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NSE
Copyright © Sensory Experiences Ltd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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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 translation copyright © 2022 by Sejong Books, Inc.
Korean translation rights arranged with Rogers, Coleridge and White Ltd.
through EYA (Eric Yang Agency)
이 책의 한국어판 저작권은 EYA (Eric Yang Agency)를 통한
Rogers, Coleridge & White Ltd.사와의 독점계약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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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너스에게
차 례
●들어가는 글 행복한 일상을 위한 감각의 재발견
CHAPTER 01
아침
쉽게 일어나려면
슈퍼맨 티셔츠를 입어라
향수 뿌리기
아침 식탁의 비밀
CHAPTER 02
시각: 우리는 보는 대로 느낀다
CHAPTER 03
운동 시간
탈의실을 나서기 전
운동할 때
운동 후, 감각도 회복이 필요하다
CHAPTER 04
청각: 익숙한 소음 다시 듣기
CHAPTER 05
일할 때
일이 잘되는 공간?
출근하자마자 해야 할 일
오전에는 나와 내 아이디어를 어필한다
점심시간: 신나는 일을 상상하라
이른 오후: 회의하기 좋은 시간
오후 중반: 집중력이 느슨해질 때
오후 늦게: 퇴근 시간을 앞당기는 법
CHAPTER 06
촉감: 우리는 항상 무언가에 닿아 있다
CHAPTER 07
쇼핑
쇼핑을 시작하기 전에
입구에서 계산대까지
CHAPTER 08
후각: 냄새를 못 맡는 것은
그리 심각한 문제가 아닐까?
CHAPTER 09
퇴근 후 집에서
집에서의 루틴
거실, 주방, 침실은 각자의 역할이 있다
향기를 통해 집을 추억과 발견의 공간으로
시간을 늦추다
집을 영화관처럼
감각 여행 준비하기
CHAPTER 10
미각: 모든 감각과 감정이 만나는 지점
CHAPTER 11
음식과 요리
손님이 도착하기 전에
오감 몰입형 디너 파티
감각으로 식욕 돋우기
주요리: 실내에서 바비큐를
노란 물에서 레몬 맛이 난다?
디저트는 동그란 접시에
마지막 술 한잔
CHAPTER 12
다른 감각들: 감각의 종류는 셀 수 없다
CHAPTER 13
섹스
쾌락의 문을 여는 향기
고조되는 분위기
여운, 또 한 번을 위한 준비
CHAPTER 14
잠들 때
카운트다운 시작
자는 동안에
●감사의 글
들어가는 글
행복한 일상을 위한 감각의 재발견
프로방스 로제 와인의 역설
프랑스 남부에서 휴가를 보낸다고 상상해보자. 우연히 들른 오래된 가게의 테라스에 앉아 점심 식사로 스테이크에 감자 튀김을 곁들인 프랑스 요리인 스테이크 프리츠steak frites를 먹고 있다. 눈앞에는 라벤더 밭이 저 멀리까지 굽이치듯 펼쳐져 있다. 옆자리에서 프랑스어로 주고받는 낮은 목소리, 그리고 식기류와 와인 잔의 쨍그랑거리는 소리는 그림처럼 완벽한 이 장면에 깔리는 잔잔한 배경 음악과도 같다. 따스한 햇볕을 쬐고 있으니 몸과 마음이 모두 편안해진다. 웨이터가 차게 식힌 로제 와인을 도자기 병에 담아 가져온다. 맛있다. 금빛이 도는 담홍색 와인이다. 이 장소와 광경에 완벽하게 맞아떨어지는 반주다. 이토록 멋진 와인의 산지가 어디냐고 물어보니 바로 아랫마을 포도밭이란다.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잠시 들렀는데 놀랍게도 가격이 한 병에 단 2유로다. 당장 잔뜩 사서 휴가 내내 기분 좋게 마시기로 했다. 물론 한 박스 정도는 집에 돌아올 때 가져오는 것도 잊지 않았다.
이제 2월이 되었다. 다시 고되고 지루한 일상에 파묻혀 허우적대고 있다. 어둡고 비 내리는 추운 날씨가 이어지면서 몇 주 정도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일에 지쳐 우울한 기분이다. 그러나 오늘 밤에는 모처럼 오랜 친구들을 저녁 식사에 초대했다. 대화를 나누다 보니 지난해 여름에 프로방스로 휴가를 갔던 일과, 그곳에서 멋진 로제 와인을 찾아냈던 추억까지 이야기하게 되었다. 가격은 한 병에 겨우 2유로! 더구나 맛도 훌륭하다. 지금도 냉장고에 몇 병 들어있다. 손님들은 저마다 기대 어린 마음에 즐거운 탄성을 질렀고, 와인을 잔에 따르는 동안 그 영롱한 색깔에 다들 한마디씩 거들었다.
내가 먼저 한 모금 마셔본다. 이런, 역겨운 신맛이 난다. 전형적인 싸구려 포도주 맛이다. ‘맛이 가버렸어.’ 거의 비명을 지르듯이 외친다. 너무나 안타깝다. 집으로 오는 길에 자동차 뒷좌석에 싣고 프랑스 시골길을 덜컹거린 데다 날씨마저 뜨거웠던 터라 맛이 상해버린 것 같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사실은 ‘프로방스 로제 와인의 역설’에 사로잡혔을 뿐이다. 와인 자체는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지만, 나머지 모든 것이 달라졌다. 늦은 오후, 프로방스의 따사로운 햇살에 몸을 녹이며 느긋했던 그 기분과 지금의 기분은 완전히 다르다. 그때의 멋진 추억을 만드는 데 일조했던 주변의 소리와 향기, 그리고 색상이 여기에는 없다. 그 당시의 환경과 감정이야말로 와인을 그토록 맛있게 만든 요인이었다.
그러나 모든 것이 사라지진 않았다. 그 당시를 떠올리는 감각 환경을 재현할 수만 있다면 맛이 되돌아올 수도 있다. 라벤더 향 촛불을 켜면 그때 맡았던 아로마 향의 기억이 되살아날지도 모른다. 와인을 도자기 병에 따라보라. 붉은색과 흰색의 체크무늬 식탁보를 식탁 위에 깔아보라. 에디트 피아프Edith Piaf의 노래나 프랑스어로 왁자지껄 떠드는 소리를 틀어보라. 감각 환경을 재현하여 그때의 기억과 감정을 되살려주면 와인은 다시 한 번 내 입을 즐겁게 할 수 있다. 물론 그 프랑스 산장에서 느꼈던 것과 완전히 동일한 맛은 아니겠지만, 방금 느낀 싸구려 포도주 맛과는 분명히 다를 것이다.
