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내 월급은 항상 부족한걸까
Fair Pay How To Get A Raise, Close The Wage Gap, And Build Stronger Businesses
전자책 발행 2023년 3월 30일
지은이 데이비드 벅마스터
옮긴이 임경은
펴낸 곳 잇 콘
발행인 록 산
편집 홍민지
디자인 정다운
마케팅 프랭크, 릴리제이, 감성 홍피디, 예디
경영지원 유정은
등록 2019년 2월 7일 제25100-2019-000022호
주소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동백중앙로 191
팩스 02-6919-1886
전자책 ISBN 979-11-90877-71-8 (15320)
전자책 정가 12,600원
• 이 책의 전부 혹은 일부를 인용하려면 저작권자와 출판사의 동의를 받아야 합니다.
• 문의는 카카오톡 '잇콘출판사'로 부탁드립니다.(아이디 itcon, 평일 오전 10시 ~ 오후 5시)
공정 급여: 내 월급을 올리고, 사회 격차를 좁히고, 성공 기업을 구축하기
- 데이비드 벅마스터 -
딸 토바에게, 네가 자랐을 땐 이 책의 내용이 과거가 되어 있기를.
어느 평일 저녁, 시애틀 남부에 있는 시어스Sears의 오래된 창고 밖에 시위대가 모였다. 컨테이너선이 유유히 다가오는 부두를 뒤로한 채, 지역 노조 위원들과 서비스업 종사자들이 함께 모여 몇 명은 마이크를 들고 “최저임금 15달러 쟁취Fight for $15!”라는 구호를 외쳤고, 나머지는 퇴근하는 직장인들의 관심을 끌려고 팻말을 흔들었다. 이 시위를 목격한 주변 인구가 족히 5,000명은 되었을 것이다. 낡은 시어스 창고는 더 이상 카탈로그 주문을 처리하는 곳이 아니었다. 이제는 스타벅스 본사가 되어 있었다.
시위대는 바리스타뿐 아니라 모든 서비스업 종사자의 급여 인상을 촉구했다. 그들은 시급 15달러가 노동자들이 최소한의 품위를 유지할 수 있는 최저임금이라고 주장했다. 이는 2014년 당시 워싱턴주 최저임금인 시간당 9.32달러보다 60% 높다. 시애틀 시의회는 이듬해에야 최저임금을 11달러로 올렸고, 이때를 기점으로 꾸준히 임금 인상안이 통과됐다. 이렇게 인상된 시애틀의 최저임금은 2009년 7.25달러로 정해진 이래 한 번도 오른 적 없는 연방 최저임금을 웃돌며 미국에서 가장 높은 액수가 되었다. 그래도 노동자들이 기본적인 자립을 감당하기에는 여전히 부족했고, 임대료 부담은 나날이 커져만 갔다. 2018년 전국적으로 실시한 한 연구에 따르면 최저임금 근로자가 침실 한 개짜리 아파트를 장만할 형편이 되는 지역은 애리조나, 캘리포니아, 콜로라도, 오리건, 워싱턴 등 다섯 개 주의 스물두 개 카운티뿐인 것으로 나타났다. 각 주의 최저임금은 연방 최저임금보다 최소 40% 높았다. 그러나 시애틀의 중심지인 킹카운티는 여기에 해당하지 않았다.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는 언제나 최저임금과 관련된 공론의 중심에 있는 문제였다. 최저임금을 문자 그대로 의미에 충실하게 해석하면, 최소 인원의 저숙련 노동자에게 최소 시간 단위에 대해 제공되는 최저 수준의 임금이라고 보면 된다. 최저임금 노동이라 하면 사람들은 대학교 여름 방학 때 탄산음료 기계 앞에서 잠시 저임금으로 일한 아련한 옛 추억을 떠올리는 경향이 있다. 이처럼 기업체에 ‘정식’ 취업하기 전에 쌓는 기본적인 사회생활 경험쯤으로 생각한다. 우리는 최저임금 노동(대개 고객을 상대하는 서비스업이나 고된 육체노동이 따르는 직업)에 요구되는 저숙련 기술을 경시하고, 이들 직업을 생계 수단으로 삼기에는 자신과 상관없는 듯 내심 선을 긋는다.
미 노동통계국에 따르면, 최저임금 노동자는 그 수가 적지도 않고 인생 경험으로 잠시 거쳐가는 일자리도 아니다. 또한 그들은 우리가 흔히 경험에서 연상하는 이미지보다 연령대도 더 높았다. 미국에서 약 200만 명이 연방 최저임금에 못 미치는 급여를 받고 있다. 그중 25세 이상이 절반을 넘고, 20세 이상은 약 80%에 달한다. 대부분이 외식업에 종사한다. 또 자녀를 둔 약 3분의 1은 보육 시설을 이용하기에 어려운 형편이나 불규칙한 교대 근무 탓에 출셋길을 가로막는 장벽을 극복하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최저임금 인상을 비판하는 사람들은 200만 명을 백분율로 따지면 전체 노동 인구의 1%에 불과하므로 최저임금법이 중요하지 않다는 식으로 말한다. 그들이 최저임금법의 효과를 과소평가하는 것은 소득 분포를 살펴보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 이면의 심각한 문제점을 인식하지 못한다. 시위가 일어날 당시 미국 노동 인구의 거의 절반이 15달러 미만의 시급을 받고 있었다.
스타벅스 본사는 시위 장소로 현명한 선택이었다. “인간의 정신을 일깨우고 풍요롭게 한다”라는 스타벅스의 모토에서 알 수 있듯, 스타벅스는 인간 중심의 경영 측면에서 다른 유통 및 외식업계보다 훨씬 앞서 있었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스타벅스는 오래전부터 전 직원에게 건강보험과 스톡옵션을 제공한 데 이어, 몇 달 전에는 애리조나 주립대학과 협력해 직원들의 학위 취득을 독려하는 학비 지원 프로그램도 시작한다고 발표했다. 그러자 시사 월간지 「디 애틀랜틱The Atlantic」이 졸업장을 든 바리스타를 배경으로 “스타벅스가 중산층을 구할 수 있을까?”라는 제목의 머리기사를 내는 등 스타벅스의 혁신적인 프로그램을 추켜세우는 기사들이 여러 군데서 보도되었다. 당시 시위대는 몰랐지만, 스타벅스는 이미 역대급 규모로 직원에게 투자할 계획을 세운 터였다.
나도 이 프로젝트를 진행한 팀에 속해 있었다. 전국에 수십만 명이 넘는 동년배의 바리스타를 포함해 스타벅스 직원의 임금률을 책정하는 업무를 맡았다. 목표는 ‘파트너’라고 불리는 전 직원의 급여, 복리후생, 근무조건 등을 개선하는 것이었다. 초봉 인상, 휴식 중 간식 제공, 규칙적인 교대 근무, 경력 개발 기회 확대, 그리고 다들 오랫동안 손꼽아온 복장 규정 완화에 이르기까지, 모두 파트너 경험 투자Partner Experience Investment라는 성대한 축하 행사를 통해 발표할 예정이었다. 우리 팀은 이 계획을 추진하며 뿌듯했지만, 시급을 15달러로 인상하는 방안은 들어 있지 않았다. 우리 팀은 물론 다른 도시도 15달러 최저임금제를 시행하는 곳은 없었으니, 아직 갈 길이 멀었던 셈이었다. 그때만 해도 최저임금 15달러를 외치는 시위 소식이 전국적으로 퍼지기 전이었고, 그나마도 소수 세력의 목소리로 여겼다. 이렇게 큰 폭으로 임금을 인상한 전례가 없었고, 15달러에 근접한 수준의 급여를 지급하는 다른 회사도 찾아볼 수 없었다.
