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은이
안희제
문화인류학을 공부하는 작가이자 칼럼니스트. 가벼운 공감보다는 정확한 통감이 더 나은 관계와 사회를 만드는 길이라고, 더 많은 사람과 더 많은 이야기를 깊이 느낄 때 비로소 더 나은 ‘우리’가 만들어진다고 믿는다. 서로의 안팎을 조심스럽게 오가는 일을 잘하고 싶다. 《비마이너》, 《시사IN》, 《홈리스뉴스》, 《기획회의》 등에 글을 썼고, 자신의 아픈 몸과 주변적 위치에서 대중문화를 더 나은 논의로 이어가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고민한다.
책 《난치의 상상력》, 《식물의 시간》을 썼으며, 함께 쓴 책으로는 《아픈 몸, 무대에 서다》, 《우리는 이어져 있다》, 《몸이 말이 될 때》 등이 있다. 대중문화에 대해 쓴 글로는 〈비장애인의, 비장애인을 위한, 비장애인에 의한 ‘접근성’?: 드라마 〈스타트업〉 속 비장애 중심적 상상력〉, 〈영원한 수수께끼라는 공론장의 가능성: 케이팝 세계관 콘텐츠를 중심으로〉 외 다수가 있다.
제57회 백상예술대상 젊은연극상 후보에 오른 시민연극 〈아파도 미안하지 않습니다〉(2020)에서 시민배우로 무대에 섰다. 다큐멘터리 〈귀귀퀴퀴〉(2022)에서 기획·번역·접근성을 담당했고, 이를 바탕으로 영상 접근성 작업에 관해 《웹진 이음》에 글을 썼다.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이 주최·주관하는 ‘No Limits in Seoul 2022 노리미츠인서울’의 전시 〈이음으로 가는 길〉에 참여했다.
매혹이 무엇을 가능하게 하는지에 관심을 갖고 있으며, 팬이라는 궤도에서의 경험이 더 나은 세상을 위한 질문의 장소가 될 수 있다고 믿는다.
표지 그림 조재석
표지 설명
흰색 가장자리 안쪽으로 네모난 빨간색 영역이 있다. 책의 제목과 표지 중앙의 하트는 모두 픽셀이 드러나는 듯한 도트 디자인이다. 표지의 중앙에는 가장자리의 픽셀들이 흩어진 하트가 있는데, 하트 안에는 ‘BLI’, ‘EX’라는 알파벳이 있고, 동그란 회오리 모양과 별 모양이 각각 막대에 얹혀 있으며, 그 외에도 팬덤의 아이콘으로 보이는 요소들이 담겨 있다. 왼쪽 위에는 책 제목인 ‘망설이는 사랑’이, 오른쪽 아래에는 부제목인 ‘케이팝 아이돌 논란과 매혹의 공론장’이 빨간색 영역과 흰색 가장자리에 걸쳐 있는 하얀색 상자 안에 적혀 있다. 부제목 위에는 ‘안희제 지음’이, 표지 왼쪽 가장 아래에는 ‘오월의봄’이 빨간색 상자 안에 적혀 있다. 빨간 영역의 오른쪽 위에는 ‘닫기’ 버튼처럼 ‘×’ 표시가 적힌 빨간색 상자가 있다.
표지 설명은 이 책이 전자책이나 오디오북, 시각장애인용 대체자료로 만들어질 때 표지의 디자인을 청각적으로도 전달하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이다. 비록 부족한 설명이지만, 더 많은 책에 표지 디자인 설명이 담기길 바란다. 더불어, 케이팝 뮤직비디오들에 한국어 자막이 기본으로 탑재되고, 화면해설 버전이 제작되길 바란다. 케이팝을 모두가 차별 없이 즐길 수 있는 날이 오면 좋겠다.
어떤 사랑도 경멸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터널은 어두워서 누군가는 덜컥 겁이 나 뒤로 돌아 터널의 입구를 찾으려고 하는 사람들도 있어요. 터널 안은 같은 것만 보여서 답답할 수도 있지만 그 터널을 조금만 견디다 보면 터널 끝이 보이며 밝은 빛이 언니를 기다리고 있을 거예요. 저는 언니와 터널을 지나 끝이 보이기 전에 밝은 빛을 위해 단단해지는 법을 배우면서 터널의 끝을 맞이하고 싶어요. 우리 같이 걸어가요 언니. 힘들고 지칠 땐 서로에게 의지하면서 그렇게 나아갑시다. 항상 응원하고 사랑해요.
나는 주로 질병과 장애처럼 사회에서 주변화된 경험에 관심을 갖고 글을 써왔다. 그런 내가 한국 대중문화의 주류 중 주류인 아이돌과 그들의 팬들에게 진지하게 관심을 갖게 되었다. 어머니 때문이었다. 온갖 클래식 연주 앨범들과 수많은 록밴드, 팝 가수들의 앨범을 모아두고 그들의 음악을 틀던 어머니가 2017년 하반기에 방탄소년단의 팬이 된 것이다.
나 역시 그런 환경에서 별 생각 없이 건즈 앤 로지즈Guns N’ Roses와 핑크 플로이드Pink Floyd의 앨범을 들으며 자라왔다. 학창 시절에도 딱히 아이돌 음악을 좋아해본 적은 없었다. 오히려 싫어하고 무시하는 편이었다. 내 주변에는 록 음악이 최고고 아이돌 음악은 수준이 떨어진다는 생각을 가진 이들이 많았고, 나 또한 그중 하나였다. 그게 무슨 음악이냐, 가사도 안 들린다, 립싱크하지 않냐, 직접 작사·작곡도 안 하면서……. 나는 마치 케이팝K-pop을 싫어할 이유를 찾아내려고 노력이라도 하는 사람처럼 싫어할 이유를 늘려갔다. 나중에는 케이팝 산업 내부의 성차별과 인간의 상품화와 같은 것들도 케이팝을 싫어하는 이유에 추가되었다.
그런데 어머니가 방탄소년단에 입덕했다. 나까지 팬이 된 건 아니었지만, 밤늦게까지 함께 뮤직비디오를 해석하다가 늦게 자는 일이 늘었고, 어머니가 부탁하면 투표도 하고, 뮤직비디오와 음원 스트리밍도 돌리고, 콘서트가 있으면 티켓팅도 함께했다. 연말에는 거의 모든 시상식의 무대를 함께 봤다. 그렇게 나는 아이돌 문화에 익숙해지고 있었다.
또 다른 계기는 〈문명특급: MMTG〉이라는 유튜브 채널이었다. 처음에는 웃겨서 보기 시작했는데, 이 채널을 보면서 새삼스럽게 깨달은 것들이 있었다. 케이팝의 역사뿐 아니라, 나오는 노래마다 안무 포인트와 창법의 특징을 꿰고 있는 아이돌 아티스트들, 일명 ‘케이팝 교수’들을 보면서, 나는 이들이 한 분야의 전문가라는 당연한 사실을 깨달았다. 자신의 분야에 대한 열정과 지식으로 똘똘 뭉친 사람들.
그러다가 나도 누군가의 팬이 되었다. 어머니가 방탄소년단의 팬, 즉 아미A.R.M.Y.가 된 이후로 우리는 새로 나오는 뮤직비디오라면 어떤 아티스트의 것이든 일단 틀어보게 되었는데, 그러던 중 한 뮤직비디오를 발견했다. 처음엔 ‘그냥 그런데?’ 하고 넘겼다가, 왠지 모르게 한 장면이 다시 떠올라서 한 번 더 틀어보고, 방금 어딘가 놓친 것 같아서 또 틀어보고, 그러다가 한 40번 정도 돌려 보게 것 같다. 그게 내 첫 아이돌 덕질의 시작이었다.
