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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 2022년 04월 19일
지은이 : 리디아 유크나비치
옮긴이 : 임슬애
펴낸이 : 김석원
펴낸곳 : 도서출판 든
출판등록 : 406-2019-000010호
주소 : 경기도 파주시 문발로 119, 202호
전화 : 031 955 8101
팩스 : 031 955 8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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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ub Isbn : 979-11-974614-5-3
Epub 정가 : 11,000원
VERGE
Copyright ⓒ 2020 by Lidia Yuknavitch
All rights reserved.
Korean Translation Copyright ⓒ 2022 by BALGUNSESANG PUBLISHING CO., LTD.
Korean translation rights arranged with Massie & McQuilkin through EYA (Eric Yang Agency)
이 책의 한국어판 저작권은 EYA (Eric Yang Agency)를 통해 McQuilkin과 독점 계약한 든이 소유합니다.
저작권법에 의하여 한국 내에서 보호를 받는 저작물이므로 무단 전재 및 복제를 금합니다.
일러두기
* 각주는 모두 옮긴이의 주입니다.
이 책을 내 평생의 사랑, 앤디 밍고에게 바친다.
내가 경계에서 방황할 때마다
어김없이 나를 찾아준 것에 감사하며.
The Pull
물속에서 헤엄치는 여자아이의 몸은 무게가 없다. 수영장의 푸르름이 그의 귀를 채우고 몸을 잡아주고 세상을 차단한다. 그는 무엇보다 물속에 있는 것을 좋아한다. 육지에서는, 호흡도 버겁다.
그는 채 두 살도 되지 않은 아기였을 때 처음으로 물에 이끌림을 느꼈다. 가족 여행으로 지중해에 머물던 어느 오후, 부두 가장자리를 맴돌다가 누가 알아채기도 전에 돌멩이처럼 퐁당 바다에 입수했다. 다섯 살 많은 언니가 뒤따라 물에 뛰어들어 동생을 끌고 나왔다. 물 밖으로 나왔을 때 아기는 웃고 있었고, 물은 아기의 숨을 막지 못했다. 그에게는 없는 기억이다. 가족들이 전해주는 생생한 추억담일 뿐.
하지만 그 후로 펼쳐진 어린 시절은 듣고 싶지 않은 긴 이야기. 듣고 있으면 가슴이 저리는, 그런 이야기.
여자아이는 헤엄치고자 한다. 어린 시절을 한순간이라도 복기하느니 헤엄치는 것이 낫다. 그는 자기가 사는 동네 건물들이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른다. 집이란 그의 목구멍에서 산산이 조각난 벽돌.
방문을 열고 나오면 복도에는 하나 남은 가족사진이 있다. 이제는 기억도 나지 않는 가족 모임에서 찍은 사진이다. 웃음기 없는 친척들 사이사이로 있어야 할 사람들이 없다. 삼촌, 사촌, 형제 혹은 이모. 한 명씩 온 가족이 사라지고 있는 것처럼.
그에게 물보다 더 사랑하는 것은 없다. 언니의 얼굴 말고는. 그는 밤이 깊어지면 이따금 악몽을 꾸느라 잔뜩 찌푸려진 언니의 미간을 펴준다. 언니는 탱크가 들이닥친 후로 종종 악몽을 꾼다. 그리고 어디선가 박격포가 날아올까 봐 여자아이가 늦은 시간까지 눈을 감지 못할 때면, 언니는 그의 귓바퀴를 부드럽게 어루만지며 잠들 수 있게 도와준다. 그에게 언니는 생명선과 같다. 쌍둥이처럼 살아가는 두 여자아이.
여자아이는 악몽을 꾸지 않는다. 대신 물의 환영을 본다. 환영 속에서, 물은 그에게 말을 건다.
