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각몽
해른은 휴대폰을 열고 한가운데 눈알이 박힌 앵초꽃 모양의 로고를 터치했다. 앱이 열리자 홍채의 색이 끊임없이 바뀌는 외눈의 눈동자가 화면을 가득 채웠다. 부굴의 눈이다. 깜빡이지만 않을 뿐 사람의 눈동자와 다르지 않다. 시선을 맞추자 결제창이 떴다. 부굴의 눈은 상단 중앙에서 여전히 해른을 보고 있었다. 결제를 마치자 화면에 다섯 개의 항목이 열렸다.
미래, 복수, 방어, 침범, 회복.
작동 효과는 항목에 주어진 단어에서 유추할 수 있다. ‘나의 미래를 알고 싶다’ ‘특정 대상에게 복수하고 싶다’ ‘어디서 닥칠지 알 수 없는 가해의 가능성으로부터 나를 지키고 싶다’ ‘누군가의 미래에 개입하여 내 미래를 바꾸고 싶다’ ‘내가 처한 불편한 상황을 제거하여 원래의 상태로 돌려놓고 싶다’는 소망에 의해 발동한다.
모든 항목의 가격은 같다. 사용자는 한 번에 하나의 항목을 선택할 수 있고 그에 해당하는 주구(呪具) 한 개를 얻을 수 있다. 해른은 ‘회복’ 버튼을 눌렀다. 부굴의 눈이 다시 화면을 차지했다. 해른은 휴대폰을 내려놓고 침대에 누워 눈을 감았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지만 해른의 뇌파와 부굴의 신호파는 동조 중이었다. 이내 졸음이 밀려들었다.
〈부굴의 눈〉은 운명 조작 애플리케이션이다. 인간의 생각과 감정은 진동하는 에너지로, 파동과 주파수를 가지고 있다. 과학자들은 이미 명상으로 긍정의 감정 파동을 유지하면 DNA 분자 구조가 변화한다는 것을 실험으로 증명했다. 즉 운명을 손보고 싶다면 자신의 파동 상태를 바꾸면 되는 일이었다.
하이퍼 인공지능 부굴의 프로세서는 사용자의 소망으로 발생하는 파동 정보로 만들어진 주구를 자각몽에 집어넣는다. 사용자는 뇌파의 연동으로 구현된 자각몽으로 들어가 지시어가 가리킨 장소에서 주구를 찾을 수 있다. 제한 시간은 8분.
해른은 완전히 잠이 들기 직전 지시어를 들었다. 물론 그 단어는 귀가 아니라 머릿속으로 직접 들어왔다. ‘개암’. 눈을 뜨자 황리시(市)의 외갓집이었다. 주구는 여기 어딘가 개암과 관련된 곳에 있다. 근데 개암이 어떻게 생긴 거지? 뭔가 도토리 비슷한 거였던 것 같은데. 미리 검색을 해볼 수 있으면 좋겠지만 과정상 불가능하다. 지시어는 자각몽으로 들어가기 직전에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해른의 엄마 박가진은 열두 살 때부터 가위에 시달리고 있었다. 해른의 할머니는 하나뿐인 자식을 위해 온갖 방법을 동원했다. 용하다는 무당집에서 굿도 하고 잠자리를 부적으로 도배한 적도 있었다. 풍수 좋은 곳에서 휴양도 시켰고 심리센터와 병원에서 상담과 약물치료도 받게 했다. 하지만 전혀 효과를 보지 못했다.
가진의 수면 장애가 귀신 때문이든 정서적 예민함 때문이든 해른에게도 유전되었다. 해른은 늘 약간의 잡음에 시달렸는데 언제부터 그랬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았다. 그냥 어느 날부턴가 들렸다. 소리는 소음이 있는 낮에는 거의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밤에 잠자리에 누우면 웅웅대는 진동음과 지지직거리는 전파음, 한 마디도 알아들을 수 없는 속삭임으로 시끄러웠다.
