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은이
박종훈
국내 최고의 경제·금융 분야 기자. 서울대 국제경제학과를 졸업한 뒤 서울대 경제학부에서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고, 미국 스탠퍼드대 후버 연구소에서 객원 연구원으로 지냈다. 한국은행에 입행했다가 1998년 KBS에 입사하여 대표적인 경제 기자로 활동하고 있다. 금융감독위원회 설립과 함께 긴박하게 진행됐던 외환 위기 극복 과정과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등 굵직한 경제 이슈들을 담당해왔다. 다양한 현장 경험을 바탕으로 한 경제·금융 관련 탐사 보도와 기획 보도를 통해 2007년 제34회 한국방송대상 ‘올해의 보도 기자상’을 수상했으며, 그 외에도 방송통신심의위원회, 한국기자협회 등에서 다수의 상을 받았다. 현재 KBS1TV 「특파원 보고, 세계는 지금」에 출연 중이며, 2018~2019년 KBS1 라디오 「박종훈의 경제쇼」를 통해 보다 쉽고 재미있는 경제 지식을 전달해왔다. 또한 KBS 공식 유튜브 「박종훈의 경제한방」 채널을 통해서도 전문가들과 밀도 높은 경제 이슈를 분석하고 있다. 대표 저서로 『부의 골든타임』, 『2020 부의 지각변동』, 『박종훈의 대담한 경제』, 『지상 최대의 경제 사기극, 세대전쟁』 등이 있으며, 이코노미스트 홍춘욱과 『밀레니얼 이코노미』를 함께 썼다.
최근 유튜브에서는 경제 콘텐츠가 큰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지상파에서는 볼 수 없었던 다양한 경제ㆍ금융 전문가들의 심층적인 증시 분석뿐만 아니라 섹터나 종목에 대한 전망까지 들을 수 있다는 점에서 유튜브 콘텐츠는 많은 장점이 있습니다. 이런 장점 때문에 주식 투자를 시작할 때 경제 유튜브에 의존해 투자하는 분들이 많아졌습니다.
저도 KBS 경제 유튜브인 ‘박종훈의 경제한방’을 진행하고 있지만, 유튜브를 투자의 참고 자료로 활용하는 것은 좋으나 유튜브가 추천하는 종목에 맹목적으로 의존하는 것은 그다지 좋은 투자 방법은 아니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 이유는 유튜브 알고리즘 때문인데요. 유튜브는 대중이 많이 찾는 것을 더 많이 보여주어서 확증편향을 강화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확증편향이란 자신이 믿고 싶은 정보만 찾아보고 다른 정보는 무시하는 경향을 뜻합니다. 이런 확증편향에 빠지는 것은 주식 투자에서는 가장 위험한 일입니다. 아무리 좋은 주식이라도 너무 과도하게 오르면 조정을 받기 마련이기 때문에 주가가 마냥 오를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도 특정 주식의 주가가 오를 것이라고 맹신하고 위험 신호를 모조리 무시한 채 자신만의 확신에 차서 투자를 시작하면 자칫 큰 손실을 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삼성전자 주식을 사볼까 고민하면서 유튜브에서 관련 영상 두세 개만 찾아보면, 유튜브 알고리즘은 ‘이 사람이 삼성전자에 관심이 많구나’라고 판단하고 삼성전자 주식을 추천하는 다른 영상들을 더 자주 노출해줍니다. 그러면 모든 경제 유튜브 채널들이 삼성전자 주식을 추천한다고 착각하는 정보 왜곡을 겪게 됩니다.
더 큰 문제는 사람들이 삼성전자 주식 콘텐츠를 더 많이 찾을수록 유튜브 알고리즘은 삼성전자를 추천하는 콘텐츠를 더 많이 유통하게 되고, 그 결과 삼성전자 콘텐츠는 점점 더 인기 콘텐츠가 되어 사람들에게 노출될 확률 역시 커진다는 점입니다. 유튜브 알고리즘은 광고를 더 많이 팔기 위해 만들어졌기에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는 콘텐츠를 더 많이 유통해야 더 큰 수익을 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연구하는 복잡계 경제학(complexity economics)에서는 이를 양(+)의 되먹임(positive feedback)을 주고받는다고 표현합니다. 용어는 어렵지만 내용은 간단한데요. 일단 삼성전자 주식을 사려는 사람들이 늘어나면 유튜브 알고리즘이 삼성전자에 관심이 없던 사람들에게도 삼성전자를 추천하는 콘텐츠를 더 많이 노출하게 된다는 겁니다.
게다가 삼성전자 주식을 검색하는 사람들이 급증할수록 유튜브 콘텐츠 제작자들도 조회 수가 많이 나오는 삼성전자 콘텐츠를 더 많이 만들게 되어 관련 콘텐츠가 봇물 터지듯 쏟아지게 됩니다. 이런 이유로 대중이 삼성전자 주식에 가장 폭발적으로 관심을 가지는 바로 그 순간, 대중은 삼성전자 주식을 추천하는 유튜브 콘텐츠에 더 쉽게 노출됩니다.
문제는 대중이 특정 주식에 뜨겁게 관심을 두고 그 주식을 살 때가 대체로 단기 고점인 경우가 많다는 점입니다. 살 만한 사람은 이미 다 샀기 때문이죠. 그렇기에 유튜브에서 특정 주식을 추천하는 콘텐츠가 과도하게 많아지는 것은 그 주식을 살 기회라기보다 오히려 고점에 가까워졌다는 신호로 볼 수 있습니다.
유튜브라는 새로운 미디어 덕분에 우리가 놀라운 지식의 세계를 쉽게 접할 수 있게 된 것은 고마운 일이지만 유튜브의 한계와 문제점도 명확히 이해해야 합니다. 투자의 세계는 약육강식의 정글과도 같기에 자신이 활용하고 있는 도구의 장점과 단점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고 이용하면 애써 모은 소중한 자산을 잃어버릴 수 있습니다.
