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KUEN TOHA TANTEI NO FUZAI NARI
ⓒ 2020 Yuki Shasend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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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두기
본문의 각주는 전부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한 옮긴이 주입니다.
얼굴이 깎여나간 천사들이 잿빛 하늘을 날아간다.
천사는 비가 내리기 전의 하늘을 좋아하는지 천사가 두세 마리 무리 지어 의기양양하게 날아가는 모습을 본 뒤에는 반드시, 라고 해도 될 만큼 자주 비가 내린다.
그렇다면 도코요지마섬에도 곧 비가 내리겠지.
그렇게 생각하자 아오기시는 기분이 한층 침울해졌다. 어제 뱃길로 네 시간이나 걸려 이 섬에 도착한 후로 아오기시는 한숨만 쉬고 있다.
방은 지내기 편하다. 다섯 평쯤 되는 방은 아오기시의 집보다 넓고, 가구도 어지간한 호텔은 상대도 안 될 만큼 호화롭다.
반쯤 덤으로 초대받은 탐정 나부랭이에게도 더할 나위 없이 대접해준다고 할 수 있으리라. 이번에 초대받은 사람은 하나같이 엄청난, 이라는 수식어가 붙을 만큼 유명인이다. 주눅이 드는 건 아니지만, 부자연스럽게 자기가 왜 그사이에 끼어 있느냐는 느낌은 지울 수 없었다.
애당초 여기서 뭘 하는지조차 아오기시에게는 알려주지 않았다. 어떤 달콤한 말에 넘어가서 섬까지 오기는 했지만, 그저 이 저택에서 환대받고 있을 뿐이다. 자세한 설명도 듣지 못하고 창문으로 천사를 바라보고 있자니 묘하게 불안한 기분이 들었다.
대체 무슨 일에 휘말렸는지 상상도 가지 않는다. 어쨌거나 여기는 천사로 가득한 섬이고, 모인 사람들은 일종의 ‘천사광’이다.
어떤 의미에서는 아오기시도 그중 하나였다.
지금은 오전 6시. 7시 반에 아침 식사를 하기까지 아직 시간이 있다. 그러나 눈은 완전히 말똥말똥해졌다. 하염없이 침대에 누워 시간을 때울 마음도 들지 않았다. 일어나는 편이 나으리라.
아오기시는 가볍게 머리를 긁적이다가 적당히 몸단장을 하고 방을 나섰다.
수건이 과하게 부드러워 얼굴에 들러붙듯 휘감기던 감촉이 가시지 않는다. 잘 닦아놓은 거울에 비친, 시원찮은 자신의 모습도 눈에 새겨져 있다. 30대 후반치고는 이미 수명이 다된 것 같은 얼굴. 후줄근한 양복도 한몫해 전체적으로 너저분하다. 이대로 주변을 어슬렁거리고 있으면 천사가 데리러 와주지 않을까.
몹시 긴 복도를 걷고 있는데 뒤에서 누가 말을 걸었다.
“안녕하세요, 아오기시 님. 일찍 일어나셨군요. 불편한 점은 없으셨는지요.”
돌아보자 저택 메이드인 구라하야 지즈사가 서 있었다.
저택 주인 쓰네키 오가이의 취향인지, 구라하야의 복장은 여간해서는 찾아보기 힘든 고전적인 메이드복이었다. 발목까지 내려오는 긴 치마를 보고 아오기시는 무심코 치마 속에 무기라도 숨겨놓지 않았을지 의심했다. 직업병이라고는 하지만 긴 치마에서 무기를 연상하다니 고상하지 못하다.
“딱히는. 여기, 정말로 셋이서 꾸려나가는 건가? 웬만한 호텔보다 훨씬 관리가 잘 되어 있는데.”
“청소며 세탁이며 힘든 일은 대부분 기계의 힘을 빌리고 있고……무엇보다 여기는,”
거기서 구라하야가 말을 끊고 창밖에 눈길을 주었다. 아름다운 바다 경치 속을 날아다니는 천사 두세 마리가 보였다. 잠시 후 구라하야가 웃는 얼굴로 말했다.
“이 세상의 낙원, 도코요지마섬이니까요.”
“……낙원이라. 확실히 천사가 많군. 먹이를 주면 비둘기처럼 몰려올 것 같아.”
“원하신다면 각설탕을 가져오겠습니다. 두세 개만 던져도 아오기시 님 말씀대로 천사들이 모여들 거예요.”
“아니, 됐어.”
인상이 말쑥한 메이드가 웃음을 유지한 채 고개 숙여 인사하는 걸 보고, 아오기시는 웬일로 반성했다.
돌아갈 배는 나흘 후에야 오는데, 자신의 기분이 언짢다는 이유로 이곳 분위기를 망쳐서는 안 된다. 이유야 어떻든 이 섬에 오기로 결정한 건 아오기시 본인이다. 언제까지고 침울하게 지낼 수는 없다.
계단을 내려가 별생각 없이 담화실로 향했다. 거기에 무료로 사용할 수 있는 음료 서버가 있었을 것이다.
구시대적인 저택에는 어울리지 않는 설비지만, 이런 부분을 편리하게 현대화해놓은 건 고맙다. 도코요 저택의 담화실은 예스러운 쉼터라기보다 공항 라운지 같은 인상이었다. 거기라면 아침 식사 시간까지 적당하게 시간을 때울 수 있으리라.
하지만 그곳에는 선객이 있었다. 그것도 아오기시가 별로 만나고 싶지 않은 선객이었다.
담화실 의자에는 척 보기에도 고급스럽게 느껴지는 양복을 차려입은 50세 전후의 남자가 앉아 있었다. 희끗희끗한 머리를 단정하게 빗어넘긴 남자는 이목구비가 반듯하니, 정체를 모르면 무슨 배우같이 보이리라. 다른 사람의 시선을 받는 데 익숙한 사람임을 누구나 한눈에 알아볼 만한 모양새다. 그는 김이 피어오르는 커피를 마시며 우아하게 책을 읽고 있었다.
얄밉게도 외국 원서를 읽고 있어서 정확한 제목은 알 수 없었다. 읽을 수 있는 건 참으로 이 섬에 어울리는 ‘Heaven’이라는 단어뿐이었다.
“아아, 좋은 아침입니다. 아오기시 씨.”
이 시간이라면 대단한 양반들하고는 마주치지 않을 줄 알았는데, 하필이면 제일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과 마주치고 말았다. 남자는 표정이 굳은 아오기시에게 싹싹하게 다가왔다.
“이야, 좀 더 빨리 인사드리고 싶었는데 타이밍을 놓쳤군요. 도코요지마섬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뭐, 제 섬은 아니지만요. 만나서 기쁩니다, 명탐정님.”
