의 귀여움부터, 동네 편의점 누나의 어린이를 존중하는 마음, 동네 마을버스 기사님의 뛰어난 인내심, 심지어 수박의 매력까지, 자신의 주변에 꼭꼭 숨은 장점들을 찾아낸다. 자세히 관찰해야 보이는 상대방의 장점이 얼마나 반짝이는지, 그걸 발견할 때 이 세상에 얼마나 재미난 게 가득한지, 열심히 들려주고 보여준다. 한 장 한 장 넘길수록 마음이 몽글몽글해지게 만드는 따스하고 순한 책이다.
<모든 요일의 기록> <내 일로 건너가는 법>의 저자 김민철이 퇴사 후 다시 찾은 파리에서의 60일을 담은 책. 20년의 회사 생활을 마치고 김민철은 파리를 찾았다. 스무 살에 사랑에 빠진 후, 파리는 작가가 늘 꿈꿔오던 곳이었다. 매일 똑같았던 20년의 일상을 뒤로하고 그렇게 파리로 떠났고 파리는 그에게 많은 것들을 주었다.
이제껏 살던 모습이 아닌 '다른 모양의 삶을 살고' 싶었던 저자는 파리에서의 두 달간, 뭔가 대단하고 놀라운 일을 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꾹꾹 눌러 담은 매일의 색다른 일상 속에 20년간 하지 못했던 진짜 나의 이야기를 담았을 뿐. 그 솔직한 고백이 파리라는 아름다운 배경과 함께 오늘도 만원인 버스에 선 피로한 나를 위로한다.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은 이 여름에 이 책과 함께 잠시 매일의 시름을 잊고 이렇다 저렇다 할 모양 없는 '무정형'의 나를, 이토록 유연한 내 마음을 만나보자.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에서 장애인의 존재에 대한 법적, 사회적, 윤리적 물음을 던진 김원영이 이번 책에서는 '비정상의 몸'에 관한 미학적, 사회적, 윤리적 물음을 이어간다.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 특정한 범위 내에 안착한 몸만이 아름다움을 꿈꿀 수 있는가. 무용의 역사 속에선 어떤 몸들이 등장해왔나. 그 몸들은 어떤 위계를 가지는가. 서로 다른 몸의 움직임을 보며 우리는 어떤 감상을 가질 수 있는가. 그것을 어떻게 나누어야 하는가. 고민의 깊이는 여전하되 질문의 범주는 새롭다.
책은 김원영 자신의 몸으로 살아온 경험에 관한 에세이와 춤의 역사에 관한 인문학적 접근, 그리고 몸에 관한 사회적 관념의 비판적 성찰을 오간다. 그의 글은 안전지대의 바깥에서 우아한 칼춤을 추며 라인 안쪽의 사회에 굵고 짙은 질문들을 던져댄다. 그 춤의 흐름에 따라 독자는 따뜻함 끝에 아연함을 느끼다가, 허우적거리다가, 과거와 현실, 어떤 미래가 겹겹이 쌓인 광경 앞에 숨을 멈추게 되기도 한다.
책의 효용은 책마다 다르다. 존재에 관한 새로운 방식의 사고를 하고 싶다면, 기존의 낡은 시야가 부수어지는 충격을 원한다면, 이번에도 역시 김원영이다. 어떤 온전함은 현재의 사회에선 불온해보이는 방식으로 분투할 때에만 갖추어질 수 있다. 그 담대함을 품은 책이다.
예대 입시를 위해 삼수 중인 리에는 한동안 왕래가 뜸했던 큰아버지가 홋카이도에서 교통사고로 사망했다는 소식을 듣는다. 달리 가족이 없던 큰아버지가 돌아가신 일로 이것저것 뒤처리를 하고 며칠이 지났을 무렵, 한 관광 개발 회사로부터 큰 아버지가 소유한 섬 에다우치지마에 리조트 사업을 진행하고 싶다는 연락을 받는다. 일이 진행된 끝에 리에는 아버지와 부동산 회사, 관광 개발 회사, 건축사무소 직원 등으로 구성된 일행과 함께 에다우치지마를 방문한다. 그런데 섬을 시찰한 다음 날 아침, 부동산 회사 직원이 의문의 살해를 당하고, 그와 동시에 범인의 메시지가 발견된다. 지금부터 사흘간 결코 섬을 떠나지 말 것, 살인범이 누군지 알아내려 하지 말 것 등 범인이 제시한 계율은 열 가지. 이 ‘십계’를 준수한다면 섬을 나갈 수 있다는 범인. 이 안에 살인범이 있다. 하지만… 절대 범인을 밝혀내서는 안 된다.
