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걸었다. 반듯하니 넓고 환한 길을 신이 나서 걸었다. 너무 신이 나 촐랑촐랑 촉새처럼 걸었다. 지그재그로 깡충깡충 뛰다가 직선으로 내달리기도 했다. 마치 넓은 벌판을 여봐란 듯이 질주하는 아메리칸 에스키모나 헝가리안 쿠바스라도 되는 양. 강후는 자기가 바로 그런 세계적 명견이라고 생각했다. 기분 좋았다. 아주 좋았다. 모든 것이 다 좋았다. 기온도 적당했고 바람도 알맞았다. 야호! 소리가 연속해서 터져 나왔다.
18평짜리 임대 아파트에서 24평짜리 낡은 아파트로 이사를 온 이후 이렇게 기뻐해 보기는 처음이었다. 넘치는 기쁨을 도무지 주체할 수가 없었다. 그야말로 기분 짱이었다. 발걸음이 새털보다도 가벼워 몸이 하늘로 날아오를 것만 같았다.
“세상은 아름다워! 뷰티풀 월드야. 으히히히!”
끊이지 않고 웃음이 이어졌다.
강후는 오늘을 해방의 날, 광명의 날로 정했다. 그러자 자유를 박탈당한 채 얽매여 살아야 했던 과거 암흑의 날들이 눈앞에 고스란히 펼쳐졌다. 기억하기 싫은 흑역사를 떨쳐내려 두 눈을 질끈 감고 도리질을 쳤다. 1000원짜리 한 장에 굽실거리고 500원짜리 한 닢에 알랑거렸던 날들이 그 얼마였던가? 더럽고 치사했던 날들이여! 이젠 안녕! 굿바이! 벅찬 기쁨으로 가슴이 터질 지경이었다. 어두운 터널을 헤쳐 나온 자기 자신이 자랑스럽고 존경스럽기까지 했다.
“아아! 신천지가 안전에 전개되도다. 암흑의 시대가 거하고 광명의 시대가 래하도다. 이거 맞나? 맞을 거야.”
그토록 외우기가 힘들고 뜻풀이가 난해했던 기미 독립선언서가 입에서 좔좔 흘러나왔다. 마치 학교의 망가진 수도꼭지처럼 거침없이 쏟아졌다. 그 소리에 지나가는 사람들이 힐끔힐끔 쳐다보았다. 그러나 강후는 계속 중얼거렸다. 염불하는 중 모양으로 잠시도 입놀림을 멈추지 않았다. 흡사 말하는 로봇 같았다.
“부지런히 돈을 모아 내년에는 완전한 독립을 쟁취해야 해! 조그마한 원룸을 하나 얻어서 아예 답답하고 지긋지긋한 집을 나가는 거야. 그래서 사탕이와 단둘이 알콩달콩 깨가 쏟아지게 사는 거야.”
강후는 아예 내년 계획까지 순식간에 세워버렸다. 아무에게도 간섭을 받지 않는 100퍼센트 자유로운 생활! 생각만으로도 가슴 벅차 심장이 멎을 것 같았다.
“미국에서는 18세만 되면 집에서 나가 독립하라고 등을 떠민다는데, 우리나라는 행여 집을 나갈까봐 이중 삼중으로 감시를 하고 있으니.”
한심하다 못해 분노가 치솟았다. 그러면서 부모들은, 선생들은, 어른들은 독립심을 길러야 한다, 자립심이 강해야 한다고 엇박자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도대체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 할지 헷갈린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멋지다, 여강후! 장하다, 여강후! 그리고 아름답다, 여강후! 으히히!”
드디어 자기 손으로 돈을 벌게 되었다는 감격에 겨워 눈물이 다 나오려고 했다.
“아임 해피! 베리 베리 해피다!”
행복은 결코 멀리 있는 게 아니라고 누가 말했던가. 강후는 바로 자기 동네에서 그것을 찾아낸 것이라고 여겼다. 그것도 모르고 엉뚱한 동네를 그렇게 이 잡듯 뒤지고 다녔던 게 억울했다. 등잔 밑이 어둡다는 속담이 괜히 나온 말이 아니었다. 기가 막히게 맞아떨어졌다. 그것은 행운이 아니라 100퍼센트 자기 노력의 결과라고 확신했다.
“구하라! 그러면 얻을 것이요, 두드려라! 그러면 열리리라!”
언젠가 외갓집에 갔을 때 그곳 개척 교회 목사한테 들었던 성경 구절이 저절로 암송되었다.
“엄마, 두고 봐! 나를 그렇게 무시했지? 엄마 곧 큰 코 다칠 거야. 흥!”
