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여선
1965년 경상북도 안동에서 태어나 서울대 국문과와 같은 학교 대학원을 졸업하고 인하대 국문과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1996년 첫 장편소설 『푸르른 틈새』로 제2회 상상문학상을 수상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짧지 않은 공백기를 가지며 초창기 작가생활을 보낸 권여선은 2007년 단편소설 「약콩이 끓는 동안」으로 오영수문학상을 수상한 것을 시작으로 2008년 단편소설 「사랑을 믿다」로 “드러내기보다는 숨김을 통해 독자의 상상력을 자극한다”는 평과 함께 이상문학상을 받으면서 무명에 가까웠던 작가의 이름을 단번에 평단과 독자에게 강렬하게 각인시켰다.
『푸르른 틈새』 이후 십육 년 만에 선보인 두번째 장편소설 『레가토』로 “한국문학에서 기억의 윤리학이 성숙하고 있다는 증거”라는 평을 받으며 2012년 한국일보문학상을, 세번째 장편소설 『토우의 집』으로 2015년 동리문학상을 수상하며 한국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로 성장해나갔다.
소설가로서 꼭 써야겠다고 다짐한 작품인 『레가토』와 『토우의 집』을 쓰고 난 후 현실 속 다양한 인물들의 이야기에 관심을 갖고 단편 작업에 매진하며 빛나는 작품 목록을 쌓아올린 작가는 2016년 소설집 『안녕 주정뱅이』로 동인문학상을, 2018년 단편소설 「모르는 영역」으로 “특유의 예민한 촉수와 리듬, 문체의 미묘한 힘이 압권”이라는 평을 받으며 심사위원 만장일치로 이효석문학상을, 2021년 단편소설 「기억의 왈츠」로 김유정문학상을, 2023년 단편소설 「사슴벌레식 문답」으로 김승옥문학상을 수상하며 자신의 작품세계가 누구와도 다른 독보적인 질감으로 이루어져 있음을 선명히 증명해냈다.
소설집 『처녀치마』 『분홍 리본의 시절』 『내 정원의 붉은 열매』 『비자나무 숲』 『안녕 주정뱅이』 『아직 멀었다는 말』 『각각의 계절』, 장편소설 『푸르른 틈새』 『레가토』 『토우의 집』 『레몬』, 산문집 『오늘 뭐 먹지?』가 있다.
권여선 작가의 시작에 놓인 『푸르른 틈새』(1996)는 대학에 입학하면서 모든 것을 새로이 겪는 인물을 통해 청춘과 성장의 의미를 되짚는 소설로, 상쾌함과 진득함이 범벅된 청춘이라는 오묘한 시기를 통과하는 인물의 한 시절이 작가 특유의 군더더기 없는 문장과 예리한 유머로 구현된 청춘소설의 새로운 고전이다.
cover photo이대원
design표지윤종윤본문최미영
작가사진정멜멜
젖은 방
일주일 후면 이사를 한다. 나는 이삿짐센터에 들러 이사하는 날을 일러주고 굳이 선불할 필요가 없는 계약금을 삼만원 걸어두었다.
하숙촌 거리를 지나 복작거리는 시장길에 들어선다. 기나긴 시장 골목엔 갖가지 가게와 좌판이 늘어서 각각의 매물과 각각의 인생들을 전시하고 있다. 나는 나와 관계된, 나의 시선을 끄는 몇 개의 노점, 몇 개의 이미지와 활기만을 눈여겨본다.
시장길 초입에 그릇가게가 있다. 이사를 앞두고 냄비를 산다는 건 이상한 일이지만 나는 그릇가게에 들러 냄비를 둘러본다. 문득 암소와 냄비를 바꾼 남자의 이야기가 생각났기 때문이다. 내게도 가끔은 행운이 필요하다. 그 독특한 민담은 시작부터 묘하다.
한 남자가 시장에 암소를 팔러 나왔다. 물물교환에 필요한 적당한 셈속으로 무장한 그는 암소와 맞먹는 어떤 가치 있는 것을 구입할 생각이었다. 괴상한 노인이 냄비를 들고 와 암소와 바꾸기를 청했다. 암소 주인은 냄비가 몹시 그럴듯하게 생겼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그 청을 가당찮게 생각했다. 암소와 냄비를 바꾸다니!
그때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냄비가 그에게 말을 걸어온 것이다.
“저를 데려가주셔요. 분명히 후회하지 않으실 거예요.”
그는 깜짝 놀랐다.
‘흠, 냄비가 말을 하다니…… 말을 할 수 있다면 아마 그 밖의 다른 것들도 할 수 있을지 몰라.’
그는 노인에게 암소를 내주고 냄비를 가졌다. 집에서 그를 기다리던 아내는 그가 암소 대신 무엇을 가져왔는지 무척 궁금해했다. 암소는 가난한 그들 부부의 마지막 재산이었기에 암소를 판 돈은 요긴하게 써야 했다. 남편이 내민 냄비를 보고 아내는 실망했다. 냄비가 몹시 그럴듯하게 생겨서 부엌일에 쓸모가 있긴 하겠지만 암소와 냄비를 바꾼다는 건 도대체가 얼토당토않은 일이었기 때문이다.
“당신은 제정신이 아니군요. 암소를 이깟 냄비와 바꾸다니……”
이때 냄비가 똑같은 말을 반복했다.
“저를 데려온 걸 분명히 후회하지 않으실 거예요.”
남편에게 본격적인 비난을 퍼부으려던 아내는 냄비의 기습적인 발언에 깜짝 놀라 자기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아니, 냄비가 말을 하다니…… 말을 할 수 있다면 아마 그 밖의 다른 것들도 할 수 있을지 몰라.”
냄비가 말을 할 수 있다면 그 밖의 다른 것들도 할 수 있을지 모른다는 부창부수적인 생각에 나는 고개를 갸웃한다. 말을 한다는 것이 그토록 무한한 가능성을 약속하는 보증이 될 수 있을까. 나는 그릇가게에서 말하는 냄비만큼이나 크기가 적당하고 쓸모 있어 보이는 냄비를 고른다. 행인지 불행인지 내가 고른 냄비는 과묵하여 자기를 데려가면 분명히 후회하지 않을 거라는 둥 어쩌는 둥 말이 없다. 하지만 말을 못하더라도 아마 그 밖의 다른 것들은 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릇가게를 지나면 게를 양푼에 담아놓고 파는 여자가 있다. 늙은 그녀는 한편에 분질러진 게 다리를 한 묶음 쌓아놓고 싸게 팔기도 한다. 떨어진 게 다리들과 성치 않은 게 몸뚱이를 유심히 보고 있노라면 본능적인 위기의식에서 다리를 마구 떨구고 급히 도망치는 게들의 절박한 내면이 보인다.
