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시하는 삶
시하는 삶

‘시하다’는 ‘사랑하다’입니다.
나를 타자에게 내주지 못해 안달하는 말이
시입니다.

- <김혜순의 말> 중

설문 : 시... 좋아하세요?

시인, 출판 마케터, 출판 편집자, 시에 연루되고,시를 겪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마음산책 편집자 나한비
시를 왜 좋아하시나요? 어떤 때 내게 시가 필요하다고 느끼시나요?

시는 세상을 바라보는 백만 가지 방식을 알려줍니다. 내가 놓치고 있던 웃음과 고통이 무엇인지 느끼게 해주고요. 언어가 분해되고, 다시 조립되는 모습을 통해 한 번도 내 입으로 말한 적 없으나 나의 문장이 되는 경이를 만나게 됩니다.

각별히 사랑하는 시집이 있다면 3권 이내로 소개해주세요.

『무족영원』(신해욱, 문학과지성사, 2019)
『온갖 것들의 낮』(유계영, 민음사, 2015)
『휴가저택』(서윤후, 아침달, 2018)

시인 김용택
시를 왜 좋아하시나요? 어떤 때 내게 시가 필요하다고 느끼시나요?

김수영의 「책」이라는 시를 아내도, 나도, 딸도 읽었습니다. “첫 장을 넘기면 눈이 내리곤 하지요”라는 시구를 읽고 창문을 열었습니다.
봄바람이다, 멀리 개구리가 울었습니다. 내가, 김수영 시인이 ‘모서리가 나들나들 닳’도록 읽은 이 시집이 누구 시집인지, 내가 지금 직접 물어보러 가야, 되겠다고, 했습니다. 딸이 나도 같이 가자고 했습니다.
아내는 딸의 말을 이어서 사람이, 시인이 그러면 안 된다고 했습니다.
뒤에 온 사람들이 쓸 시적 여지도 남겨둬야지, 한편으로 세상의 모든 시를 다 써버리면 다른 사람은 어떡하느냐고 했습니다. 우리들은 지금 일주일째 눈을 뜨면, 창밖 봄소식을 보지 않고 이 시를 읽고 있습니다.
그때가 밤이었는데, 꽃잎들이 어둠 속으로 ‘구슬처럼’ 별빛을 받아 떨어지고 있을 것입니다. 나는 지금 맨발, 발을 내려다보았습니다. 내 발은 험합니다. 이불 밖으로 나간 내 발을 하얀 봄눈이 감추어주던 달콤한 봄밤도 내게 있었습니다.

각별히 사랑하는 시집이 있다면 3권 이내로 소개해주세요.

그때그때 좋은 시집이 늘 변합니다. 새로운 시집은 또 나오고 또 나오고, 세상의 모습과 내용은 달라져 있고 변해가니까요. 요즘은 주로 루이즈 글릭의 시집을 읽고 있습니다. 그리고 얼마 전에 창비에서 출간한 『한 사람의 노래가 온 거리에 노래를』을 읽으며 풍성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김혜순 시인의 시집들, 특히 그이의 『날개 환상통』을 머리맡에 두고 읽습니다. 시가 있어서 이리 좋은 날들. 풍성하고 풍요롭고, 때로 내 삶을 어떻게 처리할지 모를 때도 있다는, 생각을 하며 좋아합니다. 시를 이리 잘 쓰는 사람들이 있어서 행복합니다. 좋은 시들을 보면 나는 얼른 내 시집의 시들을 읽으며 견주어 탄식하고, 반성합니다. ‘나는 도대체 뭐냐?’ 하고요. 내가 좋아하는 시들은 아주아주 많습니다. 그래서 이만 생략합니다.

성혜현(마음산책 편집자)
시를 왜 좋아하시나요? 어떤 때 내게 시가 필요하다고 느끼시나요?

