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두기
1.나쓰메 소세키夏目漱石의 『나는 고양이로소이다吾輩は猫である』는 1905년 1월부터 1906년 8월까지 잡지 《호토토기스ホトトギス》에 연재하였고, 1905년 10월부터 1907년 8월까지 3권으로 간행하였다.
2.본문 하단의 설명은 역자의 주이다.
3. 이 책은 신초샤新潮社의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를 원본으로 삼았다.
나는 고양이다. 이름은 아직 없다.
어디서 태어났는지 전혀 짐작이 가질 않는다. 어두침침하고 눅눅한 곳에서 야옹야옹 하고 울고 있었던 것만은 기억하고 있다. 나는 여기서 처음으로 인간이라는 것을 보았다. 나중에 들으니 그것은 서생*이라는, 인간 중에서 가장 영악한 종족이라고 한다. 이 서생이라는 것은 때때로 우리들을 잡아서 삶아 먹는다는 말이 있다. 그러나 그 당시는 아무 생각도 없었기 때문에 별반 무섭다고도 생각하지 않았다. 다만 그의 손바닥 위에 태워져 휙 하고 들어 올려졌을 때는 왠지 둥실둥실 떠 있는 느낌이 들었을 뿐이다. 손바닥 위에서 조금 차분하게 서생의 얼굴을 본 것이 소위 인간이라는 것과의 첫 만남이다. 그때 묘한 종족이 다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 느낌이 지금도 남아 있다. 무엇보다 털로 장식되어야 할 얼굴이 매끈매끈하여 그야말로 주전자다. 그 후 고양이들도 많이 만났는데 이런 꼴사나운 것과는 한 번도 맞닥뜨린 적이 없다. 뿐만 아니라 얼굴 한가운데가 너무 튀어나와 있는데, 그 구멍 속에서 때때로 훅훅 연기를 내뿜는다. 아무래도 숨이 막힐 것 같아 참으로 난처했다. 이것이 인간이 피우는 담배라는 것은 요즘에야 겨우 알았다.
이 서생의 손바닥 안에서 잠시 기분 좋게 앉아 있었는데, 얼마쯤 지나자 대단한 속력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서생이 움직이는 건지 나만 움직이는 건지 모르겠지만 지나치게 눈이 핑핑 돈다. 속이 메슥거린다. 도저히 살아날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털썩하는 소리가 나더니 눈에서 불이 나왔다. 거기까지는 기억하고 있지만 그 후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아무리 생각해 내려 해도 모르겠다.
문득 정신이 들어 보니 서생은 없다. 많이 있던 형제들이 한 마리도 보이지 않는다. 소중한 엄마조차 모습을 감추고 말았다. 게다가 지금까지 있던 곳과는 다르게 지나치게 밝다. 눈을 뜰 수 없을 정도다. 글쎄, 아무래도 상황이 이상하다고, 느릿느릿 기어 보니 몹시 아프다. 나는 짚 위에서 갑자기 조릿대 밭 가운데로 버려진 것이다.
간신히 조릿대 밭을 기어 나오자, 저쪽에 커다란 연못이 있다. 나는 연못 앞에 앉아 어쩌면 좋을까 생각해 보았다. 딱히 이렇다 할 묘안도 떠오르지 않는다. 한동안 울면 서생이 데리러 와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야옹, 야옹 시험 삼아 울어 보았지만 아무도 오지 않는다. 그러는 사이 연못 위에 살랑살랑 바람이 불고 날이 저물어 간다. 몹시 배가 고팠다. 울고 싶어도 소리가 나오지 않는다. 어쩔 수 없다. 뭐든 좋으니 먹을 것이 있는 곳까지 걸어갈 결심을 하고 살살 연못 왼쪽으로 돌기 시작했다. 정말 너무 힘들다. 그걸 참고 무리해서 기어갔더니 가까스로 왠지 인간 냄새가 나는 곳이 나왔다. 여기로 들어가면, 어떻게든 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대나무 울타리의 허물어진 구멍을 통해, 어떤 저택으로 기어들어 갔다.
인연이란 신기한 것으로, 만약 이 대나무 울타리가 뚫려 있지 않았더라면, 나는 결국 길에서 아사했을지도 모른다. 일수음一樹陰*이라더니. 이 울타리 구멍이 오늘에 이르기까지 내가 이웃집 미케*三毛를 방문할 때의 통로가 되고 있다. 그건 그렇고 저택에 숨어 들어가기는 했지만 이제부터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모르겠다. 그러는 사이에 어두워지고 배가 고파지고 추워지고 비까지 내리기 시작하여 이제 잠시도 우물쭈물할 수 없게 되었다. 어쩔 수 없이 하여간 밝고 따뜻할 것 같은 곳을 찾아 걸어갔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는 이미 집 안에 들어가 있었다. 여기서 나는 그 서생 이외의 인간을 다시 볼 기회와 조우한 것이다.
제일 먼저 만난 자가 하녀이다. 이자는 앞의 서생보다 한층 난폭한 편으로 나를 보자마자 갑자기 목덜미를 잡아 문밖으로 내던졌다. 이제 틀렸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눈을 감고 운을 하늘에 맡겼다. 그러나 배고픔과 추위는 도저히 참을 수가 없다. 나는 재차 하녀의 틈을 보아 부엌으로 기어올랐다. 하지만 곧 다시 내던져졌다. 나는 내던져지고는 기어오르고, 기어오르고는 내던져지는 일이 네다섯 번 거듭된 것을 기억하고 있다. 그때 하녀라는 자가 정말 싫어졌다. 얼마 전에 하녀의 꽁치를 훔쳐 이 앙갚음을 하고 나서, 겨우 가슴의 체증이 내려갔다. 내가 마지막으로 내쫓기려고 할 때, 이 집의 주인이 나왔다.
“시끄럽구나. 무슨 일이냐?”
“이 집 없는 새끼 고양이가 아무리 쫓아내고 쫓아내도 부엌으로 기어올라 와서 애먹고 있어요.”
하녀는 나를 손에 들고 주인 쪽을 향해 말했다. 주인은 코 아래 검은 수염을 비틀면서 내 얼굴을 잠시 바라보더니 이윽고 입을 열었다.
“그럼 집에 두어라.”
이 말을 남긴 채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주인은 그다지 말수가 많지 않은 사람처럼 보였다. 하녀는 분하다는 듯이 나를 부엌에 내던졌다. 이렇게 해서 나는 마침내 이 집을 내 거처로 삼기로 한 것이다.
내 주인은 좀처럼 나와 얼굴을 마주칠 일이 없다. 직업은 교사라고 한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종일 서재에 틀어박힌 채 거의 나오는 일이 없다. 집안사람들은 몹시 열심히 공부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본인도 열심히 공부하는 사람인 것처럼 행동한다. 그러나 실은 집안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근면가는 아니다. 나는 가끔 발소리를 죽이고 그의 서재를 엿보는데, 그는 자주 낮잠을 잔다. 때때로 읽다 만 책 위에 침을 흘리고 있다. 그는 위가 약하고 피부색이 누르스름한 빛을 띠는 데다가 탄력이 없고 윤기가 없다. 그런 주제에 밥을 많이 먹는다. 밥을 많이 먹은 후에 다카디아스타제*를 먹는다. 먹은 후 책을 편다. 두세 페이지 읽으면 졸린다. 책 위에 침을 흘린다. 이것이 그의 매일 밤 반복되는 일과이다.
나는 고양이지만 때때로 생각하는 것이 있다. 교사라는 것은 실로 편한 직업이라는 것이다. 인간으로 태어났다면 교사가 되는 것이 제일이다. 이렇게 자면서도 할 수 있다면 고양이라도 못할 것이 없다. 그런데도 주인은 교사만큼 괴로운 일도 없다고 친구가 올 때마다 이런저런 불평을 늘어놓는다.