그 옆에는 닭을 파는 작은 좌판이 있다. 닭집 좌판을 지나치다 나는 눈길을 멈춘다. 좌판 위에는 스무 마리 정도의 생닭이 쌓여 있고 그 뒤로 도마 두 개가 있다. 왼편 도마에서는 사십대 초반의 사내가 닭을 토막 치고 있고 오른편 도마에서는 열 살쯤 되어 보이는 목이 길고 비쩍 마른 딸애가, 아버지가 토막 치는 닭의 반도 안 되는 자그마한 영계 속에 손을 집어넣어 내장을 훑어내고 있다. 닭발처럼 여윈 손을 닭 몸통 속에 집어넣어 정체불명의 노랗고 긴 내용물을 잡아당겨 빼내는데 손에 별로 묻어나오는 게 없다. 그런 식으로 닭을 매만지다가는 영계 한 마리를 손보는 데 얼마나 시간이 걸릴지 모른다. 남자는 칼을 낮게 들어올리면서도 힘있게 내리쳐서 대단히 빠르게 닭을 토막 내고 있다. 소꿉 살듯 닭을 희롱하던 아이는 이내 싫증이 났는지 도마 뒤에서 목을 잔뜩 빼어 내밀고 호기심과 두려움이 가득찬 눈망울을 이리저리 굴리고 있다. 대학에 입학했을 당시의 나도 그랬다. 저렇게 여윈 타조처럼 목을 잔뜩 빼고 무엇인가를 찾아다녔다. 내 몸에 속속들이 밴 생닭내 같은 치기는 전혀 모른 채.
닭집을 지나면 꼴부리와 번데기를 파는 노부부와 각종 나물이나 양념거리를 손수레에 놓고 파는 여자들, 생선을 손질하는 사내들, 숱한 과일 노점들이 있고 어묵 반죽을 즉석에서 튀겨 파는 싸구려 오뎅가게도 있다.
시장길이 끝나고 오르막이 나타난다. 나는 냄비가 든 봉지를 흔들며 오르막길로 접어든다. 마지막 언덕바지를 오르노라면 가쁜 숨이 쏟아져나온다. 오르막이 끝나고 널찍한 골목을 돌아들면 드디어 내가 이 년째 세 들어 살고 있는 젖은 방이 보인다.
*
나는 이 방에 기생충처럼 어여쁘게 빌붙어 살았다. 눈을 감고도 내 방을 그려볼 수 있다. 나는 무대를 생각한다. 흔히 보듯이 좌우로 길쭉한 직사각형의 무대가 아니라 그것을 구십 도 회전시켜 만든 무대. ‘길쭉한 무대’와 대비하여 그것을 ‘깊은 무대’라 부르기로 하자. 나는 한 발 한 발 될 수 있는 한 천천히 깊은 무대에 접근해 들어간다.
무대는 닫혀 있다. 흰 회벽이 안을 감추고 있다. 회벽 한가운데 표면이 오돌토돌한 유리문이 있고 유리문 양쪽에 조그만 창문이 하나씩 달려 있다. 왼쪽 창문은 낮게, 오른쪽 창문은 높게. 왼쪽은 주방 창문이고 오른쪽은 욕실 창문이다. 나는 오돌토돌 유리문에 열쇠를 넣어 깊은 무대로 들어가는 길을 연다. 현관에 들어서면 코에 익은 물비린내가 풍긴다. 나는 좁다란 사각의 현관에 신발을 벗고 유리문을 닫아 잠근다.
예상했던 대로 내가 한 발씩 내디딜 때마다 왼쪽에는 가스레인지, 조리대, 개수대, 건조대 등 간소한 주방 설비가 보폭에 맞게 칸, 칸, 늘어서 있다. 드디어 작은 냉장고를 마지막으로 주방은 끝이다. 마침표를 찍듯 나는 냉장고 위에 새로 산 냄비를 사뿐히 올려놓는다.
오른쪽엔 벽이 길게 이어져 있고 끝에 욕실 문이 있다. 욕실에 들어서면 흰 타일이 박힌 넓고도 허전한 공간이 나를 맞이한다. 큼직한 넓이에 비해 그 안에 있는 설비는 세탁기와 양변기, 냉온 수도꼭지 두 개, 실제의 모습보다 더 길어 보이는 거울, 높이 달린 손바닥 두 개만한 창문이 전부이다. 세탁기 위에는 오래전부터 녹슨 면도칼이 놓여 있다. 그쪽을 애써 외면해도 자꾸 손목이 시리다. 나는 수도를 틀어 손을 씻으며 거울에 비친 얼굴과 짧은 머리카락을 흘낏 본다. 그리고 문고리에 걸쳐둔 수건에 물기를 닦고 욕실을 나온다.
왼쪽도 오른쪽도 아닌 정면에는 지금까지 내가 걸어들어온 짧은 중앙선, 즉 복도가 있으며 그 복도의 끝이 하나밖에 없는 내 방의 문이다. 문은 항상 열려 있어 나는 아무 저항 없이 방으로 들어갈 수 있다. 방은 제법 크다. 방에 들어섰을 때 마주 보이는 벽이 ‘깊은 무대’의 끝이다. 여기가 끝이라고 알리듯 언제나 꼭꼭 닫혀 있는 커다란 창문이 벽의 윗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문틀에는 내가 꽃무늬 이불 홑청을 찢어 철사에 걸어 만든 커튼이 걸려 있다. 나는 눈을 감고 오돌토돌 유리문에서 꽃무늬 커튼까지 무대의 깊이를 어림해본다. 마음 같아선 한달음이지만 보통 걸음으로 열한 걸음이다. 나는 하나라는 숫자와 열하나라는 숫자에 마음을 빼앗긴다. 나의 한 살도 나의 열한 살도 이렇게 무대인지 벼랑인지 모를 어떤 모서리에 선 체험이었으리라. 새로운 끝 아니면 시작이었으리라. 둘을 적당히 곱하고 더해 가까스로 도달한 서른 살의 봄 지금처럼.
여기 새로운 무대가 나타났다. 나는 다시 무대를 깊은 무대에서 길쭉한 무대로 바꾼다. 방의 모양은 평범한 무대처럼 가로로 길쭉하다. 나는 길쭉한 무대 한가운데 서 있다. 정면 벽에는 길고 큼직한 창문과 그걸 덮고 있는 꽃무늬 커튼이 보인다. 내가 왼쪽으로 반의반 바퀴 돌면 마주하는 벽 쪽에 일인용 침대가 길게 누워 있다.
