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人生的底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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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저력
전자책 발행일 2023년 08월 30일
지은이_판덩
옮긴이_유연지
펴낸이_김영선
편집주간_이교숙
책임교정_정아영
교정〮교열_나지원, 이라야
경영지원_최은정
디자인_바이텍스트
마케팅_신용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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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등록번호 제 2-2767호
전자책 가격 13,860원
전자북 ISBN 979-11-5874-884-5(05100)
발행형태 : EPUB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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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며
나의 가장 큰 저력은
바로 나 자신이다
춘추시대 사람들은 예禮를 중요하게 생각했다. 그래서 전쟁에서도 잔인하고 극단적인 수법을 쓰는 경우가 드물었다. 그 덕분에 공자는 ‘온화溫, 선량良, 공경恭, 검소儉, 겸양讓’이라는 다섯 가지 덕목으로 당시 사회에서 중요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그러다 진晉나라가 셋으로 나뉘게 되는 ‘삼가분진三家分晉’ 사건이 시발점이 되어 춘추시대는 전국시대로 넘어가게 된다. 한때 막강한 세력을 자랑했던 진나라는 한韓 씨, 조趙 씨, 위魏 씨 세 가문이 나누어 가지게 되었고, 그중 위나라가 가장 먼저 법가 사상가를 등용해 개혁을 실시했다.
그때부터 사람들은 난폭해지고, 무자비하게 살육하고, 인내심이 없어졌다. ‘군주가 어질면 민심이 저절로 따라온다’고 주장하는 유가의 ‘인정仁政 사상’은 당시 사람들이 느끼기에 너무 느리고, 너무 이상주의적이었으며, 또 너무 안일한 생각이었다. 위나라와 진秦나라는 이미 전쟁을 시작했는데, 이 와중에 토지제도와 세수 제도 정비를 논하고 있으니 시대착오적인 발상으로 보일 수밖에 없었다.
이 험한 시대의 한복판에 맹자가 있었다. 한마디로 맹자는 최악의 업무 환경에서 일했던 셈이다. 맹자가 당시 사람들에게 설파한 주장들은 마치 첨단 기술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이럴수록 천천히, 느리게 행동하라고 권유하는 것과 비슷했다. 시대를 역행하는 가르침이지만 맹자는 두려워하기는커녕 당당하고 자신만만했다. 그에게는 우리가 상상할 수조차 없는 ‘저력’이 있었다.
『맹자孟子』 첫 장에서 맹자가 만난 사람은 전쟁광이었던 위나라 혜왕惠王이다. 당시 위나라의 수도가 대량大梁에 있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를 양혜왕梁惠王이라고 불렀다. 혜왕의 성격 역시 거침이 없었다. 맹자를 보자마자 당연하다는 듯이 이렇게 질문한다.
“선생께서 천 리를 멀다 않고 와주신 것을 보면 장차 우리나라에 이로움이 될만한 방안을 가지고 오신 것이겠지요?”
당시 혜왕은 법가와 종횡가縱橫家(전국시대 때 진秦에 대항하기 위해 연합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책략가들_역주)들의 사상과 전략을 익히고 활용하는 데 능숙한 왕이었다. 따라서 그는 맹자가 분명 다양한 전략과 전쟁에 관한 조언을 해줄 것이라 생각했다. 혜왕이 맹자에게 한 질문을 현대 사람들이 이해하기 쉽게 비유하자면, 어떤 한 대기업의 간부가 컨설팅 업체 관계자를 만나자마자 제일 먼저 “회사 이익률을 높일 수 있는 방안을 분명히 갖고 계실 것이라 믿습니다. 시장 점유율을 더 많이 확보할 방법도 알고 계실 것 같습니다.”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혜왕의 당돌한 물음에 맹자는 이렇게 대답했다. “왕께서는 어찌 이익을 말씀하십니까?” 이를 쉽게 설명하자면 “매번 수익에 대해서만 물어보시는 것은 너무 수준 낮은 질문이 아닙니까? 저는 당신과 기업의 가치관에 대해 논의하러 온 것입니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이런 맹자의 당당한 모습은 위나라 혜왕, 제齊나라 선왕宣王, 등滕나라 문공文公 등 크고 작은 나라의 군주들을 놀라게 만들었다. 물론 그렇다고 이들이 꼭 맹자의 조언대로 처신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들 모두 적어도 맹자의 조언에 대한 대가는 지불했다.
시야가 좁은 사람들은 맹자의 생각이 비현실적이라고 말한다. 맹자는 “천하는 결국 하나가 될 것이며, 그 ‘하나’를 이룰 사람은 살생하지 않는 군주입니다.”라고 말했지만, 결과적으로 가장 살육을 많이 했던 진나라가 천하를 통일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만일 맹자가 아직까지 존재했다면 우리에게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강국이었지만 잔인했던 진나라는 역사라는 거대한 물결 속의 작은 파동에 지나지 않소. 법가의 통치 사상이야말로 이상주의이기 때문이오. 진나라는 백성을 멍청하고 약한 존재, 노예로 여겼지만 유가에서는 백성을 사람으로 여겼소. 백성은 묵자墨子처럼 사사로운 욕심을 버리지는 못하지만, 양주(楊朱, 위나라의 사상가_역주)의 말처럼 이기적이지 않고, 더욱이 법가에서 말하는 것처럼 나약하지도 않소. 백성에게 필요한 것은 땅과 먹을 것, 그리고 입을 것이오. 또한 백성이 필요로 하는 것은 왕의 보호와 군자의 가르침이오.”
후대에 맹자를 이해한 사람들은 맹자의 말이 공자보다 더 분명하고, 구체적이고, 확고하다고 말한다. 결국 중국은 유가 사상과 법가 사상이 결합된 ‘유법국가儒法國家’로 발전하게 되었고, 어떤 측면에서 보면 나름 중용을 이룬 셈이다.