지난 십여 년간 나는 중요한 회의를 시작할 때마다 이 이야기를 하면서 우리의 감각이 주변의 모든 환경에 지배받는다는 사실을 설명해왔다. 감각과 감정은 서로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고, 우리가 세상을 경험하는 방식에 영향을 미친다. 어떤 한 가지 감각(위의 이야기에서는 미각)이 완전히 독립적으로 작동하며 항상 진실만을 말한다는 생각은 잘못된 것이다. 사실 어느 한 감각은 다른 감각 기관이 입수한 정보들이 어우러져 만들어낸 복합적인 산물이다. 거기에 우리의 감정이 색채를 덧칠한 것이다. 인간은 다양한 감각을 지닌 존재다. 그런데 우리는 한 번에 한 가지씩의 감각을 느끼고 생각하려고 한다. 그러나 그것은 감각의 속성을 오해한 데서 오는 태도다.
신경과학, 실험심리학, 그리고 행동심리학 분야의 연구를 통해 우리의 행동과 지각은 얼핏 아무 상관도 없을 것만 같은 주변의 다양한 요소로부터 영향을 받는다는 사실이 놀랄 만큼 자세하게 밝혀졌다. 마치 똑같은 커피를 마셔도 붉은색의 둥근 머그컵에 담긴 커피가 더 맛있게 느껴지는 것과 같다. 또, 푸른빛이 도는 방에서 느릿한 음악을 듣고 있으면 시간이 훨씬 빨리 흐르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과거를 떠올리게 하는 냄새를 맡다 보면 새로운 아이디어를 찾기도 훨씬 쉽다. 날씨가 추워지면 물건을 살 때도 평소보다 훨씬 더 씀씀이가 헤퍼진다. 무거운 식기류를 쓰면 음식 맛도 11퍼센트 정도 더 맛있어진다고 한다. 화이트 와인을 마실 때 옆에 호감 가는 이성이 있으면 와인 맛이 15퍼센트 정도 더 신선해진다. 나는 최근에 이런 감각 연구 분야를 내가 하는 일에 적용하고 있다. 즉, 우리의 감각과 감정이 상호작용을 일으킨다는 신경과학적 연구 결과를 이용해 상품과 브랜드, 공간, 그리고 경험을 개선한다. 과학적으로 검증된 방식을 사용하는 것이다.
좋은 예를 하나 들어보자. 최근 세계적인 아이스크림 회사 하나가 우리 회사를 찾아와 가장 바삭한 콘 맛을 구현하는 프로젝트를 의뢰했다. 우리가 할 일은 바삭하다는 감각의 핵심 요소가 무엇인지 정의하고 개발팀에 연구 방향을 제시해주는 것이었다. 사실 어떤 프로젝트를 맡든 우리가 수행하는 프로세스는 대동소이하다. 먼저 문헌 조사를 통해 지금까지 연구된 내용을 검토하여 어디서 시작해야 할지를 파악한다. 그랬더니 과연 1970년대부터 1990년대 초까지 자타 비커스Zata Vickers라는 과학자가 바삭함이라는 성질을 철저하게 연구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녀가 내린 결론은, 바삭함이 결국 청각과 직결되는 성질이라는 것이었다. 다시 말해 바삭한 소리가 나지 않으면 바삭하지 않은 것이다. 비커스 연구팀은 또, 궁극의 바삭함은 뭔가를 깨물어서 나는 소리가 일정한 음역에 들어설 때 구현되며 그 이상으로 높아지면 너무 딱딱하게 들린다는 가설을 제시했다. 이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우리는 몇 가지 아이디어를 시험해보았다. 고객사가 제공한 콘 씹는 소리를 재생해보면서 음높이를 다양하게 변주한 콘을 만들었다. 그런 다음 온라인에서 사람들에게 그 소리를 들려주며 콘이 얼마나 바삭한지 판단하고, 먹고 싶다는 생각이 얼마나 드는지 답해달라고 요청했다. 그 결과 고객사의 기존 콘은 씹는 소리가 너무 고음이라 딱딱하게 들린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지금보다 약간 낮은 음역에 들어와야 사람들이 가장 먹고 싶다고 느끼는 것으로 밝혀졌다. 우리가 가장 바삭한 맛을 찾아낸 것이다. 다음으로는 런던대학교 감각 연구센터 소장인 배리 스미스Barry Smith 교수와 한 가지 실험을 고안해냈다. 피험자들에게 헤드폰을 쓰고 마이크 앞에서 아이스크림을 먹어보게 한 다음 그 소리를 컴퓨터를 거쳐 다시 헤드폰으로 들려주었다. 우리는 그들이 아이스크림을 먹는 소리가 자신에게 어떻게 들리는지 실시간으로 들려주며 조정했다. 음역을 높일수록 콘에서는 가볍고 바삭한 소리가 났다. 음역을 낮추면 콘이 눅눅해진 것처럼 느껴졌다. 소리가 ‘가장 바삭한’ 범위에 들어서자 콘도 바삭해지면서 가장 맛있게 느껴졌다. 희한한 것은 이렇게 되자 아이스크림 맛도 더 진하고 풍부해졌다는 사실이다. 이른바 후광 효과halo effect가 작용한 것이다. 한 가지 감각이 만족스러워지자 다른 감각의 만족도도 따라서 올라간 것이다.
이런 결과를 바탕으로 우리는 새로운 콘의 개발 방향을 내놓았다. 과학자들은 실험실로 돌아가 씹는 소리가 우리가 제안한 것과 똑같은 콘을 개발했다. 우리는 이렇게 해서 탄생한 신제품을 가지고 다시 소비자 테스트에 나섰다. 사람들은 아이스크림이 더 바삭하고 크림 맛이 풍부해져서 품질이 훨씬 더 좋아진 것 같다며, 기존 제품보다 20퍼센트 정도 가격이 오르더라도 충분히 사 먹을 수 있다고 대답했다. 기존 제품과 달라진 거라곤 콘을 씹을 때 나는 소리였을 뿐인데 말이다.