나는 매일 밤 내 귀여운 둥지인 침대 위에서 잠을 잔다. 주로 소주를 마시다 말고 침대에 기어올라가 누운 적이 많다. 벌렁 드러누운 다음 나는 둘둘 말린 얇은 면이불을 펼치기 위해 발가락에 이불을 걸고 무릎을 세웠다 뻗었다 하는 운동을 격렬하게 반복한다. 이런 다릿짓을 반복하면 이불이 그럭저럭 덮을 만하게 펴진다. 때로 이불이 뒤집혀 펼쳐지는 경우도 있는데 그럴 때면 이불을 도로 뒤집느라고 용을 쓰는 내 숨소리가 사뭇 시끄럽다. 잠을 잘 만반의 태세를 갖춘 나는 침대 밑으로 손을 뻗어 방바닥에 수북이 쌓여 있는 책 중에서 하나를 집는다. 나는 모로 누워 책을 읽기 시작한다. 베개에선 절어든 머릿내가 나고 이불의 위쪽은 누르스름하고 끈끈하다. 이렇게 턱과 목에 닿는 면이 더 때가 타 있어서 이불의 위아래를 분간하기는 안팎을 분간하는 것만큼 쉽다. 이 모든 익숙한 느낌을 상쾌하게 받아들이면서 나는 잠자리에 든다. 몹쓸 병을 얻어 조강지처의 품에 안주하게 된 바람둥이 서방처럼 죄스러우면서도 일견 만족한 몸짓으로 나는 침대를 누비며 책을 읽는다. 그럴 때면 졸음에 겨운 또하나의 나는 몸을 가장 조그맣고 둥글게 만들어 책 읽는 내게 방해가 되지 않도록 애쓴다. 매일 밤 둥지 속에 든 두 개의 알처럼 잠자는 나와 책 읽는 나, 죄의식과 만족감이 한 침대 위에서 데굴데굴 구른다.
나는 다시 왼쪽으로 사분의 일 바퀴 돌아 창문을 등지고 선다. 그곳엔 책상과 컴퓨터 책상이 나란히 놓여 있고, 그 옆으로 열린 방문을 통해 지금 막 내가 통과해 들어온 복도와 복도를 마감하는 유리문이 보인다.
책상 위 책꽂이에는 천장을 찌를 듯이 책들이 높다랗게 쌓여 있다. 원래 책꽂이의 키는 그 반밖에 안 되지만 나는 책 중에서 크기가 일정한 전집류를 낮은 책꽂이 위에 닥치는 대로 쌓아올려놓았다. 책더미는 사뭇 쏟아질 듯 위태롭지만 다행히 아직 무너져내린 적은 없다. 나는 책상 서랍을 열어 열쇠와 이삿짐센터 계약서를 넣는다. 서랍 구석에 꽃핀이 녹슨 채 뒹굴고 있다. 나는 분홍색 꽃핀을 만지작거리며 닿는 금속 모두를 녹슬게 하는 내 정신의 습기에 대해 잠시 생각한다. 그리고 그것을 가둘 수 있기라도 하듯 서랍을 딸깍 닫는다.
그 옆에 놓인 컴퓨터 책상은 이 방에서 가장 산뜻한 가구이다. 바퀴가 달린 이동식 책상으로 고급 사무용 가구들이 대개 그렇듯이 옅은 회색빛이다. 나는 자랑스레 컴퓨터 책상의 둥근 모서리를 쓰다듬는다. 모던함 탓으로 이 방에서 가장 이질적인 존재이기도 한 이 책상 위에는 이 방에 가장 어울릴 법한 구닥다리 컴퓨터와 프린터가 놓여 있다. 나는 이 컴퓨터를 자주 이용한다. 이 기계의 오만한 특징은 오락 프로그램을 하나도 내보내지 않는다는 데 있다. 용량 때문이 아니라 오로지 고매한 품성 탓으로 이 낡은 기계는 모든 오락 프로그램을 사절했다. 그리하여 나 또한 오직 워드프로세서 프로그램만 가지고 논다. 내가 밤늦게까지 컴퓨터 앞에 붙어앉아 있으면 술을 먹고 싶어하는 또하나의 나는 초조한 듯 방안을 서성인다. 그 서성임을 내 무릎 위에 고정시키기 위해 나는 컴퓨터와 교제하는 동안엔 앉은 자리에서 술을 마실 수 있도록 산뜻하게 도련된 컴퓨터 책상 모서리에 소주병과 잔을 놓아둔다. 나는 모니터 화면에 얼굴을 바짝 붙이고 자판을 두드린다. 때로는 컴퓨터에 몰입하다 깨어나서 반찬 접시에 담뱃재를 떨었다는 걸 알고 손뼉을 치며 웃을 때도 있다. 아무리 하찮은 대상에라도 정신을 잃을 만큼 몰입하는 나를, 나는 아직도 좋아하는 급진적인 경향이 있다.
다시 몸을 왼쪽으로 살짝 틀면, 방에서 가장 키 큰 친구들인 옷장과 철제 책장이 장승처럼 버티고 있다. 철제 책장도 자기 키보다 더 커 보이도록 천장까지 책이 쌓여 있는 상태인데 내가 잠자리에서 읽는 책들은 대부분 이 책장 출신인 구닥다리 문고판 고전소설들이다. 나는 나를 재우기 위한 방편으로 분명한 장르 구분을 단행하고 있다. 천천히 잠에 빠지면서 다채로운 이야기를 꿈자리로 끌어들여 활동사진 같은 꿈을 생산하기에는 전통적 서사물이 좋다. 그러나 열심히 읽으면 읽을수록 몽롱한 상태를 심화시켜 늪처럼 깊고 액자처럼 정적인 꿈을 가꾸기에는 분절적인 자유 서사물이 좋다. 그날그날 내가 원하는 꿈에 따라 간택되는 책이 달라진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책을 이런 분류법에 따라 정돈해놓은 것은 아니다. 나는 이 방에 있는 먼지 한 톨이라도 게으른 내 성정에 맞게 배치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책장은 이 년 전 내가 처음 이사올 때 해놓은 대로 아수라장이다. 필시 한 번도 제대로 꽂힌 적이 없는 이 책 저 책들, 정치적으로나 기질적으로 도저히 상면하고 있을 수 없는 종류의 책들이 서로 분격한 채 맞붙어 대치하고 있다. 나는 책들의 이런 극한상황에 개의치 않는다. 책 하나를 찾기 위해 이중 주차된 책들을 헤집어 먼지를 날릴 때에도 나는 혼잣말을 하며 웃는다.
“영 게을러서 말이지……”
내 손길을 기다리는 방구석의 모든 것들에 대해 나는 늘 그렇게 말하고 다소 정나미 떨어지는 웃음을 웃는 버릇이 있다.
“아쉬우면 언젠가는 부지런해지겠지.”