사람 본연의 인성을 믿는 맹자의 저력
그렇다면 이렇게 당차고도 맹랑한 맹자의 저력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첫 번째는 그가 가진 ‘일관성’이다. 공자의 철학에 공감한 맹자는 자신의 사명, 목표, 가치관을 깨달은 뒤 자신이 해야 할 일에 모든 것을 쏟았다. 그는 전국을 돌아다니며 자신의 견해를 설파했고, 묵가, 양주, 종횡가, 법가 사상가들과 논쟁을 펼치며 유가의 사회적 영향력을 넓혀나갔다. 그뿐만 아니라 맹자는 제자 양성에도 힘을 썼으며, 귀족 및 제후들과 벗이 되어 유가 사상을 천하에 뿌리내릴 기회를 모색했다.
또한 맹자는 우화, 고사 등 각종 사례를 들며 토론을 펼쳤으며, 유가 사상을 일상 곳곳에서 실천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하는 등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에 열정을 쏟았다. 그리하여 맹자는 자격을 따지고 서열을 중시하는 중국 전통 사회에서 안회顏回, 증삼曾參을 뛰어넘는 성인이 될 수 있었다. 맹자의 당당한 포부와 굳센 기개가 없었다면 유가는 아마도 춘추전국시대에 활약한 수많은 학파 중 지극히 평범한 사상에 지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맹자가 가진 저력의 또 다른 원천은 바로 사람의 본성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다. 이 세상에 좋은 사람이 많을까 아니면 나쁜 사람이 많을까? 사람의 본성은 본래부터 선할까 아니면 악할까? 이것은 명확하게 대답할 수 없는 문제다. 하지만 당신은 어느 쪽을 믿을 것인지 선택할 수는 있다.
순자荀子는 ‘인간의 본성은 본래 악하다. 그 본성이 선해지는 것은 인위적으로 노력한 결과다人性惡, 其善者偽也.’라는 쪽을 선택했다. 이 선택은 냉정하고 지혜롭기는 하나, 어떤 희망도 힘도 갖기 어렵다. 반대로 맹자는 ‘인간의 본성은 선하다人性善.’라는 쪽을 선택했다. 이 선택으로 어쩌면 살면서 겪은 갖가지 상황에 배신의 기분을 느낄 수도 있지만, 마음속에는 사랑이 가득 차게 된다. 만일 당신이 순자와 같은 선택을 한다면 누군가를 믿지도 못할 것이고, 속임이나 배신을 당할 일도 거의 없을 것이다. 하지만 당신의 내면의 힘은 계속 약해질 것이다. 본성이 악한 사람들을 위해 애써 노력할 생각조차 하기 싫기 때문이다.
반대로 당신이 맹자처럼 사람의 본성에 기대를 가득 품는다면 당신이 하는 모든 노력에 불현듯 가치가 생길 것이다. 설령 잘못을 범한 나쁜 사람이라 할지라도 당신의 눈에는 그 사람이 길 잃은 어린 양처럼 보일 것이다. 이처럼 ‘사람의 본성은 선하다’라는 전제는 인간의 내면에 사랑과 긍정적인 힘을 계속 만들어낸다.
마지막으로 맹자의 저력은 자기 자신에 대한 ‘책임감’에서 나온다. 비록 그는 매일 세상을 바꾸기 위해 돌아다녔지만, 그가 유일하게 바꿀 수 있었던 것은 자기 자신뿐이었다. 맹자는 이렇게 말했다.
“뜻하지 않게 칭찬을 받을 때도 있고, 완전하기를 바라다가 비방을 받을 때도 있다有不虞之譽, 有求全之毀.”
이처럼 맹자는 사회로부터 받는 평가에 대해서도 이미 깨달음을 얻은 상태였다. 그래서 맹자는 오직 자기 자신을 갈고닦고, 끊임없이 반성하며 변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맹자는 “스스로 생각했을 때 문제가 없는데 여전히 자신을 비방하고 비난하는 목소리가 있다면 그것은 짐승의 짖는 소리일 텐데, 구태여 짐승들과 옥신각신할 필요가 있는가?”라고 말했다. 아울러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이 도의에 맞는 것이라면 천만 명의 사람이 가로막아도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맹자』와 『논어論語』를 읽어보면 느낌이 완전히 다르다. 논어를 읽고 나면 ‘사람이 이렇게 말을 잘할 수 있구나!’ 하고 공자에 대한 감탄이 절로 나온다. 반면 맹자는 사람에게 파도처럼 거대한 힘을 준다. 그 힘은 적, 권력, 실패 그리고 실수를 두려워하지 않는 힘이다.
노력의 임계점을 넘어 호연지기를 배우다
요즘 직장 내에서 화두에 오르는 주제들을 보면 사람들의 고충이 무엇인지 짐작할 수 있다. 예를 들면 탕평족躺平族(현실에서 경제적 박탈감을 느껴 소극적으로 일하거나 자포자기하는 젊은이들을 가리키는 중국 신조어, 우리나라의 ‘3포 세대’와 비슷한 의미_역주)처럼 사느냐 아니면 치열하게 계속 소모적으로 사느냐, 이상을 좇을 것인가 아니면 현실과 타협할 것인가, 창업을 할 것인가 아니면 지금의 일을 계속 유지할 것인가 등이 그러하다.
사실 우리는 늘 얻으려고 안달하고 잃을까 봐 걱정한다. 그렇다고 맹자가 우리 대신 결정을 해줄 수도 없다. 하지만 『맹자』를 읽으면 우리는 호연지기를 기를 수 있고 자신의 인생을 한 단계 더 높은 경지로 이끌어 올릴 수 있다. 현재의 상태에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지 몰라도, 삶의 경지가 올라가고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한 차원 높아지면 이전에 문제라고 생각되었던 것들이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젊은 친구들은 이런 질문을 자주 한다.