내가 좀 더 낙관적이었던 시기에는 「디 애틀랜틱」의 예측과 비슷한 생각이었다. 그동안 모든 사람의 노력과 스타벅스의 점진적 처우 개선을 보건대, 공정과 선의가 지배하는 새로운 경제 시대가 열릴 줄 알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다른 기업의 각성을 촉발해, 경제 전반에 걸쳐 연쇄적으로 임금 인상과 복지 증진으로 이어지지 않을까 기대했다. 그렇다면 중위 소득자가 파산 걱정 없이 내 집을 마련하고, 가족을 부양하고, 아프면 병원도 마음껏 가고, 아이들을 대학에 보내며 안정된 생계를 꾸렸던 시대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다. 사회 불평등의 악순환이 끊어질 것이다. 훗날 모 대선 후보가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라고 빨간 모자에 새기기 전부터 우리가 먼저 위대한 미국을 실현할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나는 곧 현실을 자각했다. 물론 전국 대부분의 도심지처럼 집값, 보육비, 교통비 부담이 심하지 않은 여러 지역에서는 임금 인상이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계획은 시위대의 요구와 동떨어져 있음은 물론, 내가 늘 마주치는 본사 내 매장의 바리스타들에게도 큰 반향을 일으키기에 역부족이었다.
그날 퇴근할 때가 되어서 시위대를 발견했다. 팻말을 헤치며 난리 통을 빠져나온 후, 평소와 다름없이 말 그대로든 비유법으로든 시위대의 반대편으로 향했다. 당시 회사 주차장이 완공되려면 4년을 기다려야 했기 때문에 멀찌감치 떨어진 노상 주차장을 이용했다. 그 길을 지날 때면 주거비 부담이 심각해지고 있다는 걸 조금은 체감할 수 있었다. 여기에는 도시 전체에 주인 없는 빌딩을 하나둘씩 사들인 아마존, 그리고 소득 수준과 따로 노는 부동산 가격이 한몫했다고 볼 수 있다. 이때는 창립자 제프 베이조스Jeff Bezos가 도심 한가운데 남근 숭배 사상이 훤히 드러나는 모양의 건물을 세우며 시애틀의 대표 거물로 거듭나기 몇 년 전이었다.
유난히 바빴던 시기의 어느 날 오후, 근처 시애틀 매리너스 홈구장에서 열린 야구 경기로 노상 주차장이 일찌감치 만차가 되었다. 그래서 오갈 데 없는 캠핑카 노숙자들과 나란히 길가에 주차했다. 80년 전 이 부지는 허버트 후버Herbert Hoover 전 대통령의 이름을 따 풍자적으로 명명된 후버빌Hooverville이었다. 이곳은 대공황 때 전국에 수백 곳에 달했던 판자촌 중 하나로 빈민층의 임시 거주지였다. 지금 이곳에 사는 사람들의 형편도 썩 나아지지 않았다. 그동안 나는 그들이 왜 이런 상황에 처했는지 생각해 본 적이 별로 없었다. 무관심이 자랑은 아니지만 그런 풍경에 익숙했기 때문이다. 점심이면 연어 회가 나오는 시간에 맞춰 3층 구내식당으로 가면서도 머릿속으로는 일정을 짜고 있을 만큼 바빴다. 구내식당 주방장은 연어 회를 넉넉하게 내놓는 법이 없어서 12시 15분이면 동나기 일쑤였다.
나는 중간 관리자급의 분석가일 뿐이었지만, 내 몸값과 직업적 야망에 익숙해져 외부 세계에 관심이 없었다. 그러다 보니 내 주변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 그리고 내가 그들의 편이 되어줄 힘이 있다는 걸 인식하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흥미로운 연구를 접하게 되었다. 개인이 소외 계층을 바라볼 때 뇌 반응은 그 사람의 부와 상관관계가 있다고 한다. 요약하면 부유한 사람일수록 주변인의 빈곤을 둔감하게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중간 관리자로서 나는 시애틀 직장인의 중위 임금보다 거의 두 배, 바리스타 임금의 네 배 이상을 벌고 있었지만, 바로 옆에 있는 근로빈곤층은 언젠가부터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미국은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 풍요로워졌지만, 연어 요리는 구경도 못 하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졌다. 하필이면 나도 직업상 이러한 문제를 일으킨 장본인 중 한 명이었다.
비록 윗선의 승인이 필요하긴 하지만 내가 서비스업 임금을 시간당 15달러로 인상할 권한이 있는 소수의 행인 중 한 명이라는 사실을 시위대는 알 턱이 없었다. 나는 전 세계 모든 경쟁 기업들이 자사 직원들에게 지급하는 임금의 추세와 금액을 낱낱이 파악하고 사내의 모든 직급에 적정 수준의 ‘시장 임금률market rate’을 권고하는 일을 맡았다. 나 같은 급여 전문가들은 통상 노동시장의 임금 동향을 추적하는 것이 임무라고 믿어왔다. 반면 우리가 노동시장의 흐름 자체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은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전지전능한 시장 논리를 따르는 것이 우리의 소임이었기 때문이다.
모든 대기업에는 이러한 업무를 담당하는 인사 부서가 있다. 딱히 카리스마 있는 명칭을 찾지 못한 관계로 여기서는 보상팀이라고 부르겠다. 스타벅스에서는 토탈 리워드Total Rewards라는 멋없는 팀명을 붙여놨다. 대외적으로 통용되는 명칭은 더 고리타분하게도 총보상팀Total Remuneration이라고 한다. 이 업무는 때로 남들에게 선보일 재미있는 장기로 써먹을 수 있다. 상대방의 직업에 대해 몇 가지 세부 사항만 알면 그 사람의 현재 소득(혹은 적정 소득)을 근소한 오차 범위 이내로 맞출 수 있다. 만약 틀리더라도 변명거리가 있다. 이 일에는 기술적 측면과 과학적 측면이 둘 다 있는데, 나는 과학에 치중한 반면 그쪽 회사의 급여 담당자는 기술에 가중치를 둔 것 같다고 얼버무리면 된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나 같은 사람들이 급여 정보를 기밀로 유지하고 질문이나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편리한 변명일 뿐이다.
스타벅스를 떠난 후 나는 특정 기업에 소속되지는 않았지만, 여러 브랜드를 거느린 다국적 프랜차이즈 대기업에 컨설팅함으로써 간접적으로 바리스타의 임금률을 책정하는 일을 계속했다. 나의 새 직장은 염 브랜드Yum! Brands로 KFC, 피자헛, 타코벨을 소유하고 있으며 스타벅스 못지않게 많은 프랜차이즈(또는 라이선스) 파트너를 둔 브랜드다. 그 후 외식업계를 떠나 오리건주로 돌아와 현재까지 나이키에서 일하고 있다.
내가 일했던 기업들과 관련해 몇 가지 솔직하게 밝힐 점이 있다. 나는 어떤 기업도 대변할 생각이 없고 오로지 개인의 관점에서 책을 썼다. 나는 그들의 기밀 정보, 약점, 관행을 드러내지 않을 것이다. 그나마 나의 일상 업무를 밝힌 몇 안 되는 페이지에서도 내부 사항이나 사측과 (나를 제외한) 직원의 치부가 드러나지 않도록 세심히 신경 썼다. 특정 기업의 세부 정보를 시시콜콜 밝히는 것은 이 책의 취지와 맞지 않다. 그보다 모든 사람에게 공정한 급여를 제공하기 위해 시스템을 어떻게 바꿀 것인지 설명하고 개선을 촉구하는 것이 목적이다. 나는 대부분 직장인에게 급여를 지급하는 회사의 관점, 즉 전반적인 시스템 개선에 중점을 두었다. 어떤 방법으로든 전체 생태계를 개선한다면 모든 회사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앞으로 살펴보겠지만 이는 세계 최대 기업의 급여 체계가 자기들끼리만 데이터를 공유하고 서로 연결된 소수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이다. 여러분은 우리 같은 급여 담당자들을 세계에서 가장 따분한 비밀결사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급여는 잘 알려지지 않은 영역이고, 그 이유로 우리는 남보다 유리한 위치에 있다.
