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방과 후, 니시키오리는 시온 고교 3층 복도를 걷고 있었다. 그가 향하는 곳은 「생물자료실」. 일부 학생들이 비밀기지라고 부르는 방이 있는 장소.
평소 같으면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억지로 떼면서 걸었을 복도를, 니시키오리는 너무나도 가벼운 발걸음으로 걷고 있었다. 스쳐 지나가던 3학년 여학생이 그런 니시키오리를 힐끔힐끔 쳐다보았다. 일전에 열린 학생회 선거에서 당선된 유일한 1학년 멤버인 니시키오리의 이름은 학교 전체에 널리 알려져 있었다.
‘후후후, 날 쳐다보고 있군.’
다른 사람들의 눈에 띄는 것을 너무나도 좋아하는 니시키오리는 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참기 위해 혀를 깨물었다. 입 안에 퍼지는 피 맛. 꽤 아팠다. 하지만 그 아픔조차도 달콤하게 느껴졌다.
계단 층계참에서 멈춰 서서는 창밖을 바라보았다.
넓고 높은 하늘. 교정에 심어져 있는 벚나무의 잎이 노란색으로 변해가며, 가을이 깊어져가고 있음을 알려주고 있는 계절—.
니시키오리는 주위를 둘러보며 쳐다보는 사람이 없다는 사실을 확인한 후, 층계참 바로 옆에 있는 「생물자료실」 안으로 들어갔다. 평소 같으면 이 문을 연 순간부터 느껴지는 보이지 않는 압박감 때문에 식은땀을 흘렸을 테지만, 오늘은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나 왔어.”
니시키오리는 생물자료실 안쪽에 있는 비밀기지의 문을 열었다. 주의해서 보지 않으면 못보고 지나칠 수도 있는 그 문을 열어보니, 먼저 온 사람이 있었다. 책상을 모아서 만든 테이블 앞에 앉아 있는 그 사람은 눈을 반짝이면서 패션잡지를 읽고 있었다.
“와아, 니시뽕이다!”
여자애 같이 생긴 그 인물은 니시키오리를 보더니 환성을 질렀다.
그 사람은 바로 클래스메이트인 유게 미치루였다. 카구야의 네 번째 동료. 코드네임은 「아이돌 마스터」.
니시키오리는 “하아.”하고 한숨을 내쉰 후, 유게와 약간 떨어진 곳에 있는 접이식 의자에 앉았다.
“부우, 방금 그 한숨은 뭐야?!”
유게는 입술을 삐죽 내밀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자 교복 블라우스에 달려 있는 프릴이 흔들렸다. 유게는 자신의 트레이드마크인 개조 교복을 입고 있었다.
“왜 나를 보자마자 한숨을 내쉬는 거냐구~.”
“아니, 별것 아냐. 너를 본 순간, 내 몸 안이 정체모를 권태감으로 가득 차더니 한숨이 뱃속 깊은 곳에서 끓어올라오더라고.”
“으으으. 권태감과 한숨이라니~.”
유게는 니시키오리에게 다가왔다. 니시키오리는 고개를 돌렸다.
“저기, 니시뽕.”
유게는 니시키오리를 올려다보며 간드러지는 목소리로 말했다.
“…….”
“혹시 니시뽕, 마음속이 『응어어리』로 가득 차 있는 거야?”
“『어』가 하나 많잖아.”
“그래, 나는 일전의 선거 때 니시뽕의 라이벌이었어. 게다가 전학 온지 얼마 안 된 신참인데도 불구하고 마지막까지 니시뽕을 괴롭혔지.”
“혹시 자랑하는 거야?”
“하지만 그건 전부 지나간 일이야. 그런 건 전부 화장실 물과 함께 흘려보내고 미래지향적인 관계를 만들어 나가자구. 아, 연인 사이가 되는 건 어떨까? 꺄아~, 나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
“부———! 왜 내 말을 전부 무시하는 거야?!”
유게는 볼을 부풀리면서 니시키오리의 얼굴을 끌어안았다.
“그만——해! 더워! 괴로워!”
“머리가 내 가슴에 닿아서 가슴이 두근거린다고 말할 때까지 안 놓아줄 거야!”
“마,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 생물학적 견지에서 봤을 때, 너에게 가슴이 있을 리가 없잖아!”
“있어! 가슴 패드를 장착했단 말이야! C컵!”
