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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Z세대 여러분은 어떤 여정을 준비하세요? 모두가 힘든 상황이지만 꿈에 광적으로 집중할 때, 여러분의 위기와 위험은 도약을 위한 자산이 될 것입니다. 이 책은 꿈을 향한 열정을 깨우고 용기를 줍니다. 책과 함께 여러분이 배우고, 발견하고, 자유로워지시길 바랍니다. 정회일 대표처럼요! - 정용진(신세계 부회장)
정회일 대표는 죽을 고비를 10번이나 극복했습니다. 더구나 그 힘든 순간에도 포기하지 않고 우리에게 희망과 꿈을 줄 수 있는 책을 쓰셨습니다. 그 모습이 정말 대단하고, 정회일 대표처럼 독자분들도 힘차게 도전하시길 바랍니다. - 강윤선(준오헤어 대표)
Be satisfied being unsatisfied!- 장동훈(메디컬오 대표)
상상하지 못하는 꿈을 말하는 청년의 때를 살아가길 응원합니다.
- 수퍼맨(목사)
정회일 원장님의 겸손하고 간결한 메시지가 긴 울림을 줍니다. 오랜 시간의 독서와 삶의 경험에서 오는 통찰이 곳곳에 스며든 글입니다. 독자 여러분께 희망과 에너지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 김성오(메가스터디 부회장)
정회일 대표님을 뵈었을 때, 정말 심각한 상태여서 마음이 아팠습니다. 건강이 회복된 것에 깊이 감사하고, 시작은 늦었지만 멋진 성공을 일구어낸 그의 도전을 응원합니다. - 김해영(전문의)
성공을 꿈꾸지 말고 꿈꾼 것을 성공시키세요.
- 오종철(안목고수, 파라스타 대표, 방송인)
저는 19세 때까지 말을 더듬거려서 남 앞에서 책을 읽어본 적이 없었어요. 세상에 대한 원망으로 살았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만방에 1만 개의 학교를 지으려 하고, 어려운 사람들이 꿈을 이룰 수 있도록 돕고 있어요. 당신도 할 수 있습니다! Impossible dreams come true.
- 임채종(드림스드림 대표)
프롤로그
고난을 극복하면 꽃으로 피어납니다
저는 죽을 고비를 10번 넘겼습니다. 시작은 아토피였어요. 흔히 아토피라고 하면, 피부가 심하게 가렵고 건조한 계절에는 누구나 조금씩 생기는 병 아니냐고 이야기합니다. 맞아요. 하지만 경증과 중증은 큰 차이가 있습니다. 중학생 때는 경증 아토피였지만 이것이 나아지지 않으면서 죽을 고비를 여러 번 넘겨야 하는 상황에 이르렀습니다.
이렇게 심각해진 이유는 다름 아닌 처방 때문이었어요. 동네 피부과에서 처방해준 스테로이드를 장기 사용한 것이 문제였습니다. 이 약물로 인해 제 몸은 스테로이드 중독은 물론, 중증 아토피 상황에 빠지게 되었지요. 스테로이드는 바르는 약, 먹는 약, 주사제의 순서로 효과가 강력한데 그만큼 부작용도 심합니다. 특히나 스테로이드를 장기적으로 사용하면 신장에 심각한 타격을 주게 되고, 다른 한편으로는 쇼크사도 일으킬 수 있거든요. 그래서 절대로 스테로이드는 장기적으로 사용하면 안 됩니다. (세브란스 박창욱 피부과 교수는 ‘성인 중증 아토피는 말기 암환자보다 자살 생각을 많이 할 정도로 심각한 질병이다’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저를 담당하던 의사는 이에 대한 경고를 하지 않았습니다.
