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사람이 있다
20년 넘게 전 세계를 여행하며 수많은 박물관과 미술관에서 다양한 걸작들을 만났다.
비너스와 니케 조각상 등 고전적인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그리스 로마 작품들을 비롯하여 금색 바탕에 절제된 마리아의 모습을 보여주는 중세 작품들 그리고 〈비너스의 탄생〉 등 인간의 풍부한 감정과 이상적인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르네상스 작품들을 만나면서 예술의 아름다움에 말할 수 없는 충만감을 느꼈다. 그리고 카라바조와 렘브란트 등 바로크 화가들의 압도적인 작품 앞에서 삶을 관조하는 희열을 느꼈으며 왕과 귀족을 몰아내고 시민들이 주인이 된 프랑스 사실주의와 인상주의 작품 앞에서 자연의 아름다움은 물론 일상의 소중함과 기쁨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세잔을 비롯하여 입체파의 피카소나 야수파의 마티스 작품 그리고 칸딘스키의 초현실주의 작품 앞에서는 머릿속이 시원해지는 이지적인 아름다움은 느낄 수 있으나 이전 시대 작품에서 받았던 가슴을 뛰게 하는 감동은 없다. 변기로 상징되는 현대 회화 작품들에 와서는 더 이상 시대를 사는 사람들과 풍경 그리고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의 모습을 볼 수 없다.
내부적인 논리와 철학으로 무장한 현대 예술가들은 이제 더 이상 대중들과 소통하지 않는다. 현대 미술의 주인공은 작가도 작품도 아닌 미술을 관람하는 대중이라고 이야기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철학적인 현대 작품들 앞에서 대중들은 침묵하며 점점 더 현대 예술과 멀어져 갔다. 현대 작가들 역시 그들의 작품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과는 더 이상 할 말이 없다며 소통의 채널을 닫아버리고 자신들의 길을 갔다.
대중과 멀어지는 철학적인 현대 미술 작품 앞에서 나는 일상의 아름다움을 노래하는 작품이 그리웠다. 그때 눈에 띈 것이 여기에 소개한 북유럽 작품들이었다.
근대의 북유럽의 화가들은 자기 논리와 생각에만 빠져 있는 고고한 서유럽의 현대 화가들과는 달리 여전히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일상과 아름다운 풍경을 진실 되게 그리며 노래하고 있었다. 현대 회화 비평가들이 북유럽의 회화를 통속적이라고도 하지만, 그들은 일관되게 현재를 사는 인간들의 모습과 풍경을 경외감 넘치는 시선으로 그려낸다. 그리고 그것은 복잡하고 불안한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기쁨과 위로를 선사한다.
아름다운 풍경과 사람들이 살아가는 일상을 진실 되게 노래하는 근대 북유럽 회화들이 이지적이며 철학적인 서유럽의 회화에 비해 심미적 가치가 떨어진다고 아무도 단정할 수 없다.
복잡하고 빽빽한 일상에 지친 여러분을 여유로 반짝이는 북유럽의 일상에 초대하고 싶었다. 이 책 속으로 우리에게 낯선, 그래서 더욱 즐거운 북유럽을 산책하듯 여행하듯 떠나보길 바란다. 그럼 내가 그랬던 것처럼 여러분도 그림들 앞에서 가슴 떨리는 삶의 행복과 기쁨을 그리고 따뜻한 위로를 느끼게 될 것이다.
2024년 3월
손봉기
북유럽은 유럽 대륙의 북쪽에 있는 덴마크와 스웨덴 그리고 노르웨이, 핀란드, 아이슬란드를 지칭하는 말이다. 우리가 북유럽을 부를 때 사용하는 스칸디나비아는 원래 덴마크와 스웨덴 그리고 노르웨이 3국을 말한다. 지리적으로도 스웨덴과 노르웨이가 대서양을 향해 뻗은 지역을 스칸디나비아반도라 불렀다.
본격적인 북유럽 역사는 바이킹 시대(800~1050)부터 시작된다. 덴마크와 스웨덴 그리고 노르웨이의 강 하구나 피오르에서 살았던 사람을 뜻하는 바이킹은 기동성이 뛰어난 배와 노련한 항해술을 바탕으로 유럽 대륙을 공포에 몰아넣었다. 덴마크나 노르웨이 바이킹은 주로 서쪽인 영국, 그린란드에 진출했으며, 스웨덴 바이킹은 튀르키예, 러시아 등이 있는 동쪽으로 진출하였다.
