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역周易》에 ‘동심지언 기취여란同心之言 其臭如蘭’이란 말이 있습니다. 신영복 선생의 ‘입장의 동일성’을 떠올리게 하는 문장입니다. 여러 종류의 번역이 있지만 저는 다음과 같이 이해하고 있습니다. ‘뜻이 맞는 사람의 말에서는 난초와 같은 향기가 난다.’ 무엇보다 ‘동심同心’에 주목한 까닭입니다. ‘마음이 같다’ 혹은 ‘뜻이 맞다’ 어느 해석이든 이는 신영복 선생이 말하는 ‘입장의 동일성’과 연결됩니다. 선생은 ‘입장의 동일성’을 인간관계의 최고의 형태로 보았습니다. 그러므로 입장이 동일한 사람에게서는 난초와 같은 향기가 난다고 해도 해석의 지나침이 없습니다.
그런데 현실은 여전히 거짓말 같고 잘못 꾼 꿈 같습니다. 비현실적 현실입니다. 지난 100여 년 동안 우리는 식민의 시대와 전쟁, 두 차례의 쿠데타와 30여 년의 독재라는 비현실 위에 묶여 있었습니다. 야만의 계절이었고 출구가 보이지 않는 길고 긴 터널의 시간이었습니다. 터널의 끝에서 온 열망을 다하여 문 하나를 열었을 때, 거기에는 환희와 영광이 아닌 오늘이라는 또 하나의 비현실적 터널이 이어져 있었습니다. 자본의 교묘하고 은밀한 유혹 앞에 우리를 벌거벗겨 내던져버린 오늘이라는 터널은 우리에게 각자도생各自圖生에 충실한 자세를 가르치고 다그치고 있습니다. 입장이 동일한 사람을 만나는 게 점점 어려워지는 이유입니다.
그러므로 선생을 호출하는 것은 불가피합니다. 각자도생의 사슬을 끊어낼 수 있는 선생의 지혜가 필요한 까닭입니다. 입장의 동일성을 회복하여 각자가 아니라 ‘여럿이 함께’ ‘더불어 숲’을 만들어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존재에서 관계로’ 나아가는 ‘가장 먼 여행’을 떠나야 하기 때문입니다.
신영복 선생이 영어囹圄의 몸에서 풀려난 1988년은 여전히 엄혹한 시대였습니다. 군사정권은 시민들의 민주화 요구에 부응하지 못했습니다. 그때 저는 20대 초반이었고, 거리와 광장에 어울리는 시간을 살았습니다.
선생을 처음 만난 것은 1998년 무렵이었습니다. 민주 정부가 들어선 이후였지만 한편으로는 IMF 시절이기도 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민주화의 열매를 기대했으나 시민들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도산과 폐업과 실직이었습니다. 누구라도 지치고 외롭고 의지할 데 없는 고아 같은 세월이었습니다. 그 무렵 운명처럼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을 읽게 되었습니다. 한 권의 책이었지만 선생의 전 생애를 만나는 기분이었습니다. 지금까지 그 어떤 책에서도 맛보지 못했던 정직한 울림으로 제 안이 채워지는 느낌이었습니다. 이후 《담론》에 이르기까지 선생의 세계에 오래 취하게 되었습니다.
선생은 스승이라는 말이 참 잘 어울립니다. ‘우리시대의 큰 스승, 우리 시대의 참 스승’ 이런 표현이 더 적합하겠습니다. 선생은 20년을 세계와 격리되어 있었음에도 세계에 대한 애정과 관심의 끈을 놓지 않았습니다. 자유의 몸이 된 이후로 선생은 청년들 곁을 지켰고 청년들의 미래와 소통하였습니다. 그 결과 그의 사상의 생태계는 놀라울 만큼 풍요로워졌습니다. ‘더불어’, ‘여럿이 함께’, ‘변화’, ‘창조’, ‘공감’, ‘실천’, ‘공존’, ‘차이와 다양성’ 등등이 강연과 책을 통해 한 알의 밀알처럼 세상 속으로 뿌려졌고 수많은 독자들의 양심과 의식에 푸른 싹이 돋게 되었습니다.
