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저서는 2018년 대한민국 교육부와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아 수행된 연구임 (NRF-2018S1A6A3A03043497)
모빌리티인문학 Mobility Humanities
모빌리티인문학은 기차, 자동차, 비행기, 인터넷, 모바일 기기 등 모빌리티 테크놀로지의 발전에 따른 인간, 사물, 관계의 실재적·가상적 이동을 인간과 테크놀로지의 공-진화co-evolution라는 관점에서 사유하고, 모빌리티가 고도화됨에 따라 발생하는 현재와 미래의 문제들에 대한 해법을 인문학적 관점에서 제안함으로써 생명, 사유, 문화가 생동하는 인문-모빌리티 사회 형성에 기여하는 학문이다.
모빌리티는 기차, 자동차, 비행기, 인터넷, 모바일 기기 같은 모빌리티 테크놀로지에 기초한 사람, 사물, 정보의 이동과 이를 가능하게 하는 테크놀로지를 의미한다. 그리고 이에 수반하는 것으로서 공간(도시) 구성과 인구 배치의 변화, 노동과 자본의 변형, 권력 또는 통치성의 변용 등을 통칭하는 사회적 관계의 이동까지도 포함한다.
오늘날 모빌리티 테크놀로지는 인간, 사물, 관계의 이동에 시간적·공간적 제약을 거의 남겨 두지 않을 정도로 발전해 왔다. 개별 국가와 지역을 연결하는 항공로와 무선 통신망의 구축은 사람, 물류, 데이터의 무제약적 이동 가능성을 증명하는 물질적 지표들이다. 특히 전 세계에 무료 인터넷을 보급하겠다는 구글Google의 프로젝트 룬Project Loon이 현실화되고 우주 유영과 화성 식민지 건설이 본격화될 경우 모빌리티는 지구라는 행성의 경계까지도 초월하게 될 것이다. 이 점에서 오늘날은 모빌리티 테크놀로지가 인간의 삶을 위한 단순한 조건이나 수단이 아닌 인간의 또 다른 본성이 된 시대, 즉 고-모빌리티high-mobilities 시대라고 말할 수 있다. 말하자면, 인간과 테크놀로지의 상호보완적·상호구성적 공-진화가 고도화된 시대인 것이다.
고-모빌리티 시대를 사유하기 위해서는 우선 과거 ‘영토’와 ‘정주’ 중심 사유의 극복이 필요하다. 지난 시기 글로컬화, 탈중심화, 혼종화, 탈영토화, 액체화에 대한 주장은 글로벌과 로컬, 중심과 주변, 동질성과 이질성, 질서와 혼돈 같은 이분법에 기초한 영토주의 또는 정주주의 패러다임을 극복하려는 중요한 시도였다. 하지만 그 역시 모빌리티 테크놀로지의 의의를 적극적으로 사유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그와 동시에 모빌리티 테크놀로지를 단순한 수단으로 간주했다는 점에서 고-모빌리티 시대를 사유하는 데 한계를 지니고 있었다. 말하자면, 글로컬화, 탈중심화, 혼종화, 탈영토화, 액체화를 추동하는 실재적·물질적 행위자agency로서의 모빌리티 테크놀로지를 인문학적 사유의 대상으로서 충분히 고려하지 못했던 것이다. 게다가 첨단 웨어러블 기기에 의한 인간의 능력 향상과 인간과 기계의 경계 소멸을 추구하는 포스트-휴먼 프로젝트, 또한 사물 인터넷과 사이버 물리 시스템 같은 첨단 모빌리티 테크놀로지에 기초한 스마트 도시 건설은 오늘날 모빌리티 테크놀로지를 인간과 사회, 심지어는 자연의 본질적 요소로 만들고 있다. 이를 사유하기 위해서는 인문학 패러다임의 근본적 전환이 필요하다.
그러므로 모빌리티인문학은 ‘모빌리티’ 개념으로 ‘영토’와 ‘정주’를 대체하는 동시에 인간과 모빌리티 테크놀로지의 공-진화라는 관점에서 미래세계를 설계하기 위한 사유 패러다임을 정립한다.
머리말
모빌리티 사회이론과 생활세계
_ 김수철
이 연구총서 《모빌리티와 생활세계의 생산》은 모빌리티에 대한 인문학적 성찰을 위해서 모빌리티의 사회이론과 사회과학 분야에서의 연구들을 다루고 있다. 먼저 이 총서는 모빌리티를 모빌리티의 대상, 매개 그리고 행위성이라는 측면에서 함께 살펴보기 위해서 도시 공간, 미디어 테크놀로지, 인적 모빌리티라는 세 가지 분야로 나누어 접근하고 있다. 이를 통해 세 가지 주제에 대한 기존 사회이론에서의 이해 방식을 모빌리티의 시각에서 더욱 복잡화시키고 공간, 테크놀로지, 이주에 대한 기존의 접근 방식들을 비판적으로 재검토하면서 동시에 모빌리티에 대한 새로운 이해 방식과 새로운 변화를 위한 이론적이고 실천적인 전략을 모색하고자 하는 목적을 가지고 있다.
또 다른 이 총서의 목적은 모빌리티 사회이론에 대한 인문학적 성찰을 통해서 모빌리티인문학의 개념과 영역을 더욱 풍부하게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 기존의 사회와 생활세계에 대한 이해와 논의들의 한계를 명확히 하고, 모빌리티 시각에서 생활세계에 대해 연구하는 것이 어떻게 유용한 접근이 될 수 있는지를 보여 주고자 한다. 생활세계 개념은 에드문트 후설EdmundHusserl과 마르틴 하이데거MartinHeidegger가 발전시킨 현상학에서 기원하고 있다. 하지만 여기에서는 다양한 모빌리티의 경험이 축적되고 변형되며 또한 모빌리티를 둘러싼 권력의 작동과 영향력이 실현되기도 하면서 이에 대한 대안적 실천들과 행위들이 끊임없이 펼쳐지는 자리라는 의미를 가진다. 이러한 측면에서 이 총서는 모빌리티에 대한 다양한 성찰을 담은 연구들을 통해서 비판적인 모빌리티인문학적 접근 방식을 모색하고자 한다. 하지만 이러한 비판적 접근 방식의 방향은 곧바로 드러나지 않을 것이다. 다양한 우회로를 통한 치열한 이론적 토론과 개념에 대한 철저한 검토가 요구된다. 그 과정에서 학제적 접근도 요구되며 기존 학문분과의 견고한 틀과 한계를 넘어서기 위한 토론도 요구된다. 이 연구총서에 실린 글들은 이러한 치열한 고민과 토론들을 담고 있다.
모빌리티란 존 어리JohnUrry가 주장하듯이 공간적, 시간적, 물질적인 개념으로, 이는 단지 사람들이 어떤 주어진 환경에서 한 장소에서 다른 장소로 움직이는 방식에 관여될 뿐만 아니라 이러한 이동을 통해서 자연, 풍광, 도시, 공동체와 같은 환경들이 세워지고 사용되며 동시에 미학적으로도 인식되고 감상되는 방식과도 연관된다(Urry2000). 모빌리티가 변형되고 패턴화되고 또한 가속화되거나 저지되는 과정에서 다양한 사회문화적 규범들도 형성된다. 따라서 모빌리티 개념은 한 지역의 자연환경적, 물리적 특성뿐만 아니라 고유한 사회문화적인 규범과 질서의 형성 과정을 역사적으로 조명해 줄 수 있는 개념이다.
하지만 모빌리티에 대한 인문학적 성찰인 모빌리티인문학 연구는 사회과학과 인문학에서의 또 다른 고급 이론이나 세련된 개념을 주조하는 것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 고-모빌리티 시대에 새로운 사회상과 미디어 테크놀로지의 변화에 대한 기존의 논의에서 나타나는 이분법(공/사, 이동/정주, 글로벌/로컬, 현존/부재, 질서/혼돈, 중심/주변, 거시/미시)을 넘어서 모빌리티의 체현 과정과 역동성에 천착하는 새로운 사회이론 및 미디어 테크놀로지에 대한 인문학적 성찰과 사회적 문제 해결의 대안을 담을 수 있어야 한다. 일찍이 존 어리는 사회학자 게오르그 짐멜GeorgeSimmel의 근대성 이론과 복잡계 이론에 대한 재고찰을 통해 기존의 이분법적이고 정주주의적 사고를 넘어서는 모빌리티 사회이론을 정초했다(Urry, 2007). 이 연구총서는 인문학적 성찰과 사회적 대안 담론에 대한 토론을 위하여 그동안 사회학이론, 이주(디아스포라) 연구, 도시 공간 연구, 미디어 테크놀로지 연구 분야에서 다소 불균등하게 전개되었던 모빌리티 사회와 테크놀로지에 대한 논의들을 재검토하고자 한다.
이 총서는 1부 ‘모빌리티와 사회적 공간의 생산’, 2부 ‘모빌리티와 미디어 테크놀로지의 진화’, 3부 ‘모빌리티와 인간의 이동’으로 구성되어 있다. 먼저, 1부에서는 ‘공간적 전회spatialturn’ 이후 활성화된 도시 공간 이론을 비판적으로 살펴본다. 모빌리티 연구는 인문학과 사회과학의 학문 경계를 넘어서 모빌리티 패러다임이라고 할 수 있는 복합적인 지적 체계를 형성하고 있다. 모빌리티 패러다임으로의 이론적 전환은 주로 영국의 랭캐스터 학파LancasterSchool로 알려진 일련의 사회학자들에 의해서 주도되었다고 볼 수 있다. 모빌리티로의 이론적 패러다임 전환은 사실 80년대에 나타난 인문사회과학계에서의 ‘공간적 전환’의 확장과 깊이 연관되어 있다. 그동안 세계에 대한 해석에서 시간과 역사, 사회와 사회적 관계에 전통적으로 부여해 온 비판적 통찰과 해석적 힘을 “인간 삶의 실제 공간과 공간성에서도 발견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자각이 이 전환의 인식론적 토대”라고 볼 수 있다(장세용 2012, 276). 1부에서는 도시 공간 이론에 대한 비판적 조명을 통해 다양한 방식과 스케일scale로 생산, 소비되고 있는 사회적 공간의 생산 과정에 대한 비판적 분석과 접근 방식이 맺을 수 있는 모빌리티 연구와의 연관성을 비판적으로 검토한다.