그렇게 덕질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문명특급〉에서는 ‘컴눈명’(다시 컴백해도 눈감아줄 명곡)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었다. 내가 한 번도 좋아해본 적 없는 어느 그룹의 멤버들이 〈문명특급〉에 출연했는데, 이상하게 눈물이 나려 했다. 그 눈물이 어떤 의미였는지 여전히 잘 모르겠지만, 거기에 부끄러움이 섞여 있었음은 분명하다. 내가 케이팝을 가장 경멸하던 시기에 자신의 모든 열정과 청춘을 케이팝에 쏟아붓고 있었던 이들, 자신의 인생을 무대 위에 걸고 뛴 이들의 모습이 그제야 보이기 시작했다. 내가 단지 취향이 맞지 않는 음악을 듣지 않은 것이 아니라, 대단한 이유조차 없이 누군가의 삶을 경멸하고 있었던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이르렀고, 그 사실이 부끄러웠다.
케이팝은 분명 한국 대중문화의 주류 중 주류지만, 어디까지나 한국 문화의 세계적 위상을 상징하거나 문화 수출의 증거로 언급될 때만 존중받았다. 케이팝은 ‘애들이나 듣는 것’이나 ‘상품에 불과한 것’으로 여겨져 무시당하기 일쑤였고, 이런 경향성은 지금도 존재한다. 그래서 케이팝은 주류이면서도 주류가 아니다. 티빙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케이팝 제너레이션〉에 나온 말마따나, 케이팝은 ‘거대한 서브컬처’다. 가장 빛나는 몇몇 그룹을 제외하면 당장 생활조차 어려운 경우도 더러 있다. 여타의 문화예술 노동자들처럼 본업과 함께 아르바이트를 하기도 한다. 그런데 계약 조건 때문에 사생활의 자유는 없고, 때로는 소속사에 의해 일방적으로 그룹이 해체되거나 멤버가 퇴출되는 경우까지 있다. 케이팝의 안팎에는 무언가 이상한 게 있다는 직감이 들었다. 무엇이 문제인지 더 알고 싶었다. 왜 케이팝을, 아이돌을 싫어하는 일이 이렇게나 쉬운지, 싫어할 이유들이 왜 계속해서 생겨나는지 궁금했다. 이토록 주류적인 문화가 어떻게 주변적이기도 한지 알고 싶어졌다. 케이팝을 시끄럽게 하는 네트워크를 보고 싶었고, 이를 통해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을 보고 싶었다.
나는 내가 이해하기 힘든 경험을 하면 그것을 이해하려고 안간힘을 쓰는 버릇이 있다. 나에게 찾아온 팬심과 덕질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케이팝을 싫어하던 사람으로서, 나아가 케이팝이 어떤 면에서 해롭다고 생각하는 사람으로서, 나 자신의 팬심을 인정하거나 이해하기가 무척이나 어려웠다. 마음이 복잡했다. 좋아하는 아티스트의 열정과 내가 추구하는 가치관이 부딪힐 때, 나는 어떤 태도로 덕질에 임해야 할지 알 수 없는 곤란한 상황에 빠지곤 했다. 둘 중 무엇이 맞다고 섣불리 결정할 수 없었다. 덕질의 시작부터 내게 케이팝은 사회에 대한 나의 생각과 아티스트들에 대한 나의 마음 사이에서 발생하는 충돌 그 자체였다.
그래서 다른 팬들의 마음이 궁금해졌다. 다른 이들은 자신의 마음을 어떻게 다루고 있을까. 이 글의 도입부에서 인용한 글은 내가 좋아하는 한 아이돌 아티스트의 데뷔 5주년 기념 게시물에 달린 댓글의 일부분이다. 해당 아티스트의 소속 그룹에서 한 멤버가 소속사의 악의적인 공지와 함께 퇴출되어 그룹의 존폐가 불분명한 상황에서 한 팬이 그런 댓글을 단 것이다. 나는 저런 마음들이 어떻게 생겨날 수 있는지, 무엇보다도 저런 마음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어떤 세상을 만들 수 있는지 알고 싶었다. 그룹의 해체가 불 보듯 뻔한 상황에도, 돌아오지 않을 탈퇴한 멤버에게도 언제까지고 함께하겠다고 약속하는 마음이 궁금했다. 유치하다고 무시당하고 현생을 살라고 욕먹으면서도 덕질을 포기하지 않는, 낙인을 견디게 하는 마음이 궁금했다. ‘연예인 걱정이 제일 쓸모없다’는 말에 가려지는 마음이 궁금했다.
흔히 사람들은 덕질을 헛짓이라고 생각한다. 연예인이 꾸며낸 이미지에 홀라당 속아 넘어간 팬들이 가짜에 돈과 시간과 체력을 낭비하는 헛짓. 여기서 우리는 팬심은 진짜가 아니라 가짜이고, 팬들은 비합리적이라는 유구한 편견과 마주한다. 그러나 ‘가짜’, ‘허상’, ‘환상’ 같은 말들은 얼마나 많은 감정들과 관계들을 지워버리고 있나? 팬과 아티스트가 주고받는 마음이란 단지 아이돌 산업이 만들어내는 상품이라는 말로 환원될 수 없는 복잡한 대상이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공유하는 팬심이라는 것은 각자의 삶의 과정 안에서 각기 다르게 고유한 형태로 솟아나는 마음이다. 팬, 그리고 팬덤의 경험이 전혀 없는 사람들에게도 이 마음을 조금이나마 전달하고 싶었다.
‘논란’을 경험한 팬들을 만나며 내가 발견한 것은, 팬심을 뒤흔들고 나아가 탈덕으로 우리를 떠미는 고통스러운 시간 안에서도 팬들이 그저 굴복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아티스트를 마음에 안 들면 치워버릴 수 있는 상품이 아니라, 오히려 그 자체로 복잡하고 고유한 인간으로 대하려고 안간힘을 쓰며, 이를 위해 윤리적 고민들을 놓지 않는다. 이게 사랑이 아니라면 무엇이 사랑일까? 그 마음을 그저 철없는 짓이나, 나잇값 못하는 짓이나, 마케팅에 넘어간 한심한 짓으로, 시간 낭비로 치부할 수 없었다. 아니, 그래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나는 이 마음을 굳이 사랑이라고 부르고 싶었다. 설령 그것이 다소간의 낭만화를 수반할지라도, 그 말이 상기하는 어떤 찬란함과 이 마음들을 연결하고 싶었다. 어떤 열정도, 어떤 사랑도 경멸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용어 설명
책에 자주 등장하는 용어들을 간략히 정리했다. ‘논란’의 경우 이 책의 관점에 따라 설명을 비판적으로 재구성했다. 등장 빈도가 적은 용어들은 해당 지면에서 그때그때 각주로 의미를 설명했다. 다른 현장에서는 같은 단어가 다른 의미로 사용될 수도 있다.
논란: 학교폭력, 갑질, 성폭력, 인권 의식부터 역사 인식, 인성 등에 이르기까지 아이돌 아티스트의 이미지에 타격을 줄 수 있는 모든 사건을 통칭한다. 논란이라는 범주는 각 사건의 내용과 큰 관련이 없으며, 개별 사건이 생산되고 증폭되며 특정한 방식으로 처리되는 과정 전반의 특성에 기인한다. 사건들은 온라인 커뮤니티, 소셜미디어, 검색 포털과 연동된 언론 등 관심경제의 원리로 작동하는 행위자들의 연결 안에서 생산되고 증폭되면서 논란으로 만들어진다. 이렇게 생산된 논란은 유행처럼 소비되며, 그 과정에서 특정 주장이 여론에 따라 사실의 지위를 얻으면 일단락된다. 그때도 논란은 완전히 사라지는 대신 다음에 생산될 논란의 토양으로 기능한다. 논란은 관심경제 안에서 특정 종류의 관심을 생성하고 유통할 뿐 아니라, 그와 결부된 특정 사회적 사안에 대한 (도덕적) 의견을 두고 경합을 벌이는 사람들, 즉 대중을 구성하고, 그들이 말을 주고받는 공간, 즉 공론장을 구성한다.
덕후/덕질: 덕후는 ‘오타쿠’의 준말, 덕질은 ‘덕후+질’의 준말이다. 따라서 덕질이란 “어떤 분야를 열성적으로 좋아하여 그와 관련된 것들을 모으거나 파고드는 일”을 말한다. 덕질의 정의는 티빙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케이팝 제너레이션〉 1화를 참고했다.