이들은 노르망디 공국이나 더블린 등과 같이 유럽 곳곳에 바이킹의 도시를 형성하며 유럽에서 활약을 펼쳤다.
우리에게 바이킹은 약탈자의 이미지가 강하다. 바이킹하면 갑자기 배를 타고 나타나 압도적으로 큰 키, 커다란 덩치로 한 손에 몽둥이나 도끼를 들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덤벼드는 모습이 떠오른다. 실제 그들은 싸우다 죽는 것을 명예롭게 여겼다. 이는 전쟁을 하다 죽으면 신들의 마지막 전쟁인 ‘라그나로크’에 참전할 수 있다는 북유럽 신화 속 믿음에 따른 행동이었다. 그렇게 무자비하게 살육하고 식량을 강탈해가는 바이킹 이야기는 그들에게 당한 유럽인들이 남긴 이야기가 바탕이다. 실제 바이킹은 모두 그런 식은 아니었다. 약탈을 일삼은 노르웨이와 덴마크 바이킹과는 달리 스웨덴 바이킹의 경우 교역하는 방법을 택했고, 교역 거점 도시를 만들어 그들의 영향력을 넓혀 나갔다.
당시 바이킹들이 바다 원정을 떠난 이유는 인구 증가 때문이었다. 북유럽은 평야가 드물고 토질이 척박하다. 그나마도 1년의 반은 얼음으로 덮여 있어 식량을 많이 생산할 수가 없다. 빙하기에서 벗어나며 과거보다 기후가 온난해져 수확량이 늘었지만, 인구는 더욱 폭발적으로 늘어나 식량 자급은 더욱 힘들어졌다. 넘쳐나는 인구와 식량난을 해결하기 위해 바이킹들은 목숨을 걸고 바다로 나아갔다.
11세기 말, 여러 소국으로 나뉘어 있던 바이킹은 스웨덴과 노르웨이 그리고 덴마크로 통일하며 왕국 시대를 열었다. 이때 스칸디나비아반도의 바깥에 있던 아이슬란드와 그린란드는 노르웨이 왕국에, 핀란드는 스웨덴 왕국에 편입되었다.
12세기, 통일 국가를 형성한 북유럽 국가들은 기독교를 받아들이고 상공업 집단인 독일의 한자동맹과 교역하며 유럽 대륙의 일원이 되기 시작하였다.
1397년, 노르웨이 국왕이자 덴마크 여왕의 남편이었던 호콘 6세가 사망한 뒤, 덴마크의 마르그레테 1세를 왕으로 삼아 노르웨이, 덴마크 그리고 스웨덴은 하나의 연합 왕국이 되는 칼마르 동맹을 맺는다. 칼마르 동맹 하에서 각 왕국은 각자의 법률을 유지했으며, 중앙 왕권보다는 각 지역 귀족들의 힘이 셌다.
1523년 스웨덴에 대한 차별적인 지배에 불만을 품은 구스타브 바사는 칼마르 동맹을 깨고 스웨덴 독립을 선포하면서 덴마크-노르웨이 왕국과 스웨덴 왕국으로 분리된다. 당시 노르웨이는 덴마크와 연합 왕국이라고 하나 덴마크의 종속국가에 가까웠으며 나폴레옹 전쟁 이후에는 강력한 힘을 얻은 스웨덴에 편입되었다가 19세기가 되어서야 스웨덴으로부터 독립했다.
18세기 말 프랑스 혁명으로 유럽의 왕과 귀족 그리고 교회의 권세가 몰락하고 시민들이 새로운 시대의 주인공이 된다. 북유럽의 국가들 역시 왕이 물러나고 입헌군주제를 채택하면서 민주주의 시대로 향한다.
오랫동안 스웨덴의 지배를 받았던 핀란드는 근대에 들어서는 러시아의 지배를 받았으나 1차 세계대전 이후 공화국으로 독립했다. 아이슬란드는 덴마크-노르웨이 연합 왕국의 지배를 받다가 근대까지 덴마크의 지배를 받았으며 2차 세계대전 이후 공화국으로 독립했다.