방안의 잡동사니들과 방 모퉁이 어딘가를 헤매고 있을 벌레들이 내 말에 선뜻 동의하는 기색이 없으면 나는 쑥스럽게 덧붙인다.
“아직 덜 아쉬운 거겠지.”
아무리 아쉬워도 글쎄…… 방안 것들이 내심 나를 비웃는 걸 느끼고 나는 또 웃는다.
“그땐 또다른 모토가 생각나겠지.”
오호, 이럴 때 나는 내 안에서 꿈틀거리는 무한한 종교성을 발견한다. 자랑스럽게도 내 몸속에는 기다림과 금욕적인 삶을 사주하는 위대한 피, 게으름을 운명으로 포용하는 철면피적 수도승의 혈통이 면면히 흐르고 있다. 그건 분명히 두부모 자르듯 부계 반 모계 반일 거라고 나는 확신한다.
이제 무대장치는 끝났다. 나는 원점으로 돌아가기 위해 경건한 마음으로 눈을 감고 마지막 사분의 일 바퀴를 돈다. 눈을 뜨면 낯익은 꽃무늬 커튼이 보인다. 드디어 나는 제자리를 찾았다. 그렇다! 더이상 의아할 것은 없다! 이 방의 가구들은 모두 벽에 붙어 있지 않다. 어떤 것은 십 센티쯤, 어떤 것은 그보다 훨씬 더 많이 벽에서 뛰쳐나와 있다. 심지어 오른쪽 벽 구석에 놓여 있어야 할 옷장은 거의 방 중앙에 육박할 만큼 진군해 있다. 그러나 정말 이상할 것은 조금도 없다.
나는 원점의 위치에서 털썩 주저앉아 면벽 수도하듯 마주 보이는 벽의 아랫도리를 바라본다. 꽃무늬 커튼 아래의 벽지들은 조금씩 젖어 있다. 방바닥에서 가까운 순서로 까맣게, 파랗게, 노랗게. 어제 비가 오지 않았으므로 벽지는 더 젖지도 덜 젖지도 않았다. 짓무른 눈처럼 항상 젖어 있는 그만큼이다.
방의 벽지를 젖게 만드는 요인은 외부에 있다. 정면으로 보이는 벽의 바깥, 곧 깊은 무대보다 더 깊은 쪽은 땅과 접하고 있다. 부동산업자들은 이 방을 반지하라고 부른다. 집주인은 경사진 땅을 후벼파 동굴처럼 어여쁜 방을 만들어 싼값에 세놓았다. 첫 세입자인 나는 가구들이 벽에 들러붙어 같이 썩어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가구들을 모두 벽으로부터 떼어놓았다. 그래서 나의 젖은 방은 수선스러운 헛간과도 같이 막 이사갈 차림을 하고 있다. 그 차림에 맞게끔 나는 정말로 이사를 나가는 것이다.
일주일 남았다. 비 맞은 나무에 얹힌 새둥우리처럼 아늑하고 축축한 침대에 걸터앉아 나는 일주일이란 도대체 얼마만큼의 시간을 의미하는지 가만히 생각해본다. 기다림은 시간에 대한 의식을 새롭게 한다.
그 이름 아그네스
진정한 의미에서 나의 대학 생활은 그날의 구토로부터 시작되었다.
대학에 입학한 지 한 달이 채 못 되었을 무렵 나는 학생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서클룸에 들렀다가 재미있는 구경을 가자고 권유하는 선배를 따라나섰다.
“너 여기 말고 뭐 다른 서클에도 가입했니?”
“아직은요……”
나는 잠시 뜸을 들인 후 물었다.
“지하서클 말씀하시는 거예요?”
나는 지하서클이 있다는 걸 알뿐더러 그걸 바로 ‘지하서클’이라고 부른다는 것까지 알고 있다는 걸 과시하려고 나름대로 또박또박 야물딱지게 물었던 것인데, 선배는 내 지식을 별로 기특히 여기는 기색이 없었다.
“지하서클? 그래, 어쨌든 그런 데 가입했냐고?”
“아뇨, 아직은……”
“가입할 생각은 있고?”
“잘 모르겠어요.”
나는 다시금 똘똘한 후배로 보이길 원하면서 진지한 얼굴로 물었다.
“선배님, 지하서클에서는 무슨 공부 해요?”
“지하서클?”
“네.”
“지하서클, 지하서클 하니까 이상하다. 보통 언더라 그래.”
나는 잘 알아듣지 못했다.
“그게 뭐예요?”
“네가 말하는 지하서클이랑 같은 거야.”
나는 글쎄 그게 무슨 말이냐고 되짚어 물어볼 용기가 없었다. 지하서클을 지칭하는 더 심오하고 중요함이 틀림없는 그 말을 나는 이후 다른 경로를 통해 금세 알아냈고 그 말이 고작 ‘언더서클’의 준말일 뿐이라는 데 실망했지만, 그래도 하나를 깨쳤다는, 심지어 정복했다는 기쁨에다, 언더를 아는 애들과 모르는 애들로 나눈다면 내가 아는 편에 속하게 되었다는 기쁨을 보탰다.
대학 풋내기 시절 내가 무엇보다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이 있었다면 그건 한시바삐 어른이 되는 것이었다. 어른이란 모름지기 ‘정치’와 ‘성’에 대해 확고부동한 입장을 갖추고 있어야 하는 법이다. 따라서 내 수련 과정에 필요한 것은 ‘정치 용어 사전’과 ‘성 용어 사전’이었다. 두 사전이 없으면 대학 사회에서 운영되는 소통 체계에 적응할 수 없었다. 내가 잘 알아듣지 못한 ‘언더’라는 말은 운동권 약어나 은어에 하루빨리 통달해야겠다는 강박관념을 형성한 첫 동인이었다. 나는 언더라는 말을 정치 용어집 한 귀퉁이에 신중하게 기입했다. 그리고 남은 한 가지, 성에 관한 한 나는 성기에 얽힌 욕설들에 꽤 익숙하다는 이점을 갖고 있었다. 열한 살 때 욕쟁이 첫째 이모가 여덟 살 난 민정이와 함께 우리집 대문을 들어선 이후로 나는 막힘없이 욕을 해대는 첫째 이모 덕분에 일찌감치 거친 욕설을 귀동냥해왔다. 그러나 그런 잡스런 욕을 넘어서, 형태를 알아볼 수 없이 줄어들거나 변주된 온갖 욕설, 여러 가지 불경스럽고도 속악한 용어나 농담 등을 어원적으로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 ‘성 용어 사전’의 필요성이 절실히 대두되었다. 당시 내 머릿속에서는 두 사전이 숨가쁘게 편찬되고 있었다.