<방주> 유키 하루오가 그리는 또 하나의 클로즈드 서클물. 어떠한 이유로 외부와 차단된 넓은 의미의 밀실(윤영천, 2021 <미스터리 가이드북>, 177쪽)이라는 클로즈드 서클의 정의를 생각해 보면, 인터넷도 휴대전화도 문제없이 사용 가능하며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배를 불러 나갈 수 있는 섬을 등장인물들 스스로 클로즈드 서클로 만든다는 역설이 이야기의 긴장감을 더한다. 이것이 가능하게 만드는 범인의 ‘십계’와, 이로 말미암은 등장인물들의 행동 제약, 심리적인 갈등, 의문과 공포에 몰입하다 보면 마지막 순간까지 책장 넘기기를 멈출 수 없다. 마지막으로 당부하자면 작가의 전작 <방주>를 인상 깊게 읽은 독자라면, 절대로 이 소설의 마지막 문장을 먼저 보지 않기를 권한다.
한국에서 태어나 한국을 떠나 살아본 적이 없는 나에게 디아스포라는 경험해 보지 못한 감각이다. 나와 비슷한 꽤 많은 사람들이 한국에서 디아스포라를 겪는 사람들이 누가 있겠나?라고 예단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어떤 형태로든 살던 곳을 떠나 이주해야만 하는 사람들은 존재한다. 좁게는 댐이 생겨 고향을 떠나야 하는 원주민들, 역사적으로는 재중 동포, 재일 동포, 고려인 등.. 그리고 망각하기 더 쉬운 탈북인들. 이 이야기는 당신이 새카맣게 잊고 있던 탈북 청소년들의 이야기다.
너무 당연하게도 북에도 청소년이 있다. 그들도 꿈을 꾼다. '설'은 두 번의 탈북 실패 후 마지막이라는 각오로 두만강을 건넌다. '광민'은 "남조선 기둥선수 손흥민"을 롤 모델로 삼아 축구 선수가 되고 싶다. '여름'은 그저 이곳에 안주하지 않기 위해 떠난다. 이 세 명의 인물들은 고정관념에 사로잡힌 남한 사람들의 짐작대로 행동하지 않는다. 남한에 새롭게 터를 잡기 위해 북한을 떠나는 게 아니라 그저 자기 자신인 채로 살아남기 위해 목숨을 걸어 그들이 명명한 자유의 땅으로 향한다.
저자 정수윤은 13년 동안 100명에 달하는 북한 출신 청년들과 마음을 나누면서 이 이야기를 써야겠다고 마음먹었다고 한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던 한 사람, 한 사람의 생에 대한 의지. 그 열기가 무서워 뒷걸음치는 게 아니라면 이들의 삶과 자유에 대한 갈망을 마주해보자.
<칵테일, 러브, 좀비> 조예은의 호러 소설. 80여 년의 시차를 두고 두 사건이 맞물린다.
1940년대 박준영. 일제강점기 유복한 상인 가네모토가 외아들 유타카와 호화로운 붉은담장집에 살았다. 조선인 간병인인 준영은 자해를 일삼는 외아들의 치료를 맡아 돈, 죽음, 칼이 얽힌 가문의 비밀이 묻힌 지하실에 접근한다.
2020년대 현운주. 소설가였던 외증조모 박준영의 기이한 죽음 이후 적산가옥을 상속받게 된 나는 이 집에서 망령의 목소리를 들으며 쇠약해져간다. 남편 우형민은 준영의 과민한 신경을 탓하고 돈, 죽음, 칼이 얽힌 사건 속에서 시야가 밝아진다.
불을 머금고 기다린 시뻘건 집의 호화롭고 스산한 이미지가 여름에 잘 어울린다. 여름은 나무집이 머금은 습기를 뿜어내는 계절. 인물이 움직일 때면 원한을 빨아들인 채 스스로 존재하는 집이 내는 삐걱대는 소리가 들려올 것 같다. '오직 호러만이 죽은 자가 죽은 입으로 자기의 목소리를 낸다'는 소설가 조예은의 말처럼, 살아서 제 소리를 내지 못하던 죽은 자들이 이 집에서 비로소 자신의 소리를 낸다. 괴이쩍고 애처로운 이야기를 기다렸다면 이번엔 이 소설이다.
사고는 우연일까. 사고는 운명일까. 사고라는 단어엔 "예측 불가능성"의 뉘앙스가 짙게 담겨있다. 사고는 정말 예측할 수 없기에 어쩔 수 없는 일일까? 그렇다면 사고는 왜 경향성을 갖는가. 왜 사고는 가난한 이들이 더 많이 당하는가. 이 책은 자전거 교통사고로 친구를 잃은 저자가 사고라는 개념에 의문을 가지고 연구한 내용을 총체적으로 정리한 논픽션이다.
