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사람들과 어우러진 안정적 공동체 안에서만 우리 안에 내재된 잠재력을 발휘할 수 있다”
과학 지식과 인문학적 통찰,
인간의 사회적 삶을 연결하는 ‘지식의 가교자’
게랄트 휘터(Gerald Hüther)
‘독일에서 가장 유명한 신경과학자(《매니저 매거진》)’이자 ‘생물학 패러다임의 전환을 불러온 뇌 연구자(《슈피겔》)’로, 과학 지식과 인간의 삶을 연결시키는 데도 관심이 많아 인문·사회학자로 여겨지기도 한다.
1951년 동독에서 태어나 라이프치히대학교에서 신경생물학을 전공했으며, 예나대학교에서 연구 조교로 일하면서 1977년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1970년대 말 서독으로 넘어가 막스플랑크 실험의학연구소에서 뇌 발달 및 장애를 연구하고, 1990년 하이젠베르크 장학금으로 기초정신의학연구소를 설립했다. 1994년 괴팅겐에 신경생물학 기초연구실험실을 설립해 소장으로 활동했으며, 2004년에는 괴팅겐대학교 신경생물학 교수가 되어 2016년까지 재직했다. 2012년 ‘움직이는 학교(Schule im Aufbruch)’를 조직해 아이들이 학교에 가지 않고도 학습 능력과 재능을 개발할 수 있도록 힘쓰고 있으며, 2015년 독일과 스위스, 오스트리아 등지에 비영리 단체인 ‘잠재적 개발 아카데미(Akademie für Potenzialentfaltung)’를 설립해 대안적 삶을 꿈꾸는 사람들이 자유롭고 희망적인 삶을 살 수 있도록 돕고 있다.
뇌과학 연구 결과를 인간의 사회적 삶과 잠재력 개발에 더 잘 활용할 수 있도록 ‘지식의 가교자’ 역할을 자처하며 활발한 강연 활동과 저술 활동을 펼치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독일과 한국에서 모두 베스트셀러가 된 《존엄하게 산다는 것(Würde)》을 비롯하여 《불안의 심리학(Biologie der Angst)》 《사랑의 진화(Die Evolution der Liebe)》 《남자 : 연약한 성, 그의 뇌(Manner)》 등이 있다.
저자 홈페이지 www.gerald-huether.de
관련 홈페이지 www.liebevoll.jetzt
Lieblosigkeit macht krank: Was unsere Selbstheilungskräfte stärkt und wie wir endlich
gesünder und glücklicher werden
by Prof. Gerald Hüther
Copyright ⓒ 2021 Verlag Herder GmbH, Freiburg im Breisga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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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 translation copyright ⓒ 2021 by MaeKyung Publishing Inc.
Korean edition is published by arrangement with Verlag Herder GmbH, Freiburg
through BC Agency, Seo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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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두기
* 본문의 각주는 옮긴이와 편집자가 달아둔 것입니다.
“사랑의 감정이 채워지지 않는 한
우리는 결코 다시 건강하고 행복해질 수 없다.”
자신을 소중히 다루지 않는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것
먼저 알려드린다. 만일 이 책을 일반적 사랑에 대한 것이라고 여기고 읽는다면 실망할 것이라고. “누군가를 무척 사랑했는데, 그 사랑을 하지 않으니 몸과 마음이 다 아프다. 그러니 제대로 사랑하는 법을 알려주겠다”는 식의 애틋한 사랑 이야기 말이다. 이 책이 말하는 사랑은 그보다 훨씬 넓은 의미다. 그래서 사랑하지 않으면 아픈 이유도 전혀 다르다.
이 책에서 말하는 사랑은 타인에 대한 사랑, 열정을 기반으로 한 사랑을 넘어서 포용과 관대함, 이타성으로 이어지는 감정이다. 궁극적으로는 나 자신을 소중히 여기는 자기애에서 시작하고 있다. 그런 이유로 ‘사랑 없음’을 우리가 겪는 모든 문제의 원인이라 지목한다.
