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4월 16일 : 68호
사월엔 상처로 숨을 쉬기
잘 지내다가도 어떤 사건 이후 푹 패인 자리가 아직 남아있다는 걸 알아챌 때, 운석이 떨어진 자리, 싱크홀이 발생한 자리 같은 공동空洞을 인식할 때가 있습니다. 2021년 작품활동을 시작해 2025년 <그 개와 혁명>으로 이상문학상을 수상한 작가 예소연은 한국문학을 읽고 쓰는 많은 독자와 동시대를 살며 동시대를 이야기하는 작가입니다. '그 사건'이 무엇을 남겼는지, 이소연의 소설 <영원에 빚을 져서>는 10년의 시차를 두고 이 슬픔을, 그리고 "나는 슬픔을 믿을 거야"라고 다짐하는 마음을 이야기합니다.
10년 전에 봉사활동으로 캄보디아에서 머문 적이 있던 세 친구는 시간이 지나 틀어지게 됩니다. 좋을 땐 보이지 않던 것들이 친구를 덜 좋아하게 되면 눈에 들어온다는 건 우정의 슬픈 점입니다. 나와 혜란이 봉사활동 대상자인 '삐썻'과 너무 친하게 지내는 '석'의 모습을 보기 좋지 않게 생각했던 것처럼, 청첩장을 주는 혜란에게 2022년의 이태원이 나와 가깝다는 게 얼마나 괴로운지를 말하는 '석'이 너무 과하다고 생각했던 것처럼, 친구들도 '나'의 자격지심, '나'의 조급함 등을 알아채고 나와 멀어질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멀어지게 된 계기에 그 사건, '침몰하는 배를 캄보디아에서 함께 본 적이 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들은 이 사건으로 푹 패인 자리에 대해 제대로 얘기를 나눠본 적도, 제대로 슬퍼해본 적도, 슬픔에 빚을 지겠다는 마음을 품어본 적도 없었습니다.
+ 더 보기
잘 지내다가도 어떤 사건 이후 푹 패인 자리가 아직 남아있다는 걸 알아챌 때, 운석이 떨어진 자리, 싱크홀이 발생한 자리 같은 공동空洞을 인식할 때가 있습니다. 2021년 작품활동을 시작해 2025년 <그 개와 혁명>으로 이상문학상을 수상한 작가 예소연은 한국문학을 읽고 쓰는 많은 독자와 동시대를 살며 동시대를 이야기하는 작가입니다. '그 사건'이 무엇을 남겼는지, 이소연의 소설 <영원에 빚을 져서>는 10년의 시차를 두고 이 슬픔을, 그리고 "나는 슬픔을 믿을 거야"라고 다짐하는 마음을 이야기합니다.
10년 전에 봉사활동으로 캄보디아에서 머문 적이 있던 세 친구는 시간이 지나 틀어지게 됩니다. 좋을 땐 보이지 않던 것들이 친구를 덜 좋아하게 되면 눈에 들어온다는 건 우정의 슬픈 점입니다. 나와 혜란이 봉사활동 대상자인 '삐썻'과 너무 친하게 지내는 '석'의 모습을 보기 좋지 않게 생각했던 것처럼, 청첩장을 주는 혜란에게 2022년의 이태원이 나와 가깝다는 게 얼마나 괴로운지를 말하는 '석'이 너무 과하다고 생각했던 것처럼, 친구들도 '나'의 자격지심, '나'의 조급함 등을 알아채고 나와 멀어질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멀어지게 된 계기에 그 사건, '침몰하는 배를 캄보디아에서 함께 본 적이 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들은 이 사건으로 푹 패인 자리에 대해 제대로 얘기를 나눠본 적도, 제대로 슬퍼해본 적도, 슬픔에 빚을 지겠다는 마음을 품어본 적도 없었습니다.
'여태까지 두고 온 것을 매번 그 자리에 남겨두어서 후회를 많이 했습니다.'라고 예소연 작가는 2월 19일 공개된 알라딘과의 인터뷰에 답했습니다. "참사는 세계 곳곳에서 끊임없이 반복될 거야. 이렇게 잊히기만 한다면 말이야." (60쪽) 4월엔 이런 말에 귀를 기울이고 싶습니다. 분위기 깨는 말에, 아직 낫지 않았다고 하는 말에, 영원히 낫지 않을 수도 있다는 말에 기대어 예소연의 소설 제목대로 '영원에 빚을' 지고 머무르고 싶습니다.