20세기 초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은 다른 북유럽 국가들과 연대를 강화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고, 끈끈한 조직적 연대를 형성하기 위해 북유럽 이사회를 결성하였다. 이를 계기로 3개국 중심이었던 스칸디나비아 국가는 핀란드와 아이슬란드를 포함한 노르딕 국가로 확장된다. 1991년, 소련연방이 해체된 후에는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를 의미하는 발트 3국까지 북유럽 진영으로 편입되었다.
북유럽 대부분 국가는 현재 1인당 국민소득이 4만 달러가 넘는 선진국에 진입하였고, 복지가 잘 갖추어진 사회주의 시장경제 체제를 구축하여 삶의 질이 매우 높은 국가로 전 세계 사람들의 부러움을 사고 있다.
유럽 신화 하면, 아름다운 남녀 모습으로 올림퍼스산에 산다는 신들의 이야기, 그리스 로마 신화를 떠올린다. 하지만 유럽에는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다양한 신화가 존재한다. 그중에서도 북유럽 신화는 매우 독특한 세계관을 담고 있다.
북유럽 신화의 신들은 우선 그리스 로마의 신들과는 달리 죽음을 맞는다. 이는 기후가 춥고 냉혹하여 힘든 삶을 지속하기보단 영광스러운 죽음을 맞는 것이 더 낫다는 북유럽 사람들의 가치관을 반영한 것이다.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는 속담을 가진 우리나라와는 매우 대조된다. 서기 800년부터 1200년 사이에 만들어진 북유럽 신화는 게르만 신화의 한 줄기에서 탄생하였다.
태초에 존재한 혼돈의 세상 ‘긴눙가가프’에서 태어난 거인 ‘이미르’. 이미르는 추위의 나라 니플헤임의 얼음이 녹으며 태어난 소 ‘아우둠라’의 젖을 먹고 자라며 잠만 잔다. 이렇게 이미르가 자면서 흘린 땀에서 서리의 거인들이 탄생하였는데, 그들은 본성이 사악했다.
어느 날 아우둠라는 소금이 섞인 얼음을 핥았는데, 첫째 날은 얼음에서 머리가, 둘째 날은 얼굴이, 셋째 날은 완전한 신의 모습이 드러나 신들의 조상 ‘부리’가 탄생한다. 부리는 아름답고 강한 신들의 조상으로, 스스로 ‘볼’이라는 이름의 아들을 낳는다. 볼은 성인이 되어 거인족 여인 사이에서 ‘오딘’, ‘빌리’ 그리고 ‘베’ 세 명의 아들을 낳는다.
한편 이미르가 점차 커지면서 거인족의 수가 늘어나자 오딘과 형제들은 자신들이 살아갈 공간이 없어질 것을 걱정해 이미르를 죽인다. 죽어가는 이미르의 피로 대홍수가 일어나자 거인족은 몰살당했지만 오직 ‘소리 지르는 자’라는 의미의 ‘베르겔미르’라는 거인과 그의 아내 그리고 그 일족은 살아남았다. 이후 거인들은 신에 대한 복수를 꿈꾼다.
긴눙가가프에서 거목으로 자라난 물푸레나무 ‘이그드라실’ 아래에서 오딘 삼 형제는 이미르의 시체로 세계를 만든다. 이미르의 두개골은 별, 뇌수는 구름, 피는 물, 살은 흙, 뼈와 치아는 광물, 머리카락과 체모는 숲으로 만들었다.
혼돈과 무질서를 상징하는 거인족과 전투를 하며 질서를 수호하는 신들 중 최고의 신은 오딘이다. 오딘은 한쪽 눈을 거인 ‘미미르’에게 바쳐가면서 지혜의 샘을 마신 결과 지혜의 신이 되었다. 또한 이그드라실 나무에 9일 밤낮을 매달린 끝에 죽음과 마법에 통달하여 마법의 신이자 전사의 신이 되었다.
북유럽의 신들 중 우리에게 가장 잘 알려진 신은 ‘토르’다. 최고의 신인 오딘과 대지의 여신인 ‘표르긴’ 사이에서 태어난 토르는 천둥의 신으로 몸에 두르면 힘이 세지는 허리띠와 강력한 쇠망치 ‘묠니르’를 가지고 있다.