중력에서 해방된 듯 팔을 움직여봐. 원한다면 입을 벌려. 하지만 육지에서 숨 쉬듯 숨 쉬면 안 돼. 숨 쉬는 대신 눈을 감고, 호흡할 수 있는 푸르름을 기억해. 그리고 눈을 떠. 그러면 물속에서도 숨을 쉴 수 있게 될 거야. 누구든 할 수 있어. 다들 했었지. 시간이 탄생하기 전에는. 이제 몸을 띄우지 말고 가라앉혀. 바다 밑바닥에 도달하면 발로 모래를 디디고 체중을 실어 똑바로 서는 거야. 여기서부터, 이제 너는 어디로든 갈 수 있어. 불가사리와 거북이가 네 옆에 있어. 알파벳 S처럼 구불구불한 전기뱀장어, 노랗고 파란 점이 아롱아롱한 전기뱀장어가 옆에서 헤엄칠 거야. 네 손을 바라봐. 지느러미를 상상할 수 있어? 손가락을 넓게 벌려봐. 인간에게 손가락이, 팔다리가 없었던 때가 있었지. 육지의 삶이 탄생하기 전. 바닷속에는 외로움이 없어. 이곳에는 물의 삶과 죽음뿐이야. 번영하는 삶, 그리고 죽음.
가족들이 전하는 이야기가 또 하나 있다. 언젠가 여자아이가 혼자 호텔 수영장을 휘젓고 있는데 어느 수영 코치가 그를 포착했다. 그렇게 아이는 수영 팀에 발탁되었다. 그때는 땅이 갈라지기 전, 하늘에서 금속성 비가 퍼붓기 전이었다. 아이는 물이 있는 곳은 어디든 찾아냈다. 슈퍼 옆의 콩팥 모양 호텔 수영장에 갔고, 휴가를 떠나면 바다로 갔다. 폭탄 세례를 맞은 아파트 단지 수영장은 물이 반만 채워져 있었다. 물속에는 나뭇잎과 흙과 먼지가 떠다니고 어쩌면 붉은 피도 섞여 있었겠지만 여자아이는 개의치 않았다. 그는 어디서든 헤엄쳤다. 수영할 때는 세상이 지워졌다.
여자아이는 수영 연습을 하면 살아있음을 느낀다. 물살을 가르는 근육, 리듬에 맞춰 숨을 내뱉고 숨을 참는 폐, 박동하는 심장. 그는 수영하는 사람들에게만 친밀감을 느낀다. 그들은 서로를 이해하기 위해 언어를 사용할 필요가 없다. 물속에서 모든 몸은 이어지고, 같은 형태로서 같은 리듬을 만들며, 다르고 또 비슷한 물살을 뚫고 움직인다.
가끔 여자아이는 온종일 늦은 밤까지 헤엄치고 싶다고 생각한다. 집에 가지 않고.
그러던 어느 날, 그날 이후로 수영장의 모든 것이, 수영장에 들어가면 펼쳐지던 마음의 풍경이 완전히 바뀌어 버린다. 휴교령이 잦아지면서 어느 때는 몇 주나 휴교가 계속되었지만, 여자아이와 친구들은 문자를 주고받고 일상적인 이야기를 조잘거린다. 원래 아이들은 변화에 둔감한 법이다. 아이들이 원하는 건 친구와 노닥거리며 평온한 일상을 즐기는 것뿐이니까. 하지만 어떤 이들은 경고한다. 사실 경고하는 사람은 줄곧 있었다. 그날에는 아이의 어머니마저 수영 연습을 위해 학교에 가려는 여자아이를 막았다.
수영을 오래 쉬어 어깨가 욱신거리던 그날 오후, 찢어지는 소음이 하늘을 가르더니 잠시 귀가 먹먹한 적막이 이어진다. 그리고 폭탄이 쾅, 수영장 벽 한쪽과 지붕 대부분을 허문다. 여자아이의 친구 두 명이 죽는다. 그들의 축 늘어진 몸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가 가라앉는다. 그들은 더 이상 수영장 물을 가로지르며 미래를 꿈꿀 수 없다.
죽음이 여자아이의 삶에 나타나 물을 앗아간 후로, 바다로 가자는 생각이 그의 내면을 점령한다.