방대한 데이터를 분석하고 사고 피해자와 유가족 들을 인터뷰하며 저자가 밝혀낸 진실은 사고에 대해 말하기 위해선 차별과 불평등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는 사실이다. 인종, 계급, 성별과 사고의 위험, 피해, 사고 후 비난, 책임 사이엔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이 지점을 명확히 짚고 넘어가지 않는 한 사고로 인한 죽음과 피해를 줄일 수 없다. 저자는 사고를 줄일 수 있는 방법에 대한 결론으로 나아가며, 예방에 관한 모든 대책에서 가장 취약한 사람에 초점을 둬야 한다고 말한다.
진실을 교묘히 가리는 단어들을 사용하는 한, 같은 "사고"는 또다시 반복될 것이다. 우연과 운명 앞에선 반성도 분석도 대책도 나올 수 없기 때문이다. '참사의 나라' 대한민국에서 유가족과 생존자들은 매번 같은 요청을 한다. 다시는 내가 겪은 고통이 반복되지 않게 해달라고. 이 책은 사고에 관한 모든 무책임과 눈가림 앞에 우리가 들이밀 수 있는 완전한 보고서다. 필요했던 논리적 데이터들이 담긴 귀한 기록이다.
그림책은 참 독특하고 매력적인 분야이다. 그림과 글의 하모니가 감동을 주기도 하고 앞서가는 그림을 쫓아가게 해주는 글이 뒤늦게 깨달음을 주거나 전혀 상관없는 그림들이 이어져 나만의 문장을 만들게 해주기도 한다. 그래서 그림책의 세계는 무궁무진하다. 이 세계를 멋지게 항해하는 대표적인 작가 이수지는 항상 그림책 외연의 확장을 시도해 왔다. 이번 그림책 <춤을 추었어>도 모리스 라벨의 춤곡 <볼레로 Bolero>로부터 시작한다.
그림 속 아이는 검은 점 하나와 지휘봉을 들고 악보 위에 선다. 검은 점은 <볼레로>의 18개 구조를 차용한 18개의 서로 다른 풍경 속에서 달리기를 하듯 돌진하다가 지친 낙엽처럼 천천히 구른다. 뒤이어 이어지는 사마귀와 개미, 나비, 개구리, 꽃과 같은 자연물의 아름다움 위를 통통 뛰던 검은 점은 이내 바람에 날아가 탱크 위를 지나기도 한다. 이 매서운 이동의 끝은 어디일까. 생뚱맞게도 불꽃놀이다. 접힌 종이를 펼치면 빈 구멍의 자리가 마련된 불꽃놀이 현장이 펼쳐진다. 하늘에 갖다 대면 완성 될 것 같은 아름다움과 비어버린 공간이 암시하는 쓸쓸함까지 느껴지면 지나친 과장일까? 작가의 말까지 읽어야 완성되는 한 권의 그림책, 아니 세계. 검은 점 혹은 한 아이로 상징되는 세상 모든 약하고 아름다운 존재를 위한 이수지의 춤.
'2024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트럼프는 승리할까?', '왜 세계는 중국을 혐오할까?' 대한민국 대표 이코노미스트 홍춘욱이 21세기 세계 경제의 흐름을 한눈에 이해할 수 있도록 14가지 경제 토픽을 엄선해 <홍춘욱의 최소한의 경제 토픽>에 담았다. 저자는 패러다임 시프트(paradigm shift), 대전환의 시대가 찾아왔다고 언급하면서 팬데믹 이후의 메가 트렌드, 미중 패권 다툼, 고령화로 인한 노동시장 변화, 인공지능 혁신 등 다양한 주제를 통해 국가와 개인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심도 있게 분석한다.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은 복잡한 경제 현상을 경제 초보자도 이해할 수 있도록 쉽고 명료하게 설명하면서도, 동시에 깊이 있는 분석과 통찰을 제공한다는 점이다. 저자는 유튜브 채널과 블로그를 통해 축적한 경제 전문성을 바탕으로, 독자들에게 변화하는 세계 경제의 흐름을 이해하고 이를 바탕으로 개인의 자산 관리와 투자 전략을 수립할 수 있는 안목을 제공하고자 했다. 저자는 경고한다. "20세기에 가지고 있던 지식으로는 21세기를 대응하기 어려울뿐더러, 새로운 변화에 적응해야 할 필요가 있다"라고. <홍춘욱의 최소한의 경제 토픽>이 독자들이 새로운 시대에 걸맞은 경제적 안목을 갖추고, 급변하는 국제 정세 속에서 기회를 포착할 수 있는 통찰력을 기르는 데 도움을 줄 필독서로 자리 잡길 바라본다.
