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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읽은 문장에 자꾸 머물게 되는 소설이 있고 다음 문장을 향해 내달리게 되는 소설이 있다. 이정명의 소설은 압도적으로 후자의 소설이다. <뿌리 깊은 나무> 등의 팩션 대표작으로 잘 알려진 작가, <부서진 여름>(2021)으로 2022년 뉴욕타임스 선정 ‘올해의 스릴러’에 이름을 올리며 세계 독자의 선택을 받기도 한 '페이지 터너' 이정명의 최신작이다.
범용 인공지능이 널리 사용되는 그노시안의 세계. 18개월 시한부 선고 후 치료 대신 그 시간을 자신을 AI에 융합하는 연구에 사용한 천재 사업가가 케이시가 사망했다. '퍼스널 AI의 아버지'인 그가 사망한 후 6년이 흐르고 새로운 남편과 새 삶을 시작한 전 아내에게 그의 모든 것을 복제한 AI '앨런'이 찾아온다. 그의 희망과 사랑뿐만이 아니라 좌절과 고통, 이성으로 억눌러온 증오와 악의까지 모두 복제한.
전 아내 민주, 사망한 케이시, 아내의 현 남편 준모의 시점에서 각자의 단서만으로 이야기가 내달린다. 모든 것을 지켜보는 의문의 존재. 그 기척이 감도는 집에서 쫓기는 주인공의 심리에 몰입하는 것은 <레베카>, <힐 하우스의 유령> 같은 소설을 읽을 때와 비슷한 쾌감을 준다. 다만 이제 우리의 적은 심령이 아닌 AI다. AI는 차별적이고 편향된 판단을 내린다는 최신 연구결과의 스산함과 함께, 있을 법한 미래를 상상하며 게임을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