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은이 사이토 다카시(齋藤 孝)
1960년 일본 시즈오카에서 태어나 도쿄대학교 법학부를 졸업했다. 졸업 후 동 대학원인 도쿄 대학 대학원 교육학연구과 박사과정을 거쳐 현재 메이지 대학교 문학부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2001년 출간된 《신체 감각을 되찾다》로 ‘신쵸 학예상’을 수상했고, 《소리 내어 읽고 싶은 일본어》는 베스트셀러에 오르며 ‘마이니치 출판문화상 특별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주요 저서로는 《욱하는 아이들》, 《질문력》, 《추진력》, 《코멘트력》, 《연애력》, 《독서력》, 《커뮤니케이션 능력》, 《삼색 볼펜 정보 활용술》, 《일하는 마음에 불을 지피다》, 《분노하는 몸》, 《기회 혁명》 등이 있다.
“DEKIRUHITO” HA DOKOGA CHIGAUNOKA by Takashi Saito
Copyright © Takashi Saito, 2001
All rights reserved.
Original Japanese edition published by Chikumashobo Ltd.
Korean translation copyright © 2024 by Feelmbook
This Korean edition published by arrangement with Chikumashobo Ltd., Tokyo, through The English
Agency (Japan) Ltd. and Danny Hong Agency
이 책의 한국어판 저작권은 대니홍 에이전시를 통한 저작권사와의 독점 계약으로 필름에 있습니다. 저작권법에 의해 한국 내에서 보호를 받는 저작물이므로 무단전재와 복제를 금합니다.
일러두기
- 도서명 및 정기간행물 등은 《 》, 영화 및 공연과 프로그램명, 노래 제목 등은 〈 〉로 표기했습니다.
- 본문에 등장하는 어휘의 사전적 의미는 국내 ‘표준국어대사전’을 따랐습니다.
- 외국어는 국립국어원에서 정한 외래어 표기법에 따랐습니다.
- 본문의 각주는 모두 옮긴이의 것입니다.
자기계발서의 가장 큰 장점은 많은 시간을 투자하지 않고 한두 가지의 내용만 잘 익혀도 삶의 방법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일류의 조건》은 권할 만합니다.
이 책의 저자인 사이토 다카시가 제시한 일류의 조건 중 인상적인 부분은 ‘요약하는 힘’입니다. 요약하는 힘은 “요약하자면”이라는 작은 말 습관 하나지만, 효과적으로 자신의 생각을 전달할 수 있습니다.
만약 대화할 때 상대의 말이 요점 없이 수다스럽기만 하면 어떨까요? 듣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지루하고 답답합니다. 말이 길어질수록 이야기가 곁가지로 흘러가면서 설득력마저 떨어지죠. 특히 중요한 회의나 강의에서 이런 상황이 벌어진다면 모두에게 손해라는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입니다.
요약하는 말버릇을 기르면 시간 확보는 물론이고 업의 발전에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저자는 어떤 분야에서든 일류가 되기 위한 조건으로 말과 생각을 하나의 핵심 단어로 표현하는 요약이 중요하다고 내세웁니다.
저도 이 주장에 깊은 감명을 받아 강의를 한 시간 하면 세 번 정도 요약을 합니다. 습관으로 형성되고 나서부터는 평상시에 일반적인 대화를 하거나 통화를 할 때도 사용합니다. 어려울 것도 없이 “내 이야기는 요점이 이렇습니다. 요약하면 이렇습니다.”라고 말합니다.
요약해서 말하면 말하는 사람의 생각도 자연스럽게 정리가 되고, 듣는 사람도 쉽게 이해합니다. 목표가 명확하게 드러나서 효율적인 일 처리에 아주 효과적입니다. 인생 자체가 아주 간명해지는 것입니다.
이 책에서 강조하며 또 하나 일류의 조건으로 제시한 것은 ‘지식을 훔치는 힘’입니다. 최소의 노력으로 책과 사람에게서 양질의 지식을 배우는 방법을 설명합니다. 하지만 학습한 지식이 많아도 핵심 단어로 요약할 수 없으면 즉시 사용하기 힘든 법입니다.
사용하지 않은 지식은 곧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지식을 훔치는 힘과 긴 설명을 요약하는 힘을 함께 사용해야 합니다. 사이토 다카시가 이야기하는 마지막 힘 또한 ‘추진하는 힘’으로 이 두 가지를 모두 같이 습관으로 만들길 권합니다.
요약하면, 이 책에서는 전문가가 되기 위해서 세 가지 습관을 강조하는데 첫째, 지식을 훔치는 힘. 둘째, 요약하는 힘. 셋째, 추진하는 힘입니다. 날이 갈수록 복잡해지는 사회현상과 넘쳐나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반드시 요구되는 능력입니다.