이 책의 저자인 게랄트 휘터는 뇌과학자다. 그가 생각하는 사람과 세상은 그가 전공한 뇌과학에 기반한다. 읽다 보면 철학을 공부하는 인문학자와 연구실에 처박혀 사는 과학자가 만나 대화를 나누는 것 같다. 처음에는 서걱거리다가 나중에는 “아하!” 하고 서로 맞장구를 치며 “내가 말하는 인간이 이거야”라면서 동감하는 그림을 떠올리게 한다. 읽으면서 내가 받은 느낌이다. 한번 읽어보면 무슨 말인지 바로 이해할 것이다. 결국 이치의 깨달음은 어디에서 시작하건 한곳에서 만나는 법이다.
게랄트 휘터는 인간을 본질적으로 생명체의 작동 원리로 움직이는 존재로 파악한다. 생리학과 뇌의 작동 원리에 의하면 우리 몸은 항상성과 평형 상태를 유지하면서 건강 상태를 지속한다. 그러다 내부 및 외부의 자극으로 그게 깨질 것 같으면 뇌가 신호를 감지하고 재조정하는 과정을 반복한다. 하지만 그 재조정 과정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문제가 생긴다. 몸이 아프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저자의 말에 따르면 “우리가 병드는 건 그 어떤 외부의 발병 인자가 우리를 덮쳤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를 병들게 하는 것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으로 착각했기 때문”이다.
현대 사회에서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사람들의 인정을 받기 위해, 성공이라는 것을 하기 위해 만든 구상들은 원래 우리가 가지고 있던 애착과 결속을 향한 욕구, 자기 결정과 자주성, 자유를 향한 욕구를 단단히 옥죄고 더 나아가 허기, 갈증, 수면, 휴식과 같은 신체적 욕구까지 막는다. 우리가 만든 구상이 뇌와 몸이 보내는 신호를 무시하게 만드는 것이다. 자연스러운 조정의 타이밍을 무시하니 에너지가 많이 들고 혼란이 늘어난다. 내재된 자가 치유력이 보이지 않는 세포와 기관 사이의 상호작용을 해결하지 못하고 불균형이 점점 커지면서 그대로 굳어버린 상태로 고정되면 결국 병에 걸리고 만다.
저자는 “처음부터 충분치 못한 자가 치유력을 가지고 태어난 것이 아니다. 살면서 약해진 것이다”라고 단언한다. 현대인의 많은 심리적 · 신체적 문제들이 원래 약하게 태어난 사람이 더 강해지지 못하고 자기 관리를 못해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살면서 약해질 수밖에 없었다고 진단한 것이다. 현대 사회의 마음의 병폐를 뇌과학의 균형이 깨지는 것으로, 그럴 수밖에 없게 몰고 가는 세상의 압박에 맞추어가는 개인으로 설명한다.
약해지는 이유가 약해지려고 했던 게 아니라 나름 현대 사회에 적응해보겠다고 노력하다가 생긴 결과다. 부모와 교사의 기대에 부응하고 인정받기 위해서, 성공이라는 걸 하려고 열심히 살아보겠다고 애쓰다 보니 몸이 보내는 이상 신호를 뇌가 억제하고 무시하도록 시스템의 세팅이 고정되어서 생긴 결과일 뿐이다. 즉 나의 존재와 소중함을 모르고, 사랑하지 않고 막 다뤄서 아프게 된다는 것이다.
이런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저자인 게랄트 휘터는 그의 전공답게 다시 뇌와 몸의 작동 원리를 이해하자고 제안한다. 인간에게는 자가 치유력이 있다고, “우리 인간에게는 필연적으로, 그러니까 자체적으로 이 모든 굴레로부터 자신을 해방시키고 변화로 나아가려는 그 어떤 성질이 있으니 우리는 그저 우리 안에서 그것을 발견하기만 하면 된다”고 말한다. 몸이 보내는 메시지를 중요하게 받아들이고 다시 조화를 이루도록 행동을 바꾸면 몸을 해롭게 하는 행위가 멈출 것이라 조언한다.