“가슴에 키높이 깔창이라도 깔았냐?!”
니시키오리는 겨우겨우 유게의 품에서 탈출했다.
“저기 말이야…….”
니시키오리는 도망치듯 테이블 가장자리 쪽으로 이동하더니, 어이없다는 눈으로 유게를 바라보았다.
“그래, 네 말이 맞아. 나는 마음속에 응어리를 가지고 있어. 그래, 가지고 있고말고.”
“전에도 말했지만 나를 부를 때는 밋치라고 불러줘.”
“……. 하지만 이 응어리는 선거 때 너와 싸웠기 때문에 생긴 게 아냐. 그러니 착각하지 말라고.”
“뭐?! 정말?!”
유게는 눈을 크게 뜨면서 말했다.
“그, 그, 그, 그럼, 왜 그런 거야? 그래, 이 교복이 문제구나. 이 개조 교복이 마음에 안 드는 거지? 교복에 달린 프릴을 볼 때마다 짜증이 나는 거지? 니시뽕은 하늘하늘 박멸 위원회의 회장이니까 말이야.”
“아니, 나는 그런 위원회의 회장이 아냐. 그리고 그런 위원회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그럼 뭔데? 왜 응어리를 가지고 있는 거야?”
“진짜로 몰라서 묻는 거야?”
“응.”
“그럼 안 말해줄래.”
니시키오리는 고개를 휙 돌렸다.
“그 태도는 뭐야?! 좋아, 안 가르쳐주면 치마를 들어 올릴 거야.”
“……그런 짓을 왜 하는 건데?”
“내가 입고 있는 승부 팬티를 보여줘서 니시키오리 군이 묘한 기분을 느끼게 만들 거라구.”
“흐음, 괜히 물어봤군.”
“그딴 소리를 계속하면 진짜로 작전을 실행에 올릴 거야. 니시키오리 군의 기분을 묘하게 만들 거라구!”
유게는 치마에 달린 프릴을 손가락으로 잡더니, 천천히 치마를 들어올리기 시작했다.
“그만해! 이미 묘한 기분이 들고 있단 말이다!”
“그럼 응어리를 가지고 있는 이유를 말해줘.”
“좋아, 말해줄게. 말해줄 테니까 일단 치마에서 손부터 떼.”
니시키오리는 손가락으로 관자놀이를 누르면서 의자에 앉았다. 그리고 유게를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원인은 네가 내 어린 시절의 추억을 짓밟았기 때문이야! 이상!!”
“너무해! ……응? 내가 그런 짓을 했어?”
“했다고! 자세한 이야기는 하지 않겠지만, 아무튼 너는 내 퓨어 하트를 산산조각 냈어!”
“차암, 날 부를 때는 밋치라고 부르라니까.”
“절대 그렇게 안 불러.”
니시키오리는 팔짱을 끼면서 고개를 돌렸다.
“유치원 때부터 계속 속았다고 생각하니 울화가 치밀어서 죽겠단 말이다.”
게다가 첫사랑 상대에게, 하고 작은 목소리로 덧붙여 말했다.
“게다가, 뭐??”
유게는 귀에 손을 대면서 되물었다.
“아, 아무것도 아냐!”
니시키오리는 발그레해진 얼굴을 옆으로 돌리면서 외쳤다.
“아무튼, 머릿속이 깔끔하게 정리될 때까지는 이 응어리가 사라지지 않을 거야. 그리고 아마 영원토록 내 머릿속은 정리되지 않겠지. 자, 이걸로 이야기는 끝.”
“뭐야, 너무해~.”
유게가 니시키오리의 머리를 끌어안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난 순간, 비밀기지의 문이 열렸다.
“어라, 두 사람…….”
“……빨리 왔군요.”
문 앞에는 리쿠도와 요네쿠라가 서 있었다. 두 사람은 가을 느낌이 물씬 풍기는 짙은 색 리본으로 머리카락을 묶고 있었다. 두 사람 다 잘 어울렸다.
“로쿠짱, 아이뿅! 니시뽕이 정말 심한 소리를 했어!”
유게는 울먹거리면서 두 사람을 향해 달려갔다.
“밋치, 왜 그래~?”
“니시뽕, 내가 남자라서, 영원히, 미래영겁, 친구가 될 수 없대. 윤회전생, 다시 태어나도 서로를 이해할 수 없다더라구. 불새에 나오는 사루타 박사님도 저 말을 들으면 깜짝 놀랄 거야.”
