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대인경제연구소 발간 보고서 소개
선대인경제연구소는 다양한 경제 이슈와 독자들의 개별적인 필요에 맞추어 SDI웹진/SDI리포트/SDI글로벌모니터 등의 다양한 보고서를 발간하고 있습니다. 현재 수천 명이 이 보고서를 구독하고 있으며, 연구소의 독립적이고 정직한 목소리를 응원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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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DI글로벌모니터 세계 주요 국가 및 경제권의 경제 동향 및 관련 정책, 산업 동향 등을 소개하고 분석합니다.
지금 이 나라에서는 집 문제로 거의 모두가 힘들어하고 있다. 하우스푸어는 하우스푸어대로, 세입자는 세입자대로 큰 고통을 겪고 있다. 수도권을 중심으로 집값은 내리는데, 전셋값은 치솟아 모두가 혼란스럽고 힘겹다. 부동산시장의 패러다임이 근본적으로 바뀌고 있는데, 사람들이 이를 잘 이해하지 못하니 ‘부동산이 미쳤다’라고 표현한다.
사람들 눈에는 부동산이 미친 것으로 보이겠지만, 정작 미친 것은 탐욕에 사로잡힌 부동산 기득권 세력이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에서 볼 수 있듯이 진짜 위험한 것은 자연이 아니라 사람들의 탐욕이다. 자연이 치유력을 갖듯이 부동산시장도 치유력을 갖는다. 그 치유 과정에서 생기는 과도한 충격은 막아야 하지만, 치유 과정 자체를 가로막으면 종래는 더욱 위험해질 뿐이다. 그 결과 자욱한 안갯속에 뾰족뾰족한 암초가 곳곳에 널려 있는 형국이다. 그런데도 정부든 언론이든 전문가(실은 특정 업계의 대변자들)든 ‘빚내서 집 사라’는 말뿐이다. 어둠 속에서 헤매는 사람들을 낭떠러지 쪽으로 안내하는 꼴이다.
이 위태로운 상황을 그냥 두고 볼 수 없어서 《선대인, 미친 부동산을 말하다》를 쓰게 되었다.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이 크게 네 가지를 얻기 바란다. 첫째, 혼란스럽게 느껴지는 부동산시장의 현실을 이해해야 한다. 특히 얼마나 위태로운 상황인지 제대로 이해해야 한다. 둘째, 정부나 언론을 맹신하면 위기가 닥칠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셋째, 앞으로 부동산시장이 어떻게 전개될지 가늠해야 한다. 넷째, 주택문제와 관련해 내가 어떻게 해야 할지, 그리고 공동체로서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할지 판단해야 한다.
개인적 차원에서든 연구소 차원에서든 부동산에만 초점을 맞춘 책은 근 4년 만이다. 《선대인, 미친 부동산을 말하다》는 그동안 고민하고 연구해온, 그야말로 농축된 결과물이다. 또한 독자 여러분들이 최대한 쉽게 부동산과 경제 현상을 읽고, 실생활에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도록 노력했다.
2008년 말 부동산시장 급락을 경고한 이래로 국내 부동산시장의 흐름을 가장 정확히 분석하고 전망해왔다고 자부한다. 그 덕에 많은 이들에게 감사의 말씀도 들었다. 이 책은 그 연장선상에서 현재 상황을 분석하고 미래를 전망하고, 나아가 우리가 나아갈 길을 제언한 것이다. 이 책에 담은 내용이 많은 이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그리고 우리 사회가 새로운 주거 미래를 열어가는 데 조그만 힘이라도 되기를 간절하게 바란다.
2013년 11월
재헌, 재인, 그리고 우리 모두의 아이들을 생각하며
선대인
대세하락기는
시작되었다
우리는 지금 두 가지 부동산 전환기를 한꺼번에 통과하고 있다. 첫 번째, 부동산시장 사이클 측면에서 대한민국은 이미 부동산 대세상승기에서 대세하락기로 접어든 상태다. 여기까지는 깨닫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두 번째 전환기는 단순한 부동산시장 사이클 전환을 뛰어넘는다. 이는 해방 이후 한국사회를 지배해온 부동산 패러다임의 근본적 전환이다. 일반인들이 이런 거대한 전환을 쉽게 이해하고 받아들이기란 어렵다. 모두가 혼란스러운 가운데, 정부나 언론은 들어맞지 않는 정책과 보도들을 쏟아내며 사람들의 혼란을 부추긴다. 과거의 오랜 정책 관성이나 이해관계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이다.
이 동시다발적인 두 가지 거대한 전환은 부동산시장에 다양한 파장을 낳고 있다. 뒤에서 설명하겠지만, 최근 전세가격이 치솟는 것도 이 두 흐름이 맞물리면서 일어나는 파장 중 하나다. 이를 읽어내는 작업은 매우 중요하다.
우리가 가장 먼저 할 일은 지금 과연 어떤 상황에 놓여 있는가를 파악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까지 국내 부동산시장이 어떻게 흘러왔는지부터 먼저 살펴야 한다.
먼저 부동산시장 사이클 측면에서 살펴보자. 보통 부동산시장은 국내외를 막론하고 10~20년 정도의 장기 사이클을 그린다. ‘10년 주기설’이 나오는 것도 그런 사이클이 작용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부동산시장의 사이클은 부동산가격 진폭 및 지속 기간에 따라 달라진다. 여기에서는 국민은행 주택가격 지수가 작성되기 시작한 1986년부터 국내 주택가격 추이를 보면서 설명해보자.