매일매일 새로운 정보를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자신의 의견과 경험을 비운 후 지식을 훔쳐야 하고, 빠르게 핵심 정보를 파악하며 요약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 모든 것을 추진하는 힘까지. 이 시대를 살아가는 데 틀림없이 필요한 세 가지 능력입니다.
많은 책을 읽었지만 지금도 제 인생에 작동하는 습관을 만들어준 책을 추천할 수 있어 기쁩니다. 이 책이 담고 있는 핵심적인 메시지는 시간이 흐른 지금까지도 매우 유효합니다. 책은 읽고 그냥 덮으면 안 됩니다. 반드시 삶에 적용하고 백 배 이상의 가치를 누리세요.
《박문호 박사의 뇌과학 공부》 저자
박문호
프롤로그
학교는 무엇을 하는 곳인가. 부모는 아이들에게 무엇을 가르쳐야 하는가.
이러한 물음에 선뜻 명확한 대답을 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사회가 빠르게 변하며 심리적 불안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상황 속에서 이 물음에 대해 수많은 답변이 나타났다 사라진다.
어느 때보다 ‘살아가는 힘’이 요구되는 시점이지만, 살아가는 힘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지에 관한 공통적 인식은 부재하다. 교사의 수업권과 학생의 학습권 논란에 따른 대안으로 ‘탄력적이고 융통성 있는 교육’을 내세우게 되면서 학교의 역할 자체도 애매해졌다. 그뿐 아니라 부모도 자식에게 무엇을 가르치고 전달해야 할지 갈피를 못 잡고 있다.
내가 생각하는 학교의 주된 역할이란,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의 학생이 무언가에 숙달되기까지의 과정과 원리를 보편적인 형태로 파악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예를 들어, 물구나무서기를 못한다 해도 일상생활에는 아무런 지장이 없다. 그런데도 물구나무서기를 학교 커리큘럼에 반영하는 이유는, 무언가에 숙달되기까지의 일반적인 이치를 단순한 형태로 몸소 깨우치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스포츠나 예술 활동은 숙달에 이르는 기본 원리를 몸에 배도록 만드는 데 유용한 도구이며, 결국 ‘공부’라는 영역에서 숙달에 이르는 원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
요컨대 부모가 아이들에게 가르치고 전해야 하는 것은 ‘숙달에 이르는 보편적 원리’다. 어떤 사회, 어떤 자리에 놓이더라도 그곳에서 숙달의 경지에 이르는 이치를 간파하여 내 것으로 만들어 나가는 힘. 아이들에게 이 힘을 길러줄 수 있다면, 부모로서 느끼는 불안감은 상당 부분 덜게 될 것이다.
어떤 분야에서든 숙달의 경지에 이르는 요령을 한번 터득하면 낯선 일에도 자신감을 가지고 임할 수 있으며, 이는 결국 성공으로 이어진다. 언젠가 반드시 숙달되리라는 확신이 없으면 지루하게 반복되는 연습 기간을 견뎌내지 못하고 쉽게 좌절하고 포기한다. 자신감으로 무장한 사람은 어떠한 활동을 함에도 흔들리지 않는다. 각 활동을 해내는 과정이 숙달의 비결을 터득하는 길이 되어줄 것이라는 확신으로 가득하기 때문이다. 이렇듯 무언가에 숙달되는 보편적 원리와 목적의식을 꾸준히 일깨워주는 것이 부모와 교사의 주된 역할이라 하겠다.
그렇다면 ‘숙달에 이르는 보편적 원리’란 무엇인가. 물론 이 물음에도 다양한 대답이 존재할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숙달의 보편적 원리란, 기본기를 다져주는 세 가지 힘을 활용하여 자신만의 스타일을 구축하는 것이다. 이 세 가지 힘이란 ‘훔치는 힘(모방)’, ‘추진하는 힘(실행력·추진력·기획력)’, ‘요약하는 힘(요약·질문력 포함)’이다. 이 세 가지 힘을 기르고 그것을 활용하는 과정에서 자신에게 적합한 방법을 찾아내고, 자기 경험과 특기를 적절히 조합하여 본인에게 적합한 스타일을 완성하는 것이다. 이것이 내가 생각하는 숙달에 이르는 보편적 원리다.
이 책에서 등장하는 ‘숙달의 비결’이란 특정 분야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특정 영역에 통달한 경험을 토대로 전혀 다른 분야에도 주저 없이 도전하고 적용해 보는 것, 그것이 내가 말하는 비결이다.
