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Pascal Perich
TRUST
by Hernan Diaz
Copyright ⓒ Hernan Diaz, 2022
First published by Riverhead Books
Korean Translation Copyright ⓒ MUNHAKDONGNE Publishing Corp., 2023
Translation rights arranged by Duran Kim Agency, Korea and The Clegg Agency, Inc., USA.
이 책의 한국어판 저작권은 듀란킴 에이전시를 통해 The Clegg Agency와 독점 계약한 ㈜문학동네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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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두기
1. 주석은 모두 옮긴이주이다.
2. 본문 중 이탤릭체는 원서의 표기를 따른 것이며, 고딕체나 볼드체는 원서에서 이탤릭체 나 대문자로 강조한 부분이다.
앤, 엘사, 마리나, 애나에게
하나
태어났을 때부터 거의 모든 이점을 누려온 벤저민 래스크가 결코 가질 수 없었던 몇 안 되는 특권 중 하나는 영웅적으로 부상할 특권이었다. 그의 이야기는 회복력과 끈기에 관한 것도 아니고, 티끌로 황금의 운명을 만들어낸 불굴의 의지에 관한 것도 아니었다. 래스크 가족의 성경 뒤쪽 페이지에 적힌 기록에 따르면, 벤저민 래스크의 부계 조상들은 1662년 코펜하겐에서 글래스고로 이주해 식민지산 담배를 거래하기 시작했다. 이후 백 년이 넘는 시간 동안 이들의 사업은 번창했으며, 공급자들을 더욱 잘 감독하고 생산 공정의 모든 측면을 통제할 수 있도록 가족 일부가 미국으로 이주할 정도로 규모가 확장되었다. 그로부터 삼 세대 후, 벤저민의 아버지인 솔로몬이 친척 및 외부 투자자들이 가지고 있던 지분을 전부 사들였다. 솔로몬의 단독 지휘하에 회사는 계속해서 번창했고, 그는 머잖아 미국 동부 연안에서 가장 중요한 담배 무역상 중 한 명이 되었다. 그가 아메리카 대륙 전역에서 가장 뛰어난 공급자들로부터 상품을 공급받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솔로몬이 성공을 거둔 핵심 요인은 상품의 질보다는, 물론 담배에 쾌락주의적 측면이 있긴 하나 대부분의 남자들은 다른 남자들과 대화를 하기 위해 담배를 피운다는 명백한 사실을 활용하는 능력이었다. 솔로몬 래스크는 가장 뛰어난 품질의 시가와 시가릴로, 파이프 담배 공급업자였을 뿐 아니라 탁월한 대화와 정치적 연줄을 제공하는 사람이기도 했다(오히려 이런 면이 더 중요했다). 그는 사교성과 흡연실에서 다진 우정 덕분에 사업의 정점에 올라 입지를 다졌다. 흡연실에서는 솔로몬이 그로버 클리블랜드, 윌리엄 재커리 어빙, 존 피어폰트 모건 등 그가 손에 꼽을 만큼 중요하다고 여기는 사람들을 비롯해 대단히 특별한 손님들과 멋들어진 대화를 주고받는 모습이 자주 보였다.
성공의 정점에 이르렀을 때, 솔로몬은 뉴욕 웨스트 17번가에 타운하우스를 지었다. 이 집은 벤저민이 태어날 때에 아슬아슬하게 맞춰 완공되었다. 그러나 솔로몬은 뉴욕에 있는 가족의 집에 모습을 드러내는 적이 거의 없었다. 그는 일 때문에 이 농장 저 농장을 돌아다녀야 했으며 언제나 담배 훈연실을 감독하거나 버지니아주, 노스캐롤라이나주, 카리브해 지역에 있는 거래처 사람들을 만나러 다녔다. 심지어 쿠바에도 작은 별장이 하나 있어서, 매년 겨울의 상당 기간은 그곳에서 보냈다. 이 섬에서의 그의 생활은 여러 소문으로 이어졌고, 솔로몬은 그 소문 덕분에 이국적 취향을 가진 모험가라는 명성을 얻게 되었다. 이것이 그의 업계에서는 자산이었다.
솔로몬의 아내 윌헬미나 래스크는 한 번도 남편의 쿠바 별장에 가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그녀도 오랫동안 뉴욕의 집을 비우곤 했다. 윌헬미나는 솔로몬이 돌아오는 즉시 집에서 나가 그 계절 내내 허드슨강 동안東岸에 있는 여름 별장이나 뉴포트에 있는 오두막 등 친구들의 집에서 지냈다. 겉보기에 그녀와 솔로몬의 공통점은 담배에 대한 열정뿐이었다. 그녀는 강박적으로 담배를 피웠다. 여성이 쾌락을 얻기에 흡연은 대단히 드문 방법이었므로, 그녀는 여자 친구들끼리 있을 때만 그 즐거움을 만끽했다. 다만, 늘 친구들에게 둘러싸여 있었으므로 이 점이 딱히 제약이 되지는 않았다. 친구들은 그녀를 윌리라는 별명으로 불렀다. 윌리는 일종의 유목민 부족을 이룬 매우 친한 여성 집단의 일원으로, 그들의 출신지는 뉴욕만이 아니라 워싱턴, 필라델피아, 프로비던스, 보스턴 등으로 다양했다. 심지어 시카고처럼 먼 곳에서 온 사람도 있었다. 이들은 한 무리를 이루어 계절에 따라 서로의 집이나 별장에 머물렀다 웨스트 17번가도 솔로몬이 쿠바의 별장으로 떠나는 9월 말부터 시작해 몇 달 동안 이들 일파의 주거지가 되었다. 아무튼, 이 여성들은 미국 어느 지역에 머물든 외부인이 도저히 뚫고 들어갈 수 없는 변치 않는 집단을 이루었다.
벤저민은 대부분 자기 방과 유모의 방에만 머물러야 했으므로, 어린 시절을 보낸 브라운스톤 저택의 나머지 구역은 어렴풋하게만 알았다. 어머니와 친구들이 저택에 머물 때는, 그들이 밤늦게까지 담배를 피우고 카드를 치고 소테른 와인을 마시는 방에 들어갈 수 없었다. 그들이 떠나고 나면, 저택의 주요 구역은 덧문이 닫힌 창문과 덮개로 덮인 가구, 너울거리는 장막으로 감싸인 샹들리에가 어슴푸레하게 이어지는 공간이 되었다. 벤저민의 모든 유모와 가정교사는 그가 모범적인 아이라고 말했고, 과외교사들도 그 점을 확인해주었다. 이 얌전한 아이처럼 태도와 지능, 순종적인 성품이 조화롭게 결합되어 있는 아이는 없다고 했다. 벤저민의 어린 시절 멘토들이 한참 찾아보고 나서 알아낸 몇 안 되는 결점은 다른 아이들과 어울리기를 꺼리는 그의 성향이었다. 과외교사 중 한 명이 제자에게 친구가 없는 이유는 겁이 많아서라고 하자, 솔로몬은 아이가 그저 자주적인 남자가 되어가고 있을 뿐이라고 말하며 그 걱정을 일축해버렸다.
벤저민은 외로운 어린 시절을 보내 준비가 되지 않은 채로 기숙학교에 입학했다. 첫 학기에는 매일같이 벌어지는 모욕과 사소하지만 잔인한 괴롭힘의 대상이 되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같은 반 아이들은 괴롭혀도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는 벤저민을 만족스럽지 않은 희생양이라 생각하고 가만히 내버려두었다. 벤저민은 다른 아이들과 어울리지 않은 채, 무감정하게 모든 과목에서 두각을 드러냈다. 한 해가 끝날 때마다 선생들은 벤저민에게 가능한 모든 칭찬을 퍼부으며 그가 무척 특별한 존재라고 말했다. 한 명도 빠짐없이 그가 학교에 어마어마한 영광을 가져다줄 거라고 말했다.
벤저민이 졸업반일 때 아버지가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벤저민은 뉴욕으로 돌아와 장례식을 치렀는데, 이때 친척과 지인들은 모두 벤저민이 보인 평정심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그러나 사실을 말하자면, 죽음을 애도하는 상황이 벤저민의 타고난 성품에 사회적으로 인식 가능한 형태를 부여한 것뿐이었다. 소년은 대단한 조숙함을 과시해 아버지의 변호사들과 은행 직원들을 당황하게 하며, 유언장과 그 유언장에 관련된 모든 재무제표를 살펴봐달라고 요청했다. 래스크 씨는 양심적이고 깔끔한 사람이었기에 그의 아들은 서류에서 한 점의 오류도 발견하지 못했다. 벤저민은 이렇게 일을 마무리지음으로써 나이가 되어 유산을 물려받을 때 무엇을 기대해야 할지 알게 되었고, 학업을 마치기 위해 뉴햄프셔주로 돌아갔다.