특히 기존의 언론은 유튜브보다도 한 발 더 늦게 움직이는 경향이 있는데, 대중의 관심이 정확히 정점에 이를 때 언론이 기사로 다루는 횟수가 극적으로 늘어나게 됩니다. 조회 수나 열독률을 올려야 하는 언론사 입장에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지만, 이 같은 언론의 행태 때문에 과거 증권가에는 ‘소문에 사서 기사에 팔라’는 우스갯소리까지 생겼습니다.
이 때문에 유튜브나 언론에서 특정 종목에 스포트라이트를 비추기 시작한 뒤에 그 주식을 사게 되면 언제나 한발 늦을 수밖에 없습니다. 유튜브나 언론과 같이 남이 잡아다 주는 물고기는 이미 상했거나 상해가는 경우가 적지 않은데요. 이를 넘어서려면 남들이 잡아놓은 물고기만 뒤쫓아 가기보다 새로운 물고기가 어디 있는지 스스로 찾아내고 낚을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야 합니다.
더구나 시점을 넓혀 금융 시장 전체를 바라볼 때도 이 같은 왜곡 현상은 빈번하게 나타납니다. 개인 투자자들은 일단 주식을 사놓고 난 뒤에는 주가 상승만을 바라게 되고, 자신의 희망을 확신시켜주는 콘텐츠만 찾아다니게 됩니다. 이 때문에 주가가 더 오른다는 유튜브 콘텐츠가 사람들에게 더 자주 노출되고, 유튜브 제작자도 조회 수가 많이 나오는 주가 상승론을 더 많이 다룰 수밖에 없습니다.
반대로 주가가 폭락하기 시작하면 많은 사람들이 주식을 투매하기 시작하는데요. 이렇게 주식을 팔고 나간 사람들 사이에서는 비관론을 다룬 콘텐츠가 인기를 끌게 됩니다. 그러나 모두가 주가 하락을 전망할 정도로 시장이 꽁꽁 얼어붙으면 그때를 기점으로 증시가 저점을 찍고 반등을 시작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습니다.
이처럼 언론이나 유튜브 등에만 의존해 주식 투자를 하게 되면, 그 알고리즘이나 구조적인 특성 때문에 결정적인 순간에 잘못된 투자 결정을 내리게 될 우려가 있습니다. 이 같은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자기 스스로 시장을 파악하고 날마다 쏟아지는 언론 기사나 유튜브 콘텐츠를 비판적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는 힘을 키워둘 필요가 있습니다.
이런 기본 지식과 판단력을 갖기 위해서는 과거 금융 시장의 역사는 물론, 금융 시장의 현주소를 정확하게 이해하는 것이 중요한데요. 이 책에서는 대공황 이후 90년에 걸친 세계 금융 시장의 거대한 흐름과 함께 인류 역사상 전례 없었던 코로나19 팬데믹 버블의 특성을 분석하고 4차 산업혁명 이후 거대한 변화의 물결까지 구체적으로 다루고자 합니다.
특히 2022년에는 코로나19 이후 세계 금융 시장을 떠받쳐왔던 미국의 중앙은행인 연준의 금융정책과 미국 정부의 재정정책이 근본적으로 바뀔 가능성이 큽니다. 이 상황에서 세계 경제는 인플레이션과 디플레이션이라는 정반대의 위협 속에서 속출하는 코로나19 변이와 미ㆍ중 패권 전쟁이라는 거친 파도를 넘어야 합니다.
대체로 가장 큰 부의 기회는 거대한 변화의 순간에 찾아왔습니다. 앞으로 시작될 대변혁의 시대에는 미리 그 변화에 대비해 철저히 준비한 사람만이 기회의 열매를 차지할 수 있을 겁니다. 이 책은 불안과 희망이 교차하는 혼란스러운 현재의 상황을 면밀하게 진단하고 앞으로 펼쳐질 변화와 이에 대비할 구체적인 전략까지 조목조목 다룰 것입니다.
“역사는 그대로 반복되지 않지만, 그 흐름은 반복된다.”
“History doesn't repeat itself, but it does rhyme.”
- 마크 트웨인(Mark Twain)1
주가를 미리 알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간혹 내일의 주가를 확언하는 분도 있지만, 주가를 정확히 예측한다는 것은 제아무리 대가라고 해도 쉬운 일이 아닙니다. ‘기업 사냥꾼’이란 별명으로 불릴 정도로 남의 회사를 헐값에 인수하는 전문 투자자, 칼 아이칸(Carl Icahn)은 2020년 2월 렌터카 회사 허츠(Hertz)의 주가가 거의 10분의 1토막으로 폭락한 상황에서 16억 달러나 손해를 보고 주식을 팔았다가 나중에 주가가 폭등해 망신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투자의 여러 구루(Guru; 종교에서 일컫는 스승, 경제ㆍ금융의 대가를 뜻하기도 함)들 중에 최고를 꼽으라면 여전히 워런 버핏(Warren Buffett)을 꼽습니다. 그런데 그런 워런 버핏조차 항상 내일의 주가를 알 수 없다는 점을 강조해왔습니다. 주가가 폭락하던 2020년 2월 미국의 CNBC 방송에 출연해 “(자신을 포함해) 그 누구도 내일의 주가를 맞출 수 없다”라고 단언하기도 했습니다.2
심지어 과거에 경제 위기를 정확히 예견했던 투자의 대가라 할지라도, 이번에 또다시 경제 위기를 정확히 예측할지는 장담할 수 없습니다. 예를 들어 레이 달리오(Ray Dalio)는 코로나19 이전만 해도 정확한 분석력을 기반으로 증시 호황은 물론 경제 위기 때조차 높은 투자수익률을 올려 헤지펀드의 제왕이라는 별명까지 얻었던 투자의 대가인데요. 2020년 코로나19 위기 이후에는 계속 비관적인 전망을 고수한 탓에 보수적인 투자만 고집하다가 큰 손실을 봤습니다. 게다가 금값이 천정부지로 치솟을 때 금을 더 사라고 했다가 금값이 떨어져 빈축을 사기도 했습니다. 그 결과 펀드 해지가 잇따르면서 그가 운용하는 헤지펀드 회사의 운용 자산이 25%나 줄어드는 수모를 겪기도 했죠.