물의 환영 속 저 깊은 해저에서는, 뼈와 함선의 잔해와 바다생물과 남자와 여자와 아이와 동물과 피어나고 죽어가는 산호와 플라스틱과 기름과 용암 덩어리 사이로 윙윙거리는 소리가 통과하지……. 모든 것은 유동적이며, 모든 것은 다른 것과 연결되어 있어. 새로운 물고기 군집, 새로운 생물 종, 깊어지고 깊어지는 의미 옆에 문명 전체가 병치되지. 광합성과 광합성의 부재와 그럼에도 피어나는 생명, 더 많은 생명. 물속에서는 죽음이 양보한 자리에 생이 피어나. 벽도 도로도 울타리도 국가도 폭탄도 없이, 열 염분 순환과 잠수함 증기와 코리올리 힘을 만들어내는 지구의 움직임만 존재하지. 밀고 당기는 태양과 달, 밀물과 썰물. 네게 말을 거는 바다. 바다의 팽창과 수축. 끊임없는 파도 속에서 이뤄지는 바다의 창조와 파괴와 재창조.
모국을 떠나는 여자아이와 언니는 그 여정이 얼마나 위험한지 알고 있다. 자매의 부모도 알고 있다. 세상 사람들 전부 알고 있다. 떠나는 방법에 관한 이야기는 그들이 태어나기 전부터 살아 숨 쉬고 있었다. 가족과 연인과 친구와 이방인이 밤마다 속삭이는 대화 속에서 피난은 생사를 가르는 일이라고 했다. 친구들이 죽고 수영장이 폭파되어 여자아이가 살던 삶의 전경이 무너진 지금, 그 모든 것이 여자아이와 헤엄칠 자유 사이에 벽을 쌓는다. 그의 욕망은 다른 아이들과 다르지 않다. 그는 헤엄치고 싶다. 친구를 사귀고 싶다. 학교에 가고 싶다. 굶기는 싫다. 죽기도 싫다. 그는 바득바득 이를 간다.
그러니 여자아이와 언니가 떠날 때, 그 떠남에는 이미 이야기가 내재한다. 그들은 수많은 떠난 자들의 물결에 합류할 것이다. 터키까지 육로로 간 다음 에게해를 거쳐 그리스로 이동한 후, 그리스에서 출발 22일 만에 독일에 도착할 것이다. 그들이 어디 출신이고 그들의 몸이 어디서 태어났는지는 중요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이 함께 이동하고 있다는 것만 중요할 것이다. 그들은 떠나는 행위에서 형성된 새로운 유기체, 언어와 두려움과 욕망의 덩어리. 물에서 나타나 해안으로 밀려드는 새로운 인류.
에게해 한복판에서 부유하던 어느 해거름, 그들의 뗏목은 세계 곳곳에서 수많은 뗏목이 그랬던 것처럼 흔들리기 시작하고, 갈증이 극심해진 얼굴, 눈가와 입가에는 소금과 각질 조각이 허옇게 마르기 시작한다. 뗏목에는 나이가 자매와 비슷하거나 그보다 훨씬 어린 청소년들이 있고, 아기가 둘, 자매보다 더 나이 많은 사람들도 있다. 그들 사이에는 어떤 강렬한 친밀감이, 난파당하지 않는 이상 그 누구도 죽게 놔두지 않겠다는 무시무시한 연대감이 피어나고 있다. 그러나 뗏목이 요동치기 시작하자 여자아이에게 뗏목은 기울어진 가족사진이 된다. 세상이 기우듬해지며 그 속에 있던 사람들이 사진틀 밖으로 미끄러지고 바다로 빠질 것만 같다. 그는 낯선 가족들의 얼굴을 살펴보다 물로 시선을 옮긴다.
가장 견디기 힘든 점은 뗏목에 탄 모든 이에게 저 멀리 해안이 보이지만 그들의 얼굴에서는 해안까지 헤엄쳐 갈 자신감을 느낄 수 없다는 것이다.
물의 환영 속에서 여자아이는 이끌림을 느낀다.