이제는 여기서 그칠 것이 아니라 상품을 구매해서 먹기까지의 전체적 감각 경험을 연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우리는 일단 광고와 포장지에 쓰일 단어에 주목했다. 상품을 묘사하는 단어는 사람들이 그 상품에 기대하는 맛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짧고 날카로운 단어는 바삭한 느낌을 주고, 크림 맛을 강조한 단어는 느리고 부드러운 느낌을 준다. 그다음, 뜯을 때 바삭한 소리가 나는 여러 가지 포장지 소재를 찾아 시험해봤다. 그렇게 되면 먹기 전부터 바삭한 맛을 기대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포장지를 뜯는 동작도 유심히 관찰했다. 소비자들의 동작도 어떻게든 맛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닐까? 포장지를 뜯을 때 나는 소리는 바삭하겠지만 빙빙 돌리며 뜯는 동작은 크림 맛을 연상하는 데 도움이 될 수도 있다. 우리는 바삭함이 떠오르는 ‘연상 음향’(광고 마지막에 로고와 상품을 보여줄 때 나가는 음악)도 만들었다. 여기에는 스타카토 리듬의 바삭한 느낌이 나는 기타 연주 음악을 사용했다. 그리하여 소비자는 광고를 보고 듣는 순간부터 상품을 집어 들고, 포장지를 뜯은 다음 처음 한 입을 무는 순간까지 기대감이 점점 고조되는 일종의 감각 여정을 경험하게 된다.
이 모든 과정을 일종의 조작으로 여기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들은 ‘실제로 맛이 달라진 건 아니잖아!’ 또는 ‘사람들에게 마치 상품이 개선된 것처럼 착각을 일으키는 것 아닌가?’라고 항의할 수도 있다. 그런데 생각해보자. 어쨌든 분명한 것은 상품이 개선되었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맛을 개선했고, 아이스크림을 더욱 맛있게 먹을 수 있게 만들었다. 우리가 한 일은 단지 인간이 모든 감각 기관을 총동원하여 세상을 경험하는 방식을 자세히 관찰한 것뿐이다.
우리는 이렇게 복합적인 감각, 즉 공감각을 활용하여 세상의 모든 일을 경험한다. 그러나 이런 사실을 알아차리는 사람은 거의 없다. 이것을 깨닫는다면 우리가 경험하는 모든 일은 틀림없이 풍성하게 다가올 것이다. 이른바 ‘감각 과학’은 연습과 수면, 일, 음식, 섹스 등을 개선하는 데 큰 도움이 되지만, 그것을 우리 생활에 적용하는 데는 특별한 기술이 필요하다. 특정 소리와 냄새, 색상, 그리고 질감이 함께 어우러질 때 어떤 반응이 나타나는지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나는 오랫동안 아이스크림, 위스키, 맥주에서부터 고급 자동차와 백화점에 이르기까지 모든 분야에서 이 작업을 해왔다.
나는 내가 동원할 수 있는 기업 예산과 분명한 성과 목표를 바탕으로 학문적 연구 결과와 그것을 실제로 적용할 방안을 모색했다. 과학적 지식을 활용하여 실제 상황에 영향을 미치고 감각을 강화하는 방법을 찾아낸 것이다. 감각을 둘러싼 환경을 조금만 바꿔도 행동과 지각에 영향을 줄 수 있다. 사람들이 매장 직원에게 말을 걸게 하거나, 위스키 맛을 조금 더 감미롭고 풍부하게 만드는 등, 모든 일이 포함된다. 나는 직업을 하나 새로 만들어낸 셈이다. 아니, 하나의 산업을 발명했다고 할 수도 있다. 공감각이라는 관점으로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을 새롭게 설계하는 방법을 창안해낸 것이다. 이 책은 여러분이 각자의 분야에서 그 방법을 적용해볼 기회를 제공한다. 과학적 진실과 여러분 각자의 감각을 인식함으로써 공감각을 즐기며 살아가는 방법을 배울 수 있다. 그 방법을 배우면 여러분의 삶은 더욱 밝고 대담한 공간으로 들어서게 된다. 마치 총천연색의 나라 오즈에 들어선 도로시처럼 말이다.
공감각의 세계를 경험하러 나서기 전에 먼저 감각이 어떻게 우리에게 깊은 영향을 미치는지 살펴보자. 감각은 두 가지 차원에서 작동한다. 하나는 감정과 기억의 차원이다. 우리는 이것을 프로방스 로제 와인의 역설에서 살펴본 바 있다. 또 다른 하나는 이른바 ‘상호 감각 전이cross-modal link’라는 뿌리 깊은 현상을 통해서 작동한다. 물론 이 두 가지 차원은 그리 뚜렷하게 구분되지 않지만, 지금부터 살펴볼 세계를 이해하는 데 유용한 개념이므로 익혀둘 필요가 있다. 먼저 기억과 감정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자.
인간은 감정 기계다
“우리는 감정을 느끼는 사고 기계가 아니라, 생각할 줄 아는 감정 기계다.” 이 멋진 말은 미국의 신경과학자인 안토니오 다마지오Antonio Damasio 교수의 책 《데카르트의 오류Descartes’ Error: Emotion, Reason and the Human Brain》에 나오는 구절이다. 감각이 우리의 행동에 그토록 강력한 영향을 미치는 이유가 이 한마디에 집약되어있다. 인간은 자신을 심사숙고하여 현명한 결정을 내리는 이성적인 존재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우리는 감정의 기계다. 우리는 먼저 감정에 따라 결정을 내린 다음 그것을 합리화하는 존재다. 그리고 그 감정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 바로 감각이다.
집을 사는 과정을 예로 들어보자. 우리는 먼저 합리적인 기준을 바탕으로 여러 가지를 조사한다. 학교나 전철역에서 멀지 않아야 한다거나, 일할 수 있는 방이 따로 있어야 한다는 등의 기준을 내세운다. 그러나 실제로 집을 보러 간 순간, 이런 모든 합리적인 기준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진다. ‘바로 내가 생각했던 집이야.’라는 식의 감정이 모든 사고 과정을 삼켜버린다. 딱 꼬집어 말할 수 없는 뭔가가 엔도르핀 분비를 촉발하여 ‘바로 이 집’이라는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그런 생각은 초감각적인 인지 작용이라기보다는 ‘공감각적 인지 작용’이라고 부르는 것이 더 정확하다. 즉, 여러 가지 요소가 한데 결합하여 나에게 ‘가정’이나 ‘가족’의 의미를 구현하는 순간을 말한다. 그런 요소 중에는 어떤 것을 연상시키는 냄새가 있을 수도 있고, 방 안을 가득 채우는 햇살도 포함될 수 있다. 부드럽고 조용한 소리 때문에 공간을 친숙하게 여길 수도 있다. 혹시 그 집 안에 있는 그림이나 장식이 행복한 가족과 영원한 사랑이라는 생각을 불러일으켰는지도 모른다. 어쨌든 그 공간에서 경험한 모든 감각이 서로 어우러져 그런 감정이 내 마음속에 일어난 것이다. 우리는 그렇게 해서 새롭게 조성된 감정을 합리화하기 위해 뒤늦게 이성적인 논거를 찾아낸다. 작업실로 쓸 방이 없는데도 정원 끝에 따로 사무실을 하나 지으면 된다고 생각한다. 게다가 공간이 집에서 떨어져 있으니 업무에 집중하는 데 더 도움이 될 것이라고 합리화한다. 전철역에서 조금 멀리 떨어진 위치도 상관없다. 매일 아침 오가는 거리가 좀 멀면 오히려 운동이 되는 셈이니까.
