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시절은 그야말로 ‘훈의 시대’였다. 교문 앞이나 구령대 위에 큼지막하게 자리한 교훈에, 교실에 들어서면 시선을 마주치지 않을 수 없는 급훈 액자, 책상 오른쪽 위에 붙인 각자의 좌우명까지. 지켜야 할 것과 목표해야 할 것 들은 넘쳤는데, 그것이 왜 필요하고 어떻게 이루어야 하는지를 나누는 기회는 전혀 없었다. 과정과 무관하게 각자는 그 훈에 적합한 결과로 행동하고 존재해야만 했으니, 이것이야말로 ‘대리사회’라 하겠다.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와 <대리사회>의 저자 김민섭은 '훈의 시대'에 매몰되지 않으면서 '대리인간'으로 살아가지 않을 방법을 고민하고 제안한다. 추억 속, 아니 지금까지 살아있는 교훈에서 시작해, 있는지도 몰랐지만 오늘의 삶을 강력하게 규정하는 사훈, 무엇보다 강렬하게 욕망을 드러내는 아파트 광고의 문구를 살펴보며, 추억담이 아니라 여전히 '훈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음을, 더불어 자신을 규정하며 자신의 지향으로 여겨지는 언어를 스스로 선택하기 어려운 현실을 확인한다.
이제 '훈의 시대'를 추억으로 넘기며 오늘과 내일을 살아가는 각자의 훈을 마련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우선 저자의 훈을 제안해본다. “당신이 잘되면 좋겠다.” 당신이 잘되도록 격려하는 훈을, 이를 바탕으로 다른 이를 응원하는 훈을, 그리하여 모두가 나아지는 훈을 고민하고 나눈다면, 최소한 '훈의 시대'를 새롭게 맞이할 수 있을 테고, 어쩌면 경계를 넘어 새로운 시대를 열어갈 수도 있겠다. 저자 김민섭이 걸어가고 있듯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