“우와, 너무해.”
“니시키오리 군, 말이 너무 심한 것 아닌가요?”
두 사람은 비난 섞인 눈으로 니시키오리를 바라보았다.
“왜 두 사람 다 그런 눈으로 나를 쳐다보는 거야? 내가 그렇게 심한 소리를 했어?”
니시키오리는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키면서 납득이 되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다.
“성별이라는 기성 개념의 굴레에서 벗어나라구! 밋치는 이렇게 귀엽잖아.”
리쿠도는 유게의 어깨에 손을 얹으면서 말했다.
“아니, 네가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전혀 모르겠거든? 그리고 성별이라는 개념이 얼마나 중요한 건데!”
“왜?”
“아니, 그게…… 겉모습은 완벽한 여자지만 그래도 속은 남자잖아? 『녹스의 십계』도 깜짝 놀랄 정도의 서술 트릭이라고!”
“겉모습만 완벽한 여자라는 게 문제라도 되는 거야?”
리쿠도는 한 걸음도 물러서지 않았다.
“좋아, 예를 들자면 말이야. 만약 리쿠도가 나를 좋아하게…… 어이, 너, 왜 갑자기 얼굴을 붉히는 거야? 이건 어디까지나 가정이라고.”
니시키오리는 양손으로 볼을 가린 채 부끄러워하는 리쿠도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만약에, 만약에, 만약에, 리쿠도가 나를 좋아하게 되었고, 실제로 러브러브한 관계가 되었다고 치자. 그리고 너무나도 중요한 순간에 내가 여자라는 사실을 알면 기분이 어떨 것 같아?”
“너무나도 중요한 순간이라는 게 뭐야?”
“그, 그게, 그러니까……. 뭐랄까, 있잖아? 즈, 즉, 하나가 될 때 말이야.”
니시키오리는 얼굴을 새빨갛게 붉히면서 말했다.
“어머, 들으셨어요? 하나가 될 때래요.”
“정말 음란하네요.”
리쿠도와 요네쿠라는 입가에 손을 댄 채, 니시키오리만큼 발갛게 달아오른 얼굴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괜찮아!”
유게는 고개를 숙이면서 조용히 말했다.
“뭐야. 뭐가 괜찮다는 거야?”
니시키오리는 미간을 찌푸렸다.
“설령 생물학적으로 완벽한 남자끼리라고 해도, 사랑만 있으면 하나가 될 수 있어!”
유게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면서 기합이 넘치는 목소리로 말했다.
“…….”
“…….”
“…….”
유게 외의 세 사람은 입을 동그랗게 벌린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리고 비밀기지 안에서는 정적만이 흘렀다.
한동안 그렇게 얼어붙어 있은 후.
“자, 그건 일단 제쳐두고……. 『신세계 건설회의』를 시작하자.”
니시키오리는 엄숙한 목소리로 선언했다. 일어서 있던 유게도 다시 의자에 앉았다.
“처음으로 각하가 아니라 내가 회의를 소집했어. 설마 이런 날이 찾아올 줄이야…….”
고뇌에 찬 목소리로 그렇게 말하는 니시키오리.
“회의 목적은 모두가 다 알고 있듯이, 각하에 관한 거야.”
그 말을 들은 다른 멤버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각하가 학교에 안 나오고 있어.”
“안 나온 지 2주 정도 되었지?”
“정확하게는 보름이 지났어요.”
리쿠도와 요네쿠라가 말했다.
“이틀, 사흘 정도 무단결석하는 일은 지금까지도 있었지만 이렇게 오랫동안 이러는 건 처음이야.”
“하지만 그렇게 이상해할 일은 아닐 것 같은데 말이야. 카구양, 뭔가 새로운 작전이라도 세우느라 바쁜 것 아닐까?”
유게는 어깨를 으쓱거리면서 말했다.
“나도 그 가능성을 생각했어. 하지만 그렇다면 십중팔구 우리에게 연락을 취했을 거야.”
“리쿠도도 그렇게 생각해.”
리쿠도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선생님은 따로 알고 계신 게 없던가요?”
“무단결석 2, 3일째쯤에 각하가 선생님에게 전화를 했대. 몸 상태가 나빠 한동안 학교에 가지 못한다고 그랬다더라.”
