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의 완성은 모자’라 우기며 모자를 즐겨 씁니다. 음식을 시킬 때는 하나씩 순서대로 나오도록 정중히 요청해 식지 않은 요리를 맛보고 즐기기를 좋아하고요. 대학에서 학생들에게 ‘관점의 학문’인 사회학을 가르치지만 강의 목표를 ‘걷기’로 제시하는 조금은 수상한 교수님이기도 합니다.
숲의 나라, 독일의 뮌셴Muenchen대학에서 7년 반을 유학한 덕에 초록이 주는 힘을 굳게 믿으며, 그에 기대어 근근이 살아가고자 하는 기생형 인간입니다. 오래전부터 많은 곳을 돌아다녔지만 우연히 찾게 된 대관령에서 여름 두 달을 보내며 생활여행의 새로운 챕터를 열게 되면서, 여행이라는 작은 삶을 일상으로 살아가는 여행자로서 보냈던 시간을 되돌아보며 《기꺼이, 이방인》을 엮게 되었습니다.
경북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로 일하고 있으며 학생들 각자가 ‘나만의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데 작은 도움이 될 수 있는 선배로 남기 위해 이 코로나의 시대에도 고군분투 중입니다.
《기꺼이, 이방인》
어느 사회학자의 여름 대관령 일기
초판 1쇄 인쇄 2020년 07월 16일
초판 1쇄 발행 2020년 07월 25일
지은이 천선영
펴낸이 전지운
펴낸곳 책밥상
디자인 Studio Marzan 김성미
등록 제 406-2018-000080호 (2018년 7월 4일)
주소 경기도 파주시 문발로 197 우편번호 10881
전화 031-955-3189 팩스 031-955-3187
이메일 woony500@gmail.com
블로그 https://blog.naver.com/woony500
인스타그램 https://instagram.com/booktable1
인쇄 다다프린팅 제책 에스엠북
©2020 천선영
종이책 ISBN 979-11-971046-0-2 03810
전자책 ISBN 979-11-971046-1-9 05810
이 도서의 국립중앙도서관 출판예정도서목록(CIP)은 서지정보유통지원시스템 홈페이지(http://seoji.nl.go.kr)와 국가자료종합목록 구축시스템(http://kolis-net.nl.go.kr)에서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CIP제어번호 : CIP2020030819)
《기꺼이, 이방인》은 책밥상의 여섯 번째 책입니다.
독자분의 생각을 살찌워 삶의 힘을 기르는 데 꼭 필요한 책이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을 담아 정성스레 차려냈습니다.
읽어 주셔서 고맙습니다. 잘못된 책은 바꾸어 드립니다.
이 책의 전부 또는 일부 내용을 사용하시려면
반드시 사전에 저작권자와 책밥상의 동의를 받으셔야 합니다.
해를 맞춘 것은 아니지만
올해는 내 어머니의 팔순입니다.
혹시 이 책으로 때우고 넘어가도 될까요?
어머니 말씀대로
무거운 책 들고 다니며
돈 안 되는 일만 하고 다니는
딸이 드립니다.
평범함과 비범함을 조화시키는, 마술
시인 김수영은 <아픈 몸이>라는 시에서 읊었다.
“아픈 몸이/ 아프지 않을 때까지 가자/ 나의 발은 절망의 소리/ 저 말馬도 절망의 소리”.
참으로 처절한 삶의 태도가 아닐 수 없다. 그런데 과연 그래야 하나? 아니 그럴 수 있나? 머무름을 거부하고 계속해서 나아가되 아픈 몸을 가만가만 달래주는, 처절한 절규가 아니라 은은한 미소가 배어 있는, 그런 삶은 어떠한가?
