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어느 곳에도 나와 똑같은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
나와 비슷한 부분을 가진 사람은 있어도
완전히 똑같은 사람은 없다.
따라서 나로부터 나오는 모든 것은 나 자신이 선택한 것이기에
진정으로 나의 것이다.
나에 관한 모든 것은 나의 소유이다.
내 몸과 내 몸이 하는 모든 행동
내 정신과 그 정신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생각과 사상
내 눈과 내 눈이 보는 형상들
분노, 기쁨, 절망, 사랑, 실망, 환희 등 내가 느끼는 감정들
내 입에서 나오는 정중하고 달콤하고 거칠고 옳고 틀린 모든 말들
크거나 나지막한 내 목소리
나 자신이나 다른 사람에게 내가 하는 모든 행동
나의 환상, 나의 꿈, 나의 희망, 나의 두려움은 나의 것
내가 이룬 모든 승리와 성공, 모든 실패와 실수도 나의 것
나의 모든 것이 나의 것이기 때문에
나는 나 자신을 잘 알 수 있다.
그럼으로써 나를 사랑할 수 있고
나의 모든 부분과 친해질 수 있다.
그럼으로써 나의 모든 것이 내 최고의 관심사에 헌신하도록 만들 수 있다.
나의 어떤 면은 나를 당황시키고,
또 나에 대해 내가 모르는 면이 있음을 나는 안다.
그러나 내가 나를 친절하고 다정하게 대하는 한
나는 용기와 희망을 가지고 그 부분을 해결해 나갈 수 있고
나 자신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아낼 수 있다.
어떤 특정한 순간에 내가 어떻게 보이고 들리는가,
무엇을 말하고 행동하는가,
무엇을 생각하고 느끼는가가 곧 나이다.
그것이 나의 진정한 모습이며, 그 순간 내가 어디에 있는가를 말해 준다.
시간이 지난 후에
내가 어떻게 보이고 들렸는가,
무엇을 말하고 행동했는가,
그리고 무엇을 생각하고 느꼈는가를 되돌아보면
어떤 부분은 알맞지 않았던 것으로 밝혀질 수 있다.
그 알맞지 않은 부분은 버릴 수 있고
알맞다고 증명된 부분은 그대로 간직할 수 있다.
그리고 버린 부분 대신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낼 수 있다.
나는 보고, 듣고, 느끼고,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할 수 있다.
나는 생존하고, 타인에게 다가가고, 생산적이 되고,
주위 사람과 일들을 지각하고 이해할 수 있는 도구를 지니고 있다.
나는 나의 주인이며, 따라서 나는 나를 조절할 수 있다.
나는 나이고, 나는 괜찮다.
- 버지니아 사티어 「나는 나다」
내 안의 심리적 원형을 만난다
고아, 방랑자, 전사, 이타주의자, 순수주의자, 마법사
내가 존재한다는 것은 삶이 나에게 묻고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나 자신은 세상을 향해 던져진 하나의 물음이며, 나는 그 물음에 나의 해답을 제시해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단지 세상이 주는 답에 따라 살아갈 뿐이다. - 칼 융
인간은 삶을 살아가는 주체이면서 그 주체인 자신에 대해 탐구하는 존재이다. 행복은 우리의 존재와 관련된 문제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나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은 그 일들에 대한 이해와 의미 부여를 통해 나를 나 자신에게로 되돌아오게 한다. 어쩌면 나는 나에게 일어난 일들의 단순한 집합체가 아니라 몸짓 하나하나마다 내가 선택한 존재일지 모른다.
현자는 말한다. 우리는 저마다 인생의 대본을 써 내려가는 작가이며, 삶에서 우연히 일어나는 것처럼 보이는 사건들은 지나서 보면 어떤 분명한 이야기 줄거리를 가지고 있다고. 인간 마음의 심층을 탐구한 심리학자 칼 융은 그 이야기를 써 내려가는 것이 바로 우리 내면의 원형이라고 보았다. 인간의 무의식 속에는 원형에 해당하는 자아가 있으며, 이 미성숙한 자아가 성숙한 자아로 나아가는 것이 삶의 여정이라는 것이다.
융은 오랜 정신분석 경험을 통해 개인의 행동, 사고, 신념, 감정 등에는 몇 가지 공통된 유형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 그것을 ‘아키타이프archetype’, 즉 ‘원형’이라 이름 붙였다. 다시 말해 우리는 각자의 개인적인 무의식과 함께 ‘모든 개인 안에 공통되게 존재하는 집단적 심리 원형’을 가지고 있다. 그 원형들이 희망이든 두려움이든 내 마음을 지배할 때 그것들은 내 삶으로 표현되고 나를 통해 개인화된다.
인생은 원형이라는 마법의 양탄자를 타고 삶의 숨은 진실과 우주적 계획 속에서의 우리 자리에 대해 알아가기 위해 끝없는 모험을 떠나는 여행자이다. - 캐롤라인 미스
융 학파의 심리학자 캐럴 피어슨은 융의 원형 심리학을 바탕으로 우리 내면에 존재하는 여섯 가지 심리적 원형을 이야기한다.
고아 원형은 세상에 홀로 남겨진 듯하고 버림받은 듯한 외로움으로 가득한 심리적 추방자이다. 사람을 믿지 않고, 자신을 희생자로 보며, 삶에 대해 별로 기대하지 않는다. 자신에게 왜 이토록 힘든 일이 계속해서 일어나는지 때로는 의아해한다. 보살핌받기를 원하지만, 세상은 안전을 기대하는 그를 보금자리에서 내쫓는 다양한 방법을 갖고 있다. 우리 안의 고아가 만드는 이야기는 ‘내가 어떻게 고통을 받았는가?’ 혹은 ‘내가 어떻게 살아남았는가?’이다.
방랑자 원형은 자신의 삶이 어딘가에 갇혀 있는 것처럼 느끼고 이상적인 곳을 찾아 떠나는 유형이며, 지금과는 다른 삶을 살겠다는 선언을 반복하는 사람이다. 여행을 가장한 현실도피자가 될 수도 있다. 방랑자가 써 내려가는 이야기는 ‘내가 어떻게 탈출했는가?’ 혹은 ‘어떻게 나 자신의 길을 발견했는가?’이다.