2020년에 비교적 정확하게 주가를 예측했던 사람은 행동주의 투자자로 불리는 빌 애크먼 등 소수에 불과했습니다. 하지만 빌 애크먼도 미국 주가가 대폭 상승했던 2015년부터 2018년까지 4년 연속 마이너스 수익률을 기록해 심각한 위기에 빠진 적도 있었습니다. 이 때문에 과거 명성만 믿고 이번에 누가 주가의 향방을 맞출지 추정하기도 어려운 일입니다.
이처럼 예측이 어려운 상황에서 어떻게 하면 미래를 대비할 수 있을까요?
저는 미국의 대문호인 마크 트웨인의 “역사는 그대로 반복되지 않지만, 그 흐름은 반복된다.”라는 말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마크 트웨인이 정확히 이 말을 했는지 분명한 기록은 남아 있지 않지만 많은 지혜가 담겨 있는 격언인 것만은 분명하죠.
과거에 반복되어왔던 증시의 흐름 속에서 패턴을 발견한다면, 현재 진행되고 있는 증시 흐름과 과거의 패턴을 서로 비교할 수 있습니다. 특히 과거에 일정한 패턴이 나타났던 이유를 명확히 이해한다면, 이번 증시 흐름의 특징이 과거와 유사한 패턴으로 반복될지 아니면 새로운 흐름으로 나타날지 조망해 볼 수 있을 겁니다.
그동안 주가가 오르기 시작할 때는 증시에 일정한 패턴이 있었는데요. 1929년 대공황부터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까지, 90년 동안 미국 증시에는 13번의 주가 폭락과 이에 이은 강세장이 찾아왔습니다. 여기서 강세장이란 주가가 꾸준히 우상향하며 장기적으로 상승추세를 보이는 시장을 뜻합니다.
미국 증시를 대표하는 지수는 다우존스 지수와 S&P500 지수, 그리고 나스닥 지수 등이 있습니다. 다우지수는 대형주 30개 종목만을 대상으로 하고 있고, 나스닥 지수는 기술주에 편중되어 있는 반면, S&P500 지수는 미국 시장을 대표하는 500개 종목의 주가 변화를 나타내기 때문에 증시의 흐름을 살펴보는 데 있어 특히 중요한 지수입니다. 강세장이 시작된 이후 첫 1년 차와 2년 차 그리고 3년 차의 S&P500 지수 상승률의 평균을 내보면 다음 그래프와 같습니다.3
강세장 초기 S&P500 상승률
자료 : 켄 피셔, 『주식 시장은 어떻게 반복되는가』 & 스탠더드 앤드 푸어스
앞의 그래프에서 눈에 확 띄는 게 있죠? 바로 강세장 1년 차 상승률이 무려 47%나 된다는 점입니다. 대표적인 강세장 1년 차가 바로 글로벌 금융 위기 직후였던 2009년의 상승장인데요. 글로벌 금융 위기 직후 제로 금리를 선언한 연준(Fed)이 양적 완화까지 단행하자 2009년 3월부터 주가가 상승세로 돌아서더니 1년 뒤 S&P지수가 69%나 치솟아 올랐습니다.
더 극적인 강세장 1년 차는 코로나19 직후 찾아왔습니다. 연준의 무제한 양적 완화 선언과 동시에 2020년 3월 23일 2,237을 기록했던 S&P500지수는 정확히 1년 뒤인 2021년 3월 23일 3,910으로 무려 74%나 뛰어올랐습니다. 이는 대공황 직후 주가가 반등했던 1932년의 주가 상승률인 121%에 이어 2번째로 높은 상승률입니다.
이쯤 되면 연준이 도대체 뭐길래 이렇게 주가를 끌어올릴 수 있나 궁금하신 분들도 많을 텐데요. 연준은 우리나라의 한국은행과 같은 미국의 중앙은행으로 달러를 발행하는 역할을 맡고 있습니다. 연준의 미세한 정책 변화에 전 세계 금융 시장이 요동치기 때문에 연준 의장은 세계의 경제 대통령으로 비유될 정도로 막강한 영향력을 갖고 있습니다.
글로벌 금융 위기와 코로나19 위기 직후 시작된 강세장에서 1년 차 증시의 상승률이 유독 높았던 이유도 모두 연준 덕분이었습니다.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연준은 6년에 걸쳐 3조 달러에 달하는 금액을 양적 완화에 투입해 주가를 끌어올렸습니다. 심지어 2020년 3월 코로나 위기 때는 단 석 달 만에 3조 달러를 풀었습니다.
양적 완화란 연준이 달러를 찍어 시중은행이 보유한 미국 국채 같은 우량 채권을 사주는 정책을 말합니다. 물론 다른 나라라면 돈을 찍은 만큼 해당 화폐의 가치가 떨어지겠지만 세계 경제 패권을 장악한 미국이기에 연준이 제아무리 많은 돈을 찍어서 은행에 뿌려도 큰 문제가 없었습니다. 게다가 코로나19 이후 이렇게 풀린 돈이 증시로 흘러가 주가 상승률이 여느 강세장 1년 차보다 훨씬 높았습니다.