천선영의 《기꺼이, 이방인》은 김수영의 비극적 낭만주의가 담고 있는 삶에 대한 엄격함을 수용하면서도 그것을 유쾌함으로 능청스레 뒤바꾼다. 천선영은 이른바 ‘정주형 여행’의 철학을 제시한다. 때로는 뻔뻔하게, 때로는 순진하게 여행길에서 만난 모든 사람에게 도움을 청하고 정보를 구한다. 그 사람들과 함께 여행지에 머물며, 새로운 삶을 발견하고 발명한다.
사회학자인 그녀는 “현장에 집중하자”고 제언하는데, 이때 현장이란 대단하고 예외적인 사건이 발생하는 공간이 아니다. 이 책에서 천선영의 현장은 대관령이다. 그녀가 머무는 대관령의 한켠에서 정중동 흘러가는 삶이다.
그녀는 그 현장에 어떤 방식으로 적응하고 집중하는가? 그녀는 자신의 아픈 몸을 어떤 질주와 절규에 투신하는가? 그녀는 그저 가뿐히 댄스반에 등록한다. 그녀는 아픈 몸이 아프지 않을 때까지 춤을 춘다.
《기꺼이, 이방인》은 아픈 몸을 회복시키는 두어 달 요양의 기록이 아니다. 천선영은 방문한 여행지에서 여행 기억들을 되살리고, 관찰하고 기록하고, 친구들을 사귀고, 작은 모험을 감행한다. 그녀는 아픈 이에게 건네는 빤한 동정심도, 지나친 기대도 거부한다. 아프지 않을 때까지 아픈 몸을 끌고 가는 것이 아니라, 아픈 몸으로 이미 아프지 않은 삶을 구가한다.
여행이 돌아오기 위해 떠나는 것이고 떠나기 위해 돌아오는 것이라면, 이때 여행의 절반은 이미 일상으로 이루어져 있다. 천선영에게 대관령은 토마스 만의 《마의 산》 못지않다. 이 책을 읽는 독자는 일상과 여행을 뒤섞고, 평범함과 비범함을 조화시키는 천선영의 경이롭고 사랑스러운 마술에 빠져들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심보선(시인, 사회학자)
│차례│
추천사 평범함과 비범함을 조화시키는, 마술 _ 심보선(시인)
들어가며 대관령 두 달 살이 시작, 대충 잘 살기로!
1장 다가오는 것들 _ 대관령 두 달 살이를 시작하며
통일을 바라야 할 이유
이틀 만에, 현지인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
나로 사는 것
여행, 살려고 한다
사진 찍기, 탕진의 시간
너와 함께한 날, 모두가 좋았다
나의 역사 깊은, 정주형 여행
꼬리에 꼬리를 무는, 기생형 여행
3무여행, 삶의 격려 당겨 받기
여행 = 공부
2장 기꺼이, 이방인 _ 대관령살이의 행복이란
여름 친구를 아쉬워함
이 풍경을 아름답다 해도 되는가
휠체어로 사막을 여행하다
초록은 나의 힘
길, 헤매니까 더 좋다
계획은 조금만
베를린과 평창군, 역사를 기억하는 방법
모정탑길에서 다시 생각하는 모정
대관령에서 춤바람
사투리 말고, 강원도말! 경상도말! 전라도말!
생래적 프로불편러를 응원하며
날씨에 대한 감사와 두려움
기꺼이, 이방인으로
도시인의 자격
같이 놀아야 제맛, ‘대관령북캉스’
내가 ‘짓는’ 행복
3장 길 위에서 _ 대관령, 여행을 돌아보다
제주 올레 유감
길 위에서, 길에 대해
한번 가보지 뭐
읽고 쓰기, 듣고 말하기 그리고 걷기
여행의 속도
심심하거나 또는 피곤하거나
낯선 사람, 낯선 공간에 말 걸기
우리의 여행은 언제나 옳다
홀로여행 예찬
여성 홀로여행을 위해
여행자의 자격
4장 새로 짓는 길을 향해 _ 대관령 두 달 살이로 다른 시작을
‘별것 없다’는 기준
리얼관찰예능이 싫다
나중은 없다
의미라는 감각을, 새로고침
어디서 살고 싶은가
Space vs. Place
여행 중에 짓는 집
작고 사소함에 대한 변명
그리 별난 사람이 되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으나
어떻게 살까 _ 대관령 사람들
머무르는 여행의 힘
나가며 여행을 마치며
에필로그 내게 다가오는 모든 것에 대한 감사를 담아
대관령 두 달 살이 시작, 대충 잘 살기로!