예를 들어 동아리 활동이나 학과 공부에서 성공 체험을 했더라도, 훗날 본인의 업무에 이 원리를 연결하지 못하는 사람이라면, 그는 숙달의 비결을 터득한 사람이라고 할 수 없다. 반면, 다른 활동에서는 이렇다 할 성공 체험을 하지 못했어도, 일련의 경험을 통해 보편적 원리를 깨치고 다양한 활동에 적용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그는 숙달의 원리를 몸소 깨닫고 실천하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흔히, 어떤 영역에서 최고의 경지에 이른 사람들은 특정 사실에 대해 공통 인식을 보인다고 한다. 한 분야에서 상당한 수준에 이른 사람은 숙달에 도달하는 보편적 원리를 제대로 터득한 사람이다. 예를 들어, 주변을 둘러보면 무슨 일에든 빨리 숙달되는 사람이 있다. 이러한 사람은 운동 신경이 특별히 뛰어나지 않아도 각종 스포츠에서 평균 이상의 수준까지 빠르게 도달한다. 반대로 무슨 일이든 지지부진해서 끝을 보지 못하고 쉽게 포기하는 사람도 있다.
각자 타고난 재능이 다르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여기서 주목할 점은 절대적인 재능의 차이가 아니라는 점이다. 타고난 재능의 크기가 저마다 다르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다만, 숙달에 이르는 보편적 원리를 깨치지 못해 자신의 역량을 충분히 발휘하지 못하고 주저앉는 사람들이 안타까울 뿐이다.
당장 내가 대학생들을 상대로 “자신이 생각하는 숙달에 이르는 비결을 서술하시오.”라는 과제를 내면, 그런 것까지 생각해 본 적 없다며 당황스러운 반응을 보일 것이다. 수많은 과제와 활동을 해내면서도 그 경험들 속에서 ‘숙달의 보편적 원리’를 끌어내려는 의식을 갖지 않은 탓이다.
대학 교육뿐 아니라, 초중등 교육 현장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물구나무서기에 성공하거나 복잡한 수학 문제를 풀어내는 것, 또는 비교과 영역에서 성과를 거두는 것 등의 활동들이 원리를 바탕으로 연계되지 못하고 단편적으로 이루어진다. 다양한 활동들을 큰 틀로 인식하여 그 속에서 숙달의 원리를 끌어내려는 의식 자체가 희박한 것이다. 숙달에 이르는 과정의 첫 단계인 기본기 다지기에 요구되는 세 가지 힘은, 숙달의 보편적 원리를 의식하는 습관들이기에 활용하기 좋은 도구다.
‘스포츠 대 공부, 놀이 대 공부, 문과 대 이과, 공부 대 일, 육체노동 대 정신노동’과 같은 이분법적 사고가 어떤 점에서는 편리하지만, 자칫 고정관념으로 자리 잡으면 숙달에 이르는 데 걸림돌이 된다. 나는 이 책을 통해 ‘살아가는 힘 기르기’와 밀접한 관계에 있는 ‘보편적 숙달법의 습관화’라는 관점을 제시함으로써, 다분히 위험한 이분법적 사고를 뛰어넘어 숙달의 경지에 이르는 길을 제안하고자 한다.
‘숙달’의 원동력이 되는 것은 바로 ‘동경’이다. 동경하는 마음이 없으면 잘하고자 하는 의지가 피어나지 않고, 무언가에 능숙해지는 즐거움 자체를 경험할 수 없다. 데즈카 오사무1를 동경한 우라사와 나오키2가 〈우주 소년 아톰〉을 리메이크하여 〈플루토〉라는 걸작을 만들어 낸 것처럼, 동경하는 마음이 뿌리를 내리면 숙달의 경지에 이르고자 하는 의욕이 자연스럽게 솟아오른다. 다시 말하면 ‘동경’과 ‘의지’의 크기가 곧 그 사람이 가진 그릇의 크기를 결정하는 것이다.
1 일본 만화계의 거장. 대표작으로는 〈우주 소년 아톰〉, 〈밀림의 왕자 레오〉 등이 있다.
2 일본의 만화 작가. 국내에서는 〈20세기 소년〉을 통해 이름을 알렸고, 영화적인 연출력으로 확고한 팬층을 갖고 있다.
그렇다면, ‘동경’하는 마음을 환기하는 방법은 무엇인가. 어떻게 하면 놀라움과 감동, 충만함이 있는 대상을 만날 수 있는가. 이에 대한 고민이 바로 교육의 근본적인 과제라 하겠다. 무언가를 완전하게 이해해야만 좋아하고 동경하게 되는 것은 아니다. 그 대상이 가진 매력과 강력한 기운에 대한 반응으로 동경하는 마음이 일어나는 것이다. 어떤 대상에게 감탄하거나 이끌리는 자신을 발견했다면, 이미 숙달의 경지로 가는 길에 들어섰다는 의미다.