끔찍한 고통이 시작되었습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후, 저는 스테로이드를 끊기로 결심했습니다. 하지만 신장이 이미 약화된 상태에서 갑자기 스테로이드를 끊으면 ‘리바운드 현상’이 발생한다고 해요. 리바운드 현상이란, 약물을 급격히 감량・중지하면 약물로 조절되던 병이 이전보다 악화되는 현상을 뜻합니다. 저의 경우 외부에서 주입되던 스테로이드가 차단되니, 억지로 눌러두었던 아토피 증세가 폭발한 것이죠. 단숨에 초중증 아토피 상태로 들어갔습니다. 온몸에서 피와 열이 뿜어져나왔죠. 하루에 20번도 넘게 옷을 갈아입어야 했어요. 출혈이 심했고, 심장도 불규칙하게 뛰다 멈추기를 반복했습니다. 의식을 잃은 적도 많았습니다. 에너지 소비는 심한데 입과 턱이 찢어져서 음식 섭취가 어려웠어요. 안 그래도 출혈이 엄청난 가운데 남은 혈액이 그래도 몸을 살리겠다고 어디엔가 쓰여서인지, 내장에 혈액이 부족했던 모양입니다. 억지로라도 무언가 집어넣으면 내장이 빨래를 쥐어짜듯 몸부림쳤어요. 허기가 이어졌지만 내장이 꼬이는 느낌이라 무엇도 먹을 수 없었습니다.
몸의 겉부터 속까지, 발끝부터 머리끝까지 성한 곳이 없었어요. 하루에 얼마나 많은 곳이 아픈가를 세어보는 일이 나름의 취미였을 정도입니다. 무엇인가에 신경을 써야 그나마 고통을 덜 느껴서 찾은 방편이었죠. (그렇다고 행복했던 이전의 기억들이나 앞으로의 희망 따위를 생각할 여유는 없었습니다. 그 정도 에너지는 없었거든요. 정말로 살려고 쥐어짜낸 에너지로 지금 어디가 아픈지 세어본 것이었는데, 독자분들에게 그 마음이 제대로 전달될지 모르겠습니다. 여하튼 그 ‘취미’는 한편으론 몸의 어디가 문제인지 확인하는 작업이기도 했습니다.)
아픈 곳은 평균 20군데가 넘었던 것 같아요. 온몸이 찢어져서 나오는 출혈의 고통은 그래도 참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도저히 참을 수 없었던 것은 잠이었어요. 30분 이상 잠들 수가 없었습니다. 이런 기간이 2주가 넘어가니 정신이 이상해졌습니다. 멀쩡한 사람도 잠을 2주간 안 자면 어떻게 될까요? 잠을 재우지 않는 고문도 있지 않나요? 그런데 밤새 온몸을 수천 개의 바늘과 칼로 긁어대는 고통을 겪어야 한다면, 여러분은 며칠을, 아니 몇 시간을, 아니 몇 분을 버틸 수 있으시겠어요?
제 육체의 에너지는 이미 고갈된 상태였습니다. 결국 정신적 에너지도 소진되었죠. 저는 어머니께 말하고 말았습니다. ‘엄마, 미안해. 나 이제 그만 죽을래’라고요. 그리고 마음을 비웠습니다.
버텨보기로 했습니다
그 상황에서 죽음의 고비를 이겨낸 다른 이들의 이야기를 접하게 됐습니다. 막상 어린 나이에 죽으려니 못 해본 것이 많아 억울한 마음이 들더군요. 버텨보기로 했습니다. 그렇게 마음먹자 어렵게, 천천히 회복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수년 만에 사회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수년간의 첫 번째 고난기에 대해선 전작 《읽어야 산다》에 상세히 설명했기에 이 책에선 한 줄로만 적었습니다.) 물론 쉽지 않았습니다. 오랜 공백기가 있었고, 저는 스펙도 돈도 건강도 자신감도 없었어요. 아니, 오히려 마이너스 상태의 백수 청년이었죠.
빠르게 성장하고 싶어서 성공한 사람들을 따라다니며 배웠습니다. 정말 간절하게 배우고 행했습니다. ‘부(富)’를 알려주겠다는 이들을 찾아가거나, 성공해서 세상에 알려진 이들에게 연락하고 만나러 갔어요. 그중엔 사기꾼도 많았던 것이 사실입니다. 어렵게 찾아갔는데 자기 자랑만 한참 하고 나서 ‘돈 좀 빌려달라’라고 하는 이도 있었죠.