“담임이라는 사람이 그 정도로 납득해버리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데 말이죠.”
“카구야니까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하며 넘어가는 눈치더라고.”
“역시 각하.”
리쿠도는 감탄한 표정을 지으면서 말했다.
“명색이 우리는 각하의 수하잖아. 뭐, 실제로 그렇지는 않지만, 그래도 우리 학교 학생들 중 가장 각하와 친한 학생들이야. 그러니 뭔가 액션을 취하는 편이 좋지 않을까, 하고 생각해서 이렇게 회의를 소집한 거야.”
니시키오리는 멤버 전원의 얼굴을 둘러보면서 말했다.
“포인트는 카구양이 집에서 뭘 하고 있는가, 겠네. 아니, 집에 있는지 없는지조차 확실하지 않잖아.”
유게는 팔짱을 끼면서 말했다.
“카구야 씨가 신세계 건설 활동과는 전혀 관계없는 일로 학교를 쉴 리가 없다고 저는 생각해요.”
“그럼 왜 우리에게 연락을 하지 않는 걸까?”
“글쎄요, 거기까진…….”
요네쿠라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실은 저, 어제 각하에게 문자 메시지를 보내봤어요.”
“아이뿅도? 실은 리쿠도도 지난주에 보냈어.”
“하지만 답장은…….”
“없었어.”
“역시 그랬군. 으음…….”
니시키오리는 신음을 흘렸다. 실은 니시키오리도 문자 메시지를 보내봤지만, 역시 답장은 오지 않았다.
“어쩌면 진짜로 병에 걸렸을지도 몰라요.”
요네쿠라가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으면서 말했다.
“그러고 보니 전에 감기에 걸려 학교를 쉰 적이 있지 않아?”
리쿠도도 가볍게 손뼉을 치면서 말했다.
“하지만 2주 넘게 자택에게 요양을 해야 하는 병이 뭘까?”
“으음, 마음의 병?”
“각하는 항상 마음의 병을 앓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아니, 그런 마음의 병이 아니라 『상사병』 같은 거 말이야.”
“사, 상사병?! ――콜록, 콜록!”
니시키오리는 갑자기 기침을 해대기 시작했다.
“왜 갑자기 니시키오리 군이 기침을 해대는 거야?”
리쿠도는 미심쩍은 눈으로 니시키오리를 바라보았다.
“호, 혹시 위기감을 느낀 거야? 니시뽕, 카구양이 상사병에 걸렸을지도 모른다는 말을 듣고 위기감을 느낀 거 맞지?!”
유게가 눈을 동그랗게 뜨면서 말했다.
“아냐. 상사병에 걸린 각하를 상상할 수 없었던 것뿐이야.”
니시키오리는 볼을 살짝 붉히면서 손을 내저었다. 실은 약간의 초조함이 머릿속 한구석을 채우고 지나갔다.
“역시 직접 각하에게 학교에 오지 않는 이유를 물어볼 수밖에 없을 것 같군요.”
“좋아~. 그럼 다 같이 각하네 집에 가자.”
손을 들면서 그렇게 말하는 리쿠도. 니시키오리는 약간 인상을 찌푸렸다.
“저기, 회의를 주최한 내가 이런 말을 하는 것도 좀 그렇지만 말이야. 실은 나,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는데……. 일단 좀 내버려두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우와, 최악! 니시키오리 군은 각하가 걱정되지 않는 거야?”
“그야 걱정 되지. 하지만 카구야는 분명 괜찮을 거야. 아마 잘 먹고 잘 살고 있을 거라고. 오히려 우리가 그 녀석의 집에 갔다가 민폐만 끼칠 수도 있지 않을까?”
“말은 그렇게 하면서…… 각하가 없으니 조용히 지낼 수 있어서 좋군,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거 아냐?”
리쿠도는 도끼눈으로 니시키오리를 쳐다보았다.
“윽.”
“내 말 맞지? 아~, 니시키오리 군은 정말 너무하다니깐.”
“아니, 조용히 지내는 게 뭐가 어때서 그래. 일주일에 두 번씩 꼬박꼬박 열리던 회의도 없고, 이상한 작전을 고안하느라 머리 쓸 필요도 없다고.”
니시키오리는 입술을 삐죽 내밀면서 말했다.
“그건 그래요. 각하가 없는 지난 2주 동안, 저희는 한 번도 이곳에 모이지 않았어요.”