“……별말씀을.”
“저는 천국 연구가 아마사와 다다시라고 합니다. 인연이 생겨서 기쁘네요.”
자기소개를 하지 않아도 알고 있었다. 요즘은 아마사와의 이름을 모르기가 더 어렵다. 텔레비전에서든 서점에서든 아마사와 다다시의 자신감 넘치는 얼굴을 볼 수 있으니까.
그는 이 나라에서 천사 연구의 제일선에 서 있는, 그 분야의 일인자다. 천사에 얽힌 단어는 전부 이 수상쩍은 전문가가 만들었다고 하니, 그 영향력은 막강하다. 이 섬에 온 권력자들 가운데서도 한층 좋아할 수 없는 상대였다. 아오기시도 마지못해 인사했다.
“……반갑습니다, 아오기시 고가레입니다.”
“대단하십니다. 수많은 사건을 해결하셨다고 들었어요. 동경심이 샘솟네요. 저도 어렸을 적에는 셜록 홈스에 푹 빠져 살았습니다. 좋군요, 정의의 사도라는 느낌이라.”
무신경하게 던진 말에 약간 반응할 뻔했다. 간신히 마음을 추스르고 겸손을 떨었다.
“……제가 뭐 그리 대단하다고요. 무엇보다 이제 탐정은…….”
“그럴까요. 바로 지금 같은 세상이기에 탐정이라는 직업이 특별한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고는 생각지 않으십니까?”
“특별한 역할이라니요?”
“천사의 힘이 미치지 않는 부분을 해결하는 것 말입니다.”
서글서글한 표정으로 늘어놓는 아마사와의 말에 구체성은 눈곱만큼도 없다. 그저 인사를 나누는 김에 말해본 것뿐이리라.
실제로 탐정이 맡을 역할은 없다. 남은 것이라고는 불륜 조사나 반려동물 찾기, 그리고 사건 뒤처리 정도다.
정의의 사도로서 탐정이 할 일은 이 세상에 거의 남아 있지 않다.
5년 전에 발생한 ‘강림’은 세상을 완전히 뒤바꾸었다.
어디서 그 일이 제일 먼저 일어났는지는 정확하지 않다. 강림에 필요한 비극의 무대는 전 세계에 수두룩하게 준비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여기서는 제일 유명한 사례를 언급하도록 하겠다.
어느 나라에서 발생한 국왕군의 마을 주민 학살이다.
그 나라에는 예전부터 독재적인 성격의 왕과 압정에 시달리는 국민이라는, 흔하면서도 불행한 구도가 존재했다. 권력자의 심기가 불편하면 죽는다. 단순하기에 최악인 지옥. 마을 사람들은 그런 지옥에 떨어졌다. 그 마을이 왜 숙청의 대상이 됐는지는 아무도 기억하지 못한다. 분명 변변치 않은 이유였을 것이다.
구체적인 이유가 없기에 끝나지 않는 학살은 많은 희생자를 낳았다. 총을 든 병사들이 무기도 없는 마을 주민들을 쫓아가 무덤덤하게 쏘아 죽였다.
그리고 한 병사가 쏜 총알이 도망치는 마을 주민을 꿰뚫었을 때, 하늘에서 빛줄기가 내려왔다.
흐린 하늘을 가르는 그 빛을 보고 모두가 할 말을 잃었다고 한다. 어두침침하니 흐린 날씨 속에서 그것은 무엇보다도 환상적인 광경이었을 것이다. 그동안에도 쓰러진 마을 주민들의 피는 땅을 붉게 물들였고 다리에 총을 맞은 아이가 고통에 겨워 땅을 벅벅 긁었지만, 그런 줄도 모를 만큼 그 광경은 충격적이었다. 방금까지 우왕좌왕 도망치던 마을 주민들마저 발을 멈추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동시에 빛줄기에서 천사들이 튀어나왔다.
천사는 흡사 짐승 같은 몸놀림으로 병사에게 덤벼들어 움직임을 봉쇄했다. 지금과 다름없는 천사의 생김새는 평소 인간이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괴물 같았으므로, 습격당한 쪽은 기괴한 원숭이에게 붙잡혔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병사를 제압한 천사가 탁한 빛깔의 날개를 펼쳤다. 그 순간, 병사의 발밑이 붉은색으로 환히 빛나기 시작했다.
살이 타는 냄새가 점점 주변에 퍼져 나갔다. 활활 타는 땅에 짓눌린 병사가 몸부림을 쳤지만, 천사의 손에서는 벗어날 수 없었다. 잠시 후 불타는 땅에서도 천사가 얼굴을 내밀고 손을 뻗었다. 병사는 고작 몇 초 만에 화염이 일렁이는 땅으로 끌려 들어갔다. 귀를 막고 싶을 만큼 끔찍한 단말마의 비명이 울려 퍼졌다.
그런 광경이 여기저기서 눈에 들어왔다. 총을 들고 있던 병사들은 천사에게 붙잡혀 어딘지도 모르는 화염의 늪 속으로 가라앉았다. 인간의 목소리가 아닌 것 같은 절규와 귀에 거슬리는 천사의 날갯소리가 사방에 울렸다.
주변이 조용해졌을 무렵 병사들의 모습은 싹 사라지고 없었다. 마을 주민을 쏘기를 망설였던 병사 몇 명만 남아, 눈 앞에 펼쳐진 광경과 머리 위를 날아다니는 천사들을 겁에 질린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그들은 자신들이 왜 습격당하지 않았는지, 그 이유를 아직 몰랐다.
마을 주민들은 그로테스크하고 기괴한 천사들에게 감사의 기도를 올렸지만, 천사들은 그리 기뻐하는 낌새도 없이 그저 피 냄새가 풍기는 곳을 빙빙 맴돌았다.
비슷한 일이 세계 각지에서 발생했다. 인간을 두 명 이상 죽인 자는 빠짐없이 지옥에 떨어졌다.
이것이 세상을 뒤바꾼 ‘강림’이다.
천사는 인간의 기대를 절반은 이루어주고, 절반은 배신하는 모습으로 강림했다.
천사는 인간의 상상처럼 날개를 가지고 있었지만, 조류처럼 깃털이 빽빽이 덮여 있는 게 아니라 뼈대가 불거진 잿빛 날개였다. 그 시점에서 인간은 그 모습에 묘한 혐오감을 느꼈다. 거무죽죽한 혈관이 비쳐 보이는 형상은 박쥐 날개와 비슷했다.
뼈대가 불거진 날개는 팔다리가 이상하게 길쭉한 잿빛 몸통에 연결되어 있었다. 호리호리하니 인간과 비슷한 구조지만 성별을 구분할 수 없는 몸통에는 어째선지 늘 서리가 내렸다.