다시 시위 얘기로 돌아가서 또 하나 밝혀둘 점이 있다. 나는 시위자들에게 전문 지식을 제공해 도움을 준 적이 없다. 당시에 작업 중이던 급여 계획과 관련해 어떤 정보라도 노출했다면 나는 직장에서 쫓겨나고 가족과 함께 현대판 후버빌로 들어가는 신세를 면치 못했을 것이다. 내겐 적시에 정해진 수단을 통해 정해진 대상에 맞는 어법을 사용해 문제를 논의하도록 공식 승인된 기업 채널이 있었기에 그것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그전까지는 회사 기밀을 누출하지 않아야 할 의무가 있었다.
최저임금 15달러를 외치던 시위대의 건너편에서는 색다른 유형의 급여 실험이 진행 중이었다. 시애틀에 본사를 둔 신용카드 결제 대행사 그래비티 페이먼츠Gravity Payments의 CEO 댄 프라이스Dan Price는 새로운 최저임금을 발표했다. 시급 15달러가 아닌, 연봉 7만 달러였다. 정규직 기준으로 시간당 거의 34달러에 해당한다. 이 액수는 뜬금없이 정해진 게 아니라, 연구를 기반으로 도출했다. 연구에 따르면 사람들의 심리적 삶의 질은 소득과 비례해 향상하지만, 연봉이 생계비와 비상금까지 해결할 만한 수준인 7만5,000달러에 도달하면 삶의 질은 그 이상 올라가지 않는다고 한다. 예상대로 프라이스의 결단은 헤드라인을 장식했다. 그는 사내 최저임금을 대폭 인상했을 뿐 아니라 자신의 급여를 100만 달러에서 7만 달러로 삭감해 재원을 마련했다. 그래비티 페이먼츠의 이야기는 전 세계의 뉴스와 잡지에 보도되었다. 프라이스를 극찬한 커버스토리 중 하나는 경제지 「잉크Inc.」가 “미국 최고의 CEO 등장?Is This Best Boss in America?”이라는 제목으로 내보낸 기사였다. 그전까지 이름도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프라이스는 엄청난 기대를 한 몸에 받기 시작했다.
프라이스는 저서 『가치 있는 일Worth It』에서 어려운 가정 형편과 가족의 종교적 신념 등 자신의 어린 시절 경험에 영향을 받았다고 밝혔다. 그는 사업에서도 소신이 뚜렷했다. 제프 베이조스, 빌 게이츠Bill Gates 같은 유명 인사가 고고하게 건재를 과시하는 시애틀에서 그래비티 페이먼츠의 독자적인 경쟁 위치를 구축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래비티 페이먼츠가 경쟁해야 할 기술업계에서는 악랄하게 명성을 쌓는 것이 최고의 인재를 끌어들이고 살아남는 유일한 방법이다. 업계 관측통들은 인공지능이나 머신러닝 같은 틈새 분야에서도 이미 평균적인 기술자와 최고의 인재 간에 기량 차가 상당히 벌어졌다는 것을 알고 있다. 남보다 생산성이 열 배나 높은 소위 ‘10× 엔지니어’를 추구하는 분위기가 형성되면서, 특히 시애틀 기업은 기술 인재를 찾고 그만큼 급여를 지급하기 위한 출혈 경쟁에 뛰어들었다. 그 결과 기술업계의 급여 수준이 전체적으로 올랐고, 20대 엔지니어들이 연봉 100만 달러짜리 스카우트 제안도 거부하는 풍조가 생겨났다. 2000년대 초에는 경쟁이 치열해지자, 많은 기술 대기업이 대놓고 급여를 동결하기 위한 공동의 노력으로 ‘인재 뺏지 않기no-poach’ 협정을 맺었다가 집단 소송에 휘말리게 되었다. 법정에서 공개된 바에 따르면, 애플의 아이콘 스티브 잡스Steve Jobs는 구글 공동 창업자 세르게이 브린Sergey Brin에게 “우리 직원 중 한 명이라도 데려간다면 선전 포고로 받아들이겠다”라는 경고성 이메일을 보내기도 했다. 구글 전 CEO 에릭 슈미트Eric Schmidt도 이메일을 통해 “구글은 업계 전반의 급여를 올려놓은 주범이라며 입길에 오르내리고 있다. 사람들은 우리가 백기를 들고 과거의 ‘불공정’ 급여 관행으로 돌아가기만을 기다린다”라고 말했다. 비무장지대를 넘은 채용 담당자들은 불복종 죄로 해고되었다.
계획대로 그래비티 페이먼츠의 최저임금제는 유명한 마이크로소프트, 아마존 등과 비교해 우위를 찾고 있던 그들에게 전략적 차별화로 통했다. 그래비티 페이먼츠는 다른 유형의 기업이 되었다. 이 전략은 야후 재직 시절보다 80% 급여 삭감을 감수하고 건너온 태미 크롤Tammi Kroll COO(최고운영책임자)를 포함해 최고의 인재들을 영입할 만큼 충분한 효과를 발휘한 것으로 보였다. 그래비티 페이먼츠와 다른 기술 기업이 이미 법정 최저임금보다 훨씬 높은 임금을 지급하는 이유가 단지 업계와 업무의 특성상 그럴 수밖에 없다 쳐도 이는 중요하지 않았다. 또 장기적으로 프라이스의 잠재 소득이 대부분 연봉이 아닌 회사의 주식 지분 형태라는 사실도 마찬가지였다. 어쨌든 프라이스는 영웅이 되었다. 오늘날 그래비티 페이먼츠는 여전히 승승장구 중이다. 2020년 1월 프라이스는 트위터에서 자체 최저임금제를 시행한 이후 기업 이익이 200% 증가했다고 밝혔다.
그래비티 페이먼츠의 실험은 15달러 쟁취 시위에 참여한 서비스업 노동자들에게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그러나 프라이스의 주장은 시위대의 메시지와 다르지 않다. 바로 자유시장에서 정상적이고 자연스러운 결과로 받아들여지는 현재의 급여 시스템은 노동자에게 정상적이지도 자연스럽지도 않을뿐더러, 이러한 시장 실패가 전체 경제를 위험에 빠뜨리고 있다는 것이다.
코로나19 팬데믹의 여파에서 확인했듯, 대부분 노동자는 분명 생계가 언제 끊길지 모를 불안감 속에 살고 있다. 팬데믹 직전에 경제가 호황이라는 헤드라인을 쏟아내던 언론의 이야기는 실제 민생과 달랐다. 팬데믹으로 폭락한 주식시장은 금세 반등했지만, 전체 미국인 중 50%가 주식이 없고 90%가 시가총액의 12%만 보유하고 있었다. 코미디언 러셀 브랜드Russell Brand는 “현 체제가 정상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그 체제를 위해 일하는 사람이다”라고 말했다. 글쎄, 나는 현 체제를 위해 일하는 사람인 건 맞지만, 동시에 현 체제가 많은 사람에게 정상적으로 작동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기술업 종사자 같은 일부 엘리트는 현 체제에서 돈을 잘 벌지만 (또 그중 소수는 천문학적인 돈을 벌지만) 여전히 불공정 급여 관행은 사라지지 않는다. 이는 기업이 임금의 시장 경쟁에 소극적이고, 동일 노동 동일 임금 원칙을 지키지 않고 있음에도 그들에 책임을 물을 길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대부분 사람이 보기에 현 체제는 실패했다. 따라서 모든 사람에게 더 나은 수준의 급여를 제공해 다 같이 잘사는 방법을 모색하는 것이 이 책의 목적이다.