우연히 만난 매력적인 대상이 가진 힘의 방향과 크기에 자신이 느끼는 동경의 크기가 맞아들어간다. 동경의 대상이 가진 힘과 동경하는 주체가 가진 힘이 반응하는 현상, 곧 ‘동경’의 힘이야말로 숙달법의 토대로서 보편적 원리를 단단히 지탱해 준다. 아무리 뛰어난 실력을 타고났어도 대상에 대한 동경과 자부심을 상실한 사람에게 매력을 느끼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동경하는 마음이 자리 잡았는지 아닌지는 대상을 동경하는 마음의 강도에 좌우한다. 기량 면에서는 나보다 뒤떨어지는 사람이라도, 그 사람이 가진 동경의 힘이 강하면 그것이 숙달에 대한 의지를 자극한다. 동경하는 마음의 유무에 따라 우리는 무언가에 심취할 수도, 무심할 수도 있다. 이것이 바로 ‘동경을 동경하는 관계성’이다. 이 관계성이 숙달법의 모체다.
그러나 ‘동경’하는 마음으로 꿈만 꾸는 단계에 머물러서는 충만함을 경험할 수 없다. 사소한 것이라도 상관없다. 작지만 소중한 성공 체험의 과정에서 ‘세 가지 힘’을 키워 다양한 대상이나 상황과 마주했을 때 그 힘을 보란 듯이 발휘하도록 연습하면 된다. 작은 성공 체험을 쌓아나가다 보면, 이 세 가지 힘이 자신만의 기술로 재탄생한다.
이 정도 단계에 이르면 이미 ‘놀이 대 공부, 공부 대 일’ 따위의 구분은 의미가 없어진다. 영역의 차이보다 공통하는 보편적 숙달법의 원리가 먼저 부각하기 때문이다. 이런 의식을 습관화하면 낯선 상황에 맞닥뜨려도 지나치게 겁먹거나 긴장하는 일이 적어진다. 오히려 그 속에 숨어있던 숙달의 원리와 일련의 과정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이 책에서 제대로 다루고 싶은 이야기는 모든 것에 통달하는 비법이라기보다 자신에게 잘 맞는 ‘스타일’을 찾아가는 방법이다. 각기 다른 영역의 활동을 수행하면서도 일관된 방식을 가진 사람이 있다. 당신도 여러 활동 속에서 공통점을 발견하여 자신만의 스타일을 만들어 가기를 바란다. 이러한 발견은 자신에게 엄청난 기쁨으로 다가올 것이다.
이런저런 영역의 수준을 어느 정도 끌어올렸어도, 자신에게 맞는 스타일을 알고 이를 적용하여 얻어낸 성과가 아니라면 기쁨과 성취감은 반감할 수밖에 없다. 반대로 당신에게 꼭 맞는 스타일을 찾았다면 설령 일류가 되지 못하더라도 큰 기쁨을 맛볼 수 있으며, 나아가 향후 인생에서 당신만의 방식을 멋지게 펼칠 수 있을 것이다.
본인이 가장 자신 있는 분야를 인지하고 종합적으로 관리하며 발전시켜 나간다. 이렇게 자신의 특기를 찾고 적절하게 관리하기 위해서는 ‘스타일’이라는 개념이 선제 되어야 한다. 자신만의 스타일을 확립하는 것은 단순히 무언가에 능숙해진다는 의미를 넘어, 당신의 인생 자체에 큰 의미를 부여할 것이다. 그런 뜻에서, 숙달에 이르는 비결이란 자신에게 맞는 스타일을 파악하려는 의식을 갖는 것, 그 행위 자체라 말할 수 있다.
자신만의 스타일을 찾게 되면 인생 자체를 긍정할 수 있다. 자신 있는 기술을 연마하고, 스타일을 표현 도구로 삼아, 자신을 드러내며 존재감을 충분히 맛보는 것이다. 결국 ‘숙달에 이르는 비결’은 당신의 인생을 충만함과 연결해 줄 일종의 사다리 같은 존재가 될 것이다.