나는 어쩌다 대관령 두 달 살이를 실행에 옮겼고, 이 글은 일종의 기록입니다. 그런데 본격적인 여행기도 아닌 것이 그렇다고 일기도 아닌 것이 아, 이 글이 여행을 핑계로 쓴, 친구에게 보낸 ‘진줏빛 편지’처럼 읽힐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아니, 미래의 나에게 보낸 편지일지도 모릅니다. ‘지금 여기서 충분히 행복할 것’이라는 작은 삶, 여행의 가르침을 기억하기 위한.
그리고! 나는 좋은 글의 조건 중 하나가 생각을 여는 글,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뭔가를 쓰고 싶게 하는 글이라고 생각합니다. 부디 이 글이 당신 스스로 여행 편지를 남기고 싶은 마음을 들게 했으면 하는 가당치 않은 욕심이 있습니다.
매사에 너무 열심인 제자가 있습니다. 나는 그 친구처럼 열심히 산 적이 있는지, 사실 기억이 잘 안 납니다. 고등학교에 재직 중인데 결혼을 앞두고 얼마나 신경 쓸 일이 많았는지, 얼굴이 반쪽이더군요. 잠깐이었지만 반가운 만남 후 문득 그 친구 생각이 나서 “대충 잘 사시게”라는 문자를 보냈습니다. 어떻게 그리 단박에 자신의 상태를 눈치챘느냐면서 위로가 되었다는 답장이 왔습니다.
어느 때부터인가 누군가에게 하는 말의 대부분은 사실 나 자신에게 하는 말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물론 그 친구가 모든 것을 마음을 다해 하느라 애쓸 것이 눈에 밟혀, 안쓰러워 한 말이긴 하나 그건 누구보다 나 자신에게 하는 말이었을 겁니다.
잘 살고 싶으나 천성이 게으르기도 하고 건강이 무너져 몸도 따라주지 않으니 스트레스가 적지 않고, 대충대충 하자 싶으면서도 그마저 잘 안 됩니다. 문득 떠오른 문장 하나가 ‘대충 잘 살자’였습니다! 그 말을 마음속으로 되뇌는 순간 묘하게 꽤 위로가 되었습니다. 신기하죠? 그래, 그럼 오늘부터는 대충 잘 사는 걸로!
아마 그렇게 마음을 바꿔 먹어서, 아니 그렇게 마음을 바꿔 먹으려고 애쓰고 있어서 그래서 지금 같은 말도 안 되는 ‘모험’도 할 수 있었는지 모릅니다. 그렇습니다. 나는 지금 강원도 대관령에 두 달 살기를 하겠다고 짐 싸들고 ‘피접(요양)’을 왔습니다. 그럼, 대관령 살이 시작해 보겠습니다.
유학 생활도 꽤 오래 했고, 외국에서 한 달씩 살아보기도 했고, 무엇보다 역마살이 있냐고 할 정도로 돌아다니길 좋아하는 나지만, 대관령 두 달 살이를 결정하는 일은 쉽지 않았습니다.
마음으로야 더할 나위 없이 하고 싶은 일이었지만 학교와 집을 두 달 동안 비우는 것이 만만한 일은 아니었습니다. 물론 적지 않은 일들을 온라인으로 처리할 수 있는 세상이나, 그래도 이런저런 일들을 ‘일시 정지’ 시켜야 했습니다. 그리고 이것도 일종의 이사라 신경 쓰이는 일도 꽤 많았습니다. 아침 신문읽기의 즐거움을 포기해야 했고 공동작업, 각종 잡무와 우편물 처리 등은 어찌할 것인지 등도 머리가 아팠습니다.