하지만 좋은 마인드로 도움되는 조언을 해준 이들도 있었습니다. 한 분은 영어과외를 하다 알게 된 모 중견기업 차장님이었습니다. 성공한 이를 만나고 싶어서 부유해 보이는 집들 근처에 전단지를 붙였다가 만나게 되었죠. 그분은 지금 저의 관점(책도 여러 권 내고, 사업 모델 여러 개를 운영하는 대표의 입장)에서 보면 브랜딩이 되어 있지 않은, 단지 이른 나이에 승진을 여러 번 한, 잘나가는 많은 직장인 중 한 명이었어요. 하지만 당시 저는 사실상 백수였죠. 그래서 30대 초반에 중견기업 차장님이 된 그분에게 배울 것이 참 많았습니다. 보통 성인들은 책을 잘 읽지 않는데, 그분은 일반 독서도 아닌 인문학 독서를 치열하게 하고 있었어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미래 계획’ 같은 주제의 대화를 잘 나누지 않는데, 그분은 항상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우연히 만나게 된 이지성 작가님도 제 삶을 크게 긍정적 방향으로 바꿔주었습니다. 처음 알게 되었을 당시 작가님은 현재처럼 메가 베스트셀러 저자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많은 대학생들이 배움을 요청하러 찾아가는 분이었어요. 하지만 수천 명이 넘는 이들이 그의 조언을 듣기만 하고 행동에 옮기지 않았고, 저는 그의 조언을 실행으로 옮기고 결과로 만들어냈습니다.
저는 많은 책과 많은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책과 사람을 만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배우고 실천하려고 했습니다. 집에 빚이 수억 있었지만 제 수입의 10~20%를 기부했고, 이지성 작가님이 요청하신 1년 365권 독서도 성공했습니다. 이러한 삶을 실천하다보니 남들보다는 느리게 출발했지만, 성과는 이른 나이에 거둘 수 있었습니다. 억대 강사가 된 이후에 드디어 강남에 영어학원을 차릴 수 있었습니다. 늘 독서만 하려는 저에게 이 작가님은 ‘사람을 더 만나야 한다’며 자꾸 여기저기 불러내셨고, 그렇게 여러 사람들을 만나다보니 첫 책도 일찍 출간할 수 있었습니다.
생지옥의 2라운드
첫 책이 대형 베스트셀러가 되고 꽤 유명해졌습니다. 제게 배우겠다며 전국에서 사람들이 찾아오고, 길을 걸으면 사인해달라고 청하는 이들도 있었습니다. 저도 제 사업에 신경쓰며 바쁘게 지냈죠. 하지만 사회에 복귀했다고는 해도 온전히 건강한 상태는 아니었습니다. 일반인의 70퍼센트 정도의 체력이었을 거예요. 한 의사분에게 등산을 권유받아 바로 시도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무리가 되었는지 대상포진이 왔습니다. 이름도 처음 들어보는 이 질환은 출산보다 통증 지수가 높다고 합니다. 안 그래도 중증 아토피를 오래 앓았는데 이제 또 대상포진이라니.
다시 온몸의 피부가 찢어지고 피가 쏟아졌습니다. 게다가 대상포진이 발병한 허리와 등 쪽 신경을 따라 하루에도 몇 번씩 번개를 맞는 통증이 더해졌습니다. (아직 감사하게도 번개를 맞아본 적은 없습니다. 그때는 ‘차라리 번개를 맞는다면 감사하게도 단번에 죽을 텐데. 젠장’이라고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제 이성으로 통제할 수 없는, 사람의 목소리가 아닌 괴성이 수시로 튀어나왔습니다. 정말 다시는 경험하기 싫은 생지옥의 2라운드였습니다.
그런데 또 다른 친구가 왔습니다. 어느 날, 종아리 아래가 희한한 모양으로 찢어지고 허옇게 변했어요. 생명체의 모습이 아니었죠. 당시에 눈도 잘 뜨지 못하고 말도 잘 못했습니다. 부모님은 일어설 수도 없는 저를 휠체어에 태워 20곳이 넘는 병원에 데려갔습니다. 하지만 모든 의사가 잠깐 보더니 단숨에 고개를 저었습니다. 무슨 증세인지도 모르겠고, 자기는 치료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찾아간 병원마다 의사들이 거절하며 다른 병원에 가라고 하니 절망이 온몸을 휘감았습니다.
그렇게 지치도록 병원을 찾아다니기만 하다가 다행히 고마운 의사를 만났습니다. 그분은 제 병이 ‘봉와직염’이라고 했습니다. 원래 이렇게까지 아픈 병은 아닌데 제가 워낙 여러 증세가 있어서 심하게 터진 것이라고 했죠. ‘아마도 다른 의사분들은 치료비가 많이 나올 상태도 아니면서, 괜히 잘못 손댔다간 죽을 것 같으니 거절한 모양’이라는 말도 덧붙였습니다. 듣고 보니 충분히 이해가 됐고 화도 누그러졌습니다. 제가 의사였어도 저 같은 환자가 왔다면 거절했을 겁니다.
