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서문에서 조문영은 자신에게 인류학의 의미를 이렇게 정리한다. "나에게 인류학적 세계 읽기란 단단한 이해를 거쳐 책임 있는 비판을 길어내는 과정이었다." 이 문장 이후로 따라오는 세상 비판, 삶의 이해에 대한 책임감과 열망에 관한 묵묵한 고백은 왠지 낯설지 않다. 인문학, 사회과학을 정확하게 공부하고자 하는 이들의 마음 깊은 곳에는 저마다 이와 비슷한 열망이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권위를 경계하고 자신을 의심하며 오로지 실낱같은 진실들을 찾아내어 그것으로 쌓아 올린 세계의 비판적 상을 구성하는 일. 마주하는 순간마다 기존의 문법에서 균열을 발견하고 새로운 관점을 만들어내는 것은 분명히 어렵고 고독한 일일 테지만, 이를 성공적으로 해낸 작업물은 비슷한 길을 따르는 동료 시민들에게 큰 기댈 언덕이 되어 준다.
그리고 이 책이 그렇다. 인류학자로서 그가 만나고 기록한 세계는 구석구석 입체적이고 섬세하게 비판적이다. 한 편 한 편 칼럼들에서 그의 시선은 주로 빈민, 노동자, 노인, 여성, 장애인, 원주민, 이주민, 지방, 비인간 등 '취약한' 존재들에 머무른다. 그리고 이들과 나, 이들과 당신들, 이들과 세계의 관계를 끊임없이 묻고 연결하고 재정의한다. 각자의 세계가 만나는 접촉면에 관한 주목은 지금 한국 사회의 민중들이 도달한 '연결'의 감각과 공명한다. 연결을 일차원적으로 감각한 다음에 우리는 어떤 구체적인 질문을 해나가야 할까? 조문영의 칼럼들은 이 고민에 대한 실마리를 쥐고 있다. 그의 글은 조심스럽고 성찰적이며 책임감 있게 삐딱하다. 현시대가 요구하는 지식인의 태도라고 감히 말해본다.
- 인문 MD 김경영
이 책의 한 문장
하지만 나는 여전히 비판을 소중히 여기며, 실수와 실패를 거듭하면서라도 견실한 비판 공론장을 만드는 일에 힘을 쏟고 싶다. 문화적 취향, 정치적 선호, 삶의 지향, 타자를 향한 시선이 알고리즘에 따라 분기하고 데이터로 묶여 상업화되는 세계는 관계의 고유성을 무시하고, 우리 감정을 극도로 피폐하게 만든다. 비판이 떠난 자리에 들어선 비난은 벨 듯한 언어로 상대를 제압하는 데만 열중하면서 평범한 시민들로 하여금 갈등과 혐오를 피해 자신의 수사적 고향을 찾아 칩거하게 만든다. 이들이 각자의 고향에서 요새를 만들고 '안전'을 기준으로 타인-침입자를 감별하는 사회는 우리를 일상적 긴장 상태에 가둔다. 코로나19 '종료'가 선언된 이후에도 세상이 별반 바뀌지 않았다고 느껴지는 이유다.
어린 시절부터 우리는 자연스럽게 무언가를 쓰며 살아왔다. 낙서, 일기, 숙제 등 그 행위의 이름은 달랐지만, 본질적으로 그것은 모두 '기록'이었다. 어린 시절의 기록은 단순히 쓰는 행위였을지 모르지만, 시간이 지나며 우리는 기록이 단순히 쓰는 것을 넘어 자신을 발견하고 세계를 확장하는 중요한 매개체임을 깨닫게 된다. <기록이라는 세계>는 바로 이 지점에서 시작한다. 기록이란 거창한 것이 아니다. 일상 속에서 늘 해왔던 평범한 행동이지만, 그것이 쌓이고 확장되면서 우리의 삶에 새로운 의미와 방향성을 부여한다는 점을 알려준다.
이 책은 기록이 단순히 무언가를 적는 행위를 넘어, 우리 삶을 어떻게 변화시키고 확장하는지 보여준다. 저자는 한 줄 일기, 루틴 트래커, 실패 노트, 미래 일기 등 다양한 기록법을 통해 기록의 세계를 탐험한다. 기록은 그저 하루를 정리하거나 지나간 시간을 남기는 것만이 아니다. 나 자신을 더 깊이 이해하고, 타인의 시선을 배우며, 내면을 확장해가는 여정이다. 이를 통해 우리는 무심히 지나쳤던 순간들 속에서 의미를 발견하고, 점차 더 넓고 깊은 나만의 세계를 만들어 나갈 수 있다. 저자는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기록이 어떻게 평범한 일상을 특별한 이야기로 바꾸는지 설득력 있게 전한다.
새해는 새로운 시작을 다짐하며 자신을 돌아보기에 가장 좋은 시간이다. <기록이라는 세계>를 지금 읽기에 가장 완벽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단순히 기록법을 소개하는 데 그치지 않고, 왜 기록이 우리 삶에 중요한지, 그리고 그것이 어떤 변화를 만들어내는지 설득력 있게 풀어내기 때문이다. 작지만 의미 있는 변화를 꿈꾸는 이들에게, 이 책이 새로운 출발의 동반자가 되어주길 바란다. 오늘 한 줄의 기록이 쌓여 내일은 더 나은 나를 만들어줄 것이다. 변화의 시작, 기록으로부터.