천사의 외관에서 제일 두드러지는 특징을 뽑자면 역시 얼굴이리라.
천사의 얼굴은 대패로 깎은 듯이 평평해서 표정은커녕 눈코입도 존재하지 않았다. 표면은 거울처럼 맑지만 아무것도 비치지 않고 빛조차 반사되지 않는다. 만지면 딱딱한 감촉의 얼굴은 무슨 도구를 사용하든 흠집 하나 나지 않았다.
천사는 자칫하면 악마가 연상될 것처럼 생겼다. 하지만 이 생물을 관측한 인간은 하나같이 이것을 ‘천사’라고 불렀다.
그딴 게 천사일 리 없다고 울분을 못 참겠다는 듯 화내던 사람들도 실제로 그것을 보면 어째선지 천사라고 부른다. 뱀을 뱀이라고밖에 부를 수 없듯이, 천사는 천사라고밖에 부를 수 없었다. 강한 반감을 품고 있던 사람들도 어쩔 수 없이 이 새로운 천사를 받아들였다.
그리하여 구부정한 모습으로 하늘을 날아다니는 이 ‘천사’는 기존의 이미지와 동떨어졌음에도 금방 그 지위를 확립했다.
천사의 성질은 순식간에 세상을 바꾸었다.
천사가 살인자를 지옥으로 떨어뜨리는 장면을 본 사람은 아주 조심스러워졌다.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난 심판과 나타나지 않는 곳이 없는 천사를 보면, 아무리 어리석은 자라도 규칙을 파악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한 명은 죽여도 지옥에 떨어지지 않지만, 두 명을 죽이면 지옥행이라는 규칙을.
왜 한 명은 되고 두 명은 안 되는가. 왜 하필 그날 강림했는가. 죄인이 끌려가는 지옥에는 뭐가 기다리고 있는가. 의문은 끊이지 않았지만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뿐이었다.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즉시 각 보도기관에서 천사의 존재를 알렸고, 한참 늦게서야 정부가 천사에 관한 예상 정보를 전파했다. 천사가 전염병의 숙주일 가능성과 사람을 해칠 가능성 등이 제시돼 각국에서는 한동안 외출 금지령이 발령됐다.
하지만 그런 걱정은 쓸모없었다. 천사는 병을 옮기지도, 사람을 해치지도 않았다. 그저 인간들이 만든 문명 세계 사이를 둥실둥실 날아다닐 뿐이다. 그들이 부여한 것은 규칙뿐. 한 명은 괜찮지만 두 명을 죽이면 지옥행. 지옥이 얼마나 무자비한지는 산 채로 불태워지는 죄인들이 내지르는 끔찍한 단말마의 비명이 알려주었다.
전 세계가 공황 상태에 빠졌고 특히 의료 분야에서는 더욱 혼란을 보였다. 두 명을 죽이면 지옥행인데, 수술 중에 환자가 죽으면 어떻게 되느냐는 것이다. 아무리 유능한 의사일지언정 생명을 구하지 못할 때도 있다. 그들은 완전무결하지 못하다는 이유로 심판을 받아야 하는 걸까?
이 의문에 응답한 것은 어떤 특수한 천사인데, 이는 별개의 이야기이므로 일단 제쳐놓겠다.
강림이 일어났을 무렵, 아오기시는 한 연쇄살인범을 쫓고 있었다.
범인은 연달아 젊은 여성을 덮쳐서 숨통을 찢고, 거기에 소지품을 채워 넣는 잔인한 방법을 사용해 세간의 이목을 끌고 싶어 했다. 자신의 범행을 알리는 도발적인 편지를 보내 경찰과 매스컴을 자극하기도 했다. 전형적인 극장형 범죄다. 아오기시는 집요한 탐문을 거듭해 범인에게 들키지 않고 착실하게 그의 그림자를 따라갔다.
아오기시가 처음으로 천사를 본 것은, 이렇듯 분주하게 증거를 수집하던 어느 날 오후였다.
범인이 사용한 군용칼의 출처를 알아낼 수 있을지도 몰라서 판매점으로 향하는 길이었다. 칼에 사용된 특별한 연마제는 범인이 남긴 얼마 안 되는 단서다. 이것만 있으면 종적이 막연한 범인에게 한 발짝 다가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을 하며 헐레벌떡 걷고 있을 때였다.
천사 한 마리가 아오기시의 머리 위를 가로질렀다.
천사는 눈코입이 없는 얼굴을 아오기시에게 돌리더니, 그 자리를 몇 번 맴돌았다. 2미터 정도로 천사치고는 작은 개체였지만, 기가 죽은 아오기시는 뒷걸음으로 근처 벽에 기대어 ‘그것’을 올려다보았다.
신을 믿은 적도 없거니와 성서 내용조차 모른다. 새전은 신사 입장료라고 생각했고, 무덤조차 단순한 돌로만 여겼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아오기시도 어김없이 그것을 천사로 인식했다.
어린아이가 서투르게 만든 철사 세공품처럼 생긴 천사는, 아오기시도 느낄 수 있을 만큼 성스러웠던 것이다.
아오기시의 반응에 만족했는지 잠시 후 천사는 날아갔다.
아오기시는 한동안 꼼짝도 하지 못하고 한없이 푸른 하늘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아오기시가 쫓던 연쇄살인범은 강림 이후 범행을 멈췄다.
무리도 아니다. 두 명을 죽이면 지옥에 떨어진다는 규칙은 연쇄살인범과 상성이 좋지 않다. 경찰과 매스컴에 편지도 보내지 않게 됐고, 결국 사건은 조용히 종결됐다. 살인에서 손을 뗀 범인의 행방은 영원히 묘연해졌다.
살인범의 흉악한 범죄를 멈춘 건 탐정이 아니라 지옥이었다. 지옥에 떨어지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 산 채로 지옥의 업화에 불타는 건 체포되는 것보다 훨씬 무섭다. 이리하여 인간이 살인에서 손을 뗀다면, 신의 안배는 굉장하다고 할 수 있겠다. 카인과 아벨의 비극으로부터 기나긴 시간이 흐른 후, 신이 드디어 무거운 몸을 일으켜 행동에 나선 것이다.
몇 번이고 그렇게 자신을 다독였지만 아오기시는 피폐해졌다.
제 한 몸 지키기 위해 살인에서 손을 뗀 범인은 이 세상 어딘가에서 벌을 받고 있을까. 아니면 개심한 것으로 간주되어 무사히 천국행을 허락받았을까. 그 의문의 해답조차 아오기시로서는 알 수 없다.
강림 이후 탐정의 존재의의는 사라졌다. 적어도 아오기시 생각은 그랬다. 탐정이 죽을힘을 다해 사건을 해결한들, 그런 노력은 범죄를 없애는 데 일조하지 못했다.
