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힘
초판 1쇄 발행 2012년 7월 10일
초판 4쇄 발행 2012년 9월 10일
지은이 조엘 오스틴
옮긴이 이은진
발행인 노영현
편집인 노승권
편집장 이은정
편집 안희주, 김수연
표지디자인 민진기
본문디자인 김경진
사업기획단장 김현오
마케팅기획 이충주, 김봉구, 임현석, 이현우, 정완교, 김도현
제작·물류 차동현, 강현주, 김보연
마케팅지원 이상민
임프린트 생각연구소
주소 서울시 서대문구 연희동 128-10 신관 2층
전화 02-337-0231(편집), 02-728-0286(마케팅)
팩스 02-774-7216
발행처 (사)한국물가정보
등록 1980년 3월 29일
이메일 thinkinglabbook@gmail.com
카페 cafe.naver.com/bookzine
ISBN 978-89-6260-751-2 (15230)
● 생각연구소는 KPI출판그룹의 임프린트입니다.
본 전자책은 빌드북에서 제작되었습니다.
주소│경기도 고양시 일산동구 776-1 로데오메탈릭타워 806호
대표전화│070-7848-9387
대표팩스│070-7848-9388
이 전자책은 저작권법에 의하여 보호를 받는 저작물이므로 무단전재와 무단복제를 금합니다. 이를 위반시에는 형사/민사상의 법적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본 컨텐츠는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출판회의의 KoPub서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EVERY DAY A FRIDAY : How to Be Happier 7 Days a Week
Copyright ⓒ 2011 by Joel Osteen
This edition published by arrangement with FaithWords, New York, New York, USA.
All rights reserved.
Korean Translation Copyright ⓒ 2012 by Korea Price Information, Corp.(KPI)
This translation is published by arrangement with FaithWords, New York, New York, USA
through Imprima Korea Agency.
이 책의 한국어판 저작권은 Imprima Korea Agency를 통해
Hachette Book Group USA, Inc와의 독점 계약으로 KPI출판그룹에 있습니다.
저작권법에 의해 한국 내에서 보호를 받는 저작물이므로 무단전재와 무단복제를 금합니다.
이 책을 펴내기 위해 글을 쓰면서 하루하루가 마감일이라는 걸 깨닫게 되었다. 재능 많고 성실한 사람들 덕분에 매일 마감시간을 놓치지 않고 이렇게 영감과 희망을 주는 책을 내게 되어 뿌듯하고 기쁘다.
언제나처럼 하나님께서 선한 사람들을 통해 이 모든 과정을 인도하셨다. 아셰트 페이스워드 출판사에서 편집을 맡고 있는 롤프 제터스텐과 아셰트 출판그룹 회장 데이비드 영, 리더십 팀에서 일하는 크리스 머피, 마사 오티스, 해리 헬름에게 감사를 전한다.
원고를 완성하고 책으로 출판하기까지의 모든 과정에서 능력을 십분 발휘한 두르리 밀러 앤 어소시에이트의 섀넌 마빈과 얀 밀러 리히 에이전트에게도 감사한다.
강한 직업의식과 쾌활한 성격, 빠른 작업 속도로 책에 생기를 불어넣은 진정한 문장가 웨스 스미스에게도 특별한 감사를 전한다.
이 책에는 여러 친구와 교인 그리고 내가 만난 사람들과 나눈 이야기가 많이 실려 있다. 일부는 사생활 보호를 위해 가명을 사용했다. 그들의 이야기가 없었다면 이 책이 이만큼 풍성해지지 못했을 것이다. 그들의 참여와 지지에 감사를 표한다. 또한 책에 등장하는 몇몇 사람은 내가 직접 만난 일이 없지만 도움을 준 모든 이에게 경의를 표한다.
목사의 아들로 태어나 역시 목사가 된 나는 그동안 수많은 설교와 연설을 들었다. 그래서 정확한 출처를 기억하지 못하는 경우도 더러 있다. 내 인생에 영향을 끼치고 감동을 준 모든 이에게 감사를 표한다. 이 책을 펴낸 목적은 내가 받은 복을 사람들에게 전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데 있다.
챔피언스 네트워크에 속한 미국의 모든 목회자에게도 감사한다. 특히 캘리포니아 주 어빈에 있는 라이프처치 필 먼시 회장과 부인 지니 먼시에게 감사한다.
레이크우드 교회 직원들에게도 많은 빚을 졌다. 하나님의 집을 섬기는 직원들 덕분에 나는 매일이 즐겁고 행복하다. 레이크우드 교회 교인들에게도 감사한다. 그들의 삶은 내게 축복이고 그들의 이야기는 내게 영감을 주며 그들이 보여준 충성은 내 겸손을 일깨운다. 넉넉한 후원으로 도움이 필요한 이들에게 희망을 전하게 해준 미국과 전 세계 수천 명의 후원자에게 진심 어린 감사를 표한다. 텔레비전과 인터넷, 팟캐스트를 통해 레이크우드 교회 예배를 시청하는 전 세계 수백만 교우에게도 감사한다. 나는 그들 한 사람 한 사람이 레이크우드의 소중한 가족이라고 생각한다.
감사하게도 현명하고 재능 있는 내 가족이 이 사역을 기쁘게 함께하고 있다. 동생 폴과 제수씨 제니퍼, 여동생 리사와 매제 케빈, 처남 돈과 처남댁 재클린에게 감사한다. 우리에게 늘 영감을 주고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행복하고 기쁘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어머니 도디 오스틴에게도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 일러두기
본문에 인용한 성경은 대한성서공회에서 펴낸 개역개정을 따랐으며, 유진 피터슨의 《메시지》를 인용할 때는 따로 표기했습니다. 본서에서 인용한 《메시지》 한국어판 저작권은 도서출판 복있는사람의 소유로 허락을 받고 사용했습니다.
존은 아흔두 살로 눈은 침침하지만 정신만큼은 또렷한 노신사다. 아내 엘리너가 주님 품으로 가자 존은 더욱더 정신을 차리려 노력했다. 그러자니 아무래도 혼자 사는 건 무리일 듯했다. 결국 그는 환경이 좋은 복지시설에 들어가기로 결정했다. 이삿날 아침, 존은 여덟 시까지 모든 준비를 마쳤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단정하게 빗어 넘긴 머리에 말쑥하게 면도한 얼굴은 어디 하나 흠 잡을 데가 없었다.
집 앞에서 존을 태운 택시기사는 덤덤한 표정으로 그를 복지시설에 데려다주었다. 그런데 평소에 하던 습관대로 약속시간보다 일찍 도착하는 바람에 존은 방으로 안내해줄 직원, 미란다가 나올 때까지 한 시간 넘게 기다려야 했다. 이윽고 존이 둔탁한 지팡이 소리를 내며 복도를 따라 걸음을 옮기자, 미란다는 그가 앞으로 지낼 방이 어떻게 생겼는지 이모저모 설명했다. 커다란 창문이 있어서 햇볕이 잘 들고 편안한 소파와 멋진 책상도 있다고 했다. 미란다가 한참 이야기를 늘어놓자 존이 도중에 말을 끊었다.
“맘에 듭니다. 맘에 들어요. 맘에 든답니다.”
그 말에 미란다가 웃음을 터트리며 말했다.
“선생님, 아직 방을 보지도 않으셨잖아요. 잠깐만 기다리세요. 곧 보여드릴게요.”
존이 말했다.
“아니요, 그럴 필요 없습니다. 그 방이 맘에 들지 아닐지는 가구의 배치와 상관이 없답니다. 내 마음이 어떤가에 달려 있죠. 행복은 내가 선택하는 겁니다.”
행복은 선택이다.
지혜로운 노신사, 존의 말대로 행복은 선택이다. 아침에 일어날 때 우리는 그날을 어떤 날로 만들지 선택할 수 있다. 기분 좋은 날이 될지, 기분 나쁜 날이 될지는 우리의 선택에 달려 있다. ¤ ¤
행복을 선택하라
이 책을 펴낸 목적은 매일, 매순간 행복을 선택하도록 돕는 데 있다. 우리 앞에 어떤 시련이 닥치든, 짓누르는 것이 무엇이든 거기에 어떻게 반응할지는 우리 스스로 선택하는 것이다. 인생을 어떻게 살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전적으로 자신에게 달려 있다. 환경이 아니라 선택에 달려 있다는 뜻이다.
에이브러햄 링컨은 이렇게 말했다.
“사람은 행복하게 살기로 마음먹은 만큼 행복하다.”