우리는 살아가면서 이 세상을 경험하고 기억을 형성하는 동안, 주변의 모든 감각적 요소로부터 다양한 감정을 익힌다. 예를 들어 선크림 냄새를 맡으면 기분이 좋아지는 이유는 그것을 사용할 때마다 늘 기분이 좋았기 때문이다. 또, 녹색을 보면 늘 자연을 떠올리면서 건강이라는 개념과 관련짓는다. 이런 냄새와 색상, 소리 등은 그것과 연관된 감정이나 의미를 떠올리는 방아쇠 역할을 한다. 항상 감정이 먼저 앞서고, 기억의 출처나 기억을 촉발한 요인을 깨닫는 것은 그 뒤에 따르는 일이다.
어릴 때 즐겨 듣던 음악을 어디선가 우연히 듣게 되었다고 해보자. 그 시절에 느꼈던 감정이 바로 느껴진다. 그런 다음 그때 옆에 누가 있었는지 기억해내려고 애쓰게 된다. 이렇게 감정과 연관성이 일단 겉으로 드러나면 우리 두뇌에서 의사결정을 책임지는 영역이 이를 포착하고, 따라서 다음에 선택의 상황을 맞이하면 사고 과정과 행동이 그 방향으로 향할 가능성이 커진다. 이런 상황을 두고 옛 속담에서는 ‘기수와 코끼리’라고 했다. 즉 기수는 두뇌의 이성적인 영역(전전두엽 피질)을, 코끼리는 감정의 영역(변연계)을 가리킨다. 변연계는 감각, 특히 소리와 향기에 관한 정보가 오가는 초고속 도로와 같은 역할을 한다. 코끼리가 자신의 관심을 끄는 뭔가를 포착하고 맘대로 폭주하면 기수는 전혀 손을 쓸 수 없다. 코끼리는 어린 시절의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냄새를 맡으면 기억을 좇아 정글을 마구 누빈다. 어린 시절에 품었던 모험과 호기심의 감정이 되살아난 것이다. 이렇게 되면 기수는 그저 코끼리에 몸을 맡긴 채 하염없이 따라가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만약 코끼리의 행동을 유발하는 감정이 어떤 것이며, 특정한 사고나 행동을 촉발하는 감각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면, 기수는 다시 코끼리의 행동을 통제할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뉴질랜드의 한 연구진은 식품을 구매하면서 건강에 좋은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선택하는 데 영향을 미치는 감각 자극 요소는 어떤 것인지 조사했다. 피험자들에게 컴퓨터상의 ‘가상의 슈퍼마켓’에서 3일간 먹고 지낼 장을 보도록 했다. 여러 그룹의 피험자들이 이 실험을 수행하는 동안 신선한 허브 향이나 맛있는 빵 굽는 냄새가 방 안에 풍기게 해놓았다. 단, 사람들이 이 냄새를 거의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로 조절했다(피험자 중 냄새를 알아차린 비율은 5퍼센트에 불과했다). 허브 향을 맡은 그룹은 건강식품을 선택하는 경향이 높았다. 그들은 빵 굽는 냄새를 맡은 그룹에 비해 유기농 식품을 더 많이 샀다. 아주 약한 냄새가 났을 뿐이지만 피험자들은 신선함과 녹색 허브, 자연 등의 개념을 뇌리에 떠올리고 건강식품에 손이 가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감정 반응을 유익하게 이용할 수는 없을까? 어떻게 하면 코끼리를 통제할 수 있을까? 우리가 선택한 감각 자극은 기억과 감정을 촉발하고 이것은 다시 우리의 행동과 인식에 곧바로 영향을 미친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어진 환경의 모든 요소를 이용해서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환경 요소는 특정 행동을 유발할 수도 있고, 어떠한 방향으로 생각을 집중하게 할 수도 있으며, 로제 와인을 더 맛있게 느끼게 만들 수도 있다.
공감각적 사고
세상을 경험하는 감각에는 또 다른 차원이 존재한다. 이는 우리 존재의 가장 심층부에서 일어나는 여러 감각의 교차 현상을 보여준다. 이것이 바로 공감각적 사고다. 다시 말해 우리는 모든 감각적 특성을 서로 연결하여 인식한다. 이 교차 감각의 세계를 탐구하기 위해 간단한 질문을 던져보겠다. 깊이 생각하지 말고 떠오르는 대로 대답해보기 바란다. 레몬 맛은 느린가, 빠른가?
가장 먼저 어떤 생각이 떠오르는가? 거의 누구나 똑같이 내놓는 대답은 레몬 맛이 빠르다는 것이다. 약 200명 정도가 참여한 강연장에서 이 질문을 던졌더니 마치 합창이라도 하는 것처럼 ‘빠르다’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왜 그렇게 생각하느냐고 다시 물었더니 그들은 ‘레몬 맛은 즉각 느낄 수 있기 때문’이라거나 ‘싱싱한 맛이기 때문’이라는 등의 꽤 합리적인, 또는 최소한 수긍할 만한 대답을 내놓았다. 물론 다소 엉뚱한 대답도 있었다. 예를 들면 ‘레몬이 어뢰처럼 생겨서’라든가 ‘레몬의 노란색이 스포츠카를 연상시키므로’라는 등이었다. 여기서 핵심은 사람들은 합리적인 대답을 하나도 내놓지 못했지만, 그 대답 자체가 우리의 기이하고도 본능적인 교차 감각을 보여주고 있다는 사실이다.
또 다른 예도 있다. 아래의 두 그림을 보자. 하나는 뾰족한 형상이고 다른 하나는 둥글둥글한 모양이다. 둘 중 어느 쪽이 레몬 맛에 가까운가?
여러분이 어떻게 답했는지 이미 알 것 같다. 레몬 맛은 날카롭고 뾰족한 형상과 비슷하다고 답했을 것이다. 밀크 초콜릿은 어느 쪽과 가깝냐고 물었다면 어떤 답이 나왔을까? 또 어느 쪽이 더 신선한가? 좀 더 활동적인 쪽은 어디인가?