반면 지옥의 존재는 어떤가. 지옥은 탐정보다 훨씬 직접적으로 연쇄살인을 줄였다. 자신이 쫓고 있던 살인범의 사례도 있고 하여, 그 사실은 아오기시에게 견딜 수 없는 무력감을 안겼다.
그래서 강림 직후에 아오기시는 그렇게까지 피폐해진 것이다.
“너무 시무룩해하지 마세요, 아오기시 씨.”
그런 아오기시를 묘하게 밝은 목소리로 격려한 남자가 있었다.
기분이 언짢은 아오기시를 달랜 후, 아카기 스바루는 만사태평한 고양이 같은 얼굴로 말을 이었다.
“범인을 못 잡아서 이렇게 풀이 죽은 거죠?”
“그런 게 아니야. 복장이 뒤집혀서 그래. 놈이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알잖아. 하지만 강림 이전에 저지른 짓이라면 몇 명을 죽인들 심판받지 않아. 그런 악인이 지옥에 떨어지지 않고 삶을 누리고 있단 말이야. 이런 세상에서 시무룩하지 않을 수 있겠냐.”
“무슨 말씀이세요. 우리는 정의의 사도잖아요. 이런 세상에서도 해야 할 일은 많죠. 우리는 그걸 하면 돼요. 차에 치일 뻔한 아이를 몸을 던져 구한다거나.”
그 목소리를 떠올린 순간 심장이 크게 뛰고 머리 가장자리가 지끈지끈 아팠다.
머릿속에 깃든 부하의 말을, 고개를 휘휘 내저어 억지로 떨쳐냈다.
그로부터 5년이나 지났고 여기는 멀리 떨어진 섬에 있는 저택의 담화실이다. 회상에 잠길 만한 곳이 아니다. 게다가 타이밍도 좋지 않다. 아오기시가 갑자기 깊은 생각에 빠진 듯한 표정을 짓자 아마사와는 놀랐다기보다 뜨악한 기색이었다.
“실례했습니다. 편두통이 심해서요.”
“……그것참, 고생이시군요.”
아마사와에게 나쁜 인상을 준 기분이 들지만 딱히 상관없었다. 어차피 마음에 안 드는 상대다. 이 섬을 떠나면 만날 일도 없다.
거북한 침묵을 견디며 커피를 홀짝홀짝 마시고 있는데 누군가 담화실에 들어왔다.
창백하고 신경질적으로 생긴 얼굴. 긴 머리를 묶지도 않고 내버려둔 건, 외부와의 접촉을 거부하고 있기 때문일까. 쓰네키의 주치의임을 나타내기 위해 남자는 늘 흰 가운 차림으로 다닌다.
이 섬에서 얼굴을 마주하는 건 처음이지만 아오기시는 이 남자의 이름을 안다. 이름을 아는 정도가 아니라 몇 번이나 만난 적이 있어서 그가 이제 잔에 무슨 음료를 따를지도 짐작이 간다. 우롱차다. 맞았다.
우와지마 가나타는 아오기시가 있다는 걸 알아차리자마자 못마땅하다는 듯 인상을 찌푸리고 고개를 홱 돌렸다. 그 모습을 보고 뭔가 한마디 듣기 전에 일어섰다. 두 사람이 마주쳤을 때는 아오기시가 떠난다. 그건 아오기시가 멋대로 정한 규칙이었다. 남은 커피를 들이마시고 잔을 치운 후 담화실을 나섰다.
우와지마가 아오기시와 친근하게 이야기를 나눈 건 아오기시 탐정사무소가 아직 붕괴하지 않았던 시절의 일이다. 아오기시가 어엿한 탐정이었던 시절로 지금과는 상황이 전혀 다르다.
우와지마는 여태 아오기시를 용서하지 않은 것이다.
당연하다. 아오기시에게는 미움받을 만한 이유가 있다. 아무리 뉘우치고 후회한들 어지간한 일이 일어나지 않는 한, 이 골은 메워지지 않으리라.
쓰네키 오가이는 담배를 피우지 않으므로 흡연실은 저택 밖에 설치되어 있다. 찌뿌드드하게 흐린 아침에 밖으로 나가려니 내키지 않았지만, 담화실에서 쫓겨난 아오기시가 갈 곳이라고는 흡연실 정도였다.
현관 홀을 지나 밖으로 나와서 조금만 걸으면 ‘기상탑’이 나온다. 중세 양식의 돌탑은 등대처럼 보이지만, 진짜 등대는 선착장 근처에 있는 것으로 보아 여기는 이름 그대로 날씨 관측에만 사용했던 듯하다.
지금은 그 탑의 1층을 흡연실로 사용하니까 날씨 관측용이라는 존재의의는 더더욱 희미해졌다. 탑 꼭대기는 탁 트인 전망대지만 굳이 올라가고 싶지는 않았다. 새 담뱃갑을 뜯으면서 탑으로 가서 무거운 나무문을 열었다. 그러자 또 선객이 있었다.
“어, 안녕하세요.”
아오기시 또래로 보이는 남자가 잠옷 차림으로 인사했다. 빤히 바라보는 걸 알아차렸는지 “복장을 갖추기 전에 니코틴을 공급해야 하는 체질이라서요” 하고 변명했다.
칠칠치 못한 인상인데 머리만큼은 깔끔하게 빗질한 것이 불균형적이다. 멀끔하게 차려입으면 인상은 분명 딴판으로 바뀔 것이다. 외모를 꾸며야 하는 직업 중에 여기에 있을 사람 하면.
“……아아, 당신 기자인가?”
“맞습니다. 기자 호지마입니다. 기억하실 줄이야.”
일부러 선택한 듯한 존댓말로 말하며 호지마는 빙긋 웃었다.
“섬에는 친하게 지내는 기자도 부를 거야” 하고 쓰네키가 말했다. 아마 호지마가 그 기자이리라. 솔직히 기자로서 그렇게까지 유능해 보이지는 않는다. 여우같이 생긴 눈과 야무지지 못하게 벌어진 입매에는 싹싹한 인상이 없지도 않지만.
“어, 그쪽은…….”
“아오기시 고가레. 탐정이야.”
“우와, 탐정이라고요! 쓰네키 씨도 취향이 제법 괜찮으시군. 섬이니 저택이니 하는 곳에 탐정은 으레 따르기 마련이니까요. 그렇다면 정원 은둔자가 아닌 저택 탐정……아, 그건 보통인가.”
“정원 은둔자라니, 그건 뭐지?”