지난 여름 원고 청탁을 받았을 때 조금 망설였습니다. 평소 선생의 사상을 정리해보리란 욕심이 없지 않았으나 선생에게 누가 되지 않을까 걱정이 앞섰습니다. 그럼에도 거절할 수 없었습니다. 누군가는 선생의 사상을 정리해야 선생과 시대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저는 선생의 깊고 푸른 그늘에 들어섰습니다. 그러나 세상사 쉬운 일 없듯, 선생의 세계를 탐험하는 내내 난파선에 올라탄 사람 같았습니다. 여러 사람들이 선생의 세계를 애정 어린 눈빛으로 들춰 보고 지나갔으나 그 흔적들이 연결되어 있지 않아 아쉬웠습니다. 그래서였을 것입니다. ‘선생의 사상의 생태계를 제대로 그려내 보리라. 선생을 통해 비현실적인 우리 시대를 정교하고 정밀하게 들여다볼 수 있는 힘을 기르리라’ 생각했습니다.
오늘도 선생의 강연을 듣습니다. 선생이 남겨주신 말씀과 그림과 문장을 듣고 보고 읽으며 순하고 선해지는 순간에 서 있습니다. 최악의 상황에 유배되어 있었으면서도 그곳에서 최선을 발견한 선생의 안목과 여유와 넉넉한 품성이 그리워지는 순간입니다. ‘햇빛 한 장 때문에 자살을 하지 않았다’는 선생의 고백 앞에서 욕망의 무게를 가늠해보았고, ‘사람이 최고의 교본’이라는 선생의 말씀 앞에서 겸손과 겸허를 읽었습니다. 무엇보다 ‘가장 먼 여행’을 읽으면서 실천 없는 지식의 한계를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그러는 동안 소소한 웃음으로, 더러는 비장한 눈빛으로 ‘나무가 숲으로 완성’되어 가듯이 선생의 세계에 물들었습니다. 이보다 황홀한 계절은 없습니다.
지금도 이후로도 선생의 모든 이야기를 오래오래 경청할 것입니다. 선생이 염원하던 더불어 사는 세상이 실현되는 데 말석이라도 차지하고 있을 것입니다. 변방의 정신으로 무장하고 말이지요. 모든 생명을 살리며 흘러가는 물처럼 하방下方으로, 하방으로 걸어가겠습니다. 선생의 깊고 큰 발자국에 저의 작고 초라한 발이 아직 헐렁하더라도 멈추지 않겠습니다. 그런 까닭에 이 글은 선생의 사상에 대한 주석이요, 밑그림입니다. 더 깊이 있는 연구를 기다리는 또 하나의 시작입니다.
참고로 이 책의 출발점을 밝혀둡니다. 이 책은 서울특별시교육청 교육연수원의 ‘2018년 원격 연수 콘텐츠’로서, 인문학 특강 ‘신영복의 더불어 숲’ 강좌의 원고를 수정 보완한 것입니다. 지난여름부터 겨울까지 세 계절을 함께하며 동고동락한 고우리 연구원과 하태훈 부장께 고마움을 전합니다. 원고 마디마디에 숨을 불어넣어 신영복 선생 곁을 풍성하게 만들어준 헤이북스 윤미경 대표께도 감사드립니다.
이 책이 선생께 누가 되지 않기를 바라며.
2019년 2월 볕 좋은 겨울
북한산 아랫마을 제각말에서 선생을 받아 적다.
일러두기
이 책의 본문 속에 실린 신영복 선생님의 글을 포함한 모든 인용 글들은 저작권자와 해당 출판사에게 이용에 대한 동의를 받았습니다. 극히 일부 연락이 닿지 않은 저작권자와 해당 출판사가 있는데, 이분들에게는 지속적으로 연락을 취하여 이용에 대한 동의를 구하겠습니다.
머리가 이성적인 영역이라면, 가슴은 공감의 영역이다.
머리로부터 가슴으로 가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가 생각하라고 할 때
‘전 두엽에 손을 얹고 조용히 생각하라’고 말하지는 않는다.
‘가 슴에 손을 얹고 생각하라’고 한다.
신영복, ‘시민학교 특강’에서
너에게로 가는 여행
‘가장 먼 여행’은 《담론》의 첫 번째 이야기입니다. 신영복 사상의 전부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닙니다. 처음 이 이야기를 접했을 때 누구나 물리적 공간 이동을 생각합니다. 저 또한 그랬습니다. 가장 먼나라 혹은 제일 먼 여행지 등을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가장 먼 여행’은 물리적 공간 이야기가 아닙니다. 나와 타자와의 관계 이야기입니다. 타자와의 공감과, 공감의 실천으로서의 여행이 ‘가장 먼 여행’입니다.