어머니는 로드아일랜드주에서 친구들과 함께 짧은 사별 기간을 보냈다. 그녀는 벤저민이 졸업하기 직전인 5월에 저택으로 돌아왔고, 여름이 끝날 때쯤 폐기종으로 사망했다. 두번째로 열린, 훨씬 더 우울한 장례식에 참석한 가족과 친구들은 겨우 몇 달 사이에 고아가 된 청년에게 무슨 말을 건네야 할지 몰랐다. 다행히도 의논해야 할 실용적인 문제들이 많았다
신탁과 유언집행자 지명, 유산을 정리할 때 발생하는 법적인 문제 같은 것들 말이다.벤저민의 대학 시절 경험은 학창 시절의 증폭된 메아리와도 같았다. 이때도 벤저민에게는 똑같은 결핍과 재능이 모두 있었으나, 이제는 전자에 대한 냉담한 애정과 후자에 대한 조용한 경멸감을 갖게 된 것처럼 보였다. 그의 혈통에 흐르던 좀더 두드러지는 특징들은 벤저민 대에서 끊긴 것 같았다. 벤저민은 어디에 들어가든 그 공간의 주인이 되어 모든 사람이 자기 주변을 공전하도록 만들었던 아버지와 이보다 더 다를 수 없었으며, 아마 살면서 단 하루도 혼자 보내지 않았을 어머니와도 아무런 공통점이 없었다. 부모와의 이런 차이는 졸업 이후 더욱 두드러졌다. 벤저민은 뉴잉글랜드주에서 뉴욕으로 돌아갔으나 지인 대부분이 성공을 거둔 분야에서 실패했다
그는 서툰 스포츠맨이었고 무감정한 사교가였으며 열정이라고는 없는 음주가에 냉담한 도박사, 뜨뜻미지근한 연인이었다. 그는 담배 때문에 재산가가 되었으면서 담배를 피우지도 않았다. 그가 지나치게 인색하다고 비난하는 사람들은, 사실 그에게 억눌러야 할 욕구가 없다는 점을 이해하지 못한 것이었다.◆
벤저민에게 담배 사업은 이보다 더 재미없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는 담배라는 제품도 싫어했고* 농장 담배에서 나는 감칠맛에 대한 찬가를 부를 때도 오직 직접적 경험만이 전해주는 활기를 담지 못했다. 담배농장과 훈연실, 시가공장은 벤저민에게 알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는 먼 세상이었다. 그는 회사 입장에서 자신이 경악스러운 대표라는 것을 누구보다 먼저 인정했기에 일상적인 운영을 아버지 밑에서 이십 년 동안 충실하게 일해온 임원에게 맡겼다. 그러나 바로 그 임원의 조언을 무시하고, 아버지의 쿠바 별장과 그 안에 있던 모든 것을 한번 살펴보지도 않은 채 직접 만나본 적도 없는 대리인들을 통해 헐값에 팔아버렸다. 벤저민의 은행 담당자는 남은 저축액과 함께 그 돈을 주식시장에 투자했다.
빨아들이고 내뿜는 그 원초적 행위나 미개인처럼 연기에 매혹되는 일, 썩은 나뭇잎에서 나는 달콤하고 씁쓰레한 악취 담배 주변에서 생겨나는 친화성도 싫어했다. 아버지가 무척 즐기며 잘 활용했던 것이 바로 그 친화성이었는데 말이다. 벤저민은 뿌연 흡연실에서 벌어지는 공모에 무엇보다 심한 혐오감을 느꼈다. 아무리 성실하게 노력해도 디아데마 시가가 론스데일 시가보다 나은 이유를 열정 비슷한 것이라도 담아 주장할 수 없었고, 그의 부엘타 아바호* 쿠바 서부에 있는 담배 산지.
그렇게 몇 년의 정체기가 흘렀다. 이 시기에 벤저민은 다양한 수집품(동전, 도자기, 친구)을 모아보려고 건성으로 시도했고, 살짝 건강염려증이 있었고, 말에 대한 열정을 키워보려 노력했고, 멋쟁이가 되려다 실패했다.
시간은 지속적인 가려움이 되었다.
벤저민은 진정한 본성을 거슬러 유럽으로 여행을 떠날 계획을 세웠다. 구대륙에서 관심이 가는 부분은 이미 책으로 배운 터였다. 현장 경험은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낯모르는 사람들과 배 안에 며칠씩 갇혀 있어야 한다는 점도 전혀 기대되지 않았다. 하지만 언젠가 뉴욕을 떠날 일이 있다면 지금이 적절한 시기라고 자신을 타일렀다. 뉴욕시의 전반적인 분위기는 지난 이 년 동안 미국을 집어삼킨 연쇄적 재정 위기와 그에 따른 경제 침체로 상당히 우울했다. 이런 침체로부터 직접적인 영향을 받지는 않았기에, 벤저민은 그 침체의 이유를 어렴풋하게만 알고 있었다
그는 경기 침체가 철도 산업 버블이 터지면서 시작됐다고 생각했다. 그게 어떤 식으로든 은 가치의 폭락으로 이어졌고, 이어 금 가치가 폭락했으며, 결과적으로 1893년 공황으로 알려진 수많은 은행 파산으로 이어졌다고 말이다. 실제로 일어난 연쇄적 사건이 무엇이든 간에 벤저민은 걱정하지 않았다. 그는 시장은 오르락내리락하기 마련이라는 대략적인 생각을 하고 있었으며, 오늘의 손실이 내일의 수익이 되리라고 자신했다. 경제 위기 이십 년 전 일어났던 장기 불황 이래 최악의 위기였다 는 유럽 여행을 떠나겠다는 생각을 꺾기는커녕 부추기는 가장 큰 이유가 되었다.여행을 떠날 날짜를 정하려는데, 은행 담당자가 한 가지 정보를 주었다. 당시 미국에서는 금 보유고가 고갈되면서 너무도 많은 은행이 지급불능 상태에 빠졌는데, 이에 금 보유고를 복구하고자 발행된 채권에 어떤 “연줄”을 통해 청약할 수 있다는 얘기였다. 채권은 겨우 삼십 분 만에 전량 매진되었고, 래스크는 일주일 만에 상당한 이익을 얻었다. 행운은 그렇게, 굳이 청하지 않았는데도 유리한 정치적 변화와 시장 변동의 형태로 찾아왔다. 덕분에 벤저민이 물려받았지만 한 번도 신경써서 늘리려 하지 않았던 상당한 규모의 재산은 갑작스럽게, 또 겉보기에는 자연스럽게 불어났다. 일단 우연의 손길을 맛본 벤저민은 허기를 동하게 할 만한 큰 미끼를 보고서야 알게 된 어떤 굶주림이 자신의 핵심에 있다는 걸 깨달았다. 유럽은 미뤄둬야 했다.
벤저민의 자산은 예전부터 래스크 가문의 일을 처리해온 J. S. 윈슬로 회사라는 가족 승계 회사를 통해 보수적으로 관리되고 있었다. 아버지의 친구 중 한 명이 세운 이 회사는 현재 존 S. 윈슬로 2세의 손에 맡겨져 있었는데, 그는 벤저민의 친구가 되어보려 했다가 실패한 인물이었다. 그 결과 두 청년은 상당히 불편한 관계가 되었지만, 그럼에도 긴밀하게 협력했다
비록 메시지를 전달해줄 사람이나 전화를 통하긴 했지만 말이다. 벤저민은 억지스러운 상냥한 태도로 얼굴을 마주보고 해야 하는, 쓸데없이 반복되는 회의보다는 그런 방법을 선호했다.머잖아 벤저민은 티커를 읽고 패턴을 찾고 그 패턴을 분해하고 겉보기에는 아무 관련이 없는 추세 사이에서 숨겨진 인과관계를 찾는 데 능숙해졌다. 고객이 뛰어난 재능을 가진 학습자라는 것을 알게 된 윈슬로는 일을 실제보다 난해해 보이게 꾸며 벤저민의 예측을 일축했다. 그럼에도 벤저민은 자신만의 결정을 내리기 시작했고, 그런 결정은 대체로 회사의 자문에 배치되는 것이었다. 벤저민은 단기 투자에 이끌렸으며, 윈슬로에게 옵션과 선물 등 투기적인 수단으로 고위험 거래를 하라고 지시했다. 윈슬로는 늘 주의해야 한다며 이처럼 무모한 작전에 반대했다. 위험한 모험을 하다가 벤저민이 자산을 잃는 처지가 되게 두지는 않겠다고 했다. 사실 윈슬로는 고객의 자산보다는 자신이 어떻게 보일지를 더 걱정하는 인물로, 특정한 경제적 품위를 드러내려는 열정을 가지고 있었다
어쨌거나 윈슬로는 그가 언젠가 자기 재치에 얄팍하게 웃으며 말했듯이, 물주가 아닌 경리였고, 도박장이 아닌 금융회사를 책임지고 있는 사람이었으니 말이다. 윈슬로는 아버지로부터 건전한 투자를 추구한다는 명성을 물려받았으며, 이런 유산을 지킬 생각이었다. 하지만 마지막 순간에는 늘 벤저민의 지시에 따라 그가 시키는 대로 일을 처리했다.일 년이 지나지 않아, 벤저민은 자문가의 융통성 없는 태도와 느릿느릿한 속도에 질려 자기가 직접 거래를 하기로 하고 윈슬로를 해고했다. 두 세대에 걸쳐 무척 긴밀하게 이어지던 가족 간의 관계를 끊어버린 것은, 일을 직접 처리할 권한을 가지게 되며 인생에서 처음 경험한 진짜 성취감에 더 큰 만족감을 더해주었다.
