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비라 나바로Elvira Navarro
1978년 스페인 우엘바에서 태어나 마드리드 콤플루텐세 대학교에서 철학을 전공했다. 2007년 십대 소녀 ‘클라라’의 성장통을 그린 《겨울의 도시La ciudad en invierno》를 발표하며 데뷔했고, 기존 성장소설의 틀을 파격적으로 깨뜨렸다는 평을 받으며 같은 해 프낙 신인작가상을 수상했다. 2009년 스페인으로 이민 온 중국인 어머니와 아들의 이야기를 전면에 내세운 《행복한 도시La ciudad feliz》를 선보였다. 이 작품은 하엔 소설상과 토르멘타엔운바소 신인작가상을 수상했으며, 일간지 <푸블리코>에서 뽑은 ‘올해의 소설’에 선정되었다. 2010년에는 영국 문예지 <그랜타>에서 선정한 ‘35세 이하 최고의 스페인어권 작가 22인’에 오르는 등 스페인 문학을 이끌어갈 차세대 젊은 작가로 공고히 자리매김했다. 이외에도 《일하는 여성La trabajadora》 《아델라이다 가르시아 모랄레스의 마지막 나날Los últimos días de Adelaida García Morales》 《아드리아나의 목소리Las voces de Adriana》 등을 출간하며 활발히 작품 활동을 이어나갔다.
2019년 발표한 《토끼들의 섬》은 환상과 현실, 과거와 현재, 도시와 변두리, 기억과 기록 등 경계와 틈새를 넘나드는 소설집. 새가 들끓는 섬에 눈처럼 새하얀 토끼를 풀어놓으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 표제작 <토끼들의 섬>, 귀에서 발이 돋아나는 어느 여성의 나날을 기록한 <스트리크닌> 등 초현실적이고 기묘한 이미지가 넘실거리는 11편의 작품이 수록되어 있다. 출간 직후 안달루시아 비평가상 단편소설부문을 수상했으며 스페인 최고 유력지 <엘파이스>의 ‘올해 최고의 책’으로 선정되었다. 2021년에는 “프란츠 카프카와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의 문학적 성취를 이어받아 유럽 사회가 당면한 불안을 이야기하는 걸작”이라는 찬사를 받으며 전미도서상 번역문학부문 후보에 올랐다.
디자인 이경희 ⓒ 김영사 디자인실
일러두기
• 모든 주는 옮긴이주입니다.
• 인명, 지명 및 고유명사는 외래어표기법을 따르되 현지 발음을 고려해 표기했습니다.
• 성서 구절은 대한성서공회의 《공동번역 성서》를 참고하였습니다.
그는 통나무배를 만들어 과달키비르 강에 띄우려 했다. 스포츠에 관심이 있는 것도 아니고 자주 사용할 목적으로 배를 만든 것도 아니다. 강에 있는 작은 섬을 모두 답사하고 나면 배는 창고에 두거나 팔아버릴 생각이었다. 비록 그가 만든 물건은 발명품이라 하기는 어려웠지만 그는 스스로를 발명가로 여겼다. 사용 및 제작 설명서를 참고한 적이 없기 때문이었다. 그는 자신이 떠올린 모든 아이디어를 발명이라고 간주하기 시작했다. 이미 만들어진 물건을 조립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스스로 발견하는 것이 그가 사용한 방법이었다. 보통 몇 달이 소요되었고, 그는 이 일이 진정한 천직이라고 여겼다. 다시 말해, 이미 발명된 것을 발명하는 일 말이다. 그가 얻은 즐거움은 주말 등산객이 산 정상에 도달할 때 느끼는 쾌감과 비슷했다. 그럴 때마다 그는 개인의 성취감이란 왜 그렇게 이상한 느낌인지 궁금했다. 가짜 발명가는 공예 학교에서 일했다. 자신의 강의가 학생들에게 매우 유용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아침이면 아무런 성취감도 느끼지 못한 채 수업에 나갔다.