<그림 1-1>을 보면 국내 주택시장은 계단식으로 상승해온 것처럼 보인다. 집값 하락기는 1991~1996년을 빼면 비교적 짧고 하락폭도 크지 않아 보인다. 반면 상승기는 대체로 길고 상승폭도 큰 편이다. ‘집이든 땅이든 사두면 언젠가는 오른다’라는 말이 결코 틀린 게 아니었다. 지금까지는 그랬다. 특히 일하고 돈 버는 생산가능 인구(20~64세)와 주택수요 인구(35~54세)가 지속적으로 늘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한국경제는 대체로 높은 성장세를 구가했고, 주택가격은 꾸준히 올랐다. 하지만 앞으로는 그렇지 않다. 부동산시장의 패러다임이 완전히 달라지기 때문이다. 인구가 줄고, 특히 급속한 고령화에 따라 주택수요 연령대 인구가 급속히 줄어드는 것이다. 경제는 저성장기에 접어들게 된다. 이런 시대에는 기존과 근본적으로 다른 양상을 보이는데, 과거처럼 ‘집을 사두면 언젠가는 오른다’라는 말은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현재의 노후세대에게나 통했던 과거의 패턴이 앞으로도 반복될 것이라고 믿는다면, 이는 매우 어리석고 위험한 일이다.
<그림 1-1> 전국 및 서울의 아파트 명목가격 추이 (1986~2013년)
<그림 1-1>에서 보여준 것은 주택 명목가격의 흐름이다. 명목가격은 물가가 상승하는 수준만큼 액면가격 그대로 표시한 것이다. 수십 년 전 한 봉지에 100원이던 새우깡이 지금 2000원이 되었다고 해서 실질가치가 20배가 뛴 것은 아니다. 마찬가지로 현재 1억 원의 가치는 10년 전이나 20년 전 1억 원의 가치보다 한참 떨어진다. 그래서 물가상승률을 반영한 상대적 가격이라고 할 수 있는 실질가격으로 주택가격 흐름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실질가격은 기준 시점에서 멀어질수록 가격이 과소 평가되는 단점이 있다. 하지만 실질가격으로 주택가격 추이를 보면 <그림 1-2>에서 보는 것처럼 뚜렷하게 주택경기 사이클을 파악할 수 있다. 2013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미국의 로버트 실러 교수도 실질가격으로 미국의 주택가격 사이클을 설명했다. 더 나아가 미국 서브프라임론 사태에 따른 부동산 거품 붕괴를 경고할 수도 있었던 것도 바로 이 실질가격에 바탕을 둔다.
<그림 1-2> 전국 및 서울의 아파트 실질가격 추이 (1986~2013년)
<그림 1-2>에서 보는 것처럼 국내에서도 1986~1991년 초: 상승 → 1991년 초~외환위기 직후: 하락 → 1999~2008년 상반기: 상승 → 2008년 이후 하락 등 뚜렷한 사이클이 나타나고 있다. 지금은 부동산시장 사이클 측면에서 2008년 이후의 대세하락기에 접어든 것이다. 신체로 비유하자면 아직 어깨 약간 아래까지 내려온 정도여서 발바닥까지 내려갈 일이 까마득하게 남았다. 따라서 지금의 부동산 대세하락기는 앞으로도 최소 4~5년 이상 더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 2000년대의 부동산가격 상승기가 길었고, 상승폭도 컸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부동산 패러다임 전환기의 충격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면 10년 이상 지속되는 ‘일본식 장기 침체’에 빠질 가능성도 적지 않다.
부동산시장 사이클 측면에서 지금 우리가 어디까지 왔는지를 살펴보았다. 이제 우리가 막 지나온 2000년대 부동산 대세상승기의 흐름을 조금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외환위기를 겪고 난 직후인 1999년 한국경제는 수직 상승했다. 외환위기 때 큰 폭의 마이너스 성장을 했다가 1999년에는 10%가량 성장했던 것이다. 당시 주택가격은 바닥이었다. 아니 바닥 아래 지하 1층 수준이었다고 할 수 있다. 원래 1996년경에는 1980년대 후반 발생했던 주택가격 거품이 완전히 해소되어 바닥을 다지고 상승하고 있었는데, 외환위기 충격으로 그 바닥이 다시 꺼져버린 형국이었다.
외환위기 이후 상황은 급격하게 바뀌었다. 주택가격은 너무도 낮은데 1999년 10%에 이른 경제 성장으로 소득은 확 늘어난 시기였다. 때마침 전 세계적인 닷컴 열풍과 김대중정부의 벤처 지원책으로 주식시장에서 떼돈을 번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이처럼 소득이 급증했지만, 외환위기를 거치며 중산층이 원하는 눈높이의 주택공급은 턱없이 부족한 상태였다. 더구나 외환위기 충격을 극복한다는 명분으로 김대중정부는 대대적인 부동산 및 건설 부양책을 써서 집값을 밀어 올렸다. 5년간 양도세 면제, 취등록세 감면, 1가구 1주택 비과세 기간 완화, 임대사업자 취등록세 감면 확대, 주택 분양가 자율화, 전매 제한 폐지, 민간업체 준공 후 미분양 아파트 매입 등 2008년 이후 익히 보아온 각종 부양책의 원조격인 정책들이 대거 쏟아졌다. 부동산가격 거품이 여전히 심한 지금과는 달리 당시에는 일정한 부동산 부양책이 필요한 시기이긴 했다. 회복을 넘어 투기 과열 양상을 빚는 2002년 무렵까지 너무 오래 지속된 게 문제이긴 했지만 말이다. 집값은 싸고, 가계에 여유자금은 많고, 주택공급은 부족했는데 정부 부양책까지 나오니 집값이 안 뛰면 오히려 이상한 시기였다.