선배가 나를 데려간 곳은 인문대학 앞마당이었다. 세 면이 건물에 둘러싸인 작은 광장 같은 앞마당에는 수십 명의 학생이 무질서하게 흩어져 있었다. 선배는 아는 사람들과 의미심장한 눈짓을 주고받기도 하고 은밀히 수군거리기도 했다. 나는 혹시 선배가 내게 호감을 갖고 있어서 자기 친구들에게 나를 가리켜 보이면서 참하지 않으냐고 묻고, 그 친구는 또 그 친구 나름대로 내게 느낀 치명적인 매혹을 감추느라 전전긍긍하면서 동상이몽의 대화를 나누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즐거운 의혹에 빠져 무심함을 가장한 채 그들이 대화하는 양을 눈여겨 살폈다. 그러나 용의주도한 그들은 결코 그런 기색을 쉽게 드러내지 않았다.
나는 혼자 서 있다가 뜻밖에도 잔디가 깔린 동그란 언덕 쪽에 몰려 있는 신참 동급생들을 발견했다. 잔디동산이라 불리는 언덕 양편에 촘촘히 늘어선 나무들은 겨울의 잿빛과 봄의 연둣빛 중에 무엇을 선택해야 할지 몰라 나만큼이나 수줍게 허둥대고 있었다. 잔디동산 위에 있는 친구들 중엔 지명호도 끼어 있었다. 내가 지명호를 처음 본 것은 신입생 환영회 자리에서였다.
*
공식적인 단과대별 신입생 환영회가 끝난 후 과선배들은 신입생들을 몇 개의 조로 나눠 중국집으로 안내했다. 우리 일행이 중국집에 도착했을 때 커다랗고 을씨년스러운 방에는 먼저 도착한 학생들이 죽 둘러앉아 있었다. 학생들이 속속 도착했고 나는 안쪽으로 밀려들어갔다. 본격적인 환영회가 시작되기 전까지는 조용하고 어색한 분위기였다. 저녁으로 자장면과 우동 중 하나를 시키라고 해서 시끌벅적해진 가운데 소란을 뚫고 이런 물음이 들려왔다.
“재수했어요?”
맞은편에 앉은 남학생이 고개를 비스듬히 하여 쏘아보는 눈초리로 나를 보았다. 그 질문은 나를 향한 것이 분명해 보였지만 혹시라도 내게 물은 게 아닌데 선뜻 대답하면 망신스러울까 싶어 나는 잠시 주춤했다. 두리번거리는 나를 보면서 그는 보일 듯 말 듯 한 턱짓으로 대답해야 될 사람이 나라는 걸 확인시켜주었다.
“아뇨, 안 했는데요.”
“재수한 줄 알았네.”
왜 그런 끔찍한 오해를 했는지에 대한 한마디 해명도 없이 그는 눈길을 다른 데로 돌렸다. 내가 자장면 쪽에 손을 들었을 때 그도 손을 들었다. 나는 쌀쌀맞고 기분 나쁜 눈초리로 무례한 질문을 해댄 당사자를 간간이 노려보았다. 그는 뭐가 마음에 안 드는지 인상을 찌푸린 채 옆에 앉은 친구를 쿡쿡 찔러 곱지 않은 말투로 불평을 늘어놓았다.
식사가 나오기 시작했을 때 나는 그를 본격적으로 관찰할 기회를 가졌다. 주방 입구 쪽에 앉은 그는 날라져오는 식사 쟁반을 받아 이리저리로 돌리는 일을 맡아 했는데 움직일 때마다 약간 마른 몸에 딱 보기 좋게끔 달라붙은 청바지가 제법 중국집 보이처럼 어울렸다. 그릇을 다 돌리고 나서 그는 왜 하필 자기가 이런 일을 맡아 했던가 물밀 듯한 회의가 밀려오는 포즈로 털썩 주저앉더니 자장면을 그릇째 반짝 들어 턱밑에 받치고 쭉쭉거리며 먹었다. 자장면은 아주 따뜻하고 맛있었다.
내가 식사를 마치고 고개를 들었을 때 그는 고개를 삐딱하게 기울여 담배를 빨고는 턱을 살짝 치켜들어 천장 쪽으로 연기를 내뿜고 있었다. 그러곤 핥아놓은 개밥그릇처럼 말끔한 자장면 그릇에 담뱃재를 톡톡 떨었는데, 그 미세한 손짓에서도 어딘가 모르는 겉멋, 다소 의식적인 건들거림의 기미가 풍겨왔다.
과 회장 선배가 일어나 자기소개를 했고 다른 선배 하나가 사회를 보았다. 사회자는 신입생들에게 한 명씩 돌아가면서 자기소개를 하도록 시켰다. 주로 타인의 발음을 통해서만 귀에 익은 내 이름을 직접 내 입으로 말하고 소개하는 것은 낯설고 계면쩍은 경험이었다. ‘자기소개’는 인생의 새로운 단계, 새로운 세계로의 진입을 암시했다. 다들 자연스럽게 나를 알고 있으려니 하는 유년의 수동성을 넘어 당당히 내가 바로 아무개라고 자기를 주장해야 하는 세계, 서로의 존재를 매번 정겨운 방식으로 일깨우는 공동체가 아니라 각지고 독립된 개체의 삶을 책임져야 하는 사회, 그런 어른들의 세계로 진입하기 위해 우리는 자기소개를 해야 했다. 자기소개라는 절차는 일종의 폭력성을 내포하고 있었다. 소개자는 자기 이름을 모두가 알아들을 수 있도록 명료히 발음해야 했고, 청중은 소개자가 임의로 요약한 그 혹은 그녀의 존재성을 강제로 받아들여야 했다. 자기소개는 소극적인 자들이 도태되고 적극적이고 용감한 자들만이 살아남는 세계로의 입사식이었다. 불리기를 기다려서는 안 되고 어떻게든 적극적으로 부르심을 유도하는 방식, 다른 사람들이 자기 이름을 한시바삐 소비하도록 이름을 세일하는 방식이었다.
갑자기 맞은편에 앉아 있던 그가 벌떡 일어났다. 사회자로부터 그에 이르기까지 많은 신입생들이 앉아 있었는데 나는 그들의 세일을 몽땅 놓쳐버렸다.
“지명홉니다. 성일고 나왔고 재수했습니다. 잘 부탁합니다.”
그는 뭘 더 말할 것처럼 시간을 끌다 또 한번 물밀 듯한 회의가 밀려오는 포즈로 주저앉았다.