육체적으로 가장 힘들었던 일은 화분을 옮겨놓는 일이었습니다. 화분 옮기다 몸이 더 고장날 것 같았습니다. 이참에 화분 수를 줄이고 덩치 큰 화분은 정리해야 할 모양입니다. 장거리 운전은 또 어쩌고요. 운전 자체가 서툴기도 하지만 몸이 굳어오는 증상에 중간 중간 계속 쉬어야 해서 남들보다 두 배 정도 걸릴 거라 예상해 7시간 정도를 잡아야 했기에 그것도 맘먹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이동 준비 과정에서 내가 ‘여행자’ 본능을 잊어버리고 꽤 뿌리 깊은 ‘정주자定住者’가 되어버렸다는 것도 알게 되었지요.
그래도 한 가지 믿음이 있었습니다. 가면 후회하지 않을 거라는. 길 떠나 후회한 일은 단 한 번도 없었기에 일종의 경험칙에 의거한 믿음, 같은 것이었습니다. 그저 그 믿음 하나로 드디어 떠나 왔습니다. 오는 길에서조차 내가 뭔 짓을 하고 있나, 가능한 일을 하는 건가 싶던 마음은 도착하는 그 순간 바뀌었습니다.
잘 왔다, 좋다! 분명 다시 오고 싶을 거다!
어딘가 좀 모자라서 날씨에 매우 의존적인 인간인 나는 칠월임에도 유월의 연장인 것 같은 쾌적한 날씨에 그것만으로도 정말 살 것 같습니다. 이제 시작이니 더 지내봐야 하겠지만 이미 다른 곳은 폭염주의보라는데 이곳은 열린 창문 사이로 불어오는 바람이 낮에도 선선하게 느껴지니 축복입니다.
만성 수족냉증과 각종 순환장애 질환에 시달리는 나는 당연히 더위보다 추위가 더 싫지만, 컨디션 조절은 여름이 훨씬 더 어렵습니다. 에어컨을 견딜 수 없는 이상한 사람이라(여러모로 좀 ‘이상한’ 사람이라는 걸, 나도 잘 알긴 압니다.) 대한민국의 여름은 에어컨이 있어도, 없어도 넘기 어렵습니다. 결국 여름마다 아무것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몸만 엄청 축나는 경험이 반복되었습니다. 시원하고 건조한 몽골에라도 다시 가야 하나 고민하던 참에 평창올림픽 조직위원회에서 일했던 후배이자 제자인 친구 조언으로 이곳에 오게 되었네요.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뛰는 광활한 초원사막의 몽골은 몽골대로 좋지만, 우리나라 안에서도 이렇게 쾌적한 여름을 보낼 수 있으니 참 좋습니다. 하지만 이곳도 온난화의 영향에서 자유롭지 않다니 10~20년쯤 후에는 북한 땅에서 여름을 날 수 있기를 빌어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통일을 바라야 할, 지극히 개인적인 이유가 하나 생겼습니다!
대관령에 온 지 이틀 만에 ‘거의 현지인’이 되었습니다. 물론 자칭입니다. 마트 2곳의 위치도 파악했고, 장도 봤고, 주유소 가격도 비교했고, 차 세차장 예약도 했고, 처리 못 해 들고 온 세탁물도 이곳 세탁소에 맡겼습니다. 강원도 출신이신 주인장 부부와 수다를 좀 떨면서 맛있는 중국집 정보도 얻었습니다. 빵을 직접 굽는 브런치 카페는 이미 알고 있고, 전문 베이커리는 아니지만 딸기 시럽 쿠키를 굽는 플라워카페도 알았고, 분위기 좋은 카페들도 가봤거나 가볼 예정이니 당분간 사는 데는 문제없을 겁니다.