최근에 링컨이 듣는다면 꽤 흐뭇해할 만한 연구 결과가 나왔다. 연구에 따르면 금요일에 행복이 10퍼센트 늘어난다고 한다. 왜 그럴까? 주말이 다가온다는 생각에 신이 나서 더 행복하게 살기로 마음먹기 때문이다. 금요일이 되면 사람들은 인생을 더 즐길 결심을 한다.
나는 매일을 금요일로 만들라고 권하고 싶다. 매일 행복해져라. 주말이나 특별한 일이 있을 때 혹은 휴가를 얻었을 때뿐 아니라 매일 행복을 선택하라. 사고방식을 조금만 바꾸면 월요일에도 금요일만큼 행복해질 수 있다. 성경은 “이 날은 여호와께서 정하신 것이라”(시 118:24)라고 말한다.
여기에서 ‘이 날’은 월요일, 화요일, 수요일 등 일주일의 모든 날을 의미한다. 추적추적 비가 오는 날에도, 고달프게 야근해야 하는 날에도 그리고 귀찮은 설거지를 해야 할 때도 우리는 행복할 수 있다.
매일 행복하게 살기로 마음먹는 게 어떨까? 혹시 이런 말을 들어보았는가?
“TGIF. 하나님 감사합니다. 드디어 금요일이에요!”
이제부터는 이렇게 해보자.
“TGIM. 하나님 감사합니다. 드디어 월요일이에요.”
“TGIW. 하나님 감사합니다. 드디어 수요일이에요.”
“TGIS. 하나님 감사합니다. 드디어 일요일이에요.”
또 다른 연구에 따르면 특히 월요일에 심장마비가 많이 일어난다고 한다. 월요일은 으레 스트레스가 쌓이는 날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 탓이다. 사람들은 월요일 아침마다 우울해한다. 월요일 아침, 잠자리에서 일어날 때 푹 가라앉은 소리가 마음을 두드린다.
‘오늘은 힘든 날이 될 거야. 긴 한 주가 되겠지. 길도 꽉 막힐 거야. 해야 할 일이 산더미야. 월요일 아침은 너무 우울해.’
이처럼 부정적인 생각이 마음에 들어오려고 문을 두드릴 때, 절대로 문을 열어주지 마라. 대신 이렇게 말하라.
“고맙지만 됐어. 이미 내 마음엔 다른 생각이 들어왔어. 전능하신 하나님, 우주의 창조주이신 하나님이 내게 한 손 가득 기쁨을 보내셨거든. 오늘은 아주 멋진 날이 될 거야!”
마음을 이렇게 정하면 월요일 아침이 더 이상 우울하지 않다. 이제 월요일 아침마다 다음과 같이 말하라.
“오늘 나는 웃게 될 거야. 기쁜 일이 생길 거야. 하나님의 은총을 받을 거야. 승리할 거야.”
때론 다른 날보다 유난히 견디기 힘든 날이 있다. 그러나 마음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고쳐먹으면 금요일이 오기만 학수고대하며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이를 악물고 견딜 필요가 없다. 긍정적인 마음자세로 살아갈 때 비로소 인생을 즐길 수 있다.
믿음은 항상 현재형이고 우리에게는 이런 자세가 필요하다.
“지금 살아 있어서 정말 신나. 오늘 숨을 쉬는 게 즐거워. 가족과 건강, 기회가 있어서 가슴 벅차게 기뻐. 지금 이 순간 내가 행복해야 할 이유가 참 많아.” ¤ ¤
하루하루 축하하고 기뻐할 권리
미국 독립선언문에 따르면 창조주 하나님은 우리 각자에게 생명과 자유의 권리 그리고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주셨다. 최근에 영국의 데이비드 카메론 총리는 국민총생산(GDP)에만 집중할 것이 아니라, 국민의 전반적인 복지(GWB, General Well-Being)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 인터뷰에서 카메론은 “행복은 돈으로 측정하거나 시장에서 거래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그것은 환경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문화수준이 얼마나 높은가, 무엇보다 관계가 얼마나 돈독한가에 달린 것이죠”라고 말했다.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이루어진 한 연구에서는 인생의 목표와 선택이 몸의 화학작용이나 유전자 구성 못지않게 혹은 그보다 더 크게 행복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행복의 절반은 생물학 이외의 요소에 따라 결정된다고 밝힌 연구 결과도 있다. 10퍼센트는 삶의 환경, 40퍼센트는 인생을 살아가면서 우리가 내리는 결정이 좌우한다는 얘기다.
행복하게 사는 건 선택에 달려 있다. 오늘을 즐기겠다고 마음먹어라. 올해를 행복하고 번성 혹은 승리하는 해로 만들겠다고 다짐하라. 물론 차질이 생길 수도 있고 상황이 바뀔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런 변화가 마음까지 바꾸게 해서는 안 된다. 행복하게 살겠다고 마음먹은 것을 계속 지켜라.
우리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느냐, 무엇이 있고 없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마음을 어떻게 정하는지, 어떤 선택을 하는지가 중요하다. 내 딸이 어릴 때 나는 아침에 일어나면 딸아이가 있는 방으로 갔다. 알렉산드라는 내가 오는 소리를 듣고 좋아서 펄쩍펄쩍 뛰었다. 그리고는 팔다리를 활짝 벌리고 내게 매달려 입을 맞추었다.
아이는 새로운 날이 밝았다는 사실에 마냥 행복해했다. 눈을 뜨고 또 신나는 하루를 맞이했음에 기뻐했다. 알렉산드라가 그토록 신이 난 이유는 뭘까? 하나님은 바로 그런 행복과 기쁨을 우리 모두에게 넣어주셨다. 그러니 우리가 새롭게 찾아오는 하루하루를 축하하고 기뻐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루하루가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다.
나이가 들고 여러 가지 문제에 짓눌리다 보면 더러 마음이 가라앉을 때가 있다. 그때마다 하루하루가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라는 사실을 떠올려야 한다. 오늘 하루는 한 번 지나가면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 비관하고 낙심하고 성질부리고 토라지면 그날 하루를 허비하는 셈이다. 해마다 불행해하며 세월을 낭비하는 이들이 있다. 사람들은 남에게 홀대를 받아서, 바라던 것을 얻지 못해서, 기대보다 목표가 더디게 이루어져서 불행해하며 한 해를 낭비한다.
나는 단 하루도 허투루 쓰지 않기로 마음을 정했다. 덕분에 하나님이 선물로 주신 하루하루를 기쁨과 즐거움 속에서 보낸다. ¤ ¤
승리를 준비하라
하루를 시작할 때 우리는 승리를 준비할 수도 있고 패배를 준비할 수도 있다. 그러니 아침에 일어날 때면 항상 마음을 바르게 조율해야 한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근심에 사로잡힐 수도 있다. ‘회사에 가기 싫어’, ‘아이들 챙기는 것도 귀찮아’, ‘온통 문제투성이야’ 등 이런저런 생각에 기분이 가라앉을 수 있다.
걱정스런 생각이 머릿속을 휘젓게 놔두면 그날 하루를 엉망으로 만들 채비를 하는 셈이다. 이는 자신의 믿음을 잘못된 방향으로 이끄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런 생각이 들 때는 얼른 마음을 바꿔 이렇게 말하라.
“오늘은 아주 멋진 날이 될 거야. 뭔가 좋은 일이 생길 거야. 하나님이 내게 은총을 베푸실 거야. 오늘 새로운 기회와 거룩한 만남, 놀라운 돌파구를 찾게 될 거야.”
우리가 생각을 바꿔 승리와 도약, 회복을 준비하면 하나님은 천사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다.
“들었느냐? 저들이 내 선한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경기가 어려운 와중에도 굴하지 않고 번성하길 바라고 있다. 건강검진 결과를 듣고도 낙심하지 않고 병이 나을 거라고 기대하고 있다. 지금 당장 손에 쥔 것이 없는데도 낙담하지 않고 꿈이 이뤄질 거라고 믿고 있다.”
믿음을 잃지 않고 뭔가 좋은 일이 일어나길 기대하며 하루를 시작할 때, 하나님은 천사들에게 “가서 저들을 위해 일하라”고 말씀하신다. 우리에게 기회를 주고 선한 사람들을 만나게 해주며 올바른 문을 열어주신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내셔서 놀라운 일을 행하시는 방법이다.
아주 사소한 것 한두 가지만 바꿔도 인생에서 놀라운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다. 그뿐 아니라 힘이 생기고 삶을 대하는 태도가 좋아지며 생산성이 높아진다. 새로운 기회가 열리고 새로운 친구도 만나게 된다. 아침에 일어나 실패할 채비를 하는 대신 승리할 준비를 하면, 그동안 기도해온 돌파구를 찾게 될 것이다. 도약을 준비하라. 하나님의 은총을 받을 채비를 하라.