전사 원형은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 싸우는 유형으로, 성취하기 위해 자신을 몰아붙인다. 상황을 바꿀 수 있다는 확신과 개인적 책임감이 강하다. 타인과의 경계선을 명확히 긋지만 그만큼 주위 사람을 혹독하게 다루며 항상 이기려 드는 부정적인 면을 지니고 있다. 전사의 이야기는 주로 ‘내가 어떻게 목표를 이루었는가?’ 혹은 ‘어떻게 적을 이겼는가?’이다.
이타주의자 원형은 자신보다 숭고한 무엇인가를 위해, 혹은 세상을 더 나은 장소로 만들기 위해 자신을 희생하려는 자세를 지니고 있다. 이 유형의 사람은 자신이 소중히 여기는 가치, 자신이 세상에 주고 싶은 것, 이 삶 이후에 남기고 싶은 것을 중요하게 여긴다. 하지만 다른 사람을 위해 강박적으로 자신의 삶을 포기할 수도 있다. 이타주의자의 이야기는 ‘내가 어떻게 베풀었는가?’ 혹은 ‘어떻게 나를 희생했는가?’이다.
순수주의자 원형은 삶을 낙관하고 보다 큰 선에 대한 믿음을 가진 유형이다. 심리적 추방과 시련을 거쳐 순수 세계로 귀환함으로써 상처 입은 내면 아이를 치유하고, 자신이 희생자라는 피해 의식에서 벗어난 사람이다. 자신의 여행을 신뢰하면 행복한 결말이 기다리고 있음을 아는 사람이다. 순수주의자가 만드는 이야기는 ‘내가 어떻게 행복을 발견했는가?’ 혹은 ‘그것을 통해 무엇을 배웠는가?’이다.
마법사 원형은 자신의 미래를 마법처럼 변화시키려는 강한 의지를 지닌 사람이다. 자신을 세상의 중심에 놓고 삶의 주인을 자신으로 설정하는 유형이다. 마법사는 삶을 선물로 보며, 이곳에서 자신이 할 일은 자신의 선물을 세상에 주면서 삶과 완전한 관계를 맺는 것이다. 우리 안의 마법사가 만드는 이야기 구조는 ‘내가 어떻게 나의 세계를 바꾸었는가?’이다.
이 여섯 가지 원형은 한 사람의 내면에서 평생 동안 한 가지가 지배하기도 하지만, 단계적으로 나타나 그 시기의 자아를 형성하고 사라지기도 한다. 또한 여러 원형이 함께 활성화되어 다양하게 자아의 여러 모습을 구성하기도 한다. 길이 막히고 방향을 잃을 때마다 우리 안의 고아는 회복력을, 방랑자는 독립심을, 전사는 용기를, 이타주의자는 연민심을, 순수주의자는 삶에 대한 믿음을, 마법사는 변화를 이끌어 내는 마음의 힘을 우리에게 일깨운다.
원형연구소CASA 소장이며 원형에 관한 연구에 일생을 바친 캐럴 피어슨의 명저인 이 책(원제 『내 안의 영웅The Hero Within』)은 인간의 영혼, 혹은 마음 세계로의 탐험 여행이다. 융이 말했듯이, 자신의 내면에 관심을 두는 사람이야말로 깨어서 사는 것이다. 내 안에 내가 모르는 나가 있다. 그 나가 나에게 말을 걸어올 때가 바로 그 탐험 여행을 떠날 때이다.
저자는 말한다.
“영혼을 흔들어 깨우는 영웅의 여행에는 어느 정도 위험이 기다리고 있다. 에고는 필사적으로 안전을 원한다. 반면에 영혼은 진정한 삶을 살고 싶어 한다. 한 가지 진리는 이것이다. 모험 없이는 진정한 삶을 살 수 없다는 것이다. 시련 없이는 깊어질 수 없다.”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에 만족하지 말라.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했든 너 자신의 신화를 펼쳐라. 복잡하게 설명하려 하지 말고 누구나 그 여정을 이해할 수 있도록. 너에게 모든 것이 열려 있으니, 걸음을 옮겨라. 두 다리가 지쳐 무거워지면 너의 날개가 자라나 너를 들어올리는 순간이 올 것이니. - 잘랄루딘 루미
우리의 삶에 진정한 목표가 있다면 그것은 삶을 경험하는 것, 고통과 기쁨 모두를 경험하는 것이라고 비교신화학자 조지프 캠벨은 말한다. 우리 안의 어떤 원형은 기쁨의 이야기를 펼칠 것이고, 어떤 억압된 원형은 몸과 마음을 짓누르는 고통의 줄거리를 창조할 것이다. 인생은 쇄빙선같이 그 기쁨과 고통을 부숴 나가며 길을 내어 목적지에 이른다.
이 책의 저자가 말하듯이, 자아는 태어나면서 완성된 형태로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계속 완성해 나가야 하는 여정이다. 자신이 누구인지 아는 것, 이 ‘자기 앎’은 인생의 궁극적인 목표이다. 그것 없이는 어떤 행위와 성취도 무의미하다고 할 수 있다. 그 탐구 여정의 끝에 이르렀을 때 우리는 융이 자서전 『기억, 꿈, 회상』에 쓴 첫 문장을 이해하게 될 것이다.
‘나의 전 생애는 무의식이 자기실현을 해 나간 이야기이다.’
류시화
어떤 이야기를 살고 있는가 — 마음 사용 설명서
우리가 삶에서 경험하는 일들은 우리 자신이 삶에 대해 어떤 상상을 하고 있는가에 따라 결정된다. 우리는 세상에 대한 이야기를 만들고, 많은 부분 그 이야기대로 살아간다. 삶이 어떤 모습인가는 의식적으로, 혹은 더 많게는 무의식적으로 우리 자신이 선택한 대본에 달려 있다.
우리가 마음속에서 만드는 이야기 줄거리는 인간의 무의식 속에 자리 잡은 원형들과 관계가 깊다. 원형은 스위스의 정신분석학자 칼 융이 통찰했듯이, 인간 내면에 깊이 뿌리내려 강력한 영향을 미치는 생각의 유형들이다.
