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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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어디에서 왔는지는 알려져 있지만 이제 어느 누구도 그런 것들에 더 이상 신경 쓰지 않는다. 왜 그런 것에 신경을 써? 우리는 그렇게 생각한다. 운이 좋은 몇몇 사람들을 제외하고 그 밖의 모든 사람들은 어딘가에서 왔다. 하지만 그 어딘가는 사라진 것으로 밝혀졌다. 그곳을 찾아볼 수도 있고 그 장소의 마지막 모습이 어떠했는지 보여 주는 사진이나 비디오를 발견할 수도 있다. 우리의 경우에는 중국의 어느 강기슭에 자리 잡은 자갈 색깔의 마을에서 왔는데, 그곳은 어깨가 굽은 건물들로 이루어져 있다. 저 멀리, 나무 밑동을 짧게 깎아 버린 산들이 보이는 곳이다. 지붕에는 전선들과 쓰레기가 어지럽게 널려 있다. 강에는 찻잎이 고여 검게 띠를 이루고 있다. 그리고 냄새를 맡을 수도 있는 안개가 그 모든 것을 무디게 만든다. 굳이 들이마시고 싶지는 않을 테지만.
어느 날 마을 사람들을 트럭으로 실어 냈고, 그래서 그 마을이 폭삭 주저앉아 버렸다고 한들 그게 뭐 그리 중요하단 말인가? 지금 그곳에 거의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다고 해도 그게 뭐 대수란 말인가? 그 마을은 이 세상의 반대편에 있었다. 1광년쯤 떨어진 곳이라고 할 수도 있는. 마을이 번창했던 때라면 아마 애석했을 것이다. 이런 면에서 사람은 흥미롭다. 가장 비참한 종류의 상황에서조차 진정으로 쩌릿쩌릿한 향수를 불러일으킬 수 있으니 말이다.
피가 솟구치고 있었다. 알겠는가?
우리는 팔팔하게 살아 있지 않았던가!
단언컨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곳도 당시에는 애석하게 여겼던 곳이다. 그리고 곰곰이 생각해 보면 놀라울지 모르겠지만 어느 날 이 공동체는 단점을 인지하고 있는 우리한테까지 멋진 곳으로 기억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더 불행한 세부 사항들에까지 연연할 생각은 없다. 담 너머의 저 밖, 즉 자치주가 어떠한지를 감안할 때, 합리적인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곳 B-모어에서 살 수 있는 기회를 당장 낚아챌 거라는 사실에 대부분 동의할 것이다. 차터의 마을들에서 나름의 지위를 확보한 비교적 소수의 사람들조차, 비록 말은 절대로 그렇게 하지 않겠지만, 이곳 생활의 몇몇 측면에 대해서만큼은 부러워할지도 모른다.
다른 한편으로, 우리는 다음과 같은 것들을 제공할 것이다. 여러분은 이곳의 시간, 그리고 그 시간의 발걸음에 의지할 수 있다. 생각해 보면 스케줄을 갖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거의 없으며 그 스케줄을 믿는 것보다 더 나은 것 역시 거의 없다. 그것은 더 깊이 잠을 잘 수 있게 해 주고 더 꾸준히 일할 수 있게 해 주며 어쩌면 푸짐한 식사를 소화하게 해 준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우리에게 주어지는 모든 자유 시간을 즐길 수 있게 도와준다. 저녁의 마지막 순간까지 줄곧. 그러다가 별들이 나오면 — 이제 거의 매일 밤 별들이 모습을 드러내는 것 같은데 — 우리는 함께 뒤뜰에 앉아 울타리 너머의 이웃들에게 손을 흔들 수 있고 야외에 앉아 우리가 가장 좋아하는 프로그램을 시청하면서 하늘의 이쪽 부분이 오직 우리만을 위해 빛의 합창을 들려주고 있다고 믿을 수 있다.
누가 감히 우리가 틀렸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런 사람이 있다면 앞으로 나와 우리의 담을 뒤흔들어 보라고 하라. 우리가 발을 딛고 선 자리는 깊게 파여 있다. 만약 원한다면 그들이 판의 이야기를 캐내 볼 수는 있을 것이다. 그 어린 아가씨의 이상은 우리들 중 엄청난 수의 지지를 받아 왔다. 그녀는 이제 이곳에 없다. 그녀가 무엇을 견디고 있든, 무슨 고통을 받고 있든, 또 살아 있든 죽었든 간에 그것은 그녀 가족의 문제, 그리고 그들의 처분에 달린 문제다. 그들도 이곳에 없다. 저 멀리 서부에 있는 또 다른 시설로 옮겨 갔다. 그녀가 야기한 갈등 이후로 그들에게는 가장 좋은 시나리오였다.
우리는 그녀에 대해 드러내 놓고 얘기할 수 있다. 그녀의 이야기가 대단한 비극도 아니고 우리의 시대나 영혼의 파멸을 의미하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 다르게 믿고 싶은 사람들도 있다. 즉, 이 세계의 모든 존재는 그 하나하나가 이 세계의 축소판이며 단 하나의 반향에 의해 우리는 기운이 나고 풀이 죽고 왜소해지고 의기양양해진다, 라고 믿는 것. 비유적이든 그렇지 않든 간에 그것은 최고의 결과물을 도모하기 위해 가장 자주 요구되는 멋진 생각이다. 그러나 우리는 점점 더 우리 자신이 ‘개인들’인지의 여부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다. 경우에 따라 다를 수는 있겠지만 우리는 개별적이 될 수밖에 없고, 그것은 이미 입증된 사실이다. 우리는 수벌들도 로봇들도 아니며, 결코 그런 존재들이 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면 문제는 ‘개인(individual)’이 되는 것과 되지 않는 것에 더 이상 차이가 존재하느냐, 하는 것이다. 그것이 정말 중요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우리가 사실 그런 것에 신경을 쓰느냐, 하는 것이다.
판은 그런 것들에 신경을 썼던가? 이 문제에 대해 우리가 정확하게 알 수는 없다. 우리는 그녀의 일상생활에 대해 많이 알고 있지만 여전히 상당 부분은 밝혀져야 한다. 그녀는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보다 더 총명했고 확실히 덜 수다스러웠지만, 그 밖의 성격 면에서 보자면 특별히 눈의 띌 정도로 특이하지는 않았다. 그녀가 그런 일을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으리라. 그런 통탄할 행동을 할 줄은!
그녀는 육체적으로 확실히 돋보였다. 아름다웠기 때문은 아니었다. 그녀는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 그런 분위기를 풍겼다. 그녀는 키가 150센티미터에 불과한 아주 자그마하고 호리호리한 소녀였다. 그리고 그것은 수조 속에서 그녀가 맡은 일을 처리하기에 완벽한 체격 조건이었다. 열여섯 살 때 그녀는 열한 살이나 열두 살 여자애의 키였다. 그래서 그녀를 처음 봤을 때 어떤 특별한 관점을 가진 사람처럼 보일 수 있었다. 누군가는 그것을 자동적으로 ‘지혜’라고 부를지도 모르지만 아마도 일종의 유행을 타지 않는 어떤 시각에 더 가까웠다. 그것은 어린이가 지니고 있을지도 모르는 능력, 즉 현재의 혼란 그리고 현재가 지닌 모든 것에 구애받지 않고 사물과 사람과 사건을 볼 수 있는 능력으로, 아마도 판은 겉으로만 그런 게 아니라 그런 종류의 명석함을 정말 지니고 있었다.
하지만 일단 가능하다면 문제가 일어나기 전의 그녀가 어땠는지를 있는 그대로 그려 보자. 그녀는 검정색 합성 고무 신발을 신었고, 오직 창백하게 빛나는 맨발과 양손과 얼굴만이 그녀의 인간성을 나타냈다. 장갑과 오리발과 물안경을 착용하면 그녀는 먹잇감을 노리는 생물처럼 보였다. 물속에 몸을 처박는 반들반들한 검은 바닷새라고나 할까? 물론 그녀가 수조 속에서 했던 일은 그런 게 아니었다. 그녀의 임무는 대부분이 어려운 이 세상에서 우리의 지역 사회가 잘 굴러가도록 해 주는 귀한 물고기들을 아끼고 보살피는 일이었다. 그녀는 자신이 맡은 잠수부 분야에서 가장 훌륭한 일꾼 중 하나로 2분 혹은 그 이상 숨을 손쉽게 참을 수 있었는데, 수조 내부를 문질러 닦고 진공청소기로 청소를 하고 배관과 필터 들을 교체하는가 하면 내벽에 생긴 깨진 부위를 때웠다. 체중의 절반쯤 무게가 나가는 조끼가 그녀를 수면 아래로 끌어내렸다. 그것조차 그녀에게는 너무 무거워서 2미터 깊이의 바닥에 있는 동안에는 무릎을 구부려야 했는데, 숨이 찰 때면 작업 벨트에 다양한 도구들을 매단 채 몸을 위로 튕겨 올라와 숨을 쉬고 다시 내려가야 했다.
일단 물속에 잠기면 잠수부는 눈에 잘 띄지 않는다. 물속의 온갖 물고기 때문에. 당연히 물속에는 가능한 한 많은 수의 건강한 물고기가 자라고 있다. 그것들 사이에서 그녀는 그냥 그림자가 되고 만다. 빠르게, 그리고 드러나지 않게 자신의 업무를 하도록 훈련받은 그림자. 그녀가 스노클 외에 어떠한 특수 호흡 장치도 사용하지 않는 까닭이다. 압축가스는 업무에 너무나 많은 지장을 초래하니까. 두려움에 떠는 물고기는 행복한 물고기가 아니다. 잠수부는 ‘그들 가운데 하나’가 아니라 물고기들이 새끼였을 때부터 물속 경치의 일부이다. 물고기들은 그녀의 낯익은 형체, 반복되는 동작의 리듬, 그리고 오리발을 착용한 그녀의 부드러운 발짓을 보는데, 그것들은 그들에게 어머니의 자장가처럼 다가가야 한다. 그것들은 수확의 순간에 이르기까지 피난처의 꿈의 노래가 되어야 한다. 물론 잠수부는 수확을 할 때 그곳에서 마지막 한 마리까지 활송 장치(chute) 속으로 길을 찾아 들어가도록 신경을 쓴다. 다음 세대의 새끼들을 풀어놓기 전에 수조를 청소하고 필터를 교체하는 불과 몇 시간 동안만 활동이 없는데 잠수부가 물속에 홀로 남는 것은 바로 그때이다.
얼마나 침울한 시간이겠는가. 수조 위에 매달려 있는 채소와 약초와 꽃 장식의 덮개 사이로 끊임없이 쏟아지는 생장 촉진 전구 불빛이 시설 담장에 청록색 조명을 비추는데 이 서늘한 아마존의 색조는 원시적인 부단한 생산력을 암시하고 있다. 잠수부는 배드민턴 경기장 크기쯤 되는 수족관들을 하나하나 점검하다가 일이 끝날 무렵이 되면, 몸이 피곤하거나 숨을 참아서가 아니라 공허감을 누르는 이상한 자극 때문에 녹초가 된다. 판은 무수한 물고기들이 떠받치는 힘에 익숙해져 있고, 가끔 물고기들은 그녀를 에워싸고 살아 있는 비계(飛階)처럼 수조의 벽을 따라 그녀를 나르거나 혹은 거꾸로 뒤집힌 사체 주변에 떼를 지어 몰려듦으로써 그녀를 그들의 죽은 개체 하나에게로 안내한다. 아니면 장난스럽게 떼를 지어 그녀와 꼭 닮은 모양을 만들어 물속에서 그녀의 거울이 된다. 그러다가 사료 알갱이가 떨어지면 그들은 그저 다시 물고기가 되어 입을 벌린 채 수면 위로 펄떡 펄떡 뛴다. 마치 꿀벌들이 그녀의 옷을 통과하려 미친 듯이 애쓰듯 물의 비브라토는 수다스럽고 열광적이다. 수조 속을 빼곡하게 채우는 수백 마리의 그 작은 청어들이 단순히 잠수부의 보살핌을 받기만 해 온 것이 아니라 여러 날 동안 그녀를 인도하는 목자의 역할을 해 왔다고 말해도 충분히 진실을 전달한 것일 테다.