아침마다 먼저 기선을 제압해야 한다. 그냥 되는 대로 내버려두면 자연스럽게 부정적인 마음이 스며들고 만다. 아침에 침대에 누워 어제 했던 실수와 앞으로 생길 문제를 떠올려본 적 있는가? 그러한 생각은 마음을 점령해 그날 하루를 엉망으로 만들려는 원수들이다.
덫에 걸리지 마라. 성경은 “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골 3:2)고 말한다. 상황을 앞서 주도하라. 공세를 펴라. 아침에 일어날 때 다윗이 그랬던 것처럼 다음과 같이 말하라.
“이 날은 주가 지으신 날이다. 내 기분이 어떻든 경기가 어떻든 건강검진 결과가 어떻든 기뻐하고 즐거워하리라. 오늘 하루를 행복하게 살리라.”
생각을 바꿀 때 사실은 이렇게 외치는 셈이다.
“나는 오늘 누구에게도 기쁨을 빼앗기지 않을 거야. 일에 차질이 생겼다고 낙심하지 않을 거야. 문제와 실수에 집착하지 않을 거야. 오늘 하루를 즐거움과 기쁨 속에서 보내기로 마음먹었어.”
내 주위에는 항암 치료를 받고 있는 지인이 한 명 있다. 젊고 재능이 많은데다 운동신경이 발달한 그가 먼저 얘기를 꺼내지 않았다면, 나는 아마 그가 아프다는 것도 몰랐을 것이다. 나는 단 한 번도 그가 불평하는 소릴 들어본 적이 없다. 그는 늘 다정하고 긍정적인 태도로 인생을 즐기며 살아간다. 한번은 내가 힘든 시간을 보내면서도 어쩌면 그렇게 바른 태도를 유지할 수 있느냐고 물어본 적이 있다. 그는 “아침에 일어날 때 나 자신에게 물어요. ‘오늘 우울하게 보내고 싶어? 아니면 행복하게 살고 싶어?’ 물론 나는 행복하게 사는 쪽을 선택합니다”라고 말하며 밝게 웃었다.
행복하게 살고 싶다면 의도적으로 행복해지려고 노력해야 한다. 아침에 일어날 때 그날이 어떤 날이 될지 잠자코 기다려서는 안 된다. 그날을 어떤 날로 만들지 결정하라. 시편 30편 5절에서 성경은 아침에 기쁨이 온다고 말한다. 아침에 일어날 때마다 하나님은 기쁨을 속달로 보내신다. 문을 열고 하나님이 보내신 기쁨을 받아들이려면 믿음으로 일어나 “오늘은 멋진 날이 될 거야”라고 외쳐라. 그러면 하나님이 보내신 선물이 내 손에 들어온다!
문제는 아무리 두드려도 문을 열지 않는다는 데 있다.
“어서 문 좀 열려무나. 너도 행복해질 수 있단다. 힘을 낼 수 있어. 너도 인생을 즐길 수 있단다.”
이런 소리를 듣고도 몇 달, 몇 년이나 대답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나는 달려 나가 문을 열기로 마음을 정했다. 그래서 매일 아침 일어날 때마다 외친다.
“아버지, 오늘도 멋진 하루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 전 행복할 거예요. 오늘 하루를 즐길 거예요. 누군가의 인생을 환하게 밝혀줄 거예요. 하나님이 주시는 기쁨의 선물을 받아들이기로 했어요.” ¤ ¤
행복의 조건을 이미 가지고 있다
우리는 대부분 행복해지는 데 필요한 것을 이미 가지고 있다. 다만 그것을 깨닫지 못할 뿐이다. 예를 들어 보자. 혹시 지금 하는 일에서 행복을 느끼지 못하고 있는가? 만약 그렇다면 직장을 그만두고 수입 한 푼 없이 몇 달을 지내보라. 그러면 그 일을 다시 하게 되는 것만으로도 무척 행복할 것이다. 우리는 행복해지는 데 필요한 것을 이미 가지고 있다. 다만 그것을 깨닫지 못할 뿐이다.
행복해지는 데 필요한 것을 이미 가지고 있다. 다만 그것을 깨닫지 못할 뿐이다.
아주 건강한데도 전혀 행복하지 않은 사람들이 있다. 물론 행복할 수 없는 이유는 늘 있게 마련이다. 사람들은 더 큰 집을 갖지 못해, 더 좋은 직장으로 옮기지 못해 불행해한다. 그러나 건강을 잃었다가 다시 얻으면 그것만으로도 엄청난 기쁨을 느끼게 된다. 다시 말하지만 우리는 행복해지는 데 필요한 것을 이미 가지고 있다.
부부를 상담하다 보면 아내는 남편에 대해 불평하고 남편은 아내에 대해 불평한다.
“그 사람에게는 이러저러한 게 너무 많아요.”
“그 사람에게는 이러저러한 게 너무 부족해요.”
그러다가 배우자가 갑자기 사라져 몇 달간 혼자 지내면, 이야기를 나눌 상대나 저녁을 함께 먹을 사람이 없으면, 그토록 ‘늙어빠진 영감 혹은 마누라’라고 타박하던 배우자를 되찾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해한다.
인생을 긍정적인 시각으로 보려고 노력하라. 우리는 행복해지는 데 필요한 것을 이미 가지고 있다. 건강과 직업, 가족 그리고 기회가 있다.
내가 아는 부부 중에 집에 대해 끊임없이 불평하는 이들이 있었다. 집이 작고 시내에서 너무 멀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부부는 해마다 불만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러다가 경기가 나빠지면서 불행히도 수입이 줄어들었고 급기야 집을 잃을 처지에 놓이고 말았다. 은행에서 집을 압류하기 직전, 두 사람은 간신히 돈을 빌려 대출금을 갚은 덕분에 집을 지킬 수 있었다.
지금 두 사람은 그 집이 세상에서 가장 멋진 집이라고 생각한다. 마치 완전히 새로운 집이라도 얻은 것처럼 자랑을 한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단지 두 사람의 시각이 바뀌었을 뿐이다. 사람들은 흔히 말한다.
“제길, 오늘 회사에 나가야 해.”
생각을 바꿔라. 다음과 같이 말해야 한다.
“오늘 할 일이 있어. 그래, 내게는 직업이 있어. 기회가 있어. 이것만으로도 하루 종일 웃을 이유가 충분해.”
이런 말은 또 어떤가.
“아이들을 돌봐야 해. 온종일 요리하고 청소하고 빨래하는 게 내 일이야.”
생각을 바꿔 이렇게 말하라.
“돌볼 아이들이 있어. 이 아이들은 하나님이 보내주신 선물이야. 아주 특별한 보물이지.”
인생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거의 없다. 우리는 보통 “세금을 내야 한다”고 말한다. 사실은 “세금을 낼 의무가 있다”고 말해야 옳다. 세금을 낼 의무가 있다는 것은 돈을 벌었다는 의미다. 하나님이 세금을 낼 기회를 주신 것이다.
“아이고, 오늘 식료품점에 들러야 해.”
이 말은 음식을 먹을 만큼 건강하다는 뜻이다. 그러니 “식료품점에 갈 일이 있어”라고 말하는 것이 옳다.
“세상에나, 꽉 막힌 도로에서 운전대를 잡고 있어야 해.”
이 말은 차를 소유하도록 하나님이 복을 주셨다는 의미다. 그러니 “내게는 운전할 차가 있어”라고 말하는 것이 옳다.
“아내에게 줄 밸런타인데이 선물을 사야 해.”
이 말은 하나님이 아내를 주셨다는 뜻이다. 즉 아내에게 줄 선물을 사야 하는 게 아니다. 단지 선물을 줄 아내가 있을 뿐이다. 물론 선물을 사지 않으면 당신도 행복하지 않을 것이다. 가정에서 엄마가 행복하지 않으면 누구도 행복할 수 없으니 말이다! ¤ ¤
불행 제조업자
언젠가 30년 넘게 벽돌공으로 일해 온 두 남자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다. 한 남자는 늘 부정적인데다 의욕이 별로 없고 불평이 끊이지 않았으며 일하러 가는 걸 죽기보다 싫어했다. 또 다른 남자는 그와 정반대였다. 그는 매일 일하는 걸 즐거워했고 삶에 대한 열정과 믿음이 충만했다.