토르는 두 마리 염소가 끄는 전차를 타고 나타나 추위와 나쁜 날씨를 몰고 다니는 거인들을 물리친다. 토르가 묠니르 망치로 얼음산을 부수면 얼음이 녹으면서 봄이 찾아오고, 천둥과 번개를 부려 비를 내리게 하면 농작물이 잘 자란다. 이처럼 생활에 도움이 되는 신이기 때문에 북유럽 일부 지역에서는 여러 신 가운데 토르를 가장 좋아한다.
오딘과 토르 외에 북유럽의 신화에는 수많은 신들이 등장한다. 그중 ‘프레이야’는 사랑과 아름다움의 신이며, ‘로키’는 거짓말과 장난의 신이다. 특히 로키는 거인의 세계에서 끊임없이 사고를 일으키며 신화 속 운명이 지닌 고난과 아픔 그리고 우연을 보여준다.
북유럽의 신들은 겉모습이 정상적이지 않다. 앞에서 본 것과 같이 오딘은 지혜를 얻는 대신 한쪽 눈을 잃었고, 지혜를 상징하는 거인 미미르는 머리만 있고 몸통이 없다. 또한 그리스 로마 신화의 신들과는 달리 죽음에 이른다.
최고의 신인 오딘은 세상의 종말에 관한 예언을 듣고 그것을 막으려고 애를 쓰지만 결국 실패한다. 세상의 마지막 전투를 의미하는 ‘라그나로크’ 전쟁으로 오딘은 늑대에게 잡아먹혀 끝내 목숨을 잃는다. 오딘의 아들이자 가장 힘이 센 토르 역시 거대한 뱀에 물려 죽는다. 신들의 숙명이라는 의미를 지닌 라그나로크 전쟁으로 신과 거인 그리고 괴물들이 모두 죽고 인간이 지배하는 새로운 세상이 창조된다.
북유럽 사람들이 기독교로 개종한 후, 북유럽 신화는 이교로 취급받아 거의 사라졌다. 옛날이야기로 입에서 입으로 전승되다가 오늘날에 와서 복원되기 시작했다.
오랫동안 잊혀진 이야기지만 실상 우리 삶에서 쉽게 흔적을 찾을 수 있다. 현재 영어에서 사용되는 월요일부터 일요일까지의 요일 이름 가운데 화요일, 수요일, 목요일, 금요일이 북유럽 신화에 나오는 신들의 이름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이다. 용감한 전쟁의 신 ‘티르Tyr’는 화요일Tuesday, 뛰어난 마술사이자 시에 조예가 깊은 오딘Odin은 수요일Wednesday, 신들 가운데 가장 힘이 센 토르Thor는 목요일Thursday, 사랑과 아름다움을 상징하는 프레이야Freyja는 금요일Friday을 뜻한다.
신화에서 불사에 가까운 자들도 결국 죽는다는 결말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북유럽 신화처럼 영원한 젊음과 영원한 삶을 사는 신이 한 명도 존재하지 않는 것은 흔치 않다. 영원한 삶을 살아가는 신들은 죽음의 결말이 없기에 ‘살아 있다는 것’과 ‘사랑한다는 것’에 대한 간절함과 소중함을 모른 채 무한의 시간을 보내야 한다. 또 주어진 능력보다 더욱 나은 삶을 위한 노력을 할 필요도, 생각도 없다.
하지만 북유럽 신화 속 신들은 다르다. 그들은 살아 있을 때의 삶을 소중히 여기며 최선의 노력을 다하는 삶을 산다. 오딘은 마법을 얻기 위해 위그드라실에 9일간 매달리고, 지혜를 얻기 위해 미미르에게 눈 하나를 바쳤다. 가장 힘이 센 남성성의 상징 토르도 묠니르를 되찾기 위해 여장하는 수모를 감내했다. 현생이 존재하는 북유럽 신화 속 신들은 이처럼 열심히 삶을 살아간다. 그렇게 더욱 발전하고 나아지고 늙고, 약해지고, 죽기도 한다. 그 모습이 우리와 같다.