내가 처음 만나는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보는 지인들은 원래 알던 분이냐고 묻곤 하는데, 타고난 건지 길러진 건지 모를 나름의 친화력으로 낯선 이곳에서도 잘 지낼 수 있을 것이라는 아무 근거 없는 믿음을 다시 끄집어 내봅니다.
‘모든 현지인은 나의 가이드’라는 것이 여행자로서 내가 가진 믿음입니다. 그래서 모든 현지인은 나를 도와줘야 할 의무가 있고 여행지에서 만나는 그 누군가도 아직(!) 내가 모르는, 내게 좋은 일을 해줄지도 모르는 사람일 뿐이라고 혼자서 우겨보기도 합니다만 물론 과학적 근거는 별로 없습니다. 근거 없는 믿음. 그러나 그간의 경험은 내게 그 믿음을 버릴 이유가 없다고 말해줍니다. 여행지에서 잠깐씩 스쳤던 인연 중에 내가 지금도 가끔 떠올리며 감사해하는 인연이 차고 넘치기 때문입니다.
스페인 마드리드 지하철에서 엄청 두툼한 역사책을 읽으시던 선한 미소의 고운 할머니도 그중 한 분입니다. 사실 그분과는 내가 망설이는 통에 눈길만 주고받았을 뿐이었지만 나는 우리가 ‘소통했다’ 믿고 있고 나의 미래를 떠올릴 때마다 그분 모습을 떠올리게 됩니다.
이번에도 이곳에 도착하자마자 대관령 출신의 ‘인싸’ 한 분을 만나는 행운이 찾아왔습니다. 이곳에서 나서 자라셨고 살아온 궤적으로 봐서는 젊은 시절에는 스칠 인연조차 없었던 분을 지금 이곳 대관령, ‘노기하우스(가수 전영록 씨의 애칭을 딴 이름. 그분 미니 박물관도 있습니다.)’라는 라이브 카페의 대표로 마주쳤네요. 대관령 양떼목장 입구에 있던 카페 ‘바람의언덕’을 꽤 오래 운영하셨던 작곡가 강명중 님. 본인 말로는 ‘언더’라 하시는데 내가 아는 많은 가수분들과 친분이 두터우신 것 같았습니다. 대관령 가요제를 만드는 것이 남은 꿈이라 하시는 재밌고 멋진 분이셨습니다.
참, 오대산(이곳에선 오대산이 동네 산입니다.) 입구에서 주문진을 거쳐 강릉으로 가는 숨은 드라이브 코스도 소개받았어요. 조만간 강릉을 다녀올 생각인데 어쩔 수 없이 가끔 쓰지만 아직 친해지지 못한 내비게이션에 의존하지 않고 다녀올 수 있게 되어 참 좋습니다.
볕이 순해지는 시간. 누군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느낌으로 금방 알 수 있었습니다. 지금 이 글을 쓰는 때쯤이라는 것을. 계절마다 다르겠지만 여름이라면 아마 오후 5시 30분쯤 아닐까요? 전국이 폭염으로 펄펄 끓고 있다는 이때, 풍광 좋은 곳에서 초여름 같은 산들바람을 맞으며 이런 글을 쓰는 호사라니요.
누군가는 1~2주일 여행하고 책 한 권도 쓰던데 그런 일까지는 하고 싶지 않습니다. 대단한 계획을 세워 그것으로 인해 나의 이 평온한 일상, 이 호사스러운 생활이 번거로워질까, 그것이 싫기도 하고 지금 이 순간 이 공간을 온전히 누리고 싶다는 마음이 훨씬 더 큽니다.(앗, 그런데 어쩌다 보니 이 글을 엮고 있네요.) 무엇보다 나는 이 맑고 순한 햇볕과 가벼운 바람, 초록이 전하는 좋은 기운을 알려줄 방법을 모르겠습니다. 그것은 각자 스스로 직접 누려야 하는 것이겠지요. 누구도 대신해줄 수 있는 것이 아닐 겁니다.