“중세의 풍습입니다. 정원에 작은 오두막을 짓고 사람을 살게 하는 거죠. 오두막을 제공받는 대신 정원에 사는 은둔자처럼 행동하며 가끔 고매하신 말씀을 하는 거예요. 뭐, 살아 있는 장식품이라고나 할까요.”
호지마는 거기까지 말을 술술 늘어놓고 나서야 실례임을 알아차린 것 같았다. 입을 틀어막듯 담배를 물었다. 하지만 지금 세상에서 탐정의 역할이 얼마나 축소됐는지 생각하면, 날카로운 지적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 저택을 치장하는 살아 있는 장식품 역할이 탐정에게는 딱 어울릴지도 모른다.
아오기시는 작게 한숨을 내쉬고 나서 물었다.
“호지마 씨, 여기에는 뭘 하러 왔지?”
기자를 불렀으니 그에 어울리는 역할을 맡지 않았을까 싶었다. 하지만 호지마는 여전히 웃음을 머금은 얼굴로 대답했다.
“별다른 이유는 없습니다. 그냥 쓰네키 씨가 호의로 초청해주셨을 뿐이에요. 박봉의 기자를 리조트에 불러서 데리고 노는 기분이겠죠. 뭐, 어차피 이번에도 천사 일색인 쓰네키 씨의 취미 생활에 어울려줘야겠지만요. 질리지도 않나 봅니다. 천사에 관련된 것이라면 돈을 아낌없이 쓴다니까요.”
“그렇군…….”
자기도 모르게 낙담 어린 말이 새어 나왔다. 확실히 도코요지마섬에는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 천사 관련 자료가 잘 갖추어져 있고, 천사가 이렇게 많이 모이는 곳도 달리 없다는 모양이다. 하지만 굳이 그걸 보여주기 위해 아오기시를 부른 건 아니리라. 그 정도만으로는 결코 아오기시의 목적을 이룰 수 없다. 석연치 않은 표정을 짓자 호지마가 생각난 것처럼 “아, 하지만 오늘 밤은 조금 특별한 이벤트가 있다나” 하고 말했다.
“특별한 이벤트? 뭘 하는데?”
“구체적인 이야기는 못 들었습니다. 꽁꽁 숨겨놨다가 초대손님을 놀라게 하는 게 쓰네키 씨의 방식이거든요.”
놀라움을 주고 싶어서 그런 것만은 아니리라고 아오기시는 생각했다. 입이 아주 가벼워 보이는 이 남자에게 말하면 이벤트 내용을 모두에게 떠들고 다닐 것 같았다.
“궁금합니까? 혹시 아오기시 씨도 그런 걸 좋아한다든가?”
“아니야.”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부정했지만, 호지마는 기분 나쁘게 히죽거리는 웃음을 지었다.
“뭔지는 모르지만 ‘천사식’이라면 저는 도망칠 겁니다. 아오기시 씨는 괴식도 괜찮습니까?”
“괜찮기는. 그거라면 무조건 거절할 거야.”
아오기시는 진저리난다는 얼굴로 그렇게 대꾸했다. 피우고 있는 담배가 몹시 맛없게 느껴졌다.
갖가지 사정을 이해하고 천사가 있는 세상에 순응한 후, 인간은 순식간에 불손한 쪽으로 관심을 돌렸다.
무모하고 저돌적인 인간과 호기심이 폭발한 학자들이 천사를 포획하기 시작한 것이다.
천사를 붙잡는 건 거리를 헤집고 다니는 까마귀를 붙잡기보다 쉬웠다. 해파리처럼 둥둥 떠다니는 개체에 덤벼들어 날개와 팔다리를 묶으면 그만이다. 인간을 지옥에 떨어뜨릴 때는 그렇게 강력한 힘을 발휘하건만 죄 없는 인간 앞에서 천사는 어처구니없을 만큼 약했다.
이리하여 천사는 해부됐다.
해부와 함께 다양한 연구가 진행돼 뼈와 근육은 인간, 피부는 파충류와 비슷하다는 사실이 밝혀졌고, 제일 으스스한 날개는 정체 모를 물질로 구성되었음이 확인됐으며, 얼굴이 평평한 작은 머리에는 뇌가 없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서리가 내린 몸에 흐르는 피는 미지근하고 붉었다. 하지만 인간의 호기심이 그 정도로 끝날 리 없다.
천사를 제일 먼저 죽인 사람은 누구였을까. 공식적으로 인정받은 건 어느 대학의 생물학 교수지만 정확하게는 모른다. 천사한테는 죽은 후 서서히 잿빛 모래로 변하는 기묘한 성질이 있는데, 거리에는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아 형태가 남아 있는 천사의 주검도, 바람에 휘말린 잿빛 모래도 얼마든지 있었다. 희미하기는 하지만 천사가 남긴 혈흔도 발자국처럼 남아 있었다. 더구나 천사가 강림한 후 새로운 세상의 여명기에는 천사를 없애려고 시도한 사람도 많았다. 천사는 각지에서 죽었다. 그러므로 천사를 죽여도 아무 일 없지 않나 싶기는 했다.
그래도 공식적으로는 최초로 천사를 죽일 때, 교수 주변에는 아무도 다가가지 않았다.
교수는 첫 번째 천사에게 약물을 투여해 죽음으로 이끌었지만 어떤 천벌도 받지 않았다.
두 번째 천사는 목을 절단해 죽음으로 이끌었지만 아무 천벌도 받지 않았다. 세 번째 천사는 목을 졸랐지만 이때는 좀처럼 죽지 않았다. 목뼈가 부러지고서야 겨우 그 개체도 죽었다. 역시 천벌을 받지 않았다.
그날 교수가 죽인 천사는 열여덟 마리에 달했으나 그는 지옥으로 끌려가지 않았다. 천사를 두 마리 이상 죽여도 지옥에는 떨어지지 않는 모양이다.
이리하여 천사를 죽이기는 간단하고 천벌도 받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그렇다고 뭐가 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천사를 죽여도 그들은 어디선가 난데없이 나타났고, 시체는 시간이 흐르면 단순한 모래로 변했다. 이렇게 죽이는 의미가 없는 생물은 또 없었고 애당초 이것이 생물인지도 의심스러웠다.
인간을 심판하는 천사에게 쌓인 울분을 죽이는 것으로 풀려고 해도 천사는 반응이 너무 시원찮았다. 그들은 상처를 입어도 기껏해야 몸을 움찔하는 정도라 재미가 없었다. 만약 천사의 얼굴이 인간과 비슷하고 표정이 조금이라도 달라졌다면 이렇게 되지는 않았으리라.