‘재수는 지가 해놓고……’
그에 대한 원망도 잠깐이었다. 나는 내 차례가 다가오는 것을 손에 땀을 쥐고 기다렸다. 그날 사회자와 지명호 사이에 앉아 있던 학생들이나 지명호와 나 사이에 앉아 있던 학생들은 내게 없던 것과 마찬가지였다. 사회자가 소개를 하라고 하자 바로 지명호가 일어났고, 바로 다음에 내가 일어났고, 그러자 모든 소개가 끝이 났던 것으로, 신입생이라고는 그와 나밖에 없고 선배라고는 과 회장과 사회자밖에 없었던 것으로 나는 그날의 일을 기억한다.
나는 나를 어떻게 소개해야 할지 몰랐다. 가장 나쁘지 않은 방식은 내 목의 역사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었으리라. 태어날 때부터 나는 새처럼 목이 길었고 이제 그 목은 무언가를 향해 뻗어나가려 한다고…… 나를 소개하기 위해서는 내 탄생의 신화를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고…… 그러니 다소 길더라도 부디 나의 파랑새 신화에 귀기울여달라고……
*
나는 장마가 끝나갈 즈음에 태어났다. 그때 아버지는 서른여덟이었고 어머니는 그보다 열세 살 아래인 스물다섯이었다. 젊어서부터 줄곧 배를 타며 자유롭게 살아온 아버지가 서른셋이나 되어 결혼을 결심한 것은 동네 매파가 들려준 어떤 가련한 처녀에 대한 이야기 때문이었다. 아버지에게 결혼은, 암소 주인이 바라본 냄비처럼 몹시 그럴듯하게 보이긴 하지만 호기와 방탕, 그 무한한 자유의 암소와 바꿔치기하고 싶을 만큼 대단치는 않은 것이었다. 그러나 노인의 냄비가 말을 걸어왔듯 늙은 매파의 입을 빌려 어떤 처녀가 말을 걸어왔다. 아버지는 요절할 운명을 타고났다는 스무 살짜리 처녀의 이야기를 전해듣고 한 번도 본 적 없는 그 처녀가 마치 자기를 데려가달라고 직접 말을 건네고 있기나 한 듯한 기분이 들었다.
‘저를 데려가주셔요. 분명히 후회하지 않으실 거예요.’
아버지는 이 가련한 청혼의 속삭임에 암소 주인과 똑같은 생각을 했는지 모른다.
‘흠, 보지도 않은 처녀가 말을 하다니…… 말을 할 수 있다면 아마 그 밖의 다른 것들도 할 수 있을지 몰라.’
아버지는 서른셋의 삶이 시키는 대로 했다.
어머니가 요절할 팔자라는 점괘에 기절초풍을 한 외할머니는 그나마 나이가 많이 층지는 데로 혼인을 정하면 목숨을 이어 살 수가 있다는 늙은 점쟁이 겸 뚜쟁이 여인의 말을 신주 모시듯 하여 갓스물인 맏딸을 신원 불명인 서른셋의 노총각과 냉큼 결혼시켰다.
부모님은 내 위로 딸 하나를 두었다. 내가 태어났을 때 언니는 다섯 살이었다. ‘또 딸’이라고 외할머니가 죄스러워 중얼거리는 말에 휴가중이었던 아버지는 그저 어깨를 으쓱하고 말았다. 딸이라는 말 앞에 붙은 ‘또’ 자 때문에 나는 이름이 지어지기 전부터 ‘꼭지’라고 불렸다. 아무도 갓 태어난 나를 미워하지 않았지만 모두들 더이상 상황이 이런 식으로 지속되어선 곤란하다는 우려가 담긴 ‘꼭지’라는 별칭을 내게 붙임으로써 내 존재의 고유성을 암암리에 부정했다. 본의 아니게 나는 복수하듯 꼭지로서의 사명을 완수했다. 나는 내가 태어난 이후 딸만 마감한 것이 아니라 아들까지도 마감했다.
내가 태어난 새벽 아버지는 방 앞 쪽마루에 조는 듯 마는 듯 걸터앉아 있었다. ‘또 딸’이 태어났다고 하는 장모의 목소리, 장중하기는 고사하고 모기 소리처럼 기어들어가는 운명의 목소리를 듣고 어깨를 으쓱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아버지는 흐릿하게 내려앉은 새벽하늘을 배경으로 새가 빠른 속도로 날아와 마당을 가로질러 지나가는 것을 보았다. 새로운 딸의 아버지가 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그의 눈에 이것은 대단히 놀라운 의미를 담고 있는 징조로 보였다. 새로 태어난 딸이 그를 쏙 빼다박았다는 장모의 급조된 위안을 듣는 순간 이 놀라운 의미는 더욱 분명해졌다. 아버지는 자신이 직접 본 광경인지 아니면 임의로 갖다붙인 의미인지 분별할 경황도 없이 조금 전에 목도한 광경을 장모에게 알렸다.
“어무이, 제가 여 앉아서 까무룩이 졸고 있는데 말씸임더, 퍼뜩 뭣이 지나가는 기라, 확 깨보이 새 한 마리가 안 있십니껴? 새 한 마리가 여기 처마밑으루다가 쏜살같이 들왔다가 마당을 몇 바쿠 돌두만은 멀리 날아가뿌는데 고때 딱 어무이께서 아가 태났다 안 합니껴.”
“엉? 새가 날아왔어?”
“예. 새도 뭣이냐, 거 파아란 파랑새 안 있십니껴? 파랑새가 처마밑으루 들왔다가는 마당을 딱 세 바쿠 돌두만은 날아가뿌따니까예.”
아버지는 지긋지긋한 장마가 끝나기를 기원하며 조금 전에 날아가버린 새에게 한 점 구름 없는 푸른 하늘빛을 실어보냈다.
“파랑새가 마당을 딱 세 바쿠 돌구 갔으문…… 가만있자, 시방 태난 저게 보통 복뎅이가 아닌 모냥인데. 아이구, 자네가 복뎅이를 낳았구만, 손서방.”
“파랑새가 복뎅입니껴?”
“아무렴, 파랑샌데. 이제 자네두 떵떵거리면서 한가락 하구 살려나보네. 딸이라구 섭해 말게, 그게 복뎅인걸.”
“딸이면 어떻고 아들이면 대숩니껴? 지는 그런 건 괘안씸더, 장모님. 그런 쑤잘데기없는 걱정은 하도 마이소.”
“자네가 그리 말해주니, 말이라도 고맙소.”