- 알라딘 한국소설/시/희곡 MD 김효선
- 접기
33쪽 : 나 같은 경우는 내가 속했던 세계가 일어나서는 안 되는 사건으로 말미암아 통째로 부정당하는 기분이 들었던 것 같다. 대상 없는 배신감과 이루 말할 수 없는 수치심이 수시로 불쑥불쑥 고개를 들이밀어 나를 지그시 응시하는 느낌. 그건 아마 혜란과 석이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Q :
도대체 엄마들은 왜 <미운 우리 새끼>를 그토록 좋아하는 걸까요? <어둠 뚫기> '나'는 소설을 쓰고 편집자 일을 하는 동성애자 남성으로 나를 이해할 의지가 없어 보이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것을 좋아하는 엄마와 함께 살고 있습니다. “만약에 신이 있다면, 그래서 나와 엄마 둘 중에서 한 사람이라도 온전히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면, 나는 엄마를 이해해보고 싶었다.” (14쪽) '나'가 엄마의 말을 귀담아듣는 건 엄마를 온전히 이해하고 싶기 때문인 걸까요?
A :
저도 <커플팰리스>나 <나는 SOLO, 그 후 사랑은 계속된다>를 홀린 듯이 보곤 합니다. 왜 그런 걸 보느냐고 묻는다면……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릴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그걸 언어로 설명하는 일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기도 합니다. 생각해보면 사랑도 비슷해서, 화자인 ‘나’가 엄마를 사랑하기에 이해하려는 노력은 궁극적으로 언어화되기 어려운 듯해요. 그럼에도 시도하는 것,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결국 사랑 아닌가 싶습니다.
+ 더 보기
Q :
도대체 엄마들은 왜 <미운 우리 새끼>를 그토록 좋아하는 걸까요? <어둠 뚫기> '나'는 소설을 쓰고 편집자 일을 하는 동성애자 남성으로 나를 이해할 의지가 없어 보이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것을 좋아하는 엄마와 함께 살고 있습니다. “만약에 신이 있다면, 그래서 나와 엄마 둘 중에서 한 사람이라도 온전히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면, 나는 엄마를 이해해보고 싶었다.” (14쪽) '나'가 엄마의 말을 귀담아듣는 건 엄마를 온전히 이해하고 싶기 때문인 걸까요?
A :
저도 <커플팰리스>나 <나는 SOLO, 그 후 사랑은 계속된다>를 홀린 듯이 보곤 합니다. 왜 그런 걸 보느냐고 묻는다면……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릴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그걸 언어로 설명하는 일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기도 합니다. 생각해보면 사랑도 비슷해서, 화자인 ‘나’가 엄마를 사랑하기에 이해하려는 노력은 궁극적으로 언어화되기 어려운 듯해요. 그럼에도 시도하는 것,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결국 사랑 아닌가 싶습니다.
Q :
읽는 내내 용기를 쥐고 나아가는 소설이라고 느꼈습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어째서 기어코 뭔가를 쓰고야 마는지'(103쪽)는 이 소설의 주제이기도 한데요. 피곤과 망설임을 무릅쓰고 쓰기 위해 책상에 앉게 되는 순간, 무엇을 생각하며 쓰기 시작하는지 궁금합니다.
A :
무언가를 생각했기에 쓰기도 하지만 쓰다 보면 내가 무엇을 생각하고 있었는지 알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런 과정을 거쳐 나오는 문장이 더 좋게 느껴지기도 하고요. 사는 일도 비슷해서 무슨 목표나 꿈을 실행하려고 애쓰며 사는 것도 좋지만 그저 하루하루에 충실하다 보면 어느 순간 자기도 모르게 원하던 어떤 지점에 당도해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Q :
어둠을 뚫으면 미약하게 빛이 새어나옵니다. “그리고 뭐, 걔들이 유별나게 못돼먹은 줄 알아? 나도 똑같아.”(53쪽) 엄마의 이 말을 '나'가 듣는 순간이 제겐 그런 미약한 빛이 당도하는 순간 같았습니다. 최근 박선우 작가가 일상에서 느낀, 어둠을 뚫고 작은 빛이 도달한 아름다운 순간 혹은 말을 나눠주실 수 있을까요.