“열심히 책을 읽는데도 제 인생은 왜 나아지지 않는 걸까요?”
이는 물 한 잔으로 장작더미에 붙은 불을 끄려는 생각과 다르지 않다. 물로 불을 끌 수 있다는 것쯤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하지만 물 한잔으로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장작의 불을 끄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의 노력이 임계점을 돌파하는 그 순간까지 기다려야 한다. 맹자가 이처럼 이치를 잘 설명하고 그의 책이 고전 중의 명작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대대손손을 거쳐 많은 이들이 그의 가르침으로부터 깨달음을 얻고 성장했기 때문이다.
이 책은 ‘판덩, 『맹자』에 대해 이야기하다攀登講<孟子>’라는 강의 내용을 기반으로 만들어졌다. 당시 나는 『맹자』에 나온 내용을 한 구절 한 글자씩 풀이했었는데, 그 내용이 너무 방대해서 사람들이 읽는 데 시간이 많이 소모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맹자』의 내용 중 우리 일상과 가장 밀접한 내용들을 골라 소개하게 되었다. 이 책을 통해 독자들이 맹자의 저력, 힘과 용기, 지혜를 얻어가기를 바란다.
나만의 고결함이 있다면
거칠 것이 없다
귀해지고 싶은 마음은 사람 누구나 다 똑같다.
欲貴者, 人之同心也.
사람은 누구나 각자 귀한 것을 가지고 있지만 그것을 잘 생각하지 못한다.
人人有貴於己者, 弗思耳也.
『맹자·고자 상孟子·告子上 편』
사람들은 남에게 인정받고 대접받고 싶어 하는 마음이 강하다. 그래서 명예와 이익, 높은 직급과 고액 연봉을 얻고자 애쓴다. 이러한 것들을 타인을 통해 얻거나 혹은 외부 환경에서 쟁취했을 때 우리는 타인에게 인정받고 대접받았다고 생각한다. 이처럼 외부 환경에서 얻어지는 명예, 직급, 재물 등을 맹자는 ‘인작人爵’이라 불렀다. 이와 상대적인 개념이 바로 ‘천작天爵’이다. 여기서 ‘작’이라는 한자는 ‘벼슬과 녹봉’을 의미한다.
‘인작’이란 물질적인 것, 외적인 것에 치중된 작위다. 인작은 타인으로부터 위임받거나 계승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다. 예를 들어 대학교수에게 심사를 받고 그 심사에서 통과하면 학교는 학생에게 학위를 수여한다. 여기서 학위는 ‘인작’에 속한다.
반면 ‘천작’이란 정신적인 것, 내적인 것으로부터 얻어지는 작위다. 천작은 누군가로부터 위임을 받거나 하사를 받을 필요가 없으며, 대대손손 물려줄 수도 없다. 가령 우리가 시인이 되고 싶다면 시를 잘 쓰면 되고, 선한 사람이 되고 싶다면 선한 행동을 많이 하면 된다. 이러한 것들은 우리가 언제 어디서든 나의 의지로 행할 수 있다. 그로 인해 얻게 되는 존경과 명예 역시 우리의 행동으로 생긴 자연스러운 결과이다.
물론 ‘인작’과 ‘천작’ 모두 얻고 난 뒤에는 타인으로부터 존경을 받게 된다. 하지만 본질적으로 이 둘은 아주 분명한 차이가 있다. 어느 것을 얻고자 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선택을 하게 되기 때문이다.
안영晏嬰(안자의 본명)은 제나라를 대표하는 사신으로 초楚나라를 방문했을 때 온갖 모욕과 모함을 당했다. 초나라 왕이 어떻게든 안영을 억누르려고 한 이유는 그런 방식으로라도 자신의 존재가 얼마나 대단한지를 보여주기 위함이었다. 아마도 보통의 사람이라면 이런 군왕과 마주했을 때 두려움을 느끼거나 혹은 유혹에 넘어가 상대의 말에 순종하고 따르는 선택을 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안영은 결코 굴복하지 않았다. 심지어 그는 초나라에서 모욕에 가까운 접대를 받고도 분노하거나 떠나지 않았다. 안영은 오히려 “모자란 임금에게는 모자란 사신을 보내는데 제가 가장 어리석고 모자란 사람이므로 초나라에 사신으로 온 것입니다嬰最不肖, 故宜使楚矣.”라는 재치있는 말로 상황을 역전시켰다.
표면상으로는 안영이 자신을 비하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나, 실제로는 이 말 한마디로 안영은 더 우위에 설 수 있었다. 안영은 자신의 확고한 소신 덕분에 결국 초나라 왕의 존경을 받게 된다. 안영의 이러한 처사는 자신의 존엄은 물론이고 자국의 존엄까지 지켜냈다.
안영은 제나라에서 왕의 두터운 신임을 받는 인물이었다. 그는 높은 관직을 맡고 있음에도 단 한 번도 권세를 과시하지 않았으며, 사치와 낭비를 일삼지 않았다. 또한 안영의 생활은 한결같이 검소해 당시 제나라 왕이었던 경공이 친히 하사하는 것조차 마다했다.
한번은 안영이 다른 나라에 사신으로 간 사이, 경공은 자기 임의대로 안영의 오래된 집을 개조하고 화려한 마차까지 가져다 놓았다. 경공은 안영의 지위에 걸맞은 재물을 하사하고자 그리한 것이다. 하지만 안영은 제나라로 돌아온 뒤 한사코 개조된 집에 들어가려 하지 않았다. 안영은 그 이유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제가 검소하게 사는 것은 백성들에게 본보기를 보여 사치 풍조가 만연해지는 것을 막기 위함입니다. 만약 임금과 신하가 모두 향락에 젖게 되면 백성들도 너 나 할 것 없이 이를 보고 배우고 따라 할 것입니다. 그리되면 결국 백성들의 품행이 나빠지게 될 테고, 나중에는 이를 바로잡고 싶어도 힘들어집니다.”