여행처럼 좋은 일은 없습니다. 떠나기 전의 설렘만으로도 여행은 우리를 서정적으로 만들어줍니다. 보이지 않던 것도 보이고 들리지 않던 것도 생생해집니다. 물론 지루하고 고단한 일상을 벗어나는 일 자체로도 행복합니다.
여행의 백미는 ‘낯섦’에 있습니다. 낯선 풍경과 낯선 음식들 그리고 낯선 사람들, 어느 것 하나 가슴 뛰게 하지 않는 것이 없습니다. 꽃을 피게 하려고 바람도 햇볕도 가만 숨을 죽인다는 이호우의 시 〈개화〉처럼 여행은 우리의 오감을 모두 열리게 만들어줍니다. 잊고 있던 내가 회복되는 시간이 여행입니다.
그런데 신영복의 여행은 조금 다릅니다. 그가 만들어놓은 여행은 공간 이동이 아니라 사람 이동입니다. 서울에서 광주 혹은 부산으로 가는 여행이 아니라 내가 너에게로 가는 여행입니다. 아니 내가 타자에게 이동하는 일입니다. 타자의 삶에 관계하고 그의 삶에 공감하고 그를 통해 실천하고 변화하는 것이 여행입니다. 그의 여행은 자아를 이동시키는 최고의 경험입니다. 내가 나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너에게로 건너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너라는 여행지’는 낯설지만 아름답습니다. 여행지의 하늘이 유난히 높고 깊고 푸르듯이 ‘너라는 여행지’는 내가 아닌 것들로 빛이 납니다. 너는 신비로 가득 차 있습니다. 너에게 들어서면 사람도 사물도 풍경까지도 존재하는 모든 것이 낯섭니다. 너는 불편한 아름다움입니다. 아직껏 겪어보지 못한 미지의 세계입니다. 너는 낯설고 또한 나를 설레게 합니다.
흔히 여행을 말할 때 ‘투어tour’와 ‘트래블travel’을 구분합니다. 투어가 관광으로서 둘러봄이자 지나감이라면, 트래블은 자기 발견입니다. 물리적으로는 지도상의 길을 걷는 것이지만 심리적으로는 자기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트래블이라고 합니다. 여행의 고수는 자기 안을 걷는 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타인의 삶과 교류하고 교감한다고 합니다. 여행지에서 타자의 삶과 관계를 맺는 것, 이것이 여행의 참의미라는 것입니다. 가령, 석양 녘에 이삭을 줍는 농부가 있다고 칩시다. 투어의 경우라면, 그 장면을 석양과 함께 카메라에 담을 것이고 익히 알던 밀레의 그림을 보았다는 감정에 멈출 것입니다. 이삭줍는 농부의 표정이나 고단함은 볼 수 없거나 보려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농부를 본 것이 아니라 그 광경을 둘러보고 유사한 이미지를 떠올리는 데 그쳤기 때문입니다. 반면 트래블의 경우라면, 그것도 여행의 고수라면 어떻게든 농부와 자기를 연결 짓습니다. 그는 농부의 삶을 대상화하지 않습니다. 농부의 삶의 현장에 동참합니다. 그는 기꺼이 타인의 삶에 개입되는 불편함을 감수하는 사람입니다. 나를 건너서 타자에게로 향하는 여행, 이것이 신영복의 여행입니다.
신영복은 《담론》에서 ‘가장 먼 여행’을 ‘머리→ 가슴 → 발’로 이어지는 그림으로 제시합니다. 그림 세 개는 개별적이면서 또한 연속적입니다. 그림의 왼쪽은 머리, 즉 이해와 인식을 의미하고 가운데 가슴(하트)은 공감을 의미합니다. 오른쪽의 발은 실천과 변화를 의미합니다. 그림 사이에 오른쪽 방향의 화살표를 넣으면 여행의 진행 방향이 됩니다. 단절이 아니라 연속, 즉 머리에서 가슴으로 다시 가슴에서 발로 이어지는 매우 단순한 여행 지도가 완성됩니다.