- 자기계발 MD 김진해
추천의 글
"같이 써보자고 발랄하게 응원하는 저자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내 옆엔 빼곡한 기록과 다 쓴 연필, 그리고 좀 더 커다래진 마음이 남아있을 것이다." - 이승희 (마케터 숭, <기록의 쓸모> 저자)
"늘 중간에 멈춰버리는 기록들, 새로운 시작 앞에서 망설이는 순간. 이 책은 그런 두려움을 안은 당신의 손을 따뜻하게 잡아준다." - 김경희 (‘오키로북스’ 대표, <비낭만적 밥벌이> 저자)
"이 책은 우리가 맺는 모든 관계의 시작점, ‘나 자신’을 이해하는 기록 여정으로 안내한다." - 전종목 (<어른을 위한 말 처방> 저자)
보에게는 남은 시간이 많지 않다. 몸의 기력이 나날이 떨어져 가는 것을 느낀다. 치매에 걸린 아내는 3년 전 요양시설로 떠났다. 혼자 남은 그는 아내의 향기를 보관하기 위해 그녀의 스카프를 병 속에 넣어두었는데, 이제 그 병의 뚜껑을 여는 것도 쉽지 않다. 그의 고요한 일상은 매일 찾아오는 요양보호사들에 의해 잠시 깨어질 뿐 그리고 오랜 친구 투레와 반려견 식스텐만이 유일한 기쁨이다. 아들 한스와의 관계는 망가진 지 오래다. 아들은 식스텐을 데려가려고 한다. 보처럼 나이가 많은 사람이 숲에 가서는 안되고, 식스텐 같은 개들은 시골길을 한 번 왔다 갔다 하는 것보다 더 긴 산책이 필요하다면서. 보는 자신에게서 반려견 식스틴을 떼어놓으려는 아들을 이해하지 못한다. 식스텐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보의 감정은 크게 흔들리고, 그는 삶의 여러 순간을 되돌아본다. 그는 남은 시간 동안 삶의 문제들을 잘 풀어낼 수 있을까.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작가 리사 리드센의 데뷔작이자 2024년 스웨덴 올해의 도서상 수상작. 작가는 할아버지를 방문하면서 우연히 오래된 메모를 발견한다. 요양보호사가 남긴, 할아버지 생애의 마지막 몇 년 동안의 기록들. 아버지와 함께 할아버지를 찾아 청소와 식사, 목욕 등을 도우면서 작가는 할아버지가 들려주는 흥미진진한 인생 이야기에 매료되고, 나아가 자신이 인생 이야기에 그토록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순전히 할아버지 덕분이라고 훗날 인터뷰를 통해 고백한다. 노인을 향한 고정관념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고 싶었다. 자신의 존엄성과 결정권을 지키기 위해 끝까지 고군분투하는 인간의 위대한 마지막 모습들. 이 소설은 바로 그렇게 쓰여졌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세대 간의 소통, 가족 간의 사랑, 오랜 동료와의 우정, 뜨거운 화해와 온화한 작별의 과정을 사실적이면서도 감동적으로 보여주며, 소설은 인생의 진정한 의미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게 한다.
- 소설 MD 박동명
이 책의 첫 문장
나는 상속권을 박탈해 그가 아무것도 물려받지 못하기를 바랐다.
이 책의 한 문장
창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나는 남쪽으로 날아가기 위해 두루미들이 모여드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엄정순 작가는 오랫동안 시각 장애 아이들을 대상으로 미술 교육을 해 왔다. 앞이 잘 보이지 않는 아이들과 커다란 동물을 만나는 미술 프로젝트 '코끼리 만지기'를 기획해, 아이들과 함께 태국 치앙마이로 건너가 코끼리와 직접 대면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아이들이 코끼리를 만나고, 손끝의 감각으로 예술화하는 일련의 과정을 <코끼리를 만지면>에 담았다.
아이들은 치앙마이에 머물면서 코끼리 소리로 아침을 시작하고, 코끼리 냄새를 맡고, 코끼리와 함께 산책하며 특별한 교감의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코끼리 실체를 직접 만난 경험과 감각, 그리고 상상력을 동원해 각기 다른 작품을 창조해냈다. 코끼리지만, 한 번도 본 적 없는 다양한 모습의 코끼리를 이 책에서 만난다. "창조의 세계는 어떤 결핍도 무거워하지 않는다"라는 작가의 말과, 손끝으로 펼쳐지는 예술의 세계가 얼마나 놀라운지 이 책이 증명해 보인다.
- 어린이 MD 송진경
작가의 말 중에서
저는 미술가로서, 미술에서 가장 멀리 있는 시각 장애의 세계에 다가가는 작업을 저의 중요한 예술적 구현으로 삼았고, 25년 넘게 그 여정 속에 있습니다. 예술가로서 제가 다루는 주제를, 시각 장애를 가진 아이들과 나누는 방법을 늘 고민합니다. 코끼리도 그중 하나지요. 제가 꿈꾸는 우리의 관계는 선생과 학생도 아니고, 보는 사람과 보지 못하는 사람의 관계도 아닙니다. 그보다는 미술은 눈이나 손으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하여 서로 영감을 주고받는 관계입니다. 그런 관계 속에서 각자 ‘자기’가 되어 가길 바라는 마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