강후는 콧방귀를 힘껏 내쏘고 또 촐랑촐랑 촉새처럼 걸었다. 썰매견 아메리칸 에스키모인 양 껑충껑충 뛰기도 했다. 햇빛으로 생긴 짤막하고 가느다란 자신의 그림자가 앞서갔다. 한참을 그렇게 걷다가 횡단보도 앞에 서서 신호를 기다렸다. 건너편 상가의 대형 유리창에 한 달 전 엄마와 대판으로 싸움을 벌였던 일이 고화질 영화로 재생되었다. 오기가 생겨 양쪽 눈을 가로등만 하게 뜨고서 감상했다.
“안 돼!”
“왜?”
“글쎄 절대 안 돼!”
“글쎄 왜 안 되는데?”
강후는 얼굴을 찌그러트려 불독 인상을 만들고 엄마를 노려보았다. 그러자 엄마는 더 험악한 도깨비 인상을 쓰더니 소리를 버럭 질렀다. 유리 접시가 깨지는 듯 아주 날카로운 목소리였다. 귀청이 다 덜그럭거렸고 한참이나 먹먹했다.
“네놈이 지금 제정신이야?”
“제정신이지! 그럼 내가 미쳤어?”
“미쳤지!”
엄마를 노려보는 강후의 눈빛에 순간적으로 번갯불이 번득였다. 장담컨대, 월계교차로를 석 달 열흘 가로막고 서서 지나가는 사람한테 다 물어봐도 자기를 미쳤다고 하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러니까 엄마 눈에만 미쳐 보이는 것이었다. 열을 받은 강후는 연신 콧김을 내쏘았다.
“허! 내가 왜 미쳐?”
“고등학생씩이나 된 놈이 상황 파악을 못하니까 미친 거지. 그게 성한 거야?”
‘씩이나’를 강조한 엄마는 아예 검지를 펴서 삿대질을 해댔다. 수틀리면 콧구멍이라도 쑤실 태세였다. 강후는 뒤로 한 발 물러나 안전거리를 확보한 후 계속 따지고 들었다. 상대가 엄마라도 인격 모독을 당한 이상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우리 집 상황이 뭐가 어때서? 거지야, 우리가? 괜찮게 살잖아?”
“괜찮게는 무슨? 이 비좁은 집에서 그걸? 아빠도 싫어하고 엄마도 싫어하고 명후도 싫어하고. 너는 어째 니 생각만 하니? 너 학교 가 있을 때는 누가 돌봐?”
“그땐 혼자 둬도 돼!”
“똥 싸고 오줌 싸고 냄새나고 병균 옮기고. 절대 안 돼! 게다가 값이 한두 푼이야? 응?”
“우리 반 선진욱, 최영규, 박서준, 고승현, 다 있단 말이야!”
강후는 친하지도 않은 학급 간부들 이름을 줄줄이 늘어놓았다. 엄마가 즉시 똑같은 방식으로 반격을 가해왔다. 전혀 예상 밖이었다.
“다 있기는 뭐가 다 있어? 문권이도 없고, 우성이도 없고, 명학이, 승철이, 혜진이, 준태, 수현이, 예빈이네도 없는데?”
어디서 주워들었는지 엄마는 애들 이름을 끝도 없이 늘어놓았다. 앞의 세 명 외에는 전혀 모르는 이름이었다. 황당했다. 강후는 잠시 머리를 굴린 뒤 다시 반격을 가했다.
“임대 아파트에 사는 걔네하고 우리하고 같아?”
“임대 아파트나 우리 이 낡은 아파트나 뭐가 차이가 나?”
“그래도 우리 집은 24평이고 방도 세 개이고…….”
“너하고 명후 공부방 하나씩 주려고 무리해서 구입한 거야. 은행 융자 몇천만 원 받아서.”
융자라는 말에 강후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금시초문이었다.
“몇천만 원이나?”
“그래! 서울에서 자기 아파트 갖는 게 쉬운 일인 줄 알아? 엄마 아빠가 15년 동안 뼈 빠지게 일해서 겨우 장만한 거야. 이제 또 10년 동안 융자 원금하고 이자 갚아나가야 돼!”
“하여튼 남의 집이 아니라 우리 집이잖아? 그만큼 부자가 된 거잖아? 그러니까 엄마, 내 방 베란다에…….”
강후는 애완견을 꼭 키우고 싶은 이유를 장장 두 시간에 걸쳐 설명을 했다. 입안에 침이 다 마르고 아래턱이 뻐근하도록 입술을 놀려댔다. 심지어 기말고사 때는 전교 20등 안에 들겠다는 혁명적인 공약까지 내걸었다. 엄마가 콧방귀를 크게 내쐈다. 반에서 겨우 14, 15등을 유지하고 있는 현실적인 점을 감안해서 전교 50등 안에 들겠다고 수정 제안을 했다. 마찬가지였다. 전혀 먹히지 않았다. 한마디로 엄마는 도봉산 도선사의 돌부처였다. 꿈쩍도 하지 않았다. 펑펑 울고 싶은 심정이었다.