어린 시절부터 그는 바다로 뻗어 있는 지협地峽이나 반도, 아니면 무인도를 여행하겠다는 꿈을 품었다. 열여덟 살 때, 부모님이 타바르카 섬에 함께 가자고 했다. 거기가 무인도라면서 말이다. 그는 그곳이 덤불만 무성한 황무지이리라 생각했지만, 정작 눈앞에 나타난 것은 허름한 집이 늘어선 거리 일곱 곳, 높은 담, 교회, 등대, 그리고 호텔 두 개와 작은 항구였다. 부모님은 함께 휴가를 가자고 설득하기 위해 타바르카 섬에 아무것도 없다고 과장했는지도 모른다. 그를 혼자 집에 남겨두고 싶지 않았을 테니까. 하지만 그가 사람이 살지 않는 곳에 가고 싶다고 말했을 때, 그 의도를 정확히 이해하지 못했을 가능성도 있다.
도시 가장자리를 따라 흐르는 과달키비르 강에 섬이 몇 개나 있는지 헤아리기 힘들었다. 특히나 일부 섬은 작은 반도처럼 보여 애를 먹었다. 9월의 어느 아침, 그는 선착장으로 가서 자기가 만든 통나무배를 강에 띄웠다. 배를 조종하는 요령을 익히느라 며칠을 보냈다. 일단 방법을 터득하자 본격적으로 탐험을 시작했다. 몇 주 동안 비가 한 방울도 오지 않았다. 가뭄으로 수위가 크게 낮아졌고, 잔잔한 강물에서는 지독한 냄새가 났다. 그는 불안과 걱정에 휩싸인 채 섬 주변을 맴돌았다. 배를 물가에 댈 수조차 없었다. 자기가 배를 기민하게 움직일 수 있을지 의심스러웠다. 강기슭이 진창이라서 함부로 내렸다가 미끄러져 넘어지고 배가 떠내려갈까 봐 두려웠다. 썩은 물을 마시지 않으려 입을 꾹 다물고 헤엄쳐 돌아갈 생각만으로도 끔찍했다. 게다가 자연 그대로의 모습, 그러니까 온갖 벌레가 윙윙거리며 들끓는 덤불과 진흙땅을 뒤덮은 새똥을 보자 등골이 오싹했다. 한때는 아름답다고 생각했지만, 자연이란 그저 새의 무게나 병으로 인해 구부러진 나무, 떼 지어 날아다니는 벌레, 오물에 썩어버린 관목 정도에 불과했다.
통나무배를 타고 돌아다닌 지 닷새째 되던 날, 그는 과달키비르 강의 굽이를 넘어가보기로 마음먹었다. 남쪽으로 노를 저어가는 동안 시골 평원의 완만한 언덕을 볼 수 있었다. 거기 있는 섬들은 크기가 작고 바위투성이인데다 두드러기가 난 것처럼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그는 섬 주변으로 힘겹게 노를 저어 나갔다. 마지막 섬을 지나치려는 순간, 갈대 사이로 물에 둥둥 떠 있는 남자 시체가 눈에 띄었다. 속옷 차림으로 엎드려 있었고 등에는 주먹만 한 물집이 가득했다. 9월인데도 여전히 뜨거운 햇빛 때문에 생긴 건지, 아니면 몸속에 더러운 강물이 들어차서 생긴 건지 알 수 없었다. 강물에서 악취가 풍겼다. 그는 즉시 민방위대에 신고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경찰관이 도착했지만, 타고 온 구명정이 너무 커서 갈대숲을 헤치고 들어올 수 없었다. 다행히 구명정에 카누 한 척이 실려 있었다. 카누에 올라탄 뚱뚱한 경찰관이 노를 저어 다가왔다. 그는 구명정으로 가 현장을 떠나도 되는지 물었다. 뻣뻣해진 시체가 강 밖으로 끌려 나가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았다. 고개를 돌려 저쪽을 보는 순간, 물고기 떼가 생내장을 뜯어 먹는 장면을 마주하리라 생각하자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그는 사체를 발견한 후로 여러 날 동안 강 근처에도 가지 못했다. 시간이 조금 흐른 뒤에야 저녁에 다시 섬 주변을 산책하기 시작했다. 어느 날, 그는 용기를 내 선착장에서 가장 가까운 섬에 발을 디딘 후 거기서 살기로 결심했다. 이제 도시 생활에 신물이 난다고, 아무도 하지 않는 일을 한다는 생각에 마음이 설렌다고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가 도시의 거리를 돌아다닐 때면 가끔 떠올리던 터무니없는 생각이기도 했다. 도시는 지나치게 자기중심적이어서 억지로 그를 중심부로 끌고 들어가려는 듯 보였다. 하지만 솔직히 그는 하필 구역질 나는 좁은 땅에서, 도시보다 훨씬 더 역겨운 느낌이 드는 그 땅에서 살기로 결심한 이유를 도저히 설명할 수 없었다.