하지만 강세장 2년 차의 평균 상승률은 11%로 낮아졌습니다. 강세장 1년 차의 엄청난 상승을 경험한 투자자들에게 고작 11%밖에 안 되는 상승률은 기대에 한참 미치지 못할 겁니다. 그러나 지난 90년 동안 S&P500 지수의 상승률이 연평균 10% 정도라는 점을 감안하면, 11%에 이르는 2년 차 상승률은 연평균 상승률을 넘어서는 양호한 상승률이라고 할 수 있죠.
게다가 지난 13번의 강세장 중에서 대공황 직후였던 1933년을 제외하면 주가 지수가 하락한 적이 없습니다. 이는 미국 증시 투자자라면 과거 13번의 강세장에서는 굳이 성급하게 2년 차에 주식을 정리할 필요는 없었다는 얘기이기도 합니다. 다만 미국의 증시 분석기관인 네드 데이비스 리서치(Ned Davis Research)에 따르면 강세장 2년차에는 평균 16% 하락했다가 반등한 경우도 많았기 때문에 변동성에는 대비해야 합니다.
사실 미국의 억만장자 투자자인 켄 피셔(Ken Fisher)가 종종 이 같은 분석을 인용해 시장을 설명하는데요. 그가 2021년에도 미국 주가가 ‘시원하게’ 오를 것이라고 장담한 데는 이 같은 과거의 패턴을 고려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4 세계 최대의 자산 운용사인 블랙록의 래리 핑크(Lawrence Douglas Fink) 회장도 2021년 미국 증시 전망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낙관적이라고 내다봤습니다.
그러나 강세장 3년 차 패턴은 좀 달랐습니다. 과거 13번의 강세장 3년 차 평균 상승률은 4%에 불과했습니다. 지난 90년 동안 S&P500 지수 상승률이 평균 10%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3년 차 상승률은 평균의 절반도 채 안 됐다는 얘기가 됩니다. 게다가 13번의 강세장 중에서 5번은 마이너스 상승률을 기록했을 정도였습니다.
특히 강세장 3년 차는 변동성이 큰 것으로도 악명이 높은데요. 상승으로 끝난 경우에도 중간에 큰 폭의 하락을 경험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습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시작된 강세장 3년 차인 2011년 가을이죠. 그 당시 투자자들은 S&P500지수가 고점 대비 18.3%나 떨어지는 급락장을 겪어야만 했습니다. 그러므로 강세장 3년 차에는 생길 수 있는 변동성에 특히 주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3년 차 주가 상승률은 왜 이렇게 평균적으로 저조했던 것일까요? 그리고 왜 강세장임에도 불구하고 종종 큰 폭의 하락세를 겪는 경우가 있었던 걸까요?
3년 차에 주가 상승률이 저조했던 가장 큰 이유는 아이러니하게도 3년 차에 접어들면서 실물 경제가 살아났기 때문입니다. 실물 경제가 살아나면 주가가 더 오를 것이라는 장밋빛 전망이 나오지만, 실상은 반대인 경우가 적지 않았습니다. 강세장 3년 차에는 고용 회복과 함께 인플레이션에 관한 우려가 커지면서 연준이 돈줄을 죄기 때문에 주가가 크게 요동친 겁니다.
처음 경제 위기가 시작되면 주가가 폭락하고 실물 경제가 처참하게 망가지게 됩니다. 그러면 연준이 실물 경제를 살리기 위해 금리를 낮추고 돈을 풀어 주가는 곧바로 반등하는 경우가 많지만, 실물 경제, 특히 고용 회복은 아주 더디게 진행됩니다. 연준은 이를 빌미로 실물 경제가 살아날 때까지 돈 풀기를 멈추지 않기 때문에 2년 차까지는 주가가 계속 오르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대체로 강세장 3년 차쯤 되면 연준의 부양책이 효과를 발휘하기 시작해 고용 시장에도 훈풍이 돌면서 임금 상승을 동반한 인플레이션 우려가 커지게 됩니다. 그러면 연준이 돈줄을 죄기 시작하면서 주가가 조정을 받게 됩니다. 실제로 강세장 3년 차였던 2011년에 미 연준이 양적 완화를 중단하자 전 세계 주가가 급락했습니다.
그러다가 연준이 본격적으로 돈줄을 죄기 시작하는 강세장 4년 차 이후에는 그 나라 경제의 진짜 실력이 드러나게 됩니다. 그 결과 나라별로 주가에 큰 격차가 생깁니다. 강세장 4년 차였던 2012년 이후 실물 경제가 본격적으로 회복되기 시작한 미국은 주가가 지속적으로 올랐지만, 실물 경제 회복이 더뎠던 우리나라나 유럽의 주가는 오랫동안 주가가 정체되는 박스권에 갇힌 적이 있죠.
여기까지가 지금까지 반복된 13번의 강세장 패턴인데요. 이 같은 패턴이 매번 똑같이 반복된다면 참 투자하기 쉬울 겁니다. 그러나 큰 흐름은 유사할 수 있어도 역사가 똑같이 반복되지는 않기 때문에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시작된 강세장이 이전 강세장과 어떻게 다른지 그 차이점을 명확히 파악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2020년에 시작된 이번 강세장은 과거와 다른 독특한 차이점들이 있습니다. 일단 연준의 경기 부양책이 너무나 강하고 빠르게 진행됐기 때문에 강세장 1년 차 주가 상승폭이 여느 때보다 컸습니다. 이 때문에 2020년과 2021년에는 주가를 매우 강하게 끌어올리는 요소가 됐지만, 3년 차 이후에는 오히려 변동성을 키우는 요인이 될 수 있습니다.