요네쿠라는 고개를 푹 숙이면서 말했다.
“맞아~. 리쿠도도 한 번도 비밀기지에 오지 않았어.”
“역시 우리의 구심점은 카구양인 것 같아.”
“이대로 있다간 조직 자체가 붕괴되는 거 아냐?”
그녀들은 그렇게 말하면서 일제히 니시키오리를 바라보았다.
“뭐, 뭐야? 왜 그런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건데?”
“각하가 없으니 조용히 지낼 수 있어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니시키오리 군 한 명뿐이기 때문이야.”
“아니, 조용히 지낼 수 있어서 좋다고는 말하지 않았어! 각하가 없어서 조용하네, 하고 생각했을 뿐이라고.”
“니시뽕도 실은 카구양이 없어서 쓸쓸하지?”
유게가 도발적인 눈으로 니시키오리를 바라보며 말했다.
“나, 나는 딱히 쓸쓸하지 않아.”
“하지만 카구야 씨가 걱정되기는 하죠?”
요네쿠라의 시선을 받은 니시키오리는 고개를 휙 돌렸다.
“뭐…… 클래스메이트로서, 진짜로 병에 걸린 건지 아닌지 정도는 확인해보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긴 해.”
니시키오리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다.
“와아, 니시키오리 군이 또 솔직하지 못한 소리를 했어!”
“정말 솔직하지 못하다니까요.”
“맞아, 맞아. 니시뽕은 솔직함이 부족하다구. 솔직해져서 내 사랑을 받아줘.”
유게가 또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했다.
“으음.”
리쿠도는 살짝 손을 들었다.
“우선은 다 같이 각하 병문안을 가보는 것이 좋을 것 같은데,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죠?”
“이의 없음~.”
“나도 찬성~.”
리쿠도와 유게가 손을 들었다. 니시키오리도 한숨을 내쉬며 손을 들었다.
☆
“오래간만이군.”
니시키오리는 주택가 안에 있는 어느 집을 바라보면서 중얼거렸다. 지은 지 한 20년은 되어 보이는 평범한 집이다. 『신세계 건설』을 목표로 하고 있는 여자애라면 좀 더 특이한 곳에서 살 것 같은데 말이야, 하고 니시키오리 군은 속으로 생각했다.
“여기가 카구양의 집이구나.”
“의외로 평범하네.”
다들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니시키오리는 『카구야』라고 적힌 문패 앞에 서서 초인종을 눌렀다. 그러자 인터폰에서 딩동~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
하지만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사람의 인기척도 느껴지지 않았다.
“아무도 없는 걸까?”
리쿠도는 2층 창문을 쳐다보았다.
“자고 있는 걸까요? 그렇지 않으면 어디 간 걸까요?”
“글쎄. 그러고 보니 전에 병문안을 왔을 때도 한참 동안 반응이 없었어.”
니시키오리는 머리카락을 긁적이면서 한 번 더 초인종을 눌렀다. 하지만 딩동~하는 소리만 들릴 뿐, 아무도 나오지 않았다.
“이상하네.”
니시키오리가 어깨를 으쓱거린 순간, 호주머니에 넣어둔 핸드폰이 진동했다.
“아, 각하한테서 온 문자네.”
일행 모두가 니시키오리의 핸드폰 화면을 쳐다보았다. 화면에는 『문을 통과한 후, 집 뒤편으로 와라』라고 적혀 있었다.
“이게 무슨 소리지?”
니시키오리는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2층에 있는 카구야 방의 창문을 쳐다보았다. 바로 그 때, 창문에 처져 있는 커튼이 희미하게 흔들렸다. 아무래도 카구야는 자기 방에 있는 것 같았다. 그런데 왜 나오지 않고 우리에게 집 뒤편으로 오라고 하는 걸까.
“뭐, 일단 시키는 대로 해보자.”
문을 열고 집안으로 들어간 그들은 집 뒤편으로 갔다. 그곳에는 자그마한 정원이 있었다. 주위를 가득 채우고 있는 삼백초 향기. 햇볕이 잘 들지 않는지 공기가 탁한 느낌이 들었다.
네 사람은 집 뒤편에 있는 붉은색 문 앞에 섰다.
“여기로 오라는 거 맞지?”
니시키오리가 뒤를 돌아보면서 그렇게 말한 순간, 삐걱거리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어?”