어떤 이들은 거대한 물을 마주하면 이끌림을 느끼지. 그것에 대해서는 아무도 이야기하지 않지만. 이끌림은 인생이 너무 무거운 사람들에게 찾아와. 자기만의 삶으로 주어진 이야기를 꺾어 버리고 싶은 사람들, 모두가 두려워하는 영역까지 나아가려는 사람들에게. 이끌림은 차갑고 또 따뜻해. 몸을 근원으로 되돌려주지. 마치 양수처럼. 다만 양수보다 더 강력해. 사람들은 이끌림을 느끼면 대부분 밑으로 내려가고 싶은, 조금 더 가라앉고 싶은 충동에 지고 말아. 팔다리의 힘을 놓아버리고, 초인적인 침착함으로 눈을 감고 숨을 참아. 어렸을 때 물속에서도 숨을 쉴 수 있다고 믿던 사람들에게만 허락되는 침착함이지. 그리고 바로 그때, 이끌림을 느끼는 사람들은 둘 중 한 가지 경험을 하게 돼. 어떤 이들은 끊임없이 발버둥 치다가 지쳐버리고, 그렇게 아무런 저항 없이 기꺼이 몸을 내주면 물이 숨길이었던 곳으로 들어와. 우리가 태어나기 전에 그랬던 것처럼. 이끌림은 모든 사람 안에서 각각 다르게 나타나지.
반면 어떤 사람들은 물속에서 눈을 뜬 채 밀려드는 힘을, 호흡보다 깊은 힘을 받아들여. 그들은 팔뚝과 다리를 휘저어 수면으로 올라가고 다시금 폐로 깊게 숨을 들이마시지. 살기 위해 싸우는 거야.
뗏목에 앉은 여자아이는 신발을 벗는다. 언니도 신발을 벗는다. 그는 바지를 벗는다. 언니 역시 똑같이 한다. 그는 뗏목에서 물속으로 천천히 미끄러진다. 언니도 뒤이어 물속으로 미끄러진다. 걷는 법을 배우기 전에 헤엄치는 법부터 배웠던 두 여자아이.
그는 저 먼 곳을 내다보고, 그의 머리는 수면 위로 동그랗게 떠오른다. 평범한 이에게는 너무 멀다고 느껴질 거리가 ―뗏목 위의 사람들은 그가 물에 빠져 죽으려 한다고, 끔찍하다고 생각한다 ―그에게는 완벽한 가능성으로 보인다. 그는 고개를 돌려 언니를 바라본다. 언니의 눈빛을 통해 둘 다 성공할 것임을 직감한다. 팔로 숫자 8을 그리고 다리로 가볍게 발차기를 하며 물살을 가로지르는 그는 자신의 몸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들은 헤엄쳐 삶에 도달할 것이다. 여자아이는 손을 뻗어 언니의 미간을 펴준다.
자매는 뗏목의 밧줄을 찾아내 서로의 발목에 묶는다.
그들은 눈부신 자신감을 품은 채 다른 생명들을 짊어지고 삶을 향해 헤엄친다. 헤엄치는 여자아이와 언니의 아름다운 몸, 그 밑의 거대한 물을 향한 이끌림, 뗏목 위에서 가망 없이 희망하는 사람들의 눈동자와 심장을 향한 이끌림, 그들 주변에서 끓어오르는 거대하고 그릇된 세계를 향한 이끌림의 끝은―.
이 이야기는 결말이 없다.
우리가 아이들을 바다로 집어넣는다.
The Organ Runner
아나스타샤 라다비츠가 여덟 살이었을 때, 그는 왼손을 발 바로 위 발목에 붙이고 여섯 달을 살았다.
무슨 일이었냐 하면, 밀밭을 가르는 콤바인이 아나스타샤를 들이받아 그의 손이 팔에서 깔끔하게 썰려 나갔다. 그는 다섯 살 때부터 가족과 밭일을 했기 때문에 숙련 노동자라고 할 수 있었을뿐더러, 어린아이들의 손이 밭고랑에 납작하게 늘어선 위로 콤바인이 지나가는 사이 단 3초 동안 정신을 팔았을 뿐이었지만, 그것도 비극이 발생하기에는 충분한 시간이었다.