융의 설명에 따르면 이 원형들은 집단 무의식 속에 존재한다. 또한 인간의 뇌 구조 속에 암호화되어 있을 수도 있다. 우리는 이 원형들을 예술 작품이나 문학, 꿈, 신화들 속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으며, 자기 자신이나 주위 사람들의 삶을 보면서도 그것들을 알아차릴 수 있다. 자신이 어떻게 행동하고, 또 그 행동을 스스로 어떻게 해석하는지 관찰함으로써 자신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원형들을 자각할 수 있다. 사람들의 신체 언어를 통해서도 그들의 삶을 지배하는 원형을 알 수 있다. 한 걸음 한 걸음 마지못해 내딛듯 구부정한 자세로 걷는 사람은 ‘순교자 원형’에 사로잡혀 있다. ‘전사 원형’의 지배를 받는 사람은 결의에 차서 턱을 공격적으로 내밀고, 목표를 이루기 위해 매진하는 것처럼 몸이 앞을 향해 있다.
원형의 종류는 매우 많다. 그렇다면 왜 이 책에서는 여섯 가지 원형에 대해서만 말하는가? 원형에 해당하는 수많은 심리적 이야기 구조들이 있지만 이 여섯 가지 원형만큼 우리 삶의 여행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없기 때문이다. 우리 내면의 고아, 방랑자, 전사, 이타주의자, 순수주의자, 마법사는 영웅의 여행, 즉 한 인간이 성장하고 완성되어 가는 추구의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원형들이다. 이 원형들은 우리가 강한 자아를 갖도록 도우며, 그런 다음에는 자아의 경계를 넓혀 타인과 하나가 되고 세상과 하나가 되도록 돕는다.
한번은 컴퓨터 전문가가 나에게 불평한 적이 있다. 컴퓨터를 처음 구입한 사람들은 흔히 상담원에게 전화를 걸어 자신의 컴퓨터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고 화를 낸다는 것이다. 그들의 불평을 자세히 들어보면 결국 그들은 컴퓨터 사용법을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자동차를 살 때 우리는 그 차가 저절로 움직일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는다. 차를 타려면 운전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우리 모두는 내면에 놀라운 가능성을 지니고 있지만 그것에 접근하는 법을 배운 사람은 거의 없다. 컴퓨터를 처음 구입하면 사용법 강의를 듣지는 않더라도 최소한 사용 설명서를 읽어야 한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 하지만 자신의 마음에 관해서는 그저 마음이 스스로 잘 굴러갈 것이라 기대한다. 무엇인가 잘못되었을 때만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고 여겨 정신과 의사나 심리 상담사, 성직자, 구루(영적 스승)를 찾아간다. 그제야 자신의 어떤 부분이 병들어 있고, 무엇이 부족하며, 무슨 잘못이 문제를 일으키는지 알려고 한다. 마치 기계의 결함 있는 부품을 찾아내어 그 부분만 교체하려고 하듯이 말이다.
어쩌면 컴퓨터를 처음 구입했을 때처럼 우리 자신도 수리가 필요한 상태가 아닐 수 있다. 다만 우리 내면에 무엇이 있는지, 여행의 지금 단계에서 그것을 어떻게 이용해야 하는지 배우면 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 책은 일종의 ‘마음 사용 설명서’, 혹은 영웅의 여행에 필요한 지도이다. 나는 그 여행을 도와줄 내면의 안내자들, 즉 우리 자신 안의 ‘여섯 가지 원형’을 소개할 것이다. 이들의 도움을 받아 우리는 진정한 자아를 완성해 나가는 과정에서 겪는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다. 그리고 진정한 자아는 한순간에 발견되는 것이 아니라 전 생애에 걸쳐 완성해 나가는 과정이다. 이 내면의 협력자들과 연결되는 법을 알면 미래에 대해서도 덜 두려워하게 된다. 어떤 문제에 맞닥뜨리더라도 그것을 해결하는 데 필요한 수단이 자신의 내면에 있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인류 역사 대부분의 시간 동안 인간은 사회가 지정해 준 성역할(사회에서 성별에 따라 다르게 부여되는 역할)과 직업, 예측 가능한 행동 양식에 따라 살아 왔다. 심지어 무슨 생각을 해야 하는지도 사회가 정해 주었다. 하지만 지금은 전 세계의 많은 사람이 과거에 특권층만 누렸던 선택의 문제에 직면한다. 이제 남성과 여성의 역할은 경계선이 불분명하며, 인종은 더 이상 우리가 누구이고 무엇이 될 수 있는지 제한하는 기준이 아니다. 급속한 사회 발전은 많은 이들에게 한 번밖에 없는 짧은 생 동안 다양한 경력을 추구하게 만든다. 또한 이제는 서로 다른 생활 방식을 선택할 자유가 있다. 따라서 생각이 더 유연해져야 하고, 여러 가지 일을 해낼 줄 알아야 하며, 자신이 누구이며 어떻게 살고 싶은가에 대해 크든 작든 갖가지 선택을 해야만 한다.
당신은 영웅이다. 혹은 영웅일지도 모른다. 신화와 문학작품과 실제 삶에서 영웅은 여행을 떠나 큰 괴물(문제들)과 맞서고, 진정한 자아라는 보물을 획득한다. 사실 삶에서 이미 죽은 것 같은 순간을 마주할 때마다 우리는 괴물과 맞닥뜨리는 것이다. 이때 영웅은 무기력한 삶 대신 생기 넘치는 삶을 선택하고, 진정한 자신을 발견하기 위해 여행을 떠난다.
만약 자기 탐구를 위해 모험을 선택하지 않는다면, 나의 여행을 떠나는 대신 나에게 정해진 사회적 역할만 수행한다면, 감각이 마비된 것처럼 삶을 살게 될 수도 있다. 소외감과 공허와 허무로 채워질 수도 있다. 자의에 의해서든 타의에 의해서든 괴물을 죽이는 것을 단념한 사람은 그 욕구를 내면으로 돌려 자기 자신을 죽인다. 자신의 뚱뚱한 몸, 이기심, 예민한 성격, 혹은 자신이 판단하기에 좋지 않아 보이는 것들에 대해 전쟁을 선포하는 것이다. 실적 달성 기계가 되기 위해 자신의 감정을 억압하기도 한다. 아니면 자기 고유의 독특함을 감추고 카멜레온 같은 사람이 된다. 자신에게 성공을 가져다주거나 그저 안전을 보장해 줄 것이라 생각되는 모습을 연기하는 것이다.