먼저 ‘기본기를 다져주는 세 가지 힘’을 제시하고, 이어서 보편적 숙달법의 본질을 ‘스타일’이라는 키워드를 통해 구체적으로 살펴보려 한다. 경제 불황으로 자신감을 상실한 사람도 있고, 개성과 창의성이라는 말에 지나친 기대를 건 나머지 자아를 잃고 헤매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흔들림 없이 밀고 나감으로써 ‘세 가지 힘’이 길러지면, 당신을 괴롭히는 많은 어려움을 극복하는 디딤돌이 되어줄 것이다.
어느 시대든 부모는 아이들이 성장하고 발전하기를 바란다. 사회구조의 변동 폭이 비교적 크지 않았던 시대에는 부모 자신이 터득해 온 노하우나 가치관 그대로를 아이들에게 전수하면, 아이들은 이 발자취를 따라 안전하게 성장하고 성숙할 수 있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세대 간의 전수’가 이루어지며 현세대와 다음 세대가 거의 비슷한 방식과 수준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하지만 시대가 급변하면서 자주적으로 재생산이 이루어지던 시대와는 상황이 크게 달라졌다. 정보혁명을 핵심으로 한 세계적인 사회구조 변화의 물결 속에서 이전 세대는 다음 세대에게 무엇을 물려주어야 할지 판단하기 어려워졌다. 거품경제가 가져온 사회적 윤리 규범의 붕괴와 불황의 장기화로, 어른들조차 자녀 세대에게 ‘물려주어야 할 것’에 관한 판단에 자신감을 잃었다.
부모 세대로부터 계승 받을 미덕이 없는 사회는 당연히 불안정하다. 비록 젊은 세대가 기성세대에 반기를 들더라도 무언가를 전수하려는 의지 자체가 무너져서는 안 된다. 우리 사회에서 청소년, 젊은 층이 겪는 고질적인 문제의 대부분은 ‘우리의 아이들에게 무엇을 가르치고 물려주어야 하는가?’에 관한 기성세대의 확신과 공통 인식의 부재에서 기인한다.
그렇다면 이렇게 격변하는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우리가 아이들에게 전하고 가르칠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어떤 사회, 어떤 환경에서도 거뜬히 살아가는 힘’이다. 단, 여기에서 말하는 ‘살아가는 힘’이란, 원시시대에서나 필요한 생물학적 생명력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물론 이 생물학적 생명력이야말로 모든 활동을 가능하게 하는 기본이므로 이를 활성화하는 것도 그 나름의 의의가 있다. 이 사실을 전제로 두고, 현대사회에 필요한 살아가는 힘이란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이야기해 보자.
내가 생각하는 ‘살아가는 힘’이란, ‘숙달에 이르는 보편적 원리’를 반복적 체험을 통해 ‘기술로 만드는 것’이다. 어떤 사회에나 ‘일’은 존재한다. 경험이 전혀 없는 낯선 영역의 일이라도 숙달에 이르는 비결을 찾아내는 힘이 있다면 용기를 갖고 새로운 영역에 도전장을 던질 수 있다.
이렇게 말하면 언뜻 추상적으로 들리겠지만, 주변을 둘러보면 이러한 방식으로 기술을 터득한 사람이 적지 않다. 나 자신만 하더라도 그런 인물들을 꽤 여럿 만났다. 그중에서 유독 인상적이었던 사람은 필리라는 이란 사람이었다.
필리와 나는 우리 집 근처의 역에서 처음 만났다. 필리가 친구의 집을 찾기 위해 내게 길을 물은 것이 인연이 되었다. 함께 길을 걸으며 이야기를 나누던 중 필리가 나를 자기 아파트에 초대했고, 맛있는 카레를 대접받게 되었다. 필리와 나는 영어와 일본어를 섞어가며 대화했다. 그는 일본에 온 지 불과 3개월 정도밖에 되지 않았고, 그전에는 일본어를 접해본 적도 없는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나와 일본어로 대화했다. 이는 대단히 놀라운 일이었고, 나는 경이감을 느꼈다. 필리는 영어도 배운 지 몇 개월 되지 않았지만, 나와 영어로 의사소통하는 데 전혀 지장이 없었다.
필리는 철저하게 자습 위주로 언어를 학습했다. TV나 라디오에서 들은 말은 곧바로 노트에 옮겨 적어 반복해서 읽고 외웠다. 그뿐 아니라 일본인을 만나면 적극적으로 다가가 실전 회화를 연습했다. 배움에 대한 열정으로 가득한 필리는, 모르는 단어가 나오면 곧바로 내게 질문했다. 한번은 당시 유행하던 ‘브레이크 댄스’를 필리가 내게 선보인 적이 있었다. 내가 어디에서 배웠냐고 묻자, 그는 약간 의아한 듯 “어디서 배운 게 아니야. 잘 추는 사람을 보고 계속해서 따라 한 것뿐이야.”라고 대답했다.