내가 이 집에 살기 시작한 당시는 주인 이외의 인간들에게는 몹시 인망이 없었다. 어디를 가도 거절당했고 상대해 주는 인간이 없었다. 얼마나 하찮은 취급을 받았는지는, 오늘에 이르기까지 이름조차 지어 주지 않는 것으로도 알 수 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가능한 나를 받아 준 주인 옆에 있으려고 노력했다. 아침에 주인이 신문을 읽을 때는 반드시 그의 무릎 위에 오른다. 그가 낮잠을 잘 때는 반드시 그 등에 오른다. 이것은 꼭 주인이 좋다는 말이 아니라 특별히 상대해 주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 그 후 여러 경험을 거친 뒤, 아침에는 나무 밥통 위, 밤에는 고타쓰* 위, 날씨가 좋은 낮에는 툇마루에서 자기로 했다. 그러나 가장 기분 좋은 것은 밤이 되어 이 집의 아이들 잠자리에 숨어들어 가 함께 자는 것이다. 이 아이들은 다섯 살과 네 살로 밤이 되면 둘이서 하나의 이부자리에 들어가 함께 잔다. 나는 언제라도 그들 사이에 들어갈 여지를 찾아내 겨우겨우 끼어 들어가는데, 운 나쁘게 아이 한 명이 눈을 뜨면 큰일 난다. 아이들은—특히 작은아이가 성질이 나쁘다— “고양이가 왔다, 고양이가 왔다.”라며 한밤중에도 기어이 큰 소리로 울어 댄다. 그러면 예의 신경성 위장병이 있는 주인은 반드시 잠에서 깨어나 옆방에서 뛰쳐나온다. 실제로 지난번에는 자로 엉덩이를 심하게 맞았다.
나는 인간과 동거하며 그들을 관찰하면 할수록, 그들이 제멋대로라고 단언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특히 내가 때때로 한 이불 속에서 자는 아이들의 경우에는 그야말로 어처구니가 없어서 말문이 막힌다. 자기가 좋은 때는 사람을 거꾸로 들어 올리거나, 머리에 봉투를 씌우거나, 내던지거나 부뚜막에 던져 넣거나 한다. 게다가 내 쪽에서 조금이라도 먼저 싸움을 걸기라도 하면 집안사람들이 총출동하여 나를 악착같이 쫓아다니며 박해를 가한다. 얼마 전에도 잠시 다다미에 발톱을 갈았더니 안주인이 몹시 화를 내며 그 후로는 좀처럼 방에 들이지 않는다. 부엌 마루에서 내가 떨고 있어도 몹시 태연하다.
내가 존경하는, 비껴 마주보이는 집에 사는 시로白는 만날 때마다 인간만큼 야박한 존재는 없다고 말한다. 시로는 요전에 구슬 같은 아기 고양이를 네 마리 낳았다. 그런데 그 집 서생이 사흘째 되는 날 새끼들을 뒤편 연못으로 가지고 가서 네 마리를 모두 버렸다고 한다. 시로는 눈물을 흘리며 자초지종을 말한 뒤에, 무슨 일이 있어도 우리들 고양이족이 부모 자식 간의 사랑을 이루고 아름다운 가족으로 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인간과 싸워서 그들을 소탕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하나하나 지당한 의견이라고 생각한다. 또 옆집 미케는 인간이 소유권이라는 것을 모른다고 크게 분개했다. 원래 우리 동족 사이에서는 말린 정어리 대가리든 숭어 배꼽이든 가장 먼저 발견한 자가 이것을 먹을 권리가 있다. 만약 상대가 이 규약을 지키지 않으면 완력에 호소해도 좋을 정도이다. 그러나 그들 인간은 조금도 이 관념이 없는 것처럼 보여 우리들이 발견한 맛있는 음식은 반드시 자신들을 위해 약탈한다. 그들은 강한 힘을 믿고 정당하게 우리들이 먹어야 할 것을 빼앗고 시치미를 떼고 있다.
시로는 군인 집에 있고, 미케의 주인은 변호사다. 나는 교사 집에 살고 있는 만큼, 이런 일에 관해서는 둘보다도 오히려 속 편하다. 그저 그날그날을 그럭저럭 지내면 된다. 아무리 인간이라도, 그렇게 언제까지고 번영할 리도 없을 것이다. 뭐, 마음을 느긋하게 먹고 고양이의 시절이 오기를 기다리는 것이 좋을 것이다.
‘제멋대로’가 나온 김에 잠깐 우리 집 주인이 ‘제멋대로’로 실패한 이야기를 하겠다. 원래 주인은 뭐 하나 뛰어나게 잘하는 것도 없지만, 뭐든지 손을 대고 싶어 한다. 하이쿠俳句*를 지어 《호토토기스》*에 투고하거나, 신체시를 《묘조明星》*에 보내거나, 틀린 것투성이 영문을 쓰거나, 때로는 활에 빠지거나, 우타이謡*를 배우거나, 또 어떤 때는 바이올린을 앵앵 울려 대거나 하는데, 안타까운 사실은, 이도저도 어설프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뭔가를 시작하면 위가 약한 주제에 열심이다. 뒷간에서 우타이를 노래해서 근처 사람들이 뒷간 선생이라는 별명을 붙였는데도 상관하지 않고 아주 태연히 “저는 타이라노 무네모리이*옵니다.*”를 반복한다. 모두가 얼씨구 “무네모리로군.” 하며 웃음을 터뜨릴 정도이다.
주인이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내가 살기 시작한 지 한 달 정도 후인 어느 달 월급날에, 커다란 꾸러미를 손에 들고 황급히 돌아왔다. 뭘 사왔나 보니 수채 물감과 붓, 와트먼지*로 오늘부터 우타이와 하이쿠를 그만두고 그림을 그릴 생각인 것 같았다. 과연 다음 날부터 한동안은 매일매일 서재에서 낮잠도 자지 않고 그림만 그리고 있다. 그러나 완성된 것을 보니 뭘 그렸는지 누가 봐도 알 수가 없다. 본인도 그다지 잘 그리지 못했다고 생각했는지, 어느 날 그의 친구이자 미학인가를 하는 사람이 왔을 때 다음과 같이 말하는 것을 들었다. “아무리 해도 잘 그려지지 않는군. 남이 그리는 걸 보면 어렵지 않아 보이는데 막상 붓을 들고 보니 새삼스레 어렵게 느껴지네.” 이것은 주인의 술회이다. 과연 거짓 없는 말이다. 그의 친구는 금테 안경 너머로 주인의 얼굴을 보면서 “그렇게 처음부터 잘 그릴 순 없지, 무엇보다 집 안에서 상상만으로 그림이 그려질 리가 없지. 옛날 이태리의 대가 안드레아 델 사르토*가 이런 말을 했네. ‘그림을 그리려거든 무엇이든 자연 그 자체를 그려라. 하늘에는 별이 있다. 땅에는 반짝이는 이슬이 있다. 나는 것에는 새가 있다. 달리는 것에는 짐승이 있다. 연못에는 금붕어가 있다. 고목에 겨울 까마귀가 있다*. 자연은 그야말로 살아 있는 한 폭의 커다란 그림이다.’ 어떤가, 자네도 그림다운 그림을 그리고 싶다면 잠시 사생을 해보는 게.”
“허, 안드레아 델 사르토가 그런 말을 한 적이 있나. 전혀 몰랐군. 과연 맞는 말이네. 실로 그렇네.”
주인은 지나치게 감탄했다. 금테 안쪽에는 비웃는 듯한 웃음이 보였다.
그다음 날 나는 여느 때처럼 툇마루에 나와 기분 좋게 낮잠을 자고 있는데, 주인이 여느 때와 달리 서재에서 나와 내 뒤에서 뭔가를 계속 하고 있다. 문득 잠에서 깨어 뭘 하고 있나 1분 정도 실눈을 뜨고 보고 있자니, 그는 안드레아 델 사르토인 양하는 데 여념이 없다. 나는 이 꼴을 보고 나도 모르게 실소를 금할 수 없었다. 그는 그의 친구에게 야유당한 결과 우선 시작으로 나를 사생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이미 충분히 잤다. 하품을 하고 싶어 못 견디겠다. 그러나 모처럼 주인이 열심히 붓을 놀리고 있는데 움직이면 미안할 것 같아, 가만히 참고 있었다. 그는 지금 내 윤곽을 다 그리고 얼굴 부근을 색칠하고 있다. 나는 자백한다. 나는 고양이로서 결코 잘나지 않았다. 키도 그렇고 털의 결도 그렇고 얼굴 생김새도 그렇고 다른 고양이보다 뛰어나다고 결코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아무리 못난 나라도 지금 내 주인이 그리고 있는 묘한 모습이라고는, 도저히 생각되지 않는다. 무엇보다 색깔이 다르다. 내 피부는 페르시아산 고양이처럼 노란빛을 띤 담회색에 옻칠한 것 같은 반점이 있다. 이것만은 누가 봐도 의심할 수 없는 사실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지금 주인이 색칠한 걸 보니, 노란색도 아니고 검정색도 아니고, 회색도 아니고 다갈색도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것들을 섞은 색도 아니다. 그저 일종의 색이라고밖에는 달리 평할 방법이 없는 색이다. 게다가 희한한 것은 눈이 없다. 하기는 자고 있는 모습을 사생한 거니까 무리도 아니지만 눈 비슷한 것조차 보이지 않으니 눈 먼 고양이인지 자고 있는 고양이인지 분명치 않다.
