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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로지 시만을 생각하며 보냈던 시절이었다. <뒹구는 돌은 언제 잠 깨는가>와 <남해 금산> 무렵. '아픔'과 '치욕'에 관한 아름답고 서슬퍼런 문장들. 그간 어둠 속에 묻혀있었던, 이성복의 미발표 시 150편을 한 권으로 엮어 냈다.
"아버지 저의 날들이 이리 곤비하니 숨을 그늘이 없어요" (초토일기 넷)이라고 말하는 절망. "연애는 안 되고, 연애는 잘 안 되고 아무도 우리 생일을 기억하지 않았다"(연애는 안 되고)라고 말하는 떠돎. "나는 기억한다 아저씨, 같이 가도 돼요? 누이는 덥석 팔짱을 끼었다 그래 가자 삼단요 펴진 네 방으로, 그래 나는 실연했다" 라고 뇌까리는 치욕. (1978년 10월) 같은 문장들이 어둠 속에서 꽃을 피운다.
앞으로의 시적 여정도 바로 이 지점, 1976-1985년에서 멀리 벗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시인은 말한다. 최근작 <래여애반다라>의 정제된 감정을 기억하는 독자라면 이성복이 처음 출발했던 자리, 이 시퍼런 문장들이 한층 새롭게 보일 듯하다. 사람은 시 없이 살 수 있는가를 묻는 산문집 <고백의 형식들>과 시는 가장 낮은 곳에 머문다고 말하는 대담집 <끝나지 않는 대화>도 함께 출간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