자신의 자아와 싸움을 벌이면 결국에는 영혼을 잃는다. 이 상태가 오래 이어지면 마음이 병들어 회복이 어렵다. 또한 자기 탐구 여행을 회피할 때 생기 없는 삶을 살게 되고, 세상에도 활력을 선물할 수 없다. 이것이 폐허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영웅 신화의 시작 부분에서 왕국은 늘 폐허이다. 농작물은 자라지 않고, 질병이 유행하며, 아이들도 태어나지 않는다. 사람들 사이에는 절망감과 소외감이 만연해 있다. 그 왕국에서는 비옥함과 생명력을 찾기 힘들다. 이런 상황은 무능력하고 사악한 통치자와 관련이 있다. 이 이야기 속에서 늙은 왕이나 여왕은 세상의 변화를 방해하는 시대착오적인 방식을 상징한다.
이때 젊은 도전자는 모험 여행을 떠나 동굴 속 괴물과 맞서고, 보물을 얻는다. 이 여행이 그를 탈바꿈시킨다. 그가 얻는 보물은 삶을 긍정하는 새로운 관점의 발견이다. 영웅이 왕국으로 돌아오면, 그의 새로운 통찰이 모든 이의 삶을 변화시킨다. 그리하여 귀환한 영웅은 새로운 통치자, 즉 자기 왕국의 주인공이 된다. 새로운 해답을 발견했기 때문에 풍요와 결실이 회복되고, 비가 내려 메마른 땅에 영양분을 공급한다. 농작물은 싹을 틔우고, 아이들이 태어나며, 전염병은 치료된다. 사람들은 다시금 희망을 갖고 생기를 얻는다.
이 이야기에서 당신은 세대 간 갈등을 알아차릴지도 모른다. 당신이 젊은 세대라면 부모나 다른 권위 있는 인물을 늙은 통치자와 비교하겠지만, 그들이 반드시 나쁜 것은 아니다. 단지 그들이 이전 시대의 진리를 따르는 것뿐이다. 당신이 자신의 여행을 떠나야만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나이에 관계없이 가정이나 조직, 공동체에 만족하지 못할 때도 이를 박차고 떠나 새로운 여행을 시도할 수 있다. 설령 현재 자신의 삶을 살고 있을지라도 더 많이 살아 있기 위해 여행을 떠날 때, 당신은 자기 자신뿐 아니라 집단의 변화에도 도움이 되는 해답들을 발견해서 돌아오게 된다.
삶에서 육체적인 아픔이나 정신적인 고통, 지루함, 무기력, 소외감, 공허감, 중독, 실패감, 분노와 같은 폐허의 요소들을 겪을 때가 바로 당신이 여행을 떠나야만 하는 순간이다. 그런 불만족뿐 아니라 단순히 모험에 대한 욕구가 당신을 탐구 여행으로 손짓한다. 필연적으로 떠날 수밖에 없는 그 여행이 당신을 새롭게 변화시킨다.
영웅은 자신의 여행을 하면서 성장하고 변화하는 자일 뿐 아니라 세상에 변화를 가져오는 중개자이다. 고대에는 왕과 여왕이 세상을 통치했으며,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의 삶에 대해 아무 힘이 없었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특별한 사람만 영웅의 여행을 떠나는 것이 아니다. 누구나 자신의 여행을 떠날 수 있고, 또 그렇게 해야만 한다. 영웅은 자신의 진정한 자아라는 보물을 발견해서 공동체 전체와 나눈다. 온전히 자기 자신으로 존재하고 행동함으로써 그렇게 한다. 또 그렇게 하는 만큼 자신이 소속된 왕국도 달라진다.
많은 사람들은 보호받기를 원하면서 자신의 여행을 미룬다. 하지만 이 욕망은 얼마 못 가서 좌절되기 마련이다. 우리는 안전을 기대하지만, 세상은 다양한 방법으로 우리를 안전한 보금자리에서 내쫓는다. 그 결과 우리는 나는 법을 배우거나 바닥까지 추락했다가 다시 일어나곤 한다.
많은 젊은이들은 인생의 쓴맛은 아니더라도 무력감을 느낀다. 자신이 부모와 똑같은 수준의 부를 이루지 못할 것임을 깨닫기 때문이다. 더 발전된 삶이 자동으로 이루어질 것이라고, 이전 세대보다 더 나은 삶을 살게 될 것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지금 많은 이들에게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이 가혹한 현실에 아무리 화가 나도 세상 속에서 분투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다.
또한 지난날 사람들은 결혼하면 평생 동안 그 결혼 생활이 유지될 것이라고 여겼으나 오늘날 이혼은 일반적인 현상이 되었다. 갑자기 배우자가 떠난 사람들은 정신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준비가 안 돼 있어서 어찌할 줄 모른다. 세상 물정에 밝은 이들은 미리 대비책을 세워 놓지만, 그렇게 하는 것은 자신과 배우자 사이에 틈을 만드는 일이다. 그래서 대부분은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손해를 감수한다.
노동자들은 열심히 일하고 충성하면 언제까지나 직장을 갖게 될 것이라 믿었지만 오늘날에는 이 충성 계약이 깨졌다. 그 결과 삶이 불안해졌고, 지금의 고용주와 계속 일하거나 다른 직장으로 옮기거나 자신의 회사를 시작하거나 간에 혼자서 자신의 미래를 책임져야만 한다.
영웅의 여행이 특별한 사람만의 것이라고 여기며 당신은 그저 안전한 자리를 찾아 머물려고 한다. 하지만 숨을 만한 안전한 장소는 존재하지 않는다. 만약 당신이 여행을 떠나지 않는다면, 삶이 당신을 여행으로 떠밀 것이다. 지금 우리는 그 여행에 떠밀려 떠나고 있다. 따라서 진정한 여행에 필요한 것을 배우지 않으면 안 된다.
사실 우리 안의 영웅적인 자아는 세상이 불완전하다는 것에 신경 쓰지 않는다. 그 자아는 안락함을 위해 살지 않으며 모험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카멜롯 이야기(아서왕의 궁전이 있는 도시 카멜롯과 그곳을 수호하는 원탁의 기사들 이야기)에 나오는 아서왕이 이것을 잘 보여 준다. 어느 날 기사들이 만찬 자리에 앉기 시작했을 때, 아서는 그들에게 아직은 저녁을 먹을 수 없다고 선언한다. 그들은 그날 어떤 모험도 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곧바로 모험적인 일을 찾아 나선다.