사실 신영복은 복잡하게 말하는 법을 모르는 사람 같습니다. 그의 사상은 그의 삶처럼 담백합니다. 복잡한 사상도 누구나 이해할 수 있도록 단순화시킵니다. 그는 화려한 수사를 사용하지 않습니다. 어떤 어려운 사상과 사유도 그의 손에 이르면 단순해집니다. 마치 ‘나는 심플하다’고 선언했던 서양화가 장욱진의 단순함을 닮아 있습니다.
외면하다
수년 전의 일입니다. 젊은 엄마가 지하철 안으로 유모차를 끌고 들어왔습니다. 때마침 주변의 할머니들이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귀엽다, 귀엽다’ 했습니다. 재래의 관습으로 보면 언제 어디서나 목격할만한 일이었습니다. 너, 나가 따로 존재하지 않는 공동체에서는 그랬습니다. 그럼에도 아이의 엄마는 할머니들에게 거칠게 소리를 지르며 만지지 못하게 했고 심지어 우유병으로 할머니를 폭행했습니다.
이 사건은 주변에 있던 사람들뿐만 아니라 사회 전반을 충격에 빠뜨렸습니다. 젊은 엄마 입장에서 보면 위생 문제를 고려한 것일 수 있고, 아이에 대한 강한 보호 심리가 작동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상식적 관점에서 보면 젊은 엄마를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내 아이를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타인을 폭행하는 것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이 사건의 파장은 여기에 머물지 않습니다. 젊은 엄마 한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공동체의 민낯이 그대로 드러난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신영복은 말합니다. “하루 40여 명이 자살하는 사회다. 그럼에도 다수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 살아 있고 살아간다. 이상하지 않은가.” 이상한 일입니다. 하루에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자살한다는 것도 이상하지만 그럼에도 아무도 반응하지 않는 것은 더 이상합니다. 시인 이성복이 그의 시 〈그날〉에서 말했던 ‘모두 병들었는데 아무도 아파하지 않는다’와 우리 현실은 지나치게 닮아 있습니다. 애써 외면하는 일이 어디 이뿐일까요? 지금 이 순간에도 무관심 속에 아파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을 것입니다. 외면은 뼈아픈 흉기입니다.
하루 40명이 자살하는 우리 사회를 향하여 신영복은 ‘더불어 숲’을 대안으로 제시합니다. 혼자가 아니라 ‘여럿이 함께’ 하자. 고립된 나무가 아니라 여럿이 어울려 더불어 숲이 되자고 말합니다. 그에게 사람이란 ‘한 발로 걷는 존재’에 불과합니다. 두 발이 완전함을 의미한다면 한 발은 불완전함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불완전한 존재인 내가 완전해지려면 발이 하나 더 필요한데, 그는 이를 ‘목발’에 비유합니다. 목발은 온전하고 완전하게 걸을 수 있는 필수 조건입니다. 신영복의 ‘목발’은 단순한 물질이 아니라 타인의 삶이자 살아온 내력입니다. 나의 불완전함을 해소시켜 완전한 나로 만들어줄 존재 근거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더불어 숲 안에서 서로의 목발이 되어준다면 우리의 숲은 한층 더 건강해질 것입니다. 이러한 신영복의 ‘함께’ 철학은 그래서 우리의 존재의 근원에 관한 것입니다.
우리는 언젠가부터 뿔뿔이 흩어지고 있고 흩어져 있습니다. 오늘처럼 각자도생이라는 말이 잘 어울리는 순간도 없지 않나 싶습니다. 내가 아닌 타인의 삶은 물론 공동체를 생각할 겨를이 우리에게는 없습니다. 우리는 다만 내 한 목숨 부지하기 위해 살아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 까닭에 신영복의 사상은 더 빛이 나고 값집니다. 그의 ‘더불어’ 살자는 논리는 ‘아이 하나를 키우는 데는 마을 전체가 필요하다’는 아프리카 속담과 맥이 같으며, 공자孔子가 구상한 ‘대동사회大同社會’와 플라톤이 그려낸 ‘이상理想 국가’의 모습도 있습니다. 이들 사회는 온 공동체가 아이를 키웁니다. 아이가 공동체의 미래이며 근간이기 때문입니다.