그녀와 그녀의 가족 모두가 그들의 일터에서 보내는 많은 시간과 휴식 시간 동안, 그리고 비디오나 게임을 시청하며 아침이나 저녁을 먹을 때에 대화가 전반적으로 적은 점을 고려한다면, 그녀는 과연 어떤 사람일까? B-모어 주변의 모두는 그들과 비슷하고 충분히 행복하다. 하지만 삶에 형상을 부여하는 것은 아마 노동일 것이다. 자신의 업무를 하며 홀로 보내는 시간이야말로 가장 큰 성취감을 얻는 때가 아닐까? 말 그대로 일에 흠뻑 빠져 있든지 그러지 않든지 간에 우리는 그 시간 동안 어떤 과정이나 작업에서 작은 놀라움과 예상 밖의 사실을 발견할 수 있는데, 그것들은 결과적으로 우리의 성향과 편견 모두를 드러낸다. 그리고 거기에 대해 할 수 있는 것이 있든지 없든지 간에 여러분은 자신이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가치를 배우기 시작한다.
다른 잠수부들에 비해 판은 보다 더 조용히, 체념하는 심정으로 수조로 갔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처럼 끝나는 시간에 맞춰 탈의실에서 잠수복을 벗기 위해 수조를 기어 나오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그녀는 다른 잠수부들이 집으로 돌아가려고 할 때쯤이 되어서야 수조 밖으로 모습을 드러내곤 했다. 그녀가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면 다른 사람들은 걱정이 되어 그중에 한 명이 판의 수조로 가서 그녀가 아직도 일을 하고 있는지 확인하곤 했다. 간혹 잠수부가 목숨을 잃는 경우가 있었기에 자기들 가운데 누구라도 희생될 수 있다는 사실을 그들은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판은 수조의 내벽을 문질러 닦거나 깨진 부분을 때우느라 이리저리 헤엄쳐 다니고 있을 뿐이었다. 확인하러 온 잠수부는 물을 튀기면서 판이 엄지손가락을 치켜들고 물속에서 나올 때까지 기다리곤 했다. 언젠가 그녀는 우리에게 자기는 수조 속에 있는 것이 수조 밖 B-모어에 있는 것보다 낫다고 말한 적이 있다. 숨을 참으며 자신의 본성에 거스르는 느낌이 좋다고 했다. 그렇게 하면 하찮고 외떨어진 몸으로서의 자기 자신을 더 많이 의식하게 된다고 했다. 교대 근무가 끝나고 한 시간쯤 뒤에 더 이상 할 일이 없으면 그녀는 무릎을 가슴께로 끌어당기고 바닥으로 흐르듯 내려가서 폐가 제발 용서해 달라고 비명을 지를 때까지 그렇게 웅크린 자세로 물속 바닥에 가만히 있곤 했다. 그녀는 망각을 불러오거나 자신을 시험하려는 것이 아니라 물이 자신에게 해를 끼치지 못하도록, 그녀 자신이 아닌, 세계의 구성 요소들을 변형시킬 다른 종류의 힘을 불러들이려 하고 있었다. 우리는 “제발, 판, 제발, 설마 이런 걸 믿고 있는 건 아니겠지? 그러면 안 돼.”라고 말하곤 했는데 그러면 그녀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척했지만 우리가 거기에서 받은 인상은 그녀가 정말 그런 가능성을 믿고 있다는 것이었다. 물론 만약 그것이 그녀의 불안정성을 나타내는 지표라면 발생한 모든 일이 이해가 되고 더 이상 설명할 필요조차 없다.
하지만 그녀를 또 다른 측면에서 평가해 보자. 그녀는 상상력에 대해 어떤 특별한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솔직히 우리 가운데 그런 사람은 아주 드물다. 우리는 바라기만 할뿐이고, 자주 분노하지만 아주 깊은 확신은 결코 가지지 못한다. 우리가 만약 그런 확신을 가지게 된다면 이 세상이 우리가 바라는 꼭 그런 방식으로 쪼개져 열리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확신과 함께라면 우리는 사실상 갇혀 있지 않고 자유롭다.
이것이 판이 전적으로 옳았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녀의 남자 친구인 레그는 그녀와 또 달랐다. 대부분의 사람들의 관점에서 보면 그는 다른 모든 사람들과 똑같았다. 다른 게 있다면 신장이 컸고, 무엇보다 여태껏 보았던 사람들 중 가장 아름다운 피부를 가지고 있었다. 바보 같은 소리로 들리겠지만 한마디로 레그는 그랬다. 그의 피부는 매끄러운 강자갈의 색깔이었다. 비록 홀로 다른 사람들보다 피부색이 밝았지만 통밀의 갈색에 버터 빛깔이 감도는 듯한 그의 피부는 재배 시설의 창백한 조명 속에서 더욱 따스하게 타오르는 듯 보였다. 그곳에서 그들은 만났다. 그는 그녀의 수조 위에 놓인 채소 선반의 채소들을 돌보고 있었다. 그는 안쪽까지 손쉽게 닿는 그의 기다란 양팔로 식물을 심고 수분을 하고 가지를 치고 수확을 할 수 있었다. 선로 위를 좌우로 굴러다니는 사다리의 높은 곳에 서 있는 그. 그리고 그 아래쪽에서 시원한 물속을 휘젓고 다니는 그녀. 그것은 우리 지역 사회의 이익을 위해 부지런히 일하는 책임감 강한 한 연인의 멋진 모습이었다.
재배 시설의 일꾼들은 주기적으로 연애 감정이 싹트는데 그것을 금하는 규칙이나 법규는 없다. B-모어의 우리 지역에는 그러한 결합에서 시작한 가정이 아마 수십 개는 될 것이다. 우리 자신들도 어류 수조를 사들이기 훨씬 전, 그러니까 첫 번째 재배자 세대의 두 사람에게서 나왔다. 안정성은 이곳 B-모어에서의 모든 것이다. 그것은 궁극적으로 우리가 밤낮을 가리지 않고 만들어 내는 것이다. 우리가 소비를 위해 재배하는 것이자, 이웃 팀들에서 우리가 구성되는 방식이기도 하다. 그리고 피나 성애의 결속은 우리의 그러한 구조를 지속적으로 유지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이 어려운 시대에 가장 귀한 상품은 언제나 변함없이 정해진 시간에 나타나 주는 것이다. 어제의 알려지지 않은 보금자리에서 우리를 위해 다시 출현해 주는 것이다. 이제 또 다른 존경할 만한 연인이 된 판과 레그를 두고 그리 놀랄 것은 없었다. 그들이 쾌적한 저녁에 마을을 어슬렁거리는 동안 두 사람의 신장이 우스울 정도로 어울리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하지만 어느 날, 근무 시간이 끝나갈 무렵에 레그는 관리자의 호출을 받았다. 판은 남자 친구가 떠나는 것도 알아채지 못했다. 굳이 그런 걸 알아채야 할 이유도 없었다. 사람들은 언제든지 호출이 되어 스케줄이나 절차상의 사소한 변경에 대해 통보를 받았다. 만약 누가 정원사 장갑을 벗어던지고 스크린과 조종 장치 들로 가득한 관리자의 가운데 층 사무실로 이어지는 계단을 걸어 올라가면 관리자의 호출을 받아서 가겠거니, 하고 짐작하면 그뿐이다. 예를 들면 차터의 마을들에서 무엇의 수요가 많으냐에 따라 물고기와 채소 가운데 수요가 적은 쪽이 수요가 많은 쪽을 위해 희생하는 경우가 발생할 것이다. 최근에는 어떤 혈액 C-질환을 예방하는 걸로 알려져서 호장근(虎杖根)의 요구가 있었다. 그래서 이제는 차터의 어른아이 할 것 없이 누구나 호장근을 식사 때마다 먹고 있다. 누구나 담 너머로만 나가면 그 식물을 땅에서 몇 킬로그램씩 뽑아 올릴 수 있지만, 그것이 담 너머에 있기 때문에 당연히 그것을 건드리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레그는 자신의 휴무일 바로 전날에 사다리 위에 올라가 있다가 호출을 받았다. 그리고 휴무일에 판이 공원에 혼자 앉아 이어폰으로 음악을 듣고 있는 장면이 목격되었다. 그녀는 심란해 보이지 않았다. 레그 혹은 레그를 대신한 누군가가 그녀에게 메시지를 남긴 것이 분명했다. 오늘은 바빠서 안 되고 내일 만날 수 있을 거라는. 어떤 추가적인 설명도 없이. 그의 가족은 걱정하지 않았다. 레그는 여기저기 쏘다니는 버릇이 있었고, 담장 너머까지 나간 적도 가끔 있었다. 레그가 무모하다거나 멍청하다는 얘기는 아니지만 앞으로 천 년 동안 그가 시험에서 만점을 받는 일은 절대로 없을 거라는 얘기는 해 둬야겠다. 사실, 그는 귀찮아서 시험을 보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는 변덕과 본능에 따라 움직이는 친절하고 꿈을 꾸고 있는 듯한 소년이었다. 가끔 문제를 발견할 때면 항상 매력적인 모습을 보였다. 마치 개가 땅콩버터가 담긴 병에 주둥이를 처박고 있을 때처럼. 우리 모두는 그가 수확 통을 가득 채우고 내려와 빈 통을 다시 가지고 올라가는 대신 그것을 자기 등에 매달기로 마음먹었던 때를 기억하고 있다. 사다리 위에 서서 자기 어깨 너머로 토마토를 부드럽게 던져 넣어 통을 꾸준히 채워 가는 모습이 비록 볼품은 없었지만 처음에는 그런대로 효과가 있는 듯 보였다. 하지만 그의 예상보다 통이 훨씬 더 무거워지고 사다리의 가로대 위에서 순간적으로 중심을 잃었을 때 가득 채운 통은 그를 뒤로 발라당 나자빠지도록 만들었다. 그것은 꼴사나운 난장판이었고 작업장의 여자 감독은 상처 난 과일 때문에 잔뜩 화가 났다. 레그는 머리카락이 과육에 젖어 물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지만 통 위로 떨어지는 바람에 다행히 목은 부러지지 않았다. 그것을 지켜본 사람이라면 깔깔 웃으면서 다음과 같은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다. 레그, 넌 B-모어 안에서 태어났으니 정말 운이 좋은 청년이야!
하지만 그 주의 첫 근무일에 그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을 때, 사람들은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늘 그랬듯이 판은 물 밖에 거의 올라오지 않으면서 수조 안에서 일하고 있었다. 점심시간에 어떤 사람이 레그가 아픈지 살펴보려고 그의 연립 주택을 찾아갔다. 문을 두드려도 처음에는 아무 반응도 없다가 이윽고 그의 숙모라는 사람이 문을 열어 주면서 레그는 더 이상 그곳에 없다는 말만 했다. ‘더 이상’이라는 말이 무슨 뜻이냐고 묻자 그녀는 자기들은 그런 일로 시달리고 싶지 않다면서 찾아온 사람을 마치 그날 하루 허락을 받고 B-모어에 들어온 자치주의 잡상인 취급을 하며 문을 탁 닫아 버렸다. 근무 시간이 끝났을 때, 우리가 판에게 혹시 레그에 대해 아는 게 있느냐고 묻자 그녀는 자기도 그의 집에 들렀다가 문전박대를 당했다고만 말했다. 이튿날 판이 여자 감독에게 레그의 행방에 대해 아는 게 있느냐고 묻자 감독은 관리자한테 가서 물어보라고 말했다. 관리자는 이제 그게 당국 수준의 문제가 되어 버렸다면서 자기도 레그가 어디에 있는지 전혀 모른다고 말했다. 그 뒤로 판은 그다음의 관리자와 행정관을 찾아갔고 이곳 B-모어에서 더 이상 물어볼 사람이 없을 때까지 여기저기 찾아다녔다. 윗사람들한테서 보다 확실한 말을 전해 들으려면 그녀는 차터의 어떤 사람한테 물어봐야 했을 것이다. 그들은 우리한테는 꿀벌들만큼이나 보기 어려운 존재들이다.