또 다른 문제는 과거 경제 위기에는 미국의 중앙은행인 연준이 금융 회사에다 돈을 풀었는데, 이번에는 미국 정부까지 나서서 대중에게 돈을 뿌리는 재정정책까지 썼다는 점입니다. 바이든 대통령은 취임과 동시에 1.9조 달러 규모의 슈퍼 부양책을 쓴 것은 물론 천문학적인 인프라 투자까지 단행했습니다.
물론 적절한 부양책은 미국 경제와 증시에 새로운 활력을 부여할 수도 있지만, 너무나 거대한 부양책은 경기를 뜨겁게 달구어 오히려 다 태워버릴 수도 있는 양날의 검과도 같습니다. 그래서 전대미문의 대규모 부양책이 과연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전문가들도 의견이 엇갈리고 있는 상황입니다.
마지막 문제점은 미ㆍ중 패권 전쟁이 격화되면서 세계 경제를 살리기 위한 국제 공조가 무너지고 있다는 점인데요. 이 같은 현상은 대공황 직후인 1930년대와 유사합니다. 당시 미국은 2만 개 이상의 수입 품목에 400%에 가까운 관세를 부과해 자국 산업 보호에 나섰습니다. 그 결과 곧바로 유럽 국가들이 반격을 시작했고, 그 바람에 대공황의 피해만 더 커졌습니다.
만약 미ㆍ중 패권 전쟁이 더욱 격화된다면, 경제 블록화가 가속화되고 세계 교역 규모가 축소되는 것은 물론 국제간 공조 체제까지 무너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게다가 이번 패권 전쟁의 결과에 따라 향후 30년 동안 세계 경제를 누가 주도해나갈지가 결정되기 때문에 어느 한쪽이 완전히 무너질 때까지 패권 전쟁은 계속될 수밖에 없습니다.
여기까지가 2020년에 시작된 강세장을 위협하는 부정적인 요소인데요. 반대로 긍정적인 면도 적지 않습니다. 가장 중요한 점은 대공황 이후 잦은 금융 위기 속에서 연준이 엄청난 위기 대응 능력을 축적해왔다는 점입니다. 마치 인간이 면역 체계나 백신으로 이미 한 번 경험한 바이러스를 쉽게 물리칠 수 있는 것처럼 연준은 적어도 과거와 같은 방식의 위기에는 어렵지 않게 대응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러나 금융 위기도 끝없는 돌연변이를 일으키며 진화해 왔기 때문에 제아무리 뛰어난 연준이라고 해도 막을 수 없는 부분이 있기 마련인데요. 일단 과거의 상승 패턴을 참고해 투자를 진행하더라도 연준이 막기 어려운 새로운 돌연변이, 즉 앞서 소개한 미ㆍ중 패권 전쟁이나 인플레이션 같은 돌발 변수를 예의 주시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 책에서는 그런 위험 요소를 명확히 분석하고 그 시그널을 한발 먼저 포착하는 방법을 모색해 볼 것입니다.
2020년 3월 이후 주가가 빠르게 치솟아 오르자 기다렸다는 듯이 20~30년 장기 주식 투자를 권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는데요. 좋은 주식만 잘 골라서 참을성 있게 기다리기만 하면 부자가 될 수 있다니 정말 솔깃한 얘기죠? 하지만 자신의 재산을 오랫동안 묶어둬야 하는 데다 투자 기간이 길어질수록 리스크도 커지기 때문에 이 같은 주장이 사실인지 꼼꼼히 따져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무조건 장기 투자가 답이라고 주장하시는 분 중에는 과거 지속적으로 상승했던 특정 종목의 주가 상승을 예로 들면서 30년 전에 그 종목에 투자했다면 얼마나 부자가 됐을지를 강조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미 치솟아 오른 종목을 골라 장기 투자가 무조건 답이라고 말하기는 쉽습니다. 그러나 사전에 그런 종목을 찾아내어 투자에 성공한 사람들은 워런 버핏과 같은 극히 소수의 대가들에 불과하다는 점을 명심해야 합니다.
실제로 최고의 프로 투자자들이 모여 있다고 할 수 있는 미국의 월스트리트에서 시장을 이기는 펀드 매니저, 즉 자신이 운용하는 펀드 수익률이 주가 지수보다 앞서는 펀드 매니저는 전체의 40%가 되지 않습니다. 이들 전문 펀드 매니저들은 기업의 회계장부를 주도면밀하게 살피고 직접 기업에 실사를 나갈 뿐만 아니라 자신들만의 네트워크를 통해 엄청난 정보를 실시간으로 주고받습니다. 그런데도 투자수익률이 주가 지수를 뛰어넘지 못하는 경우가 더 많다는 얘기입니다.
이러한 최고의 전문 펀드 매니저들도 그럴진데, 일반 투자자가 개별 주식에 장기 투자를 해서 성공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도 2020년 이후 미국에서도 개인 투자자들에게 무조건 장기 투자를 하라고 권하는 전문가들이 늘어나고 있는데요. 이에 대해 정작 장기 투자의 대가 중의 대가라고 할 수 있는 워런 버핏이 2021년 주주총회에서 다음 페이지 두 개의 표를 비교하며 초보 투자자들이 개별 종목에 장기 투자하는 것이 얼마나 큰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일인지 강조한 바도 있습니다.
다음의 첫 번째 표는 2021년 3월 31일 세계에서 시가총액이 가장 큰 1위부터 20위까지의 기업들이고, 두 번째 표는 32년 전인 1989년 세계 시가총액 20위까지의 기업 명단인데요. 단 한 기업도 일치하는 기업이 없습니다. 1989년 세계를 풍미했던 일본 기업들이야 버블 붕괴로 무너졌다고 쳐도 당시 미국을 대표하며 미국 증시에서 시가총액 1, 2, 3위를 차지했던 엑손이나 GE, IBM마저 시가총액 상위 종목에서 사라졌습니다.