“이 철딱서니 없는 놈아! 사달랄 걸 사달래.”
또 철 얘기였다. 뭐라 말만 하면 철! 철! 철! 철! 엄마는 철분 결핍증에 걸린 40대 중반 아줌마임을 스스로 광고를 해댔다. 철은 나보다 엄마가 더 없는 거 아냐? 내심 엄마를 비웃으며 주먹을 움켜쥐었다. 그리고 전열을 가다듬었다.
“그래! 나, 철딱서니 없어! 없다고. 그게 뭐?”
“집안 형편 뻔히 아는 놈이 어째 동생만도 못하니?”
예상대로 엄마는 동생 명후를 끌어들였다. 울화가 치솟았지만 꾹 눌러 참았다. 이야기가 동생에게까지 뻗치면 통제하기가 불가능해 패배할 확률이 매우 높기 때문이었다. 그것만은 막아야 했다.
“맨날 형편 핑계는……. 엄마, 그거만 사주면 내가…….”
“시끄러!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양쪽 눈을 허옇게 만들고 노려보는 엄마의 얼굴이 기괴하게 일그러졌다. 그래도 물러설 수 없었다. 더 이상 미루지 말고 확실한 결론을 내려야 했다.
“아니면 원룸을 하나 얻어주든지. 이상하게도 집에서는 공부가 안 되거든.”
“뭐, 뭐? 원룸? 주둥이를 확 잡아 뜯어놓을까 보다, 그냥!”
오만상을 지으며 소리를 크게 내지른 엄마는 정말 집게손을 하고 입술을 잡아 뜯으려 했다. 그러더니 집안 형편 얘기를 끝도 없이 꺼내놓았다.
강후는 그래도 자기 집이 중류층이라고 생각해왔었다. 그런데 엄마 말을 듣고 보니 빚이 많아 서민과 별반 다름이 없었다. 기분도 상하고 화도 났다. 차라리 그 임대 아파트에 그냥 살지, 뭐하러 빚을 그리 많이 내서 넓은 아파트로 이사를 온 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2년 전, 드디어 서울에 아파트가 생기고 집이 넓어져서 네 식구가 얼싸안고 춤을 추던 장면이 떠올랐다. 그런데 그게 거의 은행 빚으로 장만한 거라는 소리였다. 어이가 없었다. 수업 시간에 들은 하우스푸어가 생각났다. 집을 가진 빈곤층. 한마디로 집이 있는 거지라는 말이었다. 알고 보니 그게 바로 자기네 집이었다. 충격이었다. 이사를 온 이후 자기 같은 명견이 잡견이랑 어울릴 수 없다며 임대 아파트 애들이랑은 전혀 어울리지 않고 완전 무시를 했었는데. 참담한 심정이었다.
“그럼 관둬, 씨! 내가 돈 벌어서 살 테니까.”
공연히 짜증이 나 뒤로 멀찍이 물러나 앉으며 큰소리를 쳤다. 엄마의 말을 100퍼센트 다 믿을 수는 없었다. 평소에도 엄마 말은 과장이 심했기에 반 뚝 잘라 50퍼센트만 믿기로 하고 2보 전진을 위한 1보 후진, 즉 작전상 후퇴를 했다. 그러면 엄마도 한발 물러나 협상안을 제시할 줄 알았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하이고! 그래! 나가서 벌어봐라, 벌어봐!”
“엄마! 나를 무시하는 거야, 지금? 내가 고깟 강아지 값도 못 벌 놈으로 보여? 전철역에서 구걸을 해서라도 한 달이면 벌지.”
“네놈이 1000원짜리 한 장이라도 벌어 오면 내가 이 손가락에 장을 지진다, 장을!”
“정말이지, 엄마? 정말 장 지지는 거다? 응?”
강후는 엄마에게 얼굴을 바짝 들이대며 확답을 요구했다.
“그래, 지진다! 에이그! 이 세상 물정 모르는 한심한 놈!”
“내가 세상 물정을 왜 몰라? 나, 열일곱 살이야. 초딩, 중딩이 아니고 고딩이라고.”
그날 이후 강후는 엄마의 손가락에 장을 지져놓겠다는 일념으로 번1동부터 시작해서 번2동, 번3동, 창1동, 창2동, 창3동을 거쳐 장위1동, 장위2동, 장위3동을 이 잡듯 뒤졌다. 물론 알바 자리를 찾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강후를 기다리는 곳은 단 한 군데도 없었다. 간혹 빈자리가 있기는 했으나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또는 경험이 없다는 이유로 퇴짜를 맞고 말았다. 기가 죽어 어깨가 점점 움츠러들더니 나중에는 보도블록에 붙은 껌딱지처럼 납작하게 짜부라지고 말았다. 처참했다.
