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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와 달리기를 좋아하는 '나'의 일상은 '그'의 등장으로 서서히 깨어진다. 길을 걷는 나를 쫓아와 아버지를 안다며 말을 거는 한 남자. 우유를 배달하지 않지만 '밀크맨(우유배달부)'이라 불리는 그는 마을에서 독립투쟁의 주역으로 명망이 높다. 처음 봤으면서 친절한 태도로 집까지 태워주겠다는 그의 행동이 이상하고 불쾌하지만, 그가 유명한 어른이고 무례하지 않다는 사실에 머뭇거리는 '나'. 겨우겨우 이유를 만들어 거절했는데도, 이후 그는 학교와 공원을 비롯한 일상 반경에 계속 나타나 수작을 부린다. 두려움은 커져가지만 동네 사람들은 오히려 내가 그를 유혹했으며 두 사람이 그렇고 그런 사이라며 수군거린다. 소리 없는 폭력에 '나'는 점점 고립되고, 자책과 무기력 속으로 침잠하는데…
한림원의 성 추문으로 노벨문학상 시상이 취소됐던 2018년, 애나 번스의 <밀크맨>이 '소문과 정치적 충성이 개인의 성폭력을 고발하는 운동에 어떻게 작용하는지 보여준다'는 심사평과 함께 맨부커상을 수상해 화제를 모았다. 소설 속 '나'는 친절과 애정으로 포장하고 다가오는 무례에 대해 분명 불편하다는 감정이 들지만 그것이 중요하다고 생각지 못하고, 거부할 권리가 있다는 것도 인지하지 못한다. 그저 상황을 봐서 얼른 예의바르게 자리를 뜨는 게 최선이라고 생각한다. 소설의 배경인 1970년대 북아일랜드는 남자가 요리를 좋아하거나 축구를 즐기지 않는다는 이유로 따돌림 당하던 시대, '자신의 특이한 습성이 사회적 규준에 맞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보다는 최대한 납작 엎드려 있는 것이 최선'이었던 시대, 어디서 무슨 행동을 하든 '동지냐 적이냐'는 이분법적 정치 진술로 비화되던 시대였다. 40년 전의 일들이 낯설게 느껴지지 않고 지금, 여기의 모습이 자꾸만 아른거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