좋은 의사를 만난 덕에 서서히 회복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새로운 친구들이 많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독감주사를 맞고 또 죽을 뻔했습니다. 구충제가 특효라기에 먹었다가 또 죽을 뻔했습니다. 중증 아토피에 더해 다른 고통들이 연이어 발생하니 너무 힘들었어요. 건강하려고 노력하는데, 노력의 적정선을 맞추기가 너무 어려웠습니다. (다시, 또) 겨우 조금 회복했을 때 이지성 작가님이 미팅을 하자며 먼 곳으로 불렀습니다. (아무리 설명해도 사람들은 제 몸 상태를 잘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미팅에 다녀오고 나서 다시 죽음의 위기가 왔습니다. 또, 또, 또다시 온몸에 고열이 나고 피가 흘렀습니다. 말을 할 수 없었어요. 너무 여러 번 겪은 고통에 지치고 절망해서 ‘하나님, 이제 절 데려가세요. 죽고 싶어요’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때 이지성 작가님이 SNS를 통해 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그러자 전 세계에서 건강에 좋다는 정보와 약들이 보내졌습니다. 침대에서 일어나지도 못하는 저를 위해 얼굴도 본 적 없던 김해영 전문의는 왕진을 와주셨고, 장관급 대우라며 수천만원 상당의 귀한 약을 보내준 분도 있었습니다.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저를 위해 기도를 해준다며 많은 이들이 찾아왔습니다. 그렇게 저는 다시, 또 살아나기 시작했습니다. 10년간 죽을 고비를 10번 넘게 극복했습니다.
고난을 극복하면 꽃으로 피어납니다
첫 번째 고난기에도 정말 힘들었지만, 어느 정도 건강을 회복했다가 다시 지옥을 경험한 것은 정신적으로도 충격이 컸습니다. 중증 아토피 증세뿐 아니라 다른 여러 증세가 더해지니 정말 힘들었습니다. 여하튼 그 지옥처럼 처절한 고통을 겪으면서 저는 생각했습니다.
‘고난을 극복하면 꽃으로 피어난다’라고요.
지옥 같은 고난의 기간을 버티며 저는 무엇을 했을까요? 크게 2가지를 했습니다. 스타트업 창업과 이 책이지요. 도중에 기운이 조금이라도 날 때마다 온라인을 활용하여 창업을 하고 사업을 키워나갔습니다. 어찌 보면 말도 안 되는 일인 것은 맞습니다. 중환자의 스타트업 창업이라니 말이에요. 이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이전에 공부해둔 것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또 ‘우리는 환경을 선택할 수 없다. 다만 주어진 환경에서 무엇을 선택할지는 선택할 수 있다’라는 생각도 힘이 되었습니다. 저는 다짐했습니다.
‘어차피 다시 침대 밖에도 나가기 힘든 상황이 됐는데, 이 신세를 한탄하고만 있다고 무슨 득이 되겠는가? 살아 있다면 뭐라도 해야 하지 않겠는가?’
기존에 써둔 책도 있었고, 이미 운영 중이던 온라인 카페를 활용하기로 했습니다. 그것을 통해 온라인 교육을 시작했어요. 두 번째 형태의 창업이었던 셈이죠. 이렇게 수익을 만들어 몇 년 사이 기부도 많이 하고 부동산도 2개 매입했습니다. 당시 제 생각들을, 제가 깨우친 것들을 한번 정리해볼게요.
1. 우리는 환경을 선택할 수 없다.
2. 마음에 들든 들지 않든, 현재의 나는 과거의 내가 선택해온 것들의 결과이다.
3. 주어진 환경에서 어떤 행동을 선택할지는 우리의 자유이다.
4. 고통이 왔을 때 불평할지, 아무것도 안 할지, 반성하고 나를 돌아볼지는 자유의지에 달려 있다.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미래가 다르게 만들어진다.
5. 빠르게 성장하려면, 빠르게 성장한 이를 찾아 그들의 방법대로 행해야 한다.