강기슭에서 가장 가까운 섬이지만, 수풀이 우거져서 안쪽이 보이지 않았다. 그는 섬 한가운데를 뒤덮은 덤불과 몸통이 너무 가늘어 밧줄처럼 보이는 나무를 모조리 베어냈다. 그토록 허약한 나무가 어떻게 무성한 가지와 잎을 버티고 있었을까? 그는 카키색 대신 빨간색 텐트를 치기로 했다. 텐트를 치면 외부와 차단되었지만, 온몸이 벌레로 뒤덮인 채 깨어날지 모른다는 공포는 그대로였다. 더 높은 곳에서 잠을 자면 구더기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구더기는 땅 여기저기를 더럽히고 되는 대로 우글거리면서 포식자를 감지하는 것처럼 보였다. 새들은 모래에 부리를 박고 뒤적여 어렵지 않게 구더기를 찾아 잡아먹었다. 구더기는 무진장한 먹잇감이었지만, 새들이 늘 그것만 먹지는 않았다. 구더기는 대부분 물로만 이루어져 영양가가 많지 않았기에 다른 벌레를 잡아야 했을지 모른다. 어느 날 오후, 그는 구더기 한 마리를 손바닥에 올려놓고 찬찬히 뜯어보았다. 춤추듯 꿈틀거리는 구더기를 손가락으로 살짝 누르자 작은 풍선처럼 터졌다.
날마다 섬에서 잠을 잔 것은 아니었다. 만약 그랬더라면 미쳐버리고 말았을 테다. 일주일에 두어 번 거기서 깨는 것으로도 충분했다. 과달키비르 강에 떠 있는 자그마한 섬에서 밤을 보낼 때면, 새벽녘에 윙윙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올빼미가 공격할 때를 제외하고 새들은 조용히 밤을 보냈다. 이따금 포플러나무에서 쫓겨날 때 날개를 푸드덕거리는 소리만 들렸다. 어둠이 내려앉으면 머리를 날개 아래 처박고 가슴을 부풀린 새 떼가 나뭇가지에 빽빽이 들어찼다. 나뭇가지 끄트머리에서 자던 녀석이 꾸벅꾸벅 졸다가 종종 떨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그를 정말 괴롭히는 것은 밤에 새들이 떨어지면서 내는 소리가 아니라, 해 질 녘에 좋은 나뭇가지를 찾기 위해 서로 싸우며 내는 날카로운 소리였다. 너무 요란해서 좁디좁은 땅에 대체 얼마나 많은 새가 모여들었는지 가늠조차 할 수 없었다. 줄잡아 수천 마리는 될 듯싶었다. 꽥꽥거리는 소리가 거의 한 시간 동안 귀청을 울렸다. 헤드폰 볼륨을 최대한 높여 음악을 들었지만 아무 소용 없었다. 심지어 쫓아버리려고 텐트 밖으로 나가 소리도 질러보았지만 녀석들은 그가 있는지도 몰랐다. 그의 고함은 대양 한가운데 떠다니는 해초 한 조각만큼이나 보잘것없었다. 어쩌면 녀석들은 그를 자기 무리 중 괴상한 새쯤으로 여겼는지도 모른다. 고래고래 소리를 지른 바람에 목이 아팠지만, 기괴한 표정을 지으며 악을 쓰다 보니 속이 후련해졌다. 그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는 종종 시간 감각을 잊고 새들이 모두 잠든 깊은 밤중에도 계속 울부짖었다. 그때 강변을 따라 산책하는 사람이 있었다면, 무슨 짐승이 우나 보다 여기면서 섬 쪽을 바라보았을 것이다.