해른은 그런 소음을 지구가 돌아가는 소리쯤으로 여기며 무시할 수 있었다. 하지만 가진은 달랐다. 소리는 가진의 몸을 짓누르며 물리적 고통을 가했고 언제나 깨어 있도록 괴롭혔다. 해른은 회복 주구가 자신에게 효과가 있기를 바랐다. 회복 주구는 사용자를 압박하는 일방적인 힘의 작용을 이전 상태로 되돌릴 수 있으니, 엄마에게도 답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해른은 사방을 둘러보았다. 자각몽의 영역이 생각보다 넓지 않아 다행이었다. 사용자의 소망이 집중될수록 자각몽의 영역은 축소되므로 주구 찾기가 수월해진다. 그런데 개암나무는커녕 열매 달린 나무 한 그루조차 보이지 않았다. 큰일이다. 8분 내에 주구를 찾지 못하면 빈손으로 잠에서 깨게 된다. 당연히 선결제한 돈도 날린다. 용돈을 받아 쓰는 고등학생 해른에게는 큰 부담이었다.
대체로 사용자 세 명 중 한 명은 주구 찾기에 실패한다. 그 원인은 지시어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시어는 반드시 부굴이 가지고 있는 사용자의 정보 중에서 나온다. 해른은 이미 두 번이나 성공했기에 이번에도 자신했다. 분명 정답은 내 머릿속에 있을 거야.
시간제한 때문에 마음이 조급했지만 차근차근 기억을 더듬었다. 왜 이 장소로 왔는지에 답이 있어. 처마 지붕을 바라보던 해른은 문득 어릴 적 아빠와 함께 저 지붕을 올려다보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때 아빠는 해른이 가지고 다니던 유치 보관함에서 앞니를 꺼내며 말했다.
“해른아, 이건 간직하는 게 아니라 지붕 위로 던져야 해. 까치가 헌 이를 가져가지 않으면 새 이가 나지 않거든.”
아빠는 해른의 유치를 지붕으로 던진 후 개암 이야기를 했다.
“아빠는 어릴 때 헌 이를 잃어버려서 개암을 주워 던졌어. 그랬더니 영 새 이가 나지 않는 거야. 볼래? 아빠 오른쪽 앞니는 가짜야.”
아빠가 웃긴 표정으로 입을 벌려 보였다. 해른은 웃음을 터뜨렸다. 아빠는 고개를 쭉 빼고 지붕 너머를 바라보며 말했다.
“어디 보자, 우리 해른이의 헌 이는 까치가 물어갔네. 아빠가 방금 봤어.”
주구는 지붕 위에 있는 게 틀림없다. 해른은 툇마루 난간을 타고 지붕 위로 올라갔다. 곳곳에 잡초와 이름 모를 들꽃들이 자라 있었다. 해른은 발밑을 신경 쓰며 경사진 기왓장을 조심스레 밟아 나아갔다. 그런데 고개를 들자 저 앞쪽에 사람처럼 보이는 형체가 몸을 숙이고 있는 것이 보였다. 순간 해른은 움찔했다. 자각몽에는 자각몽의 주인만이 존재한다. 단, 예외가 있다면 누군가 침범 항목을 선택했을 때다.
침범자도 해른의 기척을 느꼈다. 침범자는 마치 사냥꾼을 만난 짐승처럼 동작을 멈추고 경계하듯 해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해른이 침범자가 누군지 살펴보듯이 침범자 역시 이 자각몽의 주인이 누군지 탐색 중이었다. 하지만 그들이 보는 서로의 모습은 이목구비를 전혀 구분할 수 없는 모호한 형상일 뿐이었다.
침범자가 몸을 펴는 순간 해른은 침범자의 손에 쥐어져 있는 반짝이는 빛을 보았다. 해른은 소리쳤다.
“내 주구 내놔! 이 도둑놈아!”