이렇게 점화된 주택시장 거품은 2000년 이후 점점 투기 양상으로 번지기 시작했다. 너 나 할 것이 집을 사는 데 열을 올렸고, 투기 열풍으로 전국 부동산시장이 들썩였다. 외환위기를 거치며 기업대출이 부실화되는 과정 속에서 쓴맛을 봤던 은행들은 이 흐름에 편승해 부동산시장에 막대한 자금을 펌프질하기 시작했다. 전 세계적인 저금리 기조 속에서 국내에서도 기준금리 5% 이하의 저금리 기조가 정착되었다. 사람들은 대출을 잔뜩 내 부동산시장에 뛰어들었다. 특히 2000년대 부동산투기의 핵심은 뭐니 뭐니 해도 아파트였다. 아파트 가운데서도 건설업체가 고분양가로 뻥튀기하기 좋고, 투자가치도 높았던 중대형 아파트가 핵심이었다. 타워팰리스로 대표되는 주상복합아파트는 주택가격 상승세를 최선봉에서 선도했다.
하지만 노무현정부가 들어서면서 분위기는 달라졌다. 노무현정부 초기 10.29대책 등 비교적 강력한 투기 억제 대책이 나오면서 2004년 하반기까지 아파트가격은 주춤했다. 이처럼 부동산시장과 이와 연동된 건설시장이 침체하자 2004년 하반기부터 노무현정부의 정책 기조가 달라졌고, 부동산시장 부양 여론이 나오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이른바 ‘연착륙론’이 기승을 부리기 시작했다. 이대로 가다가는 일본처럼 부동산 거품이 급격히 꺼지면서 한국경제가 큰 위기에 봉착한다는 주장이었다. 이에 당시 이헌재 재정경제부 장관과 강동석 건설교통부 장관을 투톱으로 한 정부여당의 부동산투기 완화책 및 ‘한국판 뉴딜’로 불렸던 건설 부양책 등이 잇따르기 시작했다. 당시 이명박 서울시장이 강북 표심을 얻기 위해 추진한 뉴타운 개발사업은 서울 곳곳에서 투기 바람을 불러일으켰다. 이 같은 움직임이 맞닿으면서 2005년 초 ‘판교발 로또 열풍’을 계기로 2000년대 부동산 2차 폭등이 일어났다. 1999~2002년 말까지의 1차 폭등이 전국적인 부동산 폭등이었다면, 2차 폭등은 수도권 중심이었다.
부동산가격 상승을 주도했던 ‘버블 세븐(강남, 서초, 송파, 목동, 분당, 용인, 평촌 등 2006년 정부가 부동산가격에 거품이 많이 끼었다고 지목한 7개 지역)’과 일산, 김포, 수원 등 수도권의 아파트 밀집 지역은 2006년 말이 가격 고점이었다. 예를 들어, 서울 강남 재건축단지의 대명사였던 은마아파트 85㎡형은 2006년 11월 매매가가 14억 원을 기록한 뒤 이후 기복을 보이면서 지속적으로 하락해 2013년 3분기에는 8억 원대 초중반을 기록하고 있다. 경기도 성남시 분당의 대표적 고급 아파트인 분당파크뷰 140㎡형도 2006년 말 18억 원을 넘어섰다. 이 아파트는 2012년 말 10억 원 아래까지 갔다가 2013년 4.1부동산대책 등에 힘입어 겨우 10억 원대 중반까지 올라온 상태다.
이처럼 ‘버블 세븐’을 중심으로 부동산 2차 폭등이 마무리되자 전국 주택시장은 거래 침체기에 접어들게 된다. 이미 주택가격은 너무 올랐고 빚을 내서 집을 살 사람들도 거의 소진된 상태였기 때문이다. 이후 빚을 많이 낸 집주인들이 빚 부담을 이기지 못하고 집을 내놓기 시작하면서, 집값은 서서히 미끄러지기 시작했다. 그런 가운데 남아 있던 투기 에너지는 수도권 외곽으로 확산되는 모습을 보였다. 뉴타운 재개발을 호재로 삼아 서울 노원구, 도봉구, 강북구 등 서울 동북지역과 경기도 의정부, 동두천 등 외곽 지역 및 송도, 영종, 청라 신도시를 끼고 있는 인천 등지로 퍼져나갔다. 특히 2008년 총선을 계기로 뉴타운 광풍이 서울 강북 및 수도권 외곽지역 부동산 가격 급등세를 부추겼다.
하지만 2008년 말 세계 경제위기를 고비로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의 부동산투기가 가라앉으면서 아파트가격은 하락세로 전환했다. 2008년 말까지 수도권의 주택가격은 오를 만큼 거의 다 오른 셈이었다. 이후 남아 있던 투기 에너지는 부산, 대전, 울산 등을 중심으로 지방으로 밀려가기 시작했다. 앞서 본 것처럼 2005년 이후에는 수도권과 지방의 부동산시장 흐름이 크게 차별화되면서 수도권 주택가격만 급등했다. 하지만 2009년 이후에는 집값이 오를 만큼 오른 수도권은 가라앉는 가운데, 덜 올랐던 지방 집값이 수도권 주택가격을 기준으로 키 맞추기에 들어간 것이다. 앞서 명목이든 실질 기준이든 서울과 전국의 아파트가격 지수가 비슷한 수준에 이른 것이 이를 증명한다.