◆
벤저민의 브라운스톤 저택 1층과 2층이 임시 사무실이 되었다. 어떤 계획에 따른 것이 아니라, 예기치 못하게 닥친 필요를 그때그때 충족시킨 결과로 일어난 변화였다. 결국 저택 1층과 2층은 예상치 못하게도 직원으로 가득찬 사무 공간 비슷한 것이 되었다. 시작은 벤저민의 지시로 증권과 채권과 다른 서류들을 들고 뉴욕 이곳저곳을 뛰어다니던 배달부였다. 며칠 뒤 소년은 벤저민에게 도움이 필요하다고 알렸다. 벤저민은 배달부를 한 명 더 고용하면서 전화를 담당할 소녀와 사무원도 한 명 구했는데, 사무원은 머잖아 자기 혼자만으로는 일을 감당할 수 없다고 알려왔다. 사람들을 관리하는 데 사업에 꼭 필요한 시간을 빼앗겼으므로 벤저민은 조수를 고용했다. 장부 기록이 너무 많은 시간을 잡아먹게 되어 회계사도 고용했다. 조수에게 조수가 생겼을 즈음 래스크는 새로 고용되는 이들을 더이상 파악할 수 없었고, 굳이 얼굴이나 이름을 기억하지 않게 되었다.
몇 년 동안 덮개를 씌운 채 손도 대지 않던 가구들을 이제는 비서와 심부름꾼 소년들이 함부로 다루었다. 주식 티커가 호두나무 소형 식기대에 설치되었다. 시세 게시판이 금박이 들어간 나뭇잎 무늬 벽지 대부분을 뒤덮었다. 신문더미를 놓아두는 바람에 긴 안락의자의 밀짚색 벨벳에 얼룩이 졌다. 타자기가 새틴우드 책상에 흠집을 냈다. 검은색과 빨간색 잉크가 장의자와 소파의 자수 덮개를 얼룩덜룩하게 물들였다. 마호가니 책상의 구불구불한 모서리가 담뱃불에 타버렸다. 떡갈나무 가구 다리에는 서두르는 발걸음에 흠집이 생겼고 페르시아 러너*는 영원히 더럽혀졌다. 부모의 방은 온전하게 보전되었다. 그는 꼭대기 층에서 잤다. 어린 시절에는 가본 적조차 없는 곳이었다.
* 가구 위나 바닥에 까는 길고 가는 천.
아버지의 사업체를 매수할 사람을 구하기는 어렵지 않았다. 벤저민은 버지니아주 소재의 제조사와 영국의 무역회사가 서로 입찰 경쟁을 벌이도록 부추겼다. 과거의 기억 중 이 부분과는 거리를 두고 싶었기에, 영국 회사가 이겨 담배회사가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가게 된 것을 보니 즐거웠다. 하지만 정말로 큰 충족감을 주었던 건, 이 매각을 통해 얻은 이윤으로 더 높은 차원에서 작업하고, 새로운 수준의 위험을 관리하고, 과거에는 고려할 수 없었던 장기 거래에 돈을 투자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었다. 주변 사람들은 벤저민의 부가 증가하는 것과 정비례하여 그의 소유물은 줄어드는 걸 보고 혼란스러워했다. 벤저민은 웨스트 17번가의 브라운스톤 저택과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을 포함해, 남아 있던 가족의 소유물 전부를 팔아 치웠다. 옷과 서류는 여행가방 두 개에 딱 들어갔고, 여행가방은 그가 스위트룸에 묵고 있는 왜그스태프호텔로 보내졌다.
벤저민은 돈의 뒤틀림에 매료됐다
돈을 뒤틀면, 돈이 자기 꼬리를 억지로 먹도록 만들 수 있었다. 투기의 고립되고도 자족적인 성질은 그의 성격과 잘 맞았고, 경이감의 원천이자 그 자체로 목표였다. 벌어들인 돈이 무엇을 나타내는지, 또 그 돈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는지와는 상관이 없었다. 사치란 천박한 부담이었다. 새로운 경험에 접근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고립된 영혼이 갈망하는 바는 아니었다. 정치와 권력 추구도 비사교적인 벤저민의 마음에는 아무 역할을 하지 않았다. 그는 체스나 브리지 같은 전략적인 게임에 한 번도 흥미를 느껴본 적이 없었다. 누군가에게 질문을 받았다면, 벤저민은 금융계에 끌린 이유가 무엇인지 설명하기를 어려워했을 것이다. 금융계의 복잡성이 한 가지 이유였던 건 사실이지만, 그 밖에도 벤저민에게 자본은 균 하나 없는 생물로 보였다는 이유도 있었다. 자본은 움직이고 먹고 자라고 새끼를 치고 병들며 죽을 수도 있지만, 깨끗하다. 시간이 지나면서 벤저민에게 이 점은 더욱 분명해졌다. 투기의 규모가 커질수록 벤저민은 구체적인 세부 사항과 멀어졌다. 그는 단 한 장의 지폐도 만질 필요가 없었으며, 자신의 거래로 영향을 받는 사물이나 사람들과도 관계를 맺을 필요가 없었다. 그가 해야 하는 일은 생각하고 말하는 것, 그리고 어쩌면 글을 쓰는 것이 전부였다. 그러면 자본이라는 살아 있는 생물이 움직이기 시작해 아름다운 패턴을 그리며 점점 더 추상적인 영역으로 들어갔다. 가끔은 벤저민이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자본 자신의 식욕을 따라가기도 했다 이 점이, 그 생명체가 자유의지를 행사하려 한다는 게 벤저민에게 또하나의 기쁨을 주었다. 벤저민은 그 생명체가 실망감을 안겨줄 때조차 그놈에게 감탄했고, 그놈을 이해했다.벤저민은 맨해튼 중심가에 대해 아는 것이 별로 없었다
그저 사무용 건물들로 이루어진 협곡과, 자신들이 얼마나 바쁜지 과시하느라 바쁘게 깡충거리는 사업가들로 가득찬 더럽고 좁은 거리가 싫을 뿐이었다. 하지만 금융가에 있는 게 편해서 사무실을 브로드 스트리트로 옮겼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이윤이 불어나면서는 익스체인지 플레이스에 자리를 얻었다. 벤저민의 직원들은 그가 기쁨의 분출도, 극적인 행동도 싫어한다는 걸 금세 깨달았다. 본질적인 내용만 남겨놓고 살점을 다 뜯어낸 대화가 귀엣말로 이루어졌다. 타자하는 소리가 잠시 잦아들면, 사무실 반대쪽 끝에서 가죽 의자가 삐걱거리는 소리나 실크 소매가 종이에 스쳐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소리 없는 물결이 언제나 공기를 흩뜨렸다. 그곳의 모든 사람은 자신들이 벤저민이 가진 의지의 연장선이며, 그의 욕구를 만족시키고 심지어 예상하되 자신의 욕구를 가지고 그에게 접근하지는 말아야 한다는 것을 명백히 알고 있었다. 벤저민에게 전해야 할 대단히 중요한 정보가 있는 게 아니라면, 그들은 벤저민이 말을 걸기를 기다렸다. 벤저민 밑에서 일하는 것이 수많은 트레이더의 장래 희망이 되었지만, 배울 수 있는 모든 것을 흡수했다고 생각하며 그의 밑에서 나온 사람 중에 옛 고용주의 성공을 복제해낼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벤저민은 무척 탐탁지 않아했지만, 금융계에서 그의 이름이 존경심을 담아 언급되기 시작했다. 아버지의 옛친구 몇 명이 찾아오기도 했다. 벤저민은 그들이 가져온 사업 제안을 일부 받아들였으나 그들이 건넨 팁과 조언은 언제나 무시했다. 그는 금과 구아노*, 다양한 화폐와 목화, 채권과 소고기를 거래했다. 그의 관심사는 더이상 미국에 국한되지 않았다. 영국, 유럽, 남아메리카, 아시아가 그에게 단일한 영토가 되었다. 그는 자기 사무실에 앉아 세상을 살펴보며 모험적인 고수익 채권을 찾았고, 그의 거래 때문에 빠져나올 수 없을 정도로 운명이 뒤엉켜버린 수많은 국가의 국채를 유동화했다. 때로는 발행된 국채 전체를 독차지할 수도 있었다. 드물게 실패하기도 했으나 그런 뒤에는 늘 엄청난 성공이 뒤따랐다. 벤저민 편에서 거래하는 모든 사람이 번창했다.
* 비료로 쓰이는 바닷새의 배설물.