니시키오리의 눈이 화등잔만 해졌다.
문을 연 사람은 카구야였다. 그것도 이상하기 그지없는 복장을 한 카구야였다. 어디서 손에 넣은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일본식 갑옷을 입고 있는 그녀는 공사현장에서 쓰는 노란색 헬멧을 투구 대신 쓰고 있었다. 이때까지 별의별 복장을 한 카구야를 보았지만 이렇게 강렬한 복장을 한 그녀는 처음이었다.
문틈 사이로 얼굴을 내민 카구야는 주변을 둘러본 후, 불안한 표정으로 니시키오리를 바라보았다. 그런 그녀의 얼굴은 새파랗게 질려 있었다.
“오…… 오래간만이구나.”
“각하, 집에 틀어박혀서 전국시대 코스프레 놀이를 하고 있는 거야?”
“아니다.”
카구야는 진지한 눈으로 말했다.
카구야의 방은 여전히 난장판이었다.
만화책과 플립 카드가 바닥을 가득 채우고 있는 탓에, 발 디딜 곳이라고는 침대와 책상 주변밖에 없었다. 한낮인데도 굳게 처져 있는 커튼. 형광등의 탁한 불빛만이 방안을 비추고 있었다.
바닥에 떨어져 있는 만화책을 정리하면서 방안으로 들어간 카구야는 책상 앞에 있는 의자에 앉았다. 갑옷에서 들려오는 덜그럭거리는 소리가 니시키오리에게 부조리함을 느끼게 만들었다.
“자, 앉아라.”
“으음, 어디에?”
결국 니시키오리는 만화책을 한쪽에 쌓아 공간을 만든 후 바닥에 앉았고, 여자애들은 침대 위에 앉았다.
그 사이에도 카구야는 안절부절못했다. 그녀는 불안 섞인 눈빛으로 주위를 계속 둘러보고 있었다. 마치 무언가를 무서워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언제나 당당하던 그녀와는 전혀 딴판이었다.
“……저기 말이야.”
니시키오리는 미심쩍은 눈으로 카구야를 바라보았다.
“음, 왜 그러느냐.”
카구야는 위엄을 유지하려는 듯이 팔짱을 꼈다. 하지만 낯빛이 좋지 않아서인지 그다지 위엄 있어 보이지는 않았다. 오히려 신경질적인 여자애처럼 보였다.
“실은 오늘, 긴급 『신세계 건설회의』를 열었어.”
“호오.”
“의제는 각하가 왜 학교에 나오지 않는가, 였어.”
“그랬군.”
“네가 지금 하고 있는 옷차림을 보아하니 병에 걸린 건 아닌 것 같네.”
“심신(心身) 모두 건강하다.”
“건강하다고?”
니시키오리는 카구야를 다시 바라보았다. 낯빛은 그다지 좋지 않지만, 그 외에는 괜찮아 보였다. 살이 빠진 것 같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상사병에 걸린 것 같지도 않았다.
“그럼 왜 학교에 안 오는 거죠? 무슨 이유라도 있는 건가요?”
요네쿠라는 진지한 얼굴로 카구야를 바라보았다.
“학교에 안 간다는 표현은 적절치 않을 것 같군. 나는 이 2주 동안 집에서 한 발짝도 나가지 않았다. 아니, 나갈 수가 없었다.”
“뭐?”
그 말을 들은 모든 이들이 동시에 입을 벌렸다.
“그럼 계속 집에 틀어박혀 있었던 거야?”
“카구양, 설마 은둔형 외톨이가 된 거야?”
유게가 어이없다는 목소리로 말했다.
“나도 좋아서 집에 틀어박혀 있었던 것은 아니다. 능구렁이를 학생회에 잠입시킨 이 중요한 시기에 왕인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 때문에 가슴이 찢어지는 것만 같았지. 그뿐만 아니라 너희에게 폐를 끼치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다. 하지만 나는 집밖으로 나갈 수 없다. 나갈 수 없단 말이다!”
카구야는 필사적인 표정으로 말했다.
“이유가 뭔데?”
니시키오리는 미간을 찌푸리면서 말했다.
“실은…….”
카구야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목숨을 위협받고 있다.”
“뭐?”
니시키오리는 또 입을 동그랗게 벌렸다. 니시키오리는 몇 번이나 카구야의 말도 안 되는 소리에 휘둘렸기에 웬만한 말에는 놀라지 않을 자신이 있었지만, 이번에는 귀를 의심하고 말았다.