시각을 조금만 바꾸면 어떻게 될까? 만약 삶의 목표가 승리하는 것이 아니라 배움이라면? 그러면 이야기의 결말이 매우 달라진다. 탄생과 죽음 사이에 일어나는 일들도 달라질 것이다. 그때 영웅적 행위는 산을 옮기는 일뿐만 아니라 산을 아는 일, 즉 온전히 자기 자신이 되고, 있는 그대로를 부정하지 않는 것, 그리고 삶이 우리에게 펼쳐 보이는 배움에 마음을 여는 것으로 다시 해석된다.
자서전 『길 위의 자매Sister of the Road』의 주인공 박스카 베르타는 아서왕에 맞먹는 정신을 가지고 있다. 책 말미에서 베르타는 자신의 삶을 뒤돌아본다. 어린 나이에 어머니에게 버림받은 일, 매춘부로 살며 인간성이 말살되었던 기간, 한 연인은 감옥에 갇히고 또 한 연인은 기차에 치여 죽는 것을 무기력하게 지켜봐야만 했던 일들을. 그녀는 분명하게 말한다.
“내가 배우고자 했던 모든 것을 나는 배웠다……. 나는 목적을 이루었다. 인생에서 하고자 했던 일은 모두 시도해 봤으니까. 떠돌이 노동자, 급진주의자, 매춘부, 도둑, 개혁가, 사회운동가, 혁명가가 되는 것이 어떤 느낌인지 알고 싶었고, 또 그것을 알았다. 그리고 온몸으로 전율했다. 그것들 모두 가치 있는 일이었고, 내 삶에 비극은 없었다. 그렇다, 내 기도는 응답받았다.”
베르타는 자신을 고통받은 순교자나 전사로 생각하지 않는다. 그 대신 원하는 모든 것을 받은 마법사로 여기며, 자신의 선택에 책임을 지고, 삶이 준 선물에 감사한다.
영웅이 되려면 많은 시련을 겪어야 하고 승리를 위해 싸워야 한다고 사람들은 잘못 생각한다. 사실은 이렇다. 자기 내면의 영웅적인 면을 주장하든 주장하지 않든, 누구나 삶에서 시련을 겪는다. 자신의 여행을 회피하면 오히려 지루함과 공허함만 늘어난다. 행복을 찾기 위해 여행을 떠나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행복을 따를 때 여행은 보물을 가져다준다.
애니 딜러드(26세에 폐렴을 앓은 후 더 충만한 삶을 살고자 버니지아주 팅커 크리크 지역의 자연 속에서 생활한 퓰리처상 수상 작가)는 『팅커 크리크의 순례자Pilgrim at Tinker Creek』에서 “삶은 종종 잔인하지만 언제나 아름답다. 최소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삶 속에 충분히 존재하는 것.”이라고 단언한다. 그녀는 죽음에 이르러 마지막으로 하는 기도가 “제발!”이 아니라 “감사합니다.”가 되기를 상상한다. 문을 나서며 손님이 주인에게 감사해하듯이.
마법사는 삶을 선물로 본다. 우리가 할 일은 자신의 선물을 세상에 주면서 삶과 완전한 관계를 맺는 것이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과도. 어떤 선물은 받고, 어떤 것은 거절하는 책임을 지면서 말이다. 이 관점에서는, ‘나는 누구인가’를 잊어버리는 일이 가장 큰 비극이다. 그렇게 되면 이곳에서 해야 할 일을 하지 못하게 되기 때문이다.
삶을 너무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도록 사람들이 당신을 단념시키더라도 놀라지 말라. 사람들은 영웅이 되려는 당신을 비웃거나 무시할 것이다. 당신도 자신이 변화할 수 있음을 상상하지 못하게 가로막는 내면의 장애물이 있을 수 있다. 성별에 있어서나 인종에 있어서나, 가정환경과 소득수준과 성취 부분에서도 자신이 다른 사람들만큼 가치 있는 존재가 아니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세상에서 중요한 인물로 인정받을 만큼 재능 있거나 똑똑하거나 유리한 점을 갖고 있지 않다고 여길 수도 있다.
이때 당신은 자신이 가진 힘을 내주고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지배하게 만드는 위험을 선택하는 것이다. 그러는 동안 자신은 배경으로 멀찌감치 물러나 있다. 그렇게 하면 잃는 사람은 당신만이 아니다. 세상도 그만큼 잃는다. 왜냐하면 왕국의 변화를 위해 당신만이 가져다줄 수 있는 선물을 잃을 것이기 때문이다.
자기 자신에 대한 의심은 강한 지배 욕구를 가진 사람들에 의해 더 커진다. 직장 상사, 심리 치료사, 교사, 정치가뿐 아니라 친구조차도 자기 뜻대로 당신의 여행 의지를 꺾어 놓을 수 있다. 단결을 원하는 집단은 구성원들이 자기 자신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영웅적인 정신을 가진 여행은 개인주의를 부추기며, 따라서 집단에 충성하지 않을 것이라는 두려움 때문이다.
사실 자신의 여행을 하는 사람은 훌륭한 구성원이 되기 어렵다. 최소한의 공통분모만 중요시하는 집단의 사고방식에 맞서 자신의 의견을 굽히지 않기 때문이다. 자신들의 기본 방침만 나열하는 집단은 그 집단에 속한 개인보다 훨씬 낮은 지적 수준에서 움직일 가능성이 높다.
사람들은 영웅적인 생각을 그다지 신뢰하지 않는다. 영웅적인 행동에 대한 잘못된 관념 때문이다. 불타는 건물에서 누군가를 구하는 일처럼 굉장한 위험이 따르는 행동을 혼자서 해내는 사람을 영웅으로 생각한다. 혹은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거나 노벨상을 받는 등 특별한 일을 성취할 때만 영웅이라 여긴다. 그런 형태의 영웅적 행위는 흔치 않다. 상황 자체가 극단적이어야 하고, 특별한 재능과 초인간적인 노력이 합쳐져야 가능하기 때문이다.
영웅적 행위는 유명한 인물이 되는 것과는 다르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가 아무리 부자나 유명인들의 삶을 부러워하더라도 우리는 안다. 세상은 부나 명성보다는 눈에 잘 띄지 않는, 진실하고 친절하며 자비로운 행동들에 더 많이 영향받는다는 것을.