시가총액 상위 20개 종목(2021년 3월 31일)
자료: 버크셔 앤서웨이 연례 회의에서의 워런 버핏의 발언
시가총액 상위 20개 종목(1989년)
자료: 버크셔 앤서웨이 연례 회의에서의 워런 버핏의 발언
장기 투자를 강조하면서 가장 의미 없는 것은 현재 전 세계 시가총액 1위인 애플 같은 기업을 놓고 ‘진작에 애플을 사서 30년 묻어뒀다면 얼마나 좋았을까’하는 헛된 가정을 하는 것입니다. 사실 애플의 역사를 잘 아시는 분들은 과거 창업자였던 스티브 잡스가 이사회에서 해고된 이후 1990년대에는 차세대 운영체제 개발 실패와 지나친 제품 개발 등으로 파산 위기까지 내몰렸다는 것을 잘 아실 겁니다.
1990년대 후반 미국의 IT 산업을 선도했던 기업은 AOL(America On line)이나 야후(Yahoo) 같은 기업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때 이들 기업의 주식을 샀다면 지금도 원금조차 회복하지 못하거나 휴짓조각이 됐을 겁니다. 이처럼 마치 정글과도 같은 생존경쟁이 벌어지는 비즈니스 세계에서는 한 시대를 풍미했던 기업들조차 하루아침에 무너질 수 있기 때문에 개별 주식 투자는 정말 많이 공부하고 끊임없이 연구해야 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개별 종목에 장기 투자를 하려면 그 시장에 대한 정확한 전망과 그 기업이 가진 잠재력, 기술력, 시장의 확장성, 그리고 최고경영자(CEO)나 최고기술경영자(CTO) 같은 주요 임원진의 성향이나 역량까지 파악하고 있어야 합니다. 이런 분석 능력을 갖춘 사람은 월스트리트에서조차 매우 희소하기에 개별 종목에 장기 투자로 명성을 날리는 투자 전문가의 수가 그만큼 적은 겁니다.
내로라하는 수많은 기업 중에서 끝없이 성장할 기업을 찾아내는 것은 버핏과 같은 혜안과 오랜 세월의 경험이 있어야 가능합니다. 게다가 버핏은 특정 기업의 경영에 관여할 수 있을 만큼의 지분을 보유한 경우도 많아 특정 기업의 경영 실패를 속수무책으로 보고만 있어야 하는 일반 투자자와는 처지가 다릅니다. 버핏은 기업 경영진에 주주가치 극대화나 경영 효율화를 요구할 수도 있습니다.
이 때문에 버핏 본인은 개별 주식에 장기 투자를 하고 있지만, 자신의 사후에 남은 가족들에게는 상속받은 자산의 대부분을 S&P500 지수를 추종하는 인덱스상장지수펀드(ETF; 주식처럼 거래가 가능하고 특정 주가 지수의 움직임에 따라 수익률이 결정되는 펀드)에 투자할 것을 공개적으로 권할 정도입니다. 인덱스 ETF는 주가 지수와 똑같이 오르고 내리기 때문에 시장 전체에 투자하는 효과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버핏의 권유대로 과거에 미국 S&P500 지수를 추종하는 ETF에 장기 투자를 해두었다면 지금 어떤 성과를 내고 있을까요? 특히 버블이 한창이었을 때 투자를 시작했다고 가정하고 수익률을 따져보겠습니다. 1929년 세계 대공황 직전에도 마치 2020년과 같은 주식 투자 열풍이 불었는데요. 만일 그 열풍의 한복판이었던 1928년 1월 1일에 주식 투자를 시작했다면 92년이 지난 2020년 투자수익은 어떻게 됐을까요?
이런 흥미로운 계산을 뉴욕대학교 스턴 비즈니스 스쿨(NYU Stern School of Business)5에서 한 적이 있습니다. 뉴욕대 비즈니스 스쿨은 1928년 1월 1일 주식과 국채, 회사채에 각각 100달러를 투자했다고 가정하고 계산을 시작했습니다. 주식 투자는 S&P500 지수를 추종하는 상장지수펀드(ETF)에 투자하고 배당금까지 전액 재투자하는 것으로 가정했는데요. 다만 S&P500 지수가 처음 등장한 것은 1957년이기 때문에 1957년 이전의 투자수익률은 가상의 S&P500 지수로 계산했습니다.
1928년 1월 1일 100달러(약 11만 원)를 투자했다면 주식 투자로 두둑한 한 해를 보냈을 겁니다. 대공황 직전 찾아온 주가 급등 덕분에 이듬해 1월 1일에는 주가 지수가 44%나 올랐기 때문이죠. 하지만 끝없이 치솟아 오를 것 같았던 주가는 1929년 가을을 기점으로 4년 연속 폭락했습니다. 그 결과 100달러로 시작했던 투자금은 1933년 원금의 반 토막 수준인 51달러로 쪼그라들었을 겁니다. 더 큰 고통은 한동안 원금 회복조차 안 됐다는 점인데요. 1928년 100달러를 투자한 지 13년이 지난 1941년 1월 1일에도 보유 자금은 고작 94달러에 불과했습니다. 하지만 그 뒤 본격적인 주가 급등이 시작되면서 투자를 시작한 지 30년이 지난 1958년 1월 1일에는 원금의 14배가 넘는 1,435달러를 돌파했을 겁니다.