팬심/팬질: 팬심fan心은 ‘팬fan’으로서의 마음心, 팬질은 ‘덕질’과 같은 의미인데, ‘덕질’이 아이돌 외의 영역에도 포괄적으로 사용되는 것과 달리 팬질은 아이돌 영역에 국한된 의미로 더 자주 사용된다.
입덕/탈덕: 입入덕은 덕질의 시작入을, 탈脫덕은 덕질의 끝脫을 의미한다. 탈덕의 경우 같은 의미로 ‘탈’에 ‘빠순이’의 첫 음절을 합친 ‘탈빠’를 사용하기도 한다.
본진/최애: 본진本陣은 현재 가장 좋아하는 아이돌 그룹을, 최애最愛는 현재 가장 좋아하는 멤버를 의미한다. 이때 최애는 ‘○○을 가장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뜻의 ‘○○ 최애’와 같은 형태로도 사용된다.
돌판: ‘(아이)돌’과 ‘판’을 합친 말로, 보통은 팬덤fandom이나 아이돌 덕후들이 주로 이용하는 온오프라인 네트워크를 의미하며, 때로는 아이돌 산업까지 포함하는 의미로 사용된다.
떡밥: 아티스트의 성격이나 세계관 등에 대한 실마리들을 의미한다. 전자의 경우 주로 예능이나 자컨에서, 후자의 경우 노래 가사나 뮤직비디오 등에서 발견된다.
자컨: ‘자체 컨텐츠’의 준말. 소속사나 아티스트가 직접 만들어서 올리는 영상을 의미한다.
인터뷰이 소개
인터뷰이는 인터뷰한 순서대로 기재했다. 비대면(ZOOM)으로 인터뷰를 진행한 경우 가명에 밑줄을 쳤고, 인터뷰이가 여러 아티스트의 팬이면 현재 본진을 굵게 처리했다. 취소선은 탈덕을 의미한다. 인터뷰에서 밝히지 않은 이전의 본진이나 최애 또한 존재할 수 있다. ‘여덕’은 주로 여성 아이돌을 좋아하는 여성 팬, 즉 ‘여돌여팬’을 의미한다. 지금의 본진이나 최애에게 논란이 발생하지 않았더라도, 이전에 그런 경험을 한 적이 있는 인터뷰이도 있다.
일러두기
1. 인터뷰이의 말을 보충 설명하는 경우에는 대괄호 [ ]를, 생략된 맥락을 밝히는 경우에는 소괄호 ( )를 사용했다.
2. 인터넷 댓글과 노래 가사의 경우, 맞춤법에 맞지 않는 표현이 있더라도 그대로 썼다.
이것은 팬덤에 대한 책이 아니다
나는 아무리 현실이 추악한 것이라고 해도, 그 안에 분명히 존재하는 찬란함을 증언하고 싶었다.1
논란 이후에도 자기 안의 죄책감과 겨루면서까지 덕질을 이어가는 팬들의 이야기가 궁금했던 건 내가 아이돌 음악을 좋아하고, 덕질을 하고 있는 사람이어서만도, 케이팝이 점점 더 인기를 얻고 있어서만도 아니었다.
흔히 케이팝은 크게 두 가지 방식으로 다뤄진다. 하나는 성공한 문화산업이고, 다른 하나는 ‘케이팝 산업의 어두운 이면’과 같은 것이다. 여기서 후자는 다음과 같은 것들을 포함한다. 아이돌 아티스트들의 성적 대상화, 그와 결부되는 건강 문제, 아티스트 및 스태프 모두의 열악한 노동조건, 소속사와 아티스트 사이의 위계관계, 감정적으로 아티스트를 착취하곤 하는 팬들과 그러한 착취를 적극적으로 조장하는 소속사들, 기약 없는 연습생 생활, 데뷔하더라도 종종 자신의 몫을 제대로 정산받지 못하는 산업 구조…….
이런 것들을 모르고 책을 쓰기 시작한 것은 아니었다. 다만 이런 문제들을 지적하면서도, 꼭 이야기해야 하는 중요한 것이 있다고 생각했다. 이것은 마음에 대한 이야기다. 너무 자주 ‘허상’이나 ‘무지성’으로 폄하되는 그 마음.
‘팬덤 정치’는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는다
팬덤은 아이돌에 국한된 현상이 아니지만, 최근 한국에서 ‘팬덤 정치’라는 단어가 사용되는 방식은 유독 아이돌 팬덤의 그것과 닮아 있다. 이재명이나 문재인 등에 대한 젊은 여성들의 열성적 지지에는 ‘팬덤 정치’라는 명명이 붙었지만,2 박근혜에 대한 중노년층의 열광이나 이준석에 대한 젊은 남성들의 열광은 그렇게 불리지 않은 현실이 이를 보여준다.
2022년 10월, 대통령직속 국민통합위원회는 ‘팬덤 정치’를 디지털 매체 환경의 변화 속에서 새롭게 생겨난 정치 문화로 규정하고, 이를 숙의 민주주의의 걸림돌이자 사회 분열의 원인으로 짚었다.3 같은 해, 어떤 정치인들은 “팬덤 정치와 결별하고 대중정치를 회복”해야 한다거나, “반지성주의가 현실에서 나타난 현상이 바로 팬덤”이라고 말하며, 특정 정치인들을 향한 지지 행위를 ‘팬질’로 규정했다.4 이처럼 ‘팬덤 정치’라는 말은 최애를 묻어놓고 지지하는 ‘무지성 팬덤’5과 ‘합리적 대중’이라는 이분법에 기대며, 이 이분법은 팬덤은 대부분 여성이며 여성은 비이성적이고 감정적이라는 편견의 순환 안에서 탄생했다.6
‘팬덤 정치’라는 단어는 마치 팬덤으로 ‘오염’되지 않은 순수하고 합리적인 정치가 있었던 것처럼 전제한다. 그러나 ‘팬덤 정치’는 애초 정치의 장 안에 흐르고 있었던 감정이 관심경제와 소셜미디어 등의 네트워크 안에서 더욱 증폭·재생산되며 나타난 현상이다. 오히려 우리는 지지자들이 언제나 특정 정치인들에게 ‘매혹’되어 움직였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매혹 그 자체는 좋거나 나쁘지 않다. 그것은 다만 우리를 추동하는 힘이다. 그리고 설령 우리가 매혹에 따라 움직이는 ‘비합리적인’ 존재일지라도, 우리는 매혹에 열려 있는, 타인을 느끼는 존재들이기에 변화할 수 있다. 나에게 중요한 부사는 언제나 ‘설령’이다.
팬심, 논란 속의 혼란
m 나는 그들로 인해 기록하는 것이 나의, 아니 망각하는 모든 인간이 해야 할 저항이라는 걸 알았고, 설령 망각에 패배하더라도 우리의 의무라는 걸 알았거든요. 또 복잡한 세상에서 한 아이돌 그룹의 한철과 그 시절 팬의 일상은 아무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지만 그래서 더 기록해야 한다는 것도요. (141)7
팬덤은 주로 빠른 속도로 움직이는 집단으로 이야기되었다. 사람들은 어떤 경우에는 그것을 가능성으로, 또 다른 경우에는 한계로 지적했다. 그러나 온라인 공간에서 팬덤은 그때그때 덕질의 문법과 여론에 영향을 크게 받기에, 단지 팬덤에 초점을 맞추게 되면 개개인의 팬이 마주하는 윤리적 고민을 포착하기 어렵다. 무엇보다도 이런 접근은 지배적인 여론만을 재생산하면서 주변화된 팬들을 이중으로 삭제할 위험이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팬덤에 대한 책이 아니다.
책의 초고를 넘긴 지 며칠 되지 않은 2022년 10월 초, 다큐멘터리 〈성덕〉(오세연, 2022)을 보러 극장에 갔다. 성범죄로 사법적 판단을 받은 남성 연예인에게서 탈덕한 팬들의 마음을 조명하는 이 다큐멘터리는 ‘별 탈 없이 덕질하는 게 성공한 팬 아닐까. 나도 언젠가는 다시 성덕(성공한 덕후)이 되고 싶다’라는 결론으로 나아간다. 이 작품은 팬들의 복잡한 마음을 담아내고자 노력하면서도, 그것을 결국 죄책감이나 즐거움 둘 중 하나로 정리되어야 하는 것으로 그린다.