침범자는 몸을 돌려 용마루를 밟고 순식간에 반대편 지붕 쪽으로 넘어갔다. 기와를 밟고 미끄러지며 침범자는 땅으로 툭 떨어졌다. 해른도 지붕에서 뛰어내렸다. 침범자는 뒷산으로 달렸다. 해른은 정신없이 침범자의 뒤를 쫓다가 돌멩이를 주워 온 힘을 다해 던졌다. 운이 좋게 돌멩이가 침범자의 뒤통수를 제대로 때렸다.
침범자는 순간 휘청거렸지만 멈추지 않고 계속 달렸다. 달리면서 언뜻 뒤를 돌아보는 듯 형상이 살짝 비틀렸다. 해른은 다시 돌을 주워 던졌다. 이번엔 침범자의 관자놀이쯤 되는 곳을 스쳤다. 이후로 침범자는 돌아보지 않고 오르막으로 냅다 달리기만 했다. 해른도 포기하지 않고 쫓았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올랐다. 거리가 점점 벌어졌다. 해른은 멈춰 서서 침범자를 눈으로 쫓으며 숨을 골랐다.
“저거 선수네. 달리기라면 나도 웬만큼 하는데.”
해른은 이 자각몽의 주인이지만 이곳의 시간을 멈추게 할 수도, 훌쩍 날아올라 저 도둑놈을 잡을 수도 없었다. 그저 이게 꿈이라는 것을 자각할 뿐 모든 것은 현실과 똑같았다. 제한 시간 초과. 해른은 헐떡거리며 깨어나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부굴의 눈이 평온한 시선으로 해른을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었다. 해른은 약이 올랐지만 미련 없이 앱을 껐다. 침범자가 훔쳐간 주구의 효력이 끝나야 다시 주구를 구매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해른은 어이가 없었다.
“와, 나 지금 눈 뜨고 도둑맞은 거야? 아니, 자각몽이니까 눈은 감은 건가. 그래, 세 번 연속 성공을 꿈꾸다니 내가 자만했다.”
*
승휘는 외눈의 눈동자를 데룩데룩 굴리고 있는 새알을 집어 들었다. 보드랍고 따뜻했다. 무슨 새의 알인지는 모르겠다. 그건 중요하지 않다. 어차피 눈알이 달린 이 얼룩덜룩한 새알은 부화할 수 없으니까. 긴장이 풀리는 순간, 기왓장 밟는 소리에 돌아보았다. 자각몽의 주인이 나타났다.
수 초간 그들은 서로를 탐색했다. 그래봤자 그들은 상대에 대해 아무것도 알아낼 수 없다. 승휘가 먼저 움직였다. 자각몽의 주인이 달려온다. 승휘는 용마루를 밟고 반대편 지붕을 타고 미끄러지듯 땅으로 떨어졌다. 어디로 가야 하는지 몰랐지만 무조건 달렸다. 제한 시간 안에 뺏기지만 않으면 된다.
자각몽의 주인이 던진 돌멩이에 뒤통수를 맞았다. 얼마나 아픈지 눈에서 불이 번쩍했다. 슬쩍 돌아보자 또 다른 돌멩이가 날아와 관자놀이를 스쳤다. 이후에는 그저 앞만 보고 달렸다. 꿈에서 깨어 눈을 뜨자마자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부굴의 찬연한 눈동자에 그가 얻은 침범 주구가 담겨 있었다. 성공이다.
노크 소리와 함께 방문이 열리며 승원이 얼굴을 내밀었다.
“형, 엄마가 밥 먹으래.”
승휘는 이부자리에서 일어나 뒤통수를 만져보았다. 아무렇지도 않았다. 꿈에서는 머리통이 깨지는 줄 알았다. 두 번째 돌멩이가 스친 관자놀이에서는 피가 흘렀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긁힌 자국 하나 없었다.
토요일 아침 식탁. 새엄마는 텔레비전에 사찰 요리 연구가인 미송 스님이 나오자 재빨리 채널을 돌렸다. 아버지는 못 본 척하며 생태찌개 국물을 한술 떠서 입에 넣었다. 새엄마는 물었다.