필리는 시부야에 있는 레스토랑에서 일해 번 돈으로 아파트를 빌려 지내고 있었는데, 일을 잘해 제법 많은 급여를 받고 있었다. 어떻게 그렇게 일을 잘하게 되었는지 묻자, 이번에도 역시 “그냥 다른 사람들을 잘 관찰하고, 그대로 따라 한 것뿐”이라는 심플한 대답이 돌아왔다. 예를 들어 샐러드 종류는 만들기 쉬워서 한 번 보면 저절로 외워진다고 했다. 반복 연습을 통해 만드는 속도가 다른 사람보다 훨씬 빠르고 정확해지다 보니 레스토랑에서도 자연스럽게 인정받은 것이다.
이란 사람들 모두가 필리처럼 능동적인 생명력을 가진 것은 절대 아니다. 필리와 같이 지내던 고향 친구만 해도 상당 기간 필리에게 얹혀살았다. 반대로 필리는 무슨 일이든 잘 해낼 수 있다는 확신으로 가득한 듯했다. 특정 분야에서만 보이는 자신감이 아니라, 생활 전반에서 자신감이 느껴졌다. 필리야말로 모방을 통해 ‘내 것으로 만드는 것’이 곧 숙달의 비결임을 몸소 보여주는 사람이다.
‘전문가의 방식과 행동을 관찰하고 그 기술을 훔쳐 내 것으로 만든다.’ 이것이 숙달로 이어지는 대원칙이다. 머리로만 아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생활에 녹여 습관화하는 것이 관건이다. 그런데도 대부분의 교육 현장에서는 이 ‘훔치는 힘’을 일류가 되기 위한 대원칙으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대원칙은커녕 방법론으로써의 ‘훔치는 힘’을 언급조차 하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교육의 본래 의미는 배우는 힘을 기르는 데 있다. 가르침이 있어도 배움이 없으면 교육이라 부를 수 없다. 반대로 가르침이 없어도 배움이 있다면 그야말로 훌륭한 교육이라 말할 수 있다. 교육이라 하면 ‘가르치고 가르침을 받는 것’이라는 관계적 개념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지만, 그래서는 ‘훔치는 힘’을 기를 수 없다.
문법과 예의에 맞는 말로 찬찬히 배울 수 없을 때, 혹은 말로 배우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체득하고 싶을 때야말로 ‘기술을 훔쳐 내 것으로 만들고 싶다’는 의식이 싹튼다. 기술은 보고 듣기만 해서는 몸에 익힐 수 없기 때문에 ‘훔친다’, ‘그대로 따라 한다’는 적극적인 자세로 달려들어야 비로소 어렴풋하게나마 감을 잡을 수 있다. 이는 TV에 나오는 연예인들을 무조건 동경하고 따라 하는 개념과는 완전히 다르다.
현재의 공교육 수업은 실습과 실험 시간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과목이 강의식 수업으로 이루어진다. 한 명의 교사가 다수의 학생에게 교과 내용을 좀 더 효율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만들어진 일제교수 방식을 채택한 것이다. 산업혁명 이후 민주국가가 성립되면서 국가 주도로 국민 보통교육이 시행되었고, 일정 지식을 되도록 많은 학생에게 전달하기 위해 이 방법이 보급되었다.
그런데 최근 들어 일제교수 방식의 폐해를 비판하는 인식이 강해지면서 이를 대체할 대안 교육의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하지만 기존 교육제도가 일정 이상의 효과를 거둔 면도 있어, 급작스러운 폐지가 반드시 정답이라고 할 수는 없다. 문제는 제도의 틀과 교육 내용의 괴리다. ‘학생들이 길러야 할 능력’인 A와 ‘이를 실현할 방법’인 B가 전혀 일치하지 않는다. A와 B를 효과적으로 조합하여 적재적소에 배치하고 다양한 교육 방법을 활용할 줄 아는 교사가 요구되는 시점이다.
현 교육 시스템 아래에서는 ‘훔치는 힘’을 길러야 한다는 의식이 흐릿해지기 쉽다. 학생들은 교사가 주입하는 지식을 일방적으로 받아들이는 입장이기 때문에 정해진 것 외에 새로운 기술을 훔쳐 자기 것으로 만들려는 의지가 생기지 않는다. 이는 교사도 마찬가지다. 가장 효율적인 방법으로 최대한 많은 양의 지식을 전달하는 데에 신경을 집중하기 때문에, 진정한 배움과 삶의 지혜를 전달할 여력이 없을 뿐더러 근본적인 원리를 전수해야 한다는 의식 자체가 점점 희박해진다.