어디서든 최소한의 증명사진만을 찍는 나는 사진을 찍지 않는 이유에 대해 나름 개똥철학을 가진 사람이니, 사진을 찍어 올리는 욕구도 순연히 접고 우선은 지금 이곳의 삶을 온전히 사는 것에 집중하고자 합니다.
암튼 겨우 자동차로 몇 시간 이동해왔을 뿐인데 맑고 환한 6월이 연장된 느낌의 시공간. 돈만 있다고 누릴 수 있는 호사가 아니라서 더 귀하게 느껴집니다. 그런데 이런 호사를 내 것으로 누릴 결심을 하게 된 것에는 앞서 말한 건강문제가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나이와 건강. 이 두 가지는 가끔 우리가 평소에는 보지 못했을 뭔가를 선명하게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워낙 썩 건강 체질은 아니었으나 건강을 잘 챙기지 못했고, 결국 건강이 급격히 무너진 후 변한 삶의 태도가 분명 있습니다. 하고 싶은 일은 지금 하기! (해야 하는 일 아니고 하고 싶은 일입니다.)
물론 여행자로서 이미 배웠던 덕목입니다. 작은 삶으로서의 여행. 상대적으로 짧고 시작과 끝이 분명한 여행은 하고 싶은 것을 오늘, 지금 하지 않으면 다시 기회가 없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늘 알려주지만 정주자로 살며 또 잊고 있었네요. 그것을 몸이 다시 일깨워줍니다.
그러고 보면 건강을 잃은 것은 안타까운 일이나 그로 인해 얻은 것이 있습니다. 어느 때인가부터 모종의 깨달음으로 입에 달고 사는 말 중 하나가 “이 세상에 좋기만 한 일도, 나쁘기만 한 일도 없다”입니다. 사회학이 전공이라 그런지 뭔가를 단정지어 말하는 일이 부담스럽지만 이것은 거의 진리라고 생각하는데 역시 그렇습니다!
몸이 고장 나며 많은 것을 포기해야 했지만(무엇보다 일을 절반밖에 할 수 없게 된 상황을 받아들여야만 했습니다.) 잊고 살았던 많은 것들이 다시 눈앞에 불려 나왔습니다. 내가 아주 건강한 체질이었다면 아마도 일흔 정도 돼서 알게 되었을 만한 것들을 말입니다.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요. 그 덕에 지금 이 순간, 한여름에 초여름을 누리고 있으니 말입니다.
세상엔 말 잘하고 글 잘 쓰는 사람들이 차고 넘칩니다. 내 심경을 어쩌면 나 자신보다 훨씬 더 잘 대변해주는 숱한 작가들을 보면서 나는 무엇을 말하고 쓸 수 있는지, 그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무력감에 빠지곤 합니다. 그런 마음을 담아 내가 예전에 썼던 짧은 글을 옮겨 놓습니다.
시인을 질투했습니다.
작가를 연민했습니다.
누구보다 먼저 느끼고 깊이 느끼는
그들을 한없이 부러워했고
너무 많이 아파 끊임없이 울어야 하는 그들을
한없이 안쓰러워했습니다.
그런데
시인은 아니지만, 작가는 못 되었지만
온몸으로 살아내야 하는 이 시대가
아프지 않다면 그것 또한
통각장애를 의심해야 하는 것 아닐까요?
지금 많이 아픈가요?
그렇다면 한편 기뻐할 일입니다.
그 힘겨움과 고통은,
삶에 대한 사랑의 다른 이름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충분히 아파하고 충분히 앓아내셔서
그 힘으로, 그 힘으로
기어이 오고야 마는 새봄을 맞으시길 빕니다.
_ <아파야 맞을 수 있는 봄입니다> 경북대 교수회회보 201203
나는 내가 말을 하고, 글을 쓰는 것에 대해 단 하나의 이유밖에 알지 못합니다. ‘나의 이야기’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게으르고, 또 게으른 내가 말을 하고 글을 쓰고 싶어 하는 유일한 합리적 이유일 겁니다. 아니라면 도대체 무슨 말과 글을 이 세상에 덧붙일 이유가 있을까요?