“여름방학 하기 전에 알바 자리를 구해서 돈을 벌겠다고 큰소리쳤는데 운동화에 빵꾸가 나도록 돌아다녔어도 못 구했으니, 씨!”
방학은 점점 다가오고 큰일이었다. 가게마다 거리마다 차고 널린 게 알바생들인데. 원하기만 하면 쉽게 구할 줄 알았는데. 손만 들면 어서 오라며 반길 것 같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강후의 착각이고 환상이었다. 포기하고 싶은 생각이 솔솔 들었다. 공연히 큰소리를 쳤던 게 후회가 되었다. 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창피하더라도 우리 동네에서 가까운 쪽을 한번 알아보자.”
혹 아는 사람이 보면 창피하다는 이유로 동네에서 먼 곳을 뒤졌던 강후는 작전을 바꿨다. 그리고 월계2동과 월계1동을 뒤져나갔다. 작전은 3일 만에 딱 들어맞았다. 여름방학을 5일 앞둔 지난주 수요일 오후 5시 40분 무렵, 월계로 인도를 따라 늘어선 음식점을 살피며 걷다가 ‘알바생 급구 최고 대우’라고 쓰여 있는 구인 쪽지를 발견했다. 그 쪽지는 마치 강후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가게 유리창에 붙어 살랑살랑 손짓을 하고 있었다. 특히 ‘급구’와 ‘최고’라는 글자가 강후의 눈에 쏙 들어와 박혔다. 설레는 마음으로 가게 안으로 들어가 사장님을 만났다. 인상이 좋고 덩치가 큰 40대 후반의 점잖은 아저씨였다. 게다가 여느 사장들과는 다르게 아주 친절하고 상냥했다. 한마디로 친절덩어리 그 자체였고 100퍼센트 순수 상냥맨이었다. 생김새도 동글동글하니 도선사 대웅전의 가운데 부처님이었다. 인자함이 철철 넘쳤다.
“알바 자리를 구한다고?”
“예, 사장님! 여기서 일을 하고 싶습니다.”
“으음! 무척 덥지? 자, 시원한 사이다부터 한잔 쭉 해!”
여기저기 알바 자리를 구하러 다니느라 목이 말랐던 강후는 황송하게도 사장이 손수 따라주는 사이다 한 컵을 단숨에 들이켰다. 시원하기가 북극 빙하수 저리 가라였다. 더위가 순식간에 사라져버려 여름 내내 땀 한 방울 흘리지 않을 것 같았다.
“몇 학년이야?”
“고등학교 1학년입니다.”
솔직히 대답했다. 속일 이유가 전혀 없었다.
“너, 방학 동안에만 하려고 그러지?”
“아니요. 계속할 겁니다. 오랫동안요.”
“오랫동안……. 알바 해본 경험은 있어? 없어?”
“저, 사실은 어, 없는데요!”
더듬더듬 대답을 하면서 속으로 또 틀렸구나, 생각했다. 그동안 만나본 사장들은 모두 다 경험자를 원했기에 실망감으로 목소리가 축 처져 나왔다. 에이! 있다고 할걸! 쓴침을 꿀꺽 삼키고 막 뒤돌아서려는데, 전혀 뜻밖의 소리가 귀로 날아들어 고막을 울렸다. 기분 좋은 울림이었다.
“그래? 그럼 다음 주부터 나와. 척 보니까 일 잘하겠는데.”
“예? 정말요?”
강후는 자기 귀를 의심하며 두 눈을 벽에 달린 원형 시계보다 더 크게 떴다. 다음 주부터 나오라는 말만으로도 큰절을 올릴 지경인데 그 말 뒤에 ‘일 잘하겠는데’까지 붙여주어서 몸 둘 바를 몰랐다. 알바 자리를 찾아 사방팔방 헤맨 보람을 느꼈다. 흐뭇했다.
“오후 6시부터 밤 12시까지야. 처음 두 달은 수습이니까 시급은 4200원이고. 하는 걸 봐서 나중에 많이 올려줄게.”
“많이요?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사장님!”
감격에 겨워 사장한테 인사를 수십 번도 더 한 뒤 가게를 나섰다. 나서자마자 인디언 전사처럼 ‘야호!’를 외치며 집을 향해 뛰었다.
내가 내 힘으로 드디어 일자리를 구하다니, 믿어지지 않았다. 엄마한테는 물론 친한 친구들한테 즉시 문자를 날렸다.