이처럼 대공황으로 주가가 폭락하기 직전인 1928년 1월에 주식 투자를 시작했다고 해도 주가 지수를 추종하는 ETF에 투자해 30년 장기 투자를 했다면 괜찮은 투자수익을 올릴 수 있었을 겁니다. 다만 대공황이라는 격변기 속에서 초우량기업조차 파산한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개별 주식 투자의 경우에는 주식이 아예 휴짓조각이 된 경우도 많았다는 점은 감안해야 합니다.
정리하자면 30년 동안 지수투자를 했다면 대공황조차 넘어설 수 있었다는 얘긴데요. 그러면 만일 1928년 투자한 100달러를 92년 동안 쭉 놔뒀다면 어떻게 됐을까요? 믿기지 않겠지만, 2020년에는 무려 59만 2,868달러(약 6억 6,500만 원)으로 불어났을 겁니다. S&P500 지수는 한 해 평균 10% 정도 상승해왔는데, 92년에 걸친 무시무시한 복리 효과 덕분에 원금의 5,900배로 불어난 것입니다.
한편으론 주가 지수에 투자할 경우 개별 주식 투자만큼 높은 수익률을 누리지 못할 것이라고 우려하는 분들도 있습니다만, 의외로 전문 투자자 못지않은 투자수익률을 올릴 수 있습니다. 나스닥100 지수를 추종하는 QQQ 같은 미국 ETF에 투자했다면 지난 20년 동안 연평균 수익률은 15% 정도였을 겁니다. 만일 이 수익률로 1억 원을 30년 동안 묻어둔다면 복리 효과 덕분에 투자 원금은 무려 66배인 66억 원으로 불어나게 됩니다.
이 수치는 2020년 이후 주가 지수의 향방을 매번 족집게처럼 맞춰 리틀 버핏이라고도 불리는 빌 애크먼(Bill Ackman) 같은 천재 투자자의 최근 20년 동안 연평균 수익률인 17%와 큰 차이가 나지 않습니다. QQQ에 투자했다면 투자수익률이 리틀 버핏 빌 애크먼과 2%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데요. 빌 애크먼의 펀드 운용 수수료가 QQQ보다 훨씬 높다는 점을 감안하면 수수료를 뺀 QQQ의 실질수익률이 더 높을 수도 있습니다.
여기까지 보면 미국 주가 지수를 추종하는 ETF에 장기 투자를 하는 것이 정답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이처럼 복리 효과로 엄청난 수익률을 기대할 수 있는 ETF 장기 투자에도 몇 가지 단점이 있는데요. 투자 시점을 잘못 골라 하필 고점을 찍었을 때 투자를 시작하면 인간의 심리상 당장의 주가 폭락을 견디기가 너무나 어렵다는 점입니다.
굳이 세계 대공황까지 거슬러 올라갈 필요 없이 비교적 최근에도 그런 일이 있었죠. 닷컴버블이 한창이었던 2000년 3월 10일 나스닥 지수는 5,048로 고점을 찍고 폭락하기 시작해 2년 반 뒤에는 1,114로 추락해 5분의 1토막이 났습니다. 더 큰 문제는 닷컴버블 붕괴 이후 나스닥 지수가 좀처럼 회복하지 못해 원금까지 돌아오는데 무려 15년이나 기다려야 했다는 점입니다.
또한, 과거에 높은 수익률을 올렸다고 해서 미래에도 같은 수익률을 기대할 수 있다는 보장이 없다는 점도 문제입니다. 주식 투자는 어디까지나 위험자산에 투자하는 것이기 때문에 높은 수익률만큼 투자위험도 감수해야 합니다. 게다가 2020년에는 천문학적인 돈을 풀어 주가를 끌어올렸지만, 미국의 성장률이 장기적으로 하락하는 추세에 있기 때문에 앞으로는 연평균 수익률이 과거보다 낮아질 가능성도 있습니다.
다만 미국 증시가 앞으로도 다른 나라보다 상대적으로 더 높은 수익률을 기록할 가능성이 여전히 큰 데다가, 심각한 경제 위기가 올 경우 다른 나라보다 충격의 여파가 덜하고 회복 속도가 더 빠르다는 점은 여전히 미국 투자의 큰 장점입니다. 또한, 미국 투자는 달러화 자산이기 때문에 위기가 왔을 때 주가가 하락하더라도 달러화 가치 상승으로 투자손실을 어느 정도 상쇄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습니다.
앞서 우리는 지난 92년 동안 가상의 미국 S&P500 지수 펀드에 장기 투자를 했다면 투자 원금이 무려 5,900배로 불어났을 것이라고 이야기한 바 있습니다. 이런 놀라운 장기 투자의 성과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장기 투자를 실행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바로 미친 듯한 주식 시장의 변동성 때문입니다. 특히 고점에 투자를 시작했다가 한 번이라도 그런 변동성을 겪게 되면 장기 투자는커녕 증시를 아예 떠나버리는 경우도 많습니다.
실제로 1926년 이후 85년 동안의 기록을 보면 미국의 S&P500 지수는 연평균 9.8% 상승했습니다.6 그런데 평균이 9.8%였다고 해서 마치 은행이 이자를 주듯이 꾸준히 9.8%씩 오른 게 아니라 주가가 급등하거나 급락한 해 역시 적지 않았습니다. 한 해 상승률이 평균에 가까운 0%에서 20% 사이였던 경우는 85년 중에 34%에 불과했고, 상승률이 20%를 넘은 경우가 38%, 그리고 마이너스였던 적이 28%나 될 정도로 극단적인 변동성을 보였습니다.