머리에 머물다
우리는 필요 이상으로 많은 것을 알고 있습니다. 반드시 알아야 할 것들에서 몰라도 그만인 것들까지 참 많은 것을 알고 있고 또 알아가고 있습니다. 자유로운 접속의 시대가 선사한 과잉 정보가 오히려 문제가 될 지경입니다. 미국의 작가 로버트 풀검Robert Fulghum은 ‘내가 정말 알아야 할 모든 것은 유치원에서 배웠다’고 말합니다. 한 사람으로 그리고 한 사회의 공동체 구성원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지 유치원에서 모두 배웠다는 것입니다. 공감하고도 남음이 있는 말입니다. 역설적으로 생각해보면 이후의 삶은 아는 것을 실천하는 삶이 아닐까 합니다.
문제는 생각이 생각에 멈춰 있고 아는 것이 아는 데서 멈춰 있다는 점입니다. 생각도 아는 것도 외부로 확장되지 못한 채 자기 안에 머물 때, 그것은 고여 있는 물입니다. 출구 없이 지향 없이 쌓이기만 하는 지식, 모이기만 하는 생각은 오히려 자기에게 해롭습니다. 고인물이 썩는 것처럼 출구 없는 지식은 흉기가 될 수 있습니다. 물론 아는 것은 중요합니다. 실천의 시작이 아는 데 있기 때문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 식으로 말하자면 모르면 비겁해지고 무모해집니다. 반면 아는 것만 과도하면 만용에 빠질 수 있습니다.
신영복을 관통하고 있는 핵심 언어는 ‘존재로부터 관계로’가 아닐까 합니다. 물론 ‘공감’, ‘공부’, ‘함께’, ‘숲’, ‘연대’, ‘변화’, ‘실천’, ‘자유’ 이런 주옥같은 말들이 그의 사상의 집을 이루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존재로부터 관계로’를 으뜸으로 치는 이유는 이 말이 나머지 모두를 수렴하고 있고 나머지 모든 사상의 궁극적 지향이 여기에 있는 까닭입니다.
신영복은 개인을 두 가지 개념으로 나누어 설명합니다. 하나는 존재적 개인이고, 다른 하나는 관계적 개인입니다. 전자는 자기 존재 안에 고립되어 있는 개인이고, 후자는 전자를 넘어서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 자신을 실현하는 개인입니다. 전자가 나무에 머물러 있다면 후자는 나무들이 모여서 만들어낸 숲으로 나아간 상태를 의미합니다. 숲은 건강한 나무, 병든 나무 모두를 포용하고 키 큰 나무, 키작은 나무가 함께 어우러져 있습니다. 이를테면 ‘여럿이 함께’ 기대어 있습니다. 이러한 그의 생각은 그의 글씨에 대한 식견에서도 발견됩니다.
실상 획의 성패란 획 그 자체에 있지 않고 획과 획의 ‘관계’속에 있다고 이해하기 때문입니다. 하나의 획이 다른 획을 만나지 않고 어찌 제 혼자서 ‘자(字)’가 될 수 있겠습니까. 획도 흡사 사람과 같아서 독존(獨存)하지 못하는 ‘반쪽’인듯합니다. 마찬가지로 한 ‘자’가 잘못된 때는 그 다음 자 또는 그 다음다음 자로써 그 결함을 보상하려고 합니다. 또 한 ‘행(行)’의 잘못은 다른 행의 배려로써, 한 ‘연(聯)’의 실수는 다른 연의 구성으로써 감싸려 합니다. 그리하여 어쩌면 잘못과 실수의 누적으로 이루어진, 실패와 보상과 결함과 사과와 노력들이 점철된, 그러기에 더 애착이 가는, 한 폭의 글을 얻게 됩니다.