시의 매력을 처음 깨달은 건 고등학교 때 모의고사 시험지를 풀면서였습니다. 백석 시인의 「흰 바람벽이 있어」가 지문으로 나왔는데, 그 시를 읽는 동안 나는 분명히 다른 시공간에 있었습니다. 발 디딘 현실에 숨이 막힐 때, 내가 쓰는 언어가 너무 빈약하다고 느낄 때마다 종종 시를 찾습니다. 내가 좀 더 재미있고 정확한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을 느끼기 위해서요.

각별히 사랑하는 시집이 있다면 3권 이내로 소개해주세요.

미즈노 루리코가 쓰고 정수윤 번역가가 옮긴 『헨젤과 그레텔의 섬』

에이치비 프레스 편집부 조용범
시를 왜 좋아하시나요? 어떤 때 내게 시가 필요하다고 느끼시나요?

아끼고 아낀 말들을 동경합니다.

각별히 사랑하는 시집이 있다면 3권 이내로 소개해주세요.

호랑이 발자국'(손택수) '고양이 - 그러자 모든 사람이 따뜻해진다 녀석의 아름다움이 불러온 사랑으로'(조운 에이킨, 라이너 마리아 릴케 등) '세상을 받아들이는 방식'(메리 올리버)

이재경
시를 왜 좋아하시나요? 어떤 때 내게 시가 필요하다고 느끼시나요?

1. 시집을 선물 받는 것은 정체성 한 조각을 선물 받는 것 같습니다. 어릴 때 부모님이 사준 시집, 학창시절에 친구가 선물한 시집, 연인이 건넸던 시집은 낙인처럼 나의 시들이 되어서 이후 내가 무엇을 읽더라도 거기서 장단조를 달리하며 끝없이 반복 재생됩니다. 2. 같은 시라도 내가 읽을 때마다 달라지고, 내가 달라질 때마다 시가 달라지기 때문에 설사 많은 시를 읽지 않아도 부끄럽지 않습니다. 3. 가끔 시를 소리 내어 읽으면 모국어에 지문처럼 있는 운율감이 너무 짜릿합니다. 내게 모국어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지 알게 합니다.

각별히 사랑하는 시집이 있다면 3권 이내로 소개해주세요.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명시 100선>(민예원),
<보여줄 수 있는 사랑은 아주 작습니다>(칼릴 지브란, 도서출판진선)
<김소월 시집 진달래꽃>(소와다리)

시간의흐름 편집자 최선혜
시를 왜 좋아하시나요? 어떤 때 내게 시가 필요하다고 느끼시나요?

삶이 지칠 때, 위로받고 싶을 때, 어딘가 기대고 싶을 때 시가 떠오릅니다. 그러고 보니 시는 기대고 싶은 존재네요 :)

각별히 사랑하는 시집이 있다면 3권 이내로 소개해주세요.

이장욱(내 잠 속의 모래산), 김기택(바늘 속의 폭풍), 이제니(그리하여 흘려쓴 것들)

미행 편집자 김성호
시를 왜 좋아하시나요? 어떤 때 내게 시가 필요하다고 느끼시나요?

시만이 주는 것이 있습니다. 간결함, 편안함 같은 것이죠. 모르겠어요, 왜 그런지는. 절절 끓는 시에서도 아늑함 같은 게 있습니다.

각별히 사랑하는 시집이 있다면 3권 이내로 소개해주세요.

『테이블』, 프랑시스 퐁주. 아주 멋진 장시이다. 『먼 바다』, 박용래. 옛날 시지만 너무도 빼어난 시들이다.

시공사 콘텐츠3팀 김화평
각별히 사랑하는 시집이 있다면 3권 이내로 소개해주세요.

기형도 님의 <입 속의 검은잎>을 추천합니다.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던 자신을 가리키는 '질투는 나의 힘'이라는 시를 20대에 처음 접했을 때 충격이라 할 만큼 강렬했거든요. 아울러 기회가 된다면 루이즈 즐릭의 시집 전 권을 읽는 일에 도전해 보고 싶습니다.

열린책들 마케터 최연욱
시를 왜 좋아하시나요? 어떤 때 내게 시가 필요하다고 느끼시나요?