벤저민의 뜻과는 반대로 점점 더 그의 “세계”가 되어가던 금융계에서 익명성만큼 두드러지는 특징은 없었다. 뒷담화가 그의 귀에 들어가는 경우는 없었지만, 벤저민은
까다로울 정도로 아무 특징 없는 외모와 검소한 습관, 수도승과도 같은 호텔 생활로 인해 자신이 일종의 “캐릭터”로 여겨질 게 틀림없다는 걸 알았다. 괴짜로 여겨진다는 생각만으로도 굴욕감을 느낀 그는 자기가 서 있는 위치의 남자에 대한 사람들의 기대에 부합하기로 결정했다. 그는 피프스 애비뉴와 62번가가 만나는 곳에 석회석으로 만든 보자르 양식의 대저택을 짓고, 오그던 코드먼을 고용해 그 저택을 장식하도록 했다. 그가 이룬 장식적 성취가 모든 사회면에 거론되리라고 확신했기 때문이었다. 저택이 완공되자 벤저민은 무도회를 열려고 시도했지만, 결국은 그러지 못했다 비서와 함께 손님 명단을 살펴보던 중 사회적 노력이란 들이면 들일수록 기하급수적으로 증대되는 존재라는 걸 이해하자마자 이런 시도를 포기했다. 그는 클럽과 위원회, 자선재단, 협회 몇 곳에 가입했으나 그런 곳에 모습을 드러내는 일은 거의 없었다. 벤저민은 이 모든 일을 하면서 불쾌감을 느꼈지만, “창의적인” 인물로 여겨졌다면 그보다 더 심한 불쾌감을 느꼈을 것이기에 결국 부자 역할을 하는 부자가 되었다. 자신이 처한 상황이 자신의 코스튬과 일치한다는 우연에도 벤저민의 기분은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
뉴욕은 미래를 추월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시끌벅적한 낙관주의로 부풀어올랐다. 물론, 이 맹렬한 성장으로 벤저민도 이익을 보았다. 하지만 벤저민에게 이건 엄밀한 숫자상의 사건이었다. 그는 최근 개통된 지하철을 타봐야 한다는 강박감을 느끼지 않았다. 도시 전체에 세워지는 수많은 고층빌딩 몇 곳에 가보기도 했지만, 그런 빌딩으로 사무실을 옮겨야겠다는 생각은 한 번도 들지 않았다. 그는 길가의 자동차든, 대화에서 거론되는 자동차든 모두 짜증나는 존재라고 생각했다. (벤저민에게 자동차는 직원과 거래처 사람들 사이에 만연하는 끝없이 지루한 화제가 되어버렸다.) 그는 피할 수만 있으면 도시를 하나로 묶어주는 새로운 다리들을 건너지 않았고, 매일같이 엘리스섬에 내리는 수많은 이민자들에게도 전혀 상관하지 않았다. 뉴욕에서 일어나는 일 대부분을 신문을 통해서, 또 무엇보다 티커 테이프의 암호를 통해서 경험했다. 그러나 도시에 대한 특정한(누군가는 편협하다고도 할 수 있는) 관점에도 불구하고, 벤저민조차 한 가지만은 느낄 수 있었다. 합병과 인수로 인해 전에 없던 규모의 몇 안 되는 회사로 부가 집중되었으나, 뉴욕에는 역설적이게도 모두가 성공했다는 집단적 느낌이 떠돌았다. 정부 예산 전체보다 가치가 높은, 새로 생겨난 이 같은 독점적 회사들의 어마어마한 덩치 자체가 전리품이 얼마나 불평등하게 분배되었는지를 보여주는 증거였다. 그런데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처한 상황과 관계없이 자기도 떠오르는 경제에 참여하고 있다고 확신했다
아니면, 머잖아 참여하게 될 거라고.그러다가 1907년에 니커보커 신탁회사 대표 찰스 바니가 구리 시장을 독점하려는 투기 작전에 연루되었다. 그 시도가 실패하면서 광산 하나와 중개업소 두 곳, 은행 한 곳이 박살나 폐허가 되었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니커보커가 발행한 수표는 더이상 인수되지 않으리라는 발표가 나왔다. 미국 상업은행은 이후 며칠 동안 예탁자들의 지불 요구를 받아주었고, 결국 바니는 문을 닫아걸고 약 한 달 뒤 자기 가슴을 총으로 쏘는 것밖에는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니커보커의 실패가 시장 전체에 공포의 물결을 일으켰다. 광범위한 매도로 시장은 대체로 지급불능 상태에 빠졌으며 주가가 곤두박질쳤다. 대출금은 회수되었고, 중개소는 파산을 신청했으며, 신탁회사들은 부도가 났고, 시중 은행은 도산했다. 모든 매매가 멈추었다. 사람들은 떼 지어 월 스트리트를 행진하며 투자금을 인출하게 해달라고 요구했다. 기마경찰관 부대가 공공질서를 유지하겠다고 이리저리 말을 달렸다. 시중에 현금이 돌지 않자 콜금리*가 며칠 만에 150퍼센트 넘게 치솟았다. 엄청난 양의 금괴가 유럽에서 들어왔지만, 대서양을 가로질러 흘러들어오는 수백만 개의 금괴도 위기를 누그러뜨리지는 못했다. 신용의 토대 자체가 무너져내리는 상황에서, 튼튼한 현금 보유고를 가지고 있던 벤저민은 유동성 위기를 이용했다. 그는 공황에 맞닥뜨린 회사 중 어느 곳이 살아남을 수 있을 정도로 탄력성이 있는지 알고 있었으며, 터무니없을 정도로 저평가된 가격에 자산을 골라 챙겼다. 벤저민은 J. P. 모건 사람들보다 한발 앞서 가치를 평가하는 경우가 많았다. 모건 사람들은 벤저민이 장에 들어온 직후에 뛰어들어 주가를 끌어올렸다. 사실, 이런 폭풍의 한가운데에서 벤저민은 모건으로부터 쪽지를 한 장 받기도 했다. 그 쪽지에서 모건은 벤저민의 아버지를 언급하며(“솔로몬의 담배는 내가 기쁘게 피워본 엽궐련 중 가장 품질이 좋았다네”) 자기 집 도서관에서, 자기가 가장 신뢰하는 사람들과 “우리 나라의 이익을 지키는 데 도움이 될” 이야기를 좀 하자고 벤저민을 초대했다. 벤저민은 핑계도 대지 않고 거절했다.
* 금융 기관 상호 간에 대차되는, 극히 짧은 기간의 고액 자금에 적용되는 이율.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벤저민은 위기 이후에 오른 새로운 정상에서 자신이 어떤 의미를 갖게 되었는지 알게 되었다. 어디를 가든 웅웅 울리는 후광이 그를 감싸고 있었다. 벤저민은 그 후광이 늘 자신과 세상을 가로막고 있다고 느꼈다. 다른 사람들도 그 후광의 존재를 느낀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겉으로 보기에 그의 일과는 변하지 않았다
그는 피프스 애비뉴에 있는, 대체로 사람이 없는 자기 집에만 머물며 강도 높은 사회생활을 하고 있다는 외면적인 착각을 계속 불러일으켰다. 실제로 그 사회생활은 유령 회원으로 참석해도 큰 효과를 낼 수 있을 만한 몇몇 행사에 모습을 드러내는 데 그쳤다. 하지만 공황 시기에 일으킨 쿠데타로 그는 다른 사람이 되었다. 그 자신에게조차 정말로 놀라웠던 점은, 그가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서 그를 알아보았다는 기색을 찾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벤저민은 사람들이 그를 둘러싼 웅웅 소리를, 그 떨림을, 그들을 벤저민과 멀어지게 하는 바로 그 존재를 알아챘다는 걸 확인하고 싶다는 욕망에 굶주렸다. 역설적이긴 하지만, 자신과 다른 사람들을 구분 짓는 이런 거리감을 확인하고 싶다는 마음은 그들과 영적 교감을 나누는 한 가지 형태였다. 새로운 감정이었다.이제 벤저민은 사업에 관한 모든 결정을 일일이 내리기가 불가능해졌기에 어쩔 수 없이 사무실의 젊은 남자와 친교를 맺었다. 사다리를 타고 올라와 그가 가장 신뢰하는 조수가 된 셸던 로이드는 벤저민의 관심이 필요한 매일의 문제를 걸러내, 진짜로 중요한 이슈만이 벤저민의 책상에 오르도록 했다. 셸던은 일일 회의에도 몇 차례 참석했다
셸던의 고용주는 힘을 과시할 필요가 있을 때만 그와 함께했다. 셸던은 여러 측면에서 벤저민이 혐오하는 금융계의 모습 대부분의 화신과도 같았다. 대부분의 사람에게 그렇듯 셸던에게도 돈은 어떤 목적을 위한 수단이었다. 셸던은 돈을 써버렸다. 집, 탈것, 동물, 그림 같은 것을 샀다. 그런 것들에 대해 큰 소리로 떠벌렸다. 여행을 하고 파티를 열었다. 몸에 자기 부를 걸치고 다녔다 셸던의 피부에서는 매일 다른 냄새가 났고, 셔츠는 다려 입은 게 아니라 새것이었다. 코트는 거의 셸던의 머리카락만큼 반짝였다. 셸던은 관습적이면서도 당혹스러운 자질, 즉 “취향”으로 넘칠 듯했다. 벤저민은 오직 남에게 고용된 사람만이 다른 사람이 준 돈을 그런 식으로, 안도감과 자유를 찾아 써버릴 거라고 생각하며 그를 바라보곤 했다.벤저민이 셸던 로이드를 유용하다고 생각한 이유가 바로 그런 경박함이었다. 그의 조수가 영민한 트레이더라는 건 사실이었다. 하지만 벤저민은 동시에, 고객과 스쳐가는 인연들이 보기에는 셸던이 “성공”이라고 여길 만한 것의 전형적인 모습을 체화한 사람이라는 걸 이해했다. 셸던은 벤저민의 사업에 완벽한 대변인이었다
여러 맥락에서 고용주인 벤저민보다 훨씬 더 효과적인 존재감을 드러냈다. 자본가는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가에 관한 모든 기대치를 셸던이 너무도 충실하게 따랐으므로, 벤저민은 그에게 공식적인 업무 이상의 일을 맡기기 시작했다. 벤저민은 셸던에게 만찬과 파티를 준비해달라고 했고, 셸던은 기꺼이 그 말에 따라 벤저민의 집을 자기 친구들과 벤저민을 기쁘게 해주려고 안달인 이사회 사람들, 투자자들로 북적거리게 만들었다. 진짜 주최자는 어김없이 일찍 자리를 떴지만, 그가 그럭저럭 적극적인 사회생활을 하고 있다는 허구는 강화되었다.1914년, 셸던 로이드는 도이치뱅크 및 독일 제약회사와의 거래를 마무리하고, 고용주를 대리해 스위스에서 어떤 사업을 수행하고자 유럽으로 출장을 갔다. 벤저민이 새롭게 번창하는 지역 은행의 지분을 인수하려고 셸던을 취리히로 보낸 것인데, 세계대전 때문에 셸던의 발이 그곳에 묶였다.