신영복,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의 〈서도의 관계론(關係論)〉 중에서
한 폭의 글을 얻기까지의 지난한 과정을 진술한 이 문장은 문장에 대한 이야기이면서 사람이 어떻게 완성되어 가는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획이 획에 기대어 글자로 완성되듯 사람 또한 다른 사람 없이 독존할 수 없음과, 다른 사람을 통해 하나의 글자처럼 완성되어가는 존재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한 획의 실수가 다른 획을 만나 보완되듯 한 사람의 불완전함은 다른 사람과의 만남을 통해 완전해짐을 말하는 것이자, 글자가 여러 획으로 완성되듯 사람 또한 여럿이 함께 함으로써 완성됨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머리에 머물러 있지 않으려면 타자를 만나야 하고, 타자를 만나기 위해서는 자기 바깥으로 나와야 합니다. 자기 안에 갇혀 있으면 그 무엇도 불가능합니다. 문제는 자기 바깥으로 나가는 데 결단과 용기가 필요하다는 점입니다. 자기 안은 안전하고 바깥은 불안한 세계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안전한 안을 버리고 불안한 바깥을 선택하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닙니다. 바깥에 대한 경계는 본능 같은 것입니다. 모험보다는 안전을 선호하는 쪽으로 우리는 진화해왔을지 모릅니다. 그런 사람이 많은 사회, 그런 사람들로 구성된 공동체를 건강하다고 할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헤르만 헤세, 《데미안》 (전영애 옮김, 민음사) 중에서
이는 신영복이 말하는 ‘탈문맥脫文脈’과 같은 말입니다. ‘기존의 문맥을 깨뜨리자. 그래서 낡은 생각에서 벗어나자. 그리하여 변화와 창조가 가능하게 하자.’ 새가 창공의 자유를 얻으려면 알을 깨야 하듯이 사람 또한 기존의 문맥을 깨뜨려야 변화와 창조의 세계를 만들 수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머리’에 머무르는 삶과 결별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입니다. 아는 데 머무는 것은 홀로 고립되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머리에서 가슴으로 내려와야만 하는 필연은 그래서 성립합니다. 그냥 아는 데서 멈춰 있으면 타자와 아무런 관계를 맺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타자 없이 존재할 수 없습니다.
가슴에 이르다
이제부터 머리에서 가슴으로 내려가는 여행을 시작합니다. 이른바 ‘공감共感’입니다. 타자의 아픔을 이해하고 타자의 아픔 때문에 아파하는 정서적이고 감정적인 연대, 공감은 우리 시대의 화두입니다. 그래서인지 누구든 어디서든 공감이 필요하다거나 공감의 시대라는 말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습니다. 심지어 인간에 대한 새로운 학명으로 ‘호모 심파티쿠스Homo Sympathicus’, 즉 ‘공감하는 인간’이란 말까지 출현하였습니다.
신영복은 공감을 ‘소외 구조에 저항하는 인간적 소통’이라고 명명합니다. 공감을 통해 소외를 극복하자는 주장입니다. 그의 견해에 따르면 우리 현실은 ‘공감 없음 = 소외’의 현장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함께 모여 있지만 실은 제각각입니다. 도처에 이야기는 많은데 공감이 없는 현실은 상호 모순입니다. 각종 모임 장소며 SNS는 또 얼마나 잘 발달해 있습니까.
공감이라는 말의 범람이 역설적으로 공감 없는 세태를 고발하고 있습니다. 말은 넘치는데 실천은 희소하니 공감의 가치가 더 상승하는 것이겠지요. 그렇지 않다면 여기저기서 공감을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공감 실천의 희소성이 오히려 공감을 더 귀하게 만든 것입니다.
누군가를 정말로 이해하려고 한다면 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해야 하는 거야. 말하자면 그 사람 살갗 안으로 들어가 그 사람이 되어서 걸어 다니는 거지.
하퍼 리, 《앵무새 죽이기》 (김욱동 옮김, 열린책들) 중에서
오바마 대통령이 퇴임할 때 고별사에 인용하여 유명세를 탄 명문장입니다. 소설이 발표된 시대는 인종차별이 극심하던 때입니다. 진실이 피부색에 의해 결정되던 시대였습니다. 그러므로 하퍼 리의 주장은 매우 진보적이며 불온한 것입니다. 피부색이 진실을 가늠하는 척도였던 현실에서 백인들에게 흑인의 살갗 속에 들어가 그 사람이 되어보라는 제안은 충분히 위험합니다. 다수의 백인들의 저항은 이미 예견된 현실입니다. 그럼에도 하퍼 리Harper Lee는 말합니다. “진실은 피부색으로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흑인에 대한 편견을 뛰어넘어 오직 인간의 가치에 집중하라.”
공감에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타인의 삶을 이해하기 위해서 그리고 정서적으로 동질화되기 위해서는 먼저 자기 편견을 깨야 합니다. 이 과정에서 신영복이 강조하는 것이 공부입니다. 공부를 통해서 공감은 가능하다고 주장합니다. 물론 이때의 공부란 단순한 지식 습득을 말하는 게 아닙니다. 그가 말하는 공부란 연결이자 관계입니다.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것 그리고 그곳에 그 현장에 관계하는 것이 공부입니다.