손은 상처가 심각해서 즉각 팔에 붙일 수 없는 상태였다. 그리하여 의사들은 손을 발목에 붙여 상처를 치료하기로 했는데, 이런 시술은 세계 최고의 의사들에게도 위험천만한 모험이었다. 아나스타샤가 사는 곳의 의사 중에는 젊은 피가 많았다. 그들은 환자는 많고 규제는 적은 곳에서 최신식 시술을 실험하며 자기 능력을 연마하고자 했다.
여섯 달 후에야 의사들은 아나스타샤의 손을 손목에 봉합했다. 몇 차례 수술을 거치자 감각이 돌아왔고, 점차 혈액이 돌며 발그레한 빛깔을 회복했다. 어느 정도 움직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발목에서 자라나던 손의 모습은 절대 잊을 수 없었다. 몸의 두 부분이 절대 그래서는 안 될 방식으로 붙어 있었다. 병원 침대에 누워 손-발을 바라보며 그것들이 서로에게 비밀을 속삭이고 있을지 궁금해 하던 그 나날들을, 아나스타샤는 줄곧 기억했다.
밤이 되면 국립병원에 있는 아이들은 작은 짐승처럼 흐느껴 울며 잠이 오기를 기다렸다. 그중 몇몇은 사실상 버림받은 상태였다. 그렇게 몇 달이, 또 몇 달이 지나며 아나스타샤는 서서히 회복했다. 발 옆에 놓인 손을 보면 침팬지가 떠올랐다. 손등을 땅에 질질 끌면서 발바닥으로 사물을 움켜쥐어 지탱하고 뛰어다니는 침팬지. 아나스타샤의 꿈은 영장류로 가득 찼다. 그는 손과 나란히 달음질하는 자신의 다리를 상상했다.
아나스타샤는 학교에서 배워 알았다. 1980년대와 1990년대 소비에트에서는 ‘비온 인공위성’ 프로그램에 붉은털원숭이를 사용했다. 그는 원숭이들의 이름도 외우고 있었다. 아브레크, 비온, 베르니와 고르디, 드리오마와 예로샤, 자코냐와 자비야카, 크로시와 이바샤, 라피크와 물티크. 이중 단 한 마리, 물티크만 죽었다. 마취 상태로 조직 검사를 하던 중 세상을 떠난 것이다.
아나스타샤는 거의 두 해 동안 국립병원에 머물며 건강을 회복했고, 자기 말에 귀 기울여주는 간호사가 있으면 누구든 붙잡고 원숭이란 생물이 얼마나 멋진지 조잘거렸다. 한 간호사는 영장류를 연구하는 서방의 동물학자 제인 구달의 책 ―《제인 구달─침팬지와 함께한 나의 인생》이라는 책이었다 ―그리고 작은 원숭이 인형을 선물로 주었다. 아나스타샤는 책을 고이 간직하고 싶었으므로 얇고 꼬질꼬질한 매트리스 밑에 잘 넣어두었다.
손이 나을 수 있을 만큼 나은 후 아나스타샤는 퇴원했다. 떠날 준비를 하는 동안 책은 허릿단 안쪽에, 등허리 옴폭한 곳에 고정해 숨겼다. 원숭이 인형 ―‘구달’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은 보란 듯이 들고 다녔다. 아이에게 어울리는 물건이었으므로 아무도 눈여겨보거나 신경 쓰지 않았다. 아나스타샤의 가족이 나타나지 않자, 먼 친척이라는 아주머니가 그를 받아주기로 했다(멀쩡한 손이 하나뿐인데 농장에서 무슨 쓸모가 있겠어? 여기엔 할 일이 산더미라고. 그의 아버지는 이렇게 말했다고 전해졌다). 그는 다른 열일곱 명의 아이들과 한집에서 살게 되었다.
먼 친척이라는 아주머니는(정말 친척이었을까? 아나스타샤는 의아했다) 공교롭게도 몸뚱이로 벌어먹는 사람이었다. 아이들 대부분은 배 아파 낳은 자식이었다(정말이었을까? 아나스타샤는 의아했다). 아주머니는 죽음이든 뭐든 그 어떤 이유로도 아이를 잃은 적 없다는 사실에 큰 자부심이 있었다. 아이들은 아주머니의 가슴을 빨아대는 젖먹이부터 열네 살짜리 소년까지 나이대가 다양했다. 하지만 아주머니는 늙어가고 있었고, 가세는 기울어져 새로운 돈벌이가 필요했다.