집에서, 벤저민은 재산을 떠받치고 있는 만질 수 있는 토대, 즉 전쟁으로 인해 하나의 기계장치로 융합된 사물과 사람에게 관심을 돌렸다. 벤저민은 광산업에서부터 제철, 군수품 제조, 조선 등 전쟁과 관련된 분야에 투자했다. 평시에 비행기가 가질 상업적 잠재력을 보고 항공에도 관심을 두었다. 그 시절의 특징이라 할 수 있는 기술적 진보에 매료된 그는 화학회사에 투자하고 엔지니어링 벤처기업에 돈을 댔으며, 세계의 산업을 돌아가게 하는 새로운 엔진 속에 숨겨진 수많은 부품과 윤활유에 특허를 받아두었다. 유럽에 둔 대리인들을 통해 전쟁과 연관된 모든 국가에서 발행한 채권도 유동화했다. 벤저민의 부는 위협적일 정도로 쌓였지만, 이는 그가 이룬 진정한 상승의 시작점일 뿐이었다.
영향력이 커질수록 벤저민은 과묵해졌다. 그가 한 투자가 사회의 더 먼 곳, 더 깊은 곳까지 확장될수록 그는 자기 내면으로 물러났다. 겉으로 보기에, 벤저민은 재산을 이루는 사실상 무한한 매체들 때문에
주식과 채권은 회사에 묶여 있고, 회사는 토지와 장비와 노동하는 다수에게 묶여 있으며, 노동하는 다수는 전 세계의 또다른 다수가 한 노동을 통해 의식주를 제공받고, 전 세계의 또다른 다수는 가치가 매겨진 다양한 화폐로 임금을 지불받으며, 그 화폐는 거래와 투기의 대상이기도 하고 다양한 국가 경제의 운명에 묶여 있으며, 그런 국가 경제는 궁극적으로 주식과 채권에 묶인 회사에 묶여 있다는 무한한 연쇄 때문에 눈앞의 관계들은 전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게 된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는 인생의 중간 지점이라고 생각되는 시기를 지나면서, 혈통상의 책임을 어렴풋하게 느꼈고 사회적 적절함은 그보다 더 어렴풋하게 생각한 끝에 결혼을 고려하게 되었다.
둘
브레보트 가문은 명성은 있지만 그만한 재산은 없는, 올버니*의 오래된 가문이었다. 이 가문은 삼대에 걸쳐 실패한 정치인과 소설가들을 배출한 끝에 품위 있으면서도 불안정한 상태로 전락했다. 펄 스트리트에 있는 이 가문의 저택은 올버니에서 가장 먼저 지어진 건물 중 하나로서 바로 그런 품위를 구현한 존재였으며, 레오폴드와 캐서린 브레보트 부부의 삶은 대체로 그 저택을 유지하는 것을 중심으로 돌아갔다. 헬렌이 태어났을 때, 부부는 손님 접대에 쓰는 공간인 아래층에 온전한 관심을 쏟기 위해 위층을 폐쇄해버렸다. 부부의 응접실은 올버니 사교계의 중심지 중 하나였다. 브레보트 부부는 살림살이가 쪼그라들어가는데도 셔머혼, 리빙스턴, 밴렌슬리어 가문의 손님들을 계속 받았다. 부부가 주최한 모임이 큰 성공을 거두었다면, 그건 이들이 가벼움(캐서린에게는 상대에게 대화 기술이 뛰어난 사람이라도 된 것 같은 기분을 느끼게 해주는 재주가 있었다)과 진지함(레오폴드는 이 지역의 지식인이자 도덕적 권위자로 널리 인정받았다) 사이에서 보기 드문 균형을 이루어냈기 때문이었다.
* 미국 뉴욕주의 주도.
부부의 무대에서는 정치에 간여하는 것이 상당히 천박한 일로 간주되었다. 이들의 문학에서는 보헤미안의 냄새가 났다. 하지만 브레보트 씨는 정치철학에 관한 책 두 권을 씀으로써, 조상들이 공직에 대해 보였던 신사답지 못한 사랑과 문어체적 언어를 결합해냈다. 그 작품이 맞이한 완벽한 침묵에 씁쓸함을 느낀 그는 어린 딸에게 관심을 돌려 아이의 교육을 직접 맡았다. 헬렌이 태어났을 즈음 브레보트 씨는 실패해가는 온갖 일에 정신이 팔린 나머지 아이에게 진지한 관심을 기울일 수 없었지만, 교육을 책임지기로 결정한 지금은 아이의 성격 모든 측면에서 기쁨을 느꼈다. 헬렌은 다섯 살 때 이미 독서광이었다. 그녀의 아버지는 아이가 조숙한 대화 상대라는 걸 알고 놀랐다. 두 사람은 허드슨강을 따라 오래도록, 이따금 밤이 이슥할 때까지 걸으며 주변의 자연현상에 대해 토론했다
올챙이와 별자리, 낙엽과 그 낙엽을 실어나르는 바람, 달무리와 수사슴의 뿔 같은 것들에 대해서. 레오폴드로서는 처음 경험하는 기쁨이었다.레오폴드는 손에 넣을 수 있는 모든 교재가 불충분하다고 느꼈다. 내용도, 교육적 접근 방법도 의문스러웠다. 그러므로 아이를 가르치고 있을 때나 아내가 그를 위해 늘 만들어내는 것처럼 보이는 사회적 의무를 돌볼 때가 아니면, 브레보트 씨는 지침서를 작성하고 딸이 쓸 연습용 교재를 만드느라 바빴다. 이런 교재에는 교육용 게임과 수수께끼, 헬렌이 재미있어하며 거의 틀림없이 풀어내는 퍼즐이 들어 있었다. 둘의 교육 프로그램에서는 과학과 함께 문학도 중요한 자리를 차지했다. 둘은 미국 초월론자의 작품과 프랑스 도덕주의자의 작품, 아일랜드 풍자극, 독일 격언집을 읽었다. 그들은 한물간 사전에 의존하며 스칸디나비아, 고대 로마, 그리스의 이야기와 우화를 번역했다. 이런 노력의 결과로 나온 대단히 우스꽝스러운 작품을 보고 고무된 그들은(브레보트 부인은 자주 두 사람의 작은 서재로 쳐들어와, 손님 접대를 하고 있을 때 “말처럼 히힝거리며” 웃어대지 말라고 부탁해야만 했다) 터무니없는 가짜 신화 모음집을 만들기 시작했다. 아버지의 지도를 받아 공부하던 첫 이삼 년은 헬렌에게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시절로 남을 터였다. 시간이 지나 기억의 자세한 내용이나 윤곽이 희미해지더라도 신이 나고 풍족했던 대체적인 느낌은 언제나 머릿속에 선명하고 생생하게 살아 있을 것 같았다.
브레보트 씨는 수업 계획표의 범위를 넓혀보려던 중 변덕스러운 연구 방법론에 따라 이미 사라진 과학 이론과 폐기된 철학 체계, 착란에 빠진 심리학 원칙, 불경한 신학적 교리에 이끌렸다. 종교와 과학을 융합하려던 그는 에마누엘 스베덴보리*의 가르침에 빠져들었다. 그때가 레오폴드의 인생에서, 또 딸과의 관계에서 전환점이었다. 스베덴보리의 가르침에 따라, 그는 회개와 두려움이 아니라 이성이야말로 덕에 이르는, 심지어 신성神性에 이르는 길이라고 믿게 되었다. 수학 논문보다 나은 것은 성경밖에 없었다. 브레보트 씨는 예닐곱 살 된 헬렌이 난해한 대수학 문제를 우아하고 쉽게 푸는 모습에 기쁨을 느끼며, 수많은 성경 구절에 대해 자세히 해설을 해주기도 했다. 그는 또 헬렌에게 꼼꼼하게 꿈 일기를 적으라고 했다. 그런 다음 둘은 천사들이 보낸 암호화된 편지를 찾아 수비학數秘學적 열정을 가지고 그 일기를 읽었다.
* 스웨덴의 과학자, 신비주의자, 철학자.
브레보트 씨가 전에 누리던 기쁨 중 어떤 것들은 신학에 대해 새로이 느낀 열정의 그늘에 가려져 시들었다. 그래도 헬렌은 최대한 지난 몇 년 동안의 명랑한 기분을 유지했다. 헬렌은 점점 더 짙어져가는 매일의 수업의 지루함을 덜어보고자 점점 더 멀어져가는 아버지에게 장난을 걸게 되었다. 사실, 브레보트 씨의 강의 계획표는 대부분 즉흥적으로 만들어진 만큼 헬렌이 재미있어하고 몰두하는 과목*을 만들어 가족의 미래를 예언했다. 구약성서에 관해 자기만의 신비주의적 해석을 했다. 이런 해석은 난해한 수학적 논거로 뒷받침되었는데, 아버지는 그런 근거를 이해하든 못하든 늘 인상적이라고 생각했다. 꿈 일기를 충격적인 내용으로 채우기도 했다. 그중에는 점잖지 못한 내용의 경계에 아슬아슬하게 걸친 것도 있었다. 레오폴드는 헬렌에게 꿈 이야기를 할 때는 조금의 타협도 없이 솔직해야 한다고 했는데, 헬렌은 자기가 지어낸 살짝 더러운 이야기들을 읽으며 아버지가 두려움을 제대로 감추지 못한 채 턱을 떠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즐거워했다.