한 주가 지나고 거의 두 주가 되었다. 여기저기 떠도는 소문과 근거 없는 이야기, 그리고 분노까지는 아니더라도 정말 성가신 웅성거림이 넓게 펴져 있었다. 그런 웅성거림은 재배 시설의 높은 천장과 좁고 기다란 연립 주택의 현관에까지 울려 퍼졌다. 지난 몇 계절 동안 B-모어를 포함한 다른 시설들에서 그와 비슷한 ‘호출’이 있었다는 얘기는 들었다. 우리 가운데 몇몇 사람도 일을 하다가 불려 가서 며칠 동안 격리를 당했다가 본래 일자리로 되돌아온 적이 있었다. 하지만 레그는 아예 사라져 버렸다. 만약에 그의 일가친척이 나서서 항의를 하며 소란을 일으켰다면 좋지 않은 감정들이 부풀어 오를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들은 의문이나 불평 한마디 제기하지 않고 그들의 일터나 학교로 흩어졌다. 그런 모습은 처음에는 우리를 놀라게 했지만 머지않아 우리의 몸 위에 던져진 차가운 누비이불처럼 나쁜 열기의 모든 원자를 꺼뜨렸다. 그들은 감탄스러울 정도로 말이 없었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자연히 다음과 같이 생각하게 된다. 그의 일가친척이 이 정도로 평온한데 설마 무슨 일이 있을까….
그리고 판 역시도 그 문제에 대해 입을 굳게 다물었다. 혹시 아는 거라도 있을까 싶어 우리 중 누군가가 다가갈 때마다 그녀는 자신의 물안경을 착용하고 물고기들로 붐비는 물 밑으로 사라져 버리거나, 밖에 있을 때는 무엇을 듣는지는 몰라도 볼륨을 높이고 스쿠터를 타고 달아나 버렸다. 그녀는 일터와 인근에 친구와 지인들이 있었지만 레그가 사라진 뒤부터는 그들로부터 멀어졌다. 어쩌면 그들이 그녀로부터 멀어진 것인지도 몰랐다. 그녀를 일부러 피하는 일은 없었지만 그들 모두는 판과 레그가 연인 사이임을 알고 있었고 이제 짝을 잃었으니 판을 한동안 혼자 내버려 둬야 한다고 생각했다. 어느 누구도 레그에게 벌어진 일이나 그 이유에 대해 자기 나름의 이론을 제시하지 않았다. 여러분은 이제 B-모어의 책임 부서가 이런저런 억측을 막고 우리의 관심을 어떤 행위나 범죄로 이끌기 위해 그가 무슨 짓을 벌였는지에 대해 공식적인 발표를 내보낼 거라고 예상할 것이다. 하지만 그런 완전한 침묵에 아주 좋은 점이 있다면 그것이 곧 우리의 관심을 그 화젯거리가 아니라 바로 우리 자신에게로 돌리게 만든다는 것이다. 우리는 자신의 행위, 행동, 경향, 그리고 심지어 길 잃은 우리 사고의 타래를 점검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우리 자신이 적어도 지난 며칠 동안 어떤 명시되지 않은 경계를 넘어서는 짓을 하지는 않았는지 되돌아보게 된다. 그것은 마치 걸음마를 배우는 아기가 조금의 짜증스러워하는 낌새조차 보이지 않는 자기 아빠 앞에서 장난감 북이나 장난감 피아노를 무의식적으로 한참 두드리다가 지극히 평범한 단 한 번의 두드림 때문에 아빠의 인내심은 날아가 버리고 결국 건반이 박살나 버리는 것과 같다.
판은 자기 입으로 털어놓은 것보다 더 많은 사실들을 알고 있었을까? 그녀는 레그가 아무런 잘못도 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게 틀림없다. 레그는 뼛속까지 순결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녀는 그를 존경했다. 우리가 판을 존경한 것도 그녀의 바로 그런 점 때문이 아니었는가? 이 착하고 자그마한 아가씨는 규정은 말할 것도 없고 누군가를 배신하거나 B-모어의 관습을 거스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어느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그런 짓을 저지르기 전까지는. 그녀가 지금 받고 있는 악평에도 불구하고 왜 우리는 그녀를 여전히 우리들 중 한 명이라고 생각하는 걸까? 우리를 버리고 자치주로 떠나 버린 그녀를 말이다. 일부 사람들은 이 문제에 대해 머뭇거릴 것이다. 그들은 그녀가 떠난 뒤에 생겨난 더 큰 골칫거리들도 골칫거리들이지만 자발적으로 사라져 버린 그녀를 도저히 용서할 수가 없어서 그녀의 이름을 내뱉을 때마다 아래턱이 돌처럼 딱딱해진다. 그녀로 인해 생겨난 그 모든 곤란들이 얼마나 불필요한 것들이었나. 어떤 시각에서 보자면 이것은 옳다. 그것은 불필요한 곤란이었다. 그녀는 확실히 더 큰 목표들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들 가운데 어느 정도는 달성을 했다. 하지만 떠나기 전에 그녀가 몇 개의 수조에다 독을 넣어야 했던 까닭은 짐작조차 할 수 없다. 그것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었다. 그녀를 영원히 비난할 생각이 없는 우리 같은 사람들에게조차 기이하고 이상하게 여겨지는 점이 한 가지 있는데 그것은 그녀가 그토록 정성들여 키운 놈들, 그녀 자신의 물고기들만 죽였다는 사실이다.
가엽고 귀여운 물고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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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치주가 살기 힘들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무척 더울 수도 있고 무척 추울 수도 있는 그 지역은 꽤나 불편하다. 이제는 대부분의 지역들이 그런 것처럼 보이지만. 어른들은 과거의 완벽히 아름다운 날들 사이에 모든 계절들이 있었다고 말할 것이다. 물론 이제 그런 날들은 거의 없다. 간헐적으로 아른거릴 뿐이다. 우리에게는 마치 선사 시대 같다. 공기가 더 건조했고 더 맑았고 더 온화했던. 파헤친 흙이나 야생화나 바스락거리는 낙엽의 냄새가 우리로 하여금 시간을 하나의 형벌이 아닌 고요한 시계로 생각하게 했던.
이곳 B-모어에는 활주로처럼 곧게 뻗은 구역이 있다. 우리는 그 구역을 따라가면서 마치 자치주에서처럼 극단적인 기온을 견디는 일을 피할 수 없다. 하지만 실내 체육관과 수영장, 그리고 사람들이 여가 시간의 대부분을 자연스레 보내는 — 가게, 실내 게임장, 식당 들로 북적거리는 — 지하 쇼핑몰처럼 휴식을 취하러 가는 장소가 수없이 많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하나의 축복이다. 야외는 좀처럼 쾌적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계절의 향이 스며든 여과된 공기와 벌꿀 빛깔의 할로겐 불빛과 끊임없이 바뀌는 분위기 띄우는 음악에 의지하게 되었다. 그 모든 것이 이제 더 이상 인지하기 힘들 정도로 익숙해져 버렸는데, 상당 기간 동안 그것들을 차단해 버리면 아마 대혼란이 일어날 것이다.
사실 작년에 발전소 사고 때문에 바로 그런 일이 몇 분 동안 일어났다. 우리가 공기와 예비 전등을 확보하는 동안 어스레한 조명 속에서 확실한 동굴의 냄새가 났다. 그것은 두렵긴 해도 그다지 지독하지는 않았다. 우리가 왕국의 내부에 박혀 버렸다는 사실을 깨닫지 않을 수 없었으니까. 결국 사람들은 하던 일을 멈추고 반쯤 입을 벌린 채 주변을 둘러보며 무슨 발표가 나오기를 기다렸다. 그런데 아무런 발표도 나오지 않았다. 무엇이 도화선이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갑자기 몇 사람이 달리기 시작했고 미처 상황을 알아차리기도 전에 모든 사람이 이리저리 쏜살같이 달리고 있었다. 아장아장 걷는 아기들은 필사적으로 끌려가고 있었고 노인들은 숨을 헐떡거리며 뿔뿔이 흩어진 군중 사이로 손을 내뻗으려 애쓰고 있었으며 젊은이들과 건강한 사람들은 지옥의 개들에게 쫓기는 것처럼 전력으로 질주하고 있었다. 복도에 가득했던 그 흥분! 심장을 칼에 찔린 것 같은 그 공포! 하지만 바로 그 순간 어떤 거대한 쇳소리가 배관들에서 뿜어져 나왔다. 배관들은 거칠게 달그락거렸고 길게 늘어서 있던 부드러운 불빛들이 다시 켜졌으며 이제는 잘 듣지 않는 오래된 익숙한 노래들이 우리 영혼의 더 고요한 리듬으로 우리를 안심시켰다.
우리는 이제 더 이상 지금보다 더 힘겨운 삶을 감당할 수 없다. 우리는 그 점을 기꺼이 인정한다. 우리 자신이 정문 너머에 있다는 상상을 하는 것만으로도 겨드랑이에 습기가 맺히고 따끔거리고 배가 싸늘해진다. 그곳에는 자치주 사람들의 진짜 투쟁이 있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기본적 욕구는 충족되지만 그 밖의 많은 것들은 충족되지 않기 때문에 그들은 투쟁을 한다. 전기가 약해서 켜지고 꺼지기를 끊임없이 반복한다. 주택은 가장 기초적인 수준으로 판자촌이 대부분이다. 물은 우기에만 풍족하고 언제나 끓여야 한다. 그리고 냄새는 말해서 뭐하랴! 자치주의 하수도 시설은 우리 민족이 아주 오랜 옛날에 신중국을 떠나 이곳에 도착했을 때보다 거의 200년 전에 설치되었다. 그렇게 오래되다 보니 폭우가 쏟아지고 남서쪽에서 바람이 불어 닥치면 우리가 살고 있는 지역에서도 인간 정착지의 지독한 썩은 냄새를 맡을 수 있다. 그 냄새는 영원히 죽지 않는 전령사처럼 소리치는 듯하다. 우리가 여기 있어요! 우리가 여기에 있다고요! 우리가 여기에 살고 있어요!
우리는 당신들이 그곳에 있다는 것을 알아요. 정말이에요.
어쩌면 차터 사람들은 자치주가 어떤지 쉽게 잊어버릴 수 있겠지만 우리 B-모어 사람들과 우리와 유사한 정착지의 사람들은 어떤 가능성들을 인식하고 있어야 한다. 우리는 우리 이웃의 안전과 안락을 당연한 것으로 여겨서는 안 된다. 우리는 항상 창문을 열어 놓고 문을 잠그지 않는 것이 어느 누구의 침입도 당하지 않는다는 뜻이라고 생각해선 안 된다. 우리는 우리의 정문이 침략 불가의 것이고, 우리가 판에 박힌 일상으로 무장하고 있다고 믿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가 과연 우연이나 운명의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있을까? 자신이 잘 닦아 놓은 오솔길을 따라 먹이를 찾아다니던 생쥐처럼 하루아침에 박멸당하는 것은 아닐까? 여러분이 자신의 죽음을 알기도 전에, 흙 속에 희미하게 찍혀 있는 자신의 마지막 발자국을 내려다보고 있다고 생각해 보라.
하지만 견디라고, 여러분은 말할지 모른다. 우리의 거리는 한때 ‘노스밀턴애버뉴’라고 불리다가 우리 조상들에 의해 ‘장수 거리’로 개명되었다. 우리 조상들은 자처럼 곧게 뻗은 거의 3킬로미터의 도로를 보고 영원한 것은 아니더라도 경탄스러울 정도로 긴 생명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거리에서 일어나는 주요 범죄들은 침 뱉기, 쓰레기 버리기, 대소변 보기 등인데 그런 짓을 저지르는 사람들은 대부분이 나이가 아주 많거나 나이가 아주 어리거나 쉬는 날을 앞두고 전날 밤에 흠뻑 취한 사람들이었다. 최근 기억으로는 재산 절도 행위는 단 한 번도 일어나지 않았다. 강도나 폭행 같은 심각한 범죄에 관한 보고가 있으면 모든 작업과 사회 활동은 당장 중단되는데, 그걸 보면 그런 일이 일식처럼 얼마나 드물게 일어나는지 알 수 있다.