그들이 시내에 거대한 고층 건물을 짓고 있을 때의 일이다. 어느 날 한 친구가 건설현장에 들러 두 사람에게 무얼 하고 있느냐고 물었다. 첫 번째 남자가 대답했다.
“그냥 벽돌 쌓고 있지 뭐. 30년이나 이 일을 하고 있자니 지겨워 죽겠어. 벽돌 위에 벽돌을 올리고 또 올리고……, 그런 거지.”
그 친구는 두 번째 벽돌공에게도 똑같은 질문을 했다. 그러자 두 번째 벽돌공은 환한 얼굴로 대답했다.
“우리는 아주 웅장한 고층 건물을 짓고 있는 중이야. 사상 최고 높이의 건물이 될 거야. 내가 이렇게 아름다운 건물을 짓고 있다니! 정말 신나는 일이야.”
같은 일을 하면서 한 사람은 불행해하고 또 한 사람은 행복해한다. 단지 일을 바라보는 시각이 다른 것뿐인데, 누구는 불행을 느끼고 누구는 행복을 느낀다. 첫 번째 벽돌공처럼 그냥 벽돌을 쌓을 수도 있고 두 번째 벽돌공처럼 아름다운 고층 건물을 지을 수도 있다. 선택은 자신의 몫이다. 매일 죽기보다 싫다는 표정으로 출근해서 출근부에 도장을 찍고 대충대충 일할 수도 있다. 아니면 열정을 가득 안고 출근해서 이 세상을 좀 더 아름답게 만들고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며 최선을 다해 일할 수도 있다.
불행은 대부분 우리 자신이 만든다. 우리는 잘된 일보다 잘못된 일을 먼저 본다. 우리가 가진 것보다 갖지 못한 것을 먼저 본다. 하루하루를 기뻐하지 않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선물에 감사하지도 않는다.
몇 년 전, 기차 여행을 하던 어떤 남자가 크게 성공한 부부를 만났다. 여행자는 값비싼 옷에 보석을 걸친 그 부부와 마찬가지로 일등석에 타고 있었다. 객실은 아주 편안했다. 그런데 값비싼 옷을 휘감은 부인은 객실에 들어서자마자 불평을 쏟아냈다. 그녀는 객실 온도가 알맞지 않다고, 조명이 침침하다고, 음식이 맛이 없다고, 좌석이 더럽다고 끊임없이 불평했다. 탓에 그곳에 있던 다른 사람들까지도 기분이 푹 가라앉았다.
기차를 타고 가는 동안 여행자는 그 부인의 남편과 대화를 나눴다. 여행자가 무슨 사업을 하느냐고 묻자 그는 자동차 사업을 하는데 하나님이 복을 주신 덕분에 사업이 아주 잘된다고 대답했다. 그러면서 한마디 덧붙였다.
“제 아내는 지금 제조업을 하고 있답니다.”
여행자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참 이상한 일이군. 저 부인은 품위 있고 옷도 잘 차려입었는데 왜 저렇게 불평을 쏟아내는 것일까?’
호기심이 생긴 여행자가 물었다.
“부인께서는 어떤 걸 만드시나요?”
남편이 빙긋이 웃으며 대답했다.
“아, 네. 제 아내는 불행을 만든답니다. 그래서 어딜 가든 늘 불행하지요.”
혹시 당신도 불행 제조업자는 아닌지 곰곰이 생각해보라. 만약 그렇다면 불행을 만드는 일에서 이제 그만 손을 떼라. 뭐가 잘못되었는지 두리번거리는 짓은 그만둬라. 잘못을 찾아내는 습관을 버리고 좋은 점을 찾아보라. 이미 가지고 있는 것에 감사하라. 하나님이 주신 오늘(present)이라는 선물(present)에 감사하라. ¤ ¤
영원히 머무는 구름은 없다
며칠 전 아침 일찍 집을 나서던 길에 새들이 경쾌하게 노래하는 소리를 들었다. 마치 큰 축제라도 열린 듯 작은 새들이 짹짹거리면 큰 새들이 멋들어진 가락을 만들었다. 나는 새들에게 말하고 싶었다.
“얘들아, 최근에 신문을 읽어봤니? 작년에 주식시장이 어땠는지 알아? 그렇게 노래나 하면서 흥청망청 즐길 때가 아냐. 대체 뭐니? 마치 모든 게 잘될 거라는 듯이 행동하고 있잖아.”
새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새들은 하늘에 계신 아버지가 만물을 주관하고 계시다는 비밀을 안다. 하나님이 자기들을 돌봐주시기로 약속했다는 걸 안다. 그래서 상황이 어떠하든 상관없이 노래하며 인생을 즐긴다. 바로 이것이 하루를 시작하는 방법이다.
아침에 일어나 마음을 다해
찬송을 불러라.
아침에 일어나 마음을 다해 찬송을 불러라. 기쁨으로 새로운 하루를 맞이하고 그날을 즐기겠노라고 다짐하라. 사도 바울도 믿음 안에서 행복해하고 즐거워하며 “항상 기뻐하라”(살전 5:16)고 말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떠한가? 얼마나 오래 기뻐할 수 있는가? 얼마나 오래 웃을 수 있는가? 사람들이 우리를 잘 대접해주는 동안만? 기분이 좋을 때만? 경기가 좋을 동안만? 아니, 성경은 우리에게 “항상 기뻐하라”고 말한다. 모든 일이 술술 풀릴 때든 앞뒤가 꽉 막혀 힘들 때든, 햇볕이 쨍쨍하든 비가 오든 늘 기뻐하라는 말이다.
먹구름이 하늘을 뒤덮고 인생이 우울하게 느껴질 때도 먹구름 바로 위에는 태양이 빛나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지금 당장은 태양이 눈에 보이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해서 저 하늘에 태양이 없는 것은 아니다. 단지 먹구름이 태양을 잠시 가리고 있을 뿐이다. 구름은 잠깐 머물다 지나간다. 영원히 머무는 구름은 없다. 우리 인생에서 태양은 다시 빛을 발할 것이다.
그러니 그동안 기쁨을 잃지 마라. 항상 기뻐하라. 먹구름 한 조각이 인생을 캄캄하게 만들도록 놔두지 마라. 비는 의로운 자에게든 불의한 자에게든 똑같이 내린다. 누구나 예기치 못한 일에 실망할 수도 있고 부당한 상황에 처할 수도 있다. 또한 시험과 시련, 유혹을 만나기도 한다. 하지만 기억하라. 시험을 통과하면 반드시 보상이 따른다. 온갖 어려움을 극복하면 그만한 대가가 주어진다. 활짝 웃고 마음을 다해 노래하면서 역경을 이겨낼 경우 그 뒤에 숨어 있던 보상을 받게 된다.
어려운 상황에 놓이면 우리는 쉽게 낙담한다. ‘사업이 제대로 풀리지 않아 기분이 엉망이야’, ‘건강검진 결과가 좋지 않아서 속상해’, ‘소송 때문에 걱정이야’ 등 곤란한 상황이 닥치면 마음이 부정적인 쪽으로 기운다. 어려운 시기에 부정적인 쪽으로 기우는 것은 인간의 본성이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에게 정반대로 말한다.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약 1:2)
말도 안 된다고?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아마 이렇게 되물을 것이다.
“그러니까 한창 어려운 시기에 기뻐하고 즐거워하라는 말이에요?”
바로 그거다. 기쁨을 잃는 순간 힘도 빠지기 때문이다. 어려운 시기일수록 그 어느 때보다 많은 힘이 필요하고 힘은 기쁨에 비례한다. 재정 위기에 처했을 때, 중병에 걸렸을 때, 소중한 관계가 어긋났을 때, 한창 반항심 많은 아이들을 돌봐야 할 때, 우리에게는 그 어느 때보다 힘이 필요하다. 이때 부정적인 생각에 빠져 낙심하고 억울해하면, 믿음 위에 굳게 설 힘도 얻지 못하고 믿음의 선한 싸움에 임하지도 못한다.
모든 시험 뒤에는 보상이 따른다는 사실을 알면 계속 기뻐할 수 있다. 모든 좌절과 실패 뒤에는 기회가 기다리고 있다. 오욕스러운 순간이 지나가면 그만한 대가가 주어진다. 지금 겪는 어려움은 우리를 무너뜨리려고 거기에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를 더 높은 곳으로 이끌기 위해 거기에 있는 것이다. 그러니 늘 다음의 내용을 상기하라.