나는 이 책에서 사법적 판단이 뚜렷하지 않거나, 경찰 조사로도 이어지지 않은 사건들에 좀 더 집중했다. 내가 만난 팬들은 대부분 (논란 이후) 탈덕하지 못한 팬들이다. 소셜미디어와 관심경제가 결합하는 네트워크 안에서 가속되는 팬덤의 속도, 그리고 그 속도를 가능케 하는 감응과 여기서 구성되는 ‘팬덤’과 ‘대중’의 경계……. 이 난기류 안에서 판단이나 결정을 미루고 망설이는 팬들과 만났다. 나는 사법적 판단에 기댈 수 없어 옳고 그름의 기준부터 질문해야만 하는 상황에 놓인 팬들의 혼란과 마주했다. 그 팬들은 수많은 타자들이 던지는 윤리적 질문 앞에서 헤매고 있었다. 그 헤맴과 망설임이 관심경제 안에서 어떤 가능성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이 책이 논란을 다루는 방식
책을 쓰며 가장 고민한 지점 중 하나는 논란을 다루는 방식이었다. 기본적으로 논란은 팬들이 가장 피하고 싶어 하는 대화 주제다. 진실을 알기 어려운 논란들은 그 특성상 종결되지도 않고, 어딘지 찝찝하게 ‘일단락’될 뿐이다. 논란에 대한 논의가 누군가에게는 또 다른 피해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 특히 더 조심스러웠다. 인터뷰이들 또한 피해자가 존재할 수 있는 논란들을 더 다루기 어려워했다.
나는 개별 논란 자체의 사실관계에 대해 판단하지 않았다. 논란에 대한 팬들의 판단에 동의하느냐도 중요하지 않다. 특정 아티스트나 팬덤을 변호하거나 비난하는 일은 이 책의 목표가 아니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 논란 안에서 갖게 되는 태도와 그 태도가 줄 수 있는 시사점이다. 불확실한 믿음도 얼마든지 우리의 삶을 바꿀 수 있다.
따라서 이 책은 논란이 일어나고 증폭되는 과정, 그리고 그 속에서 팬들이 갖게 되는 고민에 초점을 맞춘다. 다뤄지는 논란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관련 기사들뿐 아니라 인터뷰이들의 말과 팬들의 아카이브를 참고해 간략한 설명을 덧붙였다. 단, 인터뷰가 아닌 온라인 공간에서 찾은 자료 중 도리어 논란을 만드는 데 기여하거나 특정 집단에 대한 편견을 재생산하게 될 위험이 있다고 판단한 경우에는 예외적으로 익명으로 처리했다.
네트워크로서의 논란
수많은 폭로, 반박, 부인, 사과, 탈퇴가 반복되었다. 그런데 그렇게 많은 논란 이후에도 갑질과 학교폭력, (돌판 내부의) 성별에 따른 이중 잣대는 사라지지 않고 있으며, 미성년인 아티스트들에 대한 과도한 성적 대상화도 계속되고 있다. 왜일까? 사실 여기에는 우리가 아이돌 논란으로부터 학교, 계급, 노동, 성차별, 섹슈얼리티라는 주제들로 나아가지 못하도록 지속적으로 방해하는 어떤 네트워크가 존재하는 것은 아닌가?
이때 네트워크network란 인터넷 네트워크에 국한되지 않는 훨씬 넓은 의미다. 사람, 알고리즘, 기사, 댓글 등의 요소가 서로 연결되며 논란과 같은 효과를 일으키게 되는데, 이처럼 무언가가 연결되어 어떤 효과를 일으키는 양상을 네트워크라고 부르고자 한다. 이 책에서는 사람뿐 아니라 알고리즘, 소셜미디어 플랫폼, 처형대 영상, 댓글, 특정한 개념들 등 사람이 아닌 행위자actor의 역할 또한 촘촘히 살피며, 이런 맥락에서 우리가 이런 행위자들과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들여다본다.*
* 네트워크라는 말을 사용할 때 행위자-네트워크-이론Actor-Network-Theory, ANT의 아이디어를 일부 빌렸다. 이는 기본적으로 ‘아이돌 논란’을 이루는 행위자들이 무엇이며, 그들이 이루는 네트워크의 형태를 상세히 밝혀서 그에 연루되어 있는 나를 드러내고, 어떤 식의 개입이 가능한지 고민하기 위함이다. 행위자들 사이의 연결과 관계 안에서 만들어지는 효과에 집중하는 행위자-네트워크-이론은 네트워크 안에서 어떤 효과를 발휘한다는 측면에서 인간이 아닌 존재들 또한 행위자라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네트워크를 이루는 모든 종류의 행위자들이 자신의 이해관계를 상대의 이해관계로, 혹은 상대의 이해관계를 자신의 이해관계로 해석하고 협상하며 네트워크를 건설하는 과정, 즉 번역translation 과정을 좇으며 네트워크를 기술describe해내고자 한다. 자세한 내용은 다음을 참고하라. 브루노 라투르 외, 《인간·사물·동맹》, 홍성욱 엮음, 이음, 2010.
나는 논란을 일종의 실험실들이 힘을 겨루는 현장으로 이해한다. 팬, 대중, 사이버렉카* 등은 시각적 자료를 만들어내는 스마트폰, 노트북 등의 도구를 활용하고, 동영상 편집 프로그램이나 메모장 등을 통해 이를 글이나 동영상으로 제작한다. 이것이 특정한 주장과 함께 소셜미디어와 같은 온라인 공간에 게시되면, 주장들은 ‘사실’의 지위를 두고 경쟁한다. 이는 프랑스의 과학인류학자 브뤼노 라투르Bruno Latour가 관찰한 과학 실험실의 모습을 연상케한다. 그런 의미에서 논란의 네트워크는 서로 반박하거나 힘을 실어주는 실험실들로 가득하다.8 라투르는 ‘주장’들이 ‘사실’로 인정받는 과정을 분석함으로써 사실이 ‘제조fabricate’된다고 지적하며, 허구와 사실 사이, 합리와 비합리 사이에 절대적인 질적 차이는 없다고 말한다.9 이는 폭로나 사건 보도가 논란이 되고, 그 안에서 특정한 주장이 사실이 되어 논란이 일단락되는 과정 전반, 즉 논란의 네트워크의 역동을 살펴보는 데 적절한 틀이 된다.
* 렉카들이 사고 차량을 선점하기 위해 교통사고가 난 현장으로 빠르게 달려가는 모습에 착안한 용어로, 주로 논란이 생긴 사안을 다루는 영상을 빠르게 제작해 논란을 증폭하는 유튜브 채널들을 지칭한다. 본문에서 설명하겠지만, 이들은 실제 렉카와 달리 단지 사고 현장에 달려간다기보다 사고를 직접 일으키거나 논란으로 만들어내곤 한다.
케이팝 아이돌 논란은 사이버렉카, 언론, 대중, 팬덤뿐 아니라 사이버렉카가 만든 영상들, 댓글들, 소셜미디어 플랫폼과 그 구조, 그리고 알고리즘과 ‘짤’ 등이 결합해 발생하는 효과다. 따라서 ‘아이돌 논란’이라는 효과를 발생시키는 네트워크는 ‘온라인 공론장’이라는 효과 또한 발생시킨다. 나는 그 네트워크를 스케치하고, 특히 팬들과 그들의 감정에 집중했다. 그 네트워크 안에서 생성되는 윤리적 분투를 보기 위함이었다.
누구를 만나 어떤 이야기를 나누었나
대부분의 논란에 대해 ‘언급 금지’가 원칙인 돌판에서 논란을 주제로 인터뷰를 진행하기 위해 이미 신뢰가 있는 관계에서 출발했고, 인터뷰이들을 통해 또 다른 이들을 소개받아 범위를 넓혀나갔다. 인터뷰이들은 출신 지역이 다양하지만 대부분 수도권에 거주하고 있고, 모두 대학 입학과 졸업 중 적어도 하나를 경험한 1990년대 생들이다. 이들은 대부분 성차별에 대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으며, 학창 시절에 덕질을 시작했거나, ‘아이돌 전성시대’가 시작되던 시기에 청소년기를 보냈다. 아이돌에게서 학창 시절, 군대, 과거 수험생활의 추억이나 향수를 느끼고, 때로는 불안한 자신의 삶을 떠올리기도 했다.