27세 유치원 교사인 오영아는 잘 웃고 잘 참는다. 친구 은주가 재난 피해를 받은 세계 각지의 아동의 비참한 모습이 담긴 사진과 함께 전달한 기부 링크를 보면 청바지를 사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고 기부를 한다. 은주가 하는 말은 항상 옳다. 정치인의 비리, 기업의 로비, 프리랜서의 고발, 연예인의 잘못된 역사의식 등 비난받아 마땅한 악행이 세계 도처에 가득하고 은주의 가치관에 복종하느라 오영아는 웃음을 잃었다. 자신을 때리는 폭력적인 원생 은우며, 나에게 잘해주는 좋은 사람이지만 재미는 없는 남자친구 수원 등에 시달리면서 참고 절제하느라 무표정해진 오영아는 예전의 밝은 자신으로 돌아가기 위해 '정서 변화 시술'을 소개받는다. 뇌의 기전을 자극해 도파민을 휘감은 영아는 이제 브레이크가 고장난 트럭처럼 질주하며 비로소 자유로워진다.
'K-스토리 공모전'등 다수의 공모전에 입상, <라스트 젤리 샷>으로 2023년 제6회 한국과학문학상 장편 대상을 수상한 작가 청예가 심사위원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는 소설을, '욕 먹을 각오'를 하고 '쓰고 싶은 이야기'를 썼다. SNS에 '박제'되는 게 무서워 하고 싶은 말을 참아본 적이 있다면, 첨예한 갈등으로 점철된 현대사회에서 닳고 닳아 웃음을 잃은 적이 있다면 당신도 꼭 이만큼의 자유를 갈구하고 있을지 모른다. 시작하면 끝까지 내달리는 뾰족뾰족한 소설. 오렌지와 빵칼을 양 손에 쥐고 딱 그만큼의 해방을 향해 손을 뻗어본다.
한여름 교외의 호화 별장지에서 인근 별장 주민들 사이의 연례행사인 바베큐 파티가 끝난 직후 끔찍한 연쇄살인 사건이 일어난다. 살해된 희생자의 수는 다섯 명. 사건이 일어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범인은 고급 호텔에서 최고급 만찬을 즐긴 뒤 자수한다. 범행에 사용한 흉기까지 스스로 증거물로 제출한 범인은 삶의 의미를 느끼지 못해서 사형을 당하고 싶다는 마음과 자신을 무시한 가족에게 복수하고 싶다는, 지극히 이기적인 범행 동기를 밝혔다. 하지만 끝까지 범행 과정에 대한 진술은 일절 거부한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사건의 진상을 밝히고자 ‘검증회’를 열고, 그 자리에 가가 교이치로 형사가 참석한다. 살아남은 사람들의 기억을 통해 재구성되는 비극 속에서 가가 형사는 사람들이 저마다 감추고 있던 비밀을 파헤치기 시작하고, 예측하지 못한 진실이 그 정체를 드러낸다. 그들 모두는 같은 내용의 편지를 받았다. “당신이 누군가를 죽였다.”라는 내용의 편지를.
히가시노 게이고의 대표작이자, 1986년 발표된 <졸업>을 시작으로 40여 년 가까이 이어지고 있는 ‘가가 형사 시리즈’의 열두 번째 작품. 교묘한 복선과 연이은 반전, 충격적인 결말까지 미스터리가 줄 수 있는 재미에 충실한 작품이다. 작가는 “시리즈 중에서도 본격 요소가 짙다고 평가받는 <둘 중 누군가가 그녀를 죽였다>와 <내가 그를 죽였다>의 계보를 잇는 작품”이라고 이야기했다. 또 “미스터리란 어떤 소설인가? 라는 질문을 들었을 때, 이런 소설이다, 라고 대답할 수 있는 작품입니다.”라고 자신 있게 신작을 소개했다.
이야기는 6학년 A반의 반장이자 반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학생 마리에의 샌드위치가 도난당하는 사건에서 시작된다. 마리에의 샌드위치만 연속적으로 도난당하자, 마리에를 좋아하는 토르벤이 사건 해결에 적극적으로 나선다. 어느 날, 토르벤이 전학생 콘라트가 마리에의 가방을 여는 순간을 목격하고 만다. 모범생 미카는 전교생에게 도둑으로 낙인찍힌 콘라트를 돕기 위해 반 아이들에게 재판을 열자고 제안한다.