육체적 고통이 너무 심해서, 자살예방센터에도 여러 번 전화했던 저입니다. ‘제가 지금 죽으려는 건 아니에요. 살고 싶어 방법을 찾고 있는데, 어느 병원에서도 손을 못 쓰고 있어요. 저 역시 병원에 가기도 싫고요. 말하기도 힘들어 누워 있습니다. 어쩌면 좋을까요?’라고 물었지만 ‘죄송해요. 우리가 도와줄 방법이 없네요’라는 답을 들어 절망했던 저입니다. 하지만 앞의 생각들 덕분에 다시 회복하고,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반대로 생각해보면
1. 환경을 선택하길 원하고, 이런 생각들에만 에너지를 쓴다. (‘나도 돈 많은 부모가 있었으면 좋겠다. 저 사람으로 태어났으면 좋았을 텐데…’)
2. 현재의 나에 대해 책임지기를 거부한다. (‘나도 열심히 했는데! 내가 왜? 내가 뭘 잘못했다고?’)
3. 주어진 환경에서, 주로 단기적 쾌락을 선택한다. 변명이나 쉬운 방법만 찾는다.
4. 고통이 오면 불평을 늘어놓거나, 아니면 그냥 무기력하게 있는다.
5. 성장하고 싶다면서 자기보다 나은 이를 찾지 않는다. 혹시 접하더라도 그들의 의견을 듣고 행하지 않는다.
이런 행동들을 한다면, 과거를 반복하며 살게 될 뿐입니다. 과거를 반복한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고통이 와도 다른 선택을 하지 않고, 계속 잘못된 선택을 하는 것입니다. 저는 세상 누구보다 힘든 경험을 했습니다. 그래서 남들이 인지하지 못하고 매일 밟아버리다시피 하는 것들에 감사함을 느낍니다.
대상포진이 찾아온 이후 제가 반드시 지켰던 원칙이 있습니다. 저녁 6시 이후엔 온전한 휴식을 취했습니다. 어려운 일은 절대 신경쓰지 않고, 편안히 음악을 듣거나 산책을 했습니다. (산책을 편하게 할 수 있는 컨디션이 된 것도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수년간 지켰던 원칙을 이 책을 준비하면서 조심스럽게 부수었습니다. 원고 마감일을 맞추기 위해서, 저는 그 길었던 고난의 두려움에 맞서 저녁에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남들에겐 단순한 불평거리지만 별문제 없는 야근이, 제겐 목숨을 건 전투였습니다.
오늘 아침 살아서 일어나고, 팔다리가 움직이고, 숨쉬고, 심장이 뛰고, 소리가 들리고, 세상을 볼 수 있는 것은 기적입니다.
일상이 기적입니다.
살아 있음이 기적입니다.
그 기적을 누리는 기쁨과 행복을 여러분과 나누고자 이 책을 썼습니다.
소크라테스가 알려준 이것!
“세종대왕을 아세요?”
이런 질문을 던지면 대부분 ‘그렇다’라고 답하실 겁니다.
그럼 다시 물어볼게요.
“세종의 어렸을 적 이야기 중 가장 인상적인 부분을 말씀해주시겠어요?”
어떻게 답하시겠어요? 아마 많은 분이 그다지 할 말이 없으실 겁니다. 우리 대부분은 ‘세종대왕’이라고 하면 ‘한글’ 정도를 떠올리곤 합니다. 그 외에는 아는 것이 그다지 많지 않죠. 사실 우리는 ‘세종대왕’이라는 단어를 자주 접했을 뿐입니다. 세종대왕에 대해 정말, 제대로 아는 분은 그리 많지 않을 겁니다.
우리가 안다고 생각하는 많은 것들은, ‘정말’ 아는 것이 아닌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단지 수동적으로 여러 번 들은 적이 있거나 본 적이 있는 것뿐이죠. ‘이름’을 들은 경험을 ‘안다’고 착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보이니까 봤고 들리니까 들었던 것으로는, 진정으로 알 수 없습니다. 설사 ‘세종대왕 전문가’라고 자부하는 사람이라도 완벽하진 않을 거예요. 책과 영화 등을 통해 접했을 뿐 그분을 ‘실제로’ 만나본 적은 없으니까요.
사실 ‘안다’는 것으로 끝나기보다 ‘알아간다’는 것이 맞겠지요. 철학자 소크라테스는 현명하다고 주장하는 이들을 찾아다니며 질문했습니다.