주로 “친구 간의 대화와도 같은 비형식적이고 자유분방한 대화”10로 두 시간 내외의 인터뷰를 진행했다. 기본적으로 처음 덕질을 시작한 시점과 계기를 묻고, 논란 전후로 팬심이나 덕질에 변화가 있었는지, 논란 당시 어떻게 대응했는지 등을 질문해 논란이 팬으로서의 마음이나 실천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들여다보고자 했다. 몸에 힘을 빼고 인터뷰이들의 이야기에서 그때그때 만들어지는 맥락에 집중하려 했다. 이는 어느 정도 의도한 것이기도 했지만, ‘입덕’과 ‘논란’이라는 단어에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인터뷰이들 덕분에 가능한 일이기도 했다. 이 흐름 안에서도 주로 이들이 ‘감정적으로’ 논란을 경험한 방식에 주목하고자 했다.
이 책에서 논란은 지극히 모호한 범주로, 사실상 연예인의 이미지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는 것이라면 모두 포함하는 방식으로 사용된다. 현장의 언어를 반영하는 동시에 비판하고자 이 용어를 그대로 사용했다. 각기 다른 사례들을 하나의 단어로 묶는 것이 부적절하다는 비판이 마땅히 제기될 수 있겠지만, 그 사례들이 전부 논란으로 불리고, 또 비슷한 방식으로 처리되면서 더 깊은 고민과 문제의식으로 이어지지 못한다는 사실 자체가 의미하는 바가 있다고 생각한다.
어디에서 무엇을 관찰했나
2021년 5월부터 누구나 볼 수 있는 유튜브와 트위터, 인스타그램, 카카오톡 오픈채팅방 등의 소셜미디어 플랫폼이나 팬 플랫폼에서 게시물, 영상, 댓글, 대댓글, 채팅 등을 검토했다. 온라인에서 발견한 자료는 기본적으로 익명으로 처리했고, 가급적이면 특정 커뮤니티에 가입하지 않더라도 누구나 확인할 수 있는 자료만 직접 인용했다. 댓글이나 영상에 등장하는 아이돌 아티스트는 논란과의 연관성을 밝히고자 그대로 적되, 일부는 익명으로 처리했다. 온라인에서 찾은 자료를 인용할 때는 채널 및 계정의 규모나 콘텐츠의 수, 주로 올라오는 콘텐츠의 형태나 책에서 이를 다루는 방식 등을 고려해, 어떤 정보를 어디까지 공개할지 각기 판단을 달리했다. 이때 구독자 수, 채널 가입일, 영상 게시 날짜, 영상의 조회수 등을 기재한 이유는 처형대가 얼마나 빠르게 사람들의 관심을 잡아채는지 보기 위해서였다.
논란을 둘러싸고 만들어지는 조각보patchwork로서의 공론장들 안에서 사이버렉카라는 행위자의 역할은 의미심장하다. 따라서 그 지점을 상세히 볼 필요가 있었고, 그들의 영상을 중심으로 대중과 팬들 사이의 충돌이 두드러지는 유튜브 채널들과 영상들을 주로 관찰했다. 그중 적잖은 영상이 유튜브나 인스타그램 알고리즘이 추천해준 것들이다. 알고리즘이 아이돌 논란을 확산시키고 있는 현실을 감지할 수 있는 대목이다.
참여관찰과 인터뷰에서 발견한 내용과 잘 부합하면서, 동시에 그것을 효과적으로 보여준다고 생각되는 문장들을 발견하면 문학작품들도 적극적으로 인용했다. 가능한 한 정확하게 쓰려고 노력했지만, 여전히 부족한 지점들은 함께 고민해보자고 제안하고 싶다.
불순한 공론장, 매혹의 공론장
무엇보다도 나는 이 책을 통해 공론장과 공론장에 임하는 태도를 함께 고민하고 싶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서 공론장이란 사건 하나하나에 따라 플랫폼들 사이를 움직이는 사람들, 그들을 움직이게 하는 플랫폼의 구조와 알고리즘 등의 조합을 통해 구성되는 하나의 조각보이다. 그리고 그 공론장은 대체로 소셜미디어와 관심경제의 자장 안에서 만들어진다. 책의 1부에서는 사이버렉카들이 활동하는 유튜브와 그 팔로워들, 이들의 목소리를 증폭시키는 언론 등을 살펴봄으로써 우리에게 망설일 틈을 주지 않고, 어디로 어떤 관심을 보내야 할지 사방에서 명령을 주고받는 빠른 폭력의 네트워크를 탐구한다. 2부에서는 팬들이 논란을 겪어내는 방식으로 논의의 층위를 이동해, 네트워크 안에서 요동치는 감정과 윤리적 분투에 집중한다.
“비합리성이란 언제나, 방해가 되는 누군가에 대하여 네트워크를 만들고 있는 사람이 가하는 기소다”11라는 문장은 논란의 네트워크 안에서 대중과 팬들 사이에 벌어지는 재판을 포착한다. 그런데 이 재판이 벌어지는 ‘이성의 법정’의 기저에는 강렬한 감정이 요동치고 있다. 사실 공론장의 원리는 재미, 사랑, 죄책감이 뒤섞인, 관계와 대화를 형성하고 지속해내는 불순한 원동력이다. 이를 직시할 때, 우리는 비로소 ‘공론장의 위기’에 대한 닳고 닳은 이야기 너머로 나아갈 수 있다.
미국의 미디어학자 헨리 젠킨스Henry Jenkins는 팬덤이 “매혹fascination과 좌절frustration 사이의 균형”에서 탄생한다고 말한다. 매혹되었기에 덕질을 하지만, 거기에 온전히 만족하진 못하기에 무언가를 새로이 쓰게 된다고.12 여기에 나는 덧붙이고 싶다. 팬들뿐 아니라 우리 모두는 항상 무언가에 매혹되어 있으며, 그 사실을 인정할 때 비로소 좌절이 좌절로 끝나지 않고, 2차 창작을 넘어 윤리적 분투로 이어질 수 있다고.
이 과정에서 나는 생각하게 되었다. 아이돌 산업의 모든 문제가 해결되어 돌판이 ‘클린’해진다 하더라도, 그 산업에 자신의 삶과 열정을 쏟아부은 아이돌 아티스트들, 자신도 어찌할 수 없고 이해하기 힘든 사랑에 휘말려 가치관과 사랑의 충돌이 만들어내는 회색지대에 자리 잡은 팬들에게 대중이 책임을 묻는 와중에, 대중의 책임은 쏙 빠진 채 과거에 대한 수치심이 아티스트와 팬의 몫으로만 남겨져서는 안 된다고. 돌판 안에서 그 누구보다 치열하게 고민하고, 다치고, 아프고, 뛰고, 춤추고, 이기고, 지고, 좌절하고, 사랑한 사람들만이 수치심을 안고 살아가는 것이 정의로운 일은 아닐 거라고.
돌판은 사랑과 증오, 열정과 탈진, 그리고 자부심과 수치심이 뒤엉킨 공간이었다. 그 복잡한 마음들을 보고 싶었다. 조금 더 가까이서, 그 마음들로 세상을 들여다보고 싶었다. 때로는 너무도 고통스럽고, 악의가 가득한 추악한 세상에서, 찬란한 사람들에게 매혹된 이들의 망설임에 깃든 찬란함을 보고 싶었다. 그 찬란함을 지우지 않는 일, 그것을 어떻게든 함께 끌어안고 논쟁을 이어나가는 일이 산업의 문제를 은폐하는 것이 아니라 산업 안에서 치열하게 고민하고 싸우고 사랑하는 당신과 함께하는 일이라고, 나는 믿는다.
논란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서
홍대 그 사건이 터지고 나서 2018~2019년 전까지는 그게 불문율이었어. 말 안 하는 게.