경공은 결국 어쩔 수 없이 안영의 집을 원래의 상태로 되돌려 놓았고, 안영은 그제야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
이와 관련해서 맹자 또한 자신의 생각을 피력한 적이 있다.
“귀해지고 싶은 마음은 사람 누구나 다 똑같다.
사람은 누구나 각자 귀한 것을 가지고 있지만, 그것을 잘 생각하지 못한다.”
이 구절의 의미를 좀 더 구체적으로 해석해 보자. 존경받고 귀한 대접을 받고 싶어 하는 마음은 누구에게나 존재한다. 그리고 누구나 존경받고 귀한 대접을 받을 만한 점을 갖고 있다. 다만 우리가 미처 그것을 생각하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아울러 타인에게 받는 인정, 존경, 동경 같은 것은 결코 진정한 고귀함이 아니다.
화신和珅(중국 청나라 정치가_역주)은 일평생 명예와 이익을 좇으며 어마어마한 부를 축적했으나, 최후에는 아주 비참한 말로를 맞이한 인물이다. 그는 젊었을 때부터 총명하고 민첩하여 건륭제의 신임과 총애를 한몸에 받았다. 또한, 후에는 그의 장자가 황실과 혼인 관계를 맺음으로써 황실의 인척이 되었다. 높은 벼슬과 막대한 부를 거머쥐며 승승장구하던 화신은 거기서 만족하지 못하고 여전히 권세와 이익을 좇았다. 이후로도 화신의 탐욕은 나날이 커졌다. 그는 자신의 권력을 이용해 온갖 부정한 방법으로 사리사욕을 챙겼다.
화신이 좇던 관직과 재물이 바로 앞서 말했던 ‘인작’이다. 관직은 그의 손에 권위를 쥐여주었고, 그의 재물은 사람들이 그를 떠받들게 만들어줬다. 후에 가경제嘉慶帝는 화신의 죄상을 낱낱이 밝힌 뒤 관직을 박탈하고 그를 하옥시켰다. 화신은 결국 자결형에 처해지고 모든 재산을 몰수당했다. 한동안 민간에서는 ‘화신이 무너지니 가경이 배부르다和珅跌倒,嘉慶吃飽’라는 민요가 유행처럼 돌았는데, 이는 화신이 생전에 착복한 재물이 막대했음을 시사한다.
오늘날까지도 화신의 사례는 여전히 현대인들이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사건이다.
잠재된 고귀함을 발굴하는 ‘자존’의 저력
외물外物, 즉 외부의 환경이나 사물이 우리에게 주는 명예와 영광은 너무나도 쉽게 사라진다. 『자존自尊』이라는 책에서는 “만약 내 안에서 자존감을 찾지 못하면 매번 타인이 부여해주는 것들로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려 할 것이다.”라고 말한다.
그런 것들로는 진정한 존경을 받을 수 없다. 그러니 맹자가 말했던 것처럼 자신의 몸과 마음을 수양하여 자신에 대한 자부심과 자아 존중감을 키우는 것이 진정으로 나 자신에게 더 득이 되는 선택이다. 나 자신을 존중하고 사랑할 수 있게 되면, 타인의 존중과 존경심은 저절로 얻게 될 것이다.
고민하라,
무엇을 ‘낙(樂)’으로 삼을 것인가?
군주가 백성의 즐거움을 기뻐하면 백성도 군주의 즐거움을 기뻐하고,
樂民之樂者, 民亦樂其樂,
군주가 백성의 근심을 걱정하면 백성도 군주의 근심을 걱정한다.
憂民之憂者, 民亦憂其憂.
『맹자·양혜왕 하孟子·梁惠王下 편』
춘추시대 때 제나라 왕 경공景公과 재상 안자晏子가 나눈 대화다.
경공이 민심을 살피러 순시를 가려고 하는데, 혹여 누군가 자신이 순시를 핑계로 여기저기 놀러 다닌다고 여길까 걱정했다. 그리하여 경공은 안자에게 “어찌해야 백성들이 나의 순시를 부담스러워하지 않고 그들을 위해 일하는 것이라 생각하겠소?”라고 물었다.
여기서 안자가 내놓은 대답은 꽤나 흥미롭다. 안자가 말했다.
“대왕께서 참으로 훌륭한 질문을 하셨습니다. 군왕이 제후가 관리하는 지방에 순시를 가는 것을 ‘순수巡狩’라고 말하고, 제후가 군왕을 알현하여 직무를 보고하는 것을 ‘술직述职’이라 부릅니다. 무엇이 되었건, 둘 다 ‘일’을 위해 움직이는 것입니다. 고대의 군왕들은 순시를 나갔다가 종자나 가축이 부족한 것을 발견하면 백성의 농업 생산에 지장이 생기지 않도록 곧바로 국고에서 부족한 것을 보급해 줬습니다. 또 가을에 흉작을 겪은 지역에는 백성들이 배를 곯지 않도록 부족한 식량을 배급해 줬습니다.
그렇다 보니 고대의 백성들은 군왕의 순시 행차가 오기만을 기다렸지요. 그러나 지금은 그렇지 않습니다. 군왕이 행차에 나서는 순간 도적 떼가 출몰한 것으로 착각할 만큼 많은 인력이 행차에 동원됩니다. 백성의 생사 따위는 전혀 안중에도 없고 그저 행렬이 얼마나 근사해 보일까에만 관심이 있으니 백성의 원성이 터져 나오는 것입니다. 군왕이 하늘의 뜻을 거스르고 유흥과 주색을 즐기면 제후들도 근심이 깊어질 것입니다.”