그저 조용하고 과묵한 성격인 데다 전학을 온 이후 아직 친구를 사귀지 못했을 뿐인 콘라트. 순식간에 도둑으로 몰리자마자, 아이들의 입을 타고 퍼진 소문은 진실로 굳혀져 버린다. 검증되지 않은 말이 걷잡을 수 없이 부풀어 올라 무고한 한 아이를 구석으로 몰아가는 과정이 흡사 우리 사회의 단면과 겹쳐진다. 하지만 아이들은 현명한 방식을 택하고, 판사, 기록관, 검사, 변호인, 법정 경찰 등의 역할을 분담해 재판을 열어 범인 색출에 성공한다. 범인은 귀엽고 사랑스러운 의외의 대상으로 밝혀지는데…
이야기의 마지막에는 법 개념과 재판 절차 등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춘 부록(형사 재판 절차 Q&A, 작품 속 법 개념 살펴보기)을 꼼꼼하게 챙겨 수록했다. 아이들이 직접 재판을 열어 진실을 파헤쳐가는 흥미진진한 이야기에 지식 습득의 기회도 적절히 더해 자연스럽게 법과 재판에 관심을 갖게 만든다. 지루함과 딱딱함은 내려놓고, 재미와 유익함을 동시에 잡은 책이다.
유튜브 1억 조회수 돌파,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채소과일식 전도사로 유명한 조승우 한약사의 첫 자기계발서. 은행원 출신으로 커피 사업가였던 그는 32살에 관상동맥 조영술을 받았지만 가슴 통증이 지속되었고, 결국 원인 모를 병으로 시한부 선고를 받는다. 이를 계기로 약대 한약학과에 진학해 자신의 병을 치료하는 방법을 찾았고, 10여 년간의 건강 상담을 통해 깊은 통찰을 얻게 된다. 이 책에는 저자가 건강을 되찾은 모든 방법과 다시 삶을 살아내는 희망이 담겨 있다.
이 책의 핵심 메시지는 간단하다.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성공법칙에 소모되지 않고 나를 살리는 습관을 만드는 것!' 저자는 돈을 좇는 맹목적인 삶보다 마음의 평온함이 진정한 건강과 행복을 가져온다고 강조한다. 특히 말기 암 환자들과의 상담 경험을 통해 마음의 괴로움이 건강을 좌우한다는 결론을 내리고, 독자들에게 인정받으려는 욕구, 돈에 대한 집착, 과도한 건강 염려증 등에서 벗어나 "지금 이 순간, 마음의 괴로움 없이 살자"라고 조언한다. 이 책이 바쁜 현대인들에게 삶의 의미를 되돌아보고, 자신을 죽이는 습관은 버리고 살리는 습관을 키워 진정한 행복과 건강을 찾는 길을 안내하는 지침서가 되길 바라본다. 우리에게 주어진 가장 위대한 선물은 바로 '지금 이 순간 살아 숨 쉬고 있다'는 단순하면서도 강력한 진실이다.
지친 여름, 아름다운 명화 속 잔혹한 뒷이야기로 초대한다. 조회수 1,600만 회 이상을 기록한 화제의 칼럼 '후암동 미술관'을 통해 다채로운 미술 세계를 전했던 아트 스토리텔러 이원율 작가가 이번에는 그림 너머 뜻밖의 고자극의 세상이 담긴 밀도 높은 명화 이야기로 독자들을 찾아왔다.
저자는 제임스 휘슬러, 귀스타브 도레, 클림트, 렘브란트 등 대가들의 그림을, 역사적 사실을 기반으로 추론한 탄탄한 사실 위에서 생동감 넘치게 풀어낸다. 모르고 보면 아름답고 익숙한 그림들의 낯설고 섬뜩한 지점들도 생생하고 설득력 있게 소개해 다시 한 번 그림을 들여다보게 만든다. 책장을 넘기다 보면 삶과 죽음, 환상과 현실 사이에 집착하는 인물과 삶을 향한 그들의 비명이 들리는 듯하다. 절박한 사랑의 순간과 휘몰아치는 충격적 결말, 명작을 둘러싼 요동치던 역사적 사실까지 종교, 문학 그리고 기묘한 신화에 걸쳐 한 걸음 더 다양한 교양 지식을 만날 수 있다.
힘들지 않은 노동이 얼마나 있을까. 자신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모두가 힘들다. 그래서 눈 돌릴 틈이 없다. 타인의 노동들이 얼마나 고된 지까지 들여다볼 여유가 없다. 자꾸만 나의 고통에만 골몰한다. 그래서는 변하는 게 없다. 세상의 변화는 이어져 있다. 각자의 개별적 고통이 어떤 맥락으로 이어져 있는지를 그려야만 거대한 진보를 상상할 수 있다. 서로의 고통을 알아봐야만 함께 나아질 수 있다.