새들은 자고 번식하고 죽기 위해 섬을 찾아왔다. 섬 전체가 새 둥지와 배설물로 가득 찼다. 집에 돌아가 샤워를 해도 몸에 밴 배설물 악취가 없어지지 않았다. 섬에 우글거리는 하얀 새는 분명 골칫덩어리였다. 선착장 부근에서 낚시하던 어느 노인이 그렇게 말했다. 가짜 발명가는 새의 이름을 물었지만 노인도 몰랐다. 인터넷 검색으로도 찾지 못했다. 그는 과달키비르 강의 동물도감을 훑어보았다. 섬에 있는 새는 책 속의 해오라기와 생김새가 전혀 달랐다. 그는 더 찾아보지 않았다. 설령 그 새가 어떤 종에 속하는지 알아낸다 해도 상관없었다. 자기를 무시할 뿐만 아니라 돌팔매질을 해도 아랑곳하지 않고 잠만 자는 녀석들에게 일주일에 두어 번 악을 쓰는 인간이 되겠다는 결심에는 변함이 없었다. 분노를 삭이지 못해 허약한 나무 몸통을 마구 흔들어도 새들은 보는 척조차 하지 않았다. 그럴 때면 나무 꼭대기가 좌우로 움직이다가, 때때로 심하게 흔들리기도 했다. 가지가 흔들거릴 때마다 그는 건장한 짐꾼이 섬을 어깨에 짊어지고 걷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몇 주가 지나자 가짜 발명가는 섬을 차지한 것이 정당한 행위라고 확신했다. 텅 빈 땅에 거주하는데 허락을 구할 필요가 있겠는가? 그는 나머지 섬에 아직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았다는 사실이 좀처럼 믿기지 않았다. 하지만 그 정도는 최악의 사실이 아니었다. 가장 견디기 어려운 것은 삼십만 명이 넘는 도시 주민의 호기심 부족이었다. 그렇게 많은 사람 중 코앞에 있는 섬을 찾아간 사람이 어떻게 한 명뿐이었을까.
그는 누가 훔쳐 가는지 보기 위해 일부러 텐트에 돈을 남겨두기 시작했다. 과달키비르 강에서 배를 타고 노를 저어 가는 이가 모두 도둑일 리는 없지만, 숨어서 무언가를 노리는 강도나 거액의 지폐를 보고 슬쩍할 배고픈 부랑자가 분명 있을 것이었다. 그는 매일 텐트에 50유로가 남아 있는지 확인했다. 돈은 늘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아무도 집어가지 않았다. 아무도 섬에 발을 들여놓지 않았다.
이미 발명된 것을 발명하지 않을 때면 가짜 발명가는 스스로 예술이라고 부르지 않는 설치물을 만들었다. 그는 짖을 때 앞다리를 움직이고 눈에서 빛을 내는 장난감 강아지 열 마리의 천 외피를 벗겼다. 그런 다음 강아지를 토끼 우리에 집어넣고 발 밑에 벗긴 외피를 깔았다. 리모컨으로 강아지를 움직이게 하는 장치도 고안했다. 친구들이 집에 찾아왔을 때, 그는 리모컨 버튼을 눌렀다. 외피를 벗긴 장난감 강아지들이 멍멍 짖으며 자기 껍질 위에서 다리를 앞뒤로 움직였다. 동시에 눈에 노란 불이 켜졌다.
친구들이 그 설치물을 동물 보호 캠페인을 벌이는 단체에 팔자고 제안하자 그는 어깨를 으쓱했다. 이런 아이디어는 이미 누군가가 써먹지 않았을까?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어디선가 비슷한 것을 봤기에 그 아이디어가 떠올랐으리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설치물이 예술이라고 칭찬받는 것을 극구 사양했다. 성급하게 전시했다가 다른 이의 작품을 모방했다고 입방아에 오르내릴까 두려웠다. 아이디어를 어디서 얻었는지 기억할 수 없다손 치더라도, 그는 자신이 독창성이라는 관념을 아예 믿지 않을뿐더러 오랫동안 열심히 그런 주장을 펴왔는데 왜 비난이 두려운 건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장난감 강아지로 가득 찬 토끼 우리 말고도 그는 아주 다양한 작품을 만들었다. 가령 찬장에서 기계 벼룩이 펼치는 서커스, 홈파티에서 손님들이 직접 치즈를 녹일 수 있도록 사용하던 다리미 두 개로 만든 샌드위치 토스터, 이십 년 넘게 먼지 쌓이고(이제 먼지라기보다는 쓰레기 덩어리였다) 세상을 떠난 친척들의 죽은 세포가 그 속에 잠들어 있어서 더욱 소중한 책 더미 등이었다.