“친구란 무엇인가요?” “정의란 무엇인가요?”
소크라테스는 본인의 생각을 가르치려 하지 않았어요. 다만 ‘안다’고 주장하는 이들에게 계속 질문을 던지면서, 그들이 ‘안다’고 생각하는 것들이 실은 아는 것이 아님을 스스로 깨우치도록 유도했지요. 소크라테스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아는 단 한 가지 유일한 사실은, 나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이다.”
저는 초등학생 때는 공부를 꽤 잘했고, 중학생 때는 집에서 책을 많이 봤습니다. 그렇다고 ‘배움’에 미쳐 있었던 것은 아니고, 단지 내향적이다보니 혼자 재미난 이야기들을 읽는 일이 좋아서 독서에 빠진 것이었죠. (현재 제가 교육하는 ‘실용적 독서’가 아닌 ‘흥미를 위한 독서’를 한 겁니다.)
또한 감사하게도 어머니가 ‘너는 잘될 거야’라고 항상 말씀해주셨습니다. 덕분에(?) 세상에 잘난 이들이 얼마나 많은지도 모른 채 막연히 ‘나는 대단하다’라고 생각하곤 했습니다. 그 착각이 수년간 투병생활을 하고, 수년간 극빈층으로 지내면서 무참히 깨지게 된 것이죠. 막상 세상에 나가보려고 하니 저는 무기가 하나도 없었습니다. ‘초등학생 때 성적이 좋았던 아이들’은 학교마다 있었고, 중학생 때 책을 수십 권 읽은 아이도 많았죠. 그런 스펙으론 사회에서 돈을 벌 수 없었습니다. 제 무지를 깨닫고 인정하고 나니, 남은 것은 배우고 성장할 일밖에 없었습니다. 제가 아는 것이 없단 사실을 받아들이고 나니 질문하기가 수월했습니다.
매번 혼나면서도 꾸준히 질문했고, 배운 것을 바로 실행에 옮겼더니 빠르게 성장했습니다. 이런 부분을 이전 책에 상세히 설명했고, 강의에서도 많이 말했고, 다양한 코칭을 통해서도 알렸습니다. 하지만 이는 가장 사람들이 버거워하고, 피하고 싶어 하는 부분입니다.
“내가 틀렸다고? 당신이 뭔데 함부로 말해?”
거의 이런 반응이 나오죠. ‘당신이 틀렸다. 당신이 알고 있는 것이 없다’라고 말하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당신이 ‘가지고 있는 생각’이 당신이 ‘원하는 바’와 맞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이야기일 뿐이죠. 물론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스스로 모르는 경우가 많지요.
그런데 당신이 ‘안다’고 생각할수록, 무언가를 정말 알게 되기란 더욱 어려워집니다. 저는 여러 번 읽었던 책(A)을 다시 읽어보다가 ‘아! 내가 생각이 없었던 것일까?’ 깨닫게 되었고, 몇 년 뒤 ‘이 가설(내가 생각이 없다)’이 맞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진정한 배움이 시작되었죠. 그래서 소크라테스는 ‘내가 아는 단 한 가지 유일한 사실은, 나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이다’라고 강조했나봅니다.
A가 무슨 책이냐고 묻는 분들이 많은데, 어떤 책인지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읽다가 불현듯 ‘내가 생각이 없었던 걸까?’라는 깨우침을 얻었다는 사실이 중요하죠. 저는 이것을 제가 받은 최고의 선물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제 무지를 인지한 것 말이죠.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는지
알고 계신가요?
무지(無知)를 아는(知) 것이
앎(知)의 시작입니다.
‘안다’ = 생각이 멈추는 순간
‘열정을 가져라’ ‘시간은 금이다’ ‘감사하며 살아라’ 등의 문장을 접하면 무슨 생각이 드시나요? 혹시 ‘누가 그걸 몰라? 다 아는 소리야. 실천이 어려운 거지’라고 하진 않으신가요? 하지만 정말 ‘다 아는 소리’인 게 맞을까요? 한번 생각해보도록 해요.