대중의 공감 능력에 대해 신영복은 낙관적입니다. 그 대표적인 사례로 그는 ‘가축 품평회 행사’를 듭니다. 영국의 유전학자이자 우생학優生學의 창시자인 프랜시스 골턴Francis Galton의 일화인데요. 우생학자인 골턴에게 충격을 준 사건이기도 합니다. 우생학은 인간 개인이나 인종의 형질에 우열이 있다고 보는 입장입니다.
골턴은 여행 중에 가축 품평회를 보게 됩니다. 소의 무게를 맞히는 대회가 열리고 있었습니다. 참가자들이 표를 사서 자기가 생각하는 무게를 적어 낸 뒤 나중에 소의 무게를 달아서 가장 근접한 무게를 써 낸 사람에게 소를 상품으로 주는 행사입니다. 골턴은 사람들의 어리석음을 확인하는 재미로 그 광경을 지켜보았습니다. 물론 정확하게 맞힌 사람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800개의 표 중 787개의 표에 적힌 무게의 평균이 1,197파운드였습니다. 실제로 측정한 소의 무게는 1,198파운드였습니다. 군중을 한 사람으로 보면 완벽한 판단력입니다. 골턴에게는 충격이었습니다. 집단의 지적 능력(collective intelligence)과 민주주의에 대해 다시 생각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신영복, 《담론》의 〈가장 먼 여행〉 중에서
정리하자면 이 대회는 소의 무게를 알아맞히는 사람에게 소를 상품으로 주는 행사입니다. 사람들은 옆 사람과 어떤 협의도 없이 각자가 가늠한 무게를 써 냅니다. 놀라운 것은 그 결과였습니다. 참가자들 각자가 써 낸 무게의 평균값이 소의 무게와 매우 비슷했기 때문입니다. 신영복은 이 일화를 통해 집단 지성의 현명함을 강조합니다. 그러면서 ‘함께 = 지혜’임을 잊지 않습니다. 이는 곧 대중에 대한 신뢰이자 개인(나무)이 모여 만들어진 공동체(숲)의 건강성에 대한 신뢰입니다.
머리가 이성적인 영역이라면, 가슴은 공감의 영역이다. 머리로부터 가슴으로 가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가 생각하라고 할 때 ‘전두엽에 손을 얹고 조용히 생각하라’고 말하지는 않는다.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하라’고 한다.
신영복, ‘시민학교 특강’ 중에서
모든 사람이 뜨거운 가슴을 가지고 살 수는 없습니다. 모든 사람이 열린 가슴으로 살 수도 없습니다. 그럼에도 누구든 뜨거운 가슴이 될 수 있고 열린 가슴이 될 수 있다는 믿음이 살아 있는 사회여야 합니다. 그랬을 때 우리는 ‘여럿이 함께’일 수 있습니다.
신영복은 ‘가슴으로의 여행’만으로 만족하지 못합니다. 그것은 욕심이라기보다는 인간에 대한 애정입니다. 여행이 가슴에 멈추는 것을 경계하는 것입니다. 가슴으로 하는 공감, 포용, 관용 이른바 똘레랑스tolérance는 우리 사회에 필요한 덕목입니다. 그러함에도 그는 똘레랑스를 비판합니다. 똘레랑스 자체의 한계가 아니라 우리가 똘레랑스에 멈추는 것을 염려하는 것입니다. 그는 가슴의 공존과 관용을 넘어 변화와 탈주를 주장합니다. 실천 없는 공감의 한계를 넘어서자는 것입니다. 현실을 변화시키자는 것입니다. 존재에서 관계로 나아가자는 얘기입니다.
발에 미치다
세상에서 가장 먼 여행의 마지막 담당자는 ‘발’입니다. 발은 바깥을 향해 있습니다. 사랑도 우정도 화합도 연대도 발로부터 시작됩니다. 신영복은 발을 ‘변화’라고 보았으며 ‘실천’이라고 말하였습니다. 또한 ‘삶의 현장’으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애정과 공감을 삶 속에서 실현하는 것을 발로 보았습니다. 발은 실천적이며 관계 지향적입니다.