“찌개 맛이 어때요?”
“시원하네. 밖에서 먹는 거랑 똑같아.”
칭찬이 아니었다. 아버지의 대답은 말 그대로 밖에서 파는 맛이란 뜻이었다. 새엄마의 음식은 계란말이와 계란 프라이 말고는 모두 밀키트와 반찬 가게 반찬들이었다. 승휘는 알고 있었다. 지금 아버지는 엄마의 음식이 한없이 그리울 거라는 것을. 아버지는 엄마를 사랑하지 않았다. 하지만 엄마의 음식만큼은 좋아했다. 그것 때문에 엄마와의 결혼을 받아들였고, 그것 때문에 엄마와 헤어지는 데 시간이 걸렸다. 하긴 입에 꼭 맞는 단골 식당을 다시는 못 가게 되는데 망설여졌겠지.
“원서 접수는 언제부터야?”
아버지가 물었다. 승휘는 입 속의 두부조림을 재빨리 씹어 삼켰다. 좀 전에 엄마가 방송에서 하고 있던 요리도 두부였는데 그건 무슨 맛일까. 승휘는 원서 접수 일정을 줄줄이 읊었다. 그러곤 잘 준비하고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고도 구구절절 덧붙였다. 아버지가 젓가락질을 멈췄다.
“왜 오버해? 내가 묻는 말에 일일이 대답하는 거 귀찮아? 그래서 한 번에 다 들려줄 테니 그만 참견하라고?”
승휘는 입을 다물었다. 오버한 건 맞지만 아버지가 말한 이유 때문은 아니었다. 아버지는 예전에 엄마의 말수가 적어서, 아버지의 말에 마냥 웃고만 있어서 미치도록 답답하다고 했다. 승휘는 어릴 때부터 엄마 몫까지 말을 하려다 보니 절로 말수가 늘었다. 물론 아버지 앞에서만.
“왜 대답이 없어?”
“아니에요. 그냥 열심히 하고 있다고 말씀드린 거예요. 걱정하지 마세요. 꼭 의대 갈 거예요.”
“그래야지.”
듣고 있던 새엄마가 말했다.
“그럼요. 당신 아들인데 무조건 가죠.”
승휘는 진심이었다. 아버지의 손바닥만 한 동네 의원을 물려받고 싶어서가 아니었다. 그는 아버지의 자랑이고 싶은 마음이 눈곱만큼도 없었다. 오히려 아버지가 얼마나 초라한 인간인지 느끼도록 만들어줄 생각이었다.
“독서실 갈게요.”
승휘는 수저를 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밥이 반 이상 남았지만 아무도 더 먹으라고 말하지 않았다. 승휘는 서운하지 않았다. 엄마한테 가서 마저 먹으면 되니까. 아까 방송에서 본 두부조림 해달라고 해야지. 대학만 붙으면 더는 눈치 볼 필요 없이 이 집에서 독립할 수 있다. 엄마도 마음대로 만날 수 있고. 하지만 재수하면 계속 아버지에게 손을 벌려야 한다.
승휘는 자신이 의대에 합격하는지 보기 위해 〈부굴의 눈〉에서 주기적으로 미래를 봤다. 그러자고 매달 받는 용돈을 거의 다 썼다. 하지만 단 한 번도 그가 원하는 시점을 볼 수 없었다. 언젠가는 볼 수 있을 거라는 기대로 계속 시도하기에는 이제 돈도 시간도 부족했다. 그래서 이번에는 미래 대신 침범 항목을 선택했다.
침범은 불특정 대상의 자각몽으로 들어가 변화를 일으키는 것이다. 그 자각몽의 주인이 누군지는 알 수 없지만 그 사람이 나중에 침범 주구를 사용한 사람의 미래를 바꾼다. 파동의 인과적 나비효과다. 즉 승휘는 그가 아직 보지 못한 미래를 무조건 바꾸는 위험한 선택을 한 것이었다.