이 책은 각자의 노동을 들려준다. 웹툰작가, 물류센터 직원, 도축검사원, 번역가, 대리운전기사, 사회복지사, 전업주부, 예능작가, 헤어디자이너, 농부, 건설노동자... 수많은 분야의 노동자들이 자신의 고민, 아픔, 고통, 기쁨을 썼다. 각 글은 전혀 모르던 세계의 새로운 정보를 얻을 수 있을 만큼의 분량은 되지만 마음이 힘들 만큼 구체적인 얘기를 하기엔 짧기 때문에 큰 부담 없이 읽어갈 수 있다. 서로를 알아보기 위한 마중물이 될 수 있는 책이다.
1912년, 영국 어느 백작 가문의 삼남 에드윈은 인도를 비롯한 영국의 식민 지배에 대한 비판적인 견해를 드러내 집에서 쫓겨난다. 이곳저곳을 전전하다 캐나다의 작은 마을에 도착한 그는 그곳에서 숲을 산책하던 도중 주변이 갑자기 어두워지고 바이올린 소리와 함께 알 수 없는 소음이 들려오는 순간을 경험한다. 2020년, 미렐라는 친구 빈센트의 남편이 주도한 폰지사기로 피해를 본 남편이 사망한 이후 친구의 소식을 찾기 위해 친구의 오빠 폴의 공연을 찾아가 빈센트가 어린 시절 촬영했다는 기묘한 영상을 보게 된다. 2203년, 베스트셀러 작가 올리브는 북 투어 도중 한 인터뷰어로부터 자신의 소설 속 한 장면에 관한 기묘한 질문을 받는다. 그리고 2401년, 달 식민지에서 태어나고 자란 한 청년은 우리 세상의 근본에 대한 도전적인 가설을 검증하고자 위험한 여행을 떠난다.
1912년 아메리카 대륙에서부터 2401년 달 식민지까지. 500년의 세월, 지구와 달이라는 공간을 넘어 서로 다른 시대와 공간을 살아가는 인물들을 섬세하게 엮어낸 에밀리 세인트존 멘델의 여섯 번째 장편 소설. 소설은 시종일관 우리 삶의, 세상의 ‘끝’을 예리하게 인식하는 가운데 각각의 이야기를 유려한 문장으로 풀어내고, 이윽고 이야기들을 서로 마주하게 한다. 작품을 관통하는 ‘진실’이 드러나는 순간마저도 지극히 담담하고 고요하게 그려내 독자는 현란한 문장에 휘둘리지 않고 ‘고요의 바다에서’ 이야기의 결말을, 삶과 세상을 향한 고요한 애정을 맞이할 수 있다. 작가의 전작을 사랑하는 독자라면 눈에 익을 등장인물의 이름과 설정들도 반갑다.
김종원 작가가 처음으로 쓴 청소년을 위한 인생철학 에세이다. ‘나’라는 존재와 친구와의 관계, 공부와 성적, 꿈과 진로 등에 관한 고민이 커지는 청소년기는 인생이란 여정에서 어둡고 막막한 터널을 처음으로 마주하는 시기다. 어떤 생각을 키우고, 어떤 마음을 갖느냐에 따라 앞으로 펼쳐질 삶의 모양이 달라질 수도 있기에 저자는 단어 하나, 문장 하나에도 온 마음을 담았다.
“그 하룻밤, 그 책 한 권, 그 한 줄이 인생을 바꿀지도 모른다”라고 했던 니체의 말처럼, 지금 각자의 고민을 안고 힘들어하는 청소년들의 삶이 긍정으로 바뀔 순간을 떠올리며 책을 완성했다고 한다. 여기에는 자존감, 관계, 꿈, 가치관, 지성에 관한 70가지의 빛나는 문장들이 가득 담겨 있다. 혼란스럽고 불확실한 것들이 가득한 세상에서 10대들의 마음을 단단하게 잡아줄 이 문장들을 읽고, 따라 쓰다 보면 지금의 많은 고민과 문제들을 해결해 나갈 내면의 힘을 키울 수 있을 것이다.
2000년대엔 심윤경을, 2010년대엔 최진영을, 2020년대엔 김희재를 한국문학 독자에게 소개한 한겨레문학상의 2024년 수상작. <나의 왼쪽 너의 오른쪽> 등의 추리소설로 작품활동을 먼저 시작한 소설가 하승민이 수상했다. 소설의 첫 줄이 이 소설이 갈 길을 선명하게 가리킨다. "내 피부는 파랗고 엄마는 베트남 사람이다. 어느 쪽이 더 문제인지는 모르겠다."(7쪽) 이 인물들에겐 사회가 문제라고 받아들이는, '차별과 혐오'의 이유가 되는 외양이 있다. 소년은 '아바타, 스머프, 도라에몽'이고 그의 어머니는 응우옌 씨이다.