15달러를 위한 투쟁이 전국적으로 확산되기 전까지는 최저임금이 갑자기 오르면 지역 경제가 어떻게 될지 보여주는 데이터가 거의 없었다. 대신 나를 포함해 대부분의 사람은 기존의 선입견에 따라 짐작만 할 뿐이었다. 즉, 최저임금이 오르면 실업률과 물가도 올라간다는 것이 지배적 견해였다. 우리가 경제학 원론 수업에서 듣던 대로, 최저임금 인상은 경제에 안 좋고 부당하며 역효과를 낳을 것이었다. 사실 우리는 최저임금이 필요하지도 않을지 모른다. 덴마크에는 최저임금제가 없는데 우리도 안 해도 되지 않을까? 하지만 문제는 우리 사회에 경제적 충격을 흡수할 사회 안전망이 강력하지 못하고, 고용주와 직원 간에 갑을관계를 조율할 단체 교섭 범위가 제한적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내용은 시위 팻말에 담거나 모자 문구로 새기기엔 너무 길다.
돌이켜 보면 최저임금이 역사상 가장 큰 폭으로 올랐는데도 (팬데믹 이전 기준) 실업률은 하락했고, 물가도 요동치지 않았으며, 로봇이 신규 일자리를 잠식하지도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최저임금 인상의 진원지인 시애틀은 전국 평균보다 낮은 실업률을 기록한 데 이어, 여러 고용 지표에서도 미국 대부분 지역을 앞질렀다. 2017년 말에는 직전 10년간 미국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한 대도시로 선정되었다.
최저임금 인상만으로 이러한 결과가 나왔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직원에 대한 과감한 투자가 경제 성장과 양립할 수 있다는 점은 확실해졌다. 수십 년 전 경제학자 존 케네스 갤브레이스John Kenneth Galbraith는 “한때 세기의 사회 갈등이라 불렸던 안보와 진보 사이의 갈등은 사실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시애틀은 집값 상승과 주택난으로 많은 사람이 타 지역이나 길거리로 내몰리는 등 커다란 경제적 난관이 도사리고 있지만, 최저임금 인상으로 경제 성장과 고용 기회가 종말을 맞지는 않았다. 보수 성향의 싱크 탱크인 미국기업연구소American Enterprise Institute의 표현을 빌리면, 시애틀은 시장의 임금 결정에 인위적으로 개입해 ‘경제적 자멸economic death wish’을 향해 치닫는 도시 중 하나였다. 특히 최저임금 인상의 가장 큰 타격을 받을 것으로 예상되던 외식업과 서비스업은 2019년 고용 증가세가 그 어느 때보다 강했다. 갤브레이스의 말을 다시 인용하면 “미국과 다른 서방 국가의 생산량이 역사상 가장 현저히 증가한 시기는 사람들이 경쟁 체계의 위험을 줄이는 데 관심을 두기 시작한 이후”였다.
요컨대 임금과 복리후생에 지출을 늘리면 사업에 손해라는 걱정은 기우일 뿐, 기업이 최저임금을 받는 노동자에게 인심을 베풀 여지가 있는 것은 분명하다. 이는 최저임금 인상이 고용을 감소시키는 가상의 한계점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라, 우리가 그 지점에 도달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물론 최저임금이 하룻밤 사이에 15달러에서 100달러로 인상된다면 걷잡을 수 없는 문제가 생길 것이다. 그러나 이처럼 극단적인 억측은 조금씩 개선해 나가기 위한 토론을 지나치게 단순화하고 깔아뭉개고자 하는 사람들의 관점이다. 나는 경제학자가 아니지만 요점을 전달하기 위해 잠깐 경제학자 흉내를 내며 한마디하겠다. 급여 결정은 절대적인 옳고 그름의 이분법으로 나뉘는 성질이 아니다. 대신 급여 결정에 있어서 정답은 대개 ‘경우에 따라 다르다’와 ‘아무도 모른다’ 사이의 어딘가쯤에 있다.
임금 인상이 특정 한계점을 넘어서든 밑돌든 둘 다 실업자가 늘어날 수 있다. 이를테면 법정 최저임금이 지나치게 오르면 기업은 임금 인상분만큼 제품이나 서비스 가격을 올리는 데도 한계에 이르러 직원을 감원할 것이다. 반대로 (담합이나 억제를 통해) 최저임금이 제자리걸음이어도 마찬가지다. 이는 근로자들이 이른 아침 고생스럽게 출근하는 보람이 없을 만큼 소득이 턱없이 부족해서 스스로 직장을 떠나는 경우다. 많은 사람은 최저임금이 15달러로 인상되면 이러한 ‘한계점을 넘으므로over the hump’ 실업자를 양산하리라 예상했다. 하지만 시애틀은 고용률과 기업 실적 양쪽에서 호조를 보이며 여전히 한계점 아래에 머물러 있음을 입증했다. 이를 전국으로 확대해, 현행 7.25달러인 연방 최저임금을 인상하자는 주장에도 같은 논거를 적용할 수 있다. 각 주의 최저임금 인상 여부에 상관없이 미국 전역에 걸쳐 경제가 꾸준히 성장해 왔기 때문이다. 우리가 아는 한 가지는 저임금 노동자에게 적정한 수준의 최저임금이 지금보다 올라야 하는 건 확실하다는 것이다.
많은 사람이 최저임금이 인상되면 어떤 결과가 초래되는지 잘못 알고 있다. 하지만 이 오해의 근원은 무자비하고 못된 기업의 병폐도 효율성 만능주의도 아니다. 그보다 사람들이 이토록 지나치게 걱정하는 것은 크게 두 가지 이유가 합쳐졌기 때문이다. 첫째는 겪어보지 않은 일에 대한 두려움이다. 최저임금이 전국적으로 인상되면 어찌 될지 증거가 거의 또는 전혀 없기 때문이다. 둘째는 타성이다. 즉, 우리 급여 담당자들의 믿음은 대부분 직무의 가치와 그 직무 종사자들에 대한 몇 가지 공통된 가정에 기반을 두고 있다. 공정 급여를 위해서는 이러한 선입견을 다시 생각해 봐야 한다. 오직 수요와 공급이 임금을 결정한다는 믿음부터 깨뜨려야 한다.
임금과 관련해 가장 흔한 가설은 모든 임금률이 자유시장에서 수요와 공급에 따라 정해진다는 것이다. 이는 노동시장과 블루베리 시장의 수급 방식을 비슷하게 보는 사고방식이다. 여름 제철 과일인 블루베리는 겨울이면 지구 반대편에서 수입해야 하므로 값이 오른다. 따라서 블루베리는 수요와 공급이 가격 상승을 유발하는 예를 설명하기에 유용하다. 그러나 기술과 노동력은 직종 간에 쉽게 이전될 수 없으므로 블루베리의 논리를 노동시장에 적용하기엔 무리다. 다시 말해 노동력은 블루베리처럼 운송될 수 없고, 서로 교환할 수 없으며, 매년 여름마다 삭감이 용인되지도 않는다. 따라서 노동시장에는 기본적인 수요와 공급 모델이 먹히지 않는다.