처음 생소하게 느껴졌던 북유럽의 신화 속 신들의 죽음이 조금은 이해가 간다. 그것은 불완전한 신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죽음이라는 숙명을 가진 인간들의 이야기다. 1년의 절반이 혹독한 겨울인 북유럽 사람들에게 삶이라는 것은 끊임없는 도전이었을 것이다. 언제 눈사태로 집이 파묻힐지, 언제 얼음이 갈라져 물에 빠질지, 자면서 얼어 죽지는 않을지. 그들에게 살아내는 것, 오늘 하루도 무탈했다는 것, 그렇게 반복되는 평온한 일상을 누리는 것이 얼마나 값지고 행복한 것인지 신화를 통해 전한 것이다.
죽음이라는 결말을 알고 있기에 살아 있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행복과 황홀을 느낀다.
15세기 중세시대가 끝나고 피렌체를 중심으로 르네상스 시대가 활짝 열렸다. 신 중심의 중세시대를 종결하고 인간 중심의 르네상스 시대를 연 사람은 단테다.
단테는 어려서부터 짝사랑한 베아트리체가 사망하자 그녀를 그리며 《새로운 삶》이라는 책을 출간했다. 이 책을 통해 그는 중세 천 년 동안 금기시한 인간에 대한 세속적인 사랑을 노래하며 감미로움을 뜻하는 ‘돌체Dolche’를 외쳤다. 단테는 그렇게 인간 중심의 르네상스 시대가 도래했음을 세상에 알렸다.
물질적 부와 정신적 문화로 풍요로운 피렌체에서 단테가 ‘돌체’를 노래했다면, 경제적 여유와 뛰어난 복지를 누리는 오늘날 북유럽 사람들은 ‘휘게Hygge’와 ‘라곰Lagom’을 노래한다.
덴마크와 노르웨이에서 주로 사용하는 휘게는 편안하고 행복한 분위기와 감정을 나타내는 말이다. 보통 집에 머물면서 긴장이 풀어진 상태를 의미하는 휘게는, 구체적으로는 따뜻한 음료와 양초 그리고 벽난로, 보드게임 등을 떠올리게 하는 말이다. 그리고 스웨덴에서 많이 사용하는 라곰은 적당하고 충분한 상태를 말하는 것으로 사람과의 관계에 있어서 적당한 거리를 의미한다. 또한 평정심을 유지하며 현재에 집중하는 삶을 상징한다. 휘게와 라곰 같이 핀란드에는 ‘시수Sisu’라는 단어가 있다. 시수는 용기와 회복력을 뜻하는 단어로 하루하루 충실한 삶을 살아가는 것을 말한다. 북유럽 사람들이 휘게, 라곰 그리고 시수를 추구하며 사는 이유는 북유럽의 환경과 문화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대부분의 북유럽 국가들은 국토의 80% 이상이 산으로 형성되어 있으며 여름과 겨울의 일조량 차이가 많다. 여름에는 백야로 새벽까지 해가 지지 않지만, 겨울이 되면 오후 2~3시에 일몰이 시작돼 4시가 되면 이미 어둡다. 어두운 날씨가 계속 되면 기분이 가라앉고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늘어난다. 그래서 그들은 밝은 느낌을 주는 하얀색 벽에 원목 가구로 집안을 장식한 후 양초와 양초 모양의 전구를 집 안 곳곳에 설치해 은은하면서 소소한 행복을 추구하며 살아간다.
북유럽의 기후는 사람들에게 집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며 즐거움을 찾는 내향성을 강화시켰다.
그러다 보니 일반적으로 북유럽인들은 타인을 상대하는 것보다는 혼자서 시간을 보내는 걸 선호하며, 자신만의 세계가 뚜렷한 편이다. 직접 식사에 초대한 경우가 아니라면 식사 시간에 손님에게 식사를 권하지 않고 자신들만 식사를 할 정도이다. 또 적은 일조량으로 우울장애 발생률이 높은 편이다.
또한 낮은 인구 밀도 때문에 타인을 상대할 기회가 적어 사회성이 발달하지 못하기도 한다.
자기만의 공간에 민감하여 타인과의 접촉을 꺼리는 것으로도 유명한데, 공공장소에서 줄을 설 때 1.5m 이상 간격을 두고 서는 것이 대표적인 예다.