많은 사람이 아프고 혼란스러우면 시선을 외부로 돌린다. 명의를 찾고, 신을 찾고, 구원자를 찾는다. 하지만 그럴수록 나를 믿고 나에 대한 민감도를 올려야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 시작을 한마디로 정리한 것이 바로 사랑이다. 모든 문제의 원인이 자신을 소중하게 다루지 않는 ‘사랑 없음’이었다면, 해결책은 바로 나의 존엄성을 되찾고 내 몸이 보내는 신호에 민감하게 귀 기울이고 반응하는 ‘내면의 나침반’을 믿는 것이다. 그게 사랑의 시작이라는 것이다.
누군가 나를 깊이 사랑해주는 이를 만나면 구원을 얻는 것이 아니다. 먼저 나를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소중히 여기며 자가 치유의 길을 걷는 것에서 시작하자. 그래야 많은 현대인이 경험하는 ‘사랑 없음’과 성공에 대한 목마름으로 인해 발생한 번아웃 및 각종 몸과 마음의 질환에서 벗어날 수 있다. 이 과정이 추구하는 것은 마침내 자기 존엄을 되찾는 것이다.
하지만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말라고 저자는 말한다. “그저 지금부터라도 자기 자신을 좀 더 사랑하겠다고 마음먹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그 순간 나는 이미 그 길에 서 있으며 전환은 이미 시작되었다. 스스로에게 좋지 않은 일은 하지 않는 것. 그것이 건강하고 행복한 사람의 비결이다”라고 말한다.
막상 하려면 오랫동안 몸에 밴 삶의 방식과 태도를 바꿔야 하는 것이라 어려울 수 있다. 그렇지만 평소 지치고 아픈데도 그 원인을 알 수 없어 고민이었던 사람이라면 한번 해볼까 하는 마음이 들지 않을까 싶다. 시작이 어렵지도 않다. 그저 내 마음이 보내는 신호에 귀를 기울여보자고 다짐하는 것으로도 충분하다. 많은 이에게 삶의 전환점이 될 계기를 줄 책이 되리라 믿는다.
하지현(건국대학교 의과대학 정신과학교실 교수)
누구나 길을 잃는다
우리 인간은 독특한 존재다. 식물은 물론이고, 인간을 제외한 그 어떤 동물도 건강하게 사는 법을 배우지 않는다. 해바라기와 동자꽃, 메뚜기와 민달팽이, 오소리와 족제비, 그리고 원숭이에 이르기까지 모든 동식물이 가능한 오래 건강을 지키고, 적당한 짝을 찾아 교미하고, 최대한 많은 자손을 퍼뜨리는 데 무엇이 도움이 되고 필요한지를 스스로 안다.
아니, ‘안다’는 표현은 적절치 않은 듯하다. 그들은 그저 행동할 뿐이고, 그들이 하는 모든 것이 그들에게 유익하다. 변이와 선택을 통해 여러 세대에 걸쳐 최적화된 그들의 유전적 프로그램은 신체적 특징을 형성하고, 신진대사를 조절하고, 뇌를 발달시키고, 그 결과로 각각의 습성이 형성되는 전 과정을 조정한다. 그리고 그 과정은 건강하게 오래 살면서 더 많은, 더 건강한 자손을 얻는 일에 언제나 도움이 된다.
여기에 단점이 하나 있다면, 이미 유전적으로 프로그래밍된 뇌를 바꿀 수 없기에 새로운 것을 배울 수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들은 살던 세계가 변하기 시작하면 병이 들고 멸종된다. 하지만 그 잘못을 그들 자신이나 그들 안에 새겨진 유전적 프로그램에 떠넘길 수는 없다. 그건 지금껏 그들이 살아오던 환경을 파괴한 우리 인간의 잘못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병에 잘 걸리는 부류는 인간이 인간의 구상대로 사육하고 개량한 동물들이다. 병에 취약하다는 점에서 이런 동물들이 우리 인간과 가장 비슷하다.