“아무리 어렵고 힘들어도, 지금 당장은 이해할 수 없어도, 설사 이번 일이 부당하기 짝이 없어도, 나를 방해하려고 이런 일이 생긴 게 아니라는 걸 알아. 긍정적인 자세로 항상 기뻐할 거야. 이 곤경은 하나님이 나를 위해 준비하신 일이야. 곤경이 지나가면 하나님이 나를 더 높은 곳으로 이끌어주실 거야.” ¤ ¤
역경을 이기는 비결
불평하면 그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부정적인 자세로는 계속 그 자리에 머물 수밖에 없다. 상황을 비관하면서 불평을 늘어놓을 경우 시험을 통과할 수 없다. 시험 뒤에는 보상과 도약이 기다리고 있지만 시험을 온전히 기쁘게 받아들이지 않으면 기회는 날아가 버리고 만다. 그래도 아직 낙심하지 마라. 좋은 소식이 있다. 하나님이 다시 한 번 기회를 주실 것이다. 하나님께는 우리가 마땅히 있어야 할 곳으로 인도하실 능력이 있다. 누군가가 기분을 상하게 하면 이렇게 대응하라.
“언짢아하지 않을 거야. 온전히 기쁘게 여길 거야. 이게 시험이란 걸 알아. 이 시험을 통과하면 나는 한 단계 성장할 거야.”
사업이 마음대로 풀리지 않을 때는 투덜거리는 대신 온전히 기쁘게 여겨라. 자신에게 말하라.
“이 어려움은 지나갈 거야. 하나님이 내게 필요한 것을 모두 채워주실 걸 알아.”
실망할 일이 생기면 마음 저 밑바닥에서 부정적인 감정이 스멀스멀 올라와 낙심하게 된다. 이때 자기연민에 빠지기 십상이지만 부정적인 감정에 굴복하지 말고 스스로 힘을 북돋워야 한다.
“일어서! 강해져! 눈앞에 좋은 날이 기다리고 있어.”
이것이 시험을 통과하는 길이다. 시험에 놓일 때 온전히 기쁘게 여기는 비결이다.
고난이 닥쳐 괴로운 심정이 당신을 삼키려 해도 놀라지 마라. 마음속에서 ‘잘될 리 없어. 몸이 좋아질 리 없어. 이미 끝났어. 이제 끝이야’라는 소리가 들려와도 놀라지 마라. 그 거짓말에 속지 마라. 감정이 이끄는 대로 끌려가면 안 된다. 부정적인 감정이 말을 건네도록 내버려두지 말고 먼저 얘기하라.
아침에 일어났는데 나쁜 생각이 ‘오늘도 엉망인 하루가 되겠군’ 하고 말을 걸면,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맞아, 엉망이야. 기분이 좋지 않아”라고 대꾸하지 마라. 그럴 때는 오히려 거꾸로 말하라. 큰소리로 믿음을 선언하라.
“오늘은 멋진 날이 될 거야. 몸도 좋아질 거야. 하나님이 건강을 회복하게 해주실 거야.” ¤ ¤
믿음은 항상 현재형이다
다윗 왕이 꼭 그렇게 했다. 고난의 시기를 지나는 동안 낙심이 다윗의 영혼을 휘감자 그는 우울하고 절망스러웠다. 그때 다윗은 주님께 소망을 두고 자신에게 말했다.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시 43:5)
그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다윗아, 무슨 일이니? 왜 낙심하니? 왜 기쁨을 잃었니? 하나님이 여전히 만물을 주관하고 계신데. 하나님이 널 위해 좋은 것을 준비하고 계신데. 다시 네 소망을 주님께 둬라.”
낙담이 당신을 덮치려 할 때 다윗이 했던 것처럼 하라. 거울을 보고 말하라.
“날 봐. 힘을 내. 마음을 새롭게 해. 우린 넘어진 자리에 그대로 주저앉아 있지 않을 거야. 계속 쓰러져 있지 않을 거야. 주님께 소망을 둘 거야.”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암울한 일이 너무 많다. 늘 나쁜 소식이 쏟아져 나오기 때문에 주의하지 않으면 우울의 늪에 빠지기 십상이다. 낙담은 우리를 짓눌러 열정을 빼앗고 기쁨을 말려 죽인다.
“알고 있어. 하지만 상황이 너무 나빠.”
이럴 때 성경은 다음과 같이 하라고 말한다.
“찬송의 옷으로 그 근심을 대신하라.”(사 61:3)
근심이 마음을 휘감고 “앞으로 좋은 일은 하나도 없을 거야. 좋은 날은 이미 다 지나갔어”라고 말할 때, 첫 번째로 해야 할 일은 근심의 옷을 벗는 것이다. 자기연민의 옷을 벗어 던져라. 절망의 옷을 벗고 찬송의 새 옷을 입어라.
하나님이 우리 인생에 이미 행하신 일에 감사하라. 과거에 거둔 승리에 대해 하나님께 감사하라. 우리의 손을 잡고 여기까지 인도하신 하나님께 감사하라. 그리고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라. 우리 앞에 예비해두신 승리에 미리 감사하라. 하나님이 지금 새로운 문을 열고 계심에 감사하라. 전환점이 될 상황을 마련하신 하나님께 감사하라. 앞으로 베푸실 하나님의 은총에 감사하라.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넘어진
자리에 주저앉아 낙담할 수는
없다.
그렇게 하면 마음속에 새로운 기쁨이 차오른다. 믿음이 자라나는 게 느껴진다. 이때 비로소 우리는 정신적 의미에서 피해자가 아니라 승리자가 된다. 내가 아는 한 찬송과 낙담은 동시에 일어날 수 없다.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넘어진 자리에 주저앉아 낙담할 수는 없다. ¤ ¤
찬송의 옷을 입어라
찬송의 옷을 입으면 낙담은 자취를 감춘다. 그런데 가끔은 찬송하며 감사하고 싶지 않을 때도 있다. 마음의 옷깃을 여미고 싶지 않을 때가 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찬송의 제사를 바치라고 말씀하시는 것도 그 때문이다. 하나님은 이것이 항상 쉬운 게 아니라는 걸 아신다. 그래서 가끔 우리는 찬송하라는 말을 완강히 거부하며 이렇게 말하기도 한다.
“하나님, 그러고 싶지 않아요. 그럴 수 없어요. 전 지쳤어요. 외롭고 낙심천만이어요.”
그러다 어느 순간 생각을 바꾼다.
“하지만 하나님, 하나님이 지금도 만물을 주관하고 계시다는 걸 알아요. 하나님이 선하시다는 걸 알아요. 언제나 선하시다는 걸요. 하나님께 찬송을 드릴게요. 상황이 어떻든 하나님께 감사하기로 했어요.”
생각을 바꿔 찬송의 제사를 드릴 때 놀라운 일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성경은 우리에게 사도 바울과 실라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복음을 전하다 옥에 갇힌 두 사람은 이른 아침부터 부당하게 매질을 당했다. 그러면 옥에 갇힌 두 사람이 한밤중에 무얼 하고 있었는지 기억하는가? 불평하고 있었는가, 아니면 자기연민에 빠져 있었는가? “하나님, 이건 너무 부당하잖아요. 오늘 대체 어디서 뭐 하고 계셨어요?”라고 말했는가?
두 사람은 하나님을 찬송하며 감사하고 있었다. 그들은 말했다.
“하나님, 우리에게 닥친 문제보다 하나님이 크심을 압니다. 하나님께서 지금도 이 모든 일을 주관하고 계심을 압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여기에서 능히 나가게 하실 수 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한밤중에 큰 지진이 일어났다. 동시에 감옥 문이 열리면서 그들의 발에 채워졌던 차꼬가 풀리고 바울과 실라는 자유로운 몸이 되었다. 이 일의 발단은 무엇인가? 바로 바울과 실라가 찬송의 제사를 드린 것이다.
모든 일이 잘 풀릴 때는 누구나 긍정적인 태도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다. 산 정상에 서면 누구나 기뻐하며 감사할 수 있다. 그렇다면 바닥에 떨어졌을 때도 하나님을 찬송하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암울하기 짝이 없는 소식이 매일 쏟아져도 아침에 일어나 승리를 준비하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하나님, 건강검진 결과가 좋지 않아도 저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하나님, 이 길이 제 길이 아니라는 게 밝혀졌어도 저는 하나님께 감사합니다”라고 말할 사람은 과연 얼마나 될까?
나는 당신이 이런 사람들 중 하나일 거라고 믿는다. 당신이 위대한 믿음의 소유자임을 믿는다. 당신의 믿음은 뿌리가 아주 깊다. 사실 불평할 수도, 낙담할 수도, 시비를 걸 수도 있지만 당신은 하나님을 찬송한다. 일이 잘못될 때조차 얼굴 가득 웃음꽃을 피우고 옳은 일을 한다.