— 알바 자리 구했음! 몇 군데서 서로 오라고 난리였는데 내가 한 군데 정한 것임! 힘든 일도 아니고 완전 누워서 떡 먹기임! ㅋㅋㅋ!
은행나무 가로수마다 빼곡하게 달린 녹색 잎들이 모두 만 원짜리 지폐로 보였다. 손만 뻗으면 누구나 따 먹을 수 있는 외갓집 텃밭의 개살구였다. 알바를 해 용돈을 버는 거, 그거 생각했던 대로 별거 아니었다. 강후는 그레이하운드보다 더 빠르다는 세계 최고의 경주견 휘핏이 되어 전속력으로 달렸다. 그래도 숨이 차지 않았다. 더위도 전혀 느끼지 못했다. 탄탄대로 앞길에는 일곱 색깔 무지개가 겹겹으로 걸려 있었다. 동네 전체가 지상낙원이었고 구름 위의 천국이었다.
신호가 바뀌자 강후는 엄마와 싸웠던 지난 기억을 접고 횡단보도를 건넜다. 옆에 파마머리 아주머니가 웬 강아지를 품에 안고 함께 건넜다. 강아지를 척 보니 요크셔테리어였다. 나름대로 예쁘게 치장을 시켰으나 순종이 아닌 잡종 싸구려가 분명했다. 털 길이가 짧고 귀가 살짝 꺾여 있고 주둥이 부분이 뭉툭했다. 15만 원 정도 하겠군! 흥! 콧방귀를 한 번 내쏘고 부지런히 발걸음을 옮겨 약속 시간보다 30분 일찍 가게에 도착했다. 사장이 출입문에 서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큰 목소리로 인사를 건넸다.
“사장님, 안녕하세요! 저 왔습니다.”
지난번처럼 허리를 90도로 굽혀 깍듯이 예를 표했다. 생판 초보자인 자기를 믿고 일을 맡겨준 사람이니 무척이나 고마웠다. 기분 같아서는 땅바닥에 넙죽 엎드려 큰절이라도 두어 번 올리고 싶었다. 인사를 받은 사장이 두 팔을 벌려 아주 반갑게 맞았다.
“어! 여강후, 30분이나 일찍 왔구나?”
“예, 좀 일찍 왔습니다.”
“그래! 정신 자세가 아주 좋아. 알바는 그래야 해! 더운데 시원한 음료수 한잔 마셔. 자, 들어와.”
가게 안으로 들어가자 처음에 봤을 때보다 홀이 상당히 넓어 보였다. 아마도 근처 가게들 중 가장 클 것 같았다. 식탁도 꽤 많고 대형 쇼케이스 냉장고가 세 대나 되었다. 세 대 다 술병이 가득 차 있었다. 장난감 병정들처럼 가지런히 진열된 모습이 보기에 참 시원하고 좋았다.
“가게가 꽤 크네요.”
“이 홀만 35평인데 크기는 뭐가 커? 앞으로 더 키워야지. 서울 곳곳에 체인점 다섯 군데 내는 게 내 꿈이야.”
“어휴! 그래도 이 근처에서 제일 크지 않나요?”
바로 옆 가게와 엇비슷했지만 강후는 ‘제일’이라는 단어를 강조해서 아부성 멘트를 날렸다. 왠지 그래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였다. 강후의 아부 멘트에 사장이 어깨를 으쓱했다.
“제일 크지! 처음엔 나도 저기 저 위, 우체국 옆 골목 있잖아? 거기서 열 평도 안 되는 코딱지만 한 가게를 얻어서 시작한 거야.”
“그래요?”
“그럼! 11년이나 집사람이랑 둘이 죽을 고생을 해서 이 건물로 확장 이전을 한 거라고. 그때를 생각하면…….”
사장은 강후에게 자기가 겪었던 고생담을 자세히 들려주었다. 그때 생각에 목이 메는지 이따금씩 말을 멈추고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강후의 눈에도 눈물이 고였다. 아, 정말 훌륭한 어른이다! 존경할 만하다! 감격과 감탄이 강후의 가슴을 한없이 부풀렸다. 이분이 바로 텔레비전 〈인간극장〉에서 봤던 입지전적인 인물이구나! 그야말로 우러러 보였다. 강후는 사장의 입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이리로 옮긴 지도 벌써 6년째야. 이제 저쪽에 골든캐슬 아파트도 구입했고, 또 다른 사업도 하나 구상하고 있어.”