그러니까 여러분의 판단은 지극히 옳을 것이다. 우리 조상들이 이곳에 도착한 지 거의 100년이 되었고 오늘날의 B-모어를 마지막으로 재건하고 설립한 지도 50여 년이 되었다. 그 세월 동안 우리는 갓돌과 벽돌을 차곡차곡 놓아 가면서 지역 사회를 유지해 왔다. 우리는 창문이 지저분해지거나 놋쇠 손잡이에 얼룩이 생기도록 내버려 두지 않았다. 우리는 아이들이 운동장에서 놀고 나면 데려오려고 항상 찾아 나선다. 그리고 자신의 의무를 회피하거나 게을러서 남에게 의존하는 사람은 용납하지 않는다. 우리가 일하기 때문에 B-모어가 돌아가고 있고 우리의 목적의식이 우리를 그만큼 더 많이, 그리고 더 많은 시간 동안 움직이게 만든다. 물론 자치주에 무엇이 있는지, 그리고 조상들이 도착하기 전 이곳의 모습이 어떠했는지에 대한 인식이 우리가 지칠 때마다 힘을 북돋워 준다.
그것은 우리의 학교 교육에서 중심이 되기 때문에 우리는 무엇이 어떻게 된 것인지 아주 잘 알고 있다. 우리의 학습에서 기본 단원은 B-모어의 역사와 그것을 가능토록 만든 상태들에 치중되어 있다. B-모어 자체와 그것을 본떠서 만들어진 다른 장소들은 결과적으로 이 오랜 투쟁의 땅에서 안정 요소들이 되어 왔다. 그런 상태들 하나하나의 상기가 필요할 때가 있다. 판의 지지자들은 지금까지도 그녀의 행동을 본받아 정문을 나서기만 하면 어떤 여행을 시작할 수 있다는 착각에 빠져 있을 것이다. 우리 조상들이 버려진 인근 마을 전체에서 발견한 벽화들처럼 그것은 우리의 집과 벽에 기록을 남기는 일이 될 것이다. 벽화들은 원을 그리며 춤추는 아이들, 미소를 지으며 즐겁게 일하는 어른들, 절대로 지는 일이 없는 태양이 친절하게 서로 나누는 행위를 환히 밝혀 주는 모습들을 묘사하고 있다. 그 모든 벽화들은 그들의 너그러운 희망을 반영한 게 아닌가? 그것들은 말 그대로 절대 이루어지지 않을 가장 거창한 소망을 표현한 게 아닌가?
이제 여러분은 연립 주택의 측면이나 울타리에 판과 레그의 초상화가 새롭게 그려져 있는 것을 이따금 보게 될 것이다. 그림들은 여러 손에 의해 밤에 급하게 그려진 것들일 테다. 판과 레그는 실생활에서는 두 사람 모두 수줍음이 많아 절대 그러지 않았지만 그림 속에서는 항상 당신을 똑바로 끈질기게 바라보고 있을 것이다. 그들의 눈은 빛줄기 같다. 그것은 웃음을 자아내는 것이고, 집주인이나 어떤 분노한 이웃이 당국의 누군가가 보기 전에 얼른 그것에다 덧칠을 해 버리지만, 그림들은 주기적으로 계속해서 생겨나서 다음번에는 어디에서 그림이 모습을 드러낼지 예측이 가능할 정도다. 그리고 만약 그림이 생겨나지 않으면 아마도 여러분은 스스로 머릿속에 그림을 그려 보기 시작할 것이다.
밝혀진 바대로 전설은 단 한 번의 조잡한 일획(一劃)으로도 만들어질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판과 그녀가 아끼는 레그, 그리고 이런 고역의 결과물이 되어 버릴 다른 몇몇 사람의 이야기하기를 잠시 멈춰야 한다. 우리는 조상들이 도착했을 때 이곳이 어떠했는지를 모든 지지자들, 선동가들, 희망자들에게 상기시켜 줄 필요가 있다. B-모어가 지금의 B-모어가 아니었을 때 그들은 제일 먼저 무엇을 보았을까?
아마도 가장 강력한 효과를 발휘하는 인공 유물은 우리의 역사박물관 입구 바로 옆에 누가 보더라도 눈에 확 띄게 걸려 있는 어떤 그림일 것이다. 그것은 우리 특유의 연립 주택들 가운데 하나를 크게 확대해 놓은 것으로, 조상들이 이 지역에 도착한 해에 그린 것이다. 그림은 집의 전면을 보여 주고 있는데 폭이 좁은 1층 창문 두 개와 현관문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보인다. 처음 보면 그것은 잘 다듬어진 산뜻한 모습이다. 벽돌에는 노란 수선화가 그려져 있고 창턱은 크림 같은 흰색이며 계단의 철제 난간은 완전히 새까만 색으로 칠해져 있다. 위쪽 모서리의 하늘 한쪽은 하루가 저물고 있음을 보여 주고 있다. 구름의 성긴 아랫배 부위에는 불그스름한 기운이 감돌고 있다. 전체적으로 주는 인상은 이 근방의 날씨가 화창하다는 것이다. 여러분은 B-모어의 중추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미술관의 큐레이터들이 왜 그런 그림을 전시하는지 의아하게 생각할 것이다. 그러한 의구심은 자꾸만 커지다가 자신이 날짜를 잘못 읽었으며 그것이 현재의 모습이라는 확신을 갖기에 이를 것이다. 하지만 B-모어의 다른 젊은이들이 그러하듯 여러분이 쉽게 놓칠 수 있는 것은 2층 창문들에 무언가 이상한 점이 있다는 사실이다. 창문들은 구름의 따스한 색조를 반사하지 않고, 그 대신 가장 이국적이고 환상적인 대리석처럼 차갑고 푸르스름한 기운이 도는 백색을 띤다. 여러분은 곧 그것들이 창문이 아니라 그런 색으로 칠을 한 합판들임을 깨닫게 된다. 놀라운 솜씨로 제작한 트롱프뢰유●임을 알게 되는 것이다. 좀 더 관찰을 하다 보면 합판들 가운데 어느 하나의 모서리가 떨어져 나간 곳에 틈이 있는 걸 발견하게 된다. 그제야 여러분은 이 집에는 지붕이 없어 위가 하늘로 뻥 뚫려 있기 때문에 틈 뒤쪽의 불그스레한 빛을 볼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자, 이제 옆집과 그 옆집을 살펴보자. 여러분은 이 블록에 줄지어 늘어서 있는 집들이 지붕은 있지만 그 지붕이 처음의 집에서 본 화려하게 칠한 나무판자와 비슷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미술관의 로비를 지나 중앙의 홀로 들어가면 거기에는 규모 면에서 그것과 같지만 축소해 놓은 다른 블록들을 보여 주는 현수막 크기의 그림들이 있다. 이 블록은 수백 개까지는 안 되더라도 수십 개로 늘어나 있다. 여러분은 이 오래된 항구 도시의 거대한 지역들이 완전히 버려져 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는다.
우리 조상들이 신중국의 작은 강변 마을을 떠나야만 했던 것과 같은 이유는 아니었지만, 아무튼 어떤 이유로 모두들 이곳을 떠났다. 그들이 떠날 무렵, 시수(Xixu) 시는 주변의 농장과 공장, 발전소와 채광 시설 때문에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이 되어 버렸다. 물도 그때까지 알려져 있는 모든 처리 방법을 동원해도 어찌해 볼 수 없을 정도로 오염되었다. 도시의 인구는 30만 명에 불과했지만 자동차와 트럭과 스쿠터와 버스의 수는 100만 대를 가뿐히 넘어섰고 24시간 내내 이어지는 석탄과 희토류(稀土類) 원소 발굴 때문에 공기는 깨끗해질 기회조차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지방 정부는 더 이상 신선한 물을 수송해 올 수 없었다. 주요 도시에서도 신선한 물은 아주 드물었다. 그래서 도시는 더 이상 존재할 수 없었다. 노인들의 이야기를 기억하고 있는 사람들은 도시가 전성기였을 때, 계곡 전체와 그 안의 모든 것이 서서히 시들어 가는 것 같았다고 전한다. 모든 고무와 플라스틱과 합금, 거의 남아 있지 않은 진짜 나무, 썩어 가는 음식과 쓰레기, 점점 부풀어 오르는 인간과 동물의 배설물 구덩이 등으로 결국 사람들 자신은 마치 몸속에서부터 타들어 가면서, 우여곡절이 많고 오래 질질 끄는 종말을 예언했던 이 고약하고 질식할 것 같은 입김을 내보내는 것 같았다.
우리 조상들이 이곳으로 처음 건너왔을 때, 지붕 없는 연립 주택의 모습에서처럼 공기는 그들에게 신선하고 맑았다. 기록 보관소의 비디오와 사진은 그들이 여러 대의 반들반들한 회사 버스에 나눠 타고 굴러 들어오는 모습을 보여 준다. 버스에서 내렸을 때, 그들은 항구의 물 냄새를 깊이 들이마시면서 염분이 적은 그것에 틀림없이 도취되었을 것이다. 한때 볼티모어라고 알려졌던 이곳과, 정착민들이 보내진, 동부와 중서부 주에 있는 다른 버려진 도시들에서 낯선 유형의 청결함에 그들이 얼마나 놀랐을지 한번 생각해 보라. 부재로 인한 보존이 청결의 비결이었다. 그들은 도로 갓돌에서 그들의 짐을 챙겨 손수레에 싣고 그들에게 배정된 집으로 가져갔다. 우리와 여러분과 판의 조상들도 거기에 끼어 있었다. 그들은 숨이 턱 막혔는데, 그것은 두려움이나 실망 때문이 아니라 고마움과 안도 때문이었다.
사실, 그들이 얼마나 진심으로 고마워했는지 우리가 이해하기는 힘들다. 요즘의 B-모어를 한번 둘러보면 우리 민족이 그런 식으로 느꼈을 거라고 상상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시간과 안전과 부른 배는 우리를 얼마나 재빠르게 진화시켜 버리는가! 도시 풍경은 완전히 황폐화되었고 흥분의 열기는 여전히 고조되어 있었다. 전하는 바에 따르면 우리의 처음이자 유일한 시장이 될 전설적인 웬 슈바오는 “우리 세대가 나무를 심으면 다음 세대는 그늘을 즐길 것이다.”라는 전통적인 속담을 들먹이면서 동포들에게 촉구했다고 한다.
분명히 초기 이주민들 가운데는 불만 세력이 있었지만, 그들 가운데 어느 누가 이곳의 가능성을 부인할 수 있었겠는가? 여기는 재활성화 준비를 갖춘 전체 공동 사회였다. 그렇다. 집들은 기본적으로 껍데기만 남아 있는 상태였지만 사실 많은 집이 아직 지붕과 벽과 튼튼한 계단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다. 보일러를 가진 집은 거의 없었지만 대부분의 집이 앞으로 어떻게든 사용이 가능한 배선과 배관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다. 바닥은 긁어내고 사포로 닦고 표면을 다시 손질해야 했으며 모든 캐비닛과 조리대는 문질러 씻고 새와 해충과 곤충의 찌꺼기를 소독해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겉보기에만 망가진 표면을 반들반들 광을 내서 본래 가진 특유의 모습으로 되돌리는 것보다 더 즉각적이고 정직한 만족을 제공하는 활동이 또 무엇이 있겠는가?
학생 집단, 노인 견학단, 그리고 우리가 건설한 사회를 공부하기 위해 이따금 찾아오는 외국 방문객과 함께 박물관을 둘러보고 나서 여러분은 우리가 이룬 도약에 힘차게 동의할 수밖에 없다. 오랫동안 버려진 블록들의 바싹 메마른 모습과 거대한 시립 공동묘지의 개간과 처분에서부터 그 터 위에 짓도록 임무를 부여받은 초기 건축물에 해당하는 것들 가운데, 지금은 B-모어의 트레이드마크가 된 최초의 정말 오염되지 않은 모판들, 그리고 나중에 차터의 마을들이 정식으로 체계를 잡고 수요를 증가시켰을 때 고안한 평행 복합 어류 수조들을 수용할 수 있는 것이 과연 무엇이겠는가. 우리는 말하자면 일상 노동으로 지도를 그려 왔고 아직도 조금씩 채워 나가고 있다.