여기서 안자가 경공에게 전달하려는 요점은 이렇다. 진정 민심을 알아보고 싶다면 백성과 그 지역의 관료들에게 너무 많은 부담을 주면 안 된다는 뜻이다. 또 군왕은 자신의 본분을 다하며 군왕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해야지, 자신의 사욕을 채우고 향락을 즐기는 데 신경 쓰느라 백성의 생사를 뒷전으로 여기면 안 된다는 말이다.
후에 맹자는 제나라 선왕과의 대화에서 이 일화를 인용했는데, 그 대화를 ‘설궁에서 낙을 묻는다’라는 뜻의 ‘설궁문락雪宮問樂’이라 부른다. 여기서 ‘설궁’이란 아마도 궁전의 색이 하얀색이라 붙여진 이름이 아닐까 싶다. 설궁은 평소 왕이 휴식을 취하러 오는 별궁이다.
다시 맹자와 선왕의 대화로 돌아가 보자. 선왕이 맹자에게 물었다. “현자도 이러한 것이 즐겁다고 여기십니까?賢者亦有此樂乎” 이 말은 ‘그대와 같이 덕망이 높고 지혜로운 성인도 설궁에서 휴식을 즐기기를 좋아하는지’를 묻는 것이다.
이에 맹자가 답했다. “당연히 좋아하지요. 그러나 백성들이 이러한 즐거움을 얻지 못한다면 그들은 군주를 원망할 것입니다. 물론 이러한 즐거움을 얻지 못했다고 군주를 원망하는 것은 분명 잘못된 행동입니다. 하지만 군주가 자신의 즐거움만 생각하느라 백성과 즐거움을 함께 누리지 못한다면 이 또한 잘못입니다.”
누군가가 좋은 것을 누리지 못했다고 지도자를 원망하는 것은 당연히 잘못된 생각이나, 지도자로서 자신이 누릴 것만을 생각하고 백성은 안중에도 없다면 그 역시 잘못된 행동이라는 것이 맹자의 지론이다. 이처럼 맹자는 항상 여러 가지 시각으로 문제를 고민했다. 그는 지도자와 구성원 모두 자신의 행동에 적절히 제약을 두어야 마땅하다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군주는 어떻게 행동해야 마땅할까? 그 답은 이 구절에 있다.
“군주가 백성의 즐거움을 기뻐하면 백성도 군주의 즐거움을 기뻐하고, 군주가 백성의 근심을 걱정하면 백성도 군주의 근심을 걱정한다.”
이 말은 ‘군주가 백성의 즐거움을 자신의 즐거움이라 여기면 백성은 군주의 즐거움을 자신들의 즐거움으로 생각할 것이고, 군주가 백성의 근심을 자신의 근심으로 여기면 백성은 군주의 근심을 자신들의 근심으로 생각할 것’이란 뜻이다. 지도자가 구성원을 염두에 두고 진심으로 그들이 잘 되길 바란다면 구성원도 한마음이 되어 지도자가 잘 되길 바랄 것이며, 즐거움도 괴로움도 기꺼이 함께하고자 할 것이다.
이 일화와 함께 자연스럽게 언급되는 구절이 있다. 중국 송宋나라의 정치가 범중엄範仲淹이 남긴 명언으로, ‘천하의 근심을 남보다 먼저 걱정하고, 천하의 즐거움은 남보다 나중에 즐긴다先天下之憂而憂, 後天下之樂而樂’이다. 이 말처럼 머릿속이 온통 세상 사람들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 차 있어 그들의 근심과 즐거움이 삶의 목표인 사람, 그런 사람을 왕이라 부르지 않는다면 이 세상에 왕이라 부를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결국 맹자가 선왕에게 한 말과 안자가 경공에게 한 말은 궁극적으로 일맥상통한 메시지를 품고 있다. 그들은 군왕이 무엇을 ‘낙樂’으로 삼아야 할지 깨닫기를 바란 것이다. 여기서 군왕이 삼아야 할 ‘낙’이란 향락과 주색을 멀리하고 어떤 일이든 정확한 목표를 갖고 임하는 것을 뜻한다. 또한 ‘정확한 목표’란 군왕이 주력해야 하는 자신의 소임, 군왕의 책임과 의무를 의미한다. 즉, 군왕이 본분을 이행할 때 가져야 할 초심을 말하는 것이다.
나를 단단하게 붙잡아주는 힘, 초심
나는 예전에 『건륭제乾隆帝』라는 책을 소개한 적이 있다. 아마도 건륭 황제는 중국 역사상 놀러 다니는 것을 가장 좋아했던 군주가 아닐까 싶다. ‘건륭제의 강남 순행乾隆下江南’ 일화 역시 중국의 여러 드라마에서 재현될 만큼 아주 유명하다. 과거 누군가가 건륭제의 남순 횟수를 통계 낸 적이 있는데, 무려 일 년의 절반 이상을 강남 지역을 돌아다닌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건륭제의 강남 순행은 강남 지역의 관료와 백성들에게 과중한 부담을 주었다.
사실 많은 경우 우리가 하려는 어떤 일이 절대적으로 맞거나 틀렸다고 규정할 수 없다. 하지만 어떤 일을 하기에 앞서 반드시 알아야 할 것이 있다. 바로 나의 ‘초심’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나는 대체 이 일을 왜 하려는 것인지’, ‘나는 이 일을 맡을 준비가 충분히 되어 있는지’를 생각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다양한 유혹에 노출될 수 있고, 여러 가지 욕망에 휩싸일 수도 있다. 그때가 바로 우리의 초심이 아주 중요한 힘을 발휘하는 순간이다. 우리가 욕망을 절제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목표에서 빗나가지 않도록 붙잡아주는 힘은 오직 초심뿐이기 때문이다.