뻥튀기를 좀 하자면 ‘나’로 살지 않는다면 아마 내가 살아야 할 이유 또한 없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가족과 조직의 구성원으로, 한 나라의 국민으로, 그런 것만으로는 더 이상 자신의 존재 이유를 충분히 발견할 수 없게 된 것이 근대인의 숙명이라면 나 또한 그로부터 자유롭지 못합니다. 하고 싶은 ‘나의 이야기’가 없다면, 나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가 없다면, 나는 아마 학생들 앞에도 설 수 없을 것입니다. 세상에는 유능한 강의자들이 넘쳐나니 말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말을 하고 글을 쓴다는 것은 실존을 넘어 생존의 도구라고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단 하나의 일입니다. 나로 사는 것.
여기에 대해서도 이미 참 좋은 글들이 많지요. 파커 J. 파머가 쓴 책에서 한 가지만 옮겨 놓습니다.
랍비 수시야는 죽기 전에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내세에 내가 듣게 될 질문은 ‘너는 왜 모세처럼 살지 않았는가’가 아니다. ‘너는 왜 수시야로서 살지 않았는가’일 것이다.
_ P.108 《모든 것의 가장자리에서》(글항아리, 2018)
이것이 지금 내가 글을 쓰고 있는, 쓸 수 있는 단 하나의 이유입니다.
소설가 김영하가 《여행의 이유》라는 제목의 산문집을 냈습니다. 물론 책 내용이 그 이유를 한 문장으로 정리하기 위한 것이 아님은 분명하지만 내게도 여행의 이유가 있긴 합니다. 가장 큰 이유는 거창하게 말하자면 살기 위해서입니다.
나는 살기 위해 여행을 합니다. 하루여행, 일상여행, 별말을 다 만들어 내면서 엄습해오는 삶의 무력감과 싸우는 중입니다.
이렇게 말하면 좀 비장해 보이나요? 나를 좀 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거짓말이라고 할 것 같습니다. 삶의 에너지로 넘쳐 보이는 사람이 무력감은 무슨, 하면서 말이죠. 그러나 거의 누구나 보기와 다른 점들이 있는 법. 내가 가지고 있는 삶의 긍정적 기운, 딱 그만큼 내 삶을 힘들게 하는 무력증 같은 것이 내 안에 같이 삽니다. 매일 아침, 경직된 몸을 확인하며 눈을 뜨는 일은 매일 ‘작은 죽음’을 경험하는 일 비슷하게 느껴집니다.
내면이 충분히 단단한 사람이라면 삶의 자리에서 항상심을 유지하며 이런 상황을 건강하게 잘 살아낼 수 있겠지요. 그런데 나는 전형적인 외강내유外剛內柔형 인간이라, 겉보기만 멀쩡해 보이는 쪽에 가깝습니다. 환경 탓을 하기 전에 스스로 환경에 영향을 덜 받는 상태에 놓이도록 노력하는 것이 우선일 것이나, 그것이 쉽지는 않습니다. 잘되지 않는 일을 너무 애써 하다 자괴감에 빠지지 않으려는 노력까지 해야 하니 이중고에 빠질 위험도 상존합니다. 부처님은 앉은 자리에서 성불하셨다지만 나는 일상 중에 늘 침몰하는 기분입니다.
그런데 내가 나에 대해 알아낸 것 하나는 다행히 내게 새로운 것에 대한 끊임없는 호기심이 있고, 걷기를 좋아한다는 겁니다. 여행하는 중에야 나는 겨우 살 만해집니다. 새로운 기운이 나를 붙들어주는 것 같습니다. 나만 그런 것은 아닌가 봅니다. 병원 구내식당에서 우연히 같이 식사를 하게 된 아주머니 한 분이 그러시더군요. 여행만 가면 아프지 않다고.