우리가 거의 모든 맛과 향, 감각, 그리고 느낌을 이 두 형상 중 어느 하나로 구분할 수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여기에는 질감과 무게, 색상, 그리고 음높이도 포함될 수 있다. 한 감각이나 특성에서 경험한 특징을 전혀 다른 감각과 즉각 연결할 수 있다는 사실은 인간의 경험이 가지는 또 다른 차원을 보여준다. 즉 우리는 자신의 지각과 행동을 인식하는 데만 그치지 않고 그것을 형성하고 규정한다. 그리고 우리 모두는 어떤 대상과 무엇이 어울리는지에 대한 같은 감각을 가지고 있다. 세계 어디에 사는 사람이든 레몬 맛이 빠르고 날카로우며, 고음과 밝은 색상에 가깝다는 느낌에 동의할 것이다.
이런 현상을 일컬어 낮은 단계의 공감각이라고 한다. 또는 ‘공통 인식joined perception’이 작용한다고 설명할 수 있다. 극단적인 공감각을 보유한 사람은 인구의 약 250분의 1 정도라고 한다. 이런 수준에 도달한 사람은 여러 가지 감각을 완전히 현실처럼 느낄 수 있다. 음악을 들으면 온갖 종류의 색상이 눈에 보이는 사람이 있다. 또는 거꾸로 다양한 색상이나 그 조합을 지켜보면서 여러 음역이 들린다는 사람도 있다. 공감각을 지닌 사람은 어떤 말을 할 때마다 마치 실제로 맛을 보듯 입에서 어떤 향기가 난다고도 한다. 제이미 워드Jamie Ward의 책 《소리가 보이는 사람들The Frog Who Croaked Blue》에는 ‘파리Paris’라는 단어를 발음할 때마다 딸기 맛을 느끼고, ‘테디 베어’라는 단어를 입에 올릴 때마다 연유 맛이 난다는 사나이가 등장한다. 그런 그에게 ‘파리 테디 베어’라는 말을 하면 딸기와 크림 맛이 동시에 나느냐고 물어보았다. 그래서 그가 그 단어를 발음해보았지만 콕 쏘는 듯한 전혀 다른 맛이 났다고 한다.
예술가와 음악가를 비롯한 수많은 창의적인 인물이 공감각적 재능을 지닌 것으로 알려졌다. 그들이 하는 일의 특성상 독특한 세계관을 지닌 데서 온 결과인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의 화가 바실리 칸딘스키Wassily Kandinsky는 여러 가지 색상을 보면 음악이 들리고, 반대로 음악을 들으면 색상이 보였다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바그너Wagner의 오페라 <로엔그린Lohengrin>이 연주되던 도중 공감각을 강력하게 체험한 후 화가가 되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나중에 그는 자신의 인생을 바꿔놓았던 그 순간을 이렇게 설명했다. “눈앞에서 온갖 색채가 살아 숨 쉬듯이 생생하게 보였습니다. 그 색들이 마치 미친 듯이 제 앞에서 춤추고 있었지요.” 미국의 재즈 피아니스트 겸 작곡가인 듀크 엘링턴Duke Ellington과 미국의 지휘자, 작곡가 겸 피아니스트인 레너드 번스타인Leonard Bernstein도 음악을 듣거나 연주할 때, 또는 작곡할 때 여러 색상이 눈에 보였다고 한다. 번스타인은 마치 팔레트 위에 여러 색의 물감을 풀어놓고 고르듯이 오케스트라에 맞는 음색과 조화를 선택했다고 한다. 그래서 한 곡 한 곡을 연주할 때마다 음영과 ‘음악적 색채’가 균형 잡힌 한 폭의 풍경화를 그리듯이 마무리할 수 있었다고 한다. 마릴린 먼로Marilyn Monroe 역시 음악과 색깔을 혼동하는 공감각의 일종인 색환각chromesthesia을 겪고 있었다고 알려졌다. 미국의 소설가 노먼 메일러Norman Mailer는 먼로가 앓고 있던 문제가 ‘다른 사람들이 약물을 복용할 때 앓게 되는 감각 질환’이라고 쓴 적이 있다. 《롤리타Lolita》를 쓴 러시아 태생의 미국 소설가, 번역가 겸 곤충학자인 블라디미르 나보코프Vladimir Nabokov는 소위 ‘문자-색상 공감각grapheme-colour synaesthesia’을 지닌 인물이었다. 그는 글씨를 소리 내어 읽는 동안 색상을 경험할 수 있었다. 그는 ‘파란색’ 계열을 설명하면서 ‘x는 강철, y는 먹구름, k는 월귤나무의 열매 색과 비슷하고, q는 k보다 더 갈색이 진하며, s는 c만큼 밝은 하늘색은 아니지만, 하늘색과 진주 광택이 섞인 흥미로운 색깔이다.’라고 말했다. 공감각을 보유한 창의적인 인물은 이외에도 수없이 많다.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는 물론이고 호주 배우 제프리 러시Geoffrey Rush, 미국의 뮤지션인 빌리 조엘Billy Joel, 메리 J. 블라이즈Mary J. Blige, 그리고 카녜이 웨스트Kanye West까지 모두 포함된다.
이렇게 여러 감각이 뒤섞이는 현상이 어떻게 가능하며, 그 원인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뚜렷한 해답이 없는 것이 현실이다. 다만 그들은 주위를 둘러싼 세상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그리고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로부터 그런 능력을 얻게 되었다고 설명할 수 있다. 붉은색이 진한 과일이 맛도 더 달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 수 있듯이, 다른 향기보다 오히려 색상을 보고 단맛을 인지하게 되었다는 논리가 성립된다. 우리가 흔히 하는 말 중에도 ‘요란한 색채’나 ‘강렬한 맛’, 또는 ‘달콤한 음악’이라는 표현이 있다. 혹시 우리는 이런 말에 길들여진 나머지 여러 가지 감각을 서로 연결하게 되었고, 나아가 감각적 연결 관계를 우리 존재의 일부로 여기는 데까지 진화한 것은 아닐까? 독일 연구자들은 침팬지도 이와 유사한 공감각을 지니고 있음을 발견했다. 침팬지들은 높은음을 흰색 사각형과, 그리고 낮은음을 검은 사각형과 관련지었는데, 이는 사람을 상대로 한 실험과 정확히 일치하는 결과였다. 과학자들은 침팬지가 높은음과 밝은 색을 관련지을 만한 이유를 자연 상태에서는 찾지 못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다시 말해 이런 감각적 관련성은 인간과 침팬지가 진화과정에서 분화되기 이전에 이미 형성되어 내재해왔음을 증명한다는 것이다.