그가 섬에 토끼를 풀어 새를 쫓자는 아이디어를 떠올린 것은 장난감 강아지를 넣어둔 토끼 우리 덕분이었다. 그는 더는 섬에서 밤을 새우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이미 소리도 지를 만큼 질렀다. 토끼를 관찰하고 낮잠을 자기 위해 텐트는 그대로 두기로 했다. 가을이 깊어지면서 시계도 한 시간씩 늦춰졌다. 오후 4시에 노를 저으며 시원한 강바람을 즐긴다고 해도 더는 정신 나간 사람 취급을 당하지 않을 것 같았다. 물론 심한 가뭄으로 인해 강물에서 여름 못지않게 악취가 났지만 말이다. 그는 엄청나게 빠르게 번식하는 토끼 스무 마리(수컷 열 마리와 암컷 열 마리)를 샀다. 조만간 섬에는 토끼 먹이가 부족해질 것이다. 가짜 발명가는 먹을 것이 떨어지면 토끼가 땅에 있는 새 둥지를 공격하리라고 생각했다. 섬에서 새끼를 기를 수 없으면 새들은 당연히 다른 섬으로 날아가버릴 테다.
토끼들은 아주 하얗고 긴 털과 빨간 눈을 가지고 있었다. 흰토끼는 회색이나 밤색 토끼보다 비쌌지만, 새와 털 색깔이 같다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그는 토끼를 퍼뜨려야 자신도 계속 섬에서 살 수 있다고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는 토끼를 텐트에까지 들였다. 안에 있으면 햇빛을 피할 수 있는 데다, 섬의 땅이 굴을 파기에 적합하지 않았기에 토끼는 텐트를 좋아할 수밖에 없었다. 텐트에 들어온 토끼들은 털이 없어서 쥐처럼 보이는 새끼를 낳았다.
토끼들이 풀을 다 먹어치우자 새 둥지에서 알이 사라졌다. 알은 토끼가 특히 좋아하는 먹이였다. 그는 토끼들이 푸르스름한 빛깔의 얇은 껍질을 먼저 갉아 먹으려고 싸우는 모습을 여러 차례 목격했다. 하지만 녀석들은 새끼 새를 놓고는 싸우지 않았다. 가짜 발명가의 눈에 새끼의 살을 먹는 행위는 마지못해 결정한 어쩔 수 없는 선택처럼 보였다. 둔한 머리로 잔인한 상황을 나름대로 이해하는 듯, 슬픔마저 느껴졌다. 그가 생각하기에 토끼의 행동은 주인인 자신의 인간성과 일치했다. 그래서 토끼들이 처음에는 양심의 가책을 느끼는 듯 보이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뼈조차 남기지 않게 되자 놀랐다(어떤 사람이라도 그랬을 테다). 토끼들은 우선 날카로운 앞니로 새의 목덜미를 공격했다. 그러고 나면 떨리는 주둥이와 가는 수염이 눈 색깔과 똑같이 피로 빨갛게 물들었다. 얼마 되지도 않는 살점을 다 뜯고 나면, 녀석들은 마른 나뭇가지가 분질러지는 이상한 소리를 내며 한동안 뼈를 갉아 먹느라 여념이 없었다. 토끼들은 심지어 부리까지 깨끗이 먹어치웠다. 그런 다음, 털이 다시 하얗게 될 때까지 부지런히 몸을 단장했다.
토끼 떼가 잔치를 벌이는 동안 새들은 가슴이 미어지는 듯 구슬픈 울음소리를 내며 주변을 날아다녔다. 새끼가 바위 뒤에서 나타나기라도 할 것처럼 몇 시간 동안이나 범죄 현장을 떠나지 못하고 맴돌았다. 그는 새가 토끼를 공격할 생각을 전혀 하지 않는다는 점이 이상했다. 우르르 몰려들어 날카로운 부리로 토끼 눈알을 뽑아버리면 간단할 텐데, 새는 집단으로 움직이는 본능이 없는 듯했다.
섬에서 태어난 토끼가 살과 알 외에는 아무것도 먹지 않을 것이고, 그런 부자연스러운 상황이 불행한 결과를 초래하리라는 점을 그는 전혀 예측하지 못했다. 새들은 너무 어리석어서, 아니면 너무 무모해서 한동안 계속 섬에 둥지를 틀었다. 하지만 둥지가 점차 사라지자 가짜 발명가는 토끼 새끼도 같은 운명을 겪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어느 날 아침, 그는 토끼 새끼들이 자꾸 사라지는 이유를 목격했다. 같은 종족이 새끼를 잡아먹은 것이다. 그 광경을 보고 겁에 질린 그는 그 짐승이 자신의 연장延長이라는 생각을 버렸다. 새와 마찬가지로 토끼 역시 커다란 재앙이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런데도 그는 계속해서 토끼를 찾아갔다. 생각 없이 그들을 섬에 풀어놓음으로써 타락시켰다는 죄책감을 떨칠 수 없었다.