지방의 아파트가격은 2009년 이후 급등하기 시작했으나 2011년 이후 그 상승세가 꺾이고 있다. 마지막으로 남아 있는 투기 에너지가 광주와 대구 등으로 옮겨가 뒤늦게 불이 붙고 있기는 하다. 하지만 2012년 이후 이들 지역의 거래량이 줄면서 향후 1~2년 안에 대세하락 흐름에 동참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그림 1-3> 용머리-용꼬리 대표 도시별 아파트 실거래가 추이 (2006~2013년)
이 같은 부동산가격 상승-하락 패턴은 ‘용머리-용꼬리’에 비유할 수 있다. 용이 하늘로 올라갈 때는 핵심 지역(용머리)부터 올라 비핵심 지역(꼬리)까지 따라 올라간다. 그러다 방향을 바꾸어 하강할 때는 다시 핵심 지역부터 떨어져 용꼬리에 해당하는 비핵심 지역까지 방향을 바꿔 하락하는 것이다. 부동산가격 역시 서울 강남 등 핵심 지역부터 올랐다가, 수도권 외곽 → 지방 핵심 도시 → 지방 비핵심 도시로 점차 퍼져나가면서 상승했다가 같은 순서로 다시 하락하는 패턴이다.
이는 시기와 정도에 일정한 차이는 있지만 과거 일본 부동산시장에서 나타났던 패턴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한국의 주택시장은 이미 대세하락기에 접어들었음은 물론이고 모든 지역이 하락세에 접어들기 직전이다. 하락 흐름은 4.1부동산대책과 8.28전월세대책으로 지연되고 있기는 하다. 하지만 큰 흐름으로 봤을 때 이미 전국이 대세하락에 접어드는 것은 시간문제로 보인다. 다만, 부동산 대세하락기라 할지라도 지역을 조금씩 바꿔가며 단기적인 반등세가 재연되는 경우는 가능할 수도 있다. 주식시장의 대세상승기나 대세하락기에도 종목별로 매수세가 옮겨가며 순환장세를 보이는 경우처럼 말이다.
부동산가격이 대세하락 흐름에 접어든 이유는 간단하다. 주택가격은 일반가계의 소득 수준에 비해 너무 높은데, 더 이상 빚을 내 집을 살 수요자들도 거의 고갈되었기 때문이다. 이 같은 대세하락기는 단기간에 끝나지 않는다. 지역에 따라 다르겠지만 대다수 지역의 가계들이 최소 5~10년가량의 소득을 빚으로 미리 끌어당겨 집을 샀다. 미래 수요를 미리 당겨 쓴 대신, 이제는 날아오는 청구서의 빚을 지불해야 하는 시기다. 열심히 가계부채 다이어트를 하고 소득을 축적해야 다시 주택을 구매할 수 있는 여력이 생기는 법이다. 그렇게 주택 구매력이 확충되어야 집값 바닥 혹은 상승을 논할 수 있다.
그런데도 언론에서는 대세하락기에 접어든 2009년 이후 거의 매년 섣부른 ‘집값 바닥론’을 거론하고 있다. 지난 몇 년 동안 언론이 얼마나 많은 집값 바닥론을 쏟아냈는지는 인터넷에서 ‘집값 바닥’으로 검색해보면 쉽게 알 수 있다. 그것도 늘 비슷비슷한 사람들의 주장을 인용했다. 집값 바닥론을 주장한 부동산 전문가들(로 포장된 이해관계자들)의 전망이 번번이 빗나갔는데도 말이다. 그런데 이 같은 집값 바닥론은 수도권 대규모 분양을 앞두고 정부가 2013년 내놓은 8.28전월세대책 이후 또다시 쏟아지고 있다.
앞에서 설명했듯이 부동산 대세하락기의 전반부도 끝나지 않은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나오는 집값 바닥론은 부동산업계나 건설업계 등의 희망사항일 뿐이다. 8.28대책 이후 집값 바닥론을 부르짖는 이들은 이미 집값이 충분히 떨어졌다, 2009년 이래로 상당 기간 가격 조정을 거쳤다, 주택가격이 뛰고 거래량이 늘고 있다, 향후 재건축 재개발 사업 등으로 멸실주택이 늘고 입주 물량은 줄어 공급 부족이 심해질 것이다 등을 근거로 들고 있다.
이들이 내세우는 집값 바닥론의 근거가 왜 매우 빈약한지 살펴보자. 우선, 주택가격 거품이 충분히 빠졌다고 보기 매우 어려운 수준이다. 이 같은 주장을 내놓은 대표 주자가 바로 건설산업전략연구소의 김선덕 소장이다. 김선덕 소장은 서울의 실질 주택가격이 2005년 수준으로 돌아갔으니 거품이 대부분 빠졌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앞의 <그림 1-2>를 보면 집값이 2005년 수준으로 모두 빠진 것도 아니다. 설령 2005년 수준으로 내려갔다고 해서 부동산 거품이 빠진 것이라고 볼 수 있을까? 겨우 머리 꼭대기에서 어깨 약간 아래 정도까지 내려온 수준에서 바닥론을 거론하는 것은 너무 섣부르다. 최소한 무릎이라고 할 수 있는 2001~2002년 전후 수준까지는 내려가야 그나마 ‘바닥론’을 논해볼 수 있을 것이다.
더구나 전국을 기준으로 하면 최근 몇 년 사이 지방 부동산가격이 뛰어 여전히 고점에 가깝다. 부동산시장의 장기 사이클을 나타내기 위해 실질가격을 사용하지만, 최근의 주택가격 추이를 보려면 명목가격으로 보는 것이 더 정확하다. 그런데 명목가격으로 나타낸 전국과 서울의 아파트가격은 고점에서 거의 거품이 빠지지 않은 상태다. 이런 상황에서 거품이 대부분 빠졌다고 주장한다면 착시도 이만저만한 착시가 아닐 수 없다.