말을 듣고 보니 더욱 존경스러워졌다. 골든캐슬이라면 월계동에서 가장 고급스런 아파트였다. 넓이가 강후네 아파트의 두 배도 넘었다. 내 엄마 아버지는 18평짜리 임대 아파트에서 고작 24평짜리 낡은 아파트로 옮겼을 뿐인데. 그것도 은행 빚을 왕창 져서. 같은 어른인데 사장님과의 수준 차이가 너무 심하게 났다. 기분이 살짝 다운된 강후는 입맛을 쩝쩝 다셨다. 씀바귀 잎을 뜯어 먹은 것처럼 입안이 몹시도 썼다.
“재작년까지만 해도 나하고 내 집사람이 직접 주방 일을 했었어. 아, 그런데 어느 날 주방에 들어가기가 죽기보다 싫은 거야. 더 이상 손에 물 안 묻히고 종업원들 부려가면서 편하게 살고 싶어지는 거야. 나도 이제 그럴 능력도 있고 그럴 나이도 됐으니까 말이야.”
주방에서 일하는 아줌마들한테는 아까 사장이 인사를 시켜줬고, 홀 서빙을 담당하는 아줌마들이 한명 두명 도착하기 시작했다. 사장이 또 일일이 인사를 시켜주었다. 강후는 최대한 공손한 표정으로 허리를 굽혔다. 대부분 엄마와 비슷한 나이였다. 인품이 훌륭한 사장 밑에서 일을 해서 그런지 인상들이 다 좋았다. 대하기가 편할 것 같았다. 첫 알바 자리를 이상적인 곳으로 구해서 강후는 입이 자꾸 늘어나 하마 입이 되었다.
“자, 이제 나가자. 일하는 방법을 알려줄 테니.”
사장을 따라 다시 가게 앞으로 나가서 출입문 옆에 섰다.
“여기 이 박스들이 다 참숯 박스야.”
가게 좌측 유리창 벽에 참숯이라는 글자가 유난히 크게 찍힌 박스가 높다랗게 쌓여 있었다. 수량이 많아 족히 30박스는 되어 보였다. 그게 다 장사가 잘된다는 증거라고 강후는 생각했다.
“그리고 이 가마솥만큼 큰 게 대형 화로야. 일단 여기다가 숯불을 많이 피워놓아야 돼. 그랬다가 손님이 오면 이 작은 풍로에 조금씩 옮겨 담아서 홀 안 식탁으로 가져가 세팅하면 되는 거야.”
대형 화로 옆에 네 줄로 포개져 있는 작은 풍로는 스무 개쯤 되었다. 대형 화로나 소형 풍로나 둘 다 처음 보는 것이었다. 편리한 가스 불을 쓰지 않고 왜 굳이 숯불을 쓰는지 의아스러웠다. 그래도 숯불 때문에 알바 자리를 구했으니 고마운 마음이 훨씬 더 컸다. 화로와 풍로가 외갓집 화단의 달리아 꽃처럼 예뻐 보였다.
“자, 내가 시범을 보여줄 테니 잘 봐.”
사장이 면장갑을 끼고 대형 화로의 뚜껑을 열었다. 그런 다음 신문지 한 장을 꼬깃꼬깃해서 바닥에 넣었다.
“이렇게 신문을 깔고, 이 박스에서 이 숯을 대여섯 개 꺼내 위에 펴놓고…….”
대형 화로 뒤쪽 박스에서 꺼낸 숯을 먼저 넣는데 모양이 이상했다. 강후가 알고 있는 숯 모양이 아니었다. 모양과 형태가 다 똑같아 전혀 자연스럽지 않았다. 강후는 고개를 갸웃갸웃하다가 물었다.
“사장님, 이 숯은 모양이 왜 이래요?”
“응! 이건 성형 숯이야. 공장에서 기계로 찍어서 만든 거지. 연탄처럼 말이야.”
“성형 숯요?”
“그래! 화약 성분이 많이 들어 있어서 불이 잘 붙어. 화력도 좋고. 이걸로 밑불을 하는 거야.”
정말 기계로 찍어낸 듯 크기와 모양이 똑같았다. 길이가 15센티미터 정도 되는 육각형 기둥 모양으로 가운데 구멍이 뻥 뚫려 있었다. 그 구멍 역시도 육각형이었다.
“이제 이 점화기 끝을 신문지에 대고 방아쇠를 당겨서 불을 붙여주면 돼!”
사장이 길쭉한 점화기의 끝을 대형 화로 밑부분 공기구멍에 넣고 방아쇠를 한 차례 당기자 신문지에 불이 붙었다. 그리고 잠시 후 신문지 불이 성형 숯에 옮겨붙으며 불꽃이 크게 일어났다. 그에 따라 연기와 먼지가 위로 솟구쳐 올랐다. 화약 냄새가 코를 쑤시고 기침이 터져 나왔다. 눈이 매워 눈물까지 줄줄 흘렀다.