그러고 나서 새로이 알아낸 사실이라고 하면 천사가 희한하게 설탕을 좋아해서 인간이 각설탕을 뿌리면 우르르 몰려들어 평평한 얼굴을 이리저리 문댄다는 것 정도일까. 천사의 겉모습은 하나도 귀엽지 않으므로 아무 소득도 없는 발견이었다. 반려동물로 기르려 해도 천사가 개나 고양이보다 나은 구석이 없었다.
강림 이후 천사에게 뭔가를 계속 빼앗겨온 인간은 천사를 효과적으로 활용하는 방법을 고안함으로써 복수할 수 있다고 믿었다.
포획한 천사를 먹는 ‘천사식’은 그런 활용 방법 중 하나였다.
“천사식은 아직 세간에서 변태 같은 취미로 보고 있으니, 쓰네키 씨의 ‘특별한 이벤트’답지 않습니까?”
호지마는 능글맞게 웃으며 말했다.
그의 말대로 천사를 먹는다는 행위에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은 많다. 천사를 먹고 지옥에 떨어진 사례는 없지만 어쩐지 기피하게 되는 것이다. 먹기에는 인간의 모습과 너무 비슷하거니와 시각적으로 식욕을 돋우는 생김새도 아니다. 덧붙여 그렇게 맛있지 않다고 들었다.
“천사는 더럽게 맛없잖아. 무엇보다 그렇게 기분 나쁜 걸 먹을 마음은 없어.”
“그렇죠. 저도 사양입니다.”
호지마가 우웩, 하며 짐짓 혀를 쑥 내밀었다. 과장된 반응도 그렇고 이 기자 또한 신뢰할 수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도 쓰네키 오가이가 직접 부른 손님이다. 실은 우수한 사람인 걸까.
“그래도 이번에는 쓰네키 씨가 자신 있게 잘나가는 양반들을 부르겠다고 해서 저도 기대하고 왔습니다.”
“도코요지마섬에서 이런……회합 같은 걸 여러 번 가졌나 보지?”
“네, 그야 뭐, 제법 많이.”
고개를 끄덕이며 의미심장하게 말한 호지마가 담배를 벽에 눌러서 껐다. 벽에는 담뱃불에 눌은 자국이 헤아릴 수 없이 많이 남아 있었다. 호지마는 몇 번이나 여기에 온 것이다.
“그런데 아오기시 씨는 왜 여기 왔습니까? 혹시 아마사와 선생님과 친분이 있다든가? 아니면 국회의원 마사자키 씨하고?”
“나도 쓰네키 씨한테 직접 초청받았어.”
“이야, 그분이. 왜요?”
“어쩌다 보니. 쓰네키 씨가 내게 의뢰를 했지.”
쓰네키 오가이의 의뢰는 파격적이었다.
강림이 발생하고 5년이 지나자 아오기시 탐정사무소는 완전히 쪼그라들었다. 소속 직원도 이제 아오기시밖에 없다. 쓸쓸한 곳이다. 의뢰를 받는 빈도도 그때그때 달랐다. 먹고살 만큼만 일하고 나머지는 거절한다. 그렇게 들쭉날쭉 일하는 탐정에게 변변한 의뢰가 들어올 리 없다.
그런 아오기시 탐정사무소에 쓰네키는 어마어마한 보수를 제시했다. 일찍이 번성했던 사무소이기도 하고, 지금은 흥신소 일을 맡는 곳 자체가 적다. 그래도 시세보다 훨씬 높았다.
“나는 쓰네키 오가이요. 댁이 아오기시 고가레 씨인가.”
사무소를 찾아온 쓰네키는 그렇게 말하고 우아하게 고개를 꾸벅했다. 양복 밑에는 방탄조끼고 방검복이고 아무것도 입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세상이 변하고 나서 평화로워졌다고 백 퍼센트 믿는 건지 경호원조차 데리고 오지 않았다.
곧 예순다섯 살이 되는 나이인데도 쓰네키는 아주 젊고 활기차 보였다. 그는 유명한 술집 프랜차이즈를 비롯해 요식업 분야에서 이름을 날리는 일대 사업가다. 늘 남의 위에 서서 살아온 인생은 허울이 아니었던 듯하다. 태도는 부드럽지만 묘하게 날카로운 눈빛에서는 끝 모를 깊이가 느껴졌다.
“……네, 맞습니다.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날 쫓아다니는 사람이 누구인지 밝혀내 주길 바라네.”
쓰네키는 아주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흡사 갱스터 영화의 등장인물이다.
“혹시 위해를 가했다면 저보다는 경찰이 나을 텐데요.”
“아직 위해를 가하는 단계까지는 가지 않았어. 아오기시 씨도 이 단계에서 경찰이 얼마나 무능한지는 잘 알 테지.”
확실히 그냥 누가 미행한다는 이유로 경찰이 나서는 일은 거의 없다. 그래도 쓰네키 정도 지위와 권력이 있는 사람이라면 얼마든지 손을 쓸 수 있을 것 같기는 하다. 그런데도 굳이 아오기시를 찾아와서 부탁하다니 수상쩍다면 수상쩍다.
“사업을 하다 보면 신뢰할 수 있느냐 없느냐를 가늠하는 것이 제일 중요해.”
의혹이 깊어지는 가운데 쓰네키가 조용히 말했다.
“나는 아오기시 씨를 믿어. 그래서 부탁하고 싶은 거야.”
그리하여 아오기시는 쓰네키의 의뢰를 받아들였다.
쓰네키를 미행하는 사람과 마찬가지로 쓰네키의 뒤를 밟아 동업자를 찾아내기로 했다.
미행자 중 한 명은 비교적 간단히 찾아냈다. 옛날에 이 일대에서 유명했던 신문기자 출신 공갈꾼이었다. 분명 아무 근거도 없이 적당한 가십거리를 찾고 있던 것이리라. 눈에 거슬리기는 하지만 한 달쯤 지나면 다음 목표물로 옮겨갈 것이다.
이쯤에서 조사를 마치려던 차에 아오기시는 다른 미행자의 존재도 알아차렸다.
이쪽은 하찮은 공갈꾼보다 미행 실력이 좋아서 처음에는 착각이라고 생각했을 정도였다. 하지만 쓰네키 주변을 감시하고 있으면 그 여자가 반드시 눈에 띄었다. 우연을 가장해 풍경에 녹아들기는 했지만 아무래도 빈도가 너무 높았다.
조사를 시작하고 열흘이 지났을 무렵, 아오기시는 평소 같으면 절대로 하지 않을 짓을 했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미행에 힘쓰는 여자에게 다가가 어깨를 잡은 것이다.
“이봐.”