2부에서는 모빌리티 연구와 미디어 테크놀로지와의 관계에 주목한다. 오늘날 모빌리티 테크놀로지는 무인자동차, 스마트시티, 사물인터넷, 그리고 인공지능 테크놀로지에 이르기까지 이른바 최첨단 테크놀로지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모빌리티와 연관된 미디어 테크놀로지에 대한 연구는 주로 미디어 커뮤니케이션 연구, 과학기술학 등과 같은 사회과학 영역에서 이루어져 왔다. 2부에서는 교통수단을 포함한 모바일 커뮤니케이션 기술 및 사물-인간 네트워크에 대한 기존의 기술결정론/사회결정론의 이분법을 뛰어넘어 고-모빌리티 시대에 사회와 테크놀로지의 관계에 대한 성찰들을 비판적으로 검토한다. 또한 4차 산업혁명에서의 디지털 테크놀로지, 자동주의, 사물인터넷, 빅데이터, 모바일미디어와 연관되어 우리 사회의 노동문제, 미디어 환경, 도시 교통체계 등의 구체적 현실에 맥락화된 경험적 논의들을 통해서 모빌리티 테크놀로지에 대한 비판적 접근 방식에 대하여 살펴본다.
3부에서는 인적 모빌리티에 대한 논의들을 살펴본다. 이주・난민・여행 등 초국가적 맥락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이주 문제와, 다양한 교통수단을 통해서 일상적인 맥락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모빌리티의 문제들을 함께 다룬다. 기존의 이주, 탈북민, 디아스포라, 여행에 대한 연구들이 초국가적 이주가 일상화되고 극도로 다양화되고 불균등한 형태의 인간 이동이 일상화되고 있는 현대사회에서 인간관계의 성격 및 불균등한 권력관계를 파악하는 데 어떠한 한계와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지 검토한다. 이를 통해 오늘날의 인적 모빌리티 연구에 있어서 계층・젠더에 따른 불평등 문제, 이주 궤적의 분화에 따른 갈등과 감시 통제의 심화와 같은 변화들이 어떻게 다루어져 왔으며 이러한 논의들은 모빌리티인문학의 관점에서의 인적 모빌리티 연구에서 어떠한 함의를 지니고 있는지에 대하여 살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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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첫 장을 여는 윤신희의 글은 모빌리티 개념과 그 이론적 배경에 대한 소개글로서, 다소 생소하고 혼란스럽게 보일 수 있는 모빌리티 개념을 알기 쉽게 설명하고 있다. 윤신희에 따르면, 모빌리티는 한국 사회에서 일반적으로 이동성移動性이라는 용어로 번역되어 이동 과정의 수월성 내지는 편의성을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된다. 하지만 영국의 사회학자 존 어리에 의해서 주도되었으며 일부 사회학과 지리학에서 이루어졌던 모빌리티 개념 및 다양한 사회공간이론에 대한 활발한 논의들은, 이러한 일반적인 의미의 이동성 개념을 넘어서 사람・사물・정보 등의 이동만이 아니라 이러한 이동들을 가능하게 하는 시설들, 즉 인프라infrastructure를 포함한다. 뿐만 아니라 저자에게 있어서 다양한 이동들, 즉 모빌리티스mobilities는 단순히 이동의 편의성・수월성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동 과정에 내재된 의미와 경험, 그리고 이동의 활동이 발생하는 장소, 그리고 개인들의 차별적인 이동 능력 및 네트워크 능력을 포함하는 다양한 공간에 대한 담론들과 연관된다. 즉, 모빌리티에 대한 논의는 공간 속에 사회적 관계들이 배치되고 작동되는 방식에 대한 논의와 필연적으로 연관된다는 것이다. 윤신희에 따르면, 모빌리티스가 다양한 공간에 관한 담론들과 연관되는 방식은 공간권력, 정치경제, 근대적 시공간, 포스트모던 공간성 등 ‘공간적 전환’을 통해서 등장했던 다양한 공간 이론들과 연관된다. 미셸 푸코, 앙리 르페브르, 데이비드 하비, 마누엘 카스텔, 게오르그 짐멜, 마르크 오제, 지그문트 바우만 등과 같은 학자들의 공간 이론을 통해서 모빌리티가 물리적 공간에서 관계적 연결 공간으로 전환되는 과정, 방식에 대한 다양한 설명 방식들을 보여 주고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보면 이동, 즉 모빌리티는 시간과 공간을 가로질러 맺어지는 다양한 연결, 즉 네트워크를 통해서 그리고 이를 목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 네트워크의 형성과 재형성 과정이야말로 현대사회에서 모빌리티를 둘러싼 불평등 현상, 권력관계 작동의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윤신희의 글이 모빌리티스 사회의 네트워크 공간에 주목하는 이유다. 여기서 모빌리티 패러다임 논의는 모빌리티를 통한 연결성과 관계성을 기존에 물질세계와 독립된 인간에 대한 인본주의적 가정을 넘어서 인간과 기계의 결합과 혼종성, 그리고 다양한 사물 및 테크놀로지(도구, 건물, 통로, 자동차, 정보기기 등)와 새로운 형태로 결합되어 확장될 수 있는 인간의 능력에 주목하고 있음이 강조된다. 더 나아가 오늘날의 모빌리티 역량은 범지구적인 사회조직에서 나타나는 새로운 네트워크 자본에 의해서 표출되며, 또한 새로운 형태의 불평등을 낳게 되는 요인으로서 향후의 고-모빌리티 사회에 대한 논의에서 핵심적인 분석 대상이 된다.
윤신희는 로버트 퍼트넘의 사회적 자본 개념을 모빌리티 자본으로 확장하여 설명하고 있는 카푸만의 논의와 어리의 네트워크 자본에 대한 논의를 통해서 현대의 고-모빌리티 사회에서의 불평등 문제에 대한 설명의 가능성을 타진하고 있다. 먼저, 카푸만에게 있어서 모빌리티 자본이란 장소와 시간에 제한받지 않는 접근 능력과 커뮤니케이션 능력을 말하며 이는 다른 종류의 자본(경제적, 상징적, 문화적 자본)을 보완하고 증강시킬 수 있는 자본으로 이해될 수 있다. 반면, 어리의 네트워크 자본은 모빌리티 자본을 더욱 확장시킨 개념으로 각 요소가 개별적으로 존재하기보다는 상호 연결을 통해서 총체적인 자본력으로 나타나며 또한 개인과 타인, 개인과 환경, 기술 등의 여러 요소들이 함께 결합되는 방식으로 나타난다. 이러한 측면에서 지리학 분야에서 모빌리티에 주목해 온 윤신희는 모빌리티 패러다임에서의 새로운 모빌리티 연구가 지리학의 한 분야인 교통지리학이 주로 계량적인 데이터를 전제로 한 경험적 연구에만 치중했던 편향성을 극복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주고 있음을 강조한다. 또한 동시에 교통지리학이 모빌리티 연구에 풍부하고 다양한 경험적 연구를 제공해 줄 수 있는 잠재성을 지니고 있음을 강조하면서 글을 맺고 있다.
1부의 두 번째 글은 미디어문화연구 분야에서 도시 공간 연구에 관심을 갖고 지속적으로 작업해 온 전규찬의 글이다. 전규찬은 미디어문화연구가 현실문화의 장이자 대중생활의 무대라고 할 수 있는 도시 공간으로부터 분리된 채 대중매체라는 협소한 틀 안에 머물러 온 경향을 지적하면서 이를 미디어문화연구의 위기로 규정한다. 세월호 재난 사태, 촛불 혁명, 젠트리피케이션 현상과 같은 최근 일련의 우리 사회의 재난적・위기적 상황에 대한 미디어문화연구에서의 불충분한 대응과 임무 방기에 대한 대안으로서, 전규찬은 발터 벤야민에 의해서 발전된 산책이라는 방법과 도시 공간의 현실에 천착하는 문화연구를 탈문맥화와 탈정치화의 위기에 빠진 미디어문화연구의 대안으로 제시한다.
전규찬은 이 과정에서 존 피스크라는 미국의 미디어문화연구자의 이론적 궤적을 추적하는 하나의 우회로를 거치고 있다. 피스크는 미디어문화연구에서 소위 ‘능동적 수용자론’이라는 유산을 논의할 때 가장 대표적으로 언급되는 학자다. 전규찬은 한국 사회의 미디어문화연구가 도시 공간에서 펼쳐지는 신자유주의의 지배와 통제의 현실, 훈육과 감시라는 도시 공간 현실에 천착하지 못하고 “텔레비전/문화/텍스트”의 내부에 머무르곤 했던 경향의 원초적인 이론적 배경이자 요인 중 하나로 자주 지목되는 피스크의 이론적 관심사의 변천 과정에 주목한다. 전규찬에 따르면, 미디어문화연구의 위기 혹은 탈맥락화, 탈정치화된 텍스트 분석 위주 경향의 이론적 근원을 제공했다고 평가되는 피스크의 후기 저작에서 나타나는 경향은 매우 역설적이다. 피스크는 후기 저작에서 텔레비전 문화 현상이라는 텍스트에서 벗어나 컨텍스트에 주목하고 있다. 피스크는 텔레비전 텍스트 분석에서 나와서 국가적 감시장치로서의 텔레비전, 국가의 시각화 권력이 감시와 독재의 전체주의적 국가를 도래시킬 수 있는 위험성에 주목하면서 테크놀로지 통제와 일상적 감시 활동, 치안국가가 융합된 악몽의 미디어 공간으로서 미국의 대도시에 주목하고 있었다. 또한 인종갈등과 계급 모순, 국가 감시, 미디어 통제로 점철된 일상의 문화와 도시 대중문화의 현실에 주목하고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보면 피스크에게 있어서 미국 대도시의 광장과 거리는 치안권력에 의해 폐쇄되고 감시카메라에 의해 장악된 채, 일방적 교통의 빈 공간으로 쇠퇴했으며 감시의 테크닉과 테크놀로지들이 분리된 이웃들의 생활세계를 황폐화시킨 것으로 이해된다.