만약 그의 미래가 의대 합격이었다면 이제 그 합격은 그가 침범한 자각몽의 주인으로 인해 불합격으로 바뀌게 된다. 불합격이었다면 그 자각몽의 주인 덕에 합격으로 바뀔 것이다. 그는 그런 도박을 해야 할 만큼 절박했다.
승휘는 고즈넉한 고옥의 지붕 위에서 빛나던 그 주구가 자각몽의 주인에게 어떤 소망이었는지 알지 못했다. 알고 싶지도 않았다. 그는 침범이 잘못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자각몽의 주인이 주구를 먼저 찾았으면 될 일이었다. 경쟁이란 원래 그런 것이다. 누군가가 얻으면 누군가는 잃어야 한다. 다만 한 가지는 미안했다. 그가 얻은 침범 주구를 사용하기 전까지 그 자각몽의 주인은 다른 주구를 얻을 수 없다.
엄마가 산사로 올라가는 입구에 나와 손을 흔들고 있었다. 싸리나무 아래에서 미소 짓고 있는 엄마의, 아니 미송 스님의 얼굴은 평화로웠다. 승휘는 엄마도 저리 웃을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서야 애초에 가졌던 서운한 마음을 버릴 수 있었다. 엄마가 아버지와 헤어지고 출가했을 때 승휘는 분노를 느꼈다. 엄마잖아. 아들인 나를 데리고 같이 살아야지 나를 두고 혼자 절에 들어간다는 게 말이 돼? 원래 불교 신자도 아니었잖아.
나중에서야 승휘는 엄마에게 갈 곳이 세상천지에 여기뿐이었다는 것을 알았다. 엄마는 삶이 힘들 때마다 이 산사에서 마음을 추슬렀다. 또 엄마가 자신을 데려가지 않은 것이 아니라 데려갈 수 없었다는 것도 알았다. 양육권은 유책과 상관없었다. 아버지는 바람피운 간호사와 재혼하면서 모든 수단을 동원해 전처에게서 아들을 뺏었다.
승휘의 엄마 송재복은 열두 살 때 청력을 잃었다. 승휘는 그 사고에 대해 아는 게 없었다. 엄마와 외할머니는 그 이야기만 나오면 입을 다물었다. 그래서 무슨 사연이 있겠거니 여길 뿐이었다. 외할머니는 밥집을 했는데 딸인 재복이 그 솜씨를 물려받았다. 입맛이 까다로운 승휘의 아버지는 공중보건의로 근무하던 시절 그 밥집을 자주 찾았다. 당시 그의 눈에는 입을 꼭 다문 채 사람들의 말하는 모습에 집중하느라 열심히 눈을 반짝이는 재복의 모습이 참 예뻐 보였다.
재복은 들리지만 않았을 뿐 말하는 것은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언제나 다른 사람의 말을 듣는 쪽이었다. 승휘의 아버지는 늘 자신의 말에 귀 기울이는 재복을 보며 으쓱함을 느꼈다. 그는 재복이 편하고 좋았다. 어쩌다 보니 승휘가 생겼고 둘은 결혼했다. 결혼하고 나자 승휘의 아버지는 마음이 바뀌었다. 그는 재복이 입을 꼭 다문 채 자신의 입만 바라보고 있는 것이 짜증이 났다. 그의 입에서 막말이 나오기 시작했다. 밥하는 거 말고는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어!
재복은 남편이 간호사와 딴살림을 차린 것을 알고 충격을 받았다. 승휘의 아버지는 변명했지만 적극적이지 않았다. 재복은 그때 처음으로 승휘가 보는 앞에서 눈물을 흘리며 화를 냈다. 그러고는 선언했다.
“당신은 이제 두 번 다시 내가 해준 밥을 먹을 수 없어. 나는 당신만 빼고 온 세상 사람들에게 밥을 해줄 거야.”