나는 마음속으로 은밀히 아무리 안드레아 델 사르토라도 이래서는 방법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열심에는 감복하지 않을 수 없다. 가급적 움직이지 않고 있어 주고 싶지만, 조금 전부터 소변이 마렵다. 몸속 근육이 근질근질하다. 이젠 1분도 견딜 수 없게 되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여기까지만 하고 양발을 앞으로 있는 대로 뻗고, 목을 낮게 내밀고 아— 아— 커다란 하품을 했다. 그건 그렇고 이렇게 되고 보니, 더 이상 얌전히 있어도 소용없다. 어차피 주인의 계획은 틀어졌기 때문에, 이렇게 된 김에 집 뒤로 가서 볼일을 볼 요량으로 느릿느릿 기어나갔다. 그러자 주인이 실망과 분노가 뒤섞인 듯한 목소리로 방 안에서 “이 바보 녀석.” 하며 호통 쳤다. 주인은 사람을 비난할 때 반드시 ‘바보 녀석’이라고 하는 버릇이 있다. 달리 나쁜 말을 모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지만, 지금까지 참고 견딘 마음도 몰라주고, 무턱대고 바보 녀석이라고 하는 건 실례라고 생각한다. 그것도 평소에 내가 그의 등에 올라탈 때 조금이라도 좋은 얼굴을 했다면 이런 매도도 기꺼이 듣겠지만, 내게 편리한 것은 뭐 하나 기분 좋게 해주는 일도 없으면서, 소변보러 가는 내게 바보 녀석이라고 하는 것은 너무하다. 원래 인간이라는 것은 자기의 역량에 자만하여 모두 우쭐해져 있다. 인간보다 조금 강한 것이 나와서 괴롭히지 않으면 앞으로 어디까지 우쭐해질지 모른다.
제멋대로도 이 정도라면 참겠는데, 나는 인간의 부덕에 대해서 이것보다도 몇 배 슬퍼할 만한 소식을 들은 적이 있다.
우리 집 뒤에 열 평 정도의 차나무 밭이 있다. 넓지는 않지만 산뜻하고 기분 좋게 볕이 드는 곳이다. 우리 집 아이들이 너무 시끄럽게 굴어 좀처럼 낮잠을 잘 수 없을 때나, 너무 지루해서 속이 좋지 않을 때, 난 언제나 여기로 나와 호연지기浩然之氣*를 기르곤 한다.
어느 초겨울의 온화한 날 2시 무렵이었는데, 점심을 먹고 기분 좋게 한숨 잔 후, 운동 겸 이 차나무 밭으로 걸음을 옮겼다. 차나무 뿌리의 냄새를 한 그루 한 그루 맡으며, 서쪽 삼나무 울타리 옆까지 오자, 시든 국화를 쓰러뜨리고 그 위에 커다란 고양이가 정신없이 자고 있었다. 그는 내가 다가가는 것을 전혀 눈치채지 못한 듯, 또 눈치챘어도 아랑곳하지 않는 듯, 커다랗게 코를 골며 늘어지게 자고 있었다. 남의 마당에 몰래 들어온 자가 이렇게까지 태연하게 잘 수 있는 건가 싶어, 나는 속으로 그 두둑한 배짱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완전 까만 고양이다. 정오가 조금 지난 태양은, 투명한 광선을 그의 피부 위에 던져, 반짝반짝하는 솜털 사이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불길이 타오르는 것 같았다. 그는 고양이 중에서 대왕이라 할 정도로 거대한 체격의 소유자이다. 내 배는 될 것이 분명하다. 내가 감탄과 호기심으로 이성을 잃고 그 앞에 멈춰 서서 여념 없이 바라보고 있노라니, 조용한 초겨울 바람이 삼나무 울타리 위로 뻗어 있는 오동나무 가지를 가볍게 흔들어 팔랑팔랑 나뭇잎 두세 잎이 시든 국화 덤불로 떨어졌다. 대왕은 그 둥그런 눈을 크게 부릅떴다.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그 눈은 인간이 귀중히 여기는 호박琥珀이라는 것보다도 훨씬 아름답게 빛나고 있었다. 그는 꼼짝도 않는다. 날카로운 눈빛을 내 좁은 이마 위에 집중시키며 네 녀석은 대체 뭐냐, 라고 말했다. 대왕치고는 다소 말이 저속하다고 생각했지만 어쨌든 그 목소리에는 개라도 압도할 만한 힘이 깃들어 있었기 때문에 나는 적잖이 두려움을 품었다. 그러나 인사를 하지 않으면 위험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가급적 태연함을 가장하여 냉담하게 대답했다.
“나는 고양이야. 이름은 아직 없어.”
그러나 이때 내 심장은 분명 평소보다도 격렬하게 고동치고 있었다. 그는 몹시 경멸하는 어조로 말했다.
“뭐, 고양이? 고양이가 들으면 어이가 없겠네. 대체 어디에 살고 있나?”
상당히 무례하고 건방진 녀석이다.
“나는 이 교사 집에 살아.”
“어차피 그럴 거라고 생각했어. 몹시 말랐군.”
대왕인 만큼 기염을 내뿜는다. 말투로 미루어 짐작하건대아무래도 좋은 집안의 고양이는 아닌 것 같다. 그러나 기름기가 올라 번질거리고 뚱뚱한 것을 보니 맛있는 것을 먹고 풍요롭게 사는 모양이다. 나는 묻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게 말하는 자네는 대체 누군가?”
“나는 인력거꾼네 구로黑다.”
아주 의기양양하다. 인력거꾼네 구로는 이 근방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는 거친 고양이이다. 그러나 인력거꾼네 고양이인 만큼 힘만 셀 뿐 조금도 교양이 없어서 아무도 교제하지 않는다. 모두가 슬슬 피하는 녀석이다. 나는 그의 이름을 듣고 조금 낯간지러운 느낌이 드는 동시에, 한편으로는 조금 경멸하는 마음도 들었다. 나는 우선 그가 어느 정도 무식한지를 시험해 볼 요량으로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해보았다.
“대체 인력거꾼과 교사 중에 어느 쪽이 더 훌륭할까?”
“당연히 인력거꾼이 강하지. 네 녀석의 집주인을 보라구. 그야말로 뼈와 가죽뿐이잖아.”
“자네도 인력거꾼네 고양이인 만큼 상당히 강해 보이는군. 인력거꾼네 있으면 맛있는 걸 먹을 수 있는 모양이야.”
“난 말이지, 어디를 가든 먹이에 궁하지 않아. 네 녀석도 차밭에서만 빙글빙글 돌지 말고, 내 뒤를 따라와 보지그래. 한 달도 안 돼서 몰라볼 정도로 살이 오를걸.”
“추후에 그리하도록 하지. 근데 집은 교사가 인력거꾼보다 큰 데서 사는 것 같군.”
“등신. 집이 아무리 커도 요기가 되진 않아.”
그는 몹시 짜증난 모습으로 한죽寒竹을 깎은 듯한 귀를 끊임없이 실룩거리며 거칠게 그 자리를 떴다. 내가 인력거꾼네 구로를 알고 지내게 된 건 이때부터다.
그 후 나는 자주 구로와 마주친다. 마주칠 때마다 그는 인력거꾼네에 걸맞은 기염을 토한다. 전에 내가 들었다는 부덕한 사건도 실은 구로에게 들었다.
어느 날 여느 때처럼 나는 구로와 따듯한 차밭 가운데서 누워 뒹굴면서 이런저런 잡담을 하고 있는데, 그는 늘 하는 자랑을 자못 새로운 이야기인 양 거듭한 후에, 나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했다.
“네 녀석은 지금까지 쥐를 몇 마리 잡았지?”