피스크라는 미디어문화연구자의 이론적 궤적의 변화라는 우회로를 거쳐 전규찬은 마샬 버만과 미셸 드 세르토라는 도시 공간 연구자들을 호명함으로써 미디어문화연구와 도시문화연구와의 간극을 채우고자 한다. 전유appropriation의 실천적 사유가로서 세르토의 논의에 주목하면서, 전규찬은 그가 위로부터의 지배전략에 맞서는 아래로부터의 대항전술에 주목했음을 강조하고 있다. 세르토가 “산책散策이라는 말이 그대로 표현하고 있듯이 흩어져 은밀히 정세를 파악하고 차분히 정황을 살펴보며 또한 면밀히 빈틈을 찾아내는 테크닉을 통해 도시정치에 개입하는 글쓰기 전략, 의미화 실천 방식에 주목했던 점에 착안한다. 또한 마르크스주의 전통에서 도시문화에 대한 연구를 수행하고 있는 버만의 연구도, 자본주의 국가에 의한 도시 공간 개발의 폭력성과 역사성에 주목하면서 끊임없이 희망의 단서를 찾고자 했다는 점에서 도시문화연구의 중요한 자산으로 삼을 만하다.
미디어 텍스트에 매몰되어 탈맥락화되어 가고 있는 미디어문화연구 경향에 대한 비판과 이에 대한 대안적 시각의 모색 과정에서 제시된 전규찬의 도시문화연구의 접근 방식에 대한 논의는 모빌리티 연구가 어떻게 대도시 현실에서의 불평등, 감시, 훈육, 통제 문제에 비판적으로 개입할 수 있는지에 대한 비판적 토론으로서도 손색이 없다. 현대의 도시는 이미 모빌리티의 공간이다. 또한 모빌리티의 공간으로서 현대의 도시 공간은 모빌리티를 둘러싸고 수많은 정치경제적 이해관계와 사건, 그리고 재해가 유발되며 동시에 삶을 보존하고 인명을 구하기 위한 필사적인 노력이 진행되는 투쟁의 지점이자 저항의 포인트이기도 하다.
왜 모빌리티를 연구하는가? 이러한 측면에서 본다면 모빌리티 연구도 결코 현실 도시 공간을 꽉 채우고 있는 소외와 사물화, 멸절과 실종, 선전과 지배는 물론이고 저항과 전복, 희망과 생성의 온갖 기호들을 동시에 읽어 내야 한다는 도시 미디어문화연구에 대한 전규찬의 요구에서 전혀 자유롭지 않다. 비록 이름과 호칭은 다를지언정 모빌리티 연구의 필요성 문제는 도시 공간에서의 치열한 현실에 천착하고 이에 대한 대안적 시각을 제시하는 데 있어서 결코 분리되어 사유될 수 없다. 오늘날 대도시에서처럼 대형 재난, 테러, 불평등 그리고 테크놀로지에 의한 감시와 통제의 작동이 어떤 면에서는 모두 사람, 사물, 정보 데이터의 모빌리티를 둘러싼 인프라 및 모빌리티 역량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는 점만 착안해 보더라도 모빌리티 연구가 얼마나 도시 공간에 대한 미디어문화연구와 밀접하게 연관될 수 있는지 이해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1부의 마지막 글은 타자와의 공생이라는 화두를 통해서 도시 공간이론을 비판적으로 재검토하고 있는 김수철의 글이다. 이 글은 이주와 같은 초국적 모빌리티가 일상화되어 가고 있는 현실에서 모빌리티의 증대와 이로 인한 타자와의 마주침이 일상화되는 현실로 인해 새롭게 생성되는 도시의 모습, 생활세계 공간의 특성에 대한 논의를 살펴보고 있다. 모빌리티 연구에서 이주, 난민, 여행과 같은 인적 모빌리티에 대한 논의는 3부에서 본격적으로 다루고 있다. 김수철의 논의에서 주목할 점은, 초국적 모빌리티가 일상화되어 가고 있는 도시 현실에서 새롭게 생성되는 도시 공간, 즉 생활세계 공간의 특징에 주목하고 있다는 것이다. 폴 길로이, 마이클 하트와 안토니오 네그리, 리처드 세넷의 최근 이론에서 나타나고 있는 현대 도시의 문제에 대한 진단과 대안적 도시 공간에 대한 논의들은 초국적 모빌리티로 인해 생성되고 있는 생활세계 공간에 대한 논의에서 가장 핵심적인 문제들을 다룰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김수철에 따르면 초국적 모빌리티의 증대로 인해 변화하고 있는 도시 생활세계의 모습에 대한 논의에서 핵심은 타자의 문제, 즉 타자와의 마주침을 어떻게 조직화할 것인지의 문제로 요약될 수 있다. 공생에 관한 논의에서 길로이는 초국적 모빌리티가 일상화된 현실에서 고정된 정체성과 문화 관념에 기반을 둔 정체성의 정치의 한계를 인식하면서, 일상생활과 대중문화 영역에서 나타나는 보다 역동적이고 활발한 상호작용을 활성화시켜 분리적이고 코드화된 정태적 상호작용을 넘어설 수 있는 도시문화를 강조한다. 네그리와 하트 역시 그들의 공통체론에서 정체성의 정치가 정체성과 문화에 대한 정태적 접근으로 인해 가지는 한계를 지적하면서 현대의 메트로폴리스라는 장소를 다양한 공유자원, 즉 공통적인 것thecommon들의 저장고로 바라볼 것을 주문한다. 네그리와 하트에게 있어서 메트로폴리스는 건물, 도로, 지하철, 커뮤니케이션 인프라 등 모빌리티의 물리적 환경과 시설들이 집적해 있는 공간일 뿐만 아니라 문화적 실천, 지식, 제도, 다양한 정동affect의 네트워크들이 살아 움직이는 역동체로 자리매김되고 있다. 결국, 네그리와 하트는 초국적 모빌리티 시대의 새로운 사회정치적 대안으로 메트로폴리스에 집적되어 있는 모빌리티의 물질적 그리고 비물질적 자산을 통해서 소유의 문제를 넘어서는 새로운 주체의 구성과 사회관계의 형성을 위한 프로그램을 주문하고 있다.
정태적인 정체성의 정치의 한계, 기존의 도시 공간에 대한 기능적인 접근이 가지고 있는 한계에 대한 인식과 이에 대한 비판은 세넷의 투과도시porouscity 개념에도 이어지고 있다. 세넷은 투과도시라는 개념을 통해서 기존의 도시 공간과 공동체에 대한 정태적이고 결정주의적인 접근을 비판한다. 그리고 도시 일상생활 공간의 조직화에 있어서 분리와 배제에 바탕을 두면서 무질서와 비공식적 협력 관계에 무감한 접근을 벗어나 활발한 상호작용을 통해 형성되는 생성적 공간의 윤리와 정치에 주목하는 새로운 장소 만들기의 기획을 주장한다.
이상의 도시 공간에 대한 새로운 접근들은 모두 초국적 모빌리티 시대에 고도화된 모빌리티로 인해 등장하는 새로운 사회적 관계 및 주체 형성의 조건들을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인식하면서 이 새로운 현실 조건에서 가능할 수 있는 도시 공동체와 도시문화에 대한 논의들이라고 할 수 있다. 그 핵심에는 모빌리티의 고도화로 인해 타자와의 마주침이 일상화된 도시 현실에서 공간, 공동체, 문화, 정체성에 대한 기존의 정태적 접근의 한계를 넘어서 어떤 종류의 사회적 관계와 주체 형성의 정치와 윤리가 요구되는지에 대한 논의들이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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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에는 모빌리티와 미디어 테크놀로지와의 관계를 핵심 논의 대상으로 삼고 있는 세 편의 글이 실려 있다. 오늘날 모빌리티 테크놀로지는 소위 4차 산업혁명과 같은 최첨단 테크놀로지의 변화와 이에 대한 담론들과 가장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고 해도 무리가 아니다. 무인자동차, 스마트시티, 사물인터넷, 그리고 모바일미디어 테크놀로지 등이 그 예시들이다. 사실 모빌리티에 대한 담론은 테크놀로지에 대한 담론이었다고 해도 무리가 아니다. 자전거, 기차, 자동차와 같은 교통수단에서부터 전신telegraph, 오늘날의 스마트폰과 같은 모바일미디어 기기 등 미디어 커뮤니케이션 테크놀로지에 이르기까지 모빌리티 테크놀로지의 진화와 이에 대한 담론들은 모빌리티 자체에 대한 담론들과 분리시켜 논의하기 힘들 정도로 밀접하게 얽혀있다. 모빌리티와 테크놀로지—커뮤니케이션communication 테크놀로지와 교통transport 테크놀로지를 모두 포함하여—와의 관계를 논의할 때 인간과 테크놀로지의 관계, 테크놀로지와 사회와의 관계에 대한 근본적 시각과 입장들이 문제가 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2부의 첫 번째 박성우의 글은 모빌리티 시대의 테크놀로지, 인간, 환경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지에 대한 매우 근본적인 성찰을 담고 있다. 자동화사회 등 오늘날 테크놀로지에 대한 철학적 담론을 주도하고 있는 프랑스의 철학자 베르나르 스티글러의 테크놀로지에 대한 철학적 논의, 특히 자동주의에 대한 기술철학적 논의들을 검토하고 있다. 박성우의 논의에서 나타나고 있는 스티글러의 테크놀로지와 인간의 관계에 대한 새로운 시각은 최근 4차 산업혁명, 특히 무인자동차, 빅데이터, 인공지능 등과 같이 모빌리티 테크놀로지의 자동화와 이로 인한 인간 소외 문제에 대한 새로운 접근 방식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특히 자동성, 자동주의를 인간의 자율성에 정반대되는 것으로 보기보다는 인간 생명 작용의 기본으로 보고 오히려 자동성의 충분한 내면화(탈자동화를 포함하여)와 토대 위에서 진정한 자율성이 생성되는 것으로 보는 급진적 시각은 기존에 테크놀로지, 특히 모빌리티 자동화 테크놀로지의 변화 및 발전에서 인간 소외 문제를 색다른 시각에서 바라보게 한다.