동물과 인간이 한 조상에서 비롯되었을지는 몰라도 현재에 이르는 과정은 전혀 달랐다. 우리 인간에게만 평생 학습할 수 있는 뇌가 있기 때문이다. 뇌의 그런 능력 덕분에 우리는 다른 사람이 가르치는 것을 잘 배울 수 있다. 뿐만 아니다. 매일의 삶 속에서 행하는 자신의 경험에서도 배움을 얻는다.
우리 인간은 자신에게 무엇이 좋은지 스스로 알지 못한다. 살면서 우리에게 유익한 것을 발견해야만 한다. 누구나, 각자가, 하지만 모두가 다 함께.
어디로 가야 할지 혼자서는 알 수 없는 인간은 행복하고 충만하고 건강한 삶을 찾다가 길을 잃어버리기 십상이다. 그리고 불행히도 너무 늦게, 이미 병들고 난 후에야 그 사실을 깨닫는다.
바로 이 지점에서 우리 인간은 동식물과는 크게 다르다. 그들과 달리 우리는 몸에서 보내는 신호와 본능적 감각이 앞장서도록 허락하지 않는다. 대신 우리는 다른 사람을 앞서겠다는, 혹은 스스로를 발전시키겠다는 나름의 구상을 따른다. 우리는 건강을 지키기 위해 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구상을 기준으로 옳다고 판단되는 것을 따라 산다. 그렇게 쌓아올린 인생이 우리를 병들게 할지라도 말이다.
우리는 그런 구상에 밀려 멀리까지 왔다. 그 구상을 좇아 어떤 동물도 꿈꾸지 않았을 생활 환경을 만들고 새로운 가능성을 열었다. 우리는 우리가 사는 세상을 각자의 구상에 따라 줄기차게 바꾸었다. 더 빠르게, 더 지속적으로, 더 효율적으로.
그러는 동안 동식물은 알지 못하는 어떤 문제와 엮이게 되었다. 인간을 제외한 다른 생명체들에게 변화는 아주 느리게, 언제나 유익하게, 그리고 아주 가끔씩만 일어난다. 그래서 그들은 할당된 서식지에서 자기를 지키기만 하면 된다. 건강하게 살면서 생식력만 유지하면 된다. 그들은 한번 결정된 생활 환경에 그 어떤 변화도 일으키지 않는다. 그래서 각자의 서식지와 생태적 지위에 가장 잘 적응한 동식물일수록 오래 살아남는다. 가끔 과잉 번식할 때도 있지만 단기적이므로 주변 환경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다윈이 ‘적자생존’ 이론을 발표한 이래로 우리에게 그것은 생명의 기본 원칙처럼 알려졌다. ‘진화 이론’으로 세계적으로 확산된 이 구상은 어마어마한 성공을 거두었다. 무엇이 살아남느냐는 질문에 진화 이론은 가장 강한 것, 가장 잘난 것, 가장 똑똑한 것, 가장 성공적인 것이라는 답을 내놓는다. 그리고 이 대답은 우리의 뇌 깊은 곳에 닻을 내렸다. 하지만 여기엔 심각한 문제가 있다.
‘가장 잘 적응한 자가 살아남는다’는 이론은 해바라기나 메뚜기, 오소리나 원숭이처럼 자기가 자기 생활 환경을 변화시킬 수 없는 존재에게만 유효하다. 인간에게는 해당되지 않는다. 우리는 끊임없이 스스로를 변화시켜야만 하고, 우리 자신이 만들어낸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만 한다. 그런데 다윈의 이론은 우리가 삶에서 가능한 한 큰 성공을 거둬야 한다는 구상을 낳았다. 그 때문에 경쟁과 성공, 성과 등 다른 사람보다 ‘더 잘 적응해야 한다’는 강박이 우리 삶을 주도하게 되었다. 그 결과, 우리는 병들었다.