지식은 구로보다 상당하지만 완력과 용기에 있어선 도저히 구로와 비교가 되지 않을 거라고 각오는 했지만, 그럼에도 이 질문을 접했을 때는 몹시 겸연쩍었다. 그렇지만 사실은 사실로 속일 수는 없었기 때문에, 나는 대답했다.
“실은 잡아야지 잡아야지 하면서 아직 못 잡았어.”
구로는 그의 코끝에 팽팽하게 돋아 있는 긴 수염을 부르르 떨면서 몹시 웃었다. 원래 구로는 자랑을 하는 만큼 어딘가 부족한 부분이 있어서, 그의 기염을 감탄하는 모습으로 목을 갸릉갸릉 울리며 공손히 듣고 있으면 다루기 쉬운 고양이이다. 나는 그와 가까워지고 나서 즉시 이 요령을 터득했기 때문에 이 경우에도 어설프게 둘러대서 점점 형세를 나쁘게 만드느니, 차라리 그에게 자신이 공을 세운 이야기를 하게 하여 그 자리를 어물어물 넘기는 것보다 좋은 방법은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고분고분 부추겨 보았다.
“자네는 나이가 나이니 만큼 꽤 잡았겠지?”
과연 그는 장벽의 흠이 난 곳으로 함성을 지르며 달려들었다.
“많이는 아니지만 30, 40마리는 잡았을걸.”
그는 득의양양하게 대답했다. 그는 이어서 말했다.
“쥐 백 마리든 2백 마리든 혼자서 언제든지 상대할 수 있는데, 족제비라는 놈은 힘들어. 한번은 족제비를 만나 호되게 당했지.”
“어, 정말?”
맞장구를 쳐줬다. 구로는 커다란 눈을 깜박이며 말한다.
“작년 대청소 때야. 우리 집주인이 석회 자루를 가지고 툇마루 아래로 들어갔는데, 그러니까 커다란 족제비 놈이 당황해서 뛰어나오는 거야.”
“흠.”
내가 감탄해 보였다.
“족제비라고 해도 뭐 쥐보다 조금 큰 정도야. 이 빌어먹을 놈 하며 뒤쫓아서 마침내 하수구 안으로 몰아넣었지.”
“잘했군.”
갈채해 준다.
“그런데 말이지 위기에 처하니까 녀석이 마지막 방귀를 뀌는 거야. 냄새가 얼마나 고약한지 그 뒤로 족제비를 보면 속이 다 메슥거린다니까.”
그는 여기에 와서 마치 작년의 악취가 지금도 난다는 듯이 앞발을 들어 콧잔등을 두세 번 어루만졌다. 나는 조금 가엾은 마음이 들었다. 조금 기세를 돋워 줄 요량으로 말했다.
“하지만 쥐는 자네에게 걸리면 끝장이잖아. 자네는 쥐잡기 달인이어서 쥐만 먹으니까 그렇게 살이 찌고 털도 반들반들한 거잖아.”
구로의 비위를 맞추기 위한 이 질문은 이상하게도 반대의 결과를 가져왔다. 그는 탄식하며 커다란 한숨을 쉬고 말했다.
“생각하면 부질없어. 아무리 쥐를 잡아도…… 도대체 인간만큼 지독한 놈은 세상에 없을 거야. 내가 잡은 쥐를 모두 빼앗아 파출소에 가지고 간다니까.* 파출소에서는 누가 잡았는지 모르니까 그때마다 5전씩 주는 거야. 우리 집주인은 내 덕분에 벌써 1엔 50전 정도는 번 주제에, 변변한 음식을 준 적이 없어. 이봐, 인간이란 건 말이지 허울 좋은 도둑이야.”
과연 학식이 없는 구로도 이 정도의 논리는 아는지 몹시 화난 모습으로 등의 털을 곤두세우고 있다. 나는 왠지 좀 기분이 나빠졌기 때문에 적당히 그 자리를 얼버무리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때부터 나는 절대로 쥐를 잡지 말아야겠다고 결심했다. 하지만 구로의 부하가 되어 쥐 이외의 맛난 먹이를 찾아다니지도 않았다. 맛난 먹이를 먹는 것보다도 자는 편이 마음이 편하다. 교사 집에 있으면 고양이도 교사 같은 성격이 되는 모양이다. 조심하지 않으면 머지않아 위가 약해질지도 모른다.
교사라는 말이 나온 김에 우리 집주인도 최근에 들어 도저히 수채화에 가망이 없다고 깨달았는지 12월 1일 일기에 이렇게 썼다.
◯◯라는 사람을 오늘 모임에서 처음 만났다. 그 사람은 상당히 방탕한 생활을 했다고 하는데 과연 그러한 풍채를 하고 있었다. 이런 성질의 사람은 여자에게 인기가 있기 때문에 ◯◯가 방탕한 생활을 했다기보다도 어쩔 수 없이 방탕하게 살았다는 표현이 적절할 것이다. 그 사람의 아내도 기생이라고 한다. 부럽다. 원래 방탕아를 나쁘게 말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방탕할 자격이 없는 자가 많다. 또 방탕아라고 자처하는 자들 중에도, 방탕할 자격이 없는 자가 많다. 이런 자들은 방탕하게 살 수 없음에도 억지로 방탕하게 살고자 한다. 마치 내 수채화와 같은 것으로 도무지 발전할 기미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만은 방탕아라 여기고 시치미 떼고 있다. 요릿집에서 술을 마시거나 찻집에 드나들어 방탕아가 될 수 있다는 논리라면 나도 어엿한 수채화가가 될 수 있다는 이치이다. 내가 수채화를 그리지 않는 편이 좋은 것처럼, 우매한 방탕아보다도 시골뜨기가 훨씬 낫다.
그의 방탕 이론은 좀처럼 수긍하기 어렵다. 또 아내가 기생이어서 부럽다는 것은 교사로서는 입에 담아서는 안 되는 어리석은 생각이지만, 자신의 수채화에 대한 비평만은 정확하다. 주인은 이렇듯 자신의 결점을 정확히 아는 능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자만심은 좀처럼 가시지 않는다. 사흘 후인 12월 4일 일기에 이렇게 쓰여 있다.
어젯밤 나는 수채화를 그렸지만 도저히 아닌 것 같아, 그 근방에 던져 둔 것을 누군가가 멋진 액자에 넣어 윗미닫이틀 위에 걸어 준 꿈을 꾸었다. 막상 액자에 담긴 그림을 보니 내가 생각해도 갑자기 솜씨가 좋아진 것 같다. 몹시 기쁘다. 이 정도면 훌륭하다고 혼자서 바라보고 있는데 날아 밝아 잠에서 깨어 보니 역시 원래대로 형편없다는 사실이 아침 해와 함께 명료해지고 말았다.
주인은 꿈에서까지 수채화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한 것 같다. 이래서는 수채화가는커녕 주인이 언급한 방탕아도 될 수 없는 성격이다.
주인이 수채화 꿈을 꾼 다음 날, 예의 금테 안경을 쓴 미학자가 오래간만에 주인을 방문했다. 그는 자리에 앉아 제일 먼저 물었다.
“그림은 어떤가?”
주인은 태연한 얼굴로 일기에 대해서는 내색도 않고, 또 안드레아 델 사르토에 감탄한다.
“자네의 충고에 따라 사생에 힘을 쏟았는데, 과연 사생을 하니 지금까지 알아채지 못한 사물의 형태와 색의 세밀한 변화 등을 잘 알겠더군. 서양에서는 예전부터 사생을 주장한 결과 오늘날같이 발달한 것 같네. 과연 안드레아 델 사르토야.”
미학자는 웃으면서 머리를 긁는다.
“실은 자네 말이야, 그 얘긴 엉터리야.”
“뭐가?”
주인은 아직 속았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
“뭐긴, 자네가 계속해서 감복하고 있는 안드레아 델 사르토 말이지. 그건 내가 조금 날조한 이야기네. 자네가 그렇게 진지하게 믿을 줄 몰랐네. 하하하하.”