북유럽에서 개인의 소소한 행복을 추구하는 또 다른 이유는 그들의 가치관과 다양한 복지 덕분이다. 북유럽 사람들은 물질적인 기대와 욕심보다는 현재 삶에 만족하는 여유로운 삶을 지향한다. 그래서 무슨 일을 하든 적당한 균형과 조화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이런 성향의 북유럽 국민들을 위해 북유럽 국가들은 유연근무제부터 육아휴직, 보육정책까지 다양한 복지정책으로 사람들이 가정과 일의 균형을 맞출 수 있도록 돕는다.
모든 북유럽 사람들이 휘게나 라곰의 삶을 살고 있지는 않다. 그러나 이 단어들이 의미하는 삶은 북유럽 국가가 공유하는 가치이며 사회를 이끌어가는 핵심적인 방향이다.
70년대 산업화 시대와 80년대 민주화 시대를 지나온 우리나라는 지금까지 개인의 행복보다는 국가의 이익이나 기업의 이윤 추구가 우선순위였다. 하지만 오늘날 선진국의 반열에 들어선 우리나라 역시 휘게와 라곰으로 대표되는 개인의 소소한 행복을 추구하는 사회로 나아가고 있다. 그래서인지 취향 역시 흰색과 나무의 조화 등이 도드라지는 북유럽풍을 선호하는 경향이 짙어지고 있다.
북유럽풍에는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주어진 삶을 사랑하는 북유럽인의 가치관이 담겨 있다. 우리도 단순히 북유럽풍을 따라 하기보단 삶을 대하는 여유로운 태도로 물질적인 가치를 떠나 일상에서 행복을 찾는 것은 어떨까. 그렇다면 우리의 삶도 자연스레 북유럽풍으로 채워지게 될 것이다.
1789년 프랑스 혁명으로 왕과 귀족 그리고 교회의 권력이 몰락하고 시민들이 새로운 시대의 주인공이 된다. 프랑스 혁명 이후 서유럽의 예술은 기존의 권력자들을 위한 장식적이며 신화적인 신고전주의에서 벗어나 시민이 주인이 되는 사실주의와 인상주의 미술로 발전하기 시작한다.
프랑스 혁명의 영향으로 왕이 물러나고 입헌 군주제를 채택한 북유럽 대부분 국가들 역시 서유럽의 새로운 미술사조인 사실주의와 인상주의 미술을 받아들이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선두에 스웨덴이 있었다.
스웨덴 예술은 6세기 종교화로 시작해 16세기 르네상스 시대와 바로크 시대를 지나면서 궁전과 교회를 장식하는 화려한 장식 예술을 꽃피운다. 19세기에 들어서면서 궁중에서는 궁중 화가들이 초상화를 그리며 신고전주의의 시대를 이어가다가 19세기 말, 프랑스 혁명의 영향으로 왕이 몰락하고 시민이 주인이 되는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면서 예술계 역시 혁신을 이룬다.
1880년 고전주의 회화 양식에 반감을 품은 스웨덴의 신진 예술가들은 파리로 가서 당시 파리를 휩쓸었던 사실주의와 인상주의 작품들을 접하면서 스웨덴 미술에 새로운 숨결을 불어 넣었다. 파리로 유학을 간 스웨덴의 젊은 화가들 중에는 프랑스의 인상파를 받아들여 아름다운 풍경과 사람들이 살아가는 일상을 인상파 특유의 빛을 담아 묘사한 화가들이 많았다. 그 대표적인 화가가 안데르스 소른이다. 그는 인상파에서 보이는 빛의 순간적인 이미지를 화폭에 담아내며 이전의 고전주의 작품에서 중요시했던 그림의 주제보다는 화면에서 보이는 빛과 색을 중요시하는 스웨덴 인상주의 시대를 열었다.
파리 유학파 중에는 인상파의 화법이 너무 급진적이라고 생각하며 인상파를 받아들이지 못한 스웨덴의 신진 예술가들도 있었다. 그들은 파리 근교에 있는 바르비종으로 가서 사실주의와 자연주의 작품을 영향을 받으며 독자적인 낭만주의 화풍을 개척하기 시작했다. 당시 바르비종에는 〈만종〉과 〈이삭줍기〉로 유명한 밀레가 사실주의 화파를 이끌고 있었다. 바르비종에서 유학한 스웨덴의 신진 화가들은 인상주의에서 배운 풍부한 빛과 사실주의에서 배운 자연주의 기법이 결합된 스웨덴 특유의 낭만적인 화풍을 창조했다. 그리고 고국으로 돌아와 활발한 작품 활동을 펼쳤다. 그 대표적인 화가가 칼 라르손이다. 빛의 투명함을 강조하기 위해 유화를 포기하고 수채화를 선택한 그는 자신이 사는 집과 전원 그리고 가족들의 일상을 그리며 스웨덴을 대표하는 화가가 되었다.