주구 공격
2052년. 예측과 복수의 기술은 돈이 되었다. 운명을 손보는 것이 얼굴을 손보는 것만큼 당연한 일이 되었다. 운명에 조작을 가하는 것은 이미 수천 년 전부터 행해지고 있었다. 사주를 세팅하고 관상과 손금을 성형하던 시대에서 이제 〈부굴의 눈〉은 보다 과학적인 방식을 통해 확실한 운명 조작 수단을 제공했다.
물리학자들은 시간은 흐르는 것이 아니라 순간과 순간이 있을 뿐이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과거, 현재, 미래의 시간은 이미 처음부터 끝까지 존재하고 있다. 부굴의 주구는 시공에 던져진 쇠구슬 같은 것이다. 주구가 일으킨 파동이 특정 지점을 자극하면 시공에 퍼져 있는 수많은 가능성 중 하나가 사용자의 관찰과 함께 미래로 결정된다. 보지 않으면 모든 가능성이 열린 상태로 존재하지만 보는 순간 관찰이라는 상호작용에 의해 결정된 것이 입자로 바뀌어 가시화되는 것이다. 다만 그 미래는 사용자가 원하는 시공과 반드시 일치하지 않는다.
이제 인간은 보이는 세계와 보이지 않는 세계 양쪽에서 치열하게 살아나가야 하는 상황이었다. 〈부굴의 눈〉은 사람들이 정해진 운명을 인정하지 않아 생겨난 산물이었다.
사적 원한 관계에서 〈부굴의 눈〉은 이미 광범하게 대중화되었다. 복수는 복수를 낳는 법. 이제 아무도 당하고 살지 않았다. 누군가의 주구 공격을 막으려면 방어 주구가 필요한데 이 때문에 〈부굴의 눈〉 사용자는 급속하게 늘었다. 주구 공격의 장점은 우연한 사고처럼 벌어지는 자연스러움에 있다. 눈에 보이지 않는 힘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낙상이나 교통사고 같은 것으로 위장되거나 혹은 원인이나 가해자 없이 불가사의한 방식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따라서 사용자는 거의 완벽하게 신상을 보호받을 수 있다.
사회적으로는 법적 처벌에 대한 불만을 해소할 제3의 응징 수단이었다. 주구를 사용하려면 대상이 특정되어야 한다. 모르는 사람에게는 사용할 수 없다. 그렇기에 무책임한 오너들, 어린 자식을 유기·방임·학대한 부모나 음주 운전자가 법의 심판대에 섰을 경우 그 형량이 다수의 공분을 샀다면 사용자들은 그들의 신상이 오픈되자마자 얼마든지 주구 처벌을 할 수 있다. 이론적으로는.
뱀의 혀라고 불렸던 어느 정치인이 자루 속에 든 시신으로 발견됐다. 어느 비리 법조인은 추락사를 했고 출소한 어느 강간범은 심각한 자상으로 신체가 토막이 났다. 그 어느 사건도 범인을 잡지 못했다. 사람들은 부굴의 주구가 작용했을 거라고 말했지만 증명할 수 없었다. 무엇보다 주구로는 현실에서 살인을 저지를 수 없다고 알려져 있었다. 물론 피해자들에게도 방어 주구가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시민들의 복수 주구가 연달아 작용하면 최후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알 수 없었다.
중요한 것은 부굴의 주구 덕에 매체에 등장하는 범죄자의 수가 어느 정도 감소했다는 것이다. 즉 ‘귀신은 저런 거 안 잡아가고 뭐 하나’의 ‘귀신’이 바로 이 시대의 부굴이었다.
〈부굴의 눈〉을 출시한 I&B의 창립자 한진태는 이렇게 말했다.
“주구 획득의 의의는 세계의 균형입니다. 주구는 불공평을 제거하는 수단이지요. 공정이란 옳고 그름에 상관없이 받은 만큼 돌려주는 겁니다. 이미 벌어진 일은 돌이킬 수 없어요. 사람을 죽인 자를 벌해도 죽은 자는 살아 돌아오지 않으니까요. 상처를 준 자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