미학자는 크게 기뻐한다. 나는 툇마루에서 이 대화를 듣고 그의 오늘 일기에는 어떤 내용이 쓰일까 하고 미리 상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미학자는 이런 적당한 말을 하여 남을 속이는 것을 유일한 즐거움으로 삼는 남자이다. 그는 안드레아 델 사르토 사건이 주인의 감정에 어떠한 영향을 주었는지를 추호도 고려하지 않는 듯 득의양양하여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그러니까 때때로 농담을 하면 사람들이 곧이들으니 골계적 미감을 도발하는 것이 몹시 재미있군. 저번에 어떤 학생에게 니콜라스 니클비*가 기번*에게 충고하여 그의 당대의 대저술인 『프랑스 혁명사*』를 불어로 쓰지 말고 영어로 출판하게 했다고 말했는데, 그 학생이 또 지독하게 기억력이 좋은 남자라, 일본문학회의 연설회에서 진지하게 내가 한 말 그대로를 되풀이한 것이 우스웠네. 그런데 그때 방청객이 약 백 명 정도였는데, 모두 열심히 그 말을 경청하고 있는 거야. 그리고 또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네. 저번에 어떤 문학자가 있는 자리에서 해리슨의 역사소설 『테오파노*』의 이야기가 나오기에 내가 그건 역사소설 중에서 백미다. 특히 여주인공이 죽는 부분은 소름이 끼칠 정도로 무서운 기운이 사람을 압도한다고 평했더니, 내 맞은편에 앉은, 모른다는 소리를 해본 적이 없는 선생이 ‘그래그래, 그 부분은 실로 명문이지.’라고 하는 거야. 그래서 나는 이 남자도 역시 나와 마찬가지로 이 소설을 읽지 않은 걸 알았네.”
신경성 위염인 주인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그렇게 아무렇게나 되는대로 말하다가 만약 상대가 읽었다면 어쩔 셈인가?”
마치 남을 속이는 것은 상관없다, 다만 거짓인 것이 들통 났을 때는 곤란하지 않느냐는 식이다. 미학자는 조금도 동요하지 않았다.
“그러니까 그럴 땐 다른 책으로 잘못 알았다거나 하면 될 뿐이네.”
껄껄 웃으며 말한다. 이 미학자는 금테 안경을 쓰고 있지만 성격은 인력거꾼네 구로를 닮은 구석이 있다. 주인은 히노데日の出 연기로 동그라미를 만들며 나는 그런 용기는 없다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다. 미학자는 그래서 그림이 서툴다는 눈빛으로 말했다.
“농담은 농담이지만 그림이라는 것은 사실 어려운 거야.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문화생에게 사원 벽의 얼룩을 그리라고 가르친 적이 있다는군. 과연 뒷간 같은 데 들어가 비가 샌 벽을 열심히 바라보고 있노라면, 상당히 멋진 무늬 그림이 자연스럽게 생길 거네. 자네도 주의해서 베껴 그려 보게. 분명 재미있는 그림을 그릴 수 있을 테니.”
“또 속일 셈인가?”
“아니, 이건 사실이네. 정말 기발한 이야기 아닌가? 다빈치가 말할 법한 이야기지.”
“과연 기발하군.”
주인은 어느 정도 항복했다. 하지만 그는 아직 뒷간에서 사생은 하지 않은 듯하다.
인력거꾼네 구로는 그 후 절름발이가 되었다. 그의 윤기 있는 털은 점점 색이 바라고 빠져 갔다. 내가 호박보다도 아름답다고 평가한 그의 눈에는 눈곱이 잔뜩 끼어 있다. 특히 두드러지게 내 주의를 끈 것은 그의 성격이 의기소침해진 것과 체격이 나빠진 것이다. 나는 예의 차밭에서 그와 만난 마지막 날, 어떻게 지내냐고 물었더니 “족제비의 마지막 방귀와 생선가게 멜대는 지긋지긋해.”라고 말했다.
소나무 사이로 2, 3단으로 붉게 물들었던 단풍은 옛꿈처럼 지고, 다실茶室 뜰 앞 손 씻는 돌그릇 가까이에 번갈아 꽃잎을 떨구던 홍백의 산다화도 남김없이 졌다. 3마 반(약 6.36미터)의 남향 툇마루에 겨울 해가 빠르게 기울고 찬바람이 불지 않는 날은 거의 드물었기 때문에 내 낮잠 시간도 줄어든 기분이다.
주인은 매일 학교에 간다. 돌아오면 서재에 틀어박힌다. 사람이 오면 교사 노릇이 싫다 싫다 한다. 수채화는 좀처럼 그리지 않는다. 다카디아스타제도 효능이 없다며 먹지 않는다. 아이는 기특하게도 쉬지 않고 유치원에 다닌다. 돌아오면 창가를 부르고 공치기를 하고 때때로 내 꼬리를 잡고 들어올린다.
나는 맛있는 음식도 먹지 못해서 별로 살도 찌지 않지만, 점점 건강해지고 절름발이도 되지 않고 그날그날을 살고 있다. 쥐는 결코 잡지 않는다. 하녀는 여전히 싫다. 내 이름은 아직 없지만, 욕심을 내면 한이 없기 때문에 평생 이 교사 집에서 무명의 고양이로 생을 마칠 생각이다.
나는 새해가 되어 다소 유명해졌기 때문에, 고양이지만 조금 우쭐한 기분이 드는 것이 감사하다.
설날 아침 이른 시각부터 주인 앞으로 그림엽서 한 장이 왔다. 이것은 그의 친구 모 화가로부터 온 연하장이었는데, 상부를 붉은색, 하부를 짙은 녹색으로 칠하고, 그 한가운데에 한 마리의 동물이 웅크리고 있는 것을 파스텔로 그렸다. 주인은 예의 서재에서 이 그림을, 가로로 보기도 하고, 세로로 보기도 하며, 멋진 색이군 한다. 이미 한 번 탄복했기 때문에, 이제 그만두려나 싶었는데 역시 가로로 보기도 하고, 세로로 보기도 하고 있다. 몸을 비틀기도 하고, 손을 뻗어 노인이 『삼세상三世相*』을 보듯 하기도 하고, 또 창가를 향하고 코끝에 대고 보고 있다.
빨리 그만두지 않으면 무릎이 흔들려 위험해서 못 견디겠다. 간신히 동요가 약해지는가 싶더니, 작은 목소리로 “대체 뭘 그린 걸까?”라고 한다. 주인은 그림엽서의 색에는 감탄했지만, 그려진 동물의 정체를 모르기 때문에, 조금 전부터 고심하고 있는 모양이다.
그렇게 이해할 수 없는 그림엽서인가, 라고 생각하면서 자고 있던 눈을 고상하게 반쯤 뜨고, 차분하게 쳐다보니 틀림없는, 내 초상이다. 주인처럼 안드레아 델 사르토를 깊이 연구한 것도 아닌데, 화가인 만큼 형태도 색채도 제대로 갖추어져 있다. 누가 봐도 고양이임에 틀림없다. 조금 안목이 있는 자라면, 고양이 중에서도 다른 고양이가 아니라 나라는 것이 분명히 드러나도록 훌륭하게 그려져 있다는 걸 알 수 있을 것이다. 이 정도로 명료한 걸 모르고 이토록 고심하는가 생각하니, 인간이 조금 가엾어진다. 가능하다면 그 그림이 나라는 것을 알려 주고 싶다. 나라는 것은 비록 모른다 해도, 하다못해 고양이라는 것만은 알려 주고 싶다. 그러나 인간이라는 것은 도저히 우리 고양이족의 언어를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하늘의 은혜를 입은 동물이 아니기 때문에, 안타깝게도 그대로 두었다.
잠깐 독자들에게 미리 말해 둘 것이 있다. 원래 인간은 걸핏하면 ‘고양이가, 고양이가’라고 대수롭지 않게 가벼운 어조로 나를 평가하는 버릇이 있는데, 참으로 좋지 않다. 인간의 찌꺼기에서 말과 소가 나오고, 소와 말의 똥에서 고양이가 만들어졌다는 식으로 생각하는 것은, 자신의 무지를 깨닫지 못하고 교만한 얼굴을 하는 교사 따위에게는 있을 법도 한 일이지만, 옆에서 봤을 때 좋지 않다. 아무리 고양이라도 그렇게 허술하고 간단하게 생기지 않는다. 겉에서 보기에는 동류, 평등 무차별, 어느 고양이도 자기 고유의 특색 같은 건 없어 보이지만, 고양이 사회에 들어가 보면 상당히 복잡하고 ‘십인십색十人十色*’이라는 인간계의 말 그대로를 여기에도 적용할 수 있다. 눈빛도, 코 모양도, 털도, 발걸음도, 모두 다르다. 수염의 탄력 정도부터 귀가 선 상태, 꼬리의 처짐 정도에 이르기까지 같은 것은 하나도 없다. 잘하고 못하고, 좋아하고 싫어하고, 멋이 있고 없고 온갖 것에 이르기까지 천차만별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이다.