칼 라르손 외에 스웨덴 낭만파를 이끌었던 화가로 스벤 리샤르드 베르크를 꼽을 수 있다. 그는 당시 유행하던 고전적인 아카데미의 엄격한 절제와 합리성에 반발하며 자신의 작품에 감정과 직관을 넣은 낭만주의 작품을 선보였다. 그는 예술에 대해 다음과 같은 생각을 가졌었다.
예술가는 자신의 영혼이 느끼는 괴로움과 기쁨을 본능에 따라 빛과 분위기로 표현해야 한다.
스웨덴 국립 미술관에 들어서면 화려한 바로크 양식의 계단이 좌우로 펼쳐지고 좌우 계단의 벽면을 따라 장엄한 대작들이 전시되어 있다. 이중 가장 유명한 작품이 바로 〈한겨울의 희생〉이다. 이 작품은 북유럽 전설이 된 스웨덴 왕 도말데가 한겨울 기근을 피하기 위해 인신공양 의식을 진행하는 장면을 표현했다.
금으로 장식된 호화로운 고대 웁살라 신전에는 세 명의 신을 모셨는데, 각각 기근과 전쟁 그리고 결혼의 신이었다. 그중 기근을 담당하는 신이 가장 힘이 세어 나라에 기근이 들 때면 그에게 산 사람을 제물로 바쳐야 했다.
칼 라르손, 〈한겨울의 희생〉, 1915년, 640cm×1360cm, 스웨덴 국립 미술관
제사장이 손을 들어 의식을 진행한다. 제사장 앞에는 산 채로 끌려온 의식의 제물이 된 사람이 하얗게 질려 있다. 붉은 망토의 집행자가 칼로 제물에 사용될 사람을 죽이려 하자 왕이 벌떡 일어나 스스로 옷을 벗는다. 그리고 그는 백성을 더 이상 희생할 수 없으니 자신을 죽이라고 명한다.
왕이 나체로 등장하고 인신공양이라는 미신적 주제를 다룬 이 작품에 대해 제작 당시 수많은 논란이 일어났다. 결국 국립 미술관은 작품 인수를 거부했고 미술관으로부터 버림받은 이 작품은 1987년 소더비 경매를 통하여 일본으로 팔려 갔다. 이후 1992년 국립 미술관 개관 200주년을 맞이하여 칼 라르손 헌정 전시회가 열렸고 전시회에는 일본에서 빌려온 이 작품도 있었다. 그런데 다른 나라로 팔린 이 작품을 보기 위해 무려 30만 명이나 되는 관람자들이 몰려들었다. 작품을 본 사람들은 백성들을 위해 수치심도 잊은 채 희생하는 왕의 모습에 감동하며 작품을 반드시 되찾아야 한다고 국립 미술관에 요구했다. 5년간의 노력 끝에 1997년 이 작품은 다시 스웨덴 국립 미술관으로 돌아왔다. 미술관으로부터 거부당한지 82년 만에 일어난 사건이었다.
스웨덴을 대표하는 작가인 칼 라르손은 〈한겨울의 희생〉과 같은 장엄하고 강렬한 색의 작품을 주로 작업할 것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그의 대다수 작품은 따뜻하고 편안한 작품이다. 가족과 자신의 집, 전원이 주요 소재였기 때문이다.
칼 라르손의 작품을 보다 보면 그림 속으로 들어가 소파에서, 침대에서, 풀밭에서 늘어지게 낮잠을 자고 싶어지는 포근함이 느껴진다. 이런 느낌을 주는 가장 큰 요소는 그가 색이 아닌 빛으로 휴식 공간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 대표적인 작품인 〈아늑한 모퉁이〉를 살펴보자.
스웨덴 어느 가정집의 오후. 따뜻하고 편안한 햇살이 거실을 가득 채운다. 중앙의 소파와 바닥의 카페트 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