“목숨을 위협받고 있다니…… 대체 누구에게?”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오기 시작한 니시키오리는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카구야를 바라보았다.
“그건 알 수 없다. 하지만 저항세력이 있는 것만큼은 확실하다.”
“저항세력…….”
확실히 평소 행실이 나쁜 카구야에게는 적이 많지만, 목숨을 노릴 만큼 그녀를 원망하는 사람이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태고 때부터 이어져 내려온 패왕의 역사는 곧 암살의 역사이기도 하다.”
카구야는 진지한 표정을 지으면서 말했다.
“그렇다――. 많은 패왕들이 자신의 뜻을 이루지 못한 채 암살당했다. 카이사르, 장비, 노부나가……. 나도 패왕을 목표로 하고 있는 이상, 암살의 위험이 언제나 도사리고 있다는 사실 정도는 이해하고 있다.”
“패왕 중에 암살당한 사람이 많다는 말에는 동의하지만, 각하를 암살하려는 녀석이 있을 것 같지는 않은데?”
“이 몸이 얼마나 위험한 존재인지 알게 된 누군가가 나를 미리 제거하려 하는 거겠지.”
카구야는 자조 섞인 미소를 지었다.
“아니면, 내가 패왕으로서 군림하는 미래 세계에 존재하는 저항세력이 과거로 암살자를 보낸 것일지도 모른다. 나를 죽여 미래를 바꾸기 위해서 말이다.”
“혹시 그 암살자, T-뭐시기 하는 로봇 아냐?”
니시키오리는 어깨를 으쓱거리면서 말했다.
“그런데 카구양은 암살자가 자신을 노리고 있다는 걸 어떻게 안 거야?”
유게는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물었다.
“으음, 2주 정도 전에 나는 암살자의 존재를 눈치 챘다.”
카구야는 먼 곳을 바라보듯 눈을 가늘게 뜨면서 말했다.
“2주 전에 무슨 일이 있었는데?”
“운동장 옆을 걷고 있는데, 축구공이 날아와서 내 머리를 강타했다.”
카구야는 머리에 무언가가 부딪히는 시늉을 했다.
“운이 나빴네.”
그 축구공을 찬 녀석이 말이야, 하고 니시키오리는 마음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러고 보니 2주 전에 하교하다 운동장 쪽에서 들려오는 소란스러운 소리를 들었어. 혹시 그거, 각하 때문이었던 거야?”
“공을 찬 1학년 남학생은 내 얼굴을 보자마자 도망쳤다. 그 녀석에게는 언젠가 자신이 저지른 짓에 대한 대가를 치르게 해줄 생각이다. 아무튼, 나는 그 때 위화감 같은 것을 느꼈다. 누군가의 의지, 라고 말하는 편이 옳을까? 단순한 사고가 아니라 누군가가 꾸민 함정이라는 느낌을 받은 것이다.”
양손을 말아 쥔 카구야는 부르르 떨었다.
“저, 저기…….”
니시키오리는 관자놀이를 손가락으로 문지르면서 카구야를 바라보았다.
“설마 겨우 축구공에 맞은 것 가지고 누군가가 각하의 목숨을 노린다고 생각한 거야?”
“축구공만이 아니다!”
카구야는 큰 소리로 그렇게 외치면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같은 날, 나는 집으로 돌아가던 도중에 수도관 공사 중인 맨홀에 빠졌다! 그 때, 허리를 삐끗하고 말았지. 스테이터스 메뉴의 내 HP가 노란색이 될 정도의 대미지였다.”
“학교 바로 옆에서 하고 있는 공사 말이지? 나도 매일 그 쪽으로 지나다니지만 한 번도 떨어질 뻔한 적이 없어. 각하가 부주의했던 거 아냐?”
“아니다! 그 날, 내가 그 길을 지나다닐 때에 맞춰 누군가가 『통행금지』라고 적혀 있는 간판을 치웠단 말이다.”
“흐음…….”
통행금지 간판이 없다고 해도 공사현장에 들어가지 않는 것이 정상일 것 같은데, 하고 니시키오리는 생각했지만 말하지는 않았다.
“축구공에 맨홀이라. 그래서 암살 위험을 받고 있다고 생각한 거구나…….”