그처럼 분명한 구별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눈은 단지 발전이다 뭐다 하며, 하늘만 보고 있으니, 우리들의 성질은 물론 생김새조차 도저히 식별할 수 없는 것은 가엾은 일이다. 유유상종이라는 말은 예전부터 있는 말이라는데 말 그대로, 떡집은 떡집, 고양이는 고양이로, 고양이의 일이라면 역시 고양이가 아니면 모른다. 아무리 인간이 발달했어도 이것만은 안 된다. 더군다나 사실은 그들이 스스로 믿고 있는 것처럼 전혀 대단하지 않으니 더욱 곤란하다. 또 더군다나 박정한 우리 주인 같은 자는, 서로를 남김없이 이해하는 것이 사랑의 핵심이라는 것조차 모르는 남자이기에 어쩔 수가 없다. 그는 성질 나쁜 굴처럼 서재에 들러붙어, 이제껏 밖을 향해 입을 열어 본 적이 없다. 그런 주제에 자신만은 몹시 달관한 듯한 면상을 하고 있는 꼴이 조금 우습다. 달관하지 않았다는 증거로는 내 초상이 눈앞에 있음에도 조금도 알아채지 못하고 “올해는 러일전쟁이 발발한 지 2년째니까 아마도 곰 그림일 거야*.”라는 알 수 없는 말을 하고 태연히 있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내가 주인의 무릎 위에서 눈을 감고 이렇게 생각하고 있는데, 이윽고 하녀가 두 번째 그림엽서를 가지고 왔다. 들여다보니 활판 인쇄로 외국 고양이 네다섯 마리가 늘어서서 펜을 쥐거나 책을 펼쳐서 공부하고 있고, 그중 한 마리는 자리에서 벗어나 책상 모서리에서 서양의 <고양이다, 고양이다>* 노래에 맞춰 춤을 추고 있다. 게다가 먹으로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라고 시커멓게 쓰고, 오른쪽 편에 ‘책을 읽고 춤추는 고양이의 어느 봄날.’이라는 하이쿠까지 적혀 있다. 이것은 주인의 구 문화생에게 온 것이기 때문에 누가 봐도 한눈에 의미를 알 수 있을 텐데, 멍청한 주인은 아직 깨닫지 못한 모양으로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하며, “어, 올해가 고양이 해인가?”라고 혼잣말을 하고 있다. 내가 이만큼 유명해진 것을 아직 모르는 모양이다.
그때 하녀가 또 세 번째 엽서를 가지고 온다. 이번에는 그림엽서가 아니다. ‘근하신년’이라고 쓰고, 옆에 ‘죄송하지만 고양이에게도 안부 전해 주십시오.’라고 쓰여 있다. 아무리 멍청한 주인이라도 이렇게 노골적으로 쓰여 있으니 알아챈 모양인지 겨우 알았다는 듯이 흥 하면서 내 얼굴을 보았다. 그 눈빛이 지금까지와 달리 다소 존경의 뜻을 담고 있는 듯했다. 지금까지 세상에서 존재를 인정받지 못했던 주인이 갑자기 어떤 새로운 면모를 널리 드러낸 것도, 완전히 내 덕분이라고 생각하면 이 정도의 눈빛은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때마침 격자문이 찌링, 찌링, 찌리리리링 하고 울린다. 아마도 손님일 것이다. 손님이라면 하녀가 응대하러 나간다. 나는 생선 가게의 우메 씨가 올 때 외에는 나가지 않기로 정했기 때문에, 태연히, 원래대로 주인의 무릎에 앉아 있었다. 그러자 주인은 고리대금업자라도 뛰어 들어온 듯 불안한 표정으로 현관 쪽을 보고 있다. 아마 신년 인사를 온 손님을 맞이하여 술 상대를 하는 것이 싫은 모양이다. 인간도 이 정도 괴팍해지면 나무랄 데가 없다. 그렇다면 일찌감치 외출이라도 하면 좋았을 텐데, 그 정도의 용기도 없이, 더욱 굴의 근성을 드러내고 있다. 잠시 후에 하녀가 와서 말했다.
“간게쓰寒月 씨가 오셨습니다.”
이 간게쓰라는 남자는 역시 주인의 구 문하생이었다는데, 지금은 학교를 졸업하고 잘은 모르겠지만 주인보다 훌륭해졌다고 한다. 이 남자가 무슨 까닭인지, 자주 주인의 집에 놀러 온다. 오면 자신을 좋아하는 여자가 있다느니, 없다느니, 세상이 재미있다느니, 시시하다느니, 대단한 것 같기도 하고 재미있는 것 같기도 한 불평만 늘어놓고 돌아간다. 주인처럼 한물간 인간을 찾아, 일부러 이런 이야기를 하러 오는 것이 이해가 안 가지만, 저 굴 같은 주인이 그런 담화를 듣고 때때로 맞장구를 치는 것은 더욱 재미있다.
“오랜만입니다. 실은 작년 말부터 몹시 바빴기 때문에, 찾아 봬야지 찾아 봬야지 하면서도, 결국 이 방향으로 발길이 가지 않아서요.”
간게쓰는 하오리* 끈을 만지작거리며 수수께끼 같은 말을 한다.
“어느 방향으로 발길이 가는가?”
주인은 진지한 얼굴로, 가문을 넣은 검은색 면 하오리의 소매를 당긴다. 이 하오리는 소매가 짧아, 싸구려 명주옷이 좌우로 반 정도 비어져 나와 있다.
“에헤헤헤, 조금 다른 방향에.”
간게쓰 군이 웃는다. 보니 오늘은 앞니가 하나 빠져 있다.
“자네, 이를 어떻게 했는가?”
주인은 화제를 돌렸다.
“네, 실은 어떤 곳에서 표고버섯을 먹었는데 말이죠.”
“뭘 먹었다고?”
“그러니까, 표고버섯을 조금 먹었는데, 표고버섯의 갓을 앞니로 자르려고 하는데 쑥 하고 이가 빠졌어요.”
“표고버섯을 먹다가 이가 빠지다니, 왠지 영감 같군. 하이쿠의 소재가 될지는 몰라도 연애에는 도움이 안 될 것 같아.”
주인이 손바닥으로 내 머리를 가볍게 때린다.
“아, 저 고양이가 예의 고양인가요? 꽤 뚱뚱하군요. 그 정도라면 인력거꾼네 구로에게도 질 것 같지 않네요. 멋진 녀석이군요.”
간게쓰 군은 나를 몹시 칭찬했다.
“요즘 꽤나 많이 컸어.”
자랑하듯 내 머리를 딱딱 때린다. 칭찬받는 건 흐뭇하지만 머리가 조금 아프다.
“엊그제 밤에도 잠깐 합주회를 했어요.”
간게쓰 군은 다시 이야기를 되돌린다.
“어디서?”
“어디서든 그건 몰라도 되잖아요. 바이올린 셋에 피아노 반주로 상당히 재미있었어요. 바이올린도 셋 정도 되니 서툴러도 들을 만하더군요. 두 명이 여자이고 제가 그중에 끼어 있었는데, 제가 생각해도 잘 연주한 것 같았습니다.”
“흠, 그 여자가 누구였나?”
주인은 부러운 듯 묻는다. 원래 주인은 평소에 고목한암古木寒巖* 같은 얼굴을 하고 있지만 실은 결코 여성에게 냉담한 편은 아니다. 주인이 전에 서양의 어느 소설을 읽었는데, 그중에 어떤 한 인물이, 대부분의 여자에게 반드시 조금씩 반한다. 세어 보니 길을 가는 여자의 약 70퍼센트에게 사랑을 느낀다는 사실이 풍자적으로 그려져 있는 것을 보고, 이것은 진리라고 감탄했던 남자인 것이다. 그런 바람둥이 남자가 왜 굴 같은 삶을 살고 있는지는 나 같은 고양이는 도저히 모르겠다. 어떤 사람은 실연 때문이라고 하고, 어떤 사람은 위가 약한 탓이라고 하고, 또 어떤 사람은 돈이 없고 겁이 많은 성격 탓이라고도 한다. 어느 쪽이든 메이지 역사에 관계할 정도의 인물은 아니니 상관없다. 하지만 간게쓰 군이 합주한 여자를 부러운 듯이 물은 것만은 사실이다. 간게쓰 군은 재미있다는 듯이 어묵을 젓가락으로 집어 절반을 앞니로 물어 끊었다. 나는 또 빠지는 거 아닌가 하고 걱정했지만 이번은 괜찮았다.