소설가, 작가, 음악가, ~가로 끝나지 않고 '인人'으로 끝나는 이유는 시인만이, 詩만이 전할 수 있는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왜 좋아하냐."는 물음은 무척 어렵네요. 만약 좋아하는 구체적인 이유가 있다면, 그것이 사라지면 좋아하지 않을 수 있겠지만 시는 그럴 일이 없을 테니까요.

각별히 사랑하는 시집이 있다면 3권 이내로 소개해주세요.

황지우 <어느 날 나는 흐린 酒店에 앉아 있을 거다>_시의 포스트모더니즘 정석
오규원 <가끔은 주목받는 생이고 싶다>_순수 문학의 시를 대중 문학의 시로~
백석 <사슴>_백석의 시는 모두 다른 글귀지만 끝에는 모두 아련해진다.

미디어창비 편집자 김미라
시를 왜 좋아하시나요? 어떤 때 내게 시가 필요하다고 느끼시나요?

단어 하나 낭비하지 않은 정교하고 아름다운 문장을 탐미할 수 있어 좋습니다.

각별히 사랑하는 시집이 있다면 3권 이내로 소개해주세요.

진은영 시집 <나는 오래된 거리처럼 너를 사랑하고>

느린걸음 홍보팀장 이상훈
시를 왜 좋아하시나요? 어떤 때 내게 시가 필요하다고 느끼시나요?

우리 시대 현란한 말들의 홍수 속에서 어지러움을 느낄 때, 시는 복잡한 상황을 단칼에 정리해줍니다. 본질만을 바라보게 해주는 언어의 명징한 힘을 느낀 뒤로 시를 찾아 읽게 되었습니다. 진정 울림을 주는 시는 언제나 문학성과 더불어 예리한 지성과 세계인식이 뒷받침된 작품들이었으며, 박노해 시인은 그것을 총체적으로 추구하고 구현해온 작가였기에 그의 모든 시들을 읽었습니다. 그러다 그분의 책을 만들고 판매하는 성덕까지 이루게 되었네요 :)

각별히 사랑하는 시집이 있다면 3권 이내로 소개해주세요.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박노해)
- 책장에 꽂아두고 보는 제목 단 한 줄만으로도 강렬한 힘을 준다

<아침저녁으로 읽기 위하여>(김남주 번역)
- 믿고 보는 시인의 번역으로 시의 지평을 넓혀준다

시인 한정원
시를 왜 좋아하시나요? 어떤 때 내게 시가 필요하다고 느끼시나요?

시와 마주하면, 마치 나만의 작은 처소에 숨어드는 듯 마음이 은밀해진다. 시어는 내가 더 멀리까지 헤매게 하고, 행간의 침묵은 내가 기대서 쉴 수 있게 한다.

각별히 사랑하는 시집이 있다면 3권 이내로 소개해주세요.

양봉 일지/이종만/실천문학
가슴에서 사슴까지/김중일/창비
지구가 죽으면 달은 누굴 돌지?/김혜순/문학과 지성사

아티초크 편집자 문재영
시를 왜 좋아하시나요? 어떤 때 내게 시가 필요하다고 느끼시나요?

십여 년 전 헝가리 시인 아틸라 요제프의 삶과 글에 매료되어 시를 사랑하게 되었다. 시인은 어떤 존재인가? 요제프는 「마지막 전투」에서 시인을 "인간의 영혼을 위한 전쟁의 심해 잠수부"라고 말한다. 이 정의는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유효하다.

각별히 사랑하는 시집이 있다면 3권 이내로 소개해주세요.

『꽃을 피우는 사과나무에 대한 감격』, 『우리는 밤과 화해하기 원한다』, 『고독의 리듬』

시인 정재율
시를 왜 좋아하시나요? 어떤 때 내게 시가 필요하다고 느끼시나요?