어느 날, 그는 토끼들에게 사료를 주었다. 토끼는 코를 킁킁거리며 냄새만 맡더니 이내 소름 끼치는 짝짓기에 몰입했다. 그들은 먹기 위해 번식하는 법을 배웠고, 결과적으로 짝짓기 횟수는 점점 늘어났다. 가짜 발명가는 환경의 필연성과 요구로 인해 임신 기간이 단축되었음을 깨달았다. 암컷이 새끼를 낳으면 모두가 새끼 토끼를 먹었다. 조용히 출산이 이루어지는 동안, 토끼들은 마치 어미를 잡아먹을 수도 있다는 듯한 눈초리로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토끼가 둥지에 더는 관심을 보이지 않자 새들이 다시 섬에 둥지를 틀었다.
강기슭에서도 텐트가 보였지만 그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섬에 쳐놓은 텐트는 도시 순환 고속도로 다리 아래 있는 집시나 거지의 천막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먼저 성가시게 굴지 않는 한, 그들이 거기서 못 자게 막는 이는 없었다. 섬은 강 건너편에서 어렴풋이 보이는 역사유적지구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있었다. 텐트 맞은편에서는 도시의 끝자락이 보였다. 보기 흉한 신축 아파트를 제외하면 전혀 중요하지 않은 경기장과 그 옆쪽 쇼핑몰만 덜렁 서 있었다. 섬에 있는 그의 모습이 도시 끝자락에서 보일 때도 있었다. 그럴 때면 어린아이들은 선착장에서 그를 향해 손을 흔들며 자기도 통나무배에 태워달라고 소리를 질렀다. 가짜 발명가는 알 듯 모를 듯한 표정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이들이 관심을 보일 때마다 기분이 좋으면서도 한편으로는 걱정스러웠다. 섬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들키고 싶지 않았다. 특히나 선착장에 서면 토끼들이 어슴푸레하게 보였다. 하얗고 작은 공이 서로 부딪치는 듯한 풍경이었다. 달빛이 환하게 비추는 밤이면, 토끼 털빛이 새의 하얀 깃털과 비슷해서 마치 새들이 땅바닥에서 잠든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텐트에서 나가면 토끼는 새끼를 절대 잡아먹지 않았다. 새끼를 먹는 것이 자연의 법칙에 어긋남을 잘 알고 있는 듯했다. 토끼들이 자기 새끼를 잡아먹는 광경을 보고 있으면 영혼이 오그라드는 기분이었다. 토끼들의 잔인함이 가증스러웠다. 하지만 토끼들이 잠잠할 때 지켜보고 있노라면 그들에게는 최면을 거는 듯한, 장엄한 무언가가 있는 것 같았다. 정체를 알 수 없는 그 느낌은 시간이 흐르면서 더 커졌는데, 자연에 반하는 행동과 관련이 있는 듯했다. 저들이 더는 토끼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아니면 자기 종에서 단 한 번도 일어나지 않은 사건에 휘말렸다는 사실을 어떻게든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가짜 발명가는 기괴한 존재로 돌변한 토끼 때문에 이따금 슬퍼했다. 대체 어떤 상황에서 자기 새끼를 잡아먹게 되었는지도 잊어버렸다. 그 사건은 근본적 원인이 따로 없는 순전한 사실로, 새로운 세계를 열 운명을 지닌 사실로 다가왔다. 이 모든 일은 소리 없이 일어났다. 막 첫걸음을 내딛기 시작한 현실을 표현할 언어가 아직 없기 때문이었다. 가짜 발명가는 계속 섬에 갔지만 통나무배를 태워달라는 아이들의 요구에는 조심스러운 반응을 보이기만 했다. 밤에 할머니에게서 물려받은 커다란 집에서 잘 때면 아이들 부모가 꿈에 나타났다. 자신을 짓밟으려고 폭도처럼 악을 쓰며 달려드는 그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사이 방은 물로, 수영장의 파란 빛으로 가득 찼다. 그는 그 꿈이 토끼를 단념하면 깨끗이 사라질 흔한 망상이라고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그러나 자신의 몸가짐, 그러니까 토끼 옆에서 갑자기 움직임을 멈추는 모습만으로도 자신이 스스로를 토끼의 일원으로 느끼기 시작했음을 알 수 있었다. 어쩌면 별안간 희끗희끗해진 머리카락은 신성한 존재로 변한 토끼처럼 놀라운 흰색을 띠게 될지도 몰랐다. 가벼운 출혈로 인해 핏발이 선 그의 눈(안과의사 말로는 만성 결막염 때문이지만)은 토끼처럼 완전히 빨갛게 변하고 나면 다 나을지도 몰랐다.