영웅적인 행동을 실제보다 과장되게, 혹은 적어도 우리 자신의 삶보다는 더 거창한 것으로 여길 때, 우리는 그런 생각을 다른 사람에게 투영하기 마련이다. 예를 들어 우리의 정치 지도자나 조직의 리더, 때로는 심리 치료사나 멘토나 배우자가 어려움에서 우리를 구원하는 영웅적 행위를 보여 주기를 기대한다. 그래서 그들이 실패하거나 약한 모습을 보이면 그들을 매섭게 비난하고 공격한다. 그들이 돌아가며 우리의 기대를 저버릴 때마다 우리는 삶과 세상에 대해 냉소적이 된다. 진실은 이것이다. 지금은 과거처럼 위대한 인물이 우리를 구원해 주는 시대가 아니다. 우리 각자가 자신의 역할을 해야 하는 시대이다.
슈퍼맨이나 슈퍼우먼처럼 현실보다 과장된 모습에 따라 사는 것이 영웅적인 행동이 아니다. 그런 삶은 우리를 그저 무기력하게 만들며 사기를 꺾을 뿐이다. 진정으로 영웅적인 행동은 어떤 일이 닥쳐도 처리할 수 있음을 보여 주는 것이 아니다. 영웅의 여행은 당신에게 자신보다 더 큰 존재가 되라고 요구하지 않는다. 단지 자신의 진실한 길에 전적으로 충실하기를 바랄 뿐이다.
어떤 문제가 우리를 괴롭힐 때, 그 문제에 대해 ‘누군가가 무엇인가를 해야만 한다’라고 말할 때마다 우리는 자신의 힘을 포기하는 것이다. 물론 그렇게 하는 이유는 문제가 너무 커 보이고, 우리 머릿속의 과장된 영웅 이미지처럼 살기에는 자신이 훨씬 못 미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또한 세속적인 성공의 관점에서만 영웅이 되려고 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세상에 이름을 알리는 일에 사로잡힌 나머지 의미 있는 개인 생활이 없는 사람들이 있다. 사회에 크게 기여한 공로로 상을 받는 날, 배우자가 그들을 떠난다. 왜냐하면 그들은 결코 집에 있었던 적이 없으며, 오랫동안 방치된 자녀가 가게에서 물건을 훔치다 체포되었기 때문이다.
성취 지향적인 현대 사회에서 진정으로 영웅적인 행동은 일중독에 저항하는 것이다. 우리가 좋은 부모, 이웃, 시민이 될 수 있도록, 그리고 삶을 누릴 수 있도록 말이다. 또한 시간을 내어 내면으로 들어가 자신을 돌아보고 밖으로는 자신의 호기심과 관심사를 따를 수 있도록. 성공을 영웅적인 목표로 혼동함으로써 이면에서는 절망적인 삶을 살고 있는 부유하고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우리는 자주 듣는다. 진정한 영웅은 삶에 끌려가지 않고 삶을 누리기 위해 균형을 이룬다.
내가 진행한 워크숍에 온 한 여성의 이야기에 감명받은 적이 있다. 그녀는 자신이 얼마 전까지만 해도 노숙자였으며 약물에 중독되어 있었다고 했다. 어느 날 우연히 그녀는 마약 중독 치료 시설이 있는 골목에서 구걸을 하고 있었다. 그때 상담 치료사가 창문에 기대어 참가자들에게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지금의 당신 모습은 당신의 여행 중 한 단계일 뿐이에요. 언제까지나 이 모습으로 있지는 않을 거예요. 겉으로 보이는 모습은 당신이 아니에요. 지금 당신은 여행 중인 영웅이에요.”
그 젊은 여성은 곧바로 그 치료 시설 안으로 들어갔고, 내가 그녀를 만났을 무렵에는 많이 회복되어 있었다. 직장과 아파트를 구했으며, 그녀의 장밋빛 뺨이 말해 주듯이 몸과 마음이 건강해져 있었다.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20대 초반이었던 시절의 나를 돌아보았다. 나는 워크숍에 온 그 젊은 여성과는 매우 달랐다. 오히려 너무 올발랐고, 젊은이다운 실험을 할 자유가 없는 미국 남부의 근본주의 가정에서 자랐다. 이타적인 희생이 강조되는 여성의 역할과, 선하게 살고 죄를 멀리하는 종교적 역할을 배웠다. 우리 집은 돈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가난해지지 않기 위해서는 삶에서 조심하는 것이 현명한 일이라고 나는 믿었다. 그러다가 대학생 때 비교신화학자 조지프 캠벨의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The Hero with a Thousand Faces』을 읽었고, 영웅은 자기만의 지복을 따른다는 그의 말을 믿게 되었다. 그렇게 해서 내 인생 항로가 바뀌었다.
이십 대였을 때 컬럼비아대학원에서 중세 문학을 전공하던 캠벨은 수업이 지루해 박사 과정을 그만두었다. 주위 어른들과 친구들은 정착해서 직장을 구하라고 충고했으나, 그렇게 하는 대신 캠벨은 뉴욕 근교 우드스탁이라는 시골로 들어가 전 세계의 영웅 신화들을 읽으며 5년을 보냈다. 돈이 없는 그에게 한 책방 주인이 계속 책을 대여해 주었다. 이 시기의 방대한 독서를 바탕으로 완성한 그의 저서들은 자신만의 영웅 여행을 하도록 많은 사람들을 격려하면서 끝없는 물결 효과를 일으켰다.
당신이 위험을 무릅쓰고 자신의 영혼에 진실하기로 마음먹을 때, 그 행동을 영웅적이라 부르든 아니든, 당신의 행동은 다른 사람들이 따라 하는 본보기가 된다. 당신이 자신의 길을 걷는 것은 전혀 이기적인 행동이 아니다. 진정한 삶의 본보기를 보여 주는 것이야말로 다른 사람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최고의 일이다. 우리가 자신의 행동이 과거의 영향 때문이라고 탓하는 쉬운 길을 선택함으로써 삶을 스스로 좌절시키는 패턴을 멈추게 하는 것, 그것이 영웅이 하는 일이다.
어느 고대 성배 이야기에서는 탐구자가 멀리 성배가 있는 성이 바라다보이는 산꼭대기 어느 지점에 이른다. 성까지는 가로질러 갈 수 있는 어떤 길도 보이지 않는다. 그는 수 킬로미터나 깊게 깎아지른 협곡을 내려다본다. 그 공간이 너무 넓어 뛰어넘을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으며 건너편을 바라본다. 그때 믿음을 가지고 나아가라는 성배와 관련된 고대의 가르침을 기억한다. 그가 천 길 낭떠러지의 공간으로 한 발을 내딛는 순간, 갑자기 다리가 나타나 그를 떠받쳐 준다.