A :
책을 출간하고 북토크를 하게 되었는데요. 제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서 찾아온 독자분들을 마주한 순간이 그랬던 것 같습니다. 무슨 인사치레로 하는 말은 아니고요. 오랜 시간 혼자서 글을 쓰다가 이것을 세상에 내놓았을 때, 누군가 이것을 읽고 저를 찾아와주었다는 사실에서 오는 감동이 분명하게 있는 것 같아요. 책이 우리를 연결해주었다는 기쁨이요.
- 접기
2025년 4월 16일은 세월호 참사 11주기입니다. 문학인들은 304 낭독회 등 문학의 방식으로 추모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진은영의 최신작 <나는 오래된 거리처럼 너를 사랑하고>에는 2학년 3반 유예은양의 생일에 시인 진은영이 쓴 시 <그날 이후>가 수록되어 있습니다.
엄마 아빠, 나를 위해 걷고, 나를 위해 굶고, 나를 위해 외치고 싸우고
나는 세상에서 가장 성실하고 정직한 엄마 아빠로 살려는 두 사람의 아이 예은이야
나는 그날 이후에도 영원히 사랑받는 아이, 우리 모두의 예은이
오늘은 나의 생일이야
<그날 이후> 부분
진은영 시집의 3장 '한 아이에게'에 실린 시 <아빠>, <천칭자리 위에서 스무 살이 된 예은에게>등을 시집에 놓인 순서대로 읽어보시는 것도 이 날을 보내는 방법 중 하나가 되겠습니다. <304낭독회 2014~2023 선집>을 함께 읽어보시는 것도 제안드리며 4월을 보내려 합니다.
저는 최근 러닝을 시작했습니다. 달리고 싶다는 마음은 먹은 지 오래인데, 무릎에 무리가 갈까 봐, 강아지랑 같이 뛰는 건 쉽지 않아서 등 갖은 핑계를 대며 미뤄 왔죠. 그러다 두 가지 계기로 스타트를 끊었습니다. 멋진 계기라면, 러닝에 대한 앤솔러지를 만들게 되면서이고요(네, 저는 과몰입 전문 편집자니까요), 좀더 솔직한 계기는 내란성 우울로 견디다 못해 집밖을 뛰쳐나온 것도 있습니다.
일단 마음만 먹는다면 현관 밖을 나서기만 해도 되는 운동이 바로 러닝이 아닐까 싶은데요. 『러닝클럽』 속 <러닝 메이트>의 주인공 경희도 해가 있는 시간에는 집을 나서지 못하는 은둔자였습니다.
거대한 존재와의 언제 끝날지 모르는 싸움, 간신히 붙잡았던 투쟁의 결과는 보란듯한 패배. 노동조합 지부장이었던 경희는 조합이 박살나던 날 이후로 집에 틀어박혀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나날을 보냅니다. 그러다 멀리 사는 ‘돈 잘 버는’ 친구 지숙이 내 돈으로는 살 수도 없는 비싼 VR 고글까지 보내주며 나가서 달리기라도 해 보라고 권유합니다. VR로 만난 세계는 경이로웠고, 경희는 희망이 부서진 날 이후 잃어버렸던 기대감을 되찾게 되죠. “세상에, 아침을, 아침을 다시 기대하고 있었다.” (151쪽)
리베카 솔닛의 책 『걷기의 인문학』에는 ‘가장 철학적이고 예술적이고 혁명적인 인간의 행위에 대하여’라는 부제가 붙어 있습니다. 우리는 역시 발걸음을 앞으로 옮길 때 무엇이든 할 수 있는 힘을 얻게 되는 것 아닐까요?
+ 더 보기
저는 최근 러닝을 시작했습니다. 달리고 싶다는 마음은 먹은 지 오래인데, 무릎에 무리가 갈까 봐, 강아지랑 같이 뛰는 건 쉽지 않아서 등 갖은 핑계를 대며 미뤄 왔죠. 그러다 두 가지 계기로 스타트를 끊었습니다. 멋진 계기라면, 러닝에 대한 앤솔러지를 만들게 되면서이고요(네, 저는 과몰입 전문 편집자니까요), 좀더 솔직한 계기는 내란성 우울로 견디다 못해 집밖을 뛰쳐나온 것도 있습니다.
일단 마음만 먹는다면 현관 밖을 나서기만 해도 되는 운동이 바로 러닝이 아닐까 싶은데요. 『러닝클럽』 속 <러닝 메이트>의 주인공 경희도 해가 있는 시간에는 집을 나서지 못하는 은둔자였습니다.