8.28대책 이후 집값이 잠깐 호가 위주로 반등한 것을 두고 집값 반등의 근거로 삼는 주장도 많다. 사실 이런 종류의 정부 대책 이후 일시적인 호가 위주의 반등은 누구나 예상할 수 있는 일이다.
호가 지수의 함정
이 책에서 굳이 ‘호가 위주’라고 표현하는 이유가 있다. 부동산 정보업체는 말할 것도 없고 정부가 주택가격 통계 작성을 맡긴 한국감정원조차 집값을 주 단위로 발표하는 것은 실로 기적 같은 일이다. 부동산이 주식도 아니고, 주간 단위로 집값 변동을 집계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이다.
어떤 물건이든 호가는 엄밀한 의미에서 시장가격이 아니며, 시장가격은 거래가 체결될 때 일어난다. 주택계약부터 거래 사실을 집계하는 데만 한두 달이 걸리는 건 기본이다. 그런데 주택가격을 주간 단위로 집계해 발표한다는 게 가능한 일인가. 더구나 주택 거래가 극도로 침체된 상황에서는 실제 거래가 일어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지금처럼 부동산 침체기에 실제 거래가 활발하지 않은데도 주간 단위로 주택가격 추이를 발표하고 있으니 기적이 아닌가. 이는 이들 부동산 정보업체들이 내놓는 주택가격 지수가 사기에 가깝다는 반증이다.
거래가 없을 경우 부동산 정보업체들은 적정하다고 판단한 매도호가를 중심으로 가격 지수를 보고한다. 예를 들면, 정부대책 발표 이후 6억 5000만 원에 나와 있던 어떤 급매물을 매도자가 거둬들이고 6억 8000만 원짜리만 남았다고 하자. 부동산 상승기 때면 몰라도 이 가격에는 사실 거래가 이뤄지지 않는데도, 부동산 중개업소는 정보업체에다 6억 8000만 원으로 보고하는 식이다. 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드는 노력은 가상하지만, 이건 사실 정보 조작에 가깝다. 그런데도 대다수 언론들은 이를 비판하기는커녕 이 같은 호가 지수를 바탕으로 온갖 자극적 제목을 동원해 기사를 쏟아낸다. 심지어 정부나 교수라는 사람들조차 이를 비판적 검토 없이 무분별하게 인용하고 있으니 개탄스러운 상황이다.
참고로, 미국의 대표적 주택가격 지수인 S&P케이스실러 지수는 두 달가량 지난 시점에 월간 단위로 공표된다. 미국의 전문가들이 한국의 부동산 정보업체들보다 지수 작성과 산출 역량이 떨어져서 그런 게 절대 아니다. 국내에서 유일하게 실거래 사례들을 바탕으로 작성되는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지수도 마찬가지다. 실제 거래를 바탕으로 하면 그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부동산 대세하락이 지속될 것이냐 여부다. 국토교통부의 실거래가 지수 추이를 <그림 1-4>에서 살펴보자. 참고로, 실거래가 지수는 실거래가 신고가 시행된 2006년 이후 흐름만 살펴볼 수 있다. 이를 보면 이명박정부 이래의 각종 부동산 부양책에도 불구하고 주택가격은 큰 흐름에서 대세하락 양상을 이어가고 있다.
<그림 1-4> 서울 아파트 실거래가 추이 (2006년 1월~2013년 7월)
부동산 부양책의 효과는 시간이 갈수록 확연히 약해지고 있다. 부양책이 나올 때마다 약발이 먹히지 않고 있으며, 그 기간도 점점 짧아지고 있다. 다만, 2012년 말부터 박근혜정부의 부동산 부양책에 대한 기대감과 뒤이은 4.1종합부동산대책의 영향으로 아파트가격은 미약한 반등세를 나타냈다. 하지만 6월 이후 다시 8.28대책이 나올 때까지 수도권 아파트가격이 가라앉았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거래량 측면에서도 집값 바닥을 논할 수 없는 수준이다. <그림 1-5>를 보면 확연히 드러난다. 취득세 감면을 해주면 일시적으로 거래가 늘었다가 해당 기간이 끝나면 거래절벽(주택매매가 뚝 끊기는 현상)이 되풀이되고 있다. 사실 취득세 감면에 따라 막달에 거래가 몰리는 현상과 거래절벽 현상의 효과를 상쇄하면, 거래 증가 효과는 거의 없었다. 결국 취득세 감면에 따라 거래가 일시적으로 요동칠 뿐, 2007년 이후 주택 거래는 구조적 침체기에 들어가 있다. 특히 수도권의 주택 거래 침체가 심각한데, 2006년의 경우 월 평균 3.6만 호가량의 거래가 일어났으나 2007년 이후로는 매년 1.4~2.1만 호 전후 수준이다. 부동산경기 침체 이전에 비해 약 절반 수준의 거래만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그나마 2009년이나 2011년처럼 대규모 부양책이나 취득세 감면 및 양도세 중과 유예 등 세제 혜택이 쏟아질 때는 거래가 조금 늘다가 약발이 다하면 다시 가라앉는 상황이 되풀이되고 있다.
여기에서는 2006년 이후 아파트 거래량이 집계된 이후 시점부터 거래량을 나타냈지만, 좀 더 긴 흐름에서 보면 구조적 침체 양상은 더욱 확연히 드러난다. 2000년 이후 아파트 거래량 추이를 가계부채와 아파트 거래량 간의 상관관계분석을 통해 추정해본 결과, <그림 1-5> 마지막 그래프에서 보는 것처럼 거래량이 구조적 침체기에 접어들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지금의 주택 거래량 감소는 현재 주택가격 수준에서 집을 살 수 있는 수요층의 구조적 감소에 따른 것이다. 때문에 경기가 일시적으로 회복된다거나 정부 부양책 등으로 반등할 가능성이 크지 않다는 점을 보여준다.