고대 중국의 형벌 가운데 발과 다리에 가하는 형벌이 있습니다. 발뒤꿈치를 자르는 월형刖刑과, 무릎 연골을 잘라내는 빈형臏刑이 그것입니다. 두 형벌 모두 걷지 못하게 만들어버립니다. 신체적 고통보다는 인간이란 존엄을 추락시키는 형벌로 더 이상 관계 맺음이 불가능한 인간을 만드는 데 그 목적이 있다 하겠습니다. 이렇게 보면 발이 변화이며 관계이자 실천 기관임이 자명해집니다.
신영복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실천적 삶을 강조하기 위해 고사 ‘우공이산愚公移山’을 등장시킵니다. ‘어리석은 노인이 태산을 옮긴다’는 허무맹랑한 이야기입니다. 누가 듣더라도 그게 말이 되나 싶을 만큼 공감하기 어려운 이야기입니다. 그럼에도 《나무야 나무야》, 《처음처럼》 등 선생의 저작마다 자주 등장하는데, 그 이야기는 이렇습니다.
태항산(太行山)과 왕옥산(王玉山) 사이의 좁은 땅에 우공(愚公)이라는 아흔이 넘은 노인이 살고 있었습니다. 큰 산이 앞뒤를 막고 있어서 가족들과 두 산을 옮기기로 의논을 모았습니다. 우공은 세 아들과 손자들을 데리고 돌을 깨고 흙을 파서 삼태기로 발해(渤海)가지 갖다 버리기 시작했습니다. 흙을 파는 것도 큰일이지만 파낸 흙을 버리기 위해서 발해까지 갔다 돌아오는 데 꼬박 일 년이 걸렸습니다. 지수(智叟)라는 사람이 ‘죽을 날이 멀지 않은 노인이 정말 망령’이라며 비웃었습니다. 우공이 말했습니다. ‘내가 죽으면 아들이 계속하고, 아들이 죽으면 또 손자가 그 일을 잇고 그리하여 자자손손(子子孫孫) 계속하면 산은 유한하고 자손은 한할 터인즉 언젠가는 저 두 산이 평평해질 날이 오겠지요.’ 우공의 끈기에 감동한 옥황상제가 태항산은 삭동(朔東) 땅으로, 왕옥산은 옹남(雍南) 땅으로 옮겨 주었습니다. 마오쩌둥은 우공이산의 우화 중에서 옥황상제가 산을 옮겨 주었다는 부분을 민중이 각성함으로써 거대한 역사를 이룩한다는 내용으로 바꾸었습니다.
신영복, 《처음처럼》의 〈우공이산〉 중에서
이 이야기를 읽노라면 과연 우공이 어리석은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오히려 우공의 실천성이 돋보이기 때문입니다. 우공은 ‘발’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는 자신을 가로막고 있는 태항산과 왕옥산을 옮겨서 삶을 변화시키고자 합니다. 물론 이웃의 비웃음거리가 되고 있지만 인생의 긴 호흡에서 보면 우공은 참으로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그는 신영복이 그토록 강조하는 실천하는 존재입니다.
그의 안목은 꽤 거시적입니다. 혼자 모든 것을 다 이루고자 하지 않습니다. ‘내가 옮기다 못 옮기면 아들이 옮기면 되고, 아들이 옮기다 못 옮기면 손자가 옮기면 된다’는 그의 생각은 실천하는 삶의 연속성을 강조한 것입니다. 이는 ‘변화를 한 번에 완성할 수 없다’는 신영복의 주장과 그 궤가 같습니다. 게다가 미래 낙관까지 닮았습니다. 낙관은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몽상이나 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그는 아니 그의 가족들은 불편한 현실을 변화시키기 위해 매일 매시간 노력하고 있고 그 노력은 그 자체로 삶이 되어 있습니다. 이는 신영복의 생각과 맞닿아 있습니다. ‘길은 이미 만들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가다 보면 생긴다’는 신영복의 논리와 그 맥락이 같습니다.
신영복은 변화를 강조합니다. 자신의 생각과 자신의 앎을 실천하는 삶을 중요하게 여깁니다. 따라서 머리에서 가슴, 그리고 가슴에서 발로 이어지는 여행은 변화를 의미합니다. 변화의 장소는 중심이 아니라 변방이고 변화의 방법은 공부입니다. 그가 공부에 대단한 애정을 보여주는 이유입니다. 여행 또한 공부입니다.
여행의 출발이 머리라면 발은 내가 다른 사람으로 건너가는 시작점으로 실천을 의미합니다. 머리가 생각을 의미하고 가슴이 관용과 포용의 공감 공간이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