중요한 점은 우리 인간은 누구나 이런 감각적 연결을 경험한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이런 ‘공감각적 경험’을 통해 교차 감각을 계속해서 활용하다 보면 여러 가지 감각이 서로 상승작용을 일으켜 높은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초능력Super-additive 효과다. 레몬 향이 나는 음료를 각진 모양의 유리잔에 담아 마시면 레몬 맛을 좀 더 생생하고 뚜렷하게 느낄 수 있다. 둥그스름한 가구와 따뜻하고 달콤한 향이 나는 방에서 지내는 것보다 네모난 모양의 물건과 강렬하고 날카로운 향이 충만한 방에서 지내는 편이 좀 더 적극적이고 예민한 사고를 할 수 있다.
나는 이 모든 요소를 다루고 조합하는 데 꽤 익숙한 편이다. 이 책을 통해 여러분도 그 방법을 익힐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에서 우리는 여러 가지 교차 감각 사이의 연관성과 기억과 감정이 우리의 행동과 지각에 미치는 영향을 파악하고, 색상과 빛, 소리, 그리고 냄새가 우리에게 미치는 심리적 영향을 살펴본다. 나아가 하루 동안 일어나는 우리의 생리적 사이클을 살펴보고, 우리가 특정 행동이나 생각을 좀 더 쉽게 받아들이는 때는 언제인지도 파악할 것이다. 그리고 이 모든 사실을 바탕으로 이른바 ‘감각 처방’이라는 개념을 소개하고자 한다. 이것은 우리가 시도하고, 느끼며, 경험하고자 하는 이상적인 환경을 구현하는 데 필요한 감각적 요소가 무엇인지를 모두 밝혀준다.
감각 처방
이 책을 쓰기 시작하던 무렵, 나는 영국의 고급 백화점 존 루이스John Lewis의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었다. 나는 동업자인 조Jo와 함께 각 백화점의 가구매장에 설치될 특별 공간의 설계 작업을 돕고 있었다. 고객들이 색상표와 자재, 가구, 조명, 그리고 장식 등을 고르며 인테리어를 구상할 수 있는 공간이었다. 고객들은 이 공간에서 각자의 감각과 창의성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어야 했다. 그러면서도 편안하게 필요한 물건을 고르고, 상품과 자재 샘플을 만지며, 직원들과 대화를 나누는 등 주변 환경과 자유롭게 소통할 수 있어야 했다. 원래 영국인들은 쇼핑할 때 말이 별로 없는 편이다. 마치 미술관에라도 간 것처럼 아무것도 만지지 않고 목소리도 나지막하게 유지해야 하는 줄 아는 것이 영국 사람들이다.
조와 나는 늘 그래왔던 것처럼 일을 시작했다. 먼저 이 공간의 목적에 부합하는 행동과 감정을 끌어내는 데 필요한 감각 요소가 무엇인지 밝혀내려고 했다. 예컨대 막 잘라낸 싱싱한 풀 냄새처럼 향수를 자극하는 ‘체험형’ 아로마는 ‘근접 동기 행동approach-motivated behaviours’을 유발한다. 이런 냄새를 맡으면 우리는 새로운 시도와 아이디어를 추구할 가능성이 커진다. 우리는 천장이 높고 조명 위치가 낮은 곳에서는 훨씬 더 자유로워지며 창의력도 더 많이 발휘할 수 있다. 장난기는 원래부터 밝은 색상과 밀접하게 관련되며, 미니멀리즘 설계나 단순한 그림보다 복잡하고 추상적인 이미지를 보는 편이 재미있는 발상을 떠올리는 데 더 유리하다. 부드러운 질감과 따뜻한 소재는 협력을 촉진한다. 머리를 약간 식혀주면서 창의성을 싹틔우는 최적의 소음 수준이 존재한다. 이보다 더 시끄러우면 귀에 거슬리고, 너무 조용하면 자의식에 빠져든다. 이런 지혜를 종합하면 창의성과 탐구심, 그리고 협동심을 유발하는 감각적 지침을 만들 수 있다. 우리는 이렇게 해서 만들어낸 ‘감각 처방’을 함께 일하던 설계팀에 넘겨주었다. 우리의 제안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밝은 색조의 추상화 작품을 설치하고 조명을 낮은 높이로 유지하며 내부 공간을 부드러운 소재로 마감한 후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아로마에 잔잔한 배경 음악을 곁들이면 쇼핑객들이 영국인 특유의 과묵함을 벗어던지고 자연스럽게 창의적인 사고를 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내용이었다. 구체적인 내용과 과학적 배경지식은 이 책의 후반부에 자세히 나온다!
‘감각 처방’은 의사들이 쓰는 용어에서 착안한 것이다. 그들이 약품과 식이요법, 휴식, 그리고 적절한 운동을 조합해 환자에게 최적의 솔루션을 처방하듯이, 우리도 특정 문제 해결을 위해 소리와 색상, 그리고 냄새를 조합하여 최적의 환경을 처방할 수 있다는 생각이다. 실제로 우리 제안을 의약적인 목적으로 활용한다면, 이 용어는 더할 나위 없이 적절한 의미를 가질 수 있다. 우리 제안은 심리적 효과뿐만 아니라 생리적인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1990년대 중반 스웨덴의 한 병원에서 ‘감각 처방’을 실제로 시험해본 적이 있었다. 심장 수술을 받은 환자들을 바닐라 향이 나는 병동에서 회복 치료를 받게 했다. 바닐라 향에는 진정 효과가 있다고 알려져 있다. 이 병동에는 향기뿐만 아니라 스트레스와 공격성의 감쇄 효과가 입증된 이른바 ‘베이커 밀러 핑크Baker-Miller Pink’라는 색조를 띤 조명이 설치되어 있었다. 이 조명은 원래 난동을 피운 군인을 감금하여 진정시키는 용도로 쓰이던 것이었다. 마지막으로 큰 파도 소리를 배경 음악으로 틀어놓아 심장박동과 스트레스 지수를 낮추는 효과를 더했다.
