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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수는 자신의 친구이기도 한 정신과 의사 J에게 처방을 받았다. 하던 일을 그대로 두고, 책상을 치우려고도 하지 말고, 그냥 몸을 일으켜 떠나라. 하지 않던 일을 하고 가지 않던 곳으로 가라. 걷고 보고 쓰는 것이 그에게 주어진 유일한 처방이다. J의 처방은 한중수에게 '이제 형기를 마쳤으니 문을 열고 나가도 된다는 간수의 선언'처럼 느껴지고, 그렇게 그는 서둘러 집을 나선다. 대서양에 닿아있는 작은 항구도시 '캉탕'을 향하는, 기도이자 일기이자 한 인간의 <모비 딕>인 이승우의 소설이 이렇게 시작된다.
사회적으로 크게 성공했으나 '처방'이 필요한 한중수. <모비 딕>에 매료되어 우연히 배가 정박한 곳에 '피쿼드'라는 이름의 선술집을 열어 새로운 삶을 시작한 핍, 유배지 아닌 유배지에서 자신의 인생을 글로 쓰고 있는 선교사 타나엘. 이들의 삶이 '캉탕'에서 교차한다. 자유로워지기 위해 세상의 끝에 당도한 이들에게는 '내버려둠의 상태를 자유와 혼동하지 말 것'이라는 지침이 주어진다. '모비 딕'을 향한 끝없는 추구와 좌절. 참회와 구원의 문제를 이승우다운 단단한 문장으로 희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