각자의 행동에 따라 생활 환경이 끊임없이 변하는 세상 속에서 인지력이 있는 인간이 건강하게 살려면 그 스스로도 끊임없이 변화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만 한다. 어쩌면 우리에겐 이미 그런 능력이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요즘처럼 끝없이 변하는 시대에 그 흐름을 놓치지 않고 줄기차게 발전할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인생이 그들 앞에 던져놓은 모든 도전에 응하고, 새로운 도전을 기꺼이 받아들일 용기가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도전에 응할 엄두도 내지 못하는데 그것을 정복하는 법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준비하는 법을 무슨 수로 배우겠는가.
끊임없는 발전이란 스스로 만들어낸 조건들에 그저 묵묵히 적응해가는 것이 결코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기존의 구상들로 얽히고설킨 굴레에서 자신을 해방시키는 일이 발전이다. 그 굴레야말로 우리를 병들게 하는 요인이므로.
내가 이 책에서 소개하고자 하는 핵심 개념이 바로 여기에 있다. 우리가 병드는 건 그 어떤 외부의 발병 인자가 우리를 덮쳤기 때문이 아니다. 우리를 병들게 하는 것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으로 착각했기 때문이다.
불행히도 우리는 사랑 없이 자신과 타인을 대하는 법을 어렸을 때부터 배워왔고, 거기에 익숙해졌다. 많은 사람이 더 많은 인정을 받고 더 큰 성공을 거두고 부와 재산을 가득 쌓느라 사랑을 잃었다. 어떤 사람들은 인생의 모든 요소를, 하물며 자기 자신마저도 환경에 맞게 다듬고 통제하는 것이 최우선이라고 생각한다.
남에게 쓰임받기를 바라거나 남으로부터 보호나 보살핌을 받길 원하는 부류의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자신이 져야 할 책임을 다른 이에게 떠넘기는 것도 사랑은 아니다. 그 대상이 신이든 지배자든 권력자이든 간에.
혹 당신이 삶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구상이 아직 언급되지 않았다면 얼마든지 이 목록에 집어넣어도 된다. 그것을 따른다고 해서 반드시 건강을 지키고, 혹은 잃어버린 건강을 빨리 회복하는 데 도움이 되는 것은 하나도 없다. 그런 구상 중 대부분은 기껏해야 우리에게 주어진 병든 삶을 몇 년 더 견디게 할 뿐이다.
그렇다, 이것이 내 본심이다!
오늘날 고도로 발달한 선진국에서 점점 더 빈번하게 나타나는 신체와 정신의 만성 질환은 중세의 페스트와 비슷하다. 다만 현대의 만성 질환은 페스트처럼 쥐벼룩이나 그것 등이 옮기는 어떤 병원균 때문에 생기지는 않는다. 그보다는 자신의 기쁨을, 생명력을, 장난기 가득한 유쾌함을 아주 오랫동안, 심하게는 몇 년씩 억누르는 삶의 방식이 너무 많은 사람을 병들게 한다.
누군가의 배우자로, 혹은 욕심 많은 부모의 자녀로 가능한 한 완벽하게 제 역할을 담당하느라 생기는 증상이다. 지금도 학교와 직장에서는 물론이고 우리 삶의 모든 영역에서 중요한 위치와 권력을 둘러싼, 영향력을 발휘하고 정상에 서기 위한 끊임없는 경쟁이 진행 중이다. 이렇게나 많은 사람이 자신을 사랑 없이 대하다 보니 이토록 많은 사람이 병에 걸리게 되었다.
쥐벼룩을 매개로 확산되어 중세 시대 전 지역 주민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무시무시한 전염병 페스트. 하지만 페스트 병원균은 전염병이 발발한 표면적 원인에 불과했다. 당시 도시에 살던 사람들의 처참하리만큼 비위생적인 환경을 고려하면 페스트는 피할 수 없는 결과였다. 사람들은 쥐들이 아무런 방해 없이 널리 번식할 수 있는 이상적 환경을 제공했다.