박성우가 보기에 스티글러의 시각은 현대 테크놀로지 환경의 발전에 대한 인간 소외 문제가 단지 테크놀로지, 기계들이 사용자보다 더 똑똑해서 생긴다고 보기보다는 사용자들이 그 작동을 점점 이해하지 못하게 되면서 기술적 환경—여기에는 무인자동차 시스템, 빅데이터, 소셜미디어에 의한 가짜fake 뉴스의 확산 등이 포함된다—으로부터 점점 소외되어 가고 있는 데서 연유한다고 본다. 따라서 이에 대한 대안도 단지 인간중심주의로의 복귀나 단순한 기술 도구적(중립적) 시각이 아닌 현재의 ‘프로그래밍 기록 문화산업’에 대한 비판, 즉 시장・자본에 의한 지배와 권력의 역사성에 대한 비판적 사유가 강조된다. 또한 테크놀로지를 선과 동시에 악, 즉 파르마콘pharmacon으로 보는 스티클러의 시각은 모빌리티 체제의 진화 과정에서 등장하게 될 인간과 테크놀로지의 새로운 역사적, 물질적 관계 형성에 있어서 보다 생산적이고 긍정적인 구조화의 틀을 사유하고 또한 우리가 채택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박성우의 글 마지막에 강조되고 있는 스티글러의 자동화 테크놀로지, 미디어 테크놀로지에 대한 비판적 사유라는 맥락에서 두 번째 김한상의 글은 보다 구체적인 맥락에서의 자동화 테크놀로지 담론 분석을 제공하고 있다. 김한상은 80년대에 나타났던 한국 사회에서의 자동화 열풍에 주목한다. 제조업과 사무직 분야에서의 포드주의 생산 시스템 담론에서부터 편리한 자동성을 강조하는 세탁기・텔레비전 등과 같은 전자제품 광고, 자동판매기, 그리고 가장 중요하게는 엘리베이터와 지하철의 자동문, 시민자율버스 등의 모빌리티 체계mobilitysystem에 대한 사회적 담론에 이르기까지 김한상의 80년대 자동화와 관련된 테크노 담론의 대상들은 매우 다양한 만큼 또한 흥미롭다.
80년대 한국 사회에 불었던 자동화 열풍에 대한 김한상의 날카로운 사회문화적 분석은, 1997년 IMF 외환위기 이후 본격화되었다고 흔히 알려진 (국가정책과 경제 분야에서의) 신자유주의화의 단초를 80년대 자동화 담론에서 찾고 있다. 즉. 거시경제 교리나 정리해고, 비정규직 양산의 구조 조정 등의 국가정책이 아니라 사회적 에토스의 측면에서 자동화를 통한 자율성 획득, 자기규율, 혁신과 효율이라는 신자유주의적 통치성governmentality의 신화들이라는 측면에서 말이다.
김한상의 80년대 자동화 담론에 대한 분석은 우리 사회에 자동화 테크놀로지 도입으로 형성된 인간 주체(사용자, 혹은 노동자)와 테크놀로지 사이에 형성된 구조적 틀의 역사적・물질적 관계에 대한 분석의 모범적 사례로서, 모빌리티 테크놀로지와 이와 관련된 사회적 담론에 대한 비판적 인문사회 연구에서 더욱 발전・확대될 필요가 있다. 특히 저자의 자동화 담론에 대한 접근은 테크놀로지에 대한 논의들이 지나치게 산업적 가치나 의미, 혹은 새로운 기술의 출현에 의한 특정 사회적 효과에만 일면적으로 주목하는 경향과는 구분된다. 즉, 자동화 테크놀로지가 어떠한 사회문화적 경로와 담론 체계를 통해서 생활세계 속에서 소개되고 적응되고 혹은 거부되었는지 그리고 이러한 사회적 채택과 진화의 과정에서 한국 사회에서 모빌리티에 대한 사회역사적 담론의 특징과 자동화 기계 및 테크놀로지에 대한 일상적 의미들이 어떠한 방식으로 자리 잡게 되었는지에 대한 분석들을 제시하고 있다. 이러한 분석들은 상대적으로 흔치 않은 미디어 테크놀로지의 사회문화사적 접근이나 일상적 테크노 문화에 대한 접근의 한 사례로서 모빌리티 테크놀로지에 대한 계보학적 연구로 더욱 확장될 필요가 있다.
2부의 마지막을 장식하고 있는 이광석의 글은 모빌리티 테크놀로지에서도 모바일미디어 기기, 스마트폰을 매개로 나타나고 있는 사회문화적 현상에 주목하고 있다. 이광석은 우리 사회에서 청년 알바라는 특유의 노동 현실에 천착하여 휴대폰이라는 모바일미디어 테크놀로지가 어떠한 형태의 노동문화—노동 형태와 휴식 문화 등을 포함—형성에 이바지하고 있는지에 대한 질적 현장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모빌리티 테크놀로지는 교통수단 기술에 직접적으로 연관되어 새로운 모빌리티 체계 형성에 영향을 주기도 하지만, 또한 미디어 테크놀로지의 발전에도 연관되어 그 사회에서의 커뮤니케이션 방식에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오늘날 인공지능, 자동화 테크놀로지로 인해서 과거의 일자리가 사라질 것이라는 예측들에는 미래 사회에서의 핵심 테크놀로지로 인해 나타나는 인간 소외의 문제와 노동의 질적 변화에 대한 전제가 핵심적으로 존재한다. 알바 청년들에게서 나타나는 모바일 노동문화의 특성에 대한 저자의 연구는 넓게는 테크놀로지와 사회의 관계, 좁게는 모바일미디어 테크놀로지의 변화와 노동의 변화 사이에 어떤 단선적이거나 일면적인 인과관계나 효과를 손쉽게 상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생활세계에서의 모바일 테크놀로지 사용이 어떠한 사회적 현실과 제도에 결합되어 사용자들의 현실에 개입하,고 또한 사용자들은 어떻게 이러한 현실에 대응하는지에 대하여 차분하게 주목하고 있다.
이광석에 따르면 청년 알바노동 현실의 현주소를 볼 때, 모바일 기기는 이제 분리될 수 없을 정도로 청년들의 노동문화와 생활세계에 깊숙이 관련되어 있다. 그것은 한때는 노동시간 외의 휴식 시간에 대한 뚜렷한 규정이 없는 알바노동 문화에서 순간순간, 찰나의 휴식과 자유, 탈주의 기회를 제공해 준다. 하지만 스마트폰과 같은 모바일 기기의 사용은 어느 순간 시공간과 온/오프라인, 노동/휴식 시간의 모든 경계들을 무너뜨리면서 노동 속박의 연장을 실현시키는 가장 중요한 통제장치로서 돌변해 버렸다. ‘카톡 감옥’, ‘메신저 감옥’이라는 말들이 알바노동 현장에서 작동하고 있는 고용인과 피고용인 사이에 존재하는 유연한 노동 통제 및 관리의 현실들을 드러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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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부는 인간의 이동을 분석 대상으로 하는 글로 구성되었다. 여기에 실린 글들은 오늘날 인적 모빌리티와 관련된 인간의 이동, 즉 이주와 같은 국가 간 경계를 넘어서는 이동만이 아니라 일상생활에서 벌어지는 여행이나 출퇴근과 같이 일상적으로 이루어지는 이동을 포함하고 있다. 이러한 이동은 때로는 특정한 목적, 곧 출퇴근이나 일자리와 같은 경제적 이유, 혹은 난민의 경우처럼 정치적 배경을 가지고 이루어지기도 하며, 또 다른 경우에는 레저 활동의 일환으로 이루어지는 등 다양하다. 또한 인적 모빌리티는 국민국가에 의해 통제되는 이민이나 출입국 절차, UN난민기구와 같은 국제기구의 규약, (지자체) 정부의 교통정책 등과 연관되기도 한다. 더 나아가 인적 모빌리티는 한 사회, 공동체 내에서의 공적 공간과 사적 공간에서의 역사적 분리에 따라 형성된 사회문화적 관습, 여성・어린이・장애인・외국인 등과 같이 한 사회의 소수자들이 차지하고 있는 공적 공간에서의 권리나 이를 보장, 지원할 수 있는 테크놀로지나 인프라 시설 그리고 도시문화 등 이동 주체의 모빌리티 역량에 영향을 주는 요인들에 의해서 제각기 다양한 모습으로 존재하고 있다.