“이때 머리카락 태우지 않게 조심해야 돼! 먼지 마시지 않으려면 마스크도 써야 하고. 그런데 덥고 답답해서 잘 안 쓰게 돼.”
연기가 사라지고 먼지가 가라앉자 사장은 그제야 진짜 참숯을 이미 불이 붙은 성형 숯 위에 올려놓았다. 그러고 나서 주의 사항을 친절히 알려주었다.
“이 참숯은 국산이라 아주 비싼 거야. 그러니까 너무 많이 올려놔선 안 돼. 그리고 너무 타지 않게 이 밑 공기구멍 조절 잘하고, 이 큰 뚜껑으로 위를 덮어놓아야 해! 손님들이 오기 전에 미리 다 타버리면 손해가 막심하니까.”
“예! 알겠습니다.”
“이게 대략 식탁 열 개 용이야. 매일 이렇게 열 개 분량 정도를 미리 피워놓아야 해. 그랬다가 손님들이 오면 작은 풍로에 적당히 숯불을 덜어서 이 쇠막대를 여기 홈에 끼워 들고 식탁으로 가져가서 세팅하면 돼. 나중에 홀 아줌마들의 말에 따라 추가를 하거나 풍로를 빼 오면 되고.”
숯불을 작은 풍로에 옮겨 담아 홀 안으로 가지고 가는 게 조금 어려울 것 같긴 했다. 하지만 다른 과정은 전혀 어려워 보이지 않았다. 자신 있었다. 초등학교 시절 우이천 둔치에서 모닥불을 피워본 경험이 많아 더욱 그랬다. 그때 한겨울의 불장난이 얼마나 재미있었는지 저녁밥도 잊은 채 밤늦게까지 놀곤 했었다. 와! 누워서 떡 먹기보다 쉬운 이런 일로 내가 돈을 벌게 되다니? 야호! 강후는 속으로 또 환호성을 내질렀다.
“어때? 할 수 있겠지?”
“예! 할 수 있습니다.”
“이 일은 사실 일도 아니야! 초등학교 4학년만 되면 다 할 수 있는 일이라고.”
“그런데 여기, 인도에서 해요?”
지나가는 행인들이 보면 창피하고 쑥스러울 것 같아 슬쩍 물었다. 솔직히 인도에 쪼그리고 앉아 숯불을 피우는 모습을 그 누구에게도 보이고 싶지는 않았다. 자랑스러운 일이 아닌 창피한 일이기에 가능하면 몰래 했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그럼! 여기가 어때서?”
“인, 인도라서 사람들 지나다니는데요?”
“인도 가운데를 막는 게 아니니까 괜찮아! 자기네가 알아서 다 피해 가. 그리고 행인들이 봐야 더 좋아!”
“예?”
행인들이 봐야 더 좋다니? 무슨 말인지 몰라 강후는 사장의 얼굴을 멀뚱히 바라보았다. 하지만 사장은 설명을 해주지 않았다. 더욱 궁금해진 강후는 눈을 몇 번 끔벅거렸다.
“차차 알게 돼.”
사장은 잘 해보라고 어깨를 툭툭 쳐주고서 사우나에 간다며 검은색 고급 승용차를 타고 떠났다. 이따 밤늦게나 온다는 것이었다. 강후는 대형 화로 옆에 쪼그리고 앉아 거리 구경을 했다. 얼굴을 알아보지 못하도록 고개를 약간 옆으로 돌리고 가자미눈을 한 채 오가는 차량과 행인들을 살폈다.
“누구 아는 사람 지나가는 거 아냐? 고딩 알바는 실업고 학생이나 좀 덜 떨어진 애들이 하는 거라고 여길 텐데.”
강후네 반에는 알바를 하는 애가 한 명도 없었다. 경험이 있는 애도 없었다. 지난번에 학교에서 조사를 했었다. 몇몇 선생님은 경험 삼아 알바를 해보라고 권하기도 했었다. 그렇지만 입시 공부에 눈코 뜰 새가 없는 인문계 고등학교에서의 그 말은 말장난에 불과할 뿐이었다. 본인이 한다고 해도 부모님이 말릴 게 틀림없었다.
혹시 아는 사람을 만나면 친구 일을 도와주는 거라고 둘러대기로 했다. 그러나 다행히 아는 사람은 지나가지 않았다. 손님도 오지 않았다. 강후는 고개를 바로 하고서 한참 동안 거리 구경에 열중했다. 퇴근 시간이라 차량들과 행인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었다.
“얘, 숯불 잘 보고 있는 거니? 이제 좀 있으면 손님들 오기 시작할 텐데.”
주방장 아줌마가 인도 쪽으로 난 작은 창문으로 내다보며 물었다.
“예! 잘 보고 있습니다.”