“우리는 더 큰 승리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고 내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시야를 넓혀라. 하나님을 제한하지 마라. 인생에서 최고의 날은 아직 오지 않았다. 하나님은 깜짝 놀랄 만한 승리를 예비하고 계신다. 분명 그것을 아주 특별하게 드러내실 것이다. 지금 어려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면, 기억하라. 원수들은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위대한 일을 준비하고 계시다는 걸 알아챌 때 가장 힘겨운 싸움을 건다.
칠흑 같은 어둠 속을 걷고 있다면, 승리가 멀지 않았다는 뜻이다. 지금 원수들은 최후의 저항을 하고 있다. 낙심하지 마라. 불평하지 마라. 계속해서 찬송의 제사를 드려라. ¤ ¤
회복할 준비
구약의 선지자 예레미야가 말했다.
“유다 성읍들과 예루살렘 거리에서 즐거워하는 소리, 기뻐하는 소리, 신랑의 소리, 신부의 소리와 및 만군의 여호와께 감사하라, 여호와는 선하시니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다 하는 소리와 여호와의 성전에 감사제를 드리는 자들의 소리가 다시 들리리니 이는 내가 이 땅의 포로를 돌려보내어 지난날처럼 되게 할 것임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렘 33:10)
이 구절에서 내가 특히 좋아하는 부분은 ‘돌려보내어 지난날처럼 되게’ 하신다는 것이다. 기쁨이 충만할 때, 찬송의 제사를 드리는 법을 배울 때, 하나님이 은혜를 베푸시겠다고 말씀하고 계신다. 하나님께서 부정적인 상황을 바꾸실 것이다. 빼앗긴 것을 되돌리시고 지난날처럼 회복시키실 것이다.
하지만 불평하는 중에는 회복이 이뤄지지 않는다는 사실에 주목하라. 회복은 비관적으로 불평하는 마음에 찾아오지 않는다. 기뻐하는 소리, 즐거워하는 소리가 터져 나올 때 비로소 회복이 이뤄진다. 마음을 다해 노래하며 아침을 맞을 때 비로소 회복이 이뤄진다. 얼굴에 웃음꽃을 피우고 하루하루를 맞이하라. 언제나 일이 술술 풀리지 않을 수도 있다. 그래도 낙심하지 마라. 근심을 털어버리고 온전히 기쁘게 여겨라. 그럴 때 회복할 준비를 갖추게 된다.
하나님은 상황을 뒤집고 회복시키신다. 침체된 재정 문제도 뒤집으신다. 고군분투하는 사업도 뒤집으신다. 소송 문제도 우리를 위해 뒤집으신다. 우리를 치료하기 위해 건강 문제도 뒤집으신다. 그것뿐이 아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온전히 회복시키신다. 누군가의 잘못 때문에 우리가 잃어버린 수년의 세월도 회복시키신다. 파탄 직전에 이른 관계도 회복시키신다.
우리 안에서 즐거워하는 소리, 기뻐하는 소리가 터져 나오고 찬송의 제사가 그치지 않을 때 회복이 일어난다. 온전히 기뻐하는 법을 배워라. 문제를 만들지 않겠다고 다짐하지 마라. 오히려 문제 속에서도 계속 기뻐하겠다고 다짐하라. 마음을 바르게 조율하라.
우리 앞에 어떤 일이 펼쳐지든 기쁨을 잃지 마라. 찬송의 제사를 드리는 법을 배워라. 기뻐하는 소리, 즐거워하는 소리를 멈추지 않으면 주저앉아 좌절할 일은 없다. 하나님이 상황을 뒤집고 회복시키겠다고 약속하셨다.
기쁨이 충만할 때 우리는 어떠한 공격도 능히 견뎌내고, 어떠한 걸림돌도 능히 극복하며, 어떠한 원수도 능히 무찌를 힘을 얻게 된다. 나아가 하나님이 창조하신 본래의 모습을 찾게 되고 하나님이 주고 싶어 하셨던 모든 것을 얻게 된다. ¤ ¤
살다 보면 하루에도 몇 번씩 화내고 좌절하고 기분 상할 일이 생긴다. 계획에 차질이 생길 때도 있고 누군가가 사무실에서 예의 없이 행동할 때도 있으며, 한 시간 안에 끝내야 하는 일이 세 시간씩 걸릴 때도 있다. 인생은 온통 불편한 것 투성이다. 또한 언제나 방해물과 까다로운 사람들을 만나게 마련이다. 우리가 그 모든 상황을 통제할 수는 없다. 하지만 각각의 상황에 어떻게 반응하느냐는 순전히 우리의 몫이다.
우리가 그 모든 상황을 통제할
수는 없다. 하지만 각각의 상황에 어떻게 반응하느냐는 순전히
우리의 몫이다.
“인생은 우리에게 일어나는 일이 10퍼센트, 우리가 어떻게 반응하느냐가 90퍼센트”라는 말이 있다. 긍정적인 생각과 희망을 안고 하루하루를 맞이하라. 하나님이 베푸실 은혜를 기대하며 하루를 맞이하라. 그와 동시에 현실 감각을 잃지 않아야 한다. 우리가 계획한 대로 모든 것이 착착 진행되는 날은 거의 없다. 이 사실을 인정하라. 만약 일정이 틀어졌다고 스트레스를 받고 어떤 사람 때문에 맘이 상해 좌절하고 있다면 혹은 아이가 아침을 먹지 않는다고 화를 내고 있다면, 지금 당신은 힘을 낭비하고 있는 중이다.
계획을 세우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러나 하루를 시작하기 전에 그 계획을 하나님 앞에 내려놓고 말하라.
“하나님, 이게 오늘 제가 하려는 일이에요. 물론 하나님께서 모든 걸 주관하신다는 걸 알아요. 하나님께 제 계획을 맡깁니다. 오늘 제게 어떤 일이 닥치든 평안을 지킬 거예요. 하나님께서 제 걸음을 인도하시고 저를 위해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실 줄 알기 때문이에요.”
요즘에는 잘못된 인생관을 드러내며 살아가는 사람이 너무 많다. 그들은 모든 상황을 스스로 통제해야 한다고 여길 뿐 아니라, 모든 일이 자기 뜻대로 되지 않으면 행복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생각은 전혀 현실성이 없다. 이제부터라도 우리에게는 다음과 같은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오늘 하루를 멋지게 보내기 위해 꼭 내 뜻대로만 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오늘 하루를 행복하게 살기 위해 내가 세운 계획이 반드시 이뤄져야 하는 것은 아니다. 모든 사람이 나를 잘 대접해야만 인생을 즐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나는 이미 마음을 정했다. 어떤 일이 일어나든 나는 평안을 지키고 오늘 하루를 즐길 것이다.”
성경은 우리에게 “너희 기쁨을 빼앗을 자가 없으리라”(요 16:22)라고 말한다. 어떤 상황도 평안을 빼앗을 수 없다. 어떤 방해물도 열정을 빼앗을 수 없다. 다음에 화가 나고 마음이 몹시 상하면 스스로에게 물어보라.
“이게 정말 힘을 낭비할 가치가 있는 일인가?”
“알지도 못하는 사람이 내게 전화상으로 무례하게 구네. 그는 내가 기쁨을 내줄 가치가 있는 사람인가?”
“동료들이 나만 빼놓고 회식하러 갔네. 이게 내가 평안을 빼앗길 만한 일인가?”
때론 실패가 찾아올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이유는 뜻을 이루지 못했기 때문이 아니다. 그런 일들이 기쁨과 평안을 빼앗는 걸 막지 못한 탓이다. 화를 내고 마음에 상처를 입으며 낭비하기엔 인생이 너무 짧다. 주변 상황에 휘둘려 기쁨을 빼앗기면 낙심할 이유가 늘 생기게 마련이다.
“요즘 경기가 나빠서 그래.”
“주가가 하락해서 기분이 별로야.”
쓸데없는 곳에 힘을 낭비하지 마라. 하나님이 만물을 주관하고 계신다. 하늘 경제는 아무 탈 없이 잘 돌아가고 있다. 우리가 하나님과 가까이 지내는 한 모든 것이 잘될 것이다. 우리는 흔히 이렇게 말한다.
“올해 휴가도 취소해야 했어.”
“내 상사는 사이좋게 지내기가 힘든 사람이야.”
“이웃사람이 자꾸 내 신경을 건드려. 제발 그가 다른 데로 이사 가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있어.”