이론적으로 따지면 직무 기술이 명확하고 익히기 어렵고 다른 사람에게 가치를 창출할 수 있으면 수요와 공급의 법칙에 따라 임금이 결정되어야 한다. 의사는 누가 봐도 필수 불가결한 직업이며, 이 일에 필요한 기술과 자질을 갈고닦기 위해 긴 세월을 보낸다. 수요와 공급의 법칙에 따르면 의사가 높은 급여를 받는 게 납득이 간다. 그러나 의사 인력이 부족해질 것으로 보이고 인구 고령화와 건실한 경제 가운데서도 의사의 급여는 최근 몇 년 동안 거의 오르지 않았다. 반면 투자 은행가와 경영 컨설턴트 같은 고임금 직군의 임금은 계속 오르고 있어 이것이 수요 공급 이론에 부합하는지는 아리송하다. 그렇다면 수요와 공급은 임금이 인상되는 이유 중 일부에 불과한 것으로 보인다. 또 어떤 요인이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서로 다른 두 유형의 직업인 민간 항공기 조종사와 호텔 청소부의 임금이 작동하는 원리를 살펴보겠다.
팬데믹으로 항공기 운항이 중단되기 전에는 민간 항공기 조종사를 구하기가 어려웠다. 조종사 자격을 취득하려면 10년 이상의 시간과 수십만 달러가 넘는 비용 등 상당한 투자가 필요하다. 이러한 진입 장벽이 있기에 조종사의 공급량은 많지 않아야 하고, 임금은 항공 여행 수요가 증가할수록 올라야 한다. 그야말로 기술이 명확하고 익히기 어렵고 다른 사람에게 가치를 창출하는 직업의 전형이다.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지역 저가 항공사들은 신입 부조종사에게 최저임금에 가까운 급여를 지급했다. 이처럼 급여가 적었던 이유는 조종사 인력 공급이 급증했다든지, 기술의 숙련도나 자격 요건의 진입 장벽이 낮아졌다든지, 항공 여행 수요가 감소해서가 아니었다. 주된 원인은 9·11테러 이후 항공업계가 어려움을 겪던 시기에 조종사들의 교섭력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신규 조종사뿐 아니라 숙련된 기존 조종사의 임금도 깎였다. 조종사가 되기 위해 투자한 시간과 돈에 비해 고액 연봉을 받을 가능성도 희박해지자 조종사 지망생들은 다른 직업을 선택했다. 세월이 흘러 당시 세대의 조종사들이 법정 정년에 도달하게 되었으나 신규 조종사는 부족한 실정이다. 그 결과 조종 기술에 대한 수요와 공급이 극도로 불균형해져, 베테랑 조종사는 최대 30만 달러의 연봉을 부르기도 한다. 이는 소득 상위 2% 안에 들 정도로 고액이지만 임금이 깎이기 전인 1990년대와 비교하면 비슷한 수준이다. 그러므로 지난 30년간 조종사 임금은 별로 오르지 않은 셈이다. 높은 수요, 낮은 공급, 고숙련 기술, 높은 진입 장벽 등 이론적 요인만 따지면 그동안 조종사는 꾸준히 높은 급여를 받았어야 정상이다. 그렇다면 역시 다른 요인, 즉 여기서는 피고용자의 교섭력이 수요와 공급 법칙이라는 표준 모델에 오작동을 일으킨 셈이다.
조종사 인력난에 대한 해결책으로 필수 훈련 과정을 간소화하자고 제안할 사람은 거의 없다. 아무리 자유지상주의를 열렬히 지지하는 항공사라도 안전 교육을 제대로 받지 않은 조종사를 채용하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 이는 자유시장의 자연스러운 수요와 공급 논리 외에도 규제, 경제적 충격, 사용자의 선택, 교섭력과 같은 다른 요인이 임금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보여준다. 따라서 우리는 누가 얼마큼의 급여를 받는지 생각할 때 시야를 더욱 넓힐 필요가 있다.
이제 호텔 청소부의 임금 문제로 넘어가자. 이 직업은 진입 장벽이 낮고, 심장 수술이나 비행기 착륙과 달리 성패가 뚜렷이 갈리거나 위험하지 않다(그래도 경영 컨설턴트보다는 훨씬 뚜렷한 성과를 낸다). 직무 기술은 명확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가치가 있다. 하지만 누구나 금방 익힐 수 있는 일이고, 노동자가 임금 결정에 영향을 끼치지 못할 만큼 개인 능력에 편차가 거의 없다. 또 기본 기술은 쉽게 익힐 수 있지만 지속적으로 특출나게 잘하기는 어렵다. 최근 셰일 유전이 발견되어 많은 노동력이 필요해진 노스다코타주와 텍사스주 같은 신흥 도시에서만 그나마 노동자들이 어느 정도 임금 결정권을 행사하는 편이다. 그러나 그들의 시장 임금도 호텔 청소부처럼 시간이 지나 노동 공급이 부족하고 수요가 넘쳐도, 시위대가 주장하던 15달러 근처에는 미치지 못한다. 물론 호텔 청소부의 급여가 의사만큼 높아야 한다고 기대할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하지만 기본적인 수요와 공급 법칙에서 설명하는 균형 가격보다 더 낮은 임금이 형성되는 것은 그 외의 다른 요소도 계속 작용한다는 의미다.
대부분 호텔 청소는 하청 방식으로 운영된다. 즉, 청소 서비스를 제공받는 호텔 측은 청소 직원의 업무 성과가 어떠하든 그들의 임금을 정할 권한이 없다. 그리고 청소부의 급여가 얼마인지 (덧붙여 그들의 이름과 처우도) 알지 못한다. 청소 업무가 호텔의 소관 밖에 있는 데다가, 노동자의 직무 능력은 비슷비슷하다. 그러다 보니 호텔 측은 청소부를 양질의 일자리를 책임져야 할 대상이 아닌, 쉽게 구입할 수 있는 사무용품처럼 취급한다. 따라서 청소부들을 실제로 고용하거나 계약하는 하청업체(최근의 앱 기반 플랫폼 포함)는 인건비를 낮추고 최종 사용자에게 파견 노동자의 정체를 드러내지 않으려는 게 당연하다.
여기서 임금 인상을 가로막는 것은 정부의 시장 개입이나 피고용자의 열세한 교섭력이 아니라 사기업이 시장을 기반으로 형성한 고용 구조다. 하청 노동자들은 고용 회사의 가시권 밖에 있어서 임금 인상 기회를 얻기 어렵다.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지듯, 회사는 자기네 소속이 아닌 하청 노동자들을 챙겨주지 않는다. 그리고 하청 노동자들은 회사의 성장과 복리후생의 덕을 볼 수 없다. 과거 경비원으로 시작해 회사 중역까지 올랐다는 성공 신화가 요즘 불가능해진 것은 경비원을 하청으로 뽑기 때문이다. 많은 이들이 찬양하던 ‘일의 미래Future of Work’라는 계획하에 새로운 분리 고용 형태로 서둘러 전환한 결과, 급여 시스템이 얼마나 악화되었는지는 8장에서 살펴볼 것이다. 또 7장에서는 이러한 실수가 이미 상당한 임금 격차를 경험하고 있는 소외 집단에 어떤 문제를 일으키는지를 다룰 것이다.
수요와 공급 법칙 같은 단순한 모델이나 각자가 지지하는 정치적 관점에서만 급여에 접근하면 문제가 생긴다. 수요와 공급의 역할을 과소평가하자는 게 아니라, 다른 간섭 요인도 고려해야 한다는 의미다. 근로자들이 스스로 기술에 대한 수요와 공급의 결정권을 더 수월하게 행사할 방법이 없지는 않다. 다만 그러려면 그들이 자기 기술을 연마하고 지키거나 신기술을 재교육받을 수 있도록, 급여 담당자들이 시장 개입과 고용 보호의 필요성을 적극적으로 인식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근로자들이 기술과 기회를 개발하거나 더 많은 급여를 찾아 다른 고용주로 원활히 이직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하려는 기업계와 의회의 노력이 필요하다. 이것이 공정 급여를 위한 노력의 의미다.