우리의 일상생활과는 매우 다른 이야기로 들릴지 모르지만, 사실은 인간 모두가 하는 경험을 신화적 언어로 묘사한 것이다. 직장이나 학교를 떠나 본 적이 있는 사람은 다음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지 못한 채 심연 속으로 발을 내디딘 것이다. 자신을 지지해 주지 않는 관계들을 떠날 때도 마찬가지다. 다시 사랑하게 될지, 또는 언제 사랑하게 될지 알지 못한 채 우리는 길을 떠난다. 더 이상 의미를 갖지 못하는 사상들을 내려놓고 새로운 진실을 발견할 때까지 불확실성에 대한 두려움을 감수하는 것도 그것이다.
다행히도 우리는 내면의 여섯 안내자에 연결될 수 있다. 여행의 다음 단계는 위험할지도 모르지만, 산의 협곡 위에 있는 보이지 않는 다리가 안전한 통로가 되어 줄 수 있다.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삶에 대해 자기 자신에게 이야기한다. 그리고 그 이야기의 노예가 되어 살아간다. 자신이 살고 있는 그 이야기 구조를 알아차리고, 자신이 전적으로 다른 이야기를 시작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자유가 시작된다. 여섯 가지 원형이 가진 각각의 관점은 그 자신이 제작하는 영화의 중심인물들과 같으며, 각자 자신만의 이야기 구조를 가지고 있다.
우리 안의 고아가 만드는 이야기 구조는 ‘내가 어떻게 고통을 받았는가?’ 혹은 ‘내가 어떻게 살아남았는가?’이다. 이 고아 원형이 우리에게 주는 선물은 회복력이다.
방랑자가 만드는 이야기 구조는 ‘내가 어떻게 탈출했는가?’ 혹은 ‘어떻게 나 자신의 길을 발견했는가?’이다. 방랑자 원형이 주는 선물은 독립심이다.
전사가 만드는 이야기 구조는 ‘내가 어떻게 목표를 이루었는가?’ 혹은 ‘어떻게 적을 이겼는가?’이다. 전사 원형이 주는 선물은 용기이다.
이타주의자의 이야기 구조는 ‘내가 다른 사람들에게 어떻게 베풀었는가?’ 혹은 ‘내가 어떻게 나를 희생했는가?’이다. 이타주의자 원형이 주는 선물은 연민심이다.
순수주의자의 이야기 구조는 ‘내가 어떻게 행복을 발견했는가?’ 혹은 ‘내가 어떻게 약속의 땅을 찾았는가?’이다. 순수주의자 원형의 선물은 신념이다.
그리고 우리 안의 마법사가 만드는 이야기 구조는 ‘내가 어떻게 나의 세계를 바꾸었는가?’이다. 마법사 원형이 우리에게 주는 선물은 힘이다.
어떤 원형의 이야기 구조가 자신의 삶을 지배하고 있는지 알려면 며칠 동안 자신이 하는 대화에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에 대해 자기 자신과 다른 사람들에게 어떤 식으로 이야기하는지를 관찰하는 것이다. 자신 안의 어떤 원형이 반복적으로 이야기를 지배하는지 알아차리는 것이다.
예를 들어, 여섯 명의 사람이 취업 면접을 봤다가 탈락했다고 가정하자. 이때 그들은 자신을 지배하는 원형에 따라 제각기 다른 반응을 보일 것이다.
“면접 심사가 너무 불공평했어. 내가 가장 적합한 후보자였어. 이런 식으로 하면 아무리 해도 이길 수 없어.” (고아 원형)
“그 회사에 들어서는 순간 그곳이 내 마음에 안 든다는 걸 알았어. 답답하고 숨이 막혀서 일 분이라도 빨리 벗어나고 싶었어.” (방랑자 원형)
“두말할 필요 없이 내가 가장 뛰어난 지원자야. 반드시 나를 채용하도록 그들을 설득하겠어.” (전사 원형)
“누가 됐든 이번 면접에 통과해서 직장을 얻게 된다면 그것만으로도 나는 만족해.” (이타주의자 원형)
“적당한 때가 되면 나에게 적합한 일자리가 나타날 것이라고 나는 확신해.” (순수주의자 원형)
“나는 그 직장을 얻지는 못했지만, 나에게 정말로 맞는 일을 구하는 데 있어 중요한 무엇인가를 배웠어.” (마법사 원형)
이렇듯 당신이 자신의 삶에 대해 이야기하는 방식은 당신의 자아상을 드러낸다. 나아가 자신이 미래에 대해 얼마나 많이, 혹은 얼마나 적게 기대하고 있는지 암시한다.
누군가에게는 ‘원형’이라는 단어가 무섭게 들릴 수도 있다. 사실 원형은 인간의 마음과 사회 체제 안에 자리 잡고 있는 근본적인 심리 구조일 뿐이다. 과학자들은 자연의 근본 구조를 ‘프랙털’(세부적인 구조를 확대해 볼수록 전체 구조와 유사한 형태를 끊임없이 반복하고 있는 복잡한 구조)이라는 단어로 설명한다. 예를 들어 모든 눈송이는 각각 고유하고 독특하다. 하지만 눈송이들의 근본 구조 속에는 그것들을 눈송이로 인식할 수 있게 해 주는 어떤 닮은꼴이 있다. 원형은 마음의 프랙털과 같다. 예컨대 전사 성향을 보이는 사람들은 각자 다르지만, 우리는 그들 안에 있는 용기와 용맹함이라는 공통된 전사 유형을 알아볼 수 있다.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한다. 우리 모두는 ‘순수주의자’로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낸다. 자신이 완벽한 보살핌을 받을 것이라고 믿으며, 또한 아직은 세상의 아름다움에 경외감을 느낀다. 하지만 아담과 이브가 에덴동산에서 추방된 것처럼 이내 그 은총의 단계에서 추방된 ‘고아’가 되어 어쩔 수 없이 좌절과 고통을 맞닥뜨린다. 이 경험을 통해 우리는 현실을 자각하고, 안내자와 유혹하는 사람의 차이를 구별하는 법을 터득한다.