가까이에서 보자 여자의 얼굴은 생각보다 훨씬 어려 보였다. 이목구비 하나하나가 조그마하고 입매가 특히 앳되었다. 넓은 이마 밑의 까만 눈은 소녀처럼 풋풋했다. 한순간 생판 처음 보는 소녀에게 말을 건 것이 아닐까 당황했다. 어쩌면 비명을 지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러지는 않았다. 시간이 멈춘 것처럼 여자는 아오기시를 가만히 바라봤다. 검은자위가 큰 눈이 한층 동그래졌다.
“아오기시……고가레…….”
넋이 나간 듯이 멍한 표정이었다. 잠시 후 여자가 단숨에 정신을 차렸다. 어깨를 잡은 아오기시의 손을 꽉 움켜쥐고 눈을 번뜩이며 말했다.
“잠깐만, 당신, 아오기시 씨? 탐정이신.”
“응. 그런데.”
일선에서는 물러났지만 여전히 그 이름을 아는 사람이 많은 듯하다. 어떤 의미에서는 탐정 실격이다. 정말 일해 먹기 힘들다.
“저기요! 이야기 좀 들어줘요. 저, 기자예요! 어차피 쓰네키에게 의뢰를 받은 거죠? 잠깐만요, 저는 후시미 니코라고 하는데요!”
들어본 이름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 이름을 달고 나온 기사를 본 기억이 있었다. 아오기시의 표정에서 그 사실이 드러났으리라. 후시미가 숨을 씩씩거리며 열띤 어조로 말했다.
“혹시 기사 읽었어요?!……그렇겠죠. 아오기시 씨니까요. 그럼 이해해주겠네요. 제가 제대로 된 기자라는걸.”
“……기사는 읽었어. 하지만 그뿐이야. 그거랑 쓰네키 씨를 스토킹하는 행위는 아무 관계도 없지. 무엇보다 저쪽은 이미 눈치챘어.”
“이야, 의외로 눈치가 빠르네. 역시 구린 짓을 하는 인간은 다른 건가.”
후시미가 분하다는 듯이 인상을 구겼다. 재미있을 만큼 표정이 휙휙 바뀌는 여자였다. 후시미가 쓴 기사는 어디까지나 필치가 냉정하니, 과장된 표현은 하나도 없었다. 그 이성적인 필치와 눈앞에 있는 앳된 여자가 연결되지 않았다. 애당초 눈앞의 여자는 기자로조차 보이지 않았다.
“부탁이에요, 아오기시 씨. 쓰네키에게 의뢰를 받았다지만 부디 눈감아주세요. 저는 해야 할 일이 있어요.”
“일반 시민의 사생활을 침해하면서까지 해야 할 일이 있다고?”
후시미는 엄숙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로 그 인간을 일반 시민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농담이 심하시네요.”
“그야 대부호니까 일반 시민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
“그뿐만이 아니에요. 그 인간이 뒷전에서 무슨 짓을 하는지 알면 아오기시 씨도 이쪽 편을 들고 싶어질걸요.”
“쓰네키 오가이가 대체 뭘 어쨌다는 거야? 큰소리 뻥뻥 칠 만한 증거는 있나?”
“……그건 말할 수 없지만 확실한 소식통에서 나온 정보예요.”
“정보의 출처도 내용도 말할 수 없는데 편을 들긴 무슨 편을 들어.”
후시미는 속상한 듯이 입술을 깨물고 아오기시를 매섭게 노려보았다.
“……이건 아오기시 씨와도 관계있는 일이에요. 만약 쓰네키의 꼬리를 잡으면 제 말을 이해할 수 있을 거예요.”
“그건 무슨 소리야?”
“아오기시 씨, 제발요. 당신은 ‘그 사건’의 생존자잖아요.”
그 말을 듣고 저도 모르게 후시미의 손을 뿌리쳤다. 과도하게 반응했다고 스스로를 혐오하기 전에 후시미가 먼저 실언을 후회하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상처를 주었을지도 모른다고 이쪽을 걱정하는 것 같은 눈이었다.
그 눈을 보자 더 신경질이 났다. 사회정의에 불타는 기자. 자신의 말로 뭔가를 바꿀 수 있다고 믿는 사람. 그런 후시미의 이야기를 지금은 들어줄 기분이 아니었다. 아오기시는 대놓고 차가운 목소리로 말을 내뱉었다.
“더 이상 쓰네키 오가이에게 접근하지 마. 다음에는 경찰에 찌를 거야. 알았나.”
후시미는 충격을 받은 듯한 표정으로 아오기시를 쳐다보더니 그대로 뛰어갔다.
다음 날 아오기시는 조사 보고서를 제출했다.
“당신을 따라다니던 건 이 부근에서 유명한 공갈꾼이었습니다. 여기 이름과 지금까지 저지른 범죄 내용, 그리고 사진도 있습니다.”
아오기시는 쓰네키를 미행했던 사람 중 한 명의 자료를 내밀었다.
후시미에 관해 보고하지 않았으니 부실하다고 할 수 있겠지만 몇 명을 조사하라고 지정한 건 아니다. 그래서 아오기시는 후시미 니코의 이름을 일부러 꺼내지 않았다.
“고생 많았어. 역시 아오기시 씨에게 부탁하길 잘했군.”
다행히 쓰네키는 조사 결과에 수긍한 것 같았다. 후시미는 아오기시가 충고한 대로 쓰네키의 미행을 포기한 듯하다.
“그런데 공갈꾼이 왜 나 같은 중늙은이를 목표물로 삼았을까. 그 점에 대해서는 뭔가 알아냈나?”
한순간 후시미의 말이 머리를 스쳤다. 하지만 후시미의 말에는 근거가 거의 없다. 확실한 소식통이라고 해본들 어차피 소문 정도의 가십이리라.
“아니요. 오히려 이런 건 아니 땐 굴뚝에 연기를 내기 위해 하는 짓이겠죠.”
아오기시가 천연덕스럽게 대답하자 쓰네키는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착수금을 뺀 나머지 금액은 약속대로 지불하겠네. 그런데 아오기시 씨, 이번 달 말에 일정이 비어 있나?”
“네, 괜찮습니다만. 또 뭔가 의뢰를?”
쓰네키가 눈을 가늘게 떴다. 어쩌면 미소를 지은 건지도 모르지만 아오기시 눈에는 먹잇감을 발견한 뱀의 얼굴로만 보였다.
“혹시 천사에 흥미는?”
느닷없이 날아든 질문에 머리 가장자리가 싸늘하게 식었다.
“없습니다. 그것 때문에 이쪽은 장사를 잡쳤거든요. 도무지 좋아할 수가 없습니다.”
“그럼 천국에 흥미는?”
연이어 날아든 질문이 아오기시가 도망갈 길을 막았다.
“천국은…….”
“그래. 지옥과 짝을 이루는 개념. 천사들이 원래 있어야 할 곳이지.”
“그런 건 믿지 않습니다.”