우리는 대부분의 이민자들의 경험과 달리 토착민들의 형태로 부딪치는 일이 거의 없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지금의 B-모어 심장부의 외곽에는 주민들이 조금 있었다. 19세기 아프리카 노예들과 20세기 중앙아메리카 출신 노동자들, 그리고 21세기 도시에 향수를 느끼는 무리들의 후손들이었다. 그들 모두는 격자무늬의 이 친밀한 블록들에 정착해서 한동안 번영을 누리다가 처참하게 쇠퇴하더니 결국 사라져 버렸다. 역사는 확신을 갖고 그 이유를 추적하고 밝혀 낼 수 있겠지만 해결은 하지 못하는 듯 보인다. 우리 조상들은 도를 넘어 간섭을 하거나 완전히 태만한 정부 단체들이 아니라 연합을 형성한 회사들의 지배를 받는 특권을 누렸다. 모든 정부 단체는 무능하기 이를 데 없었다. 우리의 초기 이민자들은 엄격한 목적하에 대규모로 들어왔지만, 일터와 가족 중심의 문화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은 참고 견뎌서 종자돈 투자자들에게 결국 이득을 안겨 주는 것은 물론이고 영구적으로 재생하는 방식으로 성공할 수 있었다.
이 모든 것이 사실이고 희망을 주는 것이어서 여러분이 장수 거리를 거닐다가 마주치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지내시냐는 인사를 건네면 그들은 하나같이 자동적으로 “좋아요.” 또는 “괜찮아요.”라고 명랑한 어조로 대꾸할 것이다. 하지만 기형 역시 우리의 고요한 땅의 표면에서 나타났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가장 긍정적인 감정들도 고이기 시작해서 새로운 틈으로 스며들어 빠져나가 버릴 수 있다.
말하자면 다음과 같은 경우이다. 레그가 사라지고 판이 떠나 버린 직후에 다른 사람들도 하나둘 사라지기 시작했다. 수가 많지는 않았다. 한 달에 한두 명 정도였던 것 같은데 그 이상은 분명히 아니었다. 차이점이 있다면 이 사람들은 레그의 경우와는 달리 정식으로 보내졌다. 레그의 경우와 달리 공고문이 재배 시설에 나붙었고 그 내용이 B-모어 전역에 알려졌다. 예를 들자면 44세 제임스 벨트란 호라는 남자가 파견되었다거나 29세 페이페이 수 타이드워터라는 여자가 파견되었다는 소식을 전하는, 혹은 브라이트 다이아몬드 거리에 사는 레이놀즈 왕 씨 집안의 익명의 갓난애가 이제 보내진다는 내용이 담긴 전체 공고문이 나붙었다. 우리는 더 이상 구체적으로 캐묻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그들의 친척은 레그의 친척들과 달리 떠나 버리지 않았다. 적어도 처음에 특이했던 사실은 그들이 자신들의 사랑하는 사람이 어떤 병이나 불행한 시설 사고나 고령으로 죽어 버린 것처럼 아무렇지 않게 행동했고 심지어 관례적인 방식대로 위령제를 지냈으며 고인의 나이와 지위에 따라 고인을 살피도록 우리를 초청했다는 것이다. 물론 고인들의 몸은 그곳에 있을 리가 없었고 있는 거라곤 그들의 액자 사진뿐이었다. 우리는 고인의 죽음을 애도하는 옷으로 차려입고 상황에 맞게 큰소리로 울부짖거나 낮게 흐느끼면서 종이돈을 태우고 우리가 해야 할 모든 일을 했는데, 이런 점에서는 일반 추도식과 아무런 차이가 없었다. 언제나처럼 모든 일이 마치 삶과 죽음이 항상 끊임없이 굴러가듯 행해졌다. 그들이 무슨 일을 하도록 지시하거나 강요한, 그리고 상황을 수긍하도록 강요한 낌새는 전혀 없었다.
비록 상황은 다르지만 우리 조상들도 아마 비슷했을 것이다. 그들이 제일 처음 착수한 일은 옛날에 미국 공동 사회가 그랬던 방식대로 연립 주택들을 개조하는 것이었다. 각 블록의 남자 감독이나 여자 감독은 주민들 모두를 하나의 주소에 집결해서 욕실과 부엌을 수리하도록 지시했다. 수백 마리의 개미가 알사탕 크기의 바위를 끌고 가는 과학 시간 비디오처럼 사람들은 하나로 똘똘 뭉쳐서 일했다. 여러분은 그 장면을 머리에 그려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은 한 집에서 다음 집으로 옮겨 가는 식으로 블록을 따라가며 일했다. 이러한 이동식 즉각 조립 라인에서 사람들은 저마다 하나씩의 기능을 맡아서 처리했다. 아이들은 하나의 집단이 되어 흙먼지와 돌무더기를 통에 담아서 날랐고 노인들은 물통에 담긴 시원한 국화차를 따라서 건넸으며 심지어 몸이 성치 않은 사람들조차도 의자에 몸을 기대고 앉아 있거나 일터 안에 있으면서 열심히 일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정신적인 지원을 해 주거나 일하는 모습을 보고 배우려는 자세를 취하곤 했다.
“그림 그리는 사람들은 앞으로 나와요!” 또는 “타일을 까는 기술자들은 이리 나오세요!”라고 여자 감독이 밝은 목소리로 소리치면 사람들이 우르르 달려 나오곤 했다. 사람들의 분위기는 과거 시수 시에서 강이 엉망이 되고 언덕들이 쓸려 내려가 버리고 누구나 상대의 얼굴에서 사태가 가볍지 않다는 것을 깨닫기 전의 초기 시절을 상기시켰다.
하지만 그 순간으로 되돌아가는 것은 감상적인 여행이 될 것이다. 우리는 이제 자랐고 생각이 깊어졌고 강해졌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 조상들의 모든 소망이 성취되었다고 감히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세상을 오래 살지 않았을까?
우리는 이미 최고가 되는 일을 이루지 않았을까?
●Trompe-l’oeil: 실물로 착각할 정도로 정밀하고 생생하게 묘사한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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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이 떠난 날은 마지막 대홍수 직후였다. 당연히 그녀의 출발 기록이 남아 있지만 그 당시에는 어느 누구도 거기에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았다. 우리는 허리케인 때문에 초가을이 되면 항상 가벼운 물난리를 겪는다. 허리케인은 남대서양에서 북상해서 이곳에 도착할 무렵이면 기세가 다소 누그러지지만 그래도 여전히 가공할 폭풍우가 된다. 하지만 그때는 상황이 특히 심각했다. 여러 개의 폭풍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밀어닥치는 바람에 빗물은 결국 아무데도 갈 곳이 없었다. 우리는 그것을 잘 기억하고 있는데 그 이유는 B-모어의 수많은 사람들이 세 번째와 마지막 폭풍우 동안에 목숨을 잃었기 때문이다. 죽은 사람들 가운데는 조지프라는 유명한 열두 살짜리 꼬마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 아이는 물에 빠져 죽어 가는 자기 남동생의 친구를 구하려고 애쓰다가 자기가 숨을 거두고 말았다. 그것은 B-모어의 모든 사람들에게 충격을 안겨 준 비극적인 사건이었다. 그리고 아마도 판은 그 사고로 어느 누구보다 큰 충격을 받았다.
레그가 사라진 지 채 일주일도 지나지 않아 벌어진 일인 데다가 가엾은 조지프는 레그의 어린 친구였다. 가장 친한 친구 사이는 아니었지만 그들은 같은 블록에서 살았고 레그는 조지프가 갓난아기였을 때부터 알고 지내면서 둘은 함께 주기적으로 시간을 보내곤 했다. 물론 레그는 열아홉 살이었고 그 둘 사이의 상당한 나이 차이는 적어도 나이 든 사람들이 보기에는 친구라는 용어를 붙인다는 자체가 이상했겠지만, 레그는 사람들의 말에 따르면 마음이 순수했고 남의 시선을 조금도 의식하지 않고 한길에 나와 있는 누구하고도 함께 어울려 놀아 주었다. 쉬는 날이면 판은 레그를 태워 오기 위해 그곳으로 스쿠터를 몰고 갔다가 레그가 축구공을 차서 조지프나 그의 친구들과 주고받는 모습을 한동안 행복한 표정으로 앉아서 지켜보곤 했다. 레그는 동료 없이 혼자서 아이들을 상대했다. 그는 모든 아이들보다 키가 훨씬 더 크고 성숙했지만 아이들은 민첩성과 스피드라는 장점을 가지고 있었다. 지적한 대로 레그는 아이들보다 민첩성이 뒤떨어졌다. 슛이 날아오면 레그는 부교 같은 발을 그냥 쭉 뻗어서 막아 냈다. 조지프와 다른 아이들은 그의 두 다리 사이로 재빠르게 패스를 하거나 너무 뻣뻣하게 서 있는 그의 주변으로 노련하게 공을 돌리곤 했다. 판은 레그가 휘청거리거나 거의 균형을 잃을 때마다 참지 못하고 깔깔거리며 웃었다. 레그의 마르고 홀쭉한 몸은 잽싸게 중심을 잡고 반격을 가하기에는 적당하지 않았다.
물론 아이들 가운데 어느 하나가 이미 써먹은 속임수 동작으로 또다시 자기를 제치거나 너무나 손쉽게 자기 공을 빼앗아갈 때 레그는 좌절감을 느껴 식식거리곤 했다. 하지만 조롱을 한다거나 언짢은 기분을 오래 품은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레그가 이제 그만 가 봐야겠다고 말하면 아이들은 한 골만 더 넣을 때까지 가지 말고 있어 달라고 애원을 하면서 레그와 함께 판을 바라보며 그녀의 신호를 기다리곤 했다. 그녀가 늘 그랬듯이 승낙의 말을 하면 아이들은 기뻐하며 우렁찬 함성을 내지르곤 했다. 공놀이를 드디어 마치면 아이들은 한 명씩 뛰어올라 높이 치켜든 레그의 양손에다 자기들의 양손으로 하이파이브를 했다. 손바닥을 부딪치는 소리가 날카로운 걸로 봐서 판은 아이들이 얼마나 흥분해 있는지, 얼마나 그야말로 기분이 고양되어 있는지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레그처럼 마음이 아주 너그러운 존재가 곁에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아이들이 얼마나 자신들을 뿌듯하게 생각하는지 알 수 있었다.
돌이켜보건대 우리도 레그와 판이 그들의 전기 스쿠터를 나란히 타고 가는 모습을 볼 때마다 그런 식으로 느꼈던 것 같다. 두 사람은 종종 서로의 손을 잡을 수 있을 정도로 바짝 붙어서 스쿠터를 몰았다. 레그의 떨어지는 균형 감각도 이때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들이 이 도로들의 기다란 골목길을 따라 평화롭게 달려가는 모습은 우리의 질서 정연함을 보여 주는 것이었다. 한 시대의 그늘이 어떻든 간에, 사랑에 빠진 한 젊은 남녀의 모습은 밝은 미래를 가장 잘 보여 준다고 우리는 들어 왔다. 그런 열정은 우리로 하여금 어떠한 벽도 뛰어넘을 수 있고 어떠한 장애물도 지워 버릴 수 있다는 믿음을 갖게 만든다.
레그가 사라진 때로부터 아이들이 사고를 당하기까지의 기간 동안 우리는 판이 혼자 힘으로 잘 헤쳐 나가는 모습을 보고 싶어 했다. 이미 말했듯이 그녀는 지나치게 걱정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고, 이런저런 질문을 하고 가능한 수단을 강구하면서 조용히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상점가에서나 작업 시설에서 그녀는 얄궂게도 레그의 곁에 있지 못해서 그런지 예전보다 더욱 작아 보였다. 그것은 누구라도 알아차릴 수 있었다. 이렇게 말할 수 있는지 모르겠는데 레그는 행성이 달에게 그러하듯 그녀의 크기를 변화시켰다. 저울에 쟀을 때의 두 사람의 몸은 서로 많이 달랐겠지만 그 두 몸이 공간의 끝 모를 광대함 속에서 표류하게 될 것 같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무척 아늑하긴 해도 B-모어는 외로운 곳이 될 수 있다.