예전에 이런 일화를 본 적이 있다. 한 노교수가 학생들에게 물었다. “산에서 나무를 베려고 하는데, 거칠고 투박해 보이는 나무와 가늘고 연약해 보이는 나무가 있습니다. 여러분이라면 어떤 나무를 베겠습니까?” 그러자 학생들은 망설임 없이 거칠고 투박한 나무를 선택했다. 노교수는 한 마디 더 덧붙여 “그런데 거칠고 투박한 나무는 평범한 사시나무이고, 가늘고 연약한 나무는 홍목紅木입니다.”라고 말했다. 학생들은 잠시 고민하더니 이번에는 또 홍목을 선택했다. 노교수가 다시 “사시나무는 곧게 뻗어 자란 반면, 홍목은 구불구불하게 자랐다.”라고 말하니, 학생들은 금세 또 목표를 바꿨다. 마지막에는 결국 어떤 학생이 노교수에게 반문했다.
“그런데 저희가 나무를 베려는 목적이 무엇이죠?”
보다시피 이들은 처음에 자신이 나무를 베려고 한 목적부터가 불분명했기 때문에 현명한 선택을 할 수도, 확신을 두고 행동할 수도 없는 것이다. 우리는 살면서 다양한 선택을 해야 한다. 우리가 한 선택이 어떤 결과를 만들어낼지는 우리의 초심에 달려 있다.
‘판덩독서攀登讀書(전자책 애플리케이션_역주)’는 지금까지 성장해오면서 비교적 탄탄한 사업 구조를 구축했다. 라이브 방송을 시작하고부터는 매년 매출액도 상당하다. 혹자는 내게 “라이브 방송에 소개될 책들을 심사하는 제도를 만들어서 사람들의 적극성을 부추기면 매출이 늘어나지 않겠냐”라며 조언하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지금껏 ‘판매할 수 있는 만큼 판매하자’라는 생각이었기에 심사 제도를 만들지 않았다. 책의 품질만 좋다면 매출엔 그리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는 라이브 방송의 취지가 내가 처음 회사를 창립했을 때 세웠던 비전과 반드시 부합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의 바람은 ‘좋은 책을 더 많은 사람이 읽도록 만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라이브 방송을 할 때 우리는 늘 이러한 초심을 지키려고 노력했고, 그간의 여러 변수 속에서도 동요하지 않았다.
목표를 달성하는 ‘초심’의 저력
사람은 누구나 욕망을 갖고 있다. 모든 사람이 그렇다. 욕망은 삶 전체의 방향을 직접 결정하기도 한다. 하지만 삶의 방향을 잃지 않고 걸어가고자 한다면 반드시 자신의 초심을 기억해야 한다. 지금 무엇을 하고 있든, 욕망에 이리저리 휘둘리지 않고 자신이 노력해야 하는 방향을 정확히 찾아야 한다. 주변 환경에 끌려다니면서 계속 자신을 바꾸게 되면 결국 아무것도 얻지 못할 수도 있다.
행동을 변화시키는
‘내면의 힘’
순임금은 깊은 산 속에서 돌과 나무와 같이 지내고
노루와 멧돼지랑 함께 노닐다 보니,
舜之居深山之中, 與木石居, 與鹿豕遊,
그야말로 산속의 야인과도 같았다.
其所以異於深山之野人者幾希.
순임금은 선한 말을 듣고 선한 행동을 보면 마치 물길을 터놓아
세차게 흐르는 강물처럼 그 무엇도 그를 막을 수 없었다.
及其聞一善言, 見一善行, 若決江河, 沛然莫之能禦也.
『맹자·진심 상孟子·盡心上 편』
『1만 시간의 재발견PEAK』과 『아주 작은 습관의 힘Atomic Habits』, 이 두 책에서 공통으로 언급하는 실험이 하나 있다. 실험에서는 교사가 학생들을 두 개 조로 나누어 사진 촬영 방법을 가르쳐 주었다. 교사는 촬영 과제에 대한 평가 기준을 다음과 같이 일러주었다.
첫 번째 조 학생들에게는 한 학기 동안 사진을 많이 찍을수록 높은 성적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고, 두 번째 조 학생들에게는 사진을 많이 찍을 필요 없이 가장 잘 찍은 사진 한 장으로 점수를 주겠다고 말했다.
그 결과 첫 번째 조 학생들은 과제를 전달받자마자 곧장 행동에 나섰다. 그들은 평가에서 불합격을 받을까 봐 매일 많은 사진을 찍었다. 반면 두 번째 조 학생들은 매일 이론과 기술을 연구하느라 사진을 찍을 시간이 없어 촬영한 작품 수도 많지 않았다. 결국 그들은 제출 마감일을 바로 앞두고 촬영을 한 뒤 가장 잘 찍었다고 생각하는 사진 한 장을 골라 초조한 마음으로 제출했다.
교사는 두 개 조 학생들의 작품을 모두 모아 섞어놓은 뒤 평가를 진행했다. 그 결과 우수한 성적을 받은 작품의 대부분은 첫 번째 조 학생들의 것이었다. 왜 이런 결과가 나왔을까? 그 이유는 연습을 많이 해 볼수록 그만큼 실력도 빠르게 성장하기 때문이다.
이 일화에서 전달하려는 요점은 바로 ‘백 마디 말보다 한 번의 행동이 더 낫다’는 것이다. 온종일 앉아서 한 가지 일에 대해 토론하면 이론 지식이 풍부해지고 일에 대한 관점도 발전하겠지만, 직접 실천하고 경험하여 얻는 수확은 그보다 훨씬 크다.
누군가가 내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판樊 선생님. 책을 많이 읽고 지식을 많이 쌓아서 내면의 성장을 이뤄야 한다는 것은 저도 압니다. 그런데 막상 행동으로 옮기기는 쉽지 않아요. 책을 펼치고 몇 줄 읽고 나면 금세 책 읽기가 싫어지거든요. 그래서 너무 궁금합니다. 선생님은 어떻게 매년 그리 많은 책을 읽을 수 있는지요?”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당신은 책을 읽어야겠다는 생각, 더 나은 내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전혀 해 보지 않았으니까요. 내면에 책을 읽고자 하는 힘이 부족하니 애써 책을 펼친들 책 내용이 눈에 들어올 리 없겠죠.”