내가 좋아하는 독일어 문장 중 하나인 ‘만 졸 에트바스 구테스 드라우스 툰Man soll etwas gutes draus tun’, 현재의 상황으로부터 뭔가 좋은 것을 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이 문장이 처한 상황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도, 대단한 일이 아니라도 그저 ‘뭐라도 좋은 것(etwas gutes)’을 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도 좋습니다. 막힌 길 앞에 설 때마다 이 말을 되새깁니다.
‘그래, 뭐라도 하자, 상황은 주어진 것이고, 여기에서 할 수 있는 뭔가, 아주 작은 것이라도, 좋은 일을 하자. 내가 할 수 없는 것 말고, 내가 할 수 있는 뭔가 좋은 일.’
학생들에게도 그런 일을 같이 하자 권합니다. 그 프로젝트의 이름은 ‘티끌’입니다.
나는 흐리거나 눈 비 오는 날에는 어두운 색 옷을 입지 않습니다. 그러면 몸도 마음도 더 가라앉기 때문입니다. 밝은 색 옷을 입으면 기분이 그나마 좀 나아집니다. 옷에 대해 관심이 많은 내가 학교 선생인 것을 알게 되는 분들 중에 사회학과 선생이 아니고 의류학과 선생이 아니냐고 농을 하시는 경우들이 있습니다.(그렇잖아도 의류 관련한 일도 해 보고 싶습니다. 시니어모델이나 패션 인스타그램이나 편집샵 운영 등이 일단 머릿속에 떠오릅니다.)
또 몸과 맘이 축 처지는 날엔 일부러 식사 약속을 잡기도 합니다. 일단 나가야 하니까요. 며칠 시간을 내 어디 여행을 갈 수도 없는 상황에서 몸과 마음이 너무 힘들면, 하루여행이라는 말과 함께 정처 없이 걷거나 사찰이나 성당 구경, 새로운 동네나 카페 구경을 즐겨 합니다. 그 공간과 그곳 사람들 삶을 구경하느라 정신이 팔려 또 하루를 살아낼 수 있으니까요.
그리고 나는 “인생이 다 거기서 거기지, 사는 게 다 그렇지 뭐. 의미는 무슨, 죽지 못해 사는 거지……”라고 말하는 사람들을 만나지 않으려고 무진 애를 씁니다. 그런 사람이 내 영혼까지 갉아먹는 것 같아 힘이 듭니다.
여행, 나는 살려고 합니다. 육체와 정신을 보호하려는 몸부림 같은 겁니다. 여행은 “영혼의 비상식량”이라는 정여울 작가의 말처럼 여행 중인 나는 비상식량을 챙겨 잘 살아보려고 애쓰는 중인 겁니다. 그러니 내게 여행은 생존권 비슷한 겁니다.
남는 것은 사진뿐. 들을 때마다 불편했던 말 중 하나입니다. 사실 나도 한때는 사진을 조금 찍었습니다. 하지만 독일 유학 시작할 때 챙겼던 필름 카메라 24롤을 억지로 채워서 인화했던 것이 마지막 기억입니다. 물론 가끔씩 남들이 찍은 사진을 받기도 했으니 당시 사진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닙니다만, 내가 직접 적극적으로 사진 찍기는 오래전에 그만뒀습니다.
이유 중 하나는 찍은 사진을 정리할 시간도, 찍었던 사진을 다시 볼 시간도 없다는 것이었지요. 풍경사진 같은 경우 내 재주로 그때 그 시간과 느낌을 담을 수 없다는 깨달음도 한몫했습니다. 물론 탄성을 불러일으키는 놀라운 풍경사진이 많지요. 그런 것은 전시장에서 보거나, 엽서를 사거나, 인터넷에서 보면 됩니다.
이런저런 이유로 사진 찍기를 그만둔 이후로 놀랍게도 새로운 느낌이 찾아왔습니다. 내가 특정 시공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