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과 미술관에서의 하룻밤" 주민현의 시 <철새와 엽총>에 등장하는 인상적인 장면. '오늘은 나의 이란인 친구와 / 나란히 앉아 할랄푸드를 먹는다.' 나란히 앉아 피를 흘리고, 가슴이 있어 여자라 불리지만 그와 나에겐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그녀의 히잡은 검고 / 내 치마는 희'다는 것. (주민현 <킬트, 그리고 퀼트> 중) 카멜 다우드는 알제리 출신의 작가이자 저널리스트이다. 이 '아랍인'이 관능으로 가득한 피카소의 미술관에서 하룻밤을 보낸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사랑으로 가득한 1932년의 파리, 피카소의 에로틱한 한 해를 기념하는 피카소 미술관에서 카멜 다우드는 피카소가 그린 여성들과 자신을 기른 '아랍' 문화를 대비하며 하룻밤을 보낸다. "서양은 나체다, 서양은 벌거벗었다"라고 말하는 아랍의 말. '로빈슨 크루소'의 눈이 아닌 '프라이데이'의 눈을 통해 보면 우리가 잘 아는 그 이야기는 다른 프리즘을 통과할 것이다. 어떤 밤이 셰에라자드를 만나면 무한한 이야기가 된다. 자유로운 공상을 홀로된 밤, 낯선 도시, 낯선 작가와 함께하는 미술관에서의 하룻밤 이야기를 통해 다가올 우리의 미술관과 우리의 밤을 상상해보는 것도 즐거운 일이 될 것이다. '미술관에서의 하룻밤' 시리즈의 첫 이야기. 톨레도의 엘 그레코 미술관을 방문한 바이올리니스트 레오노르 드 레콩도의 밤(<어둠이 내게 가르쳐준 것>)과 함께 읽으면 지도가 더욱 풍성해진다. - 김효선(2021-06-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