“뭐, 두 명 모두 어느 집의 따님들이에요. 아는 사람이 아니에요.”
쌀쌀맞게 대답을 한다. ‘그~렇’ 하고 주인은 길게 끌었지만 ‘군’은 생략하고 생각에 잠겨 있다.
간게쓰 군은 이제 슬슬 일어설 때라고 생각했는지 주인을 재촉한다.
“참 좋은 날씨네요. 시간 되시면 같이 산책이라도 하실래요? 여순이 함락돼서 시내는 대단한 호경기랍니다.”
주인은 여순 함락보다 합주한 여자에 대해 듣고 싶다는 얼굴로 잠시 생각에 잠겨 있었는데 겨우 결심한 듯 일어선다.
“그럼 그럴까.”
역시 가문을 새겨 넣은 검은색 면 하오리에, 형의 유품이라는 20년 동안 입어 온 유키쓰무기結城紬* 솜옷을 입은 채이다. 아무리 유키쓰무기가 질기다고 하나, 이렇게 계속 입어서는 남아나질 않는다. 군데군데 얇아져서 햇빛에 비춰 보면 뒤에서 천을 대고 꿰맨 바늘 자국이 보인다. 주인의 복장에는 연말도 정월도 없다. 평상복도 외출복도 없다. 나갈 때는 양손을 품에 지르고 훌쩍 나간다. 외출복이 없기 때문일까, 있어도 귀찮아서 갈아입지 않는 것일까, 나는 모르겠다. 단, 이것만은 실연 탓이라고도 생각되지 않는다.
두 사람이 나간 후에, 나는 잠시 실례하여 간게쓰 군이 먹다 남긴 어묵을 먹었다. 나도 요즘에는 보통의 고양이가 아니다. 우선 모모가와 조엔桃川如燕* 이후의 고양이거나, 그레이*의 금붕어를 훔친 고양이 정도의 자격은 충분히 있다. 인력거꾼네 구로 따위는 처음부터 안중에 없었다. 어묵 한 조각 정도 먹었다고 인간에게 이러니저러니 말 듣는 일도 없겠지. 게다가 사람 눈을 피해 간식을 먹는 버릇은 특별히 우리 고양이족에게 국한된 이야기는 아니다. 우리 집 하녀는 자주 안주인이 집을 비운 사이에 떡과 과자를 슬쩍해 먹고, 슬며시 자리를 뜬다. 하녀뿐만 아니라 실제로 고상한 가정교육을 받고 있다고 안주인이 떠들고 다니는 아이들조차도 이 경향이 있다.
4, 5일 전의 일인데, 두 아이가 쓸데없이 일찍 일어나서 아직 주인 부부가 자고 있는 사이에 식탁에 마주보고 앉았다. 그들은 매일 아침 주인이 먹는 빵 약간에, 설탕을 묻혀서 먹곤 했는데, 이날은 마침 설탕 단지가 식탁 위에 놓여 있는 데다가 숟가락까지 옆에 있었다. 여느 때처럼 설탕을 나눠 줄 사람이 없어서, 이윽고 큰 녀석이 단지 안에서 설탕을 한 숟가락 퍼내서 자기 접시에 담았다. 그러자 작은 녀석이 언니가 한 대로 같은 분량의 설탕을 같은 방법으로 자신의 접시에 담았다. 잠시 두 사람은 서로 노려보고 있다가, 큰 녀석이 다시 숟가락을 들고 한 숟가락을 자신의 접시에 담았다. 작은 녀석도 즉시 숟가락을 들고 자신의 분량을 언니와 같게 만들었다. 그러자 언니가 또 한 숟가락 펐다. 동생도 지지 않고 한 숟가락 더했다. 언니가 또 단지에 손을 댄다. 동생이 다시 숟가락을 집는다. 보고 있는 동안 한 숟가락 한 숟가락 한 숟가락이 쌓여, 결국 두 사람의 접시에는 설탕이 수북이 쌓이고, 단지 안에는 한 숟가락의 설탕도 남지 않게 됐을 때, 주인이 졸린 눈을 비비면서 방에서 나와 어렵게 퍼낸 설탕을 원래대로 단지 안에 넣어 버렸다. 이런 걸 보면, 인간의 이기주의에서 산출한 공평이라는 개념은 고양이보다 훌륭할지도 모르지만, 지혜는 오히려 고양이보다 떨어지는 것 같다. 그렇게 수북이 쌓기 전에 빨리 핥아 먹어 버리면 좋을 텐데, 라고 생각했지만 여느 때처럼, 내가 하는 말은 통하지 않기 때문에, 안타깝지만 밥통 위에서 잠자코 구경했다.
간게쓰 군과 함께 나간 주인은 어디를 어떻게 걸었는지, 그날 밤 늦게 돌아와서, 다음 날 식탁에 앉은 것은 9시 무렵이었다. 주인은 말없이 조니*를 먹고 있다. 다 먹고는 한 그릇 더 먹고, 또 한 그릇 더 먹는다. 떡 조각은 작은데, 6조각인가 7조각 먹고 마지막 한 조각을 그릇에 남기고, 이제 그만이라며 젓가락을 놓는다. 다른 사람이 그렇게 제멋대로 굴면, 좀처럼 용서치 않는데, 주인이라는 위세를 휘둘러 득의양양해진 그는, 탁한 국물 속에 불어 터진 떡의 시체를 보고 태연하게 있다. 안주인이 선반에서 다카디아스타제를 꺼내 식탁 위에 놓는다.
“그건 듣지 않으니까 안 먹어.”
“하지만 여보, 전분질 음식에는 효능이 좋다니까, 먹는 게 좋을 거예요.”
안주인은 먹이려 한다.
“전분이든 뭐든 소용없어.”
주인이 완고하게 나온다.
“당신은 정말 금방 싫증을 내는군요.”
안주인이 혼잣말처럼 말한다.
“금방 싫증을 내는 게 아니라 약이 듣지 않는 거야.”
“하지만 지난번에는 잘 들어 잘 들어 하며 매일매일 드셨잖아요.”
“얼마 전까지는 잘 들었어, 요즘은 듣질 않아.”
대구對句처럼 대답한다.
“그렇게 먹다가 안 먹다가 하면, 아무리 효능이 있는 약이라도 들을 리가 없죠. 조금 인내하지 않으면 위장병은 다른 병과 달라 낫질 않아요.”
안주인은 쟁반을 들고 서 있는 하녀를 돌아본다.
“그건 사실입니다. 조금 더 드셔 보지 않으면, 좋은 약인지 나쁜 약인지 전혀 알 수 없어요.”
하녀는 두말없이 안주인 편을 든다.
“뭐든 좋아, 안 먹는다면 안 먹어. 여자 따위가 뭘 안다고, 잠자코 있어.”
“어차피 여자예요.”
안주인이 다카디아스타제를 주인 앞에 들이밀고는 기어이 먹이려고 한다. 주인은 아무 말도 않고 일어서서 서재로 들어간다. 안주인과 하녀는 얼굴을 마주보고 히죽히죽 웃는다. 이럴 때 뒤따라가 무릎 위에 오르면 봉변을 당한다. 살짝 마당을 통해 서재의 툇마루에 올라가 장지문 틈으로 들여다보니, 주인은 에픽테토스인가 하는 사람의 책을 펼쳐 놓고 보고 있었다. 만약 그것이 평소처럼 이해된다면 조금 대단하다 하겠다. 5, 6분 지나자 그 책을 내던지듯 책상 위에 내팽개친다. 그럴 줄 알았다고 생각하면서 여전히 주의를 기울이고 있는데, 이번에는 일기장을 꺼내 다음과 같은 것을 적었다.
간게쓰와 네즈根津, 우에노上野, 이케노하타池の端, 간다神田 근처를 산책. 이케노하타의 찻집 앞에서 기생이 옷자락에 무늬가 있는 봄옷을 입고 하네*를 치고 있다. 옷은 예쁜데 얼굴은 몹시 못생겼다. 왠지 우리 집 고양이와 닮았다.