<그림 1-5> 전국 주택매매 거래량 추이 (2006~2013년)
<그림 1-5> 지역별 주택매매 거래량 추이 (2006~2013년)
<그림 1-5> 수도권 아파트 거래량 추이 (2000~2013년)
특히 2013년 8.28대책 이후 ‘집값 바닥론’의 근거로 삼는 주택매매 거래량 증가는 6월 취득세 감면 종료와 함께 거래절벽이 온 뒤, 다시 거래량이 회복되는 과정으로 보는 게 더 정확하다. 취득세 감면으로 인한 주택 거래 증가는 전혀 없다. 어차피 집을 사려고 했던 사람들이 취득세 감면 직전에 집을 사려고 몰리는 ‘막달현상’과 직후의 ‘거래절벽’ 현상만 일으키고 있을 뿐이다. 이번에도 같은 해 4.1부동산대책으로 일시적으로 풀렸던 취득세 감면 효과가 6월 말로 종료되면서 다시 급감했던 거래량이 조금씩 회복되는 과정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양상은 수도권과 지방으로 나누어 보아도 똑같이 나타난다.
무엇보다 주택공급 과잉이 해소되고 있다는 징후가 거의 없다. 현재 수도권을 중심으로 적체된 아파트 미분양 물량이 전혀 해소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2008년 16.6만 호까지 치솟았던 미분양 물량은 2011년 6.9만 호 수준까지 큰 폭으로 줄었다. 2011년 이후로는 미분양 물량 감소세가 주춤하면서 2013년 8월 현재까지 6.8만 호 수준으로 이어지고 있다.
어쨌거나 이처럼 미분양 물량이 줄어든 것은 2009년 이후 미분양 물량이 쌓여 있던 지방 부동산시장이 상대적으로 활황세를 보이면서 미분양 물량이 소화된 영향이 크다. 또한 정부가 LH공사나 대한주택보증 등을 통해 미분양 물량을 매입해주거나 건설업체가 신탁회사 등에 통매각해 수치에서 빠져나간 물량도 적지 않다.
향후 부동산시장의 향방을 좌우할 수도권에서는 미분양 아파트 물량이 줄기는커녕 오히려 늘고 있다. 수도권 미분양 물량은 2007년 분양가상한제를 앞둔 밀어내기 분양으로 2008년 2만 호 이상 급등한 뒤 계속 늘어 2012년 9월에는 3만 호를 넘어섰다. 2013년 9월 현재로는 3만 6903호까지 증가했다. 그동안 수도권 주택공급은 줄지 않았지만, 아파트공급 비중은 많이 줄었는데도 여전히 미분양 물량이 늘고 있는 것이다. 건설업체들은 악화된 자금 사정을 외부에 노출하지 않기 위해 미분양 물량을 축소하거나 지연 신고하는 게 관행이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실제 미분양 물량은 이보다 훨씬 더 많다고 봐야 한다. 더구나 수도권의 경우 악성 미분양이라고 할 수 있는 준공 후 미분양 물량도 계속 증가 추세다. 2013년 8월 기준으로 1만 5656호까지 증가했다. 즉, 수도권의 경우 주택공급 과잉이 해소되기는커녕 지속적으로 악화되고 있는 것이다.
언론의 보도와는 달리 최근 몇 년간 주택공급은 충분히 이뤄지고 있다. 또한 향후에는 60~70대 이상 노령가구의 증가로 이들이 공급하는 기존 주택이 시장에 매물로 나오면서, 주택공급 과잉은 갈수록 심해질 가능성이 높다. 이처럼 미분양 물량으로 대표되는 주택공급 과잉 압력이 해소되고 있다는 징후가 없다는 점에서도 ‘집값 바닥론’은 지나친 시기상조다.
취득세 감면, 효과가 없는 이유
과연 정부의 주장처럼 취득세를 영구 인하하면 거래절벽을 피하고 부동산시장을 살릴 수 있을까? 취득세 때문에 거래가 안 된다는 말이 성립하려면 적어도 다음 조건을 만족해야 한다.
■ 집값이 비싼 것은 거래 과정의 취득세가 주요한 원인이다.
■ 거래수요가 있는데 취득세 때문에 비싸서 거래가 안 되는 것이다.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이야기이다. 거래절벽이 걱정될 정도로 주택수요가 없다면 그것은 여전히 집값이 너무 높기 때문이지, 취득세가 많아서는 아니다. 물론 최소 몇억 원짜리 주택을 거래할 때 1%의 취득세 부담을 깎아주는 것도 금액으로는 적지 않다. 하지만 집값이 거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주택 매입 및 거래 비용에 비춰보면 결국 1% 할인해주는 정도에 불과하다. 원래 살 생각이 없던 사람들이 물건 값을 1% 할인해준다고 해서 얼마나 사겠는가. 그것도 최소 수억 원 이상 하는 주택을 말이다. 이것이 백화점 바겐세일과 취득세 감면의 근본적인 차이다.
보통 백화점 바겐세일은 30~40% 할인이 기본이다. 이 경우 바겐세일 효과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1) 원래 눈독을 들이던 물건을 사려던 사람들이 세일 기간에 맞춰 사는 효과. 2) 원래는 살 마음이 없던 사람들이 물건 값을 대폭 깎아주니 물건을 사게 되는 효과. 그런데 취득세 감면에 따른 효과는 두 가지 가운데 1)번 효과밖에 없다. 즉, 집을 원래 사려던 사람들의 취득세 감면 기간에 맞춰 집을 사는 효과는 생기지만 원래 집을 살 생각이 없던 사람들까지 집을 사게 하는 효과는 사실상 없다.