첫 번째 이희영의 글은 국가 간 경계를 넘어서 독일로 이주한 북한이탈주민의 난민으로서의 재현 과정 그리고 정착 과정을 포함하는 모빌리티의 과정을 난민에 대한 국제 ‘인권장치dispositiveofhumanrights’라는 맥락에서 살펴보고 있다. 여기서 ‘인권장치’란 인권과 직간접적으로 연관된 담론, 제도, 법규, 행정조치, 과학적・경제적 언표 등을 포괄하는 것으로 다양한 인권 담론들뿐만 아니라 각종 조치들, 신체적・정서적 경험들을 모두 포함한다. 구체적으로 이 글은 저자의 독일 지역에 거주하는 탈북 난민과의 인터뷰와 개인적 교류 및 관찰 경험을 바탕으로 북한-(중국)-남한-독일로 이어지는 이들의 이주 과정에 개입되어 있는 자본주의 이주 중개 체제—사적 중개조직, 국가 지원정책, 금융대출, 각종 인권 침해적인 경험 등으로 구성된—에 대한 탈북 난민의 경험을 분석 대상으로 하고 있다. 이를 통해서 저자는 명시적으로 밝히지는 않고 있지만 ‘행위자 네트워크론actor-networktheory’의 방법을 능숙하게 적용하여 기존의 북한이탈주민의 남한 사회 정착이나 제3국으로 탈남한 북한이탈주민에 대한 연구에서는 흔히 볼 수 없는 방식으로 탈북 난민의 이주, 모빌리티 과정을 인간/비인간 행위자들로 구성된 매우 복잡하고 혼종적인 네트워크 안에 위치시키고 있다. 이를 통해서 이희영은 탈북 난민의 형성 과정, 그리고 이들의 이주 네트워크에서 한국 정부에 의한 북한이탈주민 지원이 사실은 시민권과 국제 이주를 위한 비용 대출 자금을 제공해 주는 매개 역할을 담당함으로써 탈북 난민에 대한 이른바 ‘초국적 네트워크’ 형성 과정에 연계되어 있음을 설득력 있게 밝히고 있다.
인적 모빌리티의 관점이라는 측면에서 이 연구의 가장 흥미로운 점은—‘행위자 네트워크론’을 효과적으로 적용하고 있다는 점 외에도—저자가 주목하고 있듯이 탈북 난민들이 일상에서 반복하게 되는 그들의 ‘원형적 탈북 경험’에 대한 서사의 성격이다. 저자는 탈북 난민의 이 비극적 서사가 단지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머물게 되는 국가들에서 필요한 권리 요구를 위해서 반복적으로 그리고 때로는 전략적으로 변형되고 있음을 지적한다. 또한 탈북 난민의 신체도 언제나 동일하지 않음을 보여 준다. 즉, 북한 주민의 신체는 북한-중국-남한이라는 경계 넘기 이동의 궤적에서는 물리적 폭력, 죽음에의 위협에 직접적으로 노출된 ‘벌거벗은 생명’으로 위치지어지기도 하지만, 대한민국에 입국한 뒤에는 국가의 보호를 받는 탈북자이자 시민으로 등록됨으로써 자신의 손으로 서명을 할 수 있고 이를 통해 자본을 대출받을 수 있는 투기/투자자이자 자본주의 금융체제의 소비자로 재규정된다.
모빌리티 연구뿐만 아니라 이주 연구들에서 우리는 종종 고정되고 이상화된 정체성—그것이 정주적이든 노마드적이든—을 상정하거나 혹은 명확한 경계를 가진 불변하는 신체를 가정하는 사유 방식과 접근 방식을 관찰하곤 한다. 하지만 에린 매닝ErinManning(2009)이 지적하고 있듯이, 우리는 이상화된 정체성이나 불변하는 신체가 아니라 운동 속에서 그리고 이동의 과정에서 변화하는 운동의 역량motility이라는 관점에서 모빌리티를 사고할 필요성이 있다. 즉, 모빌리티를 어떤 정체성이나 본질의 단순한 실현이 아니라 주어진 환경, 공간의 제약, 권력의 작동 그리고 이동의 과정 속에서 다양한 사건들과의 조우를 통해서 변화하는 운동 역량의 결과로 바라볼 필요성이 있는 것이다(Bissell, 2018, p. xviii). 이희영의 연구에서 나타나고 있는 탈북 난민들의 변화하는 비극의 서사, 그리고 상이한 국경과 국가들을 거치는 이주 과정에서 탈북 난민들의 신체적 위치와 지위가 새롭게 규정되는 상황에 대한 분석은 단지 이주 연구에서만이 아니라 모빌리티 연구에서도 매우 중요한 모빌리티, 운동의 개념과 접근이 가지고 있는 뉘앙스를 구체적인 경험적 맥락에서 잘 드러내 주고 있다는 점에서 이 연구의 가치를 한층 더 높이고 있다.
방희경·류지현의 연구는 오늘날 서울 지하철이라는 매우 일상적인 공간에서 여성의 일상적 모빌리티 경험에 대한 자기기술지적 연구auto-ethnography를 통해서 한국 사회의 근대적 모빌리티 형성 과정에 각인되어 있는 젠더적 권력관계의 문제점을 비판적으로 들여다보고 있다. 서울의 지하철은 저자들이 밝히고 있듯이 60년대에서 70년대 경제 발전을 주도하던 국가의 기획으로 탄생한 국가주도적 모빌리티 시스템이다. 또한 지하철 공간은 다양한 소비 공간이나 상권의 형성에 매개 역할을 수행하면서 그 자체로 상업적 광고 등 소비 자본주의의 혈맥 역할을 수행해 왔다. 각각 20대와 40대의 저자들에게 지하철 공간이라는 생활세계 공간은 수많은 규칙과 규율이 이동하는 주체들의 신체적 움직임에 내재화되는 통제의 공간이기도 하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 글의 가장 중요한 초점이자 그 가치를 가장 빛내 주는 것은, 지하철이라는 공간을 젠더적 불평등의 공간으로 바라보고 있는 점일 것이다. 저자들에게 있어서 서울의 지하철 공간은 한편으로는 개인의 특성을 아랑곳하지 않는 ‘비장소’(Auge, 1995)의 특성을 지니고 있는 가운데, 다른 한편으로 남성중심적 가부장제적 질서가 강력하게 작동하고 있는 명백한 젠더 정치의 공간이다. 저자들은 출근길 지하철 공간에서 발생하는 성범죄, 남성중심적 가부장제 담론 등이 어떻게 서울의 가장 일상적인 이동 수단인 지하철이라는 공간을 가장 차별적이고 억압적이며 불쾌한 공간으로 만들고 있는지를 일상생활에서 저자 자신들의 신체적・정서적 경험을 통해서 드러내고 있다.
지하철 공간과 같은 근대적 공적 공간에서 여성 모빌리티의 문제는 이것이 가지고 있는 사회성과 그 중요성에 비해서 인적 모빌리티에 대한 연구에서 상대적으로 많은 주목을 받지 못한 연구 주제이다. 여성학자 김은실이 말하고 있듯이 60년대와 70년대에 걸친 한국의 근대화에 대한 연구에서 결여된 것은 ‘젠더’라는 의제다(김은실, 1999, pp. 99-100, 김원 2005, p. 726에서 재인용). 여성의 모빌리티라는 주제는 거리와 지하철과 같이 도시의 공적 공간에서 여성의 위치와 이동 권리 및 능력을 포함하는 모빌리티 역량이라는 문제와 직접적으로 연관되는 중대한 사회적 이슈로 그 사회의 성숙 정도를 알려주는 척도이기도 하다. 이러한 측면에서 방희경·류지현의 연구는 일상 공간에서 여성의 모빌리티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의 좋은 출발점이자 오늘날 한국 사회의 일상 공간에서 나타나고 있는 여성 모빌리티의 현주소에 대한 가치 있는 기록이기도 하다.
마지막으로 이용균의 연구는 여행이라는 경험을 ‘모빌리티 렌즈mobilitylens’를 통해 조망하고 있다. 여기서 ‘모빌리티 렌즈’란 저자가 말하고 있듯이 사회의 현상과 관계를 서로 독립적으로 작용하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하고 상호교차하는 관계로 이해하려는 시각을 말한다. 주로 영국의 사회학, 지리학 분야를 중심으로 발전되어 온 모빌리티 패러다임에서의 논의들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저자는 한국의 광주에서 일본의 오키나와까지의 항공여행에 대한 경험 사례를 통해서 오늘날 여행, 관광을 통한 모빌리티가 복합적으로 지니고 있는 그 관계적 성격을 드러내고 있다.
현대사회에서 가장 일상화된 모빌리티의 경험 중 하나인 여행에 주목해서 저자는 여행지 도시들의 장소적 특징(특히 연결성, 개방성, 개별성, 매력 등)에 대하여 논의한다. 또한 실제 여행(여기서는 주로 항공여행)에서의 이동 과정에 직접적으로 개입되는 모빌리티 체제mobilityregime라 불릴 수 있는 장치에 대한 통제 감시 체계 및 테크놀로지에 민감하게 주목하고 있다. 여기에는 자동차, 도로망의 확충과 발전에 영향을 주는 경제 성장 및 국가 통치권의 문제가 있으며 공항과 같은 현대 도시의 대표적인 모빌리티 공공공간과 그 주변 부대시설 및 이를 통제・관리하는 다양한 제도적 시스템들과 신체 식별 테크놀로지 등이 존재한다.