이리하여 꼭지의 ‘파랑새 신화’가 생겨났다. 파랑새 이야기는 이웃에도 퍼졌다. 딸만 내리 낳은 어머니는 누가 또 딸이라고 쯧쯧 혀를 차기라도 할 양이면 지레 발이 저려 기운 없는 와중에도 남편의 생생한 파랑새 목격담을 한껏 정확하고 풍부하게 전달하려고 기를 썼다. 첫딸이 반 남짓 삼분지 일 남짓 아비를 닮은 데 비해 이번의 꼭지는 우리네 얌전한 입으로 밝힐 수 없는 딱 한 가지 부위만 제외하곤 백에 아흔아홉으로 완전히 아비를 빼다박았을뿐더러, 이 무슨 길조인지 바로 그 아비가 딸이 태어나기 직전에 파랑새가 쏜살같이 날아들어와 마당을 딱 삼세번 돌고 나가는 것을 두 눈 번히 뜨고 지켜보았으니, 아들 못 낳은 게 결코 서러울 일이 아니고 오히려 이 딸을 못 낳았던들 절대적으로 큰 변고가 생길 뻔하지 않았느냐고, 이웃들이 남 먼저 말해줄 때까지 어머니는 온갖 기운을 빼가며 파랑새 이야기를 되풀이했다. 이때 당사자인 아버지가 한술 더 뜨면 더 떴지 묵묵히 있었을 리 없이, 아내가 말한 내용이 자신이 최대한도로 의미 부여한 범위에 미치지 못할 때는 가차없이 나서서 부연 설명을 했다. 술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아버지는 딸을 낳았음에도 불구하고 파랑새 이야기를 안주 삼아 아들 낳은 것 뺨쳐먹게 많은 술을 샀고 더 사지 못해 안달을 했다. 아버지가 늦게 얻은 막내딸 때문에 얼마나 많은 술을 느럼치레기로 곰삭게 사대었는지 어머니는 아버지가 배를 타고 떠난 후에야 그 술빚과 노름빚의 실태를 파악하고 기절초풍을 했다.
여러 의미에서 나의 출생은 하나의 신화를 창조했다. 몸이 약해 아기를 잘 갖지 못하는 어머니는 나를 낳은 지 일 년 뒤에 바로 임신을 했다. 파랑새 신화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몽매한 이웃들이 이렇게 바로 뒤미처 들어서는 애는 십중팔구 아들이라고, 이제 손씨네도 아들 보게 됐다고 미리 축하를 해대는 걸, 어머니는 한사코 뽐내기를, 남들처럼 아들 바라고 더 낳을 우리로 알면 큰코다친다고, 요즘 세상은 딸 하나가 열 아들 노릇 하는 세상이라고, 게다가 막냉이가 태어날 때 일어난 그 심상찮은 징조를 도대체 뭘로 보고 그런 불경스런 소리를 하느냐고, 이웃들이 보기에뿐만 아니라 외할머니가 보기에도 얼토당토않은 짓을 하고 말았다. 꼭지의 파랑새 신화에 발목 잡힌 어머니는 아버지의 동의하에, 이웃의 말에 의하면 ‘고추임이 분명한’ 뱃속의 것을 낙태시켰다.
부모님이 나를 합리화하는 방식 속에는 이미 나에 대한 수치심이 숨어 있었다. 부끄러움이 신화를 만들어냈고 신화에 족쇄가 채워진 그들은 차마 더는 아기를 낳을 수 없었다. 신화는 그 유일무이성에 의해 권력을 보전하는 법이다. 그들은 입에 침이 마르도록 유포시킨 파랑새 신화를 거울삼아 그것에 비추어 한 치도 부끄러운 짓을 할 수 없었다. 내가 이런 수치심을 합리화하는 수단일 수밖에 없도록 길러진 것은 당연했다. 나의 출생은 나의 양육 방식을 결정했다.
민담 속의 냄비는 과연 가난한 부부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냄비는 기특하게도 그 밖의 다른 것들도 할 수 있었다. 가난한 부부를 위해 부잣집으로 뛰어가 막 구운 푸딩이나 다듬은 밀이나 금화 따위를 냄비에 가득 담아 돌아왔다. 가난한 부부는 암소를 냄비와 바꾸기 잘했다고 손을 맞잡고 기뻐했다. 부디 아버지와 어머니도 똑같은 평가를 내렸기를…… 냄비 뚜껑을 열었더니 파랑새가 포르르 날아올랐고 그 새는 아버지를 쏙 빼닮아 목이 아주 길었고 파랑새가 출현한 후로 월급이 달러로 지급되었고 그러면서 눈먼 돈들이 냄비에 가득하게 되었고 그것으로 모든 게 만족스러웠다고. 다만 신화의 효력은 십 년 동안만 유효했다. 냄비의 돈은 십 년 동안만 쌓였을 뿐 내가 열한 살이 된 후부터는 계속 줄어들었다.
내가 열한 살이 될 때까지 우리 세 모녀의 생활은 선원인 아버지의 지휘봉에 의해 ‘열 달의 항해’와 ‘두 달의 휴가’라는 박자로 연주되었다. 때로 아버지의 항해가 길어지거나 짧아지면 우리 세 모녀는 놀라거나 감탄하는 정조를 실어 단조로운 삶의 멜로디를 조율했다. 유난히 긴 내 목은 훌훌 세상을 떠도는 뱃사람의 막내딸 노릇에 적합했다. 나는 아버지를 열 달 동안 잃고 두 달 동안 되찾는 놀이를 계속했다. 나는 이 놀이가 영원히 끝나지 않을 줄 알았다. 그러나 내가 대학에 입학하기 직전에 아버지는 덜컥 실직을 했고, 줄곧 아버지를 기다리며 자라났던 내 목은 그 밖의 다른 것들을 향해 뻗어나가지 않으면 안 되었다. 목이란 부위는 무엇인가를 기다리는 데도 적합하지만 무엇인가를 찾는 데도 적합할 것이라고 열아홉의 나는 믿었다. 나는 대학에서 그 밖의 다른 무엇인가를 찾으려 했다……
*
이런 말들을 차분히 풀어놓을 수만 있었다면 나의 소개는 아마 가장 폭력적이지 않은 자기소개가 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내 차례가 되자 달달 떨면서 자리에서 일어나 평범하고도 단순한 내 몫의 소개를 간신히 해치웠을 뿐이다. 소개가 끝나자 소주 열댓 병과 짬뽕 국물이 들어왔다. 지명호는 술을 연거푸 잘도 마셨다. 나도 그처럼 소주를 잘 마시고 싶었다. 선배들이 노래를 시작했다. 신입생들이 〈선구자〉나 〈아침 이슬〉 같은 노래를 따라 불렀고 선배들이 새로운 노래를 몇 가지 가르쳐주었다. 한 무리의 여학생이 기숙사에 들어가야 할 시간이라며 일어날 때 나도 아쉬움을 거두고 함께 일어났다. 중국집 방문을 나서는데 그가 돌아보았다.