공정 급여를 논하기에 앞서 ‘공정’과 ‘급여’의 의미부터 정의해야겠다. 급여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정의할 수 있지만, 공정은 정치성이 다분한 단어로 그 의미는 개인의 세계관에 영향을 받는다.
나는 두 가지 이유로 급여와 부의 개념을 구별하려 한다. 첫째, 부의 축적은 기업의 의사 결정보다 세금, 토지, 차별 등에 대한 장기적, 제도적 정책과 더 관련이 깊기 때문이다. 둘째, 나는 기업에서 급여를 결정하는 보상팀을 직접 이끌어본 만큼, 급여가 더 자신 있는 분야이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는 ‘급여pay’와 ‘임금wage’을 혼용할 것이다. 여기에는 기본급, 상여금, 복리후생, 주식 보상 등의 형태로 직원이 벌어들인 금액이 들어가나 임대 수익, 투자 수익 같은 불로소득은 포함되지 않는다. 소유와 경영을 겸하는 창업 기업가들이 자신에게 책정하는 보상도 이 책의 관심사가 아니다. 다만 그들이 직원 급여를 결정하기 전에 이 책을 읽고 직원들에게 공정한 급여를 보장해 주기를 바랄 뿐이다.
부의 불평등은 이 책의 중심 주제가 아니지만, 부의 불평등이 임금 불평등보다 훨씬 암울한 상황인 만큼 간단히 짚고 넘어갈 가치는 있다. 연방준비제도이사회에 따르면 미국인의 상위 10%가 국가 총자산의 70%를 소유하고, 1989년에 기록한 61%보다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하위 50% 가구의 총 가계 자산은 1989년 4%에서 2018년 1%로 감소해 순자산이 거의 전무한 실정이다. 전 세계인의 입방아에 오르내리는 최대 부국 미국은 비유하자면 외딴 도시에 살며 출세한 먼 사촌과 비슷하다. 그는 평소 연락도 없다가 오랜만에 가족 모임에 나타나서는 뷔페의 맨 앞줄에 서서 음식을 포장 용기에 싹 쓸어 담는다. 그동안 우리 같은 대부분 사람은 조그마한 샐러드 접시를 들고 뒷줄에서 초조하게 기다린다. 공정한 급여를 지급할 수 있다면 사람들이 재산을 모으는 구조적 방책이 변할 테고, 시간이 지날수록 빈부 격차도 줄어들 것이다.
기업의 불공정한 급여 지급 관행은 불평등 문제에서 중요하면서도 그동안 간과되어 온 퍼즐 조각 중 하나이므로 눈여겨볼 가치가 있다. 연구에 따르면 소득 불평등의 3분의 2는 기업 간 급여 격차에서, 3분의 1은 기업 내 격차에서 비롯된다고 한다. 또 다른 연구에서는 불평등이 국가 간에는 감소하되 국가 내에서는 증가하는 추세라고 한다. 이러한 결과를 종합하면 불평등을 낳는 두 가지 동인의 교집합이 나타난다. 즉, 한 국가에서 기업이 직원에게 지급하는 급여에 격차가 있음을 알 수 있다. 누가 얼마큼의 급여를 왜 받는지에 대한 기업의 결정을 이해할 수 있다면 사실상 임금 불평등의 주된 원인을 집어낼 수 있다. 기업이 공개적으로 급여에 대해 내세우는 약속에는 공통된 사고방식이 있지만, 공통된 결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한편에는 직원에게 넉넉하고 공정한 급여를 지급하기로 결정한 눈치 빠른 회사들이 있다. 비록 모든 직원이 필수 생계비를 벌기에 부족함이 없고 편견 없이 급여를 받을 만큼 변화하기에는 더딘 속도지만 말이다. 또 다른 한편에는 변화를 꺼리는 회사들이 많다. 그들은 미래의 경력과 형편을 걱정하고 비관하는 직원들을 계속 방치하면 자신들도 뒤처지리라는 것을 아직 깨닫지 못했다.
대기업을 원망하기는 쉽다. 하지만 기업이야말로 공정 급여를 실현하기에 가장 적임인 조직체다. 특히 대기업은 표준화된 직무 설정과 급여 지급 관행을 통해 사실상 기업들 사이에서 급여 체계의 인프라 역할을 한다. 이들의 직무와 관행이 합쳐져 시장 급여 조사에 반영되고, 경제 전반에 걸쳐 공정하다고 간주되는 기본 표준이자 모든 기업이 준수하는 급여 기준점으로 쓰이고 있다. 이 책에서는 이러한 조사의 수많은 허점을 거론할 것이다. 그리고 대기업에 의해 생성된 권력 불균형은 공정 급여를 향한 빠른 전환을 가로막는 걸림돌이다. 이러한 기준점조차 없으면 공정 급여로 향하는 여정은 훨씬 더딜 것이다. 급여를 개별 기업의 고립된 결정에 맡길 수밖에 없다면, 결과적으로 직원들은 자신의 급여에 대해 잘 모를 뿐 아니라 새 출발을 할 때도 공정 급여를 보장받기 어려워진다. 최소한 기업들끼리만이라도 급여 체계가 투명해야 경쟁이 유발될 테고, 이 이유로 한 기업 내에서도 급여 투명성 수준을 근본적으로 높여 직원들이 급여 정보를 쉽게 확인할 수 있게 해야 한다. 또한 대기업은 성별과 인종에 따라 불평등하게 나타나는 급여 문제를 고찰하고 해결하는 데 필요한 데이터의 원천이 되기도 한다.
기업의 급여 체계에 집중하는 관점은 프랑스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Thomas Piketty의 전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21세기 자본』이 토대를 쌓았다. 피케티와 그의 연구팀은 피케티의 표현으로 ‘슈퍼 경영자’라는 집단이 부상하면서 특히 미국에서 임금 불평등을 상당히 부추겼다는 것을 발견했다. 이 발견은 1979년과 2005년 사이에 국민 소득 증가분의 60%가 임원, 경영자, 감독자, 금융 업계로 흘러갔다는 미국의 이전 연구와 궤를 같이한다. 기업 소유주와 창업 기업가도 이러한 결과에 한몫했지만, 공정 급여의 목적을 위해서는 슈퍼 경영자를 논의에서 빠뜨려서는 안 된다. 궁극적으로 우리는 기업 경영을 이끄는 리더들이 모든 직위의 구성원에게 급여 지급 방법에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하는지, 그 결정이 장기적으로 더 강력한 비즈니스를 구축하는 데 어떻게 도움이 되는지 답을 찾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불평등의 원흉으로 슈퍼 경영자들만 탓할 수도 없다. 내 경험에 따르면 그들도 공정한 급여 체계를 설계하는 방법을 잘 알지 못한다. 또한 우리는 임금 불평등을 완전히 타파하는 게 능사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어떤 사람이 남다른 기술과 노력 등 정당하고 바람직한 이유로 더 많은 급여를 받을 수 있다는 점은 대부분 수긍하기 마련이다. 따라서 더 정확한 목표는 급여 산정 과정에 신뢰를 구축하고 더 많은 사람의 주머니에 더 많은 돈을 안겨줌으로써 불공정하고 불평등한 급여로 인한 사회 전체의 불안을 해소하는 것이다.
회사가 급여를 바라보는 관점을 살펴보기에 앞서,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잠시 이민을 언급하겠다. 이민자는 골치 아픈 존재로 취급받기는 해도 회사의 급여 전략 결정에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대개 영주권을 얻기 전 임시 보호 신분에 있는 노동자는 하청업체에 취업한다. 그러므로 회사의 급여 정책에서 완전히 벗어나 있고, 자체 보상팀에서 관리하지도 않는다. 이민이 자국민의 임금을 떨어뜨린다는 주장도 있지만 근거가 제각각이며, 대체로 연구 대상 국가의 지리적 조건에 크게 좌우된다. 또한 「포춘」 500대 기업의 45%는 미국으로 이주한 1세대 또는 그 가족이 설립했으며, 특허 건수의 28%는 이민자 출신이 보유하고 있다. 이를 토대로 공정 급여를 위해서는 이민자를 배척할 게 아니라 환영해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민은 더 경쟁력 있고 혁신적인 기업이 탄생하는 데 도움이 되며, 결과적으로 공정 급여에도 기여할 것이다.