'블루멜라닌'이 파란 피부의 원인이라는 것말고 어떤 사람이 왜 파란 피부로 태어나는지 이 세계의 과학은 알지 못한다. 고엽제, 다이옥신, 부모가 복용한 약, 유전질환 등을 원인으로 넘겨 짚으며 사람들은 파란 사람을 가장 낮은 계급으로 내려보낸다. 한국에서의 삶을 버티지 못하고 미국 조지아로 이민을 떠난 소년은 이곳에서 파란 피부를 가진 친구를 만나 우정을 나눈다. 그리고 이 이방인의 삶이 9.11 테러, 총기난사 사건, 한국의 정치적 상황과 같은 세계의 혼란과 어우러져 혼란을 겪는다. 그 과정에서 돋보이는 것은 이 소년의 꺾이지 않는 마음. 소년은 스스로의 인간다움을 포기하지 않고 세계와 대결한다. 극단적인 빛깔로 대결하는 정치적인 세상에 던져진 질문. 흑백으로 대결하는 세상의 침묵을 깨트리고 파란을 일으킬 소년이 도착했다.
코로나19와 관련해서는 모든 상황이 놀라울 정도로 빠르게 진행됐고 그중 하나가 백신의 개발이었다. 해당 분야에 대한 지식이 전무한 일반인의 입장으로서는 원래 백신이라는 것이 이 정도의 속도로 개발되는 건가 싶지만, 학계 내에서도 코로나19 백신의 개발은 전례 없는 빠른 속도였다. 어떻게 가능했을까?
여기 한 여성 과학자가 있다. 그의 관점에서 보자면 코로나19 백신은 낯선 상황과 우연이 만들어낸 갑작스런 발명품이 아니다. 과학계의 아웃사이더로서 평생 우직하게 비인기 영역의 연구에 쏟아부은 시간이 비로소 세상을 바꾼 결과로 이어졌을 뿐.
이 책은 그의 회고록이다. 어린 시절부터 생물학도였던 대학 시절을 지나 동료 과학자들마저 쓸모없다고 생각한 RNA 연구에 집착하는 과학자가 되어 가난하고 주목받지 못하는 삶과 연구를 이어가다 결국 코로나19 백신 개발로 노벨생리의학상을 타기까지, 그는 침착하고 단정한 문장으로 자신의 삶을 이야기한다.
자신과 자신의 연구 대상을 믿고 실험대 앞에서 평생을 버틴 여성 과학자는 팬데믹을 종식시켰다. 그저 가만히 있는 듯 보이는 묵묵한 버팀이 홀로 만들어 내는 일이 있다. 커털린 커리코의 경우에 그것은 인류를 구하는 일이었다.
<삼국사기> 열전 ‘검군전’에는 대략 다음과 같은 내용이 실려있다. 신라 진평왕 때 사람 검군은 사량궁의 사인, 오늘날로 말하자면 하급 관리이자 화랑 근랑의 낭도였다. 나라에 기근이 들어 어려운 시기에 궁중의 사인들이 모의하여 곡식 창고의 곡식을 훔쳐 나누었는데, 검군만이 받지 않았다. 곡식을 훔친 사인들은 검군을 죽이지 않으면 말이 새어나갈 것을 우려하여 그를 없애기로 모의한다. 이를 눈치챈 검군은 화랑 근랑을 만나 작별을 고하고, 근랑이 이유를 거듭 묻자 대략의 연유를 설명한다. 근랑은 검군에 묻는다 “어찌 도망가지 않는가?” 검군은 근랑에게 대답한다. “저들이 그르고 제가 옳은데, 도리어 스스로 도망한다면 장부가 아닙니다.(彼曲我直, 而反自逃, 非丈夫也.)” 이후 검군은 동료들이 마련한 술자리에서 독이 든 음식을 먹고 죽고 만다.
부정을 적극적으로 고발하지도, 예정된 위험을 피하지도 않고 죽음을 택한 검군의 선택은 고지식하고 답답하게 보인다. <삼국사기>에도 그의 죽음에 대하여 “죽어야 할 바가 아닌데 죽었으니, 태산을 기러기 털보다 가벼이 여긴 것.”이라고 논한다. 그런데도 <삼국사기>의 찬자는 그의 죽음을 열전에 남겼다. 의로움에 대한 그의 고지식하고 무모한 태도 속에서 역사의 기록으로 남겨 전해야 할 무언가를 발견한 것일까. 흔히 지나간 역사에서 오늘날 우리에게 필요한 삶의 지혜를 얻을 수 있다고 하지만, 이는 누군가 먼저 만들어놓은 정답지를 살펴보는 것과는 다르다. 우리가 역사 속에서 길어 올릴 수 있는 것은 명쾌한 해답이 아니라 삶의 기준을 바로 세워줄 무언가다. 이 책에서 최태성은 세상에 휩쓸리지 않고 후회 없는 선택을 하며 살아가고 싶은 이들을 위해 역사에서 찾은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단단한 가치들을 말한다. 사랑, 진심, 신뢰, 품위, 도리, 연대… 이상적이라거나 고리타분하다고 여겨지는 이 가치들이 여전히 우리 삶에 큰 의미가 된다고, 수백 년이 지나도 살아남은 소중한 가치들을 통해 세상 속에서 어떤 선택을 내리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함께 고민하자고 말한다.