2022년 여름의 유독 더웠던 어느 금요일 오후, 나와 ‘홍대’는 신촌의 한 식당에서 만나 점심을 먹고, 계단이 많은 카페로 이동했다. 차 종류가 많은 카페였다. 테라스를 막아서 만든 듯한 2층 구석 자리에 앉은 뒤, 커피와 차 한 잔씩을 마시며 녹음과 함께 대화를 시작했다. 손님이 늘어나 카페가 시끄러워졌지만, 그는 오히려 목소리를 낮추고 고개를 약간 떨궜다. 특히 ‘온유’*라는 단어가 대화에 등장해야 할 순간마다 그의 목소리는 더욱 작아졌다.
* 본명 이진기. 보이그룹 샤이니의 멤버. 1989년 12월 14일 출생. 2008년 데뷔해 현재까지 활동 중이다. 2017년 8월 12일, 한 여성이 그를 성추행 혐의로 고소했고, 소속사는 빠르게 ‘의도치 않은 신체 접촉’이 발생했음을 인정했다. 이후 피해 여성은 고소를 취하했고, 온유/이진기는 자숙의 시간을 가졌다. 그는 사건 발생 8개월 뒤 무혐의 처분을 받았고, 이후 논란은 일단락되었다.
돌판에서 ‘언급 금지’ 규칙은 익숙하다. 다른 팬덤과의 마찰을 피하기 위한 ‘타돌* 언급 금지’ 규칙부터 제각기 다른 이유들로 특정 아티스트의 예명을 변형하거나 초성만 사용하는 ‘써방’**까지. 논란 또한 마찬가지다. 팬들은 자기 본진의 논란에 대해 이야기가 나오는 것 자체를 꺼린다. 논란에 대한 이야기 자체가 고통을 되살리거나 논란을 재점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돌판의 덕질은 논란을 잊을 의무를 포함한다. 보통 덕질은 행복하려고 하는 것이고, 행복의 의무란 “좋은 것을 말할 긍정적 의무인 동시에 좋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을 의무”이기 때문이다.1
* ‘타他+아이돌’의 준말(‘他dol’). 특정 아이돌 그룹의 팬 커뮤니티를 기준으로 해당 그룹이 아닌 아이돌 그룹을 지칭한다.
** ‘써치search 방지’의 준말. 해당 아이돌 아티스트를 검색했을 때 검색에 걸리지 않도록 이름을 변형하는 것을 의미한다.
때로는 팬덤 자체가 논란을 두고 편이 갈리거나, 서로 다른 입장 사이에서 패권 다툼이 발생하기도 한다.2 이처럼 논란은 다양한 이유들로 돌판에서 제대로 논의되지 못한다. 홍대의 작아지는 목소리와 떨구는 고개는 팬덤 내부의 분열과 팬덤 바깥의 시선, 무엇보다도 자기 안의 수많은 충돌 안에서 형성된 망설임이었다. 다른 인터뷰이들에게서도 비슷한 망설임이 느껴졌다. 이 책은 바로 이런 망설임에 대한 것이다.
하늘 선택하는 게 아니더라. 나는 그전까지는 선택하는 덕질이었어. 접을 때는 내 선택으로 접고. 이렇게 해왔는데, 이상하게 레드벨벳 덕질은 그렇지 않더라고. …… 무엇보다 우리 둘 다 알고 있잖아, 우리가 원래 이런 사람이 아니라는 걸……. 나는 내 동생이 초등학생 때부터 소녀시대 좋아하고 샤이니 좋아했고 걔는 삶의 모든 때에 모든 아이돌을 덕질하는 애야. 지금도 여전히 그러고. 그걸 옆에서 보면서 난 절대 아이돌 덕질 안 하겠다 생각했는데, 그랬다…….
* * *
만옥 더 이상 발을 들이면 모든 게 엉망이 될 게 뻔했다. 그러나 그걸 알면서도 나는 너를 보러 갔다. 도대체 왜 이러는지 스스로를 이해하지 못하면서. (107)
어떤 인터뷰이는 ‘성공할 것 같은 그룹’을 골라서 덕질한다고 말하기도 했는데, 이는 아이돌 그룹을 ‘주식’에 비유하며 ‘망돌’(망한 아이돌)이 아닌 성공할 그룹을 골라 덕질하는 문화와 연결된다.3 또 많은 팬들은 덕질이 ‘하는’ 것이 아니라 ‘당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물론 덕질은 온전히 수동적이지도, 온전히 능동적이지도 않다. 덕질은 경제적 조건과 가족관계, 또래 집단의 영향 등이 얽혀 이뤄지는 선택 하나하나의 합이기 때문이다.
“언니가 먼저 꼬셨잖아요” 같은 말도 자신의 사랑을 과장해 표현하는 ‘주접 떨기’의 일환일 수 있겠지만, ‘덕질은 선택이 아니다’라는 레퍼토리는 온라인 현장뿐 아니라 인터뷰에서도 반복적으로 등장했다. 누군가는 모두가 당연히 좋아하는 분위기라서 좋아했고, 또 누군가는 그냥 갑자기 꽂히기도 했고, 심지어 아이돌을 싫어하다가도 난데없이 덕질을 시작하게 된 경우도 있었다. 주로 웹툰과 배우 등을 덕질하던 하늘은 자신의 동생이 아이돌 덕질을 너무 열심히 하는 걸 보면서 자신은 그러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거리에서 나오는 음악을 듣고 뮤직비디오를 찾아 보다가 레드벨벳에 입덕했다.
“우리가 원래 이런 사람이 아니”라는 하늘의 말은 본디 케이팝과는 거리가 먼 나와 그의 문화적 취향을 시사한다. 어머니에게서 물려받은 내 음악 취향은 실제로 1960~1970년대 록 음악에 오랫동안 머물러 있었고, 인디밴드의 음악을 듣더라도 대체로 록 음악이었다. 나는 ‘슬램slam’(록 페스티벌에서 다른 사람과 서로 몸을 부딪치며 흥을 돋우는 일)을 즐기는 록 음악 마니아였다. 그래서 “고급문화와의 위계적인 비교 속에서 대중문화와 팬덤을 폄하하는 시선으로” 보다가 대학원 재학 중 보이그룹 동방신기에 빠진 “당혹”스러운 경험에 대한 한 연구자의 고백4은 대학원 진학을 앞두고 난데없이 케이팝 덕질을 시작하게 된 내게 깊이 와닿았다.
갑자기 찾아온 마음이 바꾸는 것
소바 걔네가 갔어. 난 가만히 있었는데.
* * *
만옥 누군가 너를 가진다는 생각만 해도 괴로웠고 네가 누군가를 쳐다보기만 해도 괴롭다면 네가 사라지는 게 옳았다. 내가 너를 포기하는 것은 선택지에 없었으므로 그게 최선의 답이었다. (109)
이처럼 팬심이라는 마음은 바라지 않아도, 선택하지 않아도 갑자기 찾아오는 어떤 사건 혹은 상황에 가깝다. 소바의 말처럼, 탈덕조차 자신의 선택에 따른 것이 아니라 아티스트들의 상황이 변한 결과에 가까웠다. 이런 맥락에서 이 책의 1부는 ‘돌판’이라는 현장에 초점을 맞추며, 2부에서는 돌판으로 매개된 팬심을 들여다본다. 아이돌의 팬이 아니더라도 돌판에 진입하는 것이 가능하지만, 돌판에 진입한다고 해서 팬심이 생기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내가 보고자 하는 것은 팬덤에서 벌어지는 일들보다는 팬덤, 온라인 커뮤니티, 소셜미디어, 대중, 알고리즘 등의 네트워크 안에서 솟아나지만, 온라인상에서 쉽게 드러나지 않는 팬들의 마음과 그것과 관련된 사회의 단면들, 그리고 그 안에서 발견되는 어떤 태도의 문제다.