산수, 광학, 삼각법, 화학, 천문학 을 상당 부분 포함하고 있었으나, 헬렌은 그중 비교적 신비주의적인 부분을 지루하다고 느꼈다. 그러다가 그런 부분을 이리저리 비틀며 즐기는 방법을 발견했다. 그녀는 성경 속 예언을 활용한 애너그램* 단어나 문장을 구성하고 있는 문자의 순서를 바꾸어 다른 단어나 문장을 만드는 것.
꿈 지어내기는 처음엔 장난으로 시작됐지만, 결국 필수적인 일이 되었다. 아홉 살이 되었을 무렵부터 헬렌은 불면증으로 긴 밤을 보내기 시작했다. 그녀는 불면증 때문에 꿈뿐만 아니라 평화도 잃었다. 얼음장 같은 불안의 포자들이 머릿속을 잠식하고 그곳을 두려움의 황무지로 바꿔버렸다. 핏줄에는 묽어진 피가 너무 빠르게 흐르는 것처럼 느껴졌다. 가끔은 심장이 헐떡거리는 것마저 느껴지는 듯했다. 두려움으로 가득한 잠 못 드는 밤은 점점 더 자주 찾아왔고, 그런 밤 이후 이어지는 날은 아스라하게만 여겨졌다. 현실을 유지하기 위해 해야 할 몫을 하는 것이 불가능해졌다. 그러나 부모는 이처럼 풀 죽은 모습을 더 좋아했다
아버지는 아무런 영감이 없는 헬렌의 작품에 아주 큰 기쁨을 느꼈으며, 어머니는 그녀가 좀더 다가가기 쉬운 존재가 되었다고 생각했다.헬렌은 머잖아 자신이 그저 아버지의 제자가 아니라 연구 대상이 되기도 했다는 걸 깨달았다. 아버지는 자기 교육의 구체적 결과에 관심을 두는 듯했고, 그런 교육이 딸의 정신과 도덕관념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추적했다. 아버지에게 검사를 받을 때면, 헬렌은 다른 누군가가 아버지의 눈 뒤에서 밖을 내다보고 있다는 생각이 자주 들었다.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헬렌은 이 모든 캐묻기 때문에 자신이 조용하고 젠체하지 않는 성격을 형성하게 되었다는 걸 깨달았다. 이런 성격은 헬렌이 부모와 부모의 친구들 곁에 있을 때 한 점 오류도 없이, 한결같이 연기해낸 배역이기도 했다
그녀는 소심하게 예의바르고, 최대한 말을 아꼈으며, 가능하면 고갯짓이나 단답형으로만 대답했다. 늘 사람들의 시선을 피했으며, 무슨 대가를 치르더라도 어른들과 함께 있으려 하지 않았다. 이런 페르소나를 한 번도 버린 적이 없던 그녀는 만년에 이르러 이 성격이 늘 자신의 진정한 모습이었는지, 아니면 세월이 지나면서 영혼이 가면에 맞추어진 것인지 궁금해졌다.집안 형편이 나빠져가는데도 펄 스트리트에서의 모임은 계속 인기가 있었다. 브레보트 부인의 매력과 능란한 솜씨가 이로써 증명된 셈이었다. 브레보트 부인이 내놓는 차의 품질이 떨어져도, 그녀가 도와주던 사람들을 여러 명 저버려도 손님들은 떠나지 않았다. 하는 말이 수수께끼처럼 변해가듯 행동도 별나게 변해가던 그녀의 남편조차 손님들의 발길을 돌릴 수는 없었다. 브레보트 부인은 순전히 매력만으로
여기에 능숙한 정치적 처신도 더해야겠지만 자기 집 응접실을 올버니의 사교계 및 지식인들의 중심으로 남아 있게 했다. 하지만 위층을 다시 개방하고 최선을 다해 가구를 채워 세입자를 받아야 하는 순간이 왔다. 브레보트 부인이라면 공무원들이 자기 집 계단을 쿵쿵거리며 오르내리는 치욕을 피할 방법을 생각해낼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의 단골손님들은 그녀를 위해서라도 다른 곳에서 모이는 게 더 적절한 행동이라고 생각했다. 브레보트 가족이 올버니는 자신들이 지내기에 너무 촌스러운 곳이라고 생각한 건 이즈음이었다.그들은 뉴욕시에서 한 달을 살고 유럽으로 출발했다. 뉴욕에서는 이스트 84번가와 매디슨 애비뉴에 있는, 브레보트 부인의 친구 집에서 지냈다. 그 집에서 겨우 몇 블록 떨어진 곳에, 아무도 헬렌이 미래에 살게 될 집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던 저택이 있었다. 사실, 몇 년 뒤 헬렌은 당시 뉴욕에서 보낸 시간을 되돌아보며 어머니와 함께 산책하던 열한 살의 자신이 미래의 남편이 될, 이미 성공을 거둔 사업가를 보았을지 궁금해하곤 했다. 소녀와 남자는 서로를 본 적이 있을까? 어쨌든, 어린 헬렌이 결혼 후 그녀의 관심과 우정을 놓고 경쟁하게 될 수많은 사람과 지루한 시간을 보내곤 했다는 건 확실했다. 어머니는 점심식사, 강연회, 차담회, 시 낭송회 등 한 달 동안 참석할 수 있었던 모든 낮 모임에 헬렌을 데려갔다. 브레보트 부인은 아버지한테서 받는 식물학 수업이나 그리스어 수업보다 이런 행사에서 배울 수 있는 것이 교육에 더 중요하다고 자주 말했다. 습관대로, 헬렌은 이런 모임에서 침묵을 지켰다
십 년 뒤 그들 중 다수의 얼굴을 알아보고 목소리를 알아듣게 되리라는 건 전혀 모른 채로, 누가 그녀를 기억하거나 잊은 체하는지 안다는 게 어른이 된 자신에게 얼마나 큰 도움이 될지 상상조차 하지 못한 채로, 지켜보고 귀기울였다.◆
브레보트 부인이 아니었다면 가족은 유럽에서 살 수 없었을 것이다. 처음 프랑스에 도착하자마자 그들은 생클루의 초라한 방을 잡았다. 하지만 캐서린 브레보트 부인은 곧 그곳이 파리 중심지와 너무 떨어져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녀는 할일이 많았으므로 혼자서 며칠 동안 생루이섬에 방문했다. 지인들이나 한번 만나자던 사람들을 찾아가 뉴욕의 소식과 편지, 민감한 메시지를 전해주었다. 첫째 주가 끝나기도 전에 브레보트 가족은 보주 광장에 있는 마거릿 풀먼의 저택에서 지내라는 초대를 받았다. 비슷한 상황이 거의 모든 곳에서 반복되었다. 브레보트 가족은 비아리츠, 몽트뢰, 로마에 도착해서도 시내에 있는, 등급은 좀 떨어지지만 괜찮은 동네의 팡시옹*이나 알베르고**에 자리를 잡았다. 그런 다음 브레보트 부인은 일주일 정도 친구들을 찾아다니며 메시지를 전해주고 미국 동포들을 새로 사귀었다. 그러고 나면 가족은 그중 한명의 손님으로 초대받았다. 게다가 시간이 지나자 역할이 바뀌었다. 처음에는 브레보트 부인이 좀더 사정이 좋은 동포들의 친절함에 의지하는 입장이었지만, 일 년쯤 지나자 브레보트 부인에게 자기 집에 있어달라고 요청하는 사람이 너무 많아져 초청을 거절해야 할 지경에 이르렀다. 그럴수록 그녀는 더욱더 함께하고 싶은 사람이 되었다. 브레보트 가족이 어디에 가든, 그녀는 알아둘 만한 가치가 있는 미국인 방랑자들을 연결해주는 교점이 되었다.
* 프랑스의 기숙사형 주택.
** 여관이나 여인숙.
해외에 거주하는 미국인들이 서로를 피하는 건 그리 드문 일이 아니었다. 불문율에 따라 그게 적절한 일이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들은 유럽에 친구가 없어서 고향에서부터 알고 지낸 지인들에게 의지하는 촌뜨기로 보이고 싶어하지 않았다. 브레보트 부인은 이런 코드를 잘 알고 있었기에 외로움을 자처한 외국인들 사이에서 일종의 배달부가 되었고, 그들은 다른 미국인과 떨어져 자율성을 유지하고 있다는 허세를 계속 부릴 수 있게 해주는 브레보트 부인의 서비스를 진심으로 환영했다. 다른 사람이 맡았다면 매우 어색해졌을 법한 상황에서도, 브레보트 부인은 미국인들을 서로 무척 알고 지내고 싶어하던 상대에게 자연스럽게 소개해줄 수 있었다. 그녀는 망가진 관계를 고치고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냈다. 상류사회에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한편, 그곳이 배타적인 곳이라는 느낌을 유지하는 중요한 일을 해냈다. 모두 그녀가 견줄 상대가 없는 이야기꾼이자 완벽한 중매쟁이라고 생각했다.