이 글은 또한 한국 사회의 맥락에서 공중 모빌리티aerialmobility에 대한 인문사회과학적 연구(Adey, 2010)로도 읽힐 수 있다. 공항이라는 장소를 구성하고 있는 인간적 요소만이 아니라 물질적 요소, 즉 비-인간적 요소들을 함께 살펴보면서 공항이라는 장소(여기서는 인천공항)가 지니고 있는 불균등하면서도 복합적인 층위를 흥미롭게 드러내고 있다. 모빌리티의 복잡성과 불균등성에 대한 모빌리티 사회이론의 시각을 통한 분석은 때때로 지나치게 기술적인 요소들에 대한 정량적 분석에 집중하거나 그 효과에 대한 논의에 그치는 경우가 있다. 이글은 테크놀로지를 비롯한 비-인간적 요소에 대한 인문사회과학적 논의가 어떻게 모빌리티의 일상적이고 정동적인affective이며 또한 신체적이고 인지적인 경험들을 적절하게 다룰 수 있는지를 보여 주고 있다.
이 연구총서에 실린 9편의 글들은 사회학, 지리학, 문화연구, 미디어연구 등의 분야에서 각기 상이한 주제와 접근 방식 그리고 연구 방법을 통해서 수행된 연구들이다. 하지만 이 연구들이 한 가지 공통적으로 동의하고 있는 지점이 있다면, 그것은 오늘날 현대사회에서 증대하고 있는 모빌리티를 둘러싼 다양한 사회적, 정치적, 그리고 기술문화적 의미와 실천의 중요성일 것이다. 또한 모빌리티를 둘러싼 다양한 사회적 불평등 현상과 통제권력의 작동 결과들이 나타나고 있는 생활세계의 모습을 날카롭게 분석하면서 이에 대한 대안을 찾고자 치열하게 고민한다는 점에서도 이 논문들은 비판적 모빌리티 연구의 소중한 사례들로 자리매김될 수 있을 것이다. 앞으로도 이 연구총서를 계기로 더 많은 연관 분야에서 모빌리티와 생활세계의 관계에 대한 다양한 시각에서의 비판적 논의들이 더욱 풍성하게 제시되길 기대해 본다.
이 글은 《국토지리학회지》 49(4)(2015)에 게재된 원고를 수정 및 보완하여 재수록한 것이다.
전통적으로 이동이란 장소와 장소들 간의 공간적 격리를 극복하기 위한 물리적 행위로서 간주되어 왔다. 그러나 고도의 이동성을 전제로 조성된 현 시대에서 이동이란 단순히 공간적 격리를 극복하기 위한 물리적 현상으로서의 의미를 넘어 매우 중요한 사회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오늘날 인간의 이동은 그 빈도가 증가하였을 뿐만 아니라 거리는 더욱 확장되었고 목적 또한 매우 다양화되었으며 특히 세계화의 경제구조 속에서 영역 내 이동이 아닌 탈영역적, 초국가적 이동이 급속히 증가하고 있다. 또한 인간의 물리적 이동뿐만 아니라 화물, 금융, 정보, 통신 등의 이동 역시 탈영역적으로 시공간을 넘나들며 가로지르고 있고 이러한 과정 속에서 사람들은 이동의 흐름에 맞추어 유동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다.
과거 카스텔Manuel Castells은 정보통신의 발달이 인간의 물리적인 이동을 감소시킬 것이라고 주장하였다(Castells, 1996). 그는 정보사회 내 지배세력(정보접근집단)과 종속세력(정보비접근집단)의 양극화에 따른 사회계층의 이중적 구조에 대해 설명하면서, 정보사회는 사이버 공간 내 실시간 다양한 정보의 교류에 의하여 정보 공간을 통한 네트워킹이 더욱 활성화되고 따라서 물리적 이동은 크게 감소할 것이라고 예상하였다. 그러나 현 시대는 이와 정반대의 현상을 보이고 있다. 특히 많은 사람들은 정보화 사회를 기반으로 더욱 확장된 사회적 교류와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유지하기 위하여 노력하고 있으며, 이러한 네트워크화된 정보화 사회 속에서 사람들은 좀 더 자유롭게 만남을 조직할 수 있어 오히려 공현존co-presence의 만남을 위한 이동은 더욱 증가하고 있다(Urry, 2007).
한편, 물리적 그리고 가상적 이동이 크게 증가한 현대사회는 이전에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위험을 초래하기도 한다. 이는 지난 2015년 여름 우리나라를 시끄럽게 했던 메르스 전염질병의 전파 사건과 최근 전 세계에서 발생하는 테러 등이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특히 테러의 경우 물리적 이동성의 증진은 테러의 동시다발적 발생을 가능하게 하였으며, 특히 정보통신기술의 발달에 따른 정보의 실시간적 접근 가능성은 테러 행위가 즉시 전 세계적으로 전파되는 결과를 유발할 수 있으므로, 역설적으로 이동성이 증진된 현대사회는 ‘효과적’인 테러를 위한 이상적인 조건을 제공하는 공간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고이동성을 전제로 조성된 현대사회에서 정상적인 삶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적절한 수준의 이동 능력은 필수적이다. 그러나 개인이나 집단의 이동 능력은 이들의 특성에 따라 많은 차이를 보이며, 이러한 과정에서 이동의 제약으로 인하여 필요한 시설이나 활동에 접근할 수 없는 개인이나 집단은 공간적으로 고립될 수 있는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리고 이러한 공간적 고립은 단순히 공간적인 차원을 넘어 특정 개인이나 집단이 거주하는 사회의 정치, 경제, 사회, 그리고 문화적 주류에서 배제되는 사회적 배제social exclusion의 결과를 유발할 수 있다(Kenyon et al. 2002).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현대의 고이동 정보사회에서 이동 및 정보획득 능력이 상대적으로 우월하고 이를 기반으로 사회적 네트워크social network를 적극적으로 구성하고 유지할 수 있는 개인이나 집단은 사회의 상위계층으로 진입할 수 있는 기회가 확장되기도 한다. 그리고 지역적으로는 물리적 이동과 가상적 이동의 통제 능력에 따른 지역 간 차이가 발생하기도 한다. 즉, 현대사회에서 이동이란 개인과 개인, 집단과 집단, 그리고 지역 과 지역의 차이를 조장하는 또 다른 요인이 되기도 한다.
이렇게 현대사회에서 이동이란 단순히 물리적이며 공간적인 영역을 넘어 매우 다층적인 사회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그리고 최근 일부 사회학자 및 지리학자들이 ‘새로운 모빌리티스new mobilities’라는 개념을 중심으로 이동의 전통적인 개념에서 벗어나 이동을 사회적 과정과 연계하여 조망하려는 새로운 시도가 대두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 사회과학 또는 인문학 분야에서는 이에 대한 논의가 아직은 미미한 실정이다.
뉴 모빌리티스Mobilities 개념의 선행 이론
전통적으로 우리나라에서 모빌리티Mobility는 이동성移動性이라는 용어로 사용되고 있으며 일반적으로 물리적인 이동 과정의 수월성 내지는 편의성의 정도를 의미한다. 그리고 여기서 이동이란 주로 사람의 물리적인 이동을 의미하며, 화물이나 정보의 이동은 운송 또는 전송 등의 용어로 구분하여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영국의 사회학자 존 어리John Urry를 중심으로 새롭게 전개되는 ‘모빌리티스mobilities’ 개념은 사람, 화물, 정보 등의 이동뿐만 아니라 이러한 이동들을 가능하게 하는 시설들도 포괄적으로 포함한다.
새로운 모빌리티스 개념을 체계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근대의 시공간에 대한 논의부터 포스트모던 공간성 개념, 공간적 전환이라는 시대적인 패러다임을 토대로 물리적 공간에서 어떻게 이동사회의 관계적 연결 공간으로 전환되는지 그 과정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새로운 모빌리티스 개념은 1980년대 출현한 공간적 전환의 확장으로 평가될 수 있으며(Sheller and Urry, 2006), 공간적 담론은 후기 근대 사상의 핵심 중 하나이다. 공간적 담론은 공간을 권력적으로, 정치경제적으로, 사회적 공간으로 접근하여 설명하며 어떻게 공간 속에서 사회적 관계가 배치되고 작동되는지를 설명하고 있다. 공간적 담론에서 모빌리티스 담론으로 넘어오며 그 논의의 중심엔 공간의 권력이 모빌리티스의 권리와 권력으로, 자본의 지배력이 모빌리티스 자본과 네트워크 자본 개념으로 확장된다. 모빌리티스로의 전환은 물리적 공간에서 사회적 공간으로의 변화, 그리고 사회적 공간의 모빌리티스 네트워크 공간으로의 전환을 말하며. 모빌리티스는 포스트모던 공간성 개념에서 출발해 게오르그 짐멜Georg Simmel의 이론을 초석으로 이후 카푸만, 크로셀, 존 어리에 이르기까지 여러 담론들이 모여 오늘날의 모빌리티스 담론에 이르게 된다.
권력의 공간
공간적 담론은 후기 근대부터 시작하였다. 그동안 인문사회학자들은 시간중심적 사고로 인간의 삶을 역사라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이해해 왔다. 그러나 1980년 이후 후기 근대로 접어들며 인간이 실제로 생활하고 그 삶 속에서 소통하는 방식들을 공간적 개념을 중심으로 발전시켜 왔으며 그 공간적 전환의 시작은 공간을 권력의 장으로 이해한 푸코Michel Foucault와 르페브르Henry Lefebvre에 의해 시작되었다.
푸코와 르페브르는 공간을 권력의 속성이 지배한다고 주장하였다. 푸코는 공간을 통한 권력의 배치와 작동을 통치술 개념을 통해 설명하고 있으며, 르페브르 역시 기존의 시간중심적 사고가 아닌 사회 갈등의 공간적 배치에 대해 주목해 공간을 설명하고 있다. 푸코는 중심지가 갖는 중요성과 그 안의 정치권력 시설물(왕궁 등)이 갖는 상징성 등을, 공간을 통한 복종이 공간정치로 표출된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공간을 권력적인 질서, 권력적인 입지의 대상으로 보아 그가 이전에 논의했던 규율권력1 개념이 갖고 있는 문제점을 개선해, 통치성 개념을 제시하며 공간을 설명하고 있다(심성보 외 역, 2014).
