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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를 만나기 전까지 콜리는 C-27로 불렸다."(11쪽) 품명으로 불리던 한 휴머노이드가 브로콜리의 색과 닮아 콜리라는 이름을 얻기까지의 여정. 이 소설은 오직 로봇에만 재능과 관심이 있는 소녀 연재와 하늘의 아름다움과 말의 고됨을 알아챌 줄 아는 모자란 휴머노이드 기수 콜리, 더는 시속 100km로 달릴 수 없게 관절이 마모된 말과 소아마비로 인해 걷지 못하게 된 연재의 언니 은혜 등, 제 속도로만 움직일 수 있는 이들이 부드럽게 어우러져 만들어내는 빛에 관한 이야기이다. 한국과학문학상이 우리가 기억하게 될 이름, 천선란을 호명한다.
2035년, 경마 경기의 기수가 사람 대신 휴머노이드로 대체되면서 말은 시속 100km를 향해 달릴 수 있게 되었다. 과도한 속도는 말의 관절에 부담을 주고, 달릴 수 없게 된 말은 금세 다른 말로 대체된다.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오래 해온 연재는 로봇 베티에게 밀려 일자리를 잃는다. 연재의 아버지인 '소방관'은 휴머노이드 개발을 위한 예산 때문에 우선 순위에 밀려 교체되지 못한, 오래된 소방복 때문에 목숨을 잃는다. 연재의 언니 은혜는 몇천만 원을 웃도는 기계 다리 부착 수술을 하지 못해 '사이보그 인간'이 되지 못하고 휠체어를 사용해야 한다. 기술은 계속 발전하지만 그 기술의 속도를 채 따라잡지 못하는 곳에 아직 우리가 사랑하는 무엇들이 있다. 사람이라고, 동물이라고, 기계라고 함부로 지칭하기 어려운 주어들은 제 속도에 맞게 움직이며 살아가고, 존재하고 있다.
천선란의 이 이야기는 작가의 휴대폰 메모장에 적어둔 한 문장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우리는 모두 천천히 달리는 연습을 해야 한다.' 소설가 최진영의 추천처럼 우리는 이 소설을 읽으며 다시 배우게 될 것이다. "행복과 위로, 애도와 회복, 정상성과 결함, 실수와 기회, 자유로움의 진정한 의미를. 우리는 ‘천천히, 천천히’ 나아가도 된다"는 사실을. 이 이야기를 읽는 내내 등장하는 존재 하나하나를 응원하며 우리의 마음 속에도 천 개의 파랑처럼 찬란한 빛무리가 퍼져나갈 것이다. "너무 빠르지도, 너무 느리지도 않게. 세상의 압박으로부터 벗어나 등속운동을 유지하며 자신에게 다시 생긴 삶을 이어갈"(10쪽) 말 투데이의 저답고 아름다운 달리기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