그러나 ‘훔치는 힘’이라는 기초적인 힘을 제대로 체화하면 어떤 사회, 어떤 상황에 놓이더라도 무리 없이 살아낼 수 있으며, 숙달도 빠르다. 이렇게 중요한 사실이 정작 공교육 현장에서는 강조되지 않으니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흥미로운 사실은 ‘훔치는 힘’을 교육의 기본으로 규정하고 자기 스스로 체득하게 하려는 움직임이 근대 이전에 이미 존재했다는 점이다. ‘장인’을 키우는 직업 교육 현장에서는 이미 젊은 후계자를 양성하는 데 ‘모방’을 바탕으로 하는 도제식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었고, 제대로 된 매뉴얼조차 없는 것이 ‘업계 상식’이었다.
장인들은 문하생들에게 일일이 친절하게 가르치지 않았다. 따라서 초보자들은 장인이나 선배 문하생들의 행동을 어깨너머로 관찰하며 본인 스스로 터득해야 했다. 말 그대로 ‘모방’과 ‘연습’이 아니면 전혀 배울 수도, 터득할 수도 없는 것이 장인들의 기술이었다. 특히 장인, 예술가들의 세계는 말이나 글만으로는 아무 힘이 없고, 몸을 움직여 실제로 부딪쳐 가며 터득해야만 기술을 자기 것으로 만들 수 있다.
현대사회에서는 모든 것을 문자화하여 매뉴얼로 남기는 것이 일반적이다. 다수의 교육생들을 단기간 내에 일정 수준으로 끌어올리기에 매뉴얼만큼 효율적인 교육 방식이 없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진정 일류가 되기 위해서는 매뉴얼을 넘어서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부분까지 훔쳐 내 체화해야 한다.
물론 다른 사람의 기술을 훔쳐보며 모방해야 하는 도제식 교육이 모든 분야에서 효율적이라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전통 공예나 기타 예술 부문에서는 일류의 경지에 오른 사람들이 자신의 재기를 다음 세대로 확실히 전수하기에 최적화된 방법이라는 점에는 반박의 여지가 없다.
다만, 여기에도 속사정은 있다. 제자가 너무 출중하여 스승을 순식간에 따라잡으면 좁은 직업 세계에서 경쟁자 입장이 되기 때문에, 자신의 모든 것을 쉬이 전수하려 들지 않는다. 하지만 학교에서는 학생이 아무리 실력이 좋고 우수해져도 어느 날 갑자기 교사의 자리를 위협할 일은 없다. 이렇듯 도제식 교육(개별교수)과 일제교수 방식은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일례로, ‘봉공(奉公)’1이라는 말에서도 알 수 있듯, 기술을 제대로 체화하지 않아 장인의 경지에 도달하지 못하면 품삯도 받지 않고 노동력을 바쳐야 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에 더해 ‘보은 봉공’이라 하여 오랜 기간 가르침을 받은 보답으로 무보수로 봉사하거나, 약속된 기간이 끝난 뒤에도 감사의 뜻으로 주인을 위해 더 일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다 보니 고용인과 봉공 사이에 괴롭힘이나 억압이 발생하는 등 권력관계가 존재하기도 했다. 이런 이유로 옛날 평민들 사이에서 구전되던 이야기에는, 설이나 추석과 같은 큰 명절이 되어야만 고향에 방문할 수 있었던 어린 봉공의 애환 어린 사연이 소재로 종종 등장했다.
1 몸을 바쳐 고용인에게 봉사하거나 고용살이를 하는 사람.
물론, 말로 배우는 것만으로는 제대로 체화하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완벽히 전수하면 자신의 자리가 줄어들지도 모른다는 현실적인 불안감과 함께 부대끼고 살아오며 쌓인 애착이 복잡하게 얽혀있는 것이 장인 교육 제도의 모순적 현실이다.
1970년대 일본의 퍼시픽 리그를 대표하던 한큐 브레이브스(현 오릭스 버팔로스)의 간판 투수인 야마다 히사시가 싱커(Sinker)2라는 기술을 익히기까지의 과정은 ‘훔치는 힘’이 숙달에 필요한 기본임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다.
2 투수가 던진 후 타자 앞에서 갑자기 뚝 떨어지는 공.
야마다 선수의 시그니처는 ‘아트 스로’라고 불릴 만큼 유려한 언더핸드 투구 폼(Under-hand Throw)3이었으며, 이 기술로 프로 야구 통산 284승이라는 진기록을 남겼다.
3 팔의 각도를 허리 아래로 내린 형태로, 공을 아래로부터 ‘퍼올리 듯’ 던지는 투구 폼.