또한 기술과 자동화가 직장 생활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리라고 예상하지만 기계가 모든 직업을 앗아갈 것 같지는 않다. 기계가 일자리를 위협한다는 이야기는 ‘6,000년 인류 역사상 가장 흔한 직업’이었던 농부를 대체한 트랙터부터 은행의 ATM(현금자동입출금기)에 이르기까지 이미 과거에도 나돌았다. ATM이 처음 등장했을 때 은행 창구 직원은 곧 해고될 것이라는 게 세간의 통념이었다. 하지만 시중 은행은 새로운 사업 분야와 예금 서비스 방식을 발굴해 고용을 늘렸다. 살아남은 일자리와 새로 생긴 일자리의 가치를 따져봤을 때 일자리의 질이 확연히 낮아지긴 했지만, 어쨌든 총 가용 일자리는 자동화 도입 이후로도 아직 줄어들지 않았다. 몇몇 직업은 당연히 사라지겠지만 새로운 직업도 생겨날 것으로 예상된다. 독일, 일본, 특히 한국 등은 노동자 대비 로봇 비중이 미국보다 훨씬 높지만, 실업률은 미국과 비슷한 수준이고 소득 불평등도는 오히려 낮다. 문제는 로봇과 인간 중 양자택일이 아니다. 대신 새로 창출되는 일자리(대부분 서비스업이나 돌봄 직종)의 가치에 로봇이 득이 될지 실이 될지를 고민하고, 사람들이 새로운 유형의 직업으로 무난히 전환해 생계를 유지할 수 있게 도울 방법을 찾아야 한다. 코넬대의 루이스 하이먼Louis Hyman 교수는 『임시직의 시대Temp』에서 “요점은 우리가 로봇보다 더 뛰어난 로봇이 되는 게 아니다. 대신 앞 세대와 비교해 더 인간적인 직업, 즉 창의성, 돌봄, 호기심을 발휘할 일자리를 늘려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책은 경제 도서는 아니지만, 공정 급여를 다룬 풍부한 경제 연구와 기업계의 통찰력을 결합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어떤 주장을 입증하려고 필립스 곡선이나 지니 계수 같은 모델을 동원하는 건 자제할 생각이다. 그런 작업은 다른 사람들이 더 잘하고 이미 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다음 연봉 협상 때 상사에게 명목 임금 상승률의 변화 추이를 차트로 보여주며 설득하고픈 독자들은 별로 없을 듯하다. 대신 직원과 급여 담당자 간의 마찰을 줄이려는 과정에서 우리가 직장에서 일상적으로 겪는 경험을 바탕으로 쉬운 언어를 사용해 서술할 것이다.
이번에는 불공정 급여의 의미가 무엇인지 정의할 차례다. 무엇이 공정하고 불공정한지 결정하는 것은 논란의 여지가 있고, 대개 개인이 처한 상황에 따라 달리 정의된다. 예컨대 억만장자인 (또는 억만장자를 꿈꾸는) 기업가는 승자가 전리품을 챙기는 것이 공정하다고 말할 것이다. 그들에게는 패자가 승자를 무너뜨리는 공정이란 있을 수 없는 개념이다. 또 반대편에는 노동자와 자연을 착취하거나 법망을 빠져나가지 않고서야, 한 개인이 10억 달러를 버는 일은 불가능하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다. 전자처럼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앞으로 공정한 세상이 오지 말아야 한다. 그들은 공정이라는 개념이 커트 보니것Kurt Vonnegut의 단편 소설 『해리슨 버저론Harrison Bergeron』에서 그리는 획일적 평등과 같다고 믿기 때문이다(그리고 항상 이 소설을 근거로 들먹인다). 이 소설 속의 미래는 뛰어난 지능을 의료용 전기 충격기로 하향평준화하고, 발레리나의 높은 점프력은 탄약 주머니로 짓누르며, 미모는 가면으로 감추는 등 개인의 선천적 장점에 핸디캡을 부여한다. 이야기의 서두는 “2081년, 마침내 모든 사람이 평등해졌다”로 시작한다. 반면에 후자처럼 생각하는 사람에게 공정이란 결코 현실에서 볼 수 없는 유토피아와 같다.
얼마큼의 급여가 공정하고 불공정한지 목표가 끊임없이 왔다 갔다 하고, 앞으로 펼쳐질 미래가 유토피아가 될지 디스토피아가 될지도 불확실하다. 그러니 앞의 두 방식으로 논쟁을 분석하기보다는 경영적 사고방식으로 공정의 의미를 생각하는 것이 좋겠다. 공정 급여라 할 때 모든 당사자 사이의 공통된 인식은 정직한 절차에 따라 누구에게나 최소한의 생계비에 약간의 품위 유지비가 포함된 충분한 급여를 지급한다는 굳건한 합의가 깔려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2019년 세계경제포럼World Economic Forum 백서에는 “최고의 성과를 내는 기업은 노동자와 그 가족에게 기본적 생계와 최소한의 품위 유지에 부족함이 없게끔 양질의 일자리, 공정한 생활 임금, 적절한 복리후생을 차별 없이 제공한다”라고 기술되어 있다. 많은 전리품을 획득한 승자들의 모임인 다보스포럼에서 ‘공정’ 같은 민감한 단어를 피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더더욱 피하지 말아야 한다. 관념적으로 공정에 찬성하기는 쉽다. 실천이 훨씬 어려운 게 문제다.
우리는 서로 급여에 대해 터놓고 이야기하도록 독려해야 한다. 앞서 보았듯 이 논의의 출발점은 강자의 관점에서 비롯되어서는 안 된다. 공정 급여와 관련해 그럴싸한 표현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공정 급여가 현실이 될 수 있다는 믿음은 부족하다. 이를테면 ‘급여 투명성pay transparency’이나 ‘임금 평등pay equality’ 같은 문구가 자주 들리긴 해도, 그것이 무슨 의미인지 잘 모르거나 자기 회사나 급여에는 적용되지 않는 딴 세상 이야기라고 믿는 사람이 많다. 우리 같은 급여 담당자들은 급여가 완전히 투명하게 공개되면 자신의 가치에 동료들이 의문을 품을까 걱정한다. 예컨대 우리는 지난주 전략 회의 도중에 인스타그램으로 딴짓하던 모습을 동료들에게 들키기도 하지 않는가. 혹은 우리 급여가 남들보다 적다면, 동료들이 그 사실을 알게 되고도 급여 격차가 해소될 때까지 항의하는 의미로 같이 태업하고 응원해 주지 않을 때 서운해할지도 모른다. 반대로 우리 중 비교적 높은 급여를 받는 사람들도 자신의 자리와 급여를 호시탐탐 노리는 구직자들의 공격을 방어하는 동시에, 능력으로 몸값을 증명해야 하는 신세가 되어 노심초사할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모든 사람에게 공정 급여를 보장해 주자는 의지를 다지는 대신, 이 주제를 아예 외면한다. 마음 한구석은 불안해도, 어쩔 수 없이 주어진 (또는 알고 싶어 하는) 단편적 정보에 기대어 급여를 결정한다.