그렇다면 ‘팬’은 누구인가? 팬덤 안에서는 수집한 굿즈*의 가짓수와 분량, 참여하는 행사의 가짓수와 같이 주로 소비에 따라 팬들의 위계가 나뉘며, ‘진정한 팬’과 그렇지 않은 팬의 구분이 생기기도 한다. 그러나 이 책에서는 그러한 기준 없이 스스로 자신을 팬이라고 생각하거나 어떤 아티스트에게 팬심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이들에게 주목했고, 무엇이 이들을 계속해서 팬이게끔 하는지를 보고자 했다. 이는 소비 행위 혹은 팬덤이라는 공동체에 대한 강한 소속감이 아닌 방식으로 팬 정체성을 이해하고자 하는 하나의 시도이다.
* ‘굿즈goods’의 사전적 정의는 말 그대로 ‘상품’이지만, 돌판에서 굿즈는 아이돌 아티스트와 관련된 상품 전반을 지칭한다.
나는 팬을 소위 ‘일반 대중’에 비해 유독 비합리적인 존재로 취급하거나, 이들을 둘러싼 사회의 영향을 소거하지 않고자 한다. 팬심이라는 상황에 내던져진 이들은 어떤 방식으로든 덕질을 할 수밖에 없게 되었고, 덕질은 각자가 처한 개인적·사회적 맥락에 따라 각기 다른 형태를 띠었다. 이를테면, 30대 기혼 여성 팬들과 중년 주부 팬들에 대한 연구들에 따르면, 팬들은 자신의 덕질이 ‘나잇값 못하는 짓’이자 ‘엄마’나 ‘아내’라는 역할에 소홀해지는 과정으로 여겨지는 상황에서 죄책감을 느끼지만, 여전히 팬심을 가지고 있다. 남편이 잠든 뒤 커뮤니티 활동을 하기도 하고, 자신의 덕질을 숨기기도 한다.5 혹은 작정하고 싸워 덕질을 ‘쟁취’하기도 한다. 덕질은 이들에게 나이와 성 역할에서 잠시나마 벗어날 수 있는 틈을 만들어주고, 이들의 팬 정체성은 이 틈에서 만들어진다. 이는 단지 여가 활동이 아니라 “자신에게 노력과 시간을 투자하는 활동”이다. 나아가 이들에게 덕질은 ‘엄마’나 ‘아내’ 역할이라는 사회규범을 위반하는 과정에서 느끼게 되는 일종의 ‘길티 플레저guilty pleasure’이기도 했다.6
한국으로 이주한 중국 한류 팬 중에는 덕질이 자신의 학업과 진로를 결정하는 데 큰 영향을 주었다고 이야기하는 이들이 결코 적지 않다. 한 중국 팬은 덕질을 하고 싶다는 열정 하나로 한국 어학연수를 택했고, 어학연수가 끝난 뒤에는 아예 ‘홈마’*가 되면서 직업적으로 팬 생활을 시작했다. 또 다른 중국 팬들은 한류 스타의 통역사가 되고 싶다는 꿈을 안고 대학에서 한국어를 전공한 뒤 한국 대학원에 진학하거나, 자기 최애의 소속사에 입사하고 싶어서 한국에 왔다. 앞서 살펴본 기혼 여성들의 덕질에서처럼, 여기서도 팬들의 덕질은 개인의 취미 활동을 넘어서는 의미를 지닌다. 중국 한류 팬덤에 대한 이 연구에서는 중국 중산층 가정 자녀들의 덕질이 학업과 진로라는 생애주기와 관련된 실천임을, 나아가 타국에서 새로운 관계들을 맺으며 입덕 이전과는 다른 존재가 되어가는 과정임을 보여준다.7
* ‘홈페이지 마스터homepage master’의 준말. 과거에 이들이 자신의 홈페이지를 운영하던 시기에 만들어진 이름으로, 팬사인회나 팬미팅, 콘서트뿐 아니라 공항이나 출퇴근길 등지로 아이돌 아티스트를 촬영하러 다니는 이들을 지칭한다. 현재는 대개 트위터에서 활동한다. 홈마들은 때로 생일 카페를 주최하기도 하고, 지하철이나 버스 등에 옥외 광고를 달기도 하고, 직접 찍은 사진으로 전시회를 열기도 한다. 자세한 내용은 다음을 참고하라. 〈아이돌 홈마의 생태계를 들여다보았다〉, 닷페이스, 2018. 12. 19(장지현, 〈3세대 아이돌 산업의 친밀성 구조: BTS 팬덤을 중심으로〉, 연세대학교 대학원 문화인류학과 석사학위논문, 2019, 17쪽 각주 6번에서 수정·재인용).
이와 같이 덕질이란 팬심이라는 상황에 내던져진 이들이 자신에게 찾아온 당혹스러운 행복을 다루기 위해 선택할 수밖에 없는 실천이었고, 자신의 삶 자체를 새롭게 조율하는 과정이기도 했다. 덕질이 단순한 취미나 여가 활동을 넘어 생애 전체에 영향을 주는 상황에서 죄책감을 다루는 윤리적인 고민을 팬심이자 덕질의 한 구성 요소로 만드는 논란은 그 자체로 팬들에게 거대한 사건이 된다. 자신이 사랑하는 아티스트가 자신이 알던 것과 전혀 다른 모습을 드러낼 때, 특히 폭력적인 언행에 대한 의혹이 제기될 때, 논란은 삶을 재구성했던 덕질의 근간이 되는 팬심 자체를 뒤흔들게 된다.
여기서 논란이라는 명칭에 대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이 책에서는 갑질, 학교폭력, 성추행, 소아성애 옹호 등 내용상 하나로 묶이기 어려운 논란들을 함께 다룬다. 그것이 과연 가능할까? 나는 이런 논란들 사이의 공통점을 사건의 내용에서 찾는 대신, 논란을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와 논란을 증폭시키는 네트워크에서 찾고자 한다.
이를테면 이런 것이다. 인터뷰이 중 ‘아메’는 2021년 음악 채널 엠넷Mnet에서 방송된 〈스트릿댄스 걸스 파이터〉의 경연 과정에서 발생한 논란, 힙합 댄스 크루 웨이비WAYB의 리더인 댄서 노제/노지혜의 광고 및 협찬 관련 논란, 아이린/배주현*의 ‘갑질 논란’을 연달아 언급했다. (사실 해당 인터뷰는 주로 수진/서수진의 ‘학교폭력 논란’**에 대해 이야기하는 인터뷰였다.)
* 걸그룹 레드벨벳의 멤버. 1991년 3월 29일 출생. 2014년 데뷔해 현재까지 활동 중이다. 2020년 10월 20일, 아이돌 산업에 종사하는 스타일리스트가 인스타그램을 통해 자신이 아이린/배주현에게 갑질을 당했다고 폭로했고, 이후 소속사와 본인의 인정 및 사과, 그리고 자숙이 이어졌다. 이외에도 아이린/배주현은 소설 《82년생 김지영》을 읽었다고 비난받거나 각종 예능 프로그램에서 ‘태도 논란’의 중심에 놓였는데, 그중 대부분이 ‘여성’ 아이돌이기 때문에 겪어야 했던 논란들이었다고 할 수 있다.
** 걸그룹 (여자)아이들 멤버였지만, 논란 이후 그룹 탈퇴 및 전속계약 해지 절차를 밟아, 현재는 소속사가 없으며 활동하지 않는 상태다. 1998년 3월 9일 출생. 2018년 데뷔, 2021년 탈퇴. 2021년 2월 19일을 시작으로 네이트판을 통해 피해자 언니 및 동창생의 폭로, 그리고 한 배우의 인스타그램을 통해 학교폭력 의혹이 제기되었고, 이에 대한 다른 동창생들의 반박과 수진/서수진, 소속사의 대응이 이어졌다. 이후 수진/서수진의 그룹 탈퇴와 이후 전속계약 해지로 일단락되었다가, 최초 폭로 내용의 진위 여부를 밝힐 수 없다는 경찰의 판단과 수진/서수진의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 결과가 무죄로 나왔다는 내용을 수진/서수진 측 법무대리인이 2022년 9월 공개한 이후 논쟁이 재점화되기도 했지만, 수진/서수진의 연예 활동이 재개되지는 않았다.