이 실험을 통해 드러난 긍정적인 효과는 상당했다. 환자들은 진통제를 훨씬 적게 쓰고도 고통과 스트레스가 훨씬 줄어들어 결국 더 빨리 퇴원할 수 있었다. 병원 환경은 대체로 감각적인 측면에서 섬세하게 관리되지 않는 것이 현실인데, 이 방법이 왜 세계적으로 널리 확대되지 않는지 참 이해하기 어렵다. 병원에서 환자를 대할 때 오로지 의학적인 치료에만 의존할 것이 아니라 신체와 정신이 골고루 회복될 수 있도록 배려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감각 처방이 병원에서 널리 사용되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 환자들이 마치 호텔에서 사용되는 것과 비슷한 카드 열쇠를 받아든 다음 병실(또는 회복실!) 문을 열고 슬롯에 꽂으면 개개인에 맞춰진 색조와 조도의 조명이 켜지고, 특정 음악과 향기가 퍼지는 광경을 그려본다. 모두 그 환자의 회복을 위해 가장 적합한 처방에 따라 설계된 것들이다. 이런 방법이 옳다는 것은 충분히 검증되었다. 올바른 감각 처방이 얼마나 큰 효과가 있는지를 보여주는 연구 결과는 무수히 많다. 그런 날이 오기 전까지 우리는 집이나 사무실, 그리고 일상의 환경에 좀 더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우선 주변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이 책은 우리가 하루에 흔히 경험하는 일을 중심으로 구성되었다. 그렇게 구성하는 것이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마주치는 많은 일을 다루기에 적합하다고 생각했다. 아침에 눈을 떠서 아침밥을 먹고 운동하는 것에서부터, 일과 중에 생산성과 창의성을 향상하는 방법까지 두루 다루었다. 다양한 감각을 활용하여 주거 환경과 식사, 섹스, 그리고 수면 생활을 개선하는 방법을 제시했다.
우리는 감각 지능을 지금보다 훨씬 더 개선해야 한다. 나는 이런 지식을 널리 알리는 일을 언제나 즐겁게 여겨왔다. 내가 하는 일에 관해 질문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내 이야기에 큰 흥미를 보였다. 내 말을 처음 듣는 사람들은 전혀 뜻밖으로 여기지만, 들어보면 사리에 맞을 뿐만 아니라 본능적으로도 옳다는 것을 알아챈다. 일상생활의 모든 영역에 본능과 경험을 적용한 결과, 이제 나는 사람들이 나의 지식을 각자의 삶에 실제로 적용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냈다고 자부한다.
《더 나은 나를 위한 하루 감각 사용법Sense》 웹사이트www.sensebook.co.uk(이하 센스 웹사이트)에는 하루 중 많은 순간에 적용할 수 있는 소리와 음악, 그리고 영상이 올라와 있다. 모두 내가 찾거나 만든 것들이다.
이 책에는 많은 정보가 포함되어있다. 아주 조금씩만 사용해도 여러분의 삶에서 마주치는 매 순간이 개선된다는 것을 피부로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앞으로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음악을 들으면서 와인을 마시지 않을 것이고, 밝은 조명 아래 말끔한 책상을 앞에 놓고 브레인스토밍을 하는 일도 없을 것이다. 이제 여러분은 여러분이 사는 공간을 감각적으로 더 자극되고 조화로운 곳으로 만들 지식과 능력을 소유하게 될 것이다. 앞으로 이 능력을 현명하게 사용하기를 바란다.
이 책의 내용은 평범한 우리의 일상 중 어느 하루에, 아침부터 밤에 잠자리에 들 때까지 시간 순서에 따라 일어나는 일을 가정하여 구성되었다. 따라서 챕터 1은 아침으로 시작한다. 지난밤에도 편안하게 푹 잘 자고 일어난, 여느 날과 다름없는 아침이라고 상상해보자. 이 책을 다 읽고 배운 내용을 연습하고 나면 생체 시계를 일상생활에 맞춰 다시 평안한 밤을 맞이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이 책에는 생체 시계internal body clock, 또는 ‘생체 리듬circadian rhythm’이라는 말이 자주 등장하는데, 이 개념이 아주 중요하기 때문에 여기서 잠깐 보충 설명을 하고 넘어가는 것이 좋겠다. 생체 리듬이란 미생물이나 곰팡이에서 인간에 이르는 모든 생물에 존재하는 생리 작용이 24시간 동안 순환하는 과정을 말한다. 즉, 수면이나 기분, 인지 능력 등을 조절하는 데 필요한 호르몬 생산, 세포 재생, 그리고 뇌파 활동과 같은 기능의 일정한 패턴을 가리키는 말이다. 두뇌 중심부의 시교차 상핵superchiasmatic nucleus이라는 아주 작은 영역이 관장하는 생체 시계는 지구의 자전 주기에 맞춰 매일 재설정을 반복한다.
생체 리듬은 이런 천문학적 관계 외에도 이른바 차이트거버Zeitgeber라는 외적・환경적 요소에도 영향을 받는다. 차이트거버란 독일어로 시간 제공자라는 뜻으로, 빛, 기온, 또는 하루 중에 일어나는 감정의 변화 등과 같이 생체 리듬에 영향을 주는 외적 요소를 가리키는 말이다. 독일의 생리학자이자 시간생물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유르겐 아쇼프Jürgen Aschoff가 창안한 개념이다. 따라서 공감각의 관점에서 보면 주변 환경은 생체 시계를 일상생활에 맞춰 리듬을 유지하여 일과를 마친 후에 숙면을 누리고, 다시 아침에 기분 좋게 일어나 활기차게 하루를 시작하는 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다.
아침에 일어나 최고의 컨디션을 유지하는 법에 관해서는 역시 잠을 깨우고 생체 시계를 작동하는 신체 기관이 지닌 다양한 감각의 관점에서 이해해야 한다. 수면 중에 작동하는 가장 중요한 감각은 시각과 청각이다. 한편, 평소 늘 작동한다고 여겨지는 후각은 여기에서 제외된다. 연구 결과 두뇌는 수면 중에도 향기를 기억하지만 잠에서 깨어나게 할 정도는 아니라는 것이 밝혀졌다. 그렇다면 잠에서 깨어나게 하는 시각과 청각은 어떤 것이냐 하는 질문이 남는다.