이 주제들에 대해 ‘안다’고 말할 수 있으려면 (‘알아가고 있다’는 표현이 더 맞겠죠) ‘열정이란 무엇인지’ ‘열정은 어디에서 오는지’ ‘어떻게 열정을 키울 수 있는지’ ‘시간이란 무엇인지’ ‘시간이 왜 금인지’ ‘시간이 왜 금보다 소중한지’ ‘왜 감사해야 하는지’ ‘산다는 것은 무엇인지’ 등에 대해 다른 사람들이 공감하고 납득할 정도로 설명할 수 있어야 합니다.
다른 사람을 이해시키고 설득시킬 만큼 알고 있지 않으면, 정말 안다고 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안다고 생각하는 수많은 것들이 사실은 아는 것이 아닌 경우가 적지 않답니다.
제 경우엔 시간관리와 관련된 책을 30권 정도 읽고 나니 ‘아, 시간은 정말 금이구나’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50권, 100권 이상 읽고 나니 ‘시간이 금보다 훨씬 더 소중하구나’를 알게 되었고요. 시간에 대한 강의를 몇 시간씩 할 수도 있게 되었죠.
시간에 대한 책을 전혀 읽지 않았던 저와, 관련 책을 100권 이상 읽은 저에게 ‘시간은 금이다’라는 문장의 의미는 같을 수 없습니다. 당연히 아직도 시간에 대해 모든 것을 알지는 못합니다. 시간에 대해 알아갈수록, 오히려 시간에 대해 모르는 것이 많단 사실을 깨달을 뿐입니다. 배워갈수록 과거의 제가 ‘안다’고 자신했던 것이 얼마나 잘못된 생각이었는지를 깨우치게 되었습니다.
상대성이론으로 유명한 20세기 최고의 물리학자 아인슈타인에게 제자들이 질문했습니다.
“선생님, 선생님은 최고의 학자신데 왜 여전히 배우시나요?”
아인슈타인은 큰 칠판에 작은 원을 그리며 말했습니다.
“내가 이미 알고 있는 지식이 이 원이라고 하지요. 원이 커지면 원의 둘레도 늘어나지요. 원의 둘레가 접촉하는 미지의 부분이 더 많아진단 것을 알게 됩니다. 결국 전보다 내가 모르는 것이 많다는 것을 알아가고 있을 뿐입니다. 어찌 내가 배움을 멈출 수 있겠습니까?”
세기의 천재 아인슈타인조차 늘 자신의 무지를 인식하며 공부를 게을리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이 똑똑하다는 교만과 자만에 빠지기는커녕, 늘 겸손한 자세로 배우고 익혔죠. 아인슈타인이 지금도 칭송받는 천재일 수 있는 이유는, 겸손함을 잃지 않고 공부를 멈추지 않았던 노력에 있지 않을까요?
성장의 시작은,
겸손입니다.
자신이 모르는 것이 많다는 사실을 알아갈 때,
정말 성장할 수 있습니다.
해보셨나요?
제가 막 독서를 제대로 시작했을 무렵의 일입니다. 어느 날 급히 외출하려고 준비하는데 옷장에 셔츠가 없길래 ‘어머니~ 셔츠가 없어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어머니는 ‘거기 있을 거야. 찾아봐’ 하시면서 천천히 걸어오셨어요. 제가 바쁜 마음에 ‘없어요! 여기 아무것도 없으니, 다른 데서 찾아주세요!’ 하고 외치는데도 어머니는 계속 느긋하게 걸어오셨어요. 직접 옷장을 보고 나서야 ‘정말 없네?’ 하곤, 결국 다른 데에서 셔츠를 찾아주셨지요. (그 당시 저는 게으른 백수였던지라, 가족들이 제 말을 잘 믿지 않았습니다.) 순간 답답해서 화가 나려다가 문득 깨닫게 되었습니다.
‘직접 경험해봐야만’ 알게 된다는 사실을요. 직접 경험을 해보기 전까지는 우리는 믿지 않으려 합니다. 그러나 모든 경험을 직접 해볼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소크라테스는 ‘남의 경험에서 배워라. 그것이 가장 빠르고 현명하다’라고 말했습니다. 현명한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배우고, 좋은 책을 읽으라는 것이지요. 셔츠가 있고 없고의 여부는 그리 대단한 사실은 아니지만, 개인적으로는 ‘상대의 말을 믿으면 시간을 절약할 수 있다는 점’을 배운 계기가 됐지요.
그리고 이것을 나중에 머리 손질과 관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