이는 쉽게 확인할 수 있다. 2011년 말, 2012년 말, 2013년 6월 등 세 차례의 취득세 감면기간 마지막 달 전후의 4개월 평균 거래량을 내보면 뒷 페이지의 그림 <전국 주택매매 거래량 추이>처럼 나타난다. 취득세 감면 기간 동안 거래량이 일시적으로 급증했다 급감했을 뿐, 감면 기간 전후의 거래량과 별반 다르지 않음을 확인할 수 있다. 취득세 감면으로 인해 부동산 거래 증가 효과는 없이 거래 진폭만 키웠을 뿐인 것이다. 더구나 2013년 8.28대책에서 밝힌 것처럼 취득세율을 영구 인하하면 백화점 바겐세일에서 나타는 1)번의 효과조차 사라질 것이다. 이제는 취득세가 인하된 상태가 일반적인 취득세 수준이 되기 때문이다. 어차피 집을 살 생각이었으나 취득세 인하 이후 사려고 대기했던 수요가 초기에 일부 거래로 이어지는 정도에 그칠 것이다.
대신 취득세 영구 인하에 따르는 한 가지 효과는 분명해진다. 광역지자체 세수의 30%가량을 차지하는 취득세 세수를 축내게 된다. 정부 추산으로도 취득세 인하로 전체 광역지자체 세수 가운데 2조 4000억 원가량이 줄어들게 된다. 이 정도 세수면 중앙정부가 지원에 난색을 표하는 무상보육 예산은 얼마든지 마련할 수 있다. 거래 활성화 효과도 없는데, 가뜩이나 심각한 지방 재정난을 부추기고 빈약한 복지 수준을 떨어뜨리고 있으니 개탄스러울 뿐이다.
전국 주택매매 거래량 추이 (2011년 1월~2013년 9월)
빚내서 집 사라는
마지막 유혹
이제 주택시장의 흐름과 맞물리는 정부 주택정책의 큰 흐름을 살펴보자. 앞부분과 다소 겹치는 내용이 있을 수 있으나 정부의 주택정책 흐름이라는 관점에서 다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앞서 김대중정부 집권기인 2002년까지 집값이 전국적으로 폭등했음을 살펴보았다. 김대중정부가 부동산 거품이 지나치게 부풀어 오를 때까지 외환위기 직후의 부양책 기조를 유지하고, 카드채 남발을 제어하지 못한 것은 큰 과오였다. 뒤이어 집권한 노무현정부는 김대중정부에서 부풀어 오른 부동산 거품을 제거하고 카드채 사태를 해소해야 하는 과제에 직면했다. 하지만 이 문제들을 제때 처리하지 못해 2003년 카드채 사태가 터졌고, 결국 이로 인한 충격을 흡수하는 데 2~3년 정도가 걸렸다. 하지만 역시 이보다 더 큰 문제는 ‘부동산 거품’이었다.
노무현정부는 정권 초기 10.29대책을 내놓는 등 상당히 강력한 부동산투기 억제책을 내놓았다. 그렇게 2003년 하반기~2004년까지 부동산시장은 어느 정도 진정되는 듯했다. 하지만 2004년 하반기부터 이헌재 재경부 장관과 강동석 건교부 장관을 투톱으로 하는 건설부양책을 쏟아냈다. 이때 논리적 배경이 되었던 것이 바로 ‘연착륙론’이었다. 2003년 초까지 단기간에 급등했던 전국 주택가격이 하락 양상을 보이자 건설업계와 부동산업계, 금융권 부설 연구소 등에서 ‘연착륙론’을 들고 나왔다. 이대로 부동산 거품이 급격히 빠지면 일본처럼 부동산시장이 경착륙할 수 있으므로 정부가 연착륙을 유도해야 한다는 논리였다. 말이 연착륙론이지 이대로 계속 투기 억제책을 쓰면 일본처럼 위기에 빠질 수 있으니, 투기 억제책을 풀고 부양책을 쓰라는 주문이었다.
이 같은 주장은 아파트 광고가 최대 수입원인 언론들의 지면을 메우기 시작했다. 이렇게 해서 결국 부양책 기조로 전환하기 시작한 것이다. 당시 여당이던 열린우리당에서는 ‘한국판 뉴딜’이라며 토건 부양책을 밀어붙였고, 지역 균형발전이라는 미명 아래 전국적 혁신도시로 포장된 대규모 주택단지 붐이 일어났다. 이것이 당시 이명박 서울시장의 뉴타운 드라이브와 맞물렸다. 뉴타운 정책이 서울 강북 유권자들에게 먹히는 것 같자, 당시 한나라당은 말할 것도 없고 열린우리당까지 합세해 초당적으로 이른바 ‘뉴타운 특별법’을 통과시켰다. 서서히 꺼져가던 부동산투기 에너지를 되살려낸 것이다. 이 부동산투기 에너지는 2005년 초의 ‘판교 로또’를 발판 삼아 2005~2006년 수도권 2차 폭등으로 터져 나왔다.