그러던 어느 날, 가짜 발명가는 텐트를 걷고 다시는 섬에 가지 않았다. 강가 아파트 주민들은 섬에서 홀로 토끼를 기르던 미친 사람이 어떻게 되었는지 궁금해했다. 들리는 말로는 그가 사라진 지 몇 주 뒤 토끼가 모두 죽었고, 사체가 하얀 담요처럼 섬을 아름답게 뒤덮었다고 한다.
스트리크닌 독성이 강한 무색의 알칼로이드 결정으로, 신경 자극제나 작은 척추동물을 죽이기 위한 유독물로 사용됨.
1
여자는 자신이 타고 있는 여객선을 우주선과 비교해본다. 창문 모양이 어떤 곤충의 겹눈과 비슷하게 생겼다고 생각한다. 그러고는 아직 이름이 정해지지 않은 인물이 혼잣말을 하면서 갑판을 걷는 모습을 지켜본다. 그 인물은 여성으로, 신중하고 차분하며 이지적으로 보여서 차가운 분위기를 풍긴다. 여자는 자신이 관찰한 것을 곰곰이 생각중인데, 그 분위기 또한 냉랭하다. 여자가 관찰한 물체는 하얗고 더러우며, 물에 젖은 구두 밑창, 땀, 감자튀김, 그리고 생선 냄새가 약간 난다.
앞으로 이야기는 여자가 낯선 사람인 것처럼 3인칭 시점으로 서술될 것이다. 여자는 방금 상상한 차분하고 냉정한 분위기 속에 자리 잡기를 원하며, 자신의 글 또한 그런 어조로 쓰기를 원한다. 그것은 앞으로 일어날 일을 예측하기 위해 새로운 두뇌를 시험해볼 가장 좋은 방법인 듯하다.
하지만 여자는 약간 의기소침해져서 누군가와 대화를 해보고자 한다. 어느 노부부에게 다가가는 동안 아랫입술이 파르르 떨리지만 막을 도리가 없다. 아무래도 노부부가 여자의 귓불에 걸린 발을 본 듯한 느낌이 든다. 그러자 여자는 카페테리아로 향한다. 옆쪽에 얼굴이 몹시 창백하고 배가 불룩 나온 사십대 남자가 있다. 갑자기 그 남자에게 모든 걸 털어놓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여자는 머리를 포니테일로 묶고 술병 사이로 카운터 뒤에 있는 거울을 바라본다. 여자의 왼쪽 귀는 오른쪽 귀에 비해 훨씬 높이 달려 있다. 양쪽 귀의 위치가 그렇게 차이 나는데 남자는 전혀 알아차리지 못한다. 귀가 무겁게 느껴지는 데다 몇 시간 전부터는 점점 벌겋게 변하고 있었다.
2
여자는 작년에 도시 T를 방문했을 때를 떠올린다. 일행은 가이드를 따라 대성당을 구경한 뒤, 해안 산책로에 갔다. 안개와 뒤섞인 햇빛이 부드럽게 퍼져 나갔다. 이른 오후였고, 막 봄이 시작되었건만 여름이 온 듯 무더웠다.
가이드는 일행을 해변가 남쪽 성벽으로 인솔했다. 캔 맥주를 홀짝거리면서 바다로 걸어 들어가는 외국인 해수욕객 몇몇이 여자의 시선을 끌었다. 어떤 이들은 방파제 바위를 타고 올라갔는데, 쭉 따라가면 흙빛 요새가 있는 작은 섬으로 길이 이어졌다. 요새는 수평으로 긴 구조여서 바다에 떠 있는 작은 땅덩어리 같았다. 하지만 여자가 보기에는 군사 요새도 땅덩어리도 아닌, 도시에서 불룩 튀어나온 혹 덩어리였다.