르페브르 역시 공간을 통하여 사회 전체의 지배력을 관찰하였고 권력 표출의 장으로서 공간을 설명하였다. 그는 1968년부터 1974년에 이르기까지 도시화 혹은 사회 공간 연구에 몰두하였으며,2 일상적인 사회생활과 연관성 속에서 공간을 이해하려고 노력하였다. 그는 ‘리듬 분석’3 개념을 토대로 공간과 시간, 일상성, 공간의 정치학 등을 종합적으로 연결시키고 의미들을 재해석하였으며(송영민, 2013), 인간의 몸을 중심으로 도시의 건물, 도로, 통행, 사람들의 이동을 공간과 연결시켜 관찰하였고 이러한 공간의 연결성을 인간의 생활과 연결시켜 설명하고 있다(정기헌 역, 2013).
정치경제의 공간
공간을 정치경제적으로 분석한 대표적 학자는 하비David Harvey와 카스텔이다. 하비는 1970년대 이후 서구 도시 연구에 자본주의에 대한 정치경제학적 연구를 결합시켜 정치경제학적 공간론을 발전시켰다. 그는 잉여자본들이 건조환경bult-environment으로 이동해 오며 과잉축적을 통해 도시화가 형성된다고 주장하며, 자본은 스스로 지속적으로 확장하기 위해 이동(수송) 시스템과 정보통신기술의 혁신이 필요하며 이러한 것은 모두 자본의 지배력을 받게 된다고 설명하고 있다(초의수 역, 1996; 유승호, 2013). 반면 카스텔 역시 자본의 지배력을 통한 이중 사회(지배-종속) 공간에 대해 설명하며 정보화를 통한 네트워크 사회를 강조하였다. 그의 이러한 주장은 정보화 사회를 통해 네트워크가 출현하였으며 정보 접근 능력에 따른 네트워크 사회의 지배집단(정보 접근이 높은 집단)과 종속집단(정보 접근이 낮은 집단)에 대해 집중하여 설명하고 있다. 그의 정보 사회와 네트워크 사회 이론은 점차 공간을 정치적 공간이자 사회적 공간으로 이해하기 시작하는 계기가 되었다.
유동의 사회 공간
물리적 공간을 사회적 공간으로 이해하는 데 초석을 마련한 학자는 뒤르켐Emile Durkheim이다.4 뒤르켐은 정보경제 및 시공간 구조의 변화를 통한 정보네트워크 사회에서 공간은 더 이상 사람들의 삶과 활동을 거주지에 고정시키지 않으며 개인들의 움직임에 따라 변모하는 대상이 된다고 설명하고 있다(박창호, 2008). 공간을 사회적 공간이자 연결(네트워크)과 유동의 공간으로 인식하여 인간의 상호작용 형식과 패턴을 설명한 학자는 짐멜이다.
짐멜은 자본화가 도시 공간에 확산되면서 도시는 점차 소도시에서 대도시로 확장되고 이를 통해 인간의 사회생활은 더 광범위해져 기존의 소지역 커뮤니티를 벗어나 더 넓은 관계의 커뮤니티를 형성하게 된다고 보았다(김덕영, 2007). 그러나 더 넓어진 커뮤니티의 형성과 더불어 정보통신기술이 함께 발달하여 사람들의 이동은 확연히 줄어들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현재 기술, 정보, 매체, 통신 등의 발달과 더불어 인간의 이동은 줄어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동의 요구는 더욱 높아졌고 이를 통한 인간의 이동은 더욱 빈번해지고 다양해졌다. 특히 장거리 항공시스템의 지속적 발전으로 인하여 더 많은 나라와 도시로의 이동을 위한 항공노선과 운항 횟수는 획기적으로 증가하였다. 이러한 과정에서 오늘날의 공항은 과거 마르크 오제Marc Auge가 구분한 비장소5의 개념이 아닌 모빌리티스의 공간으로서 수많은 사람들의 이동과 만남이 교차하는 공간으로 업무, 경험, 소비, 휴식 등이 가능한 이동의 사이공간이자 공항만의 상징성을 가지고 있는 오늘날 도시의 일부인 장소가 되고 있다.
짐멜의 연구는 근대적인 모빌리티의 형태에 대한 초기 연구로 근대적 삶의 일부와 다양함을 분석했으며 이동, 자극의 다양성, 장소의 시각적 전유가 삶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음을 보여 주고 있다(Urry, 2007). 짐멜은 이동을 통한 시각・후각・청각의 감각을 중시했으며 그중에서도 시각에 대해 특히 강조하였고, 시각적 감각으로 이동을 통한 사람들과의 직접 만남, 즉 눈을 맞추고 대화를 하는 과정에 큰 의미를 두어 직접적인 대면 만남을 통한 상호작용이 인간의 교류와 사회화에 미친 영향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Boden and Molotch, 1994). 짐멜은 인간의 도시생활을 도시의 공간적 형태 측면에서 설명하기보다는 움직임, 다양한 자극들, 장소를 통한 시각적 전유가 새로운 도시 경험에서 매우 중요한 특징이라는 것을 보여 주고 있다. 더 나아가 짐멜은 이동을 흐름이 아닌 유동의 개념으로 보아 이동성과 부동성의 상호 복합적 관계를 설명하고 있다(김덕영・윤미애, 2006). 즉, 그는 이동을 단순한 흐름이 아닌 다양한 부동성과 이동성의 복잡한 교차개념으로 인식하였다.
공간을 유동적 관점으로 접근한 또 다른 학자는 바우만Zygmunt Bauman이다. 바우만은 근대 이후를 액체근대로 규정하면서 공간을 가장 적극적으로 사회적・관계적 관점에서 분석한 학자 중 하나다(이수일 역, 2009). 그는 이동 속도와 더 빠른 이동수단의 발달은 근대에 접어들면서 이동의 즉시성을 중요한 권력의 도구로 격상시켰으며, 공간은 점차 유동성과 확장성의 지배를 받는다고 보았다(Bauman, 2005). 즉 이동 능력이 우월한 사람들이 사회적 우위를 점하면서 더 빨리 움직이고 행동하는 사람들, 즉 이동의 즉시성(순간성)에 가장 근접한 이들이 이제 사회의 지배계층이 된다는 것이다.
또한 들뢰즈Gilles Deleuze는 공간을 유동적이고 탈중심적인 권력을 갖고 있는 통제사회로 명명했다. 이러한 들뢰즈의 주장은 앞서 푸코가 주장한 공간을 통치사회로 설명했던 이론을 넘어선 주장으로, 공간을 연결의 공간으로 이해하며 이러한 네트워크로 연결된 이동적 공간을 통한 통제사회를 주목하고 있다(Deleuze, 1995).
이러한 연구들은 인문사회과학에서 이동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유발하는 동기로 작용하였으며, 최근 이러한 변화와 관련하여 가장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분야는 바로 이동과 사회적 과정 간의 연관성에 대하여 새로운 접근을 시도하고 있는 새로운 모빌리티스 개념을 중심으로 한 연구들이라고 할 수 있다.
새로운 모빌리티스 개념 및 네트워크 공간
모빌리티스mobilities 개념
새로운 모빌리티스 담론에서 ‘모빌리티스mobilities’라는 개념은 지리학이나 교통 분야에서 전통적으로 사용한 이동성mobility 개념과는 차별화되는 개념이다. 우선 용어상으로 ‘모빌리티스’라는 용어는 사람의 힘에 의한 이동, 즉 걷기 등과 더불어 자전거・버스・열차・선박・비행기 등 기술에 의존한 사람의 이동과 화물의 운송 등을 포함할 뿐만 아니라 로컬, 국가 그리고 글로벌 차원의 미디어를 통한 이미지와 정보의 이동도 포함한다. 또한 모빌리티스는 네트워크로 연결된 컴퓨터를 통한 개인-대-다자 또는 다자-대-다자 커뮤니케이션 및 전보・팩스・전화・휴대폰 등을 통한 개인-대-개인 커뮤니케이션뿐만 아니라, 사람과 정보 그리고 이미지 등의 흐름을 조직하는 고정적 하부시설과 경계 또는 게이트 등과 같이 실제적 이동이나 잠재적 이동을 제한하고 조정하고 규제하는 것들까지도 포함한다. 그리고 이러한 모빌리티스에 포함되는 요소들은 각각 독립적이고 분리된 영역들이 아니라 상호 의존적인 관계를 유지한다(Sheller and Urry, 2006).
이러한 모빌리티스라는 용어에 대한 기본 개념을 전제로 모빌리티스 연구는 인간의 이동에 관한 전통적인 연구들과는 달리 사람의 이동 과정을 단순히 목적지에서 목적을 수행하기 위하여 소비된 낭비가 아니라 하나의 ‘활동activity’으로 간주하며, 구체적으로 이러한 활동들은 이동 중의 대화, 일, 정보 수집 등을 포함한다. 따라서 새로운 모빌리티스에 관련된 연구들은 다양한 이동수단에 의한 이동 과정에 내재된 의미와 경험을 탐구하며, 이동 과정을 이러한 활동들이 발생하는 ‘장소’라는 개념으로 접근하기도 한다. 이러한 점에서 볼 때 모빌리티스 연구는 공간성spatiality과 스케일에 대한 우리의 전통적인 관념을 버리도록 하는 동시에 행위자는 특정한 시간에 한 가지 행동만을 할 수 있으며 이러한 활동들은 연속적인 관계로 진행된다고 가정하는 기존 인식을 부정한다(Urry, 2007).