레그의 어린 친구인 조지프가 마지막 거대한 폭풍우 속에서 갑자기 사라졌을 때, 사람들은 그것이 얼마나 많은 것들을 앗아갈지 알 수 있었다. 조지프는 그날 오후 자기 남동생과 동생의 친구를 지켜보고 있었다. 아이들의 부모는 재배 시설에서 일을 하고 있었지만 폭우 때문에 와이파이가 나가 버려서 그들은 게임도 비디오도 없는 실내에 온종일 갇혀 있었다. 하지만 그때 구름 속에서 갑자기 틈이 보였다. 순식간에 변하는 종잡을 수 없는 날씨였다. 어린 녀석들은 밖으로 나가게 해 달라고 졸랐다. 조지프는 허락을 했고, 아이들이 공원으로 나갔을 때, 비가 약하게 내리기 시작했지만 눈부신 여우비였고 무지개까지 떴다. 가늘게 내리던 비가 완전한 폭우로 바뀌었을 때, 그들은 에라, 모르겠다, 하는 심정으로 재미있게 놀기로 마음먹었다. 아이들은 뼛속까지 비에 푹 젖으면서 즐겁게 뛰어놀았다.
그러다가 그들은 공원 입구 근처의 저지대에 새로 생긴 얕은 연못에 이르게 되었다. 근방의 불어난 개울에서 흙탕물이 흘러넘치고 있었는데 족히 천 마리는 되어 보이는 물고기들이 수면에서 마구 뒹굴고 있었기 때문에 아이들은 신이 나서 어쩔 줄을 몰랐다. 사내애들답게 그들은 물고기 몇 마리를 잡기로 마음먹었다. 조지프가 이파리가 달려 있는 부러진 나뭇가지 몇 개를 이리저리 휘저으며 물고기를 한곳으로 모으는 동안 그의 동생과 친구는 맨손으로 물고기를 낚아채려고 애썼다. 물론 잡아먹으려고 물고기를 잡는 것은 아니었다. 그것들은 우리의 물고기로, 잠시 연못에 풀려났을 뿐이었다. 자연산 물고기는 바깥세상 사람들만 먹는다. 그리고 우리는 차터 사람들이 지불하는 돈보다 훨씬 저렴한 가격으로 우리가 기른 소중한 물고기를 구입할 수 있다. 세 소년은 태초부터 소년들이 그래 왔듯 물고기를 한 마리 잡을 때마다 승리의 환호성을 지르면서 아주 즐거운 한때를 보내고 있었다. 비는 억수같이 쏟아지고 있었지만 그들의 열의를 조금도 꺾을 수가 없었다.
그들은 아무런 근심 걱정도 없이 그런 식으로 즐겁게 뛰어놀고 있었다. 허벅지 깊이의 물에서 조지프가 어떤 위험을 예상할 수 있었겠는가? 물은 아주 느리게 차오르고 있었다. 물고기들 등지느러미의 뾰족한 끝이 가볍게 툭툭 치는 느낌밖에 없었다. B-모어의 아이들은 의무 교육을 받고 있었기에 그것은 걱정거리가 되지 않았다. 아이들은 어류 생물학과 부화장 작업, 그리고 스킨 다이빙 기술을 배우도록 되어 있었는데 그중에서도 마지막의 스킨 다이빙은 미래의 잠수부들을 알아보려는 의도를 갖고 있었다. 조지프는 사실, 판과 몇 차례 함께 잠수를 했다. 판은 이따금 그런 수업에서 자신의 기법들을 시범적으로 선보였다. 헝클어진 오렌지색 머리카락의 조지프는 운동 신경이 아주 뛰어난 아이였으니 살아 있었다면 잠수부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가 이 지역의 초기 유럽 정착민의 피를 물려받은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는 사실이다. 조지프는 지역 준준결승까지 올라간 하나밖에 없는 주니어 축구팀의 주장이기도 했는데 그의 팀은 최종 우승을 거둔 차터 선수단을 상대로 승리를 거둘 뻔했다. 사실 학교 스포츠 경기는 우리가 차터 사람들 혹은 그보다 더 잘 조직된 소수의 지역과 진정으로 부딪칠 수 있는 유일한 기회이다. 그게 아니면 새로운 결승 경기는 전혀 없을 테니까. 이 점에 있어서 조지프는 우리의 챔피언이라고 할 수 있는 대단한 친구였고 레그와 판은 여유가 있을 때마다 그의 경기를 관람했다. 이 소년은 자신을 주어진 환경에 정력적이고 즉각적으로 적응시키는 데에 특별한 능력을 갖추고 있었다.
이것은 그의 피할 수 없는 운명이었던 것 같다. 다른 소년이라면 갑자기 생겨난 그 연못에서 물이 줄어들기 시작했을 때 조지프가 했던 것만큼 본능적인 자신감을 가지고 그 일을 하지는 못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억수같이 쏟아지는 비에도 불구하고 수위는 내려가고 있었는데 아이들이 그것을 알아차리기만 했더라면 분명 이상하게 여겼을 것이다. 아이들은 물고기를 뒤쫓으며 계속 물을 헤치고 걸어 다녔는데 물고기 떼는 연못의 한쪽 끝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듯 보였다. 앞장을 선 어린 아이들은 느려진 걸음으로 물살을 헤치고 힘겹게 나아가고 있었다. 그때 무슨 이유에서인지 몰라도 물고기들이 방향을 틀더니 돌아서서 아이들의 다리 사이로 빠져나가려고 애썼다. 아이들은 기뻐했지만 조지프는 왜 물고기들이 가던 길을 되돌아오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입구 도로의 아래에 있는 숨겨진 배수 파이프가 열려 있었다. 파이프는 몇 개의 나뭇가지 때문에 한때 엉망이 되었지만 그것들이 제거되고 나자 사정없이 내리치는 빗물 속에서도 꿀꺽꿀꺽 물을 삼키는 무서운 소리를 조지프는 들을 수 있었다.
아이들은 갑자기 포악해진 물결을 거슬러 달아나려고 애썼지만 동생의 친구가 발이 미끄러지면서 수면 밑으로 쓰러졌다. 다음 순간 아이는 보이지 않았다. 파이프 속으로 빨려 들어가 버렸다. 조지프는 동생을 물이 얕은 곳으로 끌고 나온 다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물속으로 뛰어들어 갈색 물의 거센 흐름에 자신을 내맡겼다.
그는 동생의 친구가 이미 파이프를 통과해 저쪽 끝으로 튕겨 나가 버렸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제방을 쌓은 길 저쪽으로 쓸려 나간 그 아이는 숨이 막혀 콜록거리며 공포에 질려 있었고 더러운 물을 마셔서 배가 빵빵했지만 그것만 아니라면 아직 멀쩡했다. 하지만 세 살 더 많은 조지프는 나이 차이만큼 덩치가 커서 파이프를 끝까지 통과하지 못하고 4분의 3 지점에서 몸이 걸려 버렸다. 후진을 해서 파이프를 빠져나오는 수밖에 없어서 그렇게 하려고 몸부림을 쳤지만 물의 힘이 그를 한자리에서 옴짝달싹 못하게 만들었다.
한 시간 뒤에 긴급 구조대가 결국 조지프를 파이프에서 끌어낼 수 있었는데 그 과정에서 구조대원 한 명이 하마터면 목숨을 잃을 뻔했다. 이미 상당한 시간이 흘렀지만 그들은 조지프를 되살리려는 시도를 했다. 하지만 아무 소용도 없었다. 구조대가 조지프를 집으로 데려갔을 때 아이는 차가운 저녁 하늘에 물이 든 것처럼 놀랍도록 선명한 푸른빛이었지만 또한 여전히 거무스레했다고 한다.
아, 그 일로 마을 사람들이 겪은 비통한 심정! 그 슬픔! 이미 말했다시피 폭풍우 속에서 목숨을 잃은 다른 사람들이 있었다. 침수된 교차로를 건너려고 애쓰다가 차량 속에서 익사한 부부도 있었고 자신이 개조한 진공청소기로 침수된 지하실의 물을 퍼내려고 시도하다가 감전사를 당한 사람도 있었다. 설명할 수 없는 일이지만 몇몇 사람은 항구에서 노로 보트를 젓고 있다가 배가 갑자기 가라앉는 바람에 숨을 거두었다. 이런 사람들을 위한 의식은 적당히 침울한 분위기에서 수수하게 치러졌다. 다소 황당한 상황에서 죽은 사람들이라 의식을 치르는 사람들의 슬픔은 아마 덜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조지프의 경우는 달랐다. 그의 의식을 치르기 위해 길거리로 쏟아져 나온 사람들 때문에 B-모어의 모든 연립 주택은 텅 비어 버렸다. 우리 모두는 그의 가족의 연립 주택 밖에 모여 완전한 침묵에 잠겨 있었다. 들리는 것이라고는 조지프의 시신을 보기 위해 우리가 순서를 기다리는 동안 고무 슬리퍼를 신은 수백 개의 발이 땅바닥에 끌리면서 내는 소리밖에 없었다.
판은 자기 친척들과 함께 줄을 서서 조지프의 잃어버린 미래에 대해 친척들이 하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보통 이런 종류의 수다는 몽상을 아무렇지도 않게 지껄이는 게 보통이지만 조지프의 경우는 달랐다. 조지프는 나중에 차터에서 살아갈 몇 안 되는 사람 가운데 하나였을 거라는 데에 모두가 동의했다. B-모어 사람들 가운데 외모나 운동 경기에서의 위업 때문에 차터의 스카우터에게 발탁되는 경우는 드물었다. 조지프의 부모는 축구 플레이오프에서 조지프가 눈부신 활약을 펼쳐 보이고 나서 그가 모델이나 배우, 또는 전문 운동선수가 되어 볼 생각이 없느냐는 연락을 받았다. 물론 그 밖의 유일한 방법으로, 해마다 실시되는 적성 시험에서 아주 좋은 점수를 받는 방법도 있었다. 차터 사람들은 우리의 아이들이 열두 살이 되면 그런 시험을 치르게 해서 차터 점수의 상위 2퍼센트에 속하는 아이들에게는 차터 가정으로 승급 및 입양될 자격을 주었다. 그러나 시험에서 그처럼 뛰어난 성적을 거두기란 가능성이 더 희박한 일이었다. 판의 친척들이라면 비록 여러 해 전이지만 그들의 아이들 중에 하나가 그런 자격을 얻었다는 사실을 자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은 실제로 종종 그런 자랑을 하고 다녔다. 판의 친척 중에 리웨이라는 소년이 있었는데 그 아이가 사건의 주인공이었다. 나이 차이가 커서 판은 그를 알지도 못했다.
판이 계단의 꼭대기에 올랐을 때, 우리 모두는 그녀를 볼 수 있었다. 아마도 집으로 들어간 어떤 조문객이 관을 내려다보며 지나치게 오래 머무르고 있는 듯했다. 판이 영원히 그곳에 있을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었다. 폭풍우가 지나간 뒤라 햇빛이 눈부시게 내리쬐는 화창한 날씨였다. 그녀는 광각 선글라스를 끼고 있었다. 그녀가 평소에 아끼던 물건이었다. 짧게 자른 검은 머리는 끝 부분이 아주 약간 둥글게 말아져 턱의 섬세한 선을 감싸고 있었다. 그것을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녀를 우리 B-모어 사람들이 예상할 수도 없는 무슨 일을 하는 사람들 가운데 하나라고 여겼을 것이다. 프로그램을 짜는 사람이나 배우라고 여겼을 수도 있다. 게다가 판은 아름답지는 않았지만 존재가 다소 두드러지는 편이었다. 그것은 단순히 몸매가 자그마해서가 아니라 아름다움을 갖춘 순수성을 지닌, 어떤 증류수 같아서였다. 그녀는 안으로 들어갈 차례를 기다리는 동안 완벽하고 자그마한 손으로 난간을 붙잡은 채 입을 꼭 다물고 있었는데 그 모습을 보았다면 누구나 가슴 속의 신선한 샘에서 감탄이 절로 흘러내렸을 것이다.