아나스타샤는 학교로 돌아가지 못했다. 대신, 재바르게 집안의 규칙을 배우기 시작했다. 집안의 아이들은 빠르면 다섯 살이 되자마자 아주머니에게서 생존에 몹시 중요한, 아니 그가 중요하다고 주장하는 교육을 받게 되었다. 그들이 배운 바에 의하면, 인간의 몸에는 다른 몸에 이식할 수 있는 장기가 여덟 개 있었다. 폐, 간, 심장, 신장, 췌장, 소장, 위, 췌도. 신체 조직도 이식할 수 있었는데, 피부, 뼈, 힘줄, 연골, 각막, 심장 판막, 혈관이 해당했다. 간 같은 장기들은 일부만 이식할 수도 있었다. 그리고 정자, 모유, 난세포, 머리카락까지, 몸의 모든 것에 값이 있었다.
중개인이 자기 몫을 떼어간 후 장기 값의 대략 4퍼센트가 장기 배달부에게 돌아갔다. 4퍼센트는 대단치 않은 금액이었으나 장기 배달부 열일곱 명이 그만큼씩 벌어온다고 계산하면 쏠쏠했다. 냉장고나 가스레인지나 자동차를 새로 사들일 만큼, 영원히 집안 살림을 갈아 치울 만큼 넉넉한 돈이었다.
아나스타샤는 신속하게 자기 자리를 확보했다. 자기 연민 따위는 즉시 폐기했고(자기 연민은 어머니가 아버지의 손등에 맞아 방 끝까지 날아가는 장면을 목격한 날 포기했던 사치스러운 감정이었다), 거실의 벽난로 근처, 돌벽 안으로 쑥 들어간 구석에 잠자리를 마련했다. 다른 시대였다면 요리할 때, 음식이나 아기나 암탉 같은 것을 따뜻하게 해줄 때 사용했을 자리였다. 그는 구석 깊은 곳에 밀짚을 깐 뒤 구달을 놓았고 오래된 담요와 신문으로 자신을 위한 짚자리를 만들었다. 제인 구달 책에서 읽었던 침팬지들의 보금자리와 썩 비슷해 보였다. 어린이와 원숭이 인형에게 걸맞은 좋은 공간이었다. 위험으로부터 안전했고, 따뜻했고, 도망쳐야 할 일이 발생할 경우 문까지 거리도 가까웠다.
다른 아이들은 아나스타샤의 등장에 개의치 않았고, 아나스타샤를 집단의 일원으로 받아들였다. 하지만 가장 나이가 많은 남자아이 키릴은 달랐다. 키릴은 아나스타샤에게 분노를 터뜨릴 만한 가치가 있다고 결론지었는데, 아나스타샤는 늦게 합류한 데다가 한 손을 거의 쓰지 못하는 불구이기 때문이었다. 무리 지어 인생을 헤쳐 나가는 어린것들은 약자를 가려내는 일에 능숙했다.
키릴이 가장 좋아하는 놀이는 아나스타샤의 구달을 빼앗아 숨기는 것이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아나스타샤는 사라진 구달을 찾아내는 데에 능숙해졌다. 자신에게 이런 질문을 던져보면 답은 간단했다. ‘어린 시절을 빼앗긴 남자아이, 한 번도 사랑받지 못한 남자아이라면, 누군가에게 사랑받는 물건을 어디에 숨겨놓을까?’ 키릴이 생각해낸 장소들은 뻔했고, 가끔은 너무 뻔해서 측은할 정도였다.