“우리 인사해요. 지명홉니다. 아까 이름이……”
그가 손을 내밀었다. 비록 재수했냐는 질문을 던지긴 했지만 처음에도 나를 알은척해주고 마지막에도 나를 알은척해주는 그에게 나는 호감을 느꼈다. 나는 그와 악수를 하면서 힘들여 내 이름을 발음했다.
“저, 손, 미, 옥, 이에요.”
“아, 맞다, 손미옥!”
그가 무릎을 치며 내 이름을 단번에 기억해주는 바람에 나는 기뻤다. 그는 내 기쁨을 배로 증폭시키면서 이렇게 말했다.
“그쪽이랑 뭔가 얘기 한번 해보고 싶었는데 벌써 가야 돼요? 다음에 보면 인사하고 지냅시다.”
“그래요.”
“잘 가요.”
그는 막 악수를 마쳤다는 걸 잊었는지 또 손을 내밀었다. 나는 다시 그의 손을 잡았다. 그날 밤 나는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지명호와 나의 관계에 대해 섣부른 공상을 했고 기쁜 나머지 보이를 부르듯이 손뼉을 두 번 짝짝 쳤다. 실직한 아버지가 마루에서 밤늦도록 텔레비전을 보고 있는 집에 들어서는 순간 나는 그런 공상이 얼마나 터무니없는지를 깨닫고 빙글빙글 웃었다. 어쨌든 대학은 놀라운 곳일 거라고, 그날 밤 나는 가는 목을 설레설레 흔들며 기대감에 부풀었다.
*
잔디동산에서 본 명호는 교련복 바지를 입고 있었다. 그에게는 교련복 바지도 청바지만큼 잘 어울렸다. 아는 친구들을 만났다는 표를 내고 싶어서 나는 선배에게 친구들 쪽으로 가겠다고 말했다.
‘선배님은 결코 나를 보내고 싶어하지 않을 거야.’
내 예감은 적중했다.
“그냥 여기 있어!”
선배가 무뚝뚝하게 말했다. 문득 조용하던 새가 깃을 털고 날아갈 준비를 할 때처럼 주위가 부산스러워졌다.
“왔군!”
선배는 나지막이 말하더니 〈흔들리지 않게〉를 힘차게 부르며 인문대 광장을 향해 전진했다. 나는 황급히 선배 뒤를 따랐다. 선배와 나는 광장 가장자리에 있는 계단에 앉아 노래를 불렀다. 명호네를 돌아보았더니 그들은 주섬주섬 잔디동산에서 털고 일어서긴 했으나, 와서 모여 함께 하나가 되어 물가에 심어진 나무같이 흔들리지 않을 생각은 않고 그대로 서 있었다. 언제 모였는지 어느새 광장 가운데에도 계단에도 많은 학생들이 앉아 있었다. 노래가 끝나자 누군가 구호를 외쳤고 학생들이 구호를 복창했다. 학장이 물러나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선배는 옆에 얌전히 앉아 있는 나를 보고는 그제야 나를 여기까지 데려온 자신의 임무를 깨달은 듯 이것저것 일러주기 시작했다. 나는 그동안 선배에 대해 쑥스러운 오해를 했던 것을 속죄하려고 성심껏 그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저 뒤에 고동색 양복 입은 사람 있지? 저 사람이 학장이야.”
“네에, 학장이요.”
“저 남색 양복, 저 사람이 우리 과 학과장이야.”
“네에, 학과장이요.”
“저기 나와 있는 사람들은 다 보직교수야.”
“아, 네에?”
학생들이 그들을 향해 무엄하게 소리를 질러대기에 그런 대접을 받아도 마땅한 인간들이겠거니 생각했는데 그들이 전부 교수라니, 내 속에 숨어 있던 얼간망둥이 같은 신출내기 여학생은 잠시 경기를 일으켰다. ‘교수’라는 말은 ‘학장’이니 ‘학과장’이니 하는 말들보다 훨씬 구체적이었다. 막무가내로 교수님을 공경해야 한다는 명백한 관념이 깨졌다. 그 관념은 너무나 쉽고 자연스럽게 깨졌고, 게다가 나는 이미 그 상황에 속해 있었다. 나는 교수님들께 주먹을 을러대며 물러나라고 소리를 지른 무리와 한패였다. 내가 처한 상황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못난 계집애가 내 표정을 기웃거리지 못하도록 엄중히 단속하느라 나는 가능한 한 잔혹한 눈길로 보직교수라는 이들을 살펴보았다. 나는 그들 중에서 철학 개론을 강의하는 한 교수를 알아보았다. 이틀 전 수업시간에 그는 교탁을 가리키며 이렇게 질문한 바 있었다.
“탁자가 여기 있습니다. 우리가 이 탁자를 보거나 만지거나 하지 않는다면, 그런데도 우리는 어떻게 이 탁자가 여기 있다고 확신할 수 있습니까?”
나는 철학자들이 그렇게까지 의심이 많은 것에 놀랐다. 그러나 수업이 끝나고 강의실을 나서다 문득 교탁과 책걸상을 돌아본 나는 그것들이 밤새도록 그 모습 그대로 빈 강의실을 지키고 있을 거라고 장담하는 일이 생각만큼 쉽고 간단한 일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나는 돌연 의심을 품었다. 탁자나 책걸상들이 어둠 속에서 소리 없이 움직이거나 내가 평소에 보았던 것과는 판이한 형태로 변형되거나 심지어 잠시 사라지기까지 하는 광경을 상상하면서 나는 교수가 던진 질문의 요체를 제대로 간파했다고 믿고 만족했다. 철학 또한 상상력에 기초한 학문이었던 것이다.
철학 개론 교수는 뒷짐을 진 채 꼼짝 않고 서 있었다. 때로 그는 고동색 양복을 입은 거구의 학장에 가려 보이지 않았다. 내가 그를 보지 못하는 짧은 시간 동안 과연 그가 학장 뒤에 서 있다는 걸 나는 어떻게 확신할 수 있을까. 나는 그의 존재와 부재 사이에서 생각의 갈피를 잃었다. 나는 사고의 분열을 참고 견디면서 선배 흉내를 내어 주먹 쥔 손을 들었다 내렸다 했지만 불경스런 일을 저지르고 있다는 느낌에 괴로웠다. 기진맥진한 나는 선배에게 도움을 청했다.
“선배님, 보직교수가 뭐예요?”
“직책을 맡은 교수야. 근데 그 직책이란 게 우리한테는 순 엿같은 거거든.”
선배는 뭔가 미진한 듯 깊은 한숨을 쉬더니 이렇게 덧붙였다.
“저런 어용들하곤 안 부딪치는 게 장땡이야.”
갑자기 보직교수들이 학생들 사이로 뛰어들었다. 그들은 학생들에게 해산할 것을 종용하다못해 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