(계절에 따라) 산맥과 바닷가, 혹은 도시를 가로질러 여행하며, (편의에 따라) 오래 머물거나, 잠시 체류하거나, 서둘러 지나가면서 브레보트 가족은 자신들만의 독특한 그랜드 투어* 지도를 그렸다. 브레보트 씨는 이 시간을 대부분 딸을 가르치고 여러 신비주의 모임을 찾아다니는 데 썼다 그는 심령술, 연금술, 최면술, 강령술 등 다양한 신비주의에 완전히 몰입했다. 헬렌은 친구이자 유럽에서 유일하게 마음이 맞는 동반자였던 아버지를 잃어 안 그래도 마음이 무거웠지만, 영혼이 새로운 차원으로 가라앉는 것 같았던 것도 이즈음이었다. 헬렌은 나이를 먹었고 책도 많이 읽었고 교육도 충분히 받았기에 레오폴드가 헛소리 수집가가 되어간다는 걸 깨달았다. 몇 년 전만 해도 두 사람이 함께 괴이한 이야기를 지어내고 놀 때 영감으로 삼았던 교리와 신념이 아버지의 마음속에서 헬렌의 자리를 대신하고 있었다. 아버지가 멀어져가는 걸 보는 것만 해도 슬펐는데, 아버지의 지성에 대한 존경심이 함께 사라져가는 걸 깨닫자 마음이 무너질 듯했다.
* 17세기경 영국의 귀족과 신사들이 유럽을 돌아보던 일종의 관광 여행.
하지만 브레보트 씨가 딸의 재능을 완전히 잊은 건 아니었다. 여행을 시작하고 몇 년이 지났을 때, 브레보트 씨는 언어, 숫자, 성서 해석학에 관한 딸의 적성, 그리고 자신이 신비주의적 직관이라고 부르는 딸의 능력이 그가 감당할 수 있는 선을 넘어섰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딸에게 더 많은 교육을 해줄 수 있는 다양한 학자들을 중심으로 가족의 여행 일정표 일부를 짜기 시작했다. 그래서 가족은 작은 시골 마을이나 대학가 근교에 있는 호스텔의 초라한 기숙사에 머물러야 했다. 이런 곳에서 어머니와 아버지, 딸은 함께할 사람이라고는 서로밖에 없는 상태에서 시간을 보내야만 했다. 따로 떨어진데다 본래의 활동 영역까지 잃은 브레보트 부부는 다툼이 많아졌고 점점 못되게 굴었다. 헬렌은 점차 내면으로 더 깊숙이 물러났고, 그녀의 침묵은 부모에게 점점 더 신랄한 말다툼을 벌일 전장이 되었다. 하지만 가족이 마침내 저명한 교수나 신비주의 권위자와 만나면, 헬렌은 늘 달라진 모습을 보였다. 갑자기 자신감으로 수정처럼 빛났다
헬렌 안의 무언가가 단단해져 반짝이고 날카로워졌다.예나* 한복판이든, 툴루즈 근교든, 볼로냐 교외든, 일과는 거의 같았다. 그들은 여관에 방을 구했고, 브레보트 부인은 몸이 좀 안 좋아서 쉬어야겠다고 했으며, 브레보트 씨는 딸을 데리고 그곳을 찾은 이유인 위인을 만나러 갔다. 레오폴드 브레보트가 길고 대체로 알아들을 수 없는 자기소개를 하면, 위인은 어김없이 우려와 안타까움을 담아 레오폴드와 그의 딸을 바라보았다. 레오폴드의 신념은 상당히 신비주의적으로 변했을 뿐 아니라, 거의 허구의 프랑스어와 독일어, 이탈리아어가 뒤범벅된 말로 전달되었다. 학자나 신비주의자 중 일부는 헬렌의 성서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학업 성취, 다양한 밀교의 교리에 대한 유창성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브레보트 씨는 그들의 관심을 감지하고 뭔가 말하려 했지만, 상대방은 손을 들어 그의 말을 막거나 면담 내내 그를 무시했다. 교사 중 몇 명은 브레보트 씨에게 방에서 나가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그리고 일부는 교육적인 온기를 담아 헬렌의 다리를 움켜쥐었다가 그녀의 치명적인 수동성과 물러설 줄 모르고 노려보는 눈에 겁을 먹고 손을 치웠다.
* 독일 남부의 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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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렌은 올버니에서의 어린 시절과 결별했다. 계속해서 이사를 다녔기에 또래 여자아이들을 몇 명 만나지도 못했고, 우연히 만나더라도 그런 관계가 온전한 우정으로 꽃필 기회는 없었다. 시간을 보내느라 책을 읽으며 다양한 언어를 독학했고, 이때 읽은 책들을 여러 집과 호텔에 바꿔가며 꽂아두었다
니스의 책장에서 『클레브 공작부인』을 가져와 시에나의 도서관에 『걸리버 여행기』 스페인어판을 꺼낸 자리에 꽂아두고, 『걸리버 여행기』로는 뮌헨에서 『적과 흑』 독일어판을 빌리며 생긴 틈새를 메워놓았다. 불면증이 계속 헬렌의 밤을 지배하려 했기에 그녀는 추상적인 공포의 맹공격을 막을 방패로 책을 사용했다. 책으로 충분하지 않게 되자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아버지가 몇 년간 쓰도록 했던 꿈 일기는 매일 생각을 기록하는 습관을 심어주었다. 시간이 지나 아버지가 더이상 일기를 읽지 않게 되자 헬렌의 글은 꿈에서 벗어나 책에 관한 생각이나 방문한 도시에 대한 인상을 다루게 되었다. 유난히 잠들지 못하는 새하얀 밤이면, 가장 깊은 내면의 두려움과 갈망을 다루기도 했다.청소년기 초기에 조용하지만 결정적인 사건이 벌어졌다. 헬렌은 부모와 함께 루카*에 있는 오스굿 부인의 별장에서 지내고 있었다. 그녀는 뜨거운 날씨에 정신이 아찔해진 채 별장 부지를 가로질러 걸어가다가 빈 저택을 한 바퀴 빙 돌았다. 손님은 그들뿐이었다. 헬렌의 발소리에 하인들이 서둘러 멀어졌다. 시원한 테라코타 바닥에 쭉 뻗어 있던 개 한 마리는 반쯤 뜬 눈으로 자기 머리통 속을 바라보면서 꿈을 꾸며 몸을 움찔거리고 있었다. 헬렌은 응접실을 들여다보았다. 아버지와 오스굿 씨가 안락의자에 잠들어 있었다. 살짝 잔인한 기분이 들었다. 해를 끼치고 싶다는 어렴풋한 바람에 사로잡혔다. 헬렌은 자기가 지루함의 밑바닥 너머를 보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 너머에는 폭력이 있었다. 그녀는 홱 돌아 정원으로 들어갔다. 어머니와 어머니를 초대한 집주인이 레모네이드를 마시고 있던 그늘진 장소에 이르렀을 때, 그녀는 마을로 산책하러 가겠다고만 말했다. 헬렌의 말투가 너무 위압적이어서 그랬는지, 어머니가 오스굿 부인과 속삭이며 열띤 대화를 나누고 있었기 때문인지, 헤이즐넛과 구리색으로 물든 루카가 그날 오후 자비로운 빛을 뿜어내고 있었기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아무도 반대하지 않았다. 그저 브레보트 부인이 힐끗 헬렌을 보며, 딸에게 파세자타**를 즐기되 너무 멀리 가지는 말라고 말했을 뿐이다. 그렇게, 헬렌만 알아챈 인생의 새로운 장이 열렸다. 난생처음으로, 그녀는 혼자 세상에 나섰다.
* 이탈리아의 도시.
** ‘산책’이라는 뜻의 이탈리아어.
헬렌은 독립이라는 꿈이 실현된 데 취해 시골길이나 그 주변에는 거의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그러나 마을에서 처음으로 마주친, 치장 벽토를 바른 고요함에는 정신을 차렸다. 빈 거리에서 들리는 소리라고는 그녀의 신발이 자갈길에 닿는 건조한 메아리뿐이었다. 헬렌은 몇 걸음 갈 때마다 한쪽 발을 부드럽게 끌었다. 그저 가죽이 돌에 스치는 조용한 소리에 목덜미가 얼얼해지는 즐거움을 느끼고 싶어서였다. 골목을 지날 때마다 작은 도시는 점점 더 활기를 띠었다. 처음의 고요함에서 느꼈던 황홀감을 연장하고 싶어서, 그녀는 자신감에 찬 침착한 태도로 계속 걸어갔다. 멀리 교차로에서 들려오는 요란한 목소리로부터, 광장에서 나는 시장의 달가닥거리는 소리로부터, 모퉁이를 또각또각 돌아가는 물 흐르는 듯한 발굽소리로부터, 빨래를 걷으며 이 집 창문에서 저 집 창문으로 소리를 질러대는 여자들로부터 멀어져 열기를 막느라 덧문을 내리고 있는 집들이 있는 골목으로 들어갔다. 거기에서는 다시 그녀의 외로운 발걸음소리가 들렸다. 그때 헬렌은 이처럼 엄숙한 형태의 기쁨을, 아무런 내용물이 없기에 너무도 순수하고 다른 누구에게 기대지 않기에 너무도 기댈 만한 그 기쁨을 앞으로도 가지려고 노력하게 되리라는 걸 깨달았다.