급여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을 금기시하는 분위기 탓에 기업은 손해를 입고 사람들은 죽음으로 내몰린다. 여기서 죽음은 말 그대로의 뜻이지 과장법이 아니다. 스탠퍼드대 교수 제프리 페퍼Jeffrey Pfeffer가 주도한 연구에 따르면 매년 미국에서 불안정한 직장 생활로 사망하는 인구가 약 12만 명에 달한다고 한다. 이는 연간 교통사고 사망자 수의 네 배에 달하는 수치다. 그리고 직장인들의 불안은 급여, 복리후생 등과 무관치 않다. 또 다른 연구에 따르면 시간당 최저임금이 1달러 인상될 때마다 고졸 이하 학력자의 자살률이 낮아진다고 한다. 미국 남부 주들은 인위적인 소득 재분배 목적으로 최저임금 법률을 제정하는 경우가 비교적 적어, 임금이 대체로 낮은 편이다. 영국의 자선단체 이퀄리티 트러스트Equality Trust의 연구에 따르면 이러한 소득 불평등의 결과로 남부 주에서 살인 발생률이 다른 지역에 비해 3분의 2 정도 높다고 한다. 이 연구를 통해 급여 액수 자체도 물론 중요하지만, 노동자 간 급여 분포가 살인 발생률의 차이에 더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을 알 수 있다. 앞으로 각 기업의 인사 부서가 ROI(투자자본수익률)에 ‘구해낸 목숨’을 포함해 회사 내부의 성과 지표로 계산할 날이 과연 오게 될까?
결국 우리 보상팀이 급여를 정하는 결과가 소득 불평등으로 인한 사람들의 불안을 억제하지 못하거나 나아가 부채질하는 만큼, 우리는 세상에 커다란 폐해를 일으킬 수도 막을 수도 있다. 태어나서부터 소위 ‘절망사deaths of despair’에 이르기까지 우리 삶의 전 단계에 소득 불평등이 미치는 영향은 워낙 일상화되어서,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할지 고민하는 데도 무감각해졌다. 대부분 우리는 급여 문제를 어디서부터 손대야 할지 막막하게 여긴다. 수요와 공급 법칙 같은 단순한 모델은 단순한 해결책을 제시하므로 불공정 급여라는 복잡한 문제를 해결하기엔 역부족이다. 경제적 불안, 임금 정체, 소득 불평등같이 불공정 급여가 가져올 후속 효과에서 사람들을 마법처럼 구해줄 방법은 없다. 도시의 일부를 경제 기회 특구Economic Opportunity Zones로 설정해 규제를 철폐하고 해당 지역을 활성화하자는 발상은 개인의 정치적 견해와 금융권 종사 여부에 따라 경제 부흥의 촉매제로 보일 수도 있고, 혹은 디스토피아에 빠뜨릴 늪지대로 보일 수도 있지만 어쨌든 불공정 급여의 해결책은 되지 못한다. 또 빈부 격차를 메우기 위해 사람들에게 일정 소득을 제공하는 보편적 기본 소득(UBI)은 규모에 따라 효과가 있을 수도 없을 수도 있지만 빈부 격차의 근본 원인인 불공정 급여를 뿌리 뽑지는 못할 것이다. 기본 운영 체제에 결함이 있으면 앱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듯, 정책 프로그램도 마찬가지다. 분명 우리는 급여에 대해 생각하고 말하는 방식을 새롭게 바꿀 필요가 있다. 가장 직접적인 해결책이 곧 최선의 해결책이다. 즉, 더 많은 사람이 더 많은 돈을 벌게 해줘야 한다.
우리는 공정 급여를 위해 쓸 수 있는 도구를 일일이 찾아보고 시험해야 한다. 나는 현재의 급여 체계가 구제 불능까지는 아니라고 믿는다. 전 세계의 기업 리더와 노동자가 공정 급여의 역할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면서 한 줄기 희망의 빛이 보였기 때문이다. 어쩌면 우리가 앞을 향해 나아가지 못하는 이유는 현실의 인식, 창의성, 그리고 까다로운 일을 해결하려는 정치인들의 의지가 부족한 탓일 것이다. 아니면 기득권층의 악의적인 주장이 방해 요인일 수도 있다. 이 모든 것도 사실일 수 있지만, 더 큰 이유는 변화의 실권을 쥔 급여 담당자들의 대다수가 구내식당에 연어가 남아 있을지에 더 마음이 쏠린 나머지 우리가 자초한 문제를 타개할 생각을 못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고용주가 평가하고 지급하는 대로 급여를 받는 데 익숙해져서 소득 불평등이 악화하고 있다는 언론 보도에도 무뎌졌다. 이러한 부담은 개인을 힘들게 할 뿐 아니라, 결국 기업에도 손해를 끼친다. 나아가 다른 사람들이 겪는 불의에 눈감지 않고 함께 목소리를 내려는 사람들의 용기도 위축되게 한다. 그러는 사이 많은 사람은 이 나락의 소용돌이가 우리의 뉴노멀(새로운 기준)일지 모른다는 암울하고 절대론적인 견해를 서서히 받아들이게 되었다.
2008년 금융 위기 이후 미국에서 창출된 일자리 중 4분의 3이 중산층 소득보다 적은 급여를 받고 있다. 분명히 말하자면 이는 우리가 선택한 결과다. 노동통계국이 2028년까지 가장 많아질 것으로 예상한 상위 25개 직업은 2018년 기준 중위 임금이 시간당 16달러였으며, 이 중 최소 15개 직업은 대학 학위가 필요하지 않다. 이 직업들은 로봇 조종사 같은 유형이 아니다. 바로 식당 종업원, 개인 간병인 등이 상위 10위권을 차지했다. 우리는 비영리단체 유나이티드웨이United Way가 명명한 ‘일을 하지만 자산과 소득이 제한적인 노동자asset limited, income constrained, and employed’의 약어, 즉 소위 ALICE 시대로 진입했다. 이러한 직종은 더 이상 기회나 진보의 지표가 아니라 사람들의 ‘결핍’을 보여주는 신호다. 이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
급여 담당자들은 급여를 우리가 바꿀 수 있는 일이 아니라 그저 주어진 일이라 생각한다. 대신 임원들이 회의실에 앉아 어떻게 직원들을 빈곤에 빠뜨릴지 궁리한다고 믿는다. 스타벅스 임원들이 퓨젓만Puget Sound이 내려다보이는 집무실에서 비공개 우유 대체물로 만든 라테를 홀짝이며 계략을 꾸미는 모습은 상상만 해도 우리 귀를 솔깃하게 한다. 하지만 ‘우리를 압박하는 사람’은 실재하지 않는다. 사악한 계략은 더더욱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기업 임원들이 공정 급여를 관심 목록 1순위로 두지 않을 뿐이다. 근본적으로 조직구조상 한참 아래에 있는 실무자가 급여를 결정하다 보니 급여 체계가 일관성이 없다. 다시 말해 ‘실세’는 슈퍼 악당이라기보다는, 매년 생일이면 꼬박꼬박 용돈을 보내주지만 내 친구의 이름은 하나도 모르는 부재중인 아빠와 비슷하다.
급여를 결정하는 가장 강력한 힘은 고의가 아닌 타성인 만큼, 우리 모두 이 논쟁에 일조한 셈이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직원들의 급여에 영향을 미치는 사람은 중간 관리자급의 급여 담당자들이다. 엑셀로 묵묵히 급여표를 작성하고, 급여에 불만을 느끼는 직원들의 분노에 찬 이메일에 답장하고, 다른 회사들의 급여는 어떤지 검색하는 게 그들의 업무다. 어느 기업을 가든 사무실 풍경은 비슷하다. 수집하는 제삼자 데이터도 회사마다 똑같고, 직원의 삶의 질 개선보다 회계 부서의 편의를 더 챙기는 업무 방식도 마찬가지다. 특별한 책략이 오가는 것도 아니고 생각보다 평범한 광경이지만, 동시에 이 이유로 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