이제부터는 “하나님, 저를 변화시켜주세요”라고 기도하자. 나는 먼저 나를 변화시켜달라고 기도하지 않고는 누군가를 변화시켜달라고 기도하지 않는다. 설령 불쾌감을 유발하는 이웃이 이사를 갈지라도 다른 사람에게 기쁨을 빼앗기지 않는 원리를 터득하지 않으면 또 다른 불쾌감을 겪을 수 있다. 이사 간 사람보다 더 문제가 많은 이웃이 이사 올 수도 있지 않은가. ¤ ¤
구하는 것을 바꿔라
사도 요한은 우리에게 말한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요 14:27)
우리가 선택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에 주목하라. 사도 요한은 “내가 너희 주변 환경을 완벽하게 만들어주마. 그러면 너희는 행복해질 것이다”라고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렇게 말한다.
“지금 너희를 화나게 하는 일에 화를 내서는 안 된다. 사람들이 너희를 짜증나게 하고 도무지 변화될 줄 몰라도 그들 때문에 짜증내서는 안 된다.”
인생을 대하는 태도를 조금만 바꾸면 그런 상황에서도 행복해질 수 있다. 부정적인 사람들, 실망스럽고 불편한 일들이 기쁨을 빼앗아가게 놔두지 마라. 그런 것을 단호히 막으며 말하라.
“사랑하는 내 아이가 자꾸 신경을 긁어대지만 초연해질 거야. 이 상황이 나를 끌고 가게 놔두지 않을 거야. 성질이 못된 상사가 아무런 이유도 없이 나를 공격하지만 그가 내 하루를 망치게 놔두지 않을 거야.”
이것이 바로 힘을 낭비하지 않는 자세다. 이제부터는 삶을 즐기기로 마음먹어야 한다.
언젠가 한 여성이 시댁 식구 중에 마음을 몹시 언짢게 하는 사람이 있다고 토로한 적이 있다. 그는 그녀를 만날 때마다 날카롭게 공격하고 모욕을 준다고 했다. 탓에 그녀는 가족 모임이 있을 때마다 그의 말에 상처를 받았다. 그녀는 당연히 화가 났고 가족 모임에 갈 때부터 돌아올 때까지 내내 기분이 말이 아니었다. 더 이상 시댁 행사에 가고 싶지 않았던 그녀는 남편에게 말했다.
“당신이 뭐라고 한마디 해야 하지 않아? 왜 가만히 있는 거야? 당신 친척이잖아.”
그녀는 남편이 이렇게 말해주길 기대했다.
“맞아, 당신에게 그렇게 말하면 안 되는 거야. 다음에 만나면 내가 나서서 한마디 할게.”
그런데 정작 남편의 입에서 나온 말은 정반대였다.
“여보, 난 당신을 사랑해. 그렇다고 내가 그 사람을 막을 수는 없어. 그 사람에게는 자기 의견을 말할 권리가 있잖아. 그는 그냥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하는 거야. 당신이 거기에 일일이 마음 상할 필요는 없어.”
처음에 그녀는 남편이 왜 자신을 편들어주지 않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 후로도 그녀는 그 친척을 만날 때마다 화가 났다. 그와 같은 공간에 있기 싫어서 그가 방에 들어오면 다른 방으로 가버리고, 그가 밖으로 나오면 집 안으로 들어갔다. 온통 그를 피하는 데만 신경을 쏟던 그녀는 결국 그 친척에게 휘둘리는 자신에게 진저리가 났다. 그러던 어느 날 곰곰이 상황을 살펴보니 가족 중에 그를 진지하게 대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그에게 신경 쓰고 힘을 낭비하는 사람은 자신뿐이었다. 그녀 스스로 문제가 있는 사람이 자기 인생에 끼어들어 기쁨과 평안을 빼앗아가도록 방치했던 것이다.
누군가의 말이나 행동에 화를
내는 건 그 사람이 나를
쥐락펴락하도록 허락하는 셈이다.
누군가의 말이나 행동에 화를 내는 건 그 사람이 나를 쥐락펴락하도록 허락하는 셈이다. “당신 때문에 미치겠어”라고 말할 때 우리는 그 사람에게 쓸데없이 힘을 낭비하고 있음을 스스로 인정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내가 어떤 말과 행동에 어떻게 반응하는지 알면 그는 언제든 내 화를 북돋울 수 있다. 드러내놓고 상대방을 피하는 것은 그 사람에게 원하는 걸 손에 쥐어주는 것과 같다.
사람들에게는 법에 저촉되지 않는 선에서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하고, 원하는 행동을 할 권리가 있다. 그러므로 사람들의 말이나 행동에 일일이 마음 상할 필요는 없다. 다행히 우리에게는 사람들의 말과 행동을 무시하고 넘어갈 권리가 있다. 만약 우리가 그런 말과 행동에 일일이 화를 낸다면 사정은 달라진다. 누군가가 방에 들어올 때 우리가 긴장하는 이유는 그 사람이 우리를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해 우리가 지나치게 신경 쓰고 있기 때문이다.
그 사람의 말이 ‘나’를 정의하는 것은 아니다. 그 사람의 생각이 내 가치를 결정하는 것도 아니다. 그가 뭐라고 하든 그냥 흘려들어라. 그에게는 자기 생각을 말할 권리가 있고 나에게는 그 말을 무시할 권리가 있다.
세상에는 다른 사람의 잘못이나 실수를 지적하는 걸 마치 사명처럼 여기는 사람들도 있다. 그들은 쉴 새 없이 비판을 쏟아내고 늘 잘못을 찾아낸다. 또한 언제나 누군가를 화나게 하고 공격적인 자세로 말싸움하기 일쑤다. 그런 말과 행동에 초연해져라. 그들과 뜻을 함께해야 하는 것도 아니고, 그들에게 인정받을 필요도 없다. 그냥 흘려들어라. 당신은 하나님이 만드신 모습 그대로도 충분하다.
위대한 지도자 모세도 결혼 문제로 애를 먹었다. 친척들이 모세가 결혼하려는 여자를 같은 민족이 아니라는 이유로 못마땅히 여겼기 때문이다. 그들은 대놓고 모세를 비난했다.
“우리는 이 결혼에 동의할 수 없어. 절대로 용납 못해.”
자신의 결정이 옳다고 믿은 모세는 그들과 말싸움을 하지 않았다. 화를 내거나 그들을 비난하지도 않았다. 그저 묵묵히 평안을 지켰을 뿐이다. 알고 있다시피 모세의 신부를 가장 심하게 반대한 미리암은 나중에 나병에 걸렸고 더 이상 모세를 비방하지 못했다.
모든 비판에 일일이 반응할 필요는 없다. 그들에게 내가 옳다는 걸 증명할 필요도 없다. 저 위에 마음을 두고 하나님이 대신해 싸우시게 하라. 우리를 가로막는 사람에게는 우리와 사이좋게 지낼 마음이 없다. 따라서 우리가 어떤 말과 행동을 하든 그들을 설득할 방법이 없다. 설령 그들이 원하는 대로 변할지라도 그들은 또다시 비판거리를 찾아낼 것이다. 어떤 행동을 하든 나를 싫어하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아내 빅토리아와 처음으로 데이트를 하던 날, 나는 멋진 스포츠카를 몰고 나갔다. 당시 나는 20대 초반이었고 빅토리아에게 좋은 인상을 주고 싶어 늘 긁힌 자국 하나 없도록 애지중지 관리한 자동차를 몰고 나갔다. 그러던 어느 날 빅토리아의 집에서 저녁을 먹고 늦게 돌아오던 중 사고가 났다. 그때 나는 교차로를 지나고 있었고 신호등이 녹색으로 바뀌었다. 그런데 같은 방향으로 향하던 다른 차가 우회전 차선이 아닌 곳에서 우회전을 하다가 빙그르르 돌더니 내 스포츠카를 뒤에서 들이받았다.
나는 잠시 마음을 가라앉힌 다음 차에서 내렸다. 내 잘못으로 사고가 난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마음은 비교적 편안했다. 굳이 화낼 필요는 없었다. 먼저 자동차를 확인하자 뒷부분이 완전히 찌그러져 있었다.
이윽고 상대편 운전자도 차에서 내렸다. 꽤 어둡긴 했지만 50대 아저씨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는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욕지거리를 쏟아내더니 내게 말했다.
“야, 대체 운전을 어떻게 하는 거야! 너 때문에 아주 돌겠다.”
나는 가만히 생각했다.