과거 맹자는 순舜임금에 관한 여러 일화를 이야기한 적이 있다. 순임금은 맹자의 우상과도 같은 존재였다.
맹자가 말하길, “순임금은 깊은 산속에서 돌과 나무와 같이 지내고 노루와 멧돼지랑 함께 노닐다 보니 그야말로 산속의 야인과도 같았다.”고 했다.
순임금은 한때 깊은 산속에서 살았는데 주변은 온통 풀, 나무, 돌 뿐이었다. 또 매일 노루, 멧돼지 등 산속 동물들과 함께 생활하다 보니 오지에서 생활하는 야인과 다를 바가 없었다. 그랬던 순임금이 훗날 어떻게 사람들에게 존경받는 성군으로 변할 수 있었을까?
그 답은 이 구절에 있다.
“순임금은 선한 말을 듣고 선한 행동을 보면, 마치 물길을 터놓아 세차게 흐르는 강물처럼 그 무엇도 그를 막을 수 없었다.”
다시 말해, 순임금은 선한 말을 듣거나 선한 행동을 보면 주저 없이 그것들을 배우고 행동했는데, 그 모습이 마치 제방이 터져 사람의 힘으로는 막을 수 없을 만큼 세차게 흐르는 강물과도 같았다.
순임금이 이처럼 행동할 수 있었던 것은 ‘내면의 힘’이 그를 움직이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런 힘은 나라의 흥망성쇠를 자신의 책임으로 생각하고, 만백성을 도탄에서 구해내고자 하는 마음도 먹게 한다. 마음속에 이러한 신념이 생긴 순임금은 열악한 생존 환경 속에서도 타인의 충고와 비판은 겸허히 수용하되 자신의 목표를 포기하거나 자신의 의지를 꺾지 않았다. 그렇게 고난과 어려움 속에서 자신을 단련한 순임금은 결국 모두가 존경하는 성군이 되었다.
인생의 성패를 구분 짓는 내 안의 힘
어떤 일을 하고자 하는 힘이 우리의 내면에 충만하게 차올랐을 때, 순임금이 그러했듯이 우리도 망설임 없이 행동으로 실천하게 될 것이다. 배움에 대한 내적 동기가 강할 때는 배움의 환경이 아무리 열악해도 자발적으로 행동하게 된다. 이때는 외부의 자극이나 타인의 강요를 통해 동기 부여를 할 필요가 없다.
내가 ‘판덩독서’를 창업했을 당시에도 이런 느낌을 받았었다. 나는 사람들이 매년 50권의 책을 같이 읽음으로써, 그 행동이 더 많은 사람에게 좋은 귀감이 되고, 나아가 더 많은 이들이 독서 행렬에 참여하기를 바랐다. 그때 나는 그토록 많은 사람이 열정적으로 호응해 주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결과적으로 많은 이들이 우리의 독서 행렬에 참여해 주었고, 나아가 자기 주변 사람들에게까지 참여를 독려했다. 그들은 내게 이렇게 말해주었다.
“저희가 원해서 하는 일인걸요. 설령 이 일이 돈이 되지 않는다 해도 더 많은 사람이 책을 읽도록 만들 수만 있다면 기꺼이 할 겁니다.”
누군가가 나를 채근하거나 등 떠밀지 않아도 내면에 어떤 일을 행하고자 하는 힘과 그 일에 대한 강렬한 기대가 있다면 그것은 우리의 행동을 이끄는 동력이 되어 줄 것이다.
우리는 자녀를 키울 때도 늘 좋은 학교에 입학하기 위해, 좋은 학군에 위치한 집을 사기 위해, 양질의 교육 환경을 얻기 위해 애를 쓴다. 그러나 같은 학교 출신이라도 아이들마다 가지고 있는 내면의 힘의 크기는 천차만별이다. 어떤 아이들은 꿈과 목표를 갖고 있어서 학습이 주도적으로 이뤄진다. 이들은 부모님의 잔소리 없이도 자신의 생각을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 ‘힘’을 갖고 있다.
반면 목표 의식과 기대하는 바가 없는 아이들의 경우, 부모가 아무리 매일같이 타일러도 스스로 행동하는 힘을 갖기가 어렵다. 설령 부모가 어떻게든 노력해서 자녀를 좋은 대학에 보냈다 해도, 자신의 인생에서 무언가를 이뤄냈다고 보기는 어렵다.
따라서 어떤 일을 시작하거나 어떤 목표를 이루고자 할 때 외적 조건만 모두 갖추면 그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해서는 절대 안 된다. 내면의 힘이야말로 우리의 행동을 끌어내는 원동력이기 때문이다. 아울러 거침없이 흐르는 강물과 같은 행동력을 끌어내는 내면의 힘이 있느냐가 곧 인생의 성패를 구분 짓는 제일 중요한 기준점이다.
행동을 이끄는 ‘내면’의 저력
지금 우리는 순임금이 살았던 시대보다 몇 배는 더 편리하고 윤택한 환경에서 살고 있다. 변하고자 마음만 먹는다면 순임금보다도 훨씬 더 쉽고 다양한 방법으로 목표한 바를 이룰 수 있다. 하지만 그 변화는 우리 자신의 마음속에서 행동하고자 하는 힘을 찾아낼 수 있느냐, 더 나아가 그 힘을 끄집어내어 실제로 행동하고, 더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일을 수행해 나갈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악취의 지름길이 아닌
강직한 꽃길을 걸어라
‘한 자를 굽혀 여덟 자를 곧게 편다’는 것은 ‘이득’만을 생각하여 한 말일 것이다.
且夫枉尺而直尋者, 以利言也.