〈스트릿댄스 걸스 파이터〉의 경연 중에는 두 댄스 크루가 맞붙을 때 일정 부분 서로의 안무를 대신 짜주는 미션이 있었다. 이 경우 경연 규칙상 상대가 추기 어려운 스타일의 안무나 수준이 높지 않은 안무를 줌으로써 상대 크루의 점수를 깎을 수 있게 된다. 해당 미션을 수행하는 와중에 한 크루가 만든 안무가 너무 이상하다며 논란이 되었고, 논란이 된 크루의 멤버들은 인성과 실력에 대한 비난에 시달려야 했다. 미성년자 여성인 크루 멤버들을 대상으로 한 성희롱도 적잖이 발생했다. 노제/노지혜는 광고를 해주기로 하고 나서 제때 광고를 올리지 않았다거나, 유명세에 따라 브랜드를 차별했다는 비판을 받으며 인성 논란에 휩싸였다.
경연 과정, 광고 및 협찬, 갑질, 학교폭력은 어떻게 연달아 언급될 수 있었을까? 아메는 각 논란의 결이 다르다고 말하면서도, 이 모든 논란에서 개별 사건의 특수성을 이야기하기보다 논란을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에 집중했다. 연예계에서 발생하는 논란은 종류를 막론하고 그 논란의 당사자들을 거의 매장하는 방식으로, 사건 자체에 집중하기보다 당사자들의 인성과 노력을 깎아내리거나 성희롱을 일삼는 방식으로, 즉 “그 사람의 존재를 깎아내리기 위한 비난”으로 나아간다는 것이다. 그는 여기서 대중이 논란이 된 행동 자체에 집중하기보다 당사자를 비난하는 프레임에 집착하는 과정에서 정작 개별 사건의 진실은 관심의 영역에서 사라진다고 지적한다. 아이돌이 엮이는 순간 논란은 개별 사건의 특성과 무관하게 삽시간에 ‘인성’의 문제로, 즉 아이돌 아티스트 개개인의 문제로 치환된다. 무수히 많은 이질적인 사건들은 그렇게 논란이라는 단어로 묶일 수 있게 된다.
한 아이돌 아티스트의 앨범 콘셉트 논란에 대한 한 인터뷰이(일침)의 분투를 듣고, 다른 아이돌 아티스트의 성추행 논란을 바라보며 자신이 했던 고민을 떠올린 다른 인터뷰이(홍대)의 모습 또한 이러한 맥락과 상통한다. 상이한 두 사건은 이처럼 고민의 과정이라는 측면에서 같은 범주에 속하게 된다. 따라서 논란에서 주목해야 할 핵심은 개별 사건의 원인이나 전개와 같은 특징보다 그에 대응하는 팬과 대중의 태도, 그리고 그것을 생산·증폭·유통하는 네트워크다.
그렇다면 팬들은 논란에 어떻게 대응할까? 어떤 이들은 아티스트를 떠나고 덕질을 그만두기도 한다. 하지만 어떤 이들은 판단을 보류하거나 계속해서 수정하고 갱신함으로써 떠나지 않고 그 자리에 머무른다. 내가 관심을 두는 팬들도 바로 그런 이들이다. 논란이 발생하면 해당 아티스트는 으레 ‘클린’하지 못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런 아티스트의 팬이 된다는 일은 한편으로 ‘오염’을 공유하는 일이다. 도덕적·윤리적 오염에 더해, 팬들에게는 ‘무지성’이라는 꼬리표가 달라붙는다. 도덕적·윤리적 위계는 지적 위계와 결합한다. 논란은 종종 아티스트, 특히 여성 아티스트를 (그들이 무죄이든 유죄이든 간에) 빠르게 매장시키며, 이때 관심경제 바깥으로 밀려난 ‘철 지난’ 이들을 계속 좋아하는 일은 유행에 뒤처지는 일이 된다. 논란은 유행이지만, 논란에 휩싸인 아티스트의 팬이 되는 것은 유행에 뒤처지는 일이다.
이처럼 논란은 현존하는 감정이나 감각을 뒤처진 무엇으로 만들면서 논란을 겪은 이들을 과거에 가둔다. 동시에 논란은 바로 그렇게 함으로써 과거를 논란을 중심으로 다시 쓴다. 나아가 이는 도덕성과 윤리, 나아가 ‘지성’ 혹은 ‘지능’과도 결부되면서 논란 속 아티스트를 떠나지 못하는 팬들에게 강력한 낙인 혹은 멸시를 부여한다. 팬덤 안에서도 논란을 둘러싸고 소수파와 다수파가 나뉜다. 논란이 도덕이나 아티스트 개인의 인성과 결부된 경우, 아티스트에 대한 적극적 비난 혹은 비판은 팬덤 내부에서도 재생산된다. 거기 동조하지 않는 팬들은 팬덤에서 소외된다.
홍대 좀 찾아보고 이러다 보니까 팬들이 모이는 공간들이 있더라고. 블로그도 엄청 많고, 그때 당시에 ‘샤기지’라는 팬페이지가 있었어. ‘샤이니 기지’인 거지. 그런 곳에 가니까 떡밥들이 엄청 많아. 나는 뮤직비디오만 좋아했는데, 사람들이 이걸로 캡처도 만들고, 이 아이돌이 공연한 걸 사진을 찍어서 보여주고. 그때가 샤이니 팬들이 고화질 직찍, 그거의 거의 시초, 시작이었거든. 그렇게 좀 맞물린 거지. 막 넘쳐나는 이 떡밥들 속에서 더 좋아지게 된, 그러니까 좋아하기 더 편해진 상황이 된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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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사람들과 덕질을 공유하는 게 덕질을 지속하는 데 좀 큰 원동력 중 하나인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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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자 저는 그렇다고 생각해요. 저는 완전 그런 편이거든요. 누구랑 얘기하고 떠들고 그래야 좀 더 좋아하는 마음이 생기고, 좋아한다고 혼자 생각하는 거랑 입 밖으로 빼는 건 다르잖아요. 근데 그거를 같이 좋아하는 사람이랑 얘기한다? 기절하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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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비 같이 얘기할 사람이 생기면, 더 막 내뱉으면 마음이 깊어지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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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 우리는 만나서 서로에 대해 묻지도 않고 매번 사랑하는 것에 대한 얘기만 나눴죠. 그런데 그 순간을 돌이켜봤을 때 기억에 남는 건, 내가 얼마나 그들을 사랑했느냐 하는 것보다는 기다림의 순간에 있었던 일들이에요. 요컨대 우리가 대화하던 도중 빛나던 만옥씨의 눈빛이나, 내가 만옥씨에게 느낀 감정 같은 것들. 그때는 그런 게 내겐 큰 의미가 없고, 오히려 시간을 견디기 위한 방책에 불과했는데. 이상하죠. 지나고 나니 오히려 그게 가장 중요했다는 생각이 든다는 게. (175~176)
팬덤이란 기본적으로 함께 덕질을 하는 이들의 모임일 것이다. 인터뷰이들은 아이돌 덕질 외에도 다양한 덕질 경험을 가지고 있었다. 하늘은 웹툰 덕질, 홍대는 아이돌 덕질, 히비는 영화 덕질, 피자는 종류를 특별히 지정하지 않은 채 덕질 일반에 대해 이야기했다. 각기 다른 덕질을 이야기하고 있음에도, 이들에게서는 공통적으로 덕질하는 이들의 공동체에 대한 애정이 느껴졌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함께 좋아하는 이들이 자신의 사랑을 표현하는 것을 보고, 그들과 함께 ‘주접을 떨며’ 사랑을 확인하기도 하고, 다른 사람들이 만들어 올려주는 ‘떡밥’들을 보는 공동체 안에서의 경험들은 덕질의 재미를 구성했다.
페미니스트 학자 사라 아메드Sarah Ahmed는 《행복의 약속》에서 ‘행복’이라는 개념이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에서 어떤 방식으로 작동하는지 분석한다. 그는 팬클럽이나 동호회가 우리에게 존재하는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을 좋아하는 경향”을 잘 보여줌으로써 사회적 결속이 감각적임을 드러낸다고 말한다. 우리에게 행복을 주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