“지옥이 있는데도? 믿지 않더라도 믿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겠나?”
“뭔가 그럴싸한 징조라도 있으면 믿을 마음이 생기겠지만……, 공교롭게도 그런 이야기는 어딜 봐도 없는 것 같아서요.”
대대적으로 관측되는 지옥의 존재와는 대조적으로 천국은 전혀 관측되지 않는다.
천사는 악한 사람을 지옥으로 끌고 가지만 선한 사람을 천국으로 데려가지는 않는다. 그 또한 수많은 사람에게 낙담을 주는 사실이었다.
인간은 신을 발명한 후로 끊임없이 천국의 존재를 열망해왔다. 천사와 지옥이 있으니 천국도 있다고 믿고 싶어지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하지만 노벨평화상을 받을 만큼 훌륭한 사람이 죽을 때조차 천사는 눈길 한번 주지 않았다. 살인죄를 저지르지 않은 사람들은 그저 담담하게 죽어갔다. 그건 지독한 배신처럼 느껴졌지만 천사도 신도 사후에 낙원이 기다리고 있다고 약속한 적은 없다. 천사는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나는 천국이 있다고 믿어. 천사가 존재하는 세상인데, 어째서 우리같이 선량한 인간의 마지막 쉼터는 없단 말인가. 불공평하다고 생각하지 않나?”
“……잘 모르겠습니다만 인간은 원래 원죄를 타고났다나 뭐라나.”
“그렇다면 빠짐없이 지옥에 떨어뜨리면 되겠지. 그게 아니라면 우리 모두에게 축복을 내려줘야 마땅해.”
그렇게 말하고 쓰네키는 위를 올려다보았다. 시선 끝에는 거무데데해진 천장밖에 없지만 쓰네키는 마치 그 너머에 있는 신을 보고 있는 것 같았다.
“천사를 처음 봤을 때, 불손하게도 추하다고 생각했어.”
“네. 그야 뭐. 저는 지금도 익숙해지지가 않네요.”
“하지만 이제는 천사가 그렇게 생긴 이유를 알겠어. 의식에 변혁을 일으킨 인간만 그 아름다움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하려는 거야. 그 증거로 이제 내 두 눈에는 천사의 진정한 아름다움이 보인다네.”
이쯤에서 이미 아오기시는 쓰네키의 이야기를 따라갈 수 없게 됐다. 여러 가지 갈등을 거친 끝에 놀랍게도 천사에게서 아름다움을 찾아낸 인간은 적지 않다. 하지만 이렇게 가까이에서 그 광기를 접하자 등골이 오싹해졌다. 표정이 딱딱해진 아오기시 앞에서 쓰네키는 더욱 열렬히 말을 늘어놓았다.
“우리 인생은 천국에 가기 위해 사용하는 사다리에 불과해. 그걸 깨닫고 나서 나는 진지하게 천국과 마주하기로 마음먹었지. 그리고 마침내 그 사다리를 걸어야 할 곳을 찾아냈어.”
그제야 아오기시는 쓰네키가 왜 자신에게 일을 의뢰하러 왔는지 알아차렸다.
쓰네키는 안다. 천사가 나타남으로써 이 사무소에 무슨 일이 생겼는지를 안다. 이 사무소가 이렇게까지 쇠퇴한 이유도. 왜 이 썰렁한 사무소에 아오기시밖에 없는지도. 전부, 전부 말이다.
그렇다면 뭐가 목적일까. 어차피 온당한 일은 아닐 것이다. 현재의 아오기시 고가레와 천사의 조합은 조짐이 안 좋아도 너무 안 좋다. 더 이상 이야기를 들어서는 안 된다. 억지로라도 쓰네키를 돌려보내야 한다고 생각한 순간, 쓰네키의 입에서 결정적인 한마디가 튀어나왔다.
“도코요지마섬에 오지 않겠나, 아오기시 씨. 그 섬에 오면 천국이 있는지 없는지 알 수 있을 거야.”
이 섬에 온 진짜 이유를 알려주고 싶지는 않았다. 천국이 있는지 없는지 확인하러 왔다는 말은 꺼내기도 싫다. 가르쳐주는 대신 얻을 수 있는 정보가 있을지도 모른다. 다만 이 동기는 아오기시의 상처이기도 하다. 그 상처를 내보이고 싶지는 않다. 잠시 고민한 후 아오기시는 입을 열었다.
“그 유명한 쓰네키 오가이가 초대하면 대부분은 오겠지. 무엇보다 나는 여기 머무르는 동안에도 보수를 받아. 오지 않을 이유가 없어.”
“아하, 좋은 일거리네요. 뭐, 도코요지마섬은 아무것도 없는 곳이지만 저택 설비는 리조트 호텔 못지않겠다, 오쓰키 씨의 요리도 일품이겠다, 오기만 해도 이득이죠.”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 담배를 껐다. 벽이 아니라 비치된 재떨이에 꾹꾹 눌러서. 아오기시는 적당히 대화를 마무리하고 탑을 나서려 했다.
“아참.”
호지마가 담배를 왼손으로 바꿔 쥐고 호주머니에서 펜과 메모지를 꺼냈다. 그리고 탑의 벽과 오른손 옆면을 잘 활용해 전화번호를 술술 적었다.
“이거, 제 전화번호입니다. 섬에서 돌아간 후에 괜찮으면 연락주세요. 아오기시 씨에게 도움이 될 수 있을 거예요.”
“공교롭게도 기자를 상대로 할 만한 장사는 아닌데.”
“그렇게 매정한 말씀 마시고요. 이래 보여도 민완 기자로 통하거든요. 여론이고 뭐고 다 이 오른손 하기 나름입니다. 뭔가 기사를 쓸 일이 있으면 괜찮게 써드릴게요.”
호지마는 메모지를 억지로 쥐여주고 정체 모를 웃음을 지었다.
결국 ‘천국이 있는지 없는지 어떻게 알아내느냐’는 아오기시의 궁금증은 전혀 풀리지 않았다. 호지마의 말을 믿는다면 오늘 밤에 특별한 이벤트가 있는 모양이다. 거기서 전부 밝혀진다면 역시 밤을 기다리는 수밖에 없는 건가.
천국이 있는지 없는지 천사가 알려준다면 편하겠건만, 하고 아오기시는 부질없는 생각을 했다.
으스스하게 생긴 천사는 오늘도 흔들흔들 머리 위를 맴돌고 있다. 그 모습에서는 천국은커녕 신이 있는지 없는지조차 모를 법한 분위기가 풍겼다.
이대로 얌전히 방에 돌아가려는데 현관에서 또 사람과 마주쳤다.
“오, 탐정님. 안녕하세요. 일찍 일어났네요.”
요리사복 차림으로 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