시가 가진 매력이 너무나 많지만 그중 가장 매력적인 건 아마도 여백이 아닐까 싶어요. 저는 짧든 길든 문장과 문장 사이에 오는 침묵을 좋아해요. 정확히는 그 침묵 속으로 침투할 수 있는 게 좋아요. 어떤 날엔 뛰어다니며 놀기도 하고, 어떤 날엔 천천히 스며들기도 하고, 어떤 날엔 곰곰이 생각하고 바라보기만 할 때도 있어요. 그곳에서 새롭게 생성되는 언어나 이미지들, 무엇보다 울림이 정말 좋아요. 언제나 쓰인 문장보다 쓰이지 않은 문장을, 보이는 장면보다 보이지 않는 장면을 생각해야 한다는 점에서 매력적인 장르가 아닐까 싶어요.

각별히 사랑하는 시집이 있다면 3권 이내로 소개해주세요.

이수명 시인님-도시가스(문학과지성사)
황인찬 시인님-희지의 세계(민음사)
안미옥 시인님-힌트 없음(현대문학)

시인 이영주
각별히 사랑하는 시집이 있다면 3권 이내로 소개해주세요.

있지도 않은 문장은 아름답고, 좋은 말만 하기 운동 본부, 배틀 그라운드

읻다 편집자 해드림
각별히 사랑하는 시집이 있다면 3권 이내로 소개해주세요.

《영원한 가설》은 이상의 일본어 시 28편을 김동희 선생님의 번역으로 소개하는 책입니다. 시 28편을 옮기는 데에 1년여의 시간이 걸렸는데요. 이 과정을 함께하면서 죽은 시인의 시를 옮기는 번역가의 곤란과 용기를 지켜볼 수 있었습니다. 지금 기억나는 일화는 두 명의 평론가 선생님과 편집부가 함께 모여 지금은 쓰이지 않는, 원으로 펼쳐지는 부채를 어떻게 표기해야 할지 한참을 토의했던 것. 사전을 뒤적거린 끝에 '접부채'로 표기하게 되었던 것. 왜 이런 선택을 했는지 설명할 수 없음에 선생님은 조금 곤란해하셨지만, 결국 용기 있게 선택된 그 시어가 '영원한 가설'로 독자에게 가닿게 된 것입니다.

읻다 편집자 김소띠
각별히 사랑하는 시집이 있다면 3권 이내로 소개해주세요.

《생의 절반》을 읽으면, ‘시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든다. 이 시선집엔 ‘침묵’만이, ‘잠을 모르는 말들’만이 존재하는 것 같다. 긴 여행 중 불가사의한 정신착란을 겪은 뒤 반평생 탑 속에서 유폐에 가까운 삶을 살았던 횔덜린처럼, 희박한 아름다움을 좇는 박술의 번역처럼, 횔덜린의 시들은 ‘자신을 잃어버린 이방인’처럼 흰 여백 속에 홀로 놓여 있다. 삶은 죽음이고, 죽음 역시 하나의 삶이라면, 시는 삶에 속할까 죽음에 속할까? '생의 절반'에 서 있다면 한 번쯤 생각해 봐도 좋을 것이다.

읻다 기획자 김현우
각별히 사랑하는 시집이 있다면 3권 이내로 소개해주세요.

외국 시에서 낯설고 생경한 정경을 우리에게 전해 주는 시구나 시 한 편을 발견하는 일은 어렵지 않다. 하지만 시집이 한 권으로 완결성을 갖추고, 그 전체로서 하나의 작품으로 읽히길 바라는 시인의 뜻이 담긴 시집을 출간하는 기획은 요원하다. 자기 앞에 놓인 개별적 대상에서 보편적인 것을 발견하는 것이 시인의 과제라 천명한 윌리엄 칼로스 윌리엄스가 도시를 관찰하며 쓴 역작 《패터슨》은 작품 앞에 선 황유원 시인의 용기와 완수해 낸 의지 덕분에 우리는 폭포가 내뿜는 굉음의 목소리를 듣고 읽는 행운을 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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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벤트 추첨일 : 6/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