은은한 빛
생체 리듬 중에서 잠을 깨우는 가장 효과적인 시스템, 즉 최고의 ‘차이트거버’는 바로 빛이다. 날이 밝으면 잠에서 깨어 인식과 원기를 발휘하고, 밤이 되면 휴식과 회복을 추구하는 것은 진화를 통해 우리 두뇌에 각인된 하나의 리듬이다. 매일 아침 아름답고 푸른 하늘 아래에서 잠을 깰 수 있다면 우리는 훨씬 좋은 신체 컨디션을 유지할 수 있다. 콜로라도대학교 수면 연구소가 로키산맥 야영객을 대상으로 그들의 생체 리듬과 수면 호르몬인 멜라토닌 수치를 조사한 적이 있다. 그들은 전기 불빛으로 가득한 집에서는 아침에 늦게 일어났을 뿐 아니라, 보통 수면 중에 일어나는 호르몬 분비 현상인 ‘멜라토닌 개시’가 기상 후 2시간 사이에 발생하는 바람에 아침에 일어나고도 1~2시간 동안은 정신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일을 자주 경험했다. ‘수면 관성sleep inertia’이라 불리는 이 증상이 꽤 심각한 수준에 이른 사람들도 있을 정도였다. 그런데 이런 사람도 야외에서 야영하는 동안에는 평소보다 2시간 일찍 잠에서 깼고, 따라서 멜라토닌이 분비되는 현상도 기상하기 1시간 전에 일어났다. 즉 제 시간을 맞춘 것이다. 자연광에 노출되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호르몬 분비 활동과 수면 패턴이 일치되었고, 따라서 생체 리듬과 생체 시계도 정상을 회복한 것이다.
그러나 현대인이 정상적인 일상을 유지하는 한 언제나 밤하늘의 별빛 아래에서 잠이 들 수는 없는 노릇이다(그러기를 원치 않는 사람도 많다). 그렇다고 밤마다 커튼을 열어둔 채로 잘 수도 없는 것이 이른바 도시의 빛 공해라든가, 시끄러운 이웃들의 관음증을 부추길 위험 등이 있기 때문이다. 어쨌든 우리가 늘 아침에 햇빛을 보면서 깨어날 수는 없다. 특히 겨울에는 아직 어두운 시간에 눈을 떠야만 한다. 그러나 빛에 기반을 둔 알람을 사용하면 진짜에 가까운 효과를 누릴 수 있다. 햇빛을 본떠서 만든 ‘인공 새벽’ 알람 시계를 사용하면 매우 긍정적인 효과를 누릴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네덜란드 연구자들은 수면 관성으로 고생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다양한 감도의 인공 햇빛 알람 시계를 사용하여 실험해보았다. 그 결과 그들의 호르몬에 자연광이 미치는 영향만큼 효과적이지는 않았지만 피험자들의 수면 관성 증상이 현저하게 줄어들었고, 아침에 일어났을 때도 훨씬 더 긍정적이고 활기찬 기분을 느낀다는 결과가 나왔다. 햇빛을 모방한 이 실험에서 색온도가 6,500K(캘빈kelvin, 빛의 색깔을 나타내는 빛의 온도 단위-옮긴이)인 밝은 청백색 광원을 사용할 때 가장 우수한 효과를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이 여러 차례에 걸쳐 검증되었다. 그러나 같은 피험자들을 대상으로 네덜란드에서 실시한 또 다른 연구에서는 이보다 조도가 더 낮고 따뜻한 색상의 빛이 더 긍정적인 효과를 보인 적도 있다. 이 연구진은 16명의 여성을 대상으로 아침에 일어날 때 각각 다른 빛 자극을 준 결과, 앞선 실험보다 좀 더 어두운 2,700K 광원에 가장 짧은 반응 시간을 보였다는 결과를 얻었다. 2,700K는 60와트 전구와 같은 색온도에 해당한다. 이 사실이 전해주는 중요한 의미는 아침에 활기찬 기분으로 일어나는 것보다 밝은 형광 불빛에서 느끼는 불쾌한 기분이 훨씬 더 큰 비중을 차지한다는 것이다. 마치 이미 상영이 시작된 극장에 뒤늦게 들어가는 것과 같다고 할까.
그러므로 아침에 일어나기에 가장 좋은 빛을 색상과 밝기로 표현하면, 약간 밝으면서도 은은하고 따뜻한 빛이라고 할 수 있다. 후천적인 연관성과 감정을 고려하면 부드러운 붉은 계통의 색상이 좀 더 신선하고 긍정적인 하루를 시작하는 데 더 적합하다. 봄에 피는 꽃이 연상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국 가장 좋은 하루를 보내는 데는 햇빛보다 나은 것이 없다. 그렇게 생각하면 야외 활동이야말로 밤에 숙면하고 수면과 기상의 조화를 달성하는 데 절대적으로 필요한 일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하루에 최소한 2시간 정도만이라도 야외에서 자연광을 쬘 수 있다면 확실한 효과를 볼 수 있다. 도저히 그럴 수 없는 환경이라면 광원을 이용한 알람 시계를 사용하는 것이 수면 관성을 완화하고 밝은 기분을 유지하는 데 분명히 도움이 된다. 여기에 적절한 음향을 갖춘다면 더할 나위 없을 것이다.
조용하고 자연스러운 소리
알람 시계의 엄청난 굉음을 듣고 마치 긴급 상황이 벌어진 것 같은 기분으로 눈을 뜨는 것은 새로운 하루를 시작하는 좋은 방법이 아니다. 인간이 본능적으로 두려움을 느끼는 대상이 두 가지 있다고 하는데, 하나는 실패고 또 다른 하나가 시끄러운 소리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진화과정에서 각인된, ‘투쟁 도피 반응fight-or-flight mechanism(싸우느냐 달아나느냐의 양자택일 상황에서 보이는 반응-옮긴이)’을 경험하는 것은 결코 좋은 일이 아니다. 오히려 이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다. 코네티컷대학교 고혈압 임상약학과 학과장인 윌리엄 화이트William B. White 박사의 논문에 따르면 인간의 혈압은 수면 중에 평소보다 약 30퍼센트 정도 낮아졌다가 아침에 일어날 때 정상 이상으로 급등할 수 있다고 한다. 그가 말하는 ‘기상 후 혈압 상승’이 일어나면 아침에 눈을 뜨고 1~2시간 이내에 심장마비 발병 위험이 있다. 잠을 깨기 위해 충격적인 소리를 듣는 것이 좋은 방법이 아닌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특히 이것이 월요일 아침이라면 더욱 그렇다! 일본의 한 연구에 따르면 도쿄 외곽 농촌 지역에 사는 175명의 혈압을 측정한 결과, 월요일 아침이 가장 높고 토요일에 가장 낮다는 결과가 나왔다. 이 결과는 월요일에 심혈관 질환이 가장 많이 발병한다는 통계 수치와도 일치한다. 그러니 시끄러운 알람 시계 소리에 잠을 깨는 것보다 더 나쁜 일이 또 있겠는가?
수면 중에도 청각은 살아있다. 저명한 수면 과학자 찰스 체이슬러Charles Czeisler에 따르면 한밤중에 들려오는 아주 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