나이를 먹어 감에 따라 삶이 너무 갇혀 있고, 제한적이며 억압적이라고 느낀다. 이때는 ‘방랑자’가 되어 자신의 진정한 모습을 발견하고 운을 개척하기 위해 길을 떠난다. ‘전사’가 되어서는 용기를 가지고 괴물과 맞서고, 세상에서 성공하는 데 필요한 원칙과 기술을 연마한다. 그리고 ‘이타주의자’가 되어서는 다른 사람들이나 삶 자체에 기여할 때 자신의 존재가 의미 있어진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다음에는 다시 ‘순수주의자’로 돌아와 다시금 살아 있음을 신뢰하며 진정한 행복이라는 보물을 발견한다. 마지막으로 ‘마법사’ 단계에 이르러서는 자신의 삶과 자신이 살아가는 왕국을 탈바꿈시키는 능력을 얻는다.
이 원형들은 우리가 성장 과정에서 중요한 발달과제(각각의 성장 발달 단계에서 습득해야 하는 정신적, 신체적 내용)를 해내도록 돕는다. 우리 안의 고아 원형은 어려움과 시련을 견뎌 내도록 우리를 돕고, 방랑자 원형은 진정한 자기 자신을 발견하도록 돕는다. 전사 원형은 자신의 가치를 세상에 증명하도록 돕고, 이타주의자 원형은 자비심과 공감 능력을 키우도록 돕는다. 그리고 순수주의자 원형은 진정한 행복을 성취하도록 돕고, 마법사 원형은 자신의 삶을 변화시키도록 돕는다.
당신은 언제나 독립적이었고 세상을 탐험하는 것을 좋아했다. 하지만 지금은 결혼해서 아이들이 있고, 가족을 돌보기 위해 그런 탐구 욕구의 많은 부분을 희생해야만 한다. 혹은 뛰어난 실력과 공동 작업 능력 덕분에 자기 분야에서 크게 성공했지만 회사가 변화를 겪고 있어서 직원들이 혼란에 빠져 있다. 지금까지 잘 살아오다가 갑자기 중병을 앓거나 배우자가 떠나 버리거나 자녀가 사고로 죽거나 회사가 파산해 일자리가 없어졌을 수도 있다. 친구나 배우자, 직장 동료들과는 다르게 세상을 바라보는 문제에 직면하기도 하는데, 이 인식의 차이가 관계 그 자체를 위협한다. 이런 각각의 환경들은 지금까지 당신의 삶에서 잠들어 있던 원형을 깨우는 부름일 수 있다.
또한 누구라도 심한 스트레스를 받으면 일시적으로 한 가지 원형의 지배를 받게 된다. 우리 안에는 긍정적인 잠재력뿐만 아니라 부정적인 잠재력도 있기 때문이다. 감정을 참지 못하고 총을 쏘아 대는 극단적인 경우에서 자신 안의 전사 원형에 사로잡힌 모습을 본다. 일반적인 경우에는 법적 소송이나 사업상의 경쟁에서 상대방과 전쟁하듯 싸우는 사람들의 모습에서도 전사 원형을 발견한다. 이런 원형에 사로잡히지 않는 유일한 길은 ‘알아차림(자각)’이다.
자신 안의 원형을 알아차리는 것은 일종의 그림자 측면이라고도 불리는 원형의 부정적인 에너지에 대한 예방이 된다. 원형들이 자신 안에서 어떻게 작용하는지 자각함으로써 그것들의 부정적인 측면을 바로잡을 수 있는 것이다. 자유는 이 알아차림과 함께 온다. 무의식 속 원형들은 당신의 성장을 돕는 협력자가 될 수 있다. 단, 원형들이 당신에게 영향을 미칠 때 당신이 깨어 있어서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질 때만 그것이 가능하다.
이 책을 읽어 나가면서 당신은 과거에 각각의 원형들의 이야기를 살았던 때를 떠올릴 것이다. 또한 지금까지 자신의 삶에서 표현하지 못했던 한두 가지 원형을 알아차릴지도 모른다. 이것은 자신 안의 ‘생각 패턴’에 영향을 주는 다른 사람들의 행동과 동기를 이해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자신 안의 원형을 이해하는 것은 자신의 삶과 화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우리 중 많은 이들은 자신이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지 알지만, 그것은 현재 자신의 모습과 일치하지 않는다. 서로 다른 원형들이 우리 삶의 다양한 단계와 상황을 지배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각각의 원형은 우리에게 선물을 안겨 준다. 따라서 자신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삶의 방식에 따라 살지 않은 것 때문에 자신을 질책하는 일을 멈춰야 한다. 그때 비로소 자신이 어떤 재능을 키워 왔는지 알아차릴 수 있다.
예를 들어 한 여성은 자신이 실패자로 느껴진다고 내게 말했다. 그녀는 계속해서 새로운 선택지를 탐험했고, 어떤 일에도 오래 전념하지 못했다. 따라서 직업적인 성공도 이루지 못했으며, 남편과 아이가 있는 평범한 가정도 갖지 못했다. 하지만 그 문제에 대해 함께 이야기하면서 우리는, 그녀의 영혼이 진정으로 갈구한 것은 언제나 모험에 관련된 것이었음을 깨달았다. 그녀의 방랑자 원형이 독립과 새로운 시도를 강조했기 때문에 그녀는 그것들 외의 다른 가능성들을 희생시킨 것이다. 자신이 마땅히 살아야 한다고 생각한 종류의 삶을 살지는 않았지만, 그녀는 실제로 자신이 정말로 원했던 삶을 살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렇게 일단 과거의 선택들을 인정하고 받아들이자 미래를 위해서도 새로운 선택을 할 수 있었다.
한 젊은 남자는 폭력과 정신적 학대를 일삼은 아버지 때문에 자신의 어린 시절이 갑자기 끝난 것을 고통스러워했다. 심리 치료를 통해 그는 자신 안의 고아 원형이 주는 선물을 얻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것은 바로 가혹한 현실에 대한 자각, 연민심, 공감 능력이었다.
그는 말했다.
“나는 잘못된 인생을 살지 않았어요. 그것이 나의 삶이었고, 나의 영화였어요. 그것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어요.”
자신 안의 원형들을 알아차리면 자신이 원하는 삶을 선택할 자유가 그만큼 넓어진다. 어쩌면 지금까지 당신의 삶은 전사 원형이 주도해 왔을지도 모른다. 이 원형이 당신에게 용기를 주었고, 큰 위험을 감수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