거대한 존재와의 언제 끝날지 모르는 싸움, 간신히 붙잡았던 투쟁의 결과는 보란듯한 패배. 노동조합 지부장이었던 경희는 조합이 박살나던 날 이후로 집에 틀어박혀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나날을 보냅니다. 그러다 멀리 사는 ‘돈 잘 버는’ 친구 지숙이 내 돈으로는 살 수도 없는 비싼 VR 고글까지 보내주며 나가서 달리기라도 해 보라고 권유합니다. VR로 만난 세계는 경이로웠고, 경희는 희망이 부서진 날 이후 잃어버렸던 기대감을 되찾게 되죠. “세상에, 아침을, 아침을 다시 기대하고 있었다.” (151쪽)
리베카 솔닛의 책 『걷기의 인문학』에는 ‘가장 철학적이고 예술적이고 혁명적인 인간의 행위에 대하여’라는 부제가 붙어 있습니다. 우리는 역시 발걸음을 앞으로 옮길 때 무엇이든 할 수 있는 힘을 얻게 되는 것 아닐까요?
『러닝클럽』에는 알지도 못하는 사이에 다쳐버린 우리의 마음을 치유하는 이야기들로 가득합니다. 퇴사 후 알 수 없는 병에 시달리다 낯선 사람들과의 미약한 연결을 통해 앞으로 나아가는 ‘나’(<호흡 메이트>), 견딜 수 없는 상황을 달리기로 모면하는 도망자 민영(<달려도 달려도>), 0.01초라도 더 빨리 달리는 것이 미덕인 고교 육상부에서 일정 속도 이상으로 달리지 않는 천재 태관과 그를 바라보는 상협의 이야기(<가장 보통의 빠르기>), 문학인 마라톤 대회에 가려다 폭설로 고립된 내가 생전 듣도보도 못한 달리기를 하는 ‘조’와 보낸 국경도시에서의 며칠에 대한 이야기(<눈밭 달리기>)가 담겨 있습니다.
냉수는 ‘편견을 깨는 책’을 만드는 이김의 문학 브랜드입니다. 이김이 T라면 냉수는 F랄까요? 냉수의 지향은, 인간 삶의 갖가지 감정에 젖어들게 하는 책을 만드는 것인데요.『러닝클럽』을 이을 몸의 움직임 앤솔러지를 통해 타인의 다양한 감정과 공명해 보시기를 추천 드립니다.
자, 이제 어둡고 무거웠던 지난 겨울을 뒤로하고 한결 가벼워진 마음으로 가볍게 바람을 가르며 달려 보는 건 어떨까요. 그동안 축 처졌던 몸을 일깨우며, 살아있음을 느낄 수 있도록 말이죠.
- 냉수 편집자
- 접기
청소년관람불가 독립예술영화로서 10년 만에 50만 고지를 돌파한 영화 <서브스턴스>가 화제입니다. (83만 관객이 든 2014년 개봉작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이 이 기록을 낸 직전 작품이었다고 합니다.) 에어로빅쇼 진행자인 50대 여성 엘리자베스 스파클이 어리지 않다는 이유로 해고를 당한 후 소개받은 의문의 주사 '서브스턴스'를 신체에 주입해 젊고 아름답고 완벽한 여성 '수'로 다시 태어난다는 설정의 영화입니다.
최정화의 장편소설 <호르몬 체인지>는 타인의 호르몬을 주입받아 생체 나이를 젊게 되돌리는 수술이 가능해진 세상을 배경으로 합니다. 돈으로 젊음을 살 수 있는 세계에서 노화는 부끄러운 것이 되고, 사람들은 수치를 피하기 위해 부작용을 감수하고 호르몬을 투여합니다. '문학판 서브스턴스'로 SNS에서 화제가 되기도 한 작품입니다.
단요의 장편소설 <트윈>의 표지는 <서브스턴스>의 인트로 장면을 연상시킵니다. 달걀 노른자에 주사를 투입하면 한 개이던 노른자가 두 개로 나뉘던 장면이 앞으로 이어질 이야기를 상징하고 있었습니다. 일란성 쌍둥이 두 딸 중 한 명이 추락사했습니다. 추락사한 딸은 치의대에 다니고 있는 우연, 남아 있는 딸은 5수 중인 지연입니다. 민형은 세상에 우연이 살아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게 남은 아이에게도 더 유익하므로... '대체'라는 질문을 던지고 있는 소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