그러던 어느 날, 구달에게 사뭇 다른 일이 발생했다. 구달을 찾던 아나스타샤가 집 밖 장작 창고 밑을 기웃거리고 있는데, 키릴이 모퉁이 뒤쪽에서 나타나 아나스타샤의 머리 위로 구달의 팔을 잡고 대롱대롱 흔들었다. 아나스타샤는 구달을 빼앗으려 달려들었으나 실패했다. 키릴은 남자로 자라나고 있는 어린것답게 웃었다. 그러고는 커다란 쇠가위―대장장이가 쓸법한 가위였다 ―를 꺼내더니 구달의 손목을 잘랐다. 구달의 손을 들고 있는 키릴의 미소가 벌레처럼 꿈틀거렸다. 아나스타샤는 숨이 턱 막혔다. 허겁지겁 달려가 진창에 떨어진 손 없는 구달을 집어 들었다.
키릴이 잘린 손을 아나스타샤에게 내밀었다.
“발에 꿰매놓던가, 네 맘대로 해.”
아나스타샤는 구달의 손을 빼앗으려 또 한 번 달려들었다.
키릴은 손을 입에 넣고 삼켰다.
아나스타샤는 우주 비행사 원숭이들의 이름을 되뇌었다. 아브레크, 비온, 베르니와 고르디, 드리오마와 예로샤, 자코냐와 자비야카, 크로시와 이바샤, 라피크와 물티크. 그러고는 머릿속으로, 마음속으로 키릴을 죽이겠다고 맹세했다.
그 생각은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해야 할 일,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시간이 흐른 뒤 아나스타샤는 생각했다. 만약 구달의 손을 되찾아올 수 있었다면, 잠시 구달의 발목에 꿰매어 놓았다가 원래 있던 자리에 붙였을 것이다. 그것은 무엇이든 떨어져도 다시 붙일 수 있다는 증거가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럴 수 없으니 구달의 잘린 손목을 그대로 봉합해 버렸다.
키릴의 열다섯 살 생일에는 그를 위해 파티 비슷한 것이 열렸다. 가난과 부는 가정마다 각각 다른 형태를 취한다. 든든한 가족이나 안정감 없이 자란 아이들은 신뢰할 수 없고 불안하고 야생적인 어른이 된다. 그렇지만 학대나 방임에 몰리거나 보육원에 맡겨지는 것에 비하면 그 아이들은 행복하다고 할 수도 있었다.
키릴은 케이크의 촛불을 끄고 일어서서 모두에게 한마디 했다. 자기가 받았던 신장 수술에 대해 이야기하며, 윗옷을 들어 올리고 바지 허릿단을 살짝 내린 뒤 조심스레 실밥을(아나스타샤에게는 붉고 매혹적인 지퍼처럼 보였다) 어루만졌다. 수술 자국은 배꼽 근처에서 시작해 위로, 갈비뼈 옆쪽까지 이어졌다. 그 후에는 자기 신장 값으로 사들인 새 아이스박스를 가리켰다. 아주머니가 미소 지었다. 다른 아이들은 손뼉을 쳤다.
별맛도 없는 케이크가 아주 작게, 아이들 열일곱 명과 아나스타샤와 아주머니와 정체를 모를 어떤 남자까지 모두 맛볼 수 있도록 작은 조각으로 잘렸다. 아이들은 전부 냉동 고기와 빵과 채소와 치즈가 색색의 얼음 조각처럼 쌓여 있는 새 아이스박스 내부를 보려고 기웃거렸다. 아이스박스는 모두의 삶을 바꿔놓을 것이었다. 음식을 저장할 수 있는 삶은 전과는 다른 삶을 의미했다. 아나스타샤는 잠시 키릴의 붉은 지퍼 모양 흉터를 떠올렸고, 그 안으로 손을 넣어 음식을 집어내듯 다른 장기를 집어내는 모습을 상상했다.
다른 아이, 여덟 살 정도인 남자아이가 ―이름이 예고르였나 일리야였나, 아나스타샤는 종종 아이들의 이름이 헷갈렸다 ―미소를 지으면서 양손을 하늘로 쭉 뻗고 소리쳤다.
“이 손으로 날랐지! 이 손으로!”
그 애가 키릴의 신장을 배달했던 것이다. 아나스타샤는 허공으로 솟은 그 애의 두 손을, 그리고 옆구리 밑으로 축 늘어진 자신의 죽은 손을 응시했다.