대한민국 1호 기록학자이자 전작 <거인의 노트>를 통해 ‘기록’이 가진 힘을 소개했던 김익한 교수가 이번에는 ‘생각’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돌아왔다. 젊은 시절 역사와 실천 사이에서 방황하던 자신에게 인생의 길을 제시해 준 것이 ‘기록’이라고 말하는 그는 이번에는 '생각'이라는 주제를 통해 인생을 관통하는 더 깊고 핵심적인 삶의 자세와 성장법을 제안한다. 기록학자인 저자가 '생각'에 대해 이야기하는 이유는 아주 간단하다.
"생각이 기록에 선행하기 때문이다. 기록은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다."
25년 동안 기록학 연구에 매진한 그는 일상을 기록하고 분류하며 어떻게 하면 자신의 인생을 주도할 수 있는지 고민했는데, 마침내 찾아낸 답이 바로 '생각의 힘', 그리고 '마인드 박스'다. 이 책은 욕망, 경쟁, 소비, 시간 등 16개의 핵심적인 삶의 영역에 대한 마인드 박스를 소개하며, 이를 통해 독자들이 자신만의 인생관을 구축할 수 있도록 안내하고 있다. 그리고 단순한 이론서가 아닌, 실제 삶에 적용 가능한 실용적인 지침서를 지향하며 철학, 인문학, 사회학을 아우르는 폭넓은 지식을 바탕으로 독자들이 새로운 정보를 받아들이고 조합하는 '생각의 힘'을 기를 수 있도록 돕는다. 궁극적으로 이 책은 타인의 기준이나 사회적 압박에 휘둘리지 않고, 자신의 가치관에 따라 삶을 주도적으로 이끌어가고자 하는 이들에게 유용한 인생 지침서라고 할 수 있다. 중심을 잃은 삶에 돌파구를 찾고 있다면 지금 당장 '마인드 박스'를 만들어 보자!
스마트폰 하나면 여행이 가능한 이 손쉬운 시대에 손글씨와 손그림으로 여행을 기록하는 여행자가 있다. 카메라없는 핸드메이드 여행일기 시리즈의 작가 일러스트레이터 이다가 내 손으로 발리 (2014) 내 손으로 교토 (2016) 내 손으로 치앙마이 (2017)에 이어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탔다. 인천공항에서 직항으로 9시간이면 갈 수 있던(2022년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모스크바 직항 노선은 현재 폐쇄되었다.) 모스크바에 작가는 굳이 블라디보스톡에서 출발하는 횡단열차를 타고 154시간 동안 이동해 도착하기로 한다. 그렇지만 생각해보면 모든 여행은 다 굳이가 아니던가. 손그림 속도로, 기차 속도로 체험해야만 눈에 보이는 것이 있다고 믿는 작가는 거친 손그림으로 쓱쓱 순간을 잡아세운다.
130쪽, 131쪽에 작가가 그려놓은 자작나무 그림과 함께 이런 여행일지를 읽어본다.
눈이 내린 채로 멈춘 하얀 풍경. 길게 서있는 높은 자작나무의 가지를 본다. 심은 사람도 돌보는 사람도 없는데 곧고 아름답다. 기차 안은 아주 조용해 나만 깨어있는 것 같이 느껴진다. 하지만 아니다. 러시아 사람들은 이런 평화로운 지루함에 익숙한 것처럼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 (132쪽)
이 지루함이라는 러시아적인 표정은 이런 방식의 여행이 아니고선 체험할 수 없었을 것이다.
7일 동안 87개 도시를 지나며 에어비엔비 주인의 발냄새를 맡고, 얼어붙은 바다를 보고, 기가 막힌 조지아 음식을 맛보고, 좀처럼 웃지 않는 러시아 식당 접객원들의 표정을 경험한 작가와 함께 한여름에 시베리아를 느껴본다. 귀여운 것에 버닝하고, 블라디보스톡에서 에반게리온을 느끼는 작가의 개그센스와 함께하노라면 우리도 굳이 사서고생을, 다시 말해 여행을 하고 싶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