언더핸드 스로는 공을 낮게 던지는 투구 폼으로, 타자 앞에서 공의 낙폭이 크다는 장점이 있지만, 공의 스피드가 느린 단점이 있다. 하지만 야마다의 공은 낮게 출발하여 직구로 솟아오르는 속도가 압도적이어서 타석에 들어서는 타자마다 가뿐하게 삼진으로 잡아냈다. 야마다는 빠른 인하이 피칭(In-high Pitching)4으로 타자를 삼진 아웃시키는 것이 주특기였다. 이를 지켜본 감독이 코너에서의 컨트롤을 유지하라는 조언을 했지만, 그는 자신의 스타일을 고수하며 속구로 승부를 보았고 보란 듯이 승리를 거두었다.
4 몸쪽 높은 볼, 최대한 타자의 몸에 가까우면서도 높이 던지는 공.
그러나 세월 앞에 장사는 없었다. 야마다 선수도 시간이 지날수록 직구만으로는 더 이상 승산이 없음을 느끼고 변화구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당시 한큐 브레이브스팀에는 또 다른 언더핸드 투수인 아다치 고히로가 있었다. 아다치는 야마다와 대조적으로 스피드는 다소 떨어졌지만, 커브와 싱커 기술로 상대를 제압하는 피칭을 구사하는 선수였다.
한창 싱커를 연구하던 야마다는 좀처럼 뜻대로 되지 않자, 용기를 내어 아다치에게 싱커 기술을 가르쳐 달라고 부탁했다. 그러나 아다치는 “싱커를 던지게 되면 자네의 주특기인 직구와 스피드를 포기해야 하니, 아직은 싱커를 던질 때가 아니야.”라며 거절했다. 하지만 이미 필사적인 마음이었던 야마다는 포기하지 않았다. 야마다는 아다치가 불펜에서 투구 연습을 할 때마다 뒤에서 지켜보았다. 아다치의 투구 폼을 훔쳐보며 그가 구사하는 기술을 그대로 따라 하기 시작했다. 사실 당시 아다치의 의도는 이러했다.
“야마다가 언젠가는 나를 능가할 선수라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다. 다만 그 당시 그의 부탁대로 선뜻 싱커를 가르쳐 주었다면, 나로서는 당장 밥줄이 끊기는 상황이 될 것이므로 바로는 가르쳐주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야마다는 역시 연습벌레이자 집념의 사나이였다. 가르쳐주지 않는다면 훔쳐서라도 배우겠다는 마음이었던 것 같다. 포스트 시즌이 시작될 무렵 야마다의 투구 자세와 싱커를 보며 나는 그날이 왔음을 직감했다. 한 팀에 같은 스타일의 투수가 두 명씩이나 있을 이유는 없지 않나.”
그야말로 프로다운 답변이다. 프로의 세계는 친분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실력과 결과로 평가받는 냉정한 세계다. 눈에 불을 켜고 훔쳐보아야만 비로소 눈에 들어오는 것이 있다. 그냥 바라보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수많은 시행착오를 반복 경험하며 부딪혀봐야 비로소 자기 것으로 만들 수 있다. 야마다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요즘 선수들은 하나하나 친절하게 가르쳐주기를 원한다. 하지만 우리 때에는 나보다 앞선 선수들을 따라 하는 것부터 시작했다. 쉽사리 가르쳐주지 않으니 기웃거리며 훔쳐보고 무작정 따라 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보면 상대방의 특징이나 버릇까지 모방하게 되어 그 기술이 몸에 익을 무렵에는 이미 내 것이 된다.”
훔쳐서라도 기술을 익히고야 말겠다는 야마다의 의지를 지켜보던 아다치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야마다는 그때를 이렇게 회상한다.
“아다치가 제게 싱커를 바로 가르쳐 주었다면, 저는 ‘아, 겨우 이런 거였잖아.’ 하고 소중하게 여기지 않았을 겁니다. 하지만 그가 거절하자 저는 더욱 절실해져 밤낮으로 방법을 고민하며 연습에 몰두했습니다. 이제 어렴풋이 알겠다 싶을 때 마침 아다치가 제게 손을 내밀었고, 저는 그가 하는 말을 바로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그의 충고가 저의 투구 폼을 완성해 줬죠.”
이 이야기는 충고의 진정한 가치는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람의 ‘기술을 훔치려는 의지’가 얼마나 강한지에 달렸음을 보여준다.
‘기술을 훔치는 힘’은 ‘기술을 훔치려는 의지’가 있어야 강해질 수 있다. 단순한 ‘모방’과 ‘훔쳐서 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