장기 배달부의 이야기는 언제나 다른 아이들을 매혹했다. 의사(정말 그는 의사였을까?)가 키릴의 신장, 그 동그란 핏덩이를 고무장갑 낀 장기 배달부의 손에 올려놓았다. 장기 배달부는 귀중한 얼음이 가득한 보냉 가방에 신장을 넣은 뒤 주택 사이로 뒷골목으로 울타리의 개구멍으로 쓰레기를 피해 밤을 가르며 27분 동안 달리고 달려(사람들은 미리 소요 시간을 재고 또 쟀다) 한 아파트 건물의 3층 계단을 오른 끝에, 마취된 상태로 수술대 위에 누워있는 플로리다 출신의 60대 여자와 그 옆을 지키는 다른 의사(정말 그는 의사였을까?)가 기다리는 어두컴컴한 방으로 들어갔다. 장기 배달부 역할에 아이가 적격인 이유는 작은 몸피, 뒷골목과 슬럼가와 쓰레기와 폐기물 사이를 누비는 날렵함, 멈춰 세워져 조사받을 일 없는 천진함 때문이었고, 거리의 부랑아는 밤 풍경에 완벽하게 녹아들기 때문이었다. 무엇보다 아이들은 아무것도 묻지 않고 그저 달릴 줄 알았다.
아이들이 추운 밤이면 불가에 모여앉아 주고받는 다른 이야기들도 있었다. 한 아이가 운을 떼면 다른 아이가 헐거운 마룻장을 하나 들어내고 안에서 미국에 관한 옛날 신문 기사를 꺼내―접힌 종이를 귀한 보물 마냥 조심스럽게 펴냈다 ―큰 소리로 읽었다. 그들은 아주 먼 곳에 살았던 켄드릭이라는 사람에 관한 글을 몇 토막씩 암기했다. “동네 학교에서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했다.”, “바닥 깔개 밑에 깔렸다.”, “발견된 시체.”, “몸에 장기가 하나도 없었고, 빈자리에는 신문지가 쑤셔 넣어져 있었다.”
어떤 어른들은 인간의 가치에 관한 원칙들을 전부 위반하며 살고, 그런 어른들의 이야기는 온 세상 아이들의 삶을 뒤흔든다. 아이들은 납치되거나 붙잡히거나 버려지지 말라고 배운다. 어디서 누가 보고 있을지 모른다고. 아이의 몸은 같은 무게의 금만큼이나 값나간다고.
키릴의 분노, 그리고 아나스타샤의 혐오는 아나스타샤가 첫 번째 배달을 다녀온 밤에 정점에 달했다. 첫 배달에 앞서 아나스타샤는 업자와 함께 배달 경로를 열 번이 넘게 예행했고, 중간에 8분 동안 자동차로 이동하는 것까지 포함해 출발부터 도착까지 어김없이 21분이 걸리도록 맞췄다. 그러나 막상 배달 당일에는 만나기로 한 장소에 운전 담당이 나타나지 않아 ―그렇게 23분, 25분, 32분이 지났다 ―아나스타샤는 벽에 박힌 돌처럼 눈에 띄지 않으려 애쓰며, 왼발 오른발로 무게 중심을 옮겨가며 뒷골목에 서 있었다. 그렇게 장장 43분이 흘렀을 때는 주머니에 있던 파란색 수술 장갑을 꺼내 죽은 손에 낀 후 얼음과 신장이 담긴 보냉 가방을 열고 손을 얼음 속에 집어넣어 신장을 마사지하기 시작했다. 왜 그랬는지는 몰랐다. 그저 신장에게 도움이 필요할 것 같다고 생각했을 뿐이었다.
죽은 손에는 감각이 거의 없었기에 아나스타샤는 손을 얼음 속에 넣은 채 목적지까지 갈 수 있었다. 운전사가 뒷좌석을 돌아보며 물었다. 손, 손이 차갑지 않니? 감각은 있어? 아나스타샤는 그저 가만히 앉아 작은 신장에게 나긋나긋 노래를 해주었고, 아파트에 도착하자 운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