고인과의 대면을 위해 들어간 사람들은 부엌으로 통과해서 여러 집의 뒤뜰을 서로 구분 지어 주는 공용 골목으로 쏟아져 나왔다. 판은 우리가 본 것을 똑같이 보았다. 거기에는 조지프가 있었다. 비좁은 앞쪽 거실에서 육중한 골판지 관 속에 비스듬하게 드러누운 아이는 수의를 입고 잠들어 있었는데, 아이가 놀랍도록 밝은 얼굴빛을 하고 있었던 것은 B-모어의 노인 장의사 탕 때문이었을까? 어쩌면 탕이 자신의 피험자인 아이의 돌 같은 얼굴빛을 지우기 위해 일부러 그렇게 밝게 만들어 놓았는지도 몰랐다. 그게 아니면 단순히 노인의 기량이 예전보다 떨어진 탓인지도 몰랐다. 무엇이 어찌 되었든 누가 보더라도 탕 영감은 도가 지나쳤다. 불쌍한 조지프는 피 튀기는 한판 경기를 벌이고 막 경기장에서 걸어 나온 사람처럼 보였으니까. 조지프는 지나칠 정도로 살아 있는 사람처럼 보였다. 핏기가 가득한 얼굴을 보고 있자니 당장에라도 관에서 튀어나와 스포츠 음료를 달라고 부탁할 것처럼 보였다. 더군다나 누가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그의 한손에는 작은 축구공이 쥐여 있었다. 공의 부드러운 플라스틱 표면이 약간 들어가 있어서 조지프는 정말로 그것을 거머쥐고 있는 듯 보였다. 비록 장난감 공에 불과했지만 그의 옆에 서 있던 우리가 받은 인상은 그가 우리를 옥죄고 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죽은 사람들이 흔히 그러하듯 위협적이거나 책망하는 모습이 아니라 결속을 지그시 압박하는 것이었다.
저도 알아요, 알아. 조지프는 그렇게 말하는 듯 보였다.
우리는 관을 지나 발을 끌며 거실과 붙어 있는 부엌으로 들어갔다. 그곳에서는 조지프의 숙모들 가운데 한 명이 자그마한 뒤뜰로 나가도록 사람들을 안내하고 있었다. 뒤뜰에는 기다란 식탁 위에 관례적인 음식들이 준비되어 있었다. 하지만 음식들 가운데는 요즘 보기조차 힘든 산시(Shanxi) 성 스타일의 훈제 돼지 삼겹살 같은 집에서 만든 별미들이 몇 가지 포함되어 있었다. 지방이 많고 후추 맛이 나는 요리의 향기는 마치 우리가 딴 세상에 와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주기에 충분했다. 다른 초상집이었다면 그런 냄새를 맡고 흐뭇한 기분에 젖어들었겠지만 조지프의 초상집에서 그 냄새는 비애만 맛볼 수 있게 얼른 날아가 버렸으면 좋겠다고 계속 바라게 되는 자욱한 구름 같은 것이었다. 냄새는 너무 좋고 너무 감미로워, 우리의 짭조름한 눈물은 군침이 도는 우리의 입에 고통스러운 음료였다. 조지프의 부모와 이제 혼자 남게 된 그의 남동생이 상복을 입고 흰 장갑을 낀 채 바로 그 자리에 토템처럼 서 있지만 않았더라면 우리는 공허감을 물리치기 위해 커다란 서빙 접시를 단숨에 싹 비워 버렸을 것이다. 조지프의 어머니는 찾아와 준 것에 대해 우리 한 명 한 명에게 고마움을 표했고 그의 아버지는 멍하거나 공허한 눈빛이 아니라 그 정반대의 눈빛으로 우리의 인사를 받았다. 비록 조지프만큼 타고난 재능이 있지는 않았지만 그의 아버지도 젊은 시절에는 운동 방면에 뛰어났다. 그들의 눈빛에는 조지프의 모든 것들, 즉 그가 경기장에서 경기를 펼치던 모습과 그가 받은 수조 잠수 교육, 그리고 기회만 주어졌더라면 B-모어를 벗어나 그가 이루었을지도 모르는 그 밖의 모든 것들로 가득 차 있었다.
조지프의 남동생만 감히 고개를 들지 못했다. 아이는 차마 바라볼 수도 없을 정도로 비통하게 울고 있었다. 아이가 흘린 눈물이 가슴 앞에 들고 있는 붉게 옻칠한 조의금 상자의 표면에 허연 자국을 남기고 있었다. 상자의 전면에는 조지프의 슬라이드 사진들이 펼쳐져 있었다. 아이가 자기 발로 서 있을 수 있다는 게 신기했다. 세 사람은 그렇게 한 줄로 나란히 서 있었지만 아이의 부모는 왠지 아이와 떨어져 있는 것처럼 보였다. 부모는 자신들의 거품 속, 그리고 조지프의 동생은 그 자신의 거품 속에 들어가 있는 것 같았다. 아이가 들고 있는 상자는 그의 파트너 역할을 하고 있었다. 아이는 밖에서 놀게 해 달라고 조지프를 조른 것에 대해 자신의 책임이 일부 있다고 느끼는 게 분명했다. 그 일로 아이를 나무라는 게 옳다고 여기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지만 가느다란 구멍 속에 봉투를 밀어 넣으면서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세게 밀어 넣은 사람들이 적지 않았는데, 그건 무슨 뜻일까? 우리도 그렇게 했던가? 만약에 우리가 봉투를 구멍 속에 밀어 넣으면서 아주 작게라도 톡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면 우리는 지금 그것을 후회한다.
우리가 조지프와 그의 가족과 우리 자신에 관한 이 모든 이야기를 상기시키는 이유는 판이 조지프의 어머니와 아버지를 향해 고개를 숙이면서 얼마나 엄숙하고 차분했는지 기억에 강하게 남았기 때문이다. 그녀는 자기 가족의 조의금만으로 충분했는데도 자신의 봉투를 밀어 넣으며 아이의 어깨를 꽤 오랫동안 토닥거려 주었다. 판은 차려 놓은 음식을 먹지 않은 유일한 조문객이었다. 식탁에서 우리는 그녀가 조지프의 동생과 적당한 거리를 두고 떨어져 있었지만 아이의 곁에 서 있고 싶어 한다는 느낌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비록 그녀에게 말을 걸거나 그녀와 눈을 맞추는 사람은 없었지만 우리는 그녀의 존재를 분명히 인식하고 있었다. 그러고 나서 줄은 약간 더 느리게 움직이는 듯 보였다. 사람들은 그들의 봉투를 가지고 시간을 끌면서 동정심이 어린 눈빛으로 아이를 향해 고개까지 끄덕여 보이고 나서 식탁으로 서둘러 건너갔다. 돌이켜볼 때 놀라운 사실은, 어느 누구도 판에 대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게걸스럽게 음식을 씹고 삼키느라 쩝쩝거리는 소리를 내면서 플라스틱 포크로 플라스틱 접시를 긁는 소리를 내는 동안 우리들 가운데 한마디라도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모두 배가 너무 고파서 그랬을 것이다. 누구나 죽을 운명이라는 진리를 슬쩍 엿보는 것은 놀라울 정도로 식욕을 돋우는 소스가 될 수 있으니까. 아니면 접시로 무장한 채 발을 끌며 걷는 인파 때문에 우리가 뷔페 음식을 따라 밀려가고 있어서 그랬는지도 모른다. 그것도 아니라면 최근에 레그한테 벌어진 일 때문에 그랬는지도 모르겠지만. 어쨌든 판을 보고도 알은 척하기 꺼린 것은 그 자체로 식사의 일부가 되었다.
어느 시점이 되자 판은 아이의 곁을 떠나 뷔페 음식 쪽으로 건너왔다. 거의 모든 사람이 그것을 알아차리고 하던 동작을 멈췄다. 놀랍도록 똑똑하고 멀리까지 들리는 목소리로 그녀는 제법 이상하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지금 당신들이 있는 곳이야.”
그러자 모든 사람이 그녀를 향해 몸을 돌렸다. 그녀의 양손은 말아져서 느슨한 주먹이 되어 있었다. 그녀는 방금 했던 말을 한 번 더 반복했다. 이번에는 사람들을 향해서 하는 말이 아니라 혼잣말을 하는 것처럼 아까보다 더 부드러웠다. 이번에도 역시 어느 누구도 입을 떼지 않았다.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 나서 음식을 다 먹은 사람들과 함께 뜰의 뒷문을 통해 밖으로 나가 버렸다. 뒤에 남겨진 우리는 그녀가 무엇에 대해 말하고 있었는지 궁금했다.
초상집의 경야는 한 시간여 동안 계속되었다. 하늘이 갑자기 꾸물꾸물해지고 바람이 휘몰아쳐 또 다른 거대 폭풍우의 징후만 보이지 않았더라면 경야는 몇 시간 더 이어졌을 것이다. 폭풍우가 닥치면 소용돌이가 천천히 풀리면서 몇 주 동안 맴돌곤 했다. 태양은 내내 가려져 있어, 깨어 있을 때와 잠을 잘 때 볼 수 있는 거라고는 밝음이나 어둠이 아니라, 모든 것이 더러운 유리 조각 뒤에 갇혀 있는 것 같은 창백한 흐릿함뿐이었다. 우리 B-모어 사람들은 실내와 지하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에 익숙해져 있었지만, 재배 시설이나 지하 상점 위로 오직 잿빛과 안개뿐임을 알게 되는 것은 기운이 빠지는 일이었다. 그리고 이 우울하고 절망적인 불빛 아래에서 우리는 가장 자연스러운 방식으로 판이 던지고 간 말이 정확히 무슨 뜻이었는지에 대해 의견을 나누기 시작했다. 지금 당신들이 있는 곳이야. 일부 사람들은 그것을 판이 어떤 생각을 시작하다가 미처 마무리를 짓지 못하고 내뱉은 말이라고 이해했고, 또 다른 사람들은 그것이 단순한 횡설수설이었을 뿐이라고 했다. 사람들은 그녀가 줄을 너무 오래 서 있었고 무어라도 먹었어야 했다고 말했다. 착각이 심한 어떤 친구는 그녀가 자기한테만 말을 하고 있었고 접이식 의자 하나를 준비해 두라는 부탁을 하고 있었다고 믿고 있었다.
하지만 우리들 가운데 대부분은 그것이 어떤 질문이 아니라 “당신들이 갈망하는 모든 것을 발견할 수 있는 곳은….” 그리고 “당신들이 봐야 할 곳은 다른 곳이 아니라 바로….”처럼 문장을 끝맺는 말이었다는 것에 의견의 일치를 보았다. 그것은 자신의 성격이나 현재의 세계관에 걸맞게 사람들이 떠올릴 수 있는 무슨 말이었을 것이다. 이를테면 불치의 병에 걸린 사람이 “사람의 운명은 과거나 미래에 있는 것이 아니라….”라고 말하는 식이다. 물론 판은 그것들 가운데 어느 것도 언급하지 않았지만 결국 그것은 적어도 우리의 느낌에는 그녀 자신에 관한 말이었다. 그녀가 B-모어를 떠난 지 오랜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그런 깨달음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녀가 사실 우리를 돌보고 있었다는 느낌, 어쩌면 중대한 무언가에 대해 우리에게 조언을 해 주고 있었다는 느낌이 들었다.
판에 대한 공동 관심에 첫 징후가 나타난 것은 바로 이 시점이었다. 물론 판이 인정이 넘치는 이 지역을 떠나 버린 첫 번째 B-모어 사람은 아니었지만, 혼자 힘으로 그런 일을 저지른 가장 어리고 몸집이 작은 사람이라는 것은 분명했다. 다른 사람들은 어떤 스캔들이나 범죄 때문에 축출을 당했었다. 그들은 용서를 받을 수 있기를 기대하며 공식적이든 어떤 식이든 간에 모든 수단을 다 써 보고 나서 그게 통하지 않아 강제로 축출되었다. 정신이 온전한 사람이라면 그렇게라도 용서를 구하는 방법 외에 달리 행동하지 못했을 것이다. 고난이나 파멸을 피할 수 있다면 무슨 수단을 써서라도 피해야지 왜 쓸데없이 그것들을 불러들인단 말인가? 하지만 판은 B-모어에서 한창때를 보내고 있는 여느 아가씨들과 마찬가지로 제정신이었고 불편한 것 하나 없이 잘 지내고 있었다. 그녀는 수조 속에서의 기술이 좋았고 타고난 우아함과 고상함을 갖추고 있어서 남들의 은밀한 존경을 받고 있었다. 그녀는 사교성도 충분히 좋았고 부모에 대한 효성도 지극했는데 그것은 누구라도 예상할 수 있을 정도였다. 그녀는 흠잡을 데가 하나도 없는 그런 완벽하고 지극히 정상적인 아가씨였다.