특히 일단 강세장에 들어서면 주가가 연속으로 올랐던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설마 더 오르겠어?’라는 생각으로 투자를 망설이다가는 투자 기회를 놓치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나죠. 또 반대로 2~3년 연속으로 주가가 올라 남들이 투자에 성공해 큰돈을 벌었다는 얘기를 듣고 뒤늦게 뛰어들면 때마침 주가 하락이 시작되는 경우도 많은데요. 전체 주가 지수는 언젠간 다시 회복되겠지만 그 하락장세의 어두운 터널에서 마음을 추스르며 버틴다는 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이 때문에 투자의 시기가 정말 중요합니다. 최적의 타이밍은 2019년에 발간한 저의 책 『2020 부의 지각변동』(2019)의 에필로그 제목이었던 ‘최악의 공포가 시작되는, 그 순간이 기회다’처럼 2020년 3월과 같이 모두가 공포에 떨고 있을 때 투자를 시작하는 건데요. 2020년에만 투자를 시작했다면 큰 고민이 없을 겁니다. 그런데 그런 기회를 모두 놓치고 지금 투자를 고민하고 있다면 어떻게 시작해야 할까요?
최악의 공포가 시작되는 순간이 가장 투자하기 좋은 시기인 것과 반대로, 모두가 주가가 오를 것이라는 ‘행복한 꿈(euphoria)’에 빠져 있다면 목돈을 일시에 투자하기에는 위험한 시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투자를 시작하지 않으면 나만 벼락 거지가 된 것 같은 소외감을 느낄 수도 있죠. 이렇게 뒤늦게 투자를 시작한다면, 지금 당장은 조정을 받게 되더라도 나중에는 지금보다는 오를 가능성이 큰 우량 자산에 천천히 적립식으로 투자 규모를 늘려나가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당장은 조정이 오더라도 향후 오를 가능성이 높은 대표적인 자산으로는 미국의 S&P500이나 나스닥100 지수를 추종하는 ETF를 꼽을 수 있습니다. 또 인구구조가 탄탄하고 공정한 시장경쟁 속에서 끊임없이 혁신이 이뤄지는 생태계를 갖춘 나라를 찾아내 그 나라 주가 지수 ETF에 투자하거나 4차 산업혁명을 주도할 인터넷, 그린뉴딜(green new deal) 관련 기업이나 업종 ETF를 찾아내 꾸준히 투자하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물론 지금처럼 주식이나 코인 투자로 돈을 벌었다는 사람들이 넘쳐나는 상황에서 점진적으로 투자 비중을 늘려나가는 방식이 조금은 답답하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투자의 세계에서는 모두 주가가 더 오를 것이라는 행복감에 빠져있을 때가 가장 위험한 시기인 만큼 돈을 더 빨리 버는 것보다 애써 모아놓은 소중한 자산을 지켜나가는 것도 성공적인 투자를 위한 중요한 원칙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합니다.
지금 뒤늦게 투자를 고민하시는 분 중에는 2020년 3월의 폭락장을 놓친 것을 아쉬워하시는 분들이 많을 텐데요. 앞으로 주식을 싸게 살 기회는 끊임없이 찾아올 것이기 때문에 이미 지나간 기회는 되돌아볼 필요도 아쉬워할 필요도 없습니다. 사실 2020년 3월과 같은 폭락장은 과거에도 계속 반복되어왔고, 자본주의가 계속되는 한 앞으로도 또다시 찾아올 수밖에 없습니다.
다만 그런 기회는 준비된 사람만이 잡을 수 있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과거에 반복되어왔던 위기의 패턴을 정확히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통상 미국 S&P500 지수를 기준으로 20% 정도 하락하면 약세장이라고 부르는데요. 1929년부터 2020년까지 91년 동안 총 25번의 약세장을 겪었습니다. 평균적으로 3년 7개월여마다 약세장이 찾아왔다는 얘기입니다. 이때 S&P500 지수는 평균 33% 하락했기 때문에 신규투자자에게는 바겐 세일이나 다름없었습니다.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와 코로나19 위기 사이에도 두 차례나 약세장이 찾아왔습니다. 2011년 4월에 시작된 약세장에서는 S&P500 지수가 6달 동안 19.4%나 떨어졌습니다. 당시 우리 코스피는 고점 대비 24%나 하락해 미국보다 더 하락폭이 컸습니다.
두 번째 약세장은 2018년 9월에 찾아왔는데요. 미ㆍ중 무역 전쟁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서 미국의 S&P500 지수가 19.8%나 하락했습니다. 미국 증시는 석 달 동안 빠르게 하락하고 곧바로 회복한 반면 우리 증시는 수출실적까지 악화되면서 1년 반이 넘는 대세 하락기를 거쳤는데요. 당시 코스피가 고점 대비 26%나 추락할 정도로 심각한 부진을 겪었습니다.
그 뒤 2020년 3월에는 모두가 생생하게 기억하는 코로나19 위기로 S&P500 지수가 34%나 추락했는데요. 같은 시기 우리나라 코스피는 35% 하락했습니다. 통상 약세장이 찾아올 때마다 코스피 하락폭이 뉴욕 증시보다 훨씬 컸던 것과 달리 이번 위기에는 미국과 큰 차이가 나지 않았습니다. 미국과 비교해 확진자가 훨씬 적었고 강력한 셧다운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대체로 약세장이 시작되면 우리 코스피가 미국보다 변동성이 크기 때문에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위기가 될 수도 기회가 될 수도 있습니다. 큰 변동성은 위험을 분산해두지 않은 기존 주식 투자자에게는 악몽 같은 일이 될 수도 있지만, 신규투자자에게는 싸게 시장에 진입할 기회를 제공하기 때문입니다.
최근 10년 동안에도 3번이나 약세장이 찾아왔던 것처럼 앞으로 얼마든지 돈을 벌 기회는 끊임없이 찾아올 것입니다. 다만 그 어떤 전문가도 약세장이 찾아오는 시기를 정확히 예측하기는 어려운데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