“미리 다 타지 않게 바람구멍 조절을 잘해야 돼!”
“알겠습니다.”
대답을 하고 나서 대형 화로를 살폈다. 어? 뭔가 이상했다. 화로에 열기가 없었다. 뚜껑을 열었다.
“이런!”
그사이에 숯불이 다 꺼져 불씨 하나 보이지 않았다. 어째 이런 일이? 큰일이었다.
기다란 집게로 대형 화로에 들어 있는 숯을 다 끄집어냈다. 그리고 사장이 보여줬던 방식으로 다시 시작했다. 하지만 마음이 급해 손이 제대로 움직이질 않았다. 수전증을 앓는 알코올 중독자처럼 손이 마구 떨렸다.
“아직 손님이 오면 안 되는데. 안 되는데…….”
신문지를 구겨 화로 바닥에 깔고 그 위에 성형 숯 여섯 개를 올렸다. 그리고 점화기 끝을 공기구멍에 넣은 뒤 방아쇠를 당겼다.
‘딱! 딱! 딱!’
불이 붙지 않았다. 딱! 딱! 소리만 날 뿐 끝에서 불꽃이 일지 않았다. 강후는 더욱 초조해졌다. 손님들이 들이닥치면 어떡하나? 이마에 진땀이 흘렀다.
“이거 왜 이래? 가스가 떨어졌나?”
점화기를 몇 차례 흔들어도 보고, 보도블록에 서너 번 두드려도 보았다. 그러고 나서 다시 시도했다. 그래도 불이 붙지 않았다. 미칠 지경이었다. 망가진 게 틀림없었다. 혹시 여분의 점화기가 있지 않을까 싶어 화로 주위를 살폈지만 없었다.
“아, 이거!”
천만다행하게도 가스라이터 한 개가 눈에 띄었다. 사장이 담배를 피울 때 쓰려고 놓아둔 것인 모양이었다. 가스도 꽤 많이 들어 있었다.
지체 없이 가스라이터를 대형 화로 밑구멍에 대고서 손잡이를 눌렀다. 몇 번 만에야 신문지에 불이 붙었다. 하지만 신문지를 너무 많이 구겨 넣어서 그런지 불꽃이 커지지 않았다. 오히려 점점 작아지며 꺼지려고 했다.
“이런! 이런!”
강후는 얼른 땅바닥에 옆으로 몸을 굽히고 머리를 끝까지 숙였다. 그런 다음 입술을 길쭉이 내밀어 공기구멍에 가져다 댄 다음 힘껏 불기 시작했다.
“후! 후후 —!”
입바람에 죽어가던 불꽃이 살아나기 시작하자 좀 더 세게 불었다. 불꽃이 점점 커졌다.
“어휴! 이제 됐다, 됐어!”
신문지에 불이 넓게 번지자 머리를 들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꼭 죽다 살아난 기분이었다. 일어나서 허리를 폈다.
그런데 바로 그때였다. 퍼버벅! 소리와 함께 불길이 높이 치솟고 연기와 먼지가 자욱하게 번졌다. 화약 냄새도 지독하게 풍겼다. 황급히 뒤로 물러섰지만 이미 늦고 말았다. 눈이 따끔거리고 기침이 연속적으로 터져 나왔다. 급기야 양쪽 눈에서 눈물이 줄줄 흘러내려 홍수를 이루었다.
“아이고! 꼴이 그게 뭐니? 뒷마당에 수돗물 있으니까 가서 얼른 씻어!”
홀 서빙을 담당하는 아주머니 한 분이 밖으로 나와서 혀를 끌끌 찼다.
강후는 눈을 비비며 홀을 통과해 뒷마당으로 갔다. 뒷마당도 꽤 널찍했다. 창고와 화장실이 나란히 붙어 있었고, 마당 한편에 수도가 설치되어 있었다. 수도로 가서 세숫대야에 물을 받았다.
“그런 게 어딨어요? 빨리 줘요!”
“다음에 준다고 그랬잖아, 인마?”
“지금 줘요. 다음, 다음, 벌써 몇 번짼 줄 알아요?”
“글쎄 다음에 준다고, 다음에. 알았어?”
손을 씻고 막 세수를 하려는 참에 어디서 싸움하는 소리가 들렸다. 허리를 펴고 일어나 주위를 살폈다.
“에이! 씨바! 정말…….”
“뭐, 이 새끼야? 씨발?”
욕설도 오고갔다. 강후는 호기심이 강하게 발동했다.
아무래도 옆 가게인 ‘일품돼지갈비’ 같았다. 가만가만 조립식 담장으로 다가가 틈새에 오른쪽 눈을 들이댔다. 옆 가게 뒷마당 수돗가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