그 시대 종교 지도자들은 고양이가 악마와 결탁했다고 믿은 나머지 쥐의 천적들을 집단으로 몰살시켰다. 게다가 도시의 주민들은 쥐로부터 자신의 거주지를 보호하는 일에 아무런 관심도 없었다. 그들에겐 붙들어야 할 더 중요한 것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부자는 자기를 행복하게 해줄 것이라면 무엇이나, 빈자는 작은 고향 마을보다는 새로 정착한 중세의 도시에서 더 행복하게 살 수 있겠다는 구상을 붙들었다. 그들 마음 그 어디에도 사랑은 없었다.
자, 이쯤에서 심호흡을 한번 하길 바란다. 이 책에서는 당신이 지금까지 다른 건강서에서 보았던, 그래서 사실인 줄 믿고 지냈던 것과는 전혀 다른 접근법을 제시하려고 한다.
다시 한번 말한다. 우리를 병들게 하는 것은 심리적 부담감이나 육체적 소모 혹은 도처에 떠돌아다니는 수많은 병원균이 아니다. 우리를 병들게 하는 구상을 따라 살기 때문에 병에 걸리는 것이다. 그러니 건강하게 살려면 이러한 구상으로부터 해방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단 지금까지 우리가 추구해온 복잡하고 병적인 구상들보다 훨씬 더 중요하고 매력적인 것을 발견하거나 기존의 구상에서 새로운 점을 재발견하는 작업이 선행되어야 한다.
다행히도 우리 인간에게는 필연적으로, 그러니까 자체적으로 이 모든 굴레로부터 자신을 해방시키고 변화로 나아가려는 그 어떤 성질이 있다. 그저 우리 안에서 그것을 발견하기만 하면 된다. 한번 찾은 적이 있는 것을 재발견하거나, 그것이 본연의 성질을 발휘하도록 그저 내버려두기만 해도 된다. 어느 문화권에서든 사람들은 자신이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이름을 지어서 그것에 붙였다. 이 책에서 중점적으로 다루고자 하는 것도 그것이다.
바로 사랑이다. 사랑, 러브LOVE, 아모레AMORE, 리베LIEBE…….
무언가 대단한 것을 기대했던 당신이 시선을 아래로 떨어뜨리기 전에 서둘러 이 말을 마저 해야겠다. 여기서 말하는 사랑은 많은 사람이 흔히들 머릿속에 떠올리는 그런 사랑과는 큰 관련이 없다. 따라서 나는 이 책에서는 사랑에 대해서 말하지 않을 것이다. 이전에도 사랑에 대한 논의는 많았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사랑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관한 어떤 합의를 이루었다고 생각지는 않는다.
내가 이 책에서 다루려는 것은 사랑이 아니라 ‘사랑의 부재’다. 사랑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각자가 살면서 몸으로 체득해야만 한다. 경험하고 나서야 나와 타인을 사랑으로 대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알게 된다. 내 관심사는, 그리고 이 책을 통해 내가 전하고자 하는 것은 사랑 그 자체가 아니다. 나를, 그리고 타인과 다른 생명체를 사랑 없이 대할 때 생겨나는 결과들이다.
불과 몇 년 전만 하더라도 이러한 접근법으로 책을 쓰는 것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혹 출판에 성공했다 하더라도 서점에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책들을 모아놓은 책장에 꽂힐 게 뻔했다. 하지만 최근 몇 년 사이에 기존 지식에 수많은 과학적 · 의학적 연구 결과가 더해져서 이 책에서 다루고자 하는 함의, ‘사랑이 없으면 병든다’는 것이 가설에만 그치지 않고 그 울타리를 벗어날 수 있게 되었다. 사랑이 없을 때 우리는 병든다. 이것은 이제 객관적으로 입증되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 되었다.
한 문화의 깊은 지식은 그곳 사람들이 자신들이 파악한 현상을 표현하기 위해 찾아낸 단어에서 드러난다. 그런 의미에서 독일어 ‘사랑 없음’*은 특별한 단어다. 사랑 없음은 사람들을 불행하게 만들고, 관계를 파괴하고, 신뢰를 허물며, 심지어 병까지 들게 한다.
* 독일어에는 사랑이 없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