어쩌면 그래서 판이 우리의 상상력을 자극했는지도 모른다. 고위층의 사치품들만 없을 뿐이지 우리가 잘 먹고 잘 자고 모든 게 탈 없이 돌아갈 때 그런 상상력은 솔직히 말해서 아주 중요하다거나 필요한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본래 B-모어라는 지역이 나름대로 고안되고 개발되고 설립되기를, 불필요한 것들은 아예 꿈꿀 필요조차 없게끔 만들어 놓은 곳이 아닌가?
하지만 이제 벌어진 모든 특이한 활동들을 보라. 판이 떠나던 날 누군가가 판이 정문에 서 있는 모습이 담긴 비디오 기록을 확보해서 그것을 재배 시설 페이지에 실었고 지하 식당가에 있는 한 테이크아웃 인도 스낵 가게의 광고 영상에도 끼워 넣었다. 그것을 클릭하면 무료 식사와 음료 쿠폰을 얻을 수 있었고 삐 소리와 암호 대신, 판의 모습을 담은 무성 비디오를 볼 수 있었다. 약간 위에서 판의 옆모습을 촬영한 것이었는데 그녀는 한쪽 어깨 위로 작은 배낭을 둘러메고 있었고 한손에 우산을 들고 있었다. 차림새를 보자면 B-모어 사람들이 흔히 입는 화려하고 헐렁한 파자마 형태의 복장과는 많이 달랐다. 그녀는 부피가 크고 거무칙칙한 자치주 사람들의 옷을 입고 있었다. 입구의 대피소 너머에서는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고 있었다. 또 다른 폭풍우가 밀어닥친 것이었다. 너무 거센 바람 때문에 비는 비스듬하게 쏟아졌다. 보초병은 아주 재빨리 그녀를 훑어보더니 곧장 내보냈다. 그는 판을 험악한 날씨 때문에 그날 장사를 포기해 버린 자치주의 행상인으로 여긴 듯했다.
화면은 거기에서 끝이 났다. 판이 보초병 초소 앞에 몇 초 동안 서 있는 모습이 전부였다. 그녀는 결코 탐험을 막 시작하려는 사람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그녀의 표정은 차가운 비처럼 침울했다. 광고에 대한 이야기가 퍼져 나갔다. 광고 속 가게는 진짜였다. 가게 주인은 자기는 아무것도 모르며 자신의 광고가 이용을 당한 거라고 주장했다. 몇 시간 후에 삭제될 때까지 그것은 B-모어 웹페이지에서 가장 인기 있는 동영상이 되었고 심지어 그날 밤의 소년소녀 수영 선수권 대회 영상보다 더 많은 조회 수를 기록했다. 도무지 말도 안 되는 거였지만 곧바로 엄청난 인파가 그런 일이 없었더라면 그냥 평범했을 그 스낵 가게로 물밀 듯이 몰려들었다. 가게 앞에 길게 줄을 선 사람들을 보고 더 많은 사람들이 줄에 합류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결국 가게 주인은 손님들에게 음식을 제공하기 위해 훨씬 더 큰 공간을 빌리기로 마음먹었다. 가게는 짧은 시간에 엄청난 매상을 올렸다. 그러다가 갑자기 손님이 뚝 끊겼고 주인은 가게 문을 닫아야 했다.
다른 카메라는 정문을 걸어 나간 판이 B-모어 바깥의 진입로를 따라 유료 도로로 가고 있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공식적인 기록은 거기에서 끝이 난다. 하지만 그 뒤로 이어질 이야기는 잘 알려져 있다. 적어도 B-모어의 모든 사람들이 그 이야기를 반복해서 해 오고 있으니까. 메시지와 게시물과 비디오와 노래로, 그리고 고요한 저녁 시간에 서로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다가 그 이야기를 해 왔다. 저녁이 되면 모든 근육은 워낙 혹사를 시켜서 거의 감각이 없을 지경이 되고 우리는 자신의 몸과 하나라기보다는 따로 떨어져 마치 몸을 조종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우리는 몸속에 갇혀 밖을 내다보면서 무엇이 실제이고 무엇이 지각된 것인지 제대로 알지 못한다. 그리고 이런 마음 상태에서 우리는 알려진 것을 기반으로 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의 진술이 환상적이라거나 허위라는 것은 아니지만 때때로 그것은 그녀와 우리 자신들을 위한 바람들에 취약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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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해서 판은 다음과 같은 식으로 가 버렸다. 해안 유료 도로를 따라 북쪽이나 남쪽으로 가지 않고 그녀는 서쪽으로 방향을 틀어 옛날 길로 갔다. 그것은 한때 농지와 숲을 구불구불 가로지르고, 차터의 마을들이 표본으로 삼은 고풍스러운 정착지들을 서로 이어 주던 포장도로였다. 그런 정착지를 지금은 영화에서나 볼 수 있다. 털이 텁수룩한 개를 데리고 산책을 하는 사람들이 있고, 아이들은 아이스크림콘을 핥고 있으며, 벤치에는 만족스러운 표정의 노인들이나 키스를 하며 서로를 꼭 껴안고 있는 연인들이 앉아 있는, 그리고 기차가 하루 종일 오가면서 사람들을 일터로 실어 나르고 데려오는 그런 지역 사회.
하지만 온 세상이 흠뻑 젖은 그날 저녁에 판이 마주친 것은 그런 모습이 전혀 아니었다. 그때도 그랬지만, 지금도 그것은 잡초가 우거진 풍경이다. 잡초들이 어찌나 빽빽하고 키가 큰지 그 속의 작은 공간은 종종 방랑자들과 도둑놈들의 방으로 이용된다. 잡초들이란 바로 나무들을 말한다. 사람들이 거주하는 지역의 대부분에서는 나무들이 잘려 나가 버린다. 따스한 계절에는 지독한 꽃가루 냄새가 바람도 불지 않는 공기를 가득 메워서 거의 숨도 쉴 수 없을 지경이기 때문이다. 도로 쪽에 떡 버티고 있다가 버려진 집들은 오래전에 불도저에 무너져 짐마차에 실려 갔다. 예전의 그 포장도로는 보다 근본적인 상태로 변했다. 이제 아스팔트 지면은 시커먼 가루 무더기가 되어 버렸다. 그나마 통행이 가능한 도로들은 종아리까지 푹 잠기는 구덩이가 곳곳에 곰보처럼 나 있다. 잇따른 폭우와 한파와 가뭄으로 도로 사정이 말이 아닌데, 그 때문에 트럭 운전사들과 차터 사람들은 안전하고 울타리가 쳐진 유료 도로를 이용한다. 그러나 자치주 운전자들은 여유가 없어서 그 도로를 거의 이용할 수 없고 종종 이용을 금지당하기도 하는데, 속도가 느리고 낡을 대로 낡아 버린 그들의 차량은 끊임없이 고장이 나고, 그래서 자동차 덮개를 들어 올려 증기를 뽑아내는 일이 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치주 운전자들은 과거의 잔재 같은 도로 위에서 이리저리 방향을 틀면서 발작적으로 달리곤 하는데, 그들 중 한 명이 그날 초저녁의 폭우로 앞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 잿빛 혼란 속에서 운전을 하다가 판을 정면으로 쳤다.
그녀는 빗물이 반쯤 차 있는 배수로에 빠지면서, 땅에 일부 파묻힌 도로 경계석에 관자놀이를 부딪치고 말았다. 넙다리뼈의 꼭대기부터 엉덩이까지 통증이 흘러 내려 비명을 내지를 법도 했지만 머리에 가해진 충격이 천둥소리 같았고, 그녀가 할 수 있었던 일은 감각을 잃어버린 손가락을 움직여 보는 것뿐이었다. 그 차량, 즉 어떤 낡은 폭스바겐 전기 디젤 차량은 20미터를 계속 달려가다가 멈춰 섰다. 차량이 후진을 하면서 조수석 창문이 반쯤 내려가더니 어떤 여자의 꺼끌꺼끌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사슴이 아니에요.”
“그럼 개야?”
어떤 남자가 물었다.
어린 아가씨 같아 보인다고 여자가 대답했다.
침묵이 흘렀다.
“죽었어?”
“아직 안 죽었어요. 몸을 조금씩 움직이고 있어요.”
다시금 침묵이 흘렀다. 그러더니 운전석의 문이 삐걱거리는 소리를 내며 열렸다.
“저 아가씨를 치료해 줄 생각이라면 저는 절대 못 해요.”
남자는 여자의 말을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그는 우산도 없이 차량의 앞쪽으로 느릿느릿 돌아가서 판을 내려다보았다. 그의 머리와 양쪽 어깨는 자욱하게 쏟아지는 따스한 빗방울로부터 그녀를 부분적으로 막아 주었다. 그녀는 몸을 움직여 보려고 한쪽 다리를 버둥거렸지만 배수로의 한쪽으로 진흙만 밀쳐 내는 부질없는 짓만 반복하고 있었다.
“빌어먹을, 퀴그.”
여자가 거친 말을 내뱉었다.
그는 한쪽 발로 판의 발목을 밀어 물속에 박아 넣었다. 판은 위를 올려다보았지만 날도 어둡고 비가 내리고 있어서 야구모자의 챙이 드리운 어두운 그림자 아래 그의 얼굴 윤곽만 간신히 알아볼 수 있었다. 그는 턱수염을 기르고 있었고 넓은 턱을 가지고 있었다. 코는 여러 번 부러진 것처럼 보였다. 이 세상에서 가장 험한 꼴을 목격한 사람의 눈빛을 하고 있어서, 이제 더 이상 무엇을 보게 되더라도 두려워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만 가요! 최소한 세 시간은 더 달려야 하잖아요. 게다가 전 배가 고파 미치겠다고요!”
“조용히 해, 로린.”
그의 목소리에 담긴 무언가가 그녀를 잠잠하게 만들었다. 그가 거친 양손을 내밀며 판을 향해 허리를 굽혔을 때, 차 안에 있는 여자와 판, 두 여자 모두 그가 무슨 일을 하려는지 나름의 짐작을 하고서 몸을 움찔했다. 하지만 그는 판의 두 무릎과 양팔 밑으로 자기 손을 밀어 넣더니 그녀가 저항할 시간도 주지 않고 재빨리 번쩍 들어올렸다. 그는 한쪽 팔로 그녀를 감싸 안은 채 스테이션왜건의 뒷문을 위로 열어젖힌 다음, 마구 뒤엉켜 있는 기름투성이 밧줄과 도구들 옆에 그녀를 내려놓았다. 판은 그를 향해 발길질을 하려고 애썼지만 허벅지의 날카로운 통증 때문에 거의 숨이 넘어갈 지경이었다. 그가 뒷문을 닫았을 때, 그녀는 결국 의식을 잃고 말았다.
정신이 돌아왔을 때는 칠흑같이 어두운 밤이었다. 그들은 아직도 운전을 하고 있었다. 깊게 파인 구덩이와 울퉁불퉁한 도로 표면이 그녀의 의식을 흔들어 깨웠다. 차 안의 공기는 습했고 곰팡이와 체인오일, 그리고 B-모어 사람들만큼 주기적으로 씻지 않는 두 자치주 사람의 냄새가 났다. 그들이 입고 있는 옷과 그들 자신의 냄새도 났다. 냄새가 너무나 지독하고 생생해서 마치 그들이 그녀의 양쪽에서 서로를 휘감은 채 앉아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였다. 게다가 그녀의 축축하게 젖은 옷과 뒷문의 천장에서 계속 뚝뚝 떨어지는 물방울 때문에 그녀가 누워 있는 자리의 모든 것이 눅눅했다. 그녀의 오른쪽 다리는 깨진 유리가 가득 담긴 20킬로그램짜리 자루처럼 느껴졌지만 그보다 더 아픈 것은 그녀의 머리였다. 도로의 손상 부위를 지날 때마다 그녀의 얼굴 한쪽 면 전체가 바닥과 부딪치면서 쿵쿵 소리를 냈다. 판이 속이 메스꺼워 토할 것 같다고 말하자 여자가 욕설을 퍼부었지만 차는 속도를 줄여 멈추었다. 남자가 짐칸의 문을 열고 판의 머리카락을 거머쥐고 밖으로 잡아당기는 바람에 그녀는 길바닥에 먹은 것을 게울 수 있었다. 토사물이 튀면서 남자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