‘정작 화를 내야 할 사람은 내가 아닌가. 우회전을 하면 안 되는 차선에서 우회전한 사람이 오히려 나한테 화풀이를 하다니!’
상대편 운전자는 나와 30미터 정도 떨어져 있었지만 그가 화를 내고 있는 게 똑똑히 보였다. 그가 대판 싸울 기세로 나를 향해 다가왔다. 처음에 든 생각은 이랬다.
‘정말 해보자는 건가?’
아니, 솔직히 말하면 ‘덩치가 왜 저렇게 커!’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그가 15미터 앞까지 성큼 다가왔는데 키가 나보다 두 배는 컸다. 그 순간 나는 결정을 내렸다.
‘이건 싸울 가치가 없는 싸움이야.’
나는 자동차를 한 바퀴 빙 돌아 다른 편에 가서 섰다. 마음속에서 이런 말이 들려왔다.
‘조엘, 지금 겁쟁이처럼 물러서는 거야?’
아니, 나는 단지 살고 싶었을 뿐이다! 이를테면 그는 나와 화해할 마음이 전혀 없는 부류였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각 동네에 보내실 때 그들에게 어느 집에 들어가든 먼저 “이 집이 평안할지어다”(눅 10:5)라고 말하도록 가르치셨다. 그리고 이렇게 덧붙이셨다.
“만일 평안을 받을 사람이 거기 있으면 너희의 평안이 그에게 머물 것이요.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로 돌아오리라.”(눅 10:6)
사람들과 평화롭게 지내려고 최선을 다하는데도 그들이 당신과 잘 지내려 하지 않는다면, 그냥 내버려 두라. 성경은 우리가 건네는 평안이 다시 우리에게 돌아온다고 말한다. 우리는 혼자서 평안을 누릴 뿐 아니라 다른 이들과 평안을 나눌 수도 있다. 선을 행해도 사람들이 받아들이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그것을 보시고 보상해주신다.
두 친구가 신문을 사려고 길모퉁이 가게에 들어갔다. 그런데 점원이 무척이나 무례하게 굴었다. 그때 한 친구가 점원에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오늘 하루 즐겁게 보내세요.”
가게를 나서면서 다른 친구가 물었다.
“저 점원은 항상 저렇게 무례해?”
“늘 그래.”
“그런데도 너는 항상 친절하고?”
“늘 그래.”
어리둥절해진 친구가 그 이유를 물었다. 그의 대답은 간단했다.
“다른 사람이 내 하루를 망치게 내버려두지 않기로 결심했거든.”
그는 다른 사람이 자신의 기분이나 삶의 태도를 좌우하는 걸 방관하지 않기로 했다. 무례하고 불쾌한 행동을 하는 건 점원의 마음이다. 하지만 무례한 대우를 받아도 마음만 먹으면 이 남자처럼 행복하면서도 친절하고 다정하게 대응할 수 있다. ¤ ¤
힘을 제어하라
마음속에 독을 품고 있는 사람과 마주칠 때 그 독에 전염되지 않도록 조심하라. 그들과 똑같은 수준이 되어 받은 대로 냉담하고 무례하게 받아치면, 그들이 품은 독에 전염되도록 자신을 방치하는 셈이다. 다른 사람들의 무례한 행동에 초연해져라.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이 아니라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이 돼라. 선으로 악을 이길 수 있다. 누군가가 무례하게 굴면 그에게 미소를 보내고 축복한 다음 가던 길을 계속 가라. 성경 말씀 그대로다.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마 5:5)
‘온유’ 하면 우리는 대개 연약하고 수줍음 많으며 말이 없는 사람을 떠올린다. 잔뜩 겁을 집어먹은 보잘것없는 사람의 모습을 말이다. 이런 까닭에 온유한 사람은 자기 의견을 밝히지도 못하고 다른 사람에게 무시당하기 십상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런 모습은 온유한 것과 거리가 멀다. 온유함이 곧 연약함은 아니다. 힘이 없는 것이 아니라 단지 힘을 제어하고 있을 뿐이다.
온유함은 길든 야생마와 같다. 길들긴 했지만 야생마는 여전히 강하고 힘이 넘치며 속도도 빠르다. 예전과 다른 점이 있다면 힘을 제어할 줄 안다는 것이다. 그 야생마에게 다가가 쓰다듬거나 등에 올라타 고삐를 잡고 힘껏 달릴 수도 있다. 그렇다고 속단하지 마라. 그 야생마에게는 예전과 똑같은 힘과 강인함이 있다. 다만 힘을 제어하는 법을 배워 그것을 감추고 있을 뿐이다.
온유한 사람은 다른 사람이 잘못 알고 하는 말을 바로잡으려 애쓰지 않는다. 사람들이 하는 비판에 일일이 반응하지 않는다. 사람들이 나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이야기할 것이다. 그런 말에 신경 쓰지 마라.
계속해서 힘을 제어하라. 당신이 참 괜찮은 사람이고 다른 사람의 잘못된 생각을 충분히 바로잡을 수 있거나, 그 능력을 행동으로 증명할 수 있더라도 계속해서 힘을 제어하라. 사람들이 하는 비판에 일일이 대꾸하고 능력을 입증하려 애쓰면 애쓸수록 그 모든 행동은 그들과 똑같은 수준으로 떨어지고 만다. 함정에 빠지지 마라. 당신은 높은 하늘을 비상하는 독수리 같은 사람이다. 따라서 다른 사람들의 말과 행동에 초연할 수 있다.
우리에게는 비판자의 말을 바로잡을 능력이 충분히 있다. 따라서 그들이 한 대로 똑같이 갚아주고 싶을 수도 있다. 마음속에서 ‘달려들어. 똑같이 갚아줘. 복수해’라는 감정이 치솟을 수도 있다. 그런 감정에 신경 쓰지 말고 사도 바울이 그의 제자 디모데에게 했던 말에 귀를 기울여라.
“모든 일에 신중하여 고난을 받으며…… 네 직무를 다하라.”(딤후 4:5)
바꿔 말하면 이는 “힘을 낭비하지 마라. 네가 가진 힘을 잘 제어하라”라는 의미다.
한 남자가 시골에 있는 작은 식당에서 햄버거를 먹고 있는데 갑자기 오토바이 폭주족이 들어왔다. 거칠고 비열한데다 덩치가 큰 무리 중 한 명이 힘을 과시하려고 남자가 앉아 있는 자리로 성큼성큼 다가왔다. 그는 식탁에 있는 햄버거를 바닥에 내동댕이치고 물 컵을 집어 들어 머리에 물을 쏟아 부었다. 그 폭주족이 비아냥대며 말했다.
“아이고 이런, 미안합니다. 실수였어요.”
그는 싸움을 걸려고 기를 썼다. 그러나 남자는 가만히 냅킨을 집어 물을 닦아내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식당을 나갔다. 그 모습을 보고 폭주족이 머리를 흔들며 종업원에게 말했다.
“별 볼일 없는 놈이로군, 안 그래?”
종업원이 고개를 가로저으며 대답했다.
“아니오. 분명 평범한 운전자는 아닙니다. 자동차에 도끼를 열두 개나 싣고 다니는 걸 보면.”
남자는 힘이 없는 게 아니라 힘을 제어하고 있었던 것이다.
만약 당신이 쉽게 화를 내는 성격이라면 지금부터라도 그러지 않겠다고 결심하라. 늘 똑같은 태도로 한 해, 두 해 시간을 낭비해서는 안 된다. 길게 늘어선 줄이나 궂은 날씨, 성질 고약한 직원, 사려 깊지 못한 접수 담당자 등 사소한 사건 및 사람에게 기쁨을 빼앗기고 있다면 이제부터라도 분명하게 선을 그어라. 이렇게 말하라.
“됐어. 이제 그만해. 나는 더 이상 힘을 낭비하지 않을 거야. 침착하고 차분하게 마음을 지킬 거야.”
《3초간(The Law of Garbage Truck)》의 저자 데이비드 폴레이(David Pollay)가 뉴욕에서 택시를 타고 이동할 때의 일이다. 길을 가던 중에 갑자기 주차장에서 자동차 한 대가 튀어나왔다. 그 바람에 택시기사가 급히 브레이크를 밟으면서 타이어가 끽 소리를 내며 한참이나 미끄러졌다. 다행히 택시는 상대편 자동차 바로 앞에서 멈췄다. 그런데 적반하장으로 상대편 운전자가 몸을 부르르 떨더니 경적을 시끄럽게 울리면서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이때 택시기사는 진심 어린 미소를 지으며 그에게 손을 흔들었다. 데이비드 폴레이는 그 모습을 보고 깜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