무슨 기념식인지 종교 페스타인지가 열리고 있는 광장의 소음을 피하려다가 헬렌은 몇몇 가게가 있는 거리에 들어서게 되었다. 그 가게 중 하나는 이중으로 시대착오적이었다. 에트루리아 시대부터 존재해왔기에 중세 교회가 새롭게 느껴지는 이 작은 도시에, 사진관은 그야말로 어울리지 않았다. 하지만 더 가까이에서 살펴보니, 미래에서 들려오는 불협화음의 유령 같은 이 사진관은 사실 오래된 곳이었다. 창문 안의 인물 사진과 전시된 카메라, 사진관에서 제공하는 서비스 모두가 사진술 초창기로 반송된 듯했다. 어째서인지 헬렌은 그 가게가 쇠퇴해온 삼십 년 혹은 오십 년의 세월이 루카가 세워진 이후 흐른 이천 년의 세월보다 더 민감하게 느껴졌다. 헬렌은 가게로 들어갔다.
미묘하게 깨끗하지 않은 창문으로 쏟아져들어오는 빛 때문에 공기에 분필 가루를 풀어놓은 것만 같은 그 가게에서는 기이한 우유부단함이 느껴졌다. 처음에 헬렌은 비커와 피펫, 이상한 형태의 유리 기기를 보고, 이름표가 붙은 플라스크와 유리병, 유리로 만든 통과 마찬가지로 그것들이 자전거와 로마 군대의 투구, 파라솔과 박제된 동물, 인형과 선원 복장처럼 그 공간을 어지럽게 채우고 있는 다양한 소품 중 하나일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서서히 이곳이 과학과 미술의 영역 사이 어딘가에 붙들려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여기는 과연 화학자의 실험실일까, 화가의 작업실일까? 보기에는 양측이 모두 한참 전에 포기하고, 분쟁을 해결하지 않은 채로 놔둔 것만 같았다.
친절한 표정, 혹은 기진맥진한 표정의 왜소한 남자가 뒤쪽 커튼 너머에서 나왔다. 그는 외국에서 온 어린 아가씨가 이탈리아어를 무척 잘하는 걸 보고 즐거워했다. 짧은 대화를 나눈 뒤, 그는 캐비닛 카드* 앨범을 내밀었다. 앨범에는 헬렌의 어머니가 어렸을 때 수집하던 구식 사진들이 들어 있었다. 헬렌은 사진 속 군인과 사냥꾼, 선원이 들고 있는 여러 물건을 알아보았다. 남자는 헬렌이 인상적인 미네르바가 될 게 틀림없다고 말했다. 그는 파르테논신전 배경을 펼치고 헬렌을 그 앞에 세우더니, 소품을 뒤져 투구와 창, 박제된 올빼미를 찾았다. 헬렌은 거절했다. 하지만 사진사의 얼굴에 실망감이 떠오르기 전에, 사진은 꼭 찍고 싶다고 말했다. 하지만 의상은 입지 않을 것이다. 배경도 쓰지 않을 것이다. 그저 그 자리에, 가게에 서 있는 자기 모습을 찍어달라고 했다. 사진사는 기뻐하는 동시에 혼란스러워하며 헬렌의 새로운 인생 첫날을 기록했다.
* 1870년 이후 인물 사진에 주로 사용된 것으로, 108×165밀리미터 크기의 카드에 얇은 사진을 붙인 형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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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에 온 지 사 년 만에 브레보트 가족은 미국 이민자들이 자주 가는 수도와 휴양지에 전부 들렀다. 한편, 헬렌에게 더 많은 교육을 시켜주겠다며 이곳저곳을 여행하기도 했다. 지도에서 보면, 그런 목적으로 이동한 길은 정신 나간 오솔길처럼 보였다. 사교적 목표와 학업 목표를 둘 다 좇으며 멀리, 오랫동안 여행했기에 헬렌은
그녀의 내성적인 태도와는 상당히 어울리지 않으나 대체로 가족을 더 성공시켜보겠다는 어머니의 지칠 줄 모르는 노력 때문에 작은 이야깃거리가 되었다. 레오폴드가 특별한 관심사로 운영되는 살롱에 들르거나 강령회에 참석하거나 신지학회 모임에 참가하거나 동료라는 사람들을 만나러 갈 때마다 브레보트 부인은 딸을 데리고 자신의 모임에 참석했다. 이제는 헬렌도 세상이 정말로 어떻게 움직이는지 배울 나이가 됐다는 얘기였다. 하지만 물론, 공식적으로 사교계에 나서기에 헬렌은 아직 너무 어린 나이였다. 그래서 브레보트 부인은 헬렌을 또 한 명의 손님이 아니라 오락거리로 데리고 다녔다.브레보트 부인이 부추기면, 의심스럽다는 듯 브랜디 잔을 빙글빙글 돌려대는 남자들과 골무에나 담을 수 있을 만큼 적은 양의 셰리주를 멍하니 홀짝이던 여자들은 책 두 권을 아무렇게나 골라 헬렌에게 읽으라고 했다. 두 책이 다른 언어로 적혀 있을 때도 있었다. 그러면 헬렌은 재빨리 그 내용을 외우고,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읊었다. 저녁식사 후의 오락거리였다. 정신이 팔린 손님들은 이런 오락거리가 상당히 매력적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브레보트 부인이 첫 시범을 보인 다음 딸에게 두 책의 문장을 번갈아가며 읊으라고 하고, 이어 뒤에서부터 똑같이 해보라고 하면, 잘난 체하며 미소 짓던 손님들은 언제나 놀라서 입을 쩍 벌리곤 했다. 이건 헬렌의 일상적인 묘기 중 첫번째에 불과했다. 그녀의 묘기에는 다양한 정신적 곡예가 포함되어 있었고, 이런 묘기는 늘 웅성거림과 환호 속에 끝났다. 머잖아 사람들은 헬렌을 데리고 와달라고 부탁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일종의 “아이템”이 되었다. 브레보트 부인이 굳이 부탁하지 않아도 헬렌은 가문의 명성에 누가 되는 이런 공연을 아버지에게 비밀로 했다.
하지만 비밀스러운 평판이라는 건 존재하지 않는다. 결국 가족이 파리의 에지컴 가족을 방문하고 있을 때 브레보트 씨는 아내가 딸의 재능을 응접실 묘기로 활용하고 있다는 걸 알고 격노했다. 서로의 성향이 점점 달라지고 그에 정비례해 결혼생활도 악화되어가던 지난 한두 해 동안 캐서린과 레오폴드 브레보트 부부는 대체로 서로에게 간섭하지 않으려고 노력해왔다. 대부분 언쟁으로 끝나게 될 상호작용을 피하고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헬렌의 공연에 관한 진실이 드러나자 적개심으로 차곡차곡 쌓이고 단단해져온 분노가 산사태처럼 쏟아져내렸다. 브레보트 부인은 자아도취에 빠진 남편의 헛소리와 의심스러운 과학, 그가 가족의 매우 인간적인 욕구에 대처하지 못하게 만드는 그 모든 천상의 개소리에 신물이 난다고 했다. 애초에 브레보트 가족이 누려온 친구들의 환대도 자기가 재치를 발휘하고 노력(브레보트 부인은 이 단어에 제대로 무게감을 주고자 자기 가슴을 가리켰다)을 기울인 덕분이지만, 만일 가족이 점점 멀어져가는 친구들의 친절에 의존해야만 하는 지점에 이르렀다면, 또 브레보트 부인이 그런 우정을 유지하고 확장하기 위해 헬렌의 재능을 동원해야만 한다면, 그건 브레보트 씨가 자기 가족의 안녕을 보장할 수 있는 믿음직스러운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했다. 브레보트 부인은 독사처럼 쉭쉭거리는 소리로 말했다. 에지컴 가족의 손님방에 머물면서 소리를 지르고 싸울 만큼 바보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브레보트 씨에게는 그런 거리낌이 없었다. 그는 주님께서 딸에게 주신 재능은 주님과 이야기하기 위한 것이지, 세속적인 서커스를 하기 위한 게 아니라고 소리질렀다. 아내가 그토록 즐겨 다니는 경박한 진창에 딸까지 끌고 들어가지는 말라고 했다. 딸이 이런 식의 지적 매춘에 빠져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헬렌은 싸움이 벌어지는 내내 자기 발을 보고 있었다. 아버지를 마주볼 수가 없었다. 아버지의 입이 그 무분별한 말을 만들어내는 꼴을 보고 싶지 않았다. 그 꼴을 보면, 이제는 아버지가 말을 하더라도 사실은 다른 누군가가 아버지를 통해 말하고 있을 뿐이라는 의심이 확인될 테니까. 발만 보고 있으면, 그 목소리는 그냥 폭언을 쏟아붓는 목소리일 뿐이었다
아버지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주인 없는 고함. 위협적인 말투보다 더 무시무시했던 건 아버지의 장광설에 아무 일관성이 없다는 점이었다. 헬렌이 보기에 의미에 가하는 폭력만큼 심한 폭력은 없었으니까.이런 소란이 벌어진 다음에도(브레보트 부인은 그날 저녁에 입은 피해를 부분적으로나마 복구하기 위해 다음날 아침 에지컴 부인과 당혹스러운 대화를 나누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