3
마침내 여자는 여객선에서 내린다. 배를 타고 오는 동안 내내 비가 내렸다. 세관을 통과하는 데만 한 시간이 넘게 걸린다. 택시(대부분 낡은 메르세데스다)에서는 축축한 가죽 냄새가 풍긴다. 여자는 계곡 길을 연상시키는 좁다란 메디나*의 거리를 걸어 올라간다. 백여 년 전 영화를 누리던 어느 호텔 방을 예약해두었다. 무거운 잿빛 구름이 하늘을 뒤덮고 있어 밤이 다가오는 것 같지만, 사실은 오후 3시밖에 되지 않았다.
* 북아프리카의 이슬람 거주 지구나 구시가지.
여자는 만이 내려다보이는 뜰을 가로지른다. 프런트 데스크 직원이 여자의 귀를 노골적으로 보았고, 조롱하는 투로 말한다.
호텔은 어둠에 잠겨 있다. 여자가 예약한 방에는 침대 두 개, 낡아빠진 담요, 그리고 호텔이 지어진 1870년 이후 쭉 벽에 걸려 있었던 것 같은 태피스트리가 있다. 욕실만 새것이다.
여자는 자신의 이야기를 글로 적으려 하지만 겨우 보잘 것 없는 메모 몇 개를 끼적이는 데 그친다. 여자는 메모 개수를 헤아려본다. 폭풍이 잦아들자 여자는 거리로 나가 시장으로 향한다. 떼 지어 몰려 있는 여인들이 보인다. 상인이 여인들에게 닭고기, 이집트 콩, 양파를 팔고 있다. 배를 갈라 거꾸로 매달아 놓은 양에서 역겨운 피 냄새가 퍼진다. 채소 이파리, 찌꺼기, 내장 등이 지저분하게 널려 있는 보도 위를 악취가 가득 메운다.
천과 아르간 오일을 파는 상점에 도착한 여자는 히잡을 사려고 안으로 들어간다. 가슴과 얼굴이 없는 반신 마네킹들이 형형색색의 머릿수건을 두른 채 썰렁한 실내 분위기를 주도하고 있다.
여자는 검은색 히잡을 사려고 한다. “무슬림 남자와 결혼하셨군요.” 주인 남자가 말한다. 질문이 아니라 단정적인 말투다. “나는 베르베르인*이에요.” 남자가 덧붙인다. 여자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남자가 보는 앞에서 히잡을 쓴다. 그제야 남자는 여자의 귀를 눈치챈다. 남자가 길 맞은편 비누 상인과 농담을 주고받는 사이, 여자는 히잡을 제대로 쓰지도 가격을 흥정하지도 못한 채 서둘러 상점에서 나온다.
* 나일 계곡 서쪽 북아프리카의 토착 민족.
여자는 호텔로 돌아간다. 그러고는 방금 벌어진 일을 어떻게 소설화할지 곰곰이 궁리한다. 어떤 식으로든 설명하고 싶다. 자신이 겪고 있는 과정의 흔적을 남기고 싶다. 하지만 왜 그래야 하는가? 여자는 속으로 중얼거린다. 말로는 충분하지 않은 걸까? 이제는 연필을 쥐고 있기조차 힘들다. 마치 연필로 무언가 쓰려는 것이 손이 아니라, 귀에 매달려 있는 발인 것처럼 말이다. 모든 일이 너무나 빠르게 벌어지고 있다.
그날 밤, 만을 내려다보던 여자는 먼 해변에서 반짝이는 불빛을 보고도 자신이 무덤덤하다는 사실에 놀랐다. 사나운 폭풍이 안개를 몰아낸 후라 수정처럼 맑게 보이는 불빛을 보고서도 말이다. 여자는 아예 아무것도 느끼지 못한다. 심지어는 앞으로 다가올 며칠, 또는 몇 달 동안의 불확실성을 감안할 때 예상되는 두려움조차 느끼지 않는다. 자신의 변신이 얼마나 오래 지속될지도 전혀 모른다. 무엇보다 여자를 놀라게 하는 사실은, 가까운 사람에 관해 생각할 때마저 그들이 다른 사람의 기억 속에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는 점이다.
4
여자는 오전 11시에 일어났다. 오늘따라 귀가 무겁고 아픈 데다, 움직일 때마다 끽끽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불쾌감은 사물이 선명하게 보이면서 자취를 감춘다. 사물들은 그 어느 때보다 더 밝게 빛나는 것 같고, 거칠고 쉬이 변하는 질감처럼 보인다. 온갖 빛깔의 곤충으로 뒤덮인 듯한 느낌이다. 의자에서 벽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