이득만을 가지고 생각했을 때 여덟 자를 굽혀서 한 자를 펴는 것도 이익이 된다면 이 또한 하겠는가?
如以利, 則枉尋直尺而利, 亦可為與?
『맹자·등문공 하孟子·藤文公下 편』
나는 예전에 『당신의 인생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How will you measure your life?』라는 책으로 강의를 한 적이 있다. 이 책의 저자 클레이튼 크리스텐슨Clayton M. Christensen은 미국 하버드 경영 대학원의 교수이자 비즈니스 경영 관리 분야의 권위자다. 이 책은 크리스텐슨 교수가 하버드 경영 대학원 졸업생을 대상으로 진행했던 강연 내용을 담고 있다. 이후 크리스텐슨 교수의 강연은 하버드 경영 대학원을 졸업하기 전 들어봐야 하는 중요한 강연으로 유명해졌다. 하지만 강연 당시 그는 이미 암 투병 중이었다. 크리스텐슨 교수는 강연을 통해 학생들에게 “자신의 인생이 성공했는지 실패했는지 평가하려면 한 가지 아주 중요한 원칙을 지켰는지를 보면 된다.”라고 말했다. 그 중요한 원칙이란 바로 ‘어떤 범법 행위와 규율에도 어긋나는 행동을 하지 않는 것’이다. 아주 사소한 범죄 행위라 할지라도 그것으로 인해 우리가 쌓아온 모든 노력이 물거품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부모님과 선생님은 우리가 어릴 때부터 ‘세상을 살아갈 때 원칙과 규칙을 지키고, 법과 규율을 준수해야 한다. 그래야 타인에게 존중과 인정을 받을 수 있고, 초심을 지키며 나답게 살아갈 수 있다’라고 가르치셨다. 하지만 우리가 성인이 된 후 마주하는 현실은 이와 정반대인 경우가 많다. 많은 이들이 규율을 지키며 살기를 귀찮아한다. 그보다는 지름길로 가는 방법이나 각종 편법과 꼼수를 찾으려 한다.
물론 어떤 면에서는 이렇게 사는 것이 반드시 잘못됐다고만 할 수는 없다. 지름길을 선택하면 확실히 좀 더 수월하게 일을 처리할 수 있고, 혹은 더 많은 이익을 얻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매번 이익을 위해서 자신이 정한 최소한의 기준과 원칙을 버리거나 지켜야 할 규칙을 위반해서는 안 된다. 교통 규칙을 지키지 않는 차량이 한두 번은 운 좋게 무사할 수는 있어도 머지않아 결국엔 사고를 당하지 않겠는가.
맹자 역시 수차례 이와 같은 이치를 강조했다. 맹자가 제자인 진대陳代와 나눈 대화를 예로 들어보자. 진대가 물었다.
“스승님께서는 종일 집에만 머무시며 제후들을 먼저 찾아가지 않으시는데, 이는 사소한 것에 얽매여 대의를 생각하지 못하는 행동이 아닙니까? 스승님께서는 인의仁義로 세상을 다스리는 왕도王道를 펼치고 싶어 하십니다. 스승님께서 먼저 제후들을 찾아가 보시지요. 반기는 이들이 있다면 그들에게 왕도의 길을 가르쳐 주고, 달가워하지 않는다면 그들에게 패도霸道의 길을 알려 주면 되지 않습니까? 왕도를 이루지 못한다면 패도라도 선택해야지요. 무엇을 하든 이렇게 집에만 있는 것보다는 낫지 않겠습니까!”
진대는 『지志』에 나오는 내용 중 ‘한 자를 굽혀 여덟 자를 편다枉尺而直尋’라는 구절까지 예로 들며 맹자를 설득했다. 이 말은 ‘당장 한 자尺 물러서는 것이 조금은 비굴하게 느껴질 수 있으나, 오히려 그 덕분에 여덟 자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뜻이다. 요즘 식으로 풀어 말하자면 이렇다. “이 보 전진을 위해 일 보 후퇴하자는 말입니다. 이 또한 괜찮지 않습니까?”
맹자는 진대의 물음에 직접 답하지 않았다. 대신 한 가지 일화를 예로 들었다.
옛날에 제나라 경공이 사냥을 나서면서 사람을 불러 “사대부를 소환할 때 사용하는 깃발을 가지고 사냥터를 관리하는 우인虞人(숙달된 사냥꾼_역주)을 찾아가 그에게 활과 화살을 가져오도록 하라.” 고 명령했다. 그러나 우인은 오지 않았다. 경공이 규칙과 제도를 위반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우인은 경공이 잘못된 신호로 자신을 소환했기 때문에 그 명령은 무효하다고 본 것이다. 자신을 무시했다는 생각에 격분한 경공은 우인을 죽이려 했으나 우인은 끝까지 굴복하지 않았다.
공자孔子는 이 사건을 알게 된 후 그 우인을 칭찬하며 이렇게 말했다.
“절개를 지닌 선비는 도랑이나 골짜기에 버려질 수 있음을 잊지 않고, 용감한 군사는 자신의 머리가 베어질 수 있음을 잊지 않는다.
誌士不忘在溝壑, 勇士不忘喪其元.”
이 말은 ‘뜻을 품고 있는 사람은 설령 죽어서 관에 묻히지 못하고 도랑이나 골짜기에 버려진다 해도 원통해하지 않으며, 용감한 사람은 전장에서 싸우다 머리가 잘려나가 죽는다 해도 두려워하지 않는다’라는 뜻이다. 어떠한 상황이든 자신만의 포부와 절개를 굳게 지켜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다시 맹자의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맹자는 또 이렇게 말했다.
“한 자를 굽혀 여덟 자를 곧게 편다는 것은 ‘이득’만을 생각하고 한 말일 것이다.
이득만을 생각했을 때, 여덟 자를 굽혀서 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