노무현정부는 부동산투기를 억제하고 서민 중심의 주거정책을 추진할 의지를 갖고 있었다. 하지만 강고한 부동산 기득권 구조의 집중포화를 뚫고 근본적인 정책 전환을 이뤄낼 만한 정책적, 정치적 역량은 부족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여러 차례 ‘부동산투기와의 전쟁’을 되뇌었지만 “10배 남는 장사가 왜 없나”라는 발언 등으로 토건족의 인식에 포획되어 있음을 드러내기도 했다. 또한 전 세계적인 저금리 기조 아래 시중 은행들이 부동산시장에 자금을 펌프질하는 것을 제어하지 못했다. 오히려 국제무대에서 경쟁하려면 덩치를 키워야 한다는 ‘메가뱅크론’을 용인하며 금융업계가 무분별한 부동산대출에 나서는 것을 한동안 방조했다. 2000년대 부동산 거품은 부동산투기의 자금줄인 주택담보대출을 기반으로 한 금융 현상이었는데, 이를 부채질한 꼴이었다. 노무현정부 말기인 2006~2007년에 LTV(Loan To Value, 주택담보인정비율. 집값 대비 주택담보대출액의 비율을 말한다. 집값이 5억 원인데, 주택담보대출액이 3억 원이라고 하면 LTV는 60%가 된다), DTI(Debt To Income, 총부채상환비율. 대출자의 연간 총소득 가운데 매년 지불해야 하는 원리금 합계액의 비율을 말한다. 연간 총소득이 5000만 원인 사람의 대출원리금 상환액이 연간 2000만 원이면 DTI는 40%가 되는 셈이다) 규제를 순차적으로 도입했으나 이미 수도권을 중심으로 부동산 거품은 부풀 대로 부풀어 오른 뒤였다. 그 같은 대출 규제가 효과를 발휘하고 비정상적인 집값 급등에 대한 불안감이 확산되면서 수도권 주택가격은 2007년부터 가라앉기 시작했다. 이미 늦은 상태였지만 이 기조라도 유지되었더라면 다행이었을 것이다.
이미 많은 가계가 너무 많은 빚을 내 집을 산 상태였다. 이들은 집값을 잡아주기를 바랐던 노무현정부가 집값 제어에 실패하자 등을 돌리기 시작했다. 더 나아가 이제는 집값 상승을 간절히 염원(?)하는 집단으로 변했다. 정치적 성향을 떠나 무리하게 빚을 내 산 집의 가격 향방은 자신의 전 재산이 걸린 문제가 되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이명박정부가 재건축 규제 완화 등 사실상 “집값을 올려주겠다”라는 공약을 내걸고 당선되었다. 이에 더해 2008년 당시 한나라당 ‘뉴타운돌이’ 의원들의 사기성 공약으로 뉴타운 재개발 집값은 더욱 부풀어 올랐다. 부동산 거품이 꺼지기 직전인 줄도 모르고 서울 동북부 지역과 경기도 외곽 및 인천 등지에서 더 많은 사람들이 부동산 거품에 뛰어들었다. 그러나 미국발 서브프라임론 사태가 터지면서 2008년 하반기 집값은 급락했다. 서울의 경우 약 6개월 만에 실거래가가 20%가량 하락하기도 했다.
이때부터 연착륙론은 기승을 부리기 시작했다. 이명박정부는 대대적인 부양책을 전방위적으로 동원했다. 기준금리가 단기간에 떨어졌고, 막대한 공적자금이 은행권에 투입되었다. 재건축 규제가 완화되고 수도권 분양권 전매 제한도 폐지되었으며, 각종 세제 혜택도 동원되었다. LH공사와 대한주택보증을 동원해 건설업체들의 미분양 물량을 매입했고, DTI규제도 해제했다. 건설업계를 떠받치기 위해 4대강사업을 비롯한 대대적인 공공사업도 시작되었다. 2006년 20조 원 규모였던 공공발주 규모는 2009년 51조 원으로 늘어났다. 당시의 다급한 상황을 생각하면 이 같은 대대적인 부양 조치들을 이해 못 할 바는 아니다. 하지만 정도가 너무 지나쳐 부양책을 넘어 투기 조장책에 가까웠다. 무엇보다 아무리 위기 상황이라지만 일정하게 부동산 거품은 빼야 했다. 하지만 정부는 거기에서 멈추지 않았다. 앞서 <그림 1-4>에서 본 것처럼 주택가격을 서울을 기준으로 할 때 2008년 중반의 고점 위로 끌어올렸다. 또한 부산, 대전 등을 중심으로 지방 부동산가격이 폭등하도록 방조했다.
하지만 부동산 거품의 압력을 견디지 못하고 수도권 주택가격은 2009년 10월을 기점으로 다시 가라앉기 시작했다. 이후 주택가격이 조금씩 떨어질 때마다 이명박정부는 이런저런 부양책을 줄기차게 내놓았다. 2008년 말 경제위기 이후 이명박정부에서 나온 20여 차례의 크고 작은 부동산 부양책을 뒷받침한 인식 기반이 바로 ‘연착륙론’이었다. 말이 연착륙론이지 실제로는 바람이 가득 찬 풍선에 바람이 빠질 만하면 다시 바람을 불어넣는 과정의 연속이었다. 집값이 조금 떨어질 때마다 DTI규제 해제나 완화 등 미봉책으로 가계부채 증가를 조장한 게 대표적이다.
“노무현정부는 집값을 잡고 싶었는데 잡지 못했고, 이명박정부는 집값을 띄우고 싶었는데 띄우지 못했다”라는 우스갯소리가 회자된 적 있다. 노무현정부는 대세상승기에 집권한 정부였고, 이명박정부는 대세하락기 초반부터 집권한 정부였으니 당연한 현상이다. 그만큼 정부정책의 힘으로도 부동산시장 압력을 쉽게 제어하기 어렵다는 것을 보여준다. 하지만 대세상승 압력 속에서도 정부가 충분한 정책 역량을 발휘하지 못한 것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