또한 모빌리티스 연구는 사회적 관계가 개인의 물리적 또는 가상적 이동을 통한 다양한 연결고리를 전제로 진행되고 있다는 점에 초점을 두어 사회적 네트워크의 형성 과정 및 기능에 관심을 둔다. 그리고 네트워크의 형성 및 확대 그리고 유지 과정 등에는 개인의 물리적 그리고 가상적 이동 능력이 매우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며, 이러한 능력은 곧 개인의 사회계층 간 이동성의 향상 기여에 중요한 요인이 되므로 개인의 이동 및 네트워크 능력을 모빌리티 자본 또는 네트워크 자본 등의 개념으로 접근한다. 이렇게 모빌리티스 연구에서는 인간의 이동을 단일 차원의 개념이 아닌 인간의 역량, 즉 이동 능력과 조직력을 통한 사회적 관계를 이해할 수 있는 수단으로 매우 다층적이고 유동적인 개념으로 인식한다.
이러한 배경에서 어리는 ‘모빌리티스는 다양한 종류의 사람, 아이디어, 정보, 사물의 이동을 수반하고 유발하는 경제적·사회적・정치적 실천이자 이데올로기이며 인간의 좀 더 나은 삶을 영위하기 위한 권리이자 역량으로 현 시대의 새로운 인간 유형을 구분하는 또 하나의 자본’이라고 정의한다(Urry, 2007).
네트워크 공간
이동movement은 그 자체가 가지는 의미와 더불어 시간과 공간을 가로질러 사람과 사람을 연결connection한다. 즉, 이동은 연결을 만들고 이러한 연결은 네트워크network를 조성하며 이러한 네트워크는 현대사회에서 매우 중요한 기능을 수행한다. 따라서 많은 이동들은 새로운 네트워크를 만드는 동시에 자신의 네트워크를 확장하고 기존의 네트워크를 유지 관리하기 위한 목적으로 발생한다.
그러나 이동에 의하여 조성된 연결의 형태와 정도는 개인의 특성에 따라 상당한 차이를 유발한다. 즉, 네트워크 형성 과정에는 많은 비용과 노력 그리고 시간 등의 자원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러한 자원을 충분히 확보한 이른바 높은 수준의 ‘네트워크 자본’을 보유하고 있는 사람들은 그들이 이미 소유하고 있는 경제적 그리고 문화적 자본이 유발하는 이익보다 훨씬 많은 이익을 네트워크 자본을 통하여 얻을 수 있는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러한 배경에서 많은 이동들은 새로운 연결을 만들고 자신의 네트워크를 더 확산하거나 유지하기 위한 목적으로 발생한다. 이러한 점에서 볼 때 네트워크의 형성과 재형성 과정은 현대사회에서 힘의 관계에 핵심적인 역할을 하며, 이는 곧 사회 구성원 간 불평등성 발생의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Urry, 2012).
모빌리티스 사회의 네트워크 공간은 고정된 절대적인 물리적인 공간이 아니라 연결에 의한 비선형적 움직임으로 생성되는 관계적 공간이다. 또한 이동을 통한 연결성과 관계성은 인간과 기계의 결합, 즉 혼종성과 물질성을 강조하는 것으로 인간이 물질세계로부터 독립된 방식으로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는 인간 주체에 중심을 두던 인본주의와는 달리 인간의 능력은 다양한 사물 및 기술(도구, 건물, 통로, 자동차, 정보기기, 사물 등)과 새로운 형태로 결합하여 그 능력이 크게 확장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Urry, 2007).
기존 사회학에서 중요시하였던 네트워크 사회는 구성원 사이의 권력관계와 영향력 즉 우세성, 계층성, 중심성 등에 초점을 두어 전개되어 왔다. 그러나 모빌리티스 사회에서의 네트워크는 넓게 흩어져 존재하는 구성원들 간의 상호 연결성과 유지성에 초점을 두고 있다. 다시 말해 네트워크 구성원들 간의 상하 위계적 관계에 중심을 두는 것이 아닌 교류와 연결의 장, 참여의 장으로 네트워크를 개념화하고 있다. 특히 현 시대 사람들은 거주지와 직장, 그리고 여가 장소들이 서로 멀리 분산하여 존재하는 경향이 크며 세계화 시대 속에서 국경을 넘나드는 이동의 증가로 인해 네트워크 형성도 더 먼 거리의 국제적인 관계로 확산되고 있다. 또한 한 장소에 모여 살던 기존의 가족관계는 개개인의 생활에 맞추어 흩어져 존재하게 되는 분산형 가족관계로 확산되고 있다. 따라서 사람들의 네트워크는 과거와 달리 인접 지역에서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 상대적으로 멀리 떨어져 형성되는 것이 현 시대 네트워크의 실상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사람들은 지속적인 만남을 유지하기 위해 더 먼 거리를 이동하고 더 많은 시간과 비용을 소비해야만 하며 이러한 네트워크 교류는 네트워크 자본에 의존하게 된다. 모빌리티스 네트워크 사회는 인접 지역에서 항상 유지되고 연결되던 공동체적 네트워크 집단을 점점 약화시키는 반면, 더 먼 거리로의 네트워크 연결성을 확대시켜 다양하고 폭넓은 네트워크를 형성해 가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이러한 개인화되어 넓게 흩어져 있는 네트워크 사회에서 구성원들 간의 지속적인 교류와 관계 유지를 위한 대면 만남의 중요성이 강조되기도 한다.
지금까지 살펴본 네트워크 공간은 모빌리티스의 사회 공간적 접근성 정도와 인간의 모빌리티 역량 차이에 따른 사회적 갈등과 불평등이 새로운 형태로 표출되는 네트워크 사회 공간을 말한다. 이러한 모빌리티로 인한 불평등은 모빌리티와 네트워크 자본에 의한 것으로, 높은 네트워크 자본을 확보한 사람은 모빌리티 역량을 네트워크 형성 및 유지에 잘 활용할 수 있는 사람을 말한다. 따라서 오늘날의 모빌리티 역량은 범지구적인 사회의 재조직 속에서 나타나게 되는 새로운 형태의 자본이자 새로운 유형의 불평등 사회를 말하며, 더 나아가 향후의 모빌리티 사회는 기존의 시민권 개념을 새로이 정립하여 모빌리티 시민권 사회로 설명될 수 있어야 한다. <표 1>은 앞에서 논의한 근대 후기 이후 공간적 담론의 변화 과정을 간략히 보여 주고 있다.
<표 1> 모빌리티스 네트워크 공간으로의 전환
고-이동성 사회의 새로운 자본 출현
모빌리티스 사회의 네트워크에 대한 논의에서 중요하게 대두되는 개념들은 모빌리티 자본과 네트워크 자본이다. 따라서 여기서는 모빌리티 자본과 네트워크 자본 개념의 형성 과정에 대해 살펴본다.
모빌리티 자본
모빌리티 자본은 본래 사회적 자본에서부터 그 개념이 출발한다. 사회적 자본은 프랑스 사회학자 부르디외Pierre Bourdieu가 공산주의의 실패와 지배계층의 공고화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처음 사용한 개념이다(Bourdieu, 1997). 부르디외는 마르크스가 주장한 경제 자본 외에 다른 자본들의 중요성을 지적하는데 그것이 문화적 자본과 사회적 자본이다. 문화적 자본은 지배계급의 헤게모니를 확고히 하고 정당화하는 상징적 자산으로 지식이나 관념 등의 형태를 취한다. 한편 사회적 자본은 네트워크 자본이다. 즉, 연결망 자본을 의미하고 사회 지배계층은 네트워크 자본을 통해 부를 재생산한다. 그러나 이러한 사회적 자본의 개념은 미국으로 넘어오면서 그 의미가 변화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사회적 자본은 사회적 참여와 신뢰의 개념으로 사용된다. 이렇게 사회적 자본 개념의 변화를 이끈 사람은 미국의 정치사회학자 퍼트넘Robert Putnam이다. 그는 부르디외의 사회적 자본 개념을 개인들 사이의 연계를 통한 사회적 네트워크로 이해하였으며 그 안에서의 호혜성과 신뢰를 통한 규범으로 변화시켰다. 그는 미국사회가 점점 사회적 유대감과 소속감이 해체되면서 개인주의가 늘어나게 되었고, 이를 통한 개인적인 고립 또한 증가하였다고 설명하고 있다(Putnam, 2001). 퍼트넘이 설명하는 미국 사회는 시민들의 교육 수준은 향상되었고 여러 사회적 활동에 필요한 제반 비용은 감소되었고 사회경제적 지표의 결과도 좋아졌지만, 역설적이게도 정치적 참여와 개인 삶의 만족도는 낮아지고 자살률은 오히려 늘어나고 있다. 퍼트넘은 이러한 문제를 사회적 자본 개념으로 접근하여 설명한다.
퍼트넘은 사회적 유대의 해체를 정치 참여, 시민단체, 종교적 참여, 직장 등 공적인 영역에서 사적이고 일상적인 영역인 교류, 어울림, 정직, 신뢰 등의 태도에 이르기까지 살펴보았다. 그리고 왜 사회적 자본이 하락했는지, 또 사회적 자본이 공적・사적으로 어떻게 중요하며 왜 증대시켜야 하는지를 설명한다. 퍼트넘은 사회적 자본은 시민의 사회적 참여를 북돋으며 삶의 모든 영역에서 인간을 더 건강하고 행복하게 만드는 핵심이라고 이야기하며, 사회적 자본이 다시 강화되어야만 개개인으로 파편화된 미국 사회가 다시 하나의 공동체로 소생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또한 사회적 자본은 지역사회에 토대를 두고 발생하는 것으로 지금과 같은 개인화되고 파편화된 네트워크는 사회적 자본을 오히려 약화시키는 주요 원인이 된다고 보았다. 이는 사적인 사회적 자본보다 공적인 사회적 자본을 중요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