니시키오리는 그렇게 말하면서 여자애들을 쳐다보았다. 그녀들은 아무 말 없이 어이없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아니, 그것만이 아니다.”
카구야는 노려보는 듯한 시선으로 니시키오리를 바라보면서 말했다.
“이번에는 뭔데?”
“맨홀에서 겨우겨우 기어 나온 후, 걸음을 옮기고 있는 나를 향해 갑자기――!”
카구야는 양손을 펼쳤다.
“크레인이…….”
“크레인이?”
“그렇다. 나를 향해 크레인이 쓰러진 것이다. 큭, 떠올리기조차 싫군.”
카구야는 분노에 떨면서 말했다.
“아하, 공원 옆에서 일어난 사고 말이구나.”
“빌딩 해체용 크레인이 쓰러진 사고 말이군요.”
리쿠도와 요네쿠라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 보니 나도 그 때 그 부근에 있었어. 쓰러질 때 엄청 큰 소리가 났지.”
다행히 출입이 금지된 공원을 향해 쓰러졌기 때문에 사상자는 나오지 않았다.
“그 크레인은 내 바로 옆에 쓰러졌다. 1미터 정도만 빗겨나서 쓰러졌다면 나는 즉사했을 것이다.”
“정말 위험했네. 하지만 다음 날 아침 신문을 보니 쓰러짐 방지 장치를 장착하는 걸 깜빡했을 뿐이라던데?”
“아마추어들은 신문의 내용을 그대로 믿겠지. 하지만 나는 알 수 있다. 암살자는 크레인 사고로 위장해서 나를 죽이려 한 것이다.”
카구야는 진지한 눈으로 다른 이들을 바라보았다.
“으음…….”
어찌된 일이 대충 알 것 같았다. 카구야는 연속적으로 자신에게 일어난 사고가 전부 자신의 목숨을 노리는 암살자의 짓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학교에 오지 않는 것이리라.
‘카구야답다면 답지만…….’
니시키오리는 한숨을 내쉬었다.
“저기, 카구야……. 그건 아마 암살자가 아닐 거야.”
“뭐? 그럼 무엇이냐.”
“단순한 우연이나 불운이 겹친 걸 거야.”
“불운이라고?”
카구야는 화난 표정을 지었다.
“너는 나에게 일어난 사고들을 전부 불운으로 취급하려는 것이냐? 그러고도 네가 과학자냐?!”
“아니, 난 과학자 아니거든? 그리고 평범한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할 거야. 나 오늘 운이 없었군, 하지만 내일은 운이 좋을지도 몰라, 하고 말이야. 암살자가 자신을 노리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마 피해망상증 환자뿐일걸?”
“흥! 너는 왕이 아니니까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다.”
카구야는 입술을 오므렸다.
“왕은 직업상 항상 목숨을 위협받는다.”
“왕이 직업이냐?”
“나 같은 처지의 인간은 그런 일들이 연속해서 일어날 때, 우선 암살 가능성부터 생각하지.”
“그래?”
니시키오리는 얼굴을 살짝 찡그리면서 머리카락을 긁적였다. 아무래도 카구야는 진짜로 누군가가 자신의 목숨을 노리고 있는 거라 생각하는 것 같았다.
(요네쿠라, 바통 터치.)
니시키오리가 도움을 요청하는 듯한 눈으로 쳐다보자, 요네쿠라는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그랬군요. 각하가 집에서 나오지 않는 이유는 알겠어요.”
요네쿠라는 학생의 이야기를 듣는 교사처럼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 2주 동안, 각하는 암살 위험을 받고 있었을지도 몰라요. 그건 부정하지 않을게요. 하지만 최근에는 어떻죠? 집에 틀어박혀 있는 동안에도 암살자의 습격을 받았나요?”
“받지 않았다. 내가 철저하게 대비를 한 덕분에, 적들도 발을 동동 구르고 있는 거겠지.”
“하지만 각하를 노리는 암살자가 진짜로 있다고 가정한다면, 2주 동안이나 아무 짓도 하지 않고 있었을까요? 어쩌면 상황이 바뀌어 암살할 필요가 없어진 게 아닐까요? 아니면 2주 전의 그건 단순한 협박이었다던가요.”
“으음, 신세계의 왕이 될 사람인 나는 그렇게 낙관적으로 생각할 수가 없다.”
카구야는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그렇군요……. 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