얼굴이 못생긴 예로 특별히 나를 들지 않아도, 좋을 텐데. 나도 기타도코喜多床*에 가서 얼굴만 면도한다면, 인간과 그렇게 다른 점은 없을 것이다. 인간은 이렇게 잘난 체를 하니 곤란하다.
호탄宝丹*의 모퉁이를 돌자 또 기생 한 명이 왔다. 이 여자는 키가 훤칠하고 어깨가 동그스름한 멋진 여자로, 입고 있는 옅은 보라색 기모노도 바르게 차려입은 것이 고상해 보였다. 흰 이를 드러내고 웃으며 “켄 짱, 어젯밤은…… 바빠서 그만.”이라고 말했다. 단 그 목소리는 뜨내기 기생처럼 쉬어 있었기 때문에, 모처럼의 아름다운 모습도 가치가 떨어진 것처럼 느껴졌으므로, 소위 켄 짱이라는 자가 어떤 사람인지를 뒤돌아보는 것도 귀찮아져서, 양손을 품에 지른 채 오나리미치御成道로 나왔다. 간게쓰는 왠지 안절부절못하는 것처럼 보였다.
인간의 심리만큼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없다. 이 주인이 지금 화를 내고 있는 건지, 들떠 있는 건지, 또는 철학자의 유서에서 한 줄기 위안을 구하고 있는 건지, 전혀 모르겠다. 세상을 냉소하고 있는 건지, 세상 가운데 섞이고 싶은 건지, 시시한 일에 성을 내고 있는 건지, 속세에 초연한 것인지 전혀 짐작이 가지 않는다.
고양이 따위는 거기에 대면 단순한 존재이다. 먹고 싶으면 먹고, 자고 싶으면 자고, 화낼 때는 열심히 화내고, 울 때는 몸도 마음도 극한에 다다를 정도로 운다. 무엇보다 일기 같은 무용지물은 결코 쓰지 않는다. 쓸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주인처럼 겉과 속이 다른 인간은 일기라도 써서 세상에 내보일 수 없는 자기의 모습을 암암리에 발휘할 필요가 있을지도 모르지만, 우리 고양이족은 가고 오고 앉고 서고, 오줌 누고 똥 누고 하는 일이 모두 진실한 일기이기 때문에, 특별히 그런 귀찮은 수고를 하여, 자기 자신의 진면목을 보존할 필요는 없다. 일기를 쓸 시간이 있으면 툇마루에서 잠이나 잘 뿐이다.
간다의 모 식당에서 저녁을 먹다. 오래간만에 정종을 두세 잔 마셨더니, 오늘 아침은 속이 상당히 좋다. 소화 기능이 약할 때는 반주가 최고라고 생각한다. 다카디아스타제는 물론 도움이 되지 않는다. 누가 뭐라 해도 소용없다. 아무리 해도 듣지 않는 것은 듣지 않는다.
무턱대고 디카디아스타제를 공격한다. 혼자서 싸우고 있는 것 같다. 오늘 아침의 짜증이 여기에 나타난다. 인간이 쓰는 일기의 본래 목적은 이런 데 있는지도 모르겠다.
일전에 ◯◯가 아침을 먹지 않으면 위가 좋아진다고 하기에 2, 3일 아침을 걸러 보았지만 속에서 꼬르륵 꼬르륵 소리만 날 뿐 효과가 없다. △△는 부디 채소 절임을 끊으라고 충고했다. 그는 모든 위병의 원인은 채소 절임에 있다고 말했다. 채소 절임만 끊으면 위병의 근원을 말리는 것이므로 회복은 문제없다는 논법이었다. 그 후로 일주일 정도 채소 절임에는 젓가락도 대지 않았지만 별반 효과도 없었기 때문에 최근에는 다시 먹기 시작했다.
××에게 들으니 위병에는 복부 안마가 최고라고 한다. 단, 보통의 방법으로는 안 된다. 미나가와류라는 고풍스러운 방식으로 한두 번 안마를 받으면 대부분의 위병은 완치된다. 야스이 소쿠켄*도 이 안마술을 몹시 좋아했다. 사카모토 료마坂本竜馬 같은 호걸도 가끔은 치료를 받았다고 하니, 즉시 가미네기시上根岸까지 가서 안마를 받아 보았다. 그런데 뼈를 주무르지 않으면 낫지 않는다느니, 오장육부의 위치를 한번 뒤집지 않으면 완치되기 어렵다느니 하며, 그야말로 잔혹하게 주무른다. 나중에 몸이 솜처럼 되어 혼수상태에 빠진 것 같은 기분이 들었기 때문에, 한 번 받고 질려서 그만두었다.
A군은 딱딱한 것을 먹지 말라고 한다. 그래서 하루를 우유만 먹고 지내 보았는데, 이때는 장 안에서 출렁출렁 홍수가 난 것처럼 소리가 나서 밤새 잠들지 못했다. B씨는 횡격막으로 호흡을 하여 내장을 운동시키면 자연스럽게 위의 움직임이 건강해지므로 시험 삼아 해보라고 한다. 이것도 조금 했지만 왠지 배 속이 불편하여 곤란하다. 게다가 가끔 생각난 듯이 일심분란하게 하기는 하지만 5, 6분 지나면 잊어버린다. 잊어버리지 말아야지 하면 횡경막이 신경 쓰여 책을 읽을 수도 문장을 쓸 수도 없다. 미학자 메이테이가 이 꼴을 보고, 산기 있는 남자도 아니고 그만두라고 놀리기에 이쯤부터 그만두어 버렸다. C선생은 메밀국수를 먹으면 좋다고 하기에, 즉시 온메밀과 냉메밀을 번갈아 먹었지만, 설사만 할 뿐 아무 효과도 없었다.
나는 오랫동안 위장병을 고치려고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강구해 보았지만 모두 허사였다. 다만 어젯밤 간게쓰와 기울인 세 잔의 정종은 확실히 효과가 있었다. 앞으로는 매일 밤 두세 잔씩 마셔야겠다.
이것도 결코 오래가지 않을 것이다. 주인의 마음은 내 눈알처럼 끊임없이 변한다. 뭘 해도 오래가지 않는 남자다. 게다가 일기에서는 위장병을 이렇게 걱정하고 있는 주제에, 겉으로는 억지로 태연한 척하니 우습다. 요전에 친구 아무개라는 학자가 찾아와서, 어떤 관점에서 보면, 모든 병은 조상의 죄악과 자기의 죄악의 결과라는 의견을 내놓았다. 상당히 연구한 듯, 조리가 분명하고 질서정연한 훌륭한 설이었다. 안타깝게도 우리 주인 같은 사람은 도저히 여기에 반박할 정도의 두뇌와 학문도 없다. 그러나 자신이 위장병으로 괴로워하고 있을 때였으므로, 그럭저럭 변명을 하여 자기의 면목을 지키려는 모양인지 “자네 설은 재미있지만, 칼라일도 위가 안 좋았어.”라고 마치 칼라일이 위장병이니 자신의 위장병도 명예라는 식으로, 얼토당토않는 말을 했다. 그러자 친구는 “칼라일이 위장병이라고, 위장병인 사람이 반드시 칼라일이 될 수 없네.”라고 단정 지었기 때문에 주인은 잠자코 있었다. 이와 같이 허영심이 많기는 하나, 실은 역시 위가 약하지 않았으면 하는지, 오늘 밤부터 반주를 시작하겠다고 하는 것이 좀 우습다. 생각해 보면 오늘 아침 조니를 그렇게 많이 먹은 것도 어젯밤 간게쓰 군과 정종을 마신 영향인지도 모른다. 나도 좀 조니가 먹고 싶어졌다.
나는 고양이지만 대부분의 것은 먹는다. 인력거꾼네 구로처럼 뒷골목의 생선 가게까지 원정할 기력은 없고, 신작로의 이현금二絃琴* 선생네 미케처럼 사치스러운 소리를 할 처지는 물론 못 된다. 따라서 의외로 싫어하는 것이 적은 편이다. 아이가 먹다 흘린 빵도 먹고, 찹쌀떡의 팥도 먹는다. 채소 절임은 몹시 맛이 없지만 경험을 위해 단무지 두 조각을 먹은 적이 있다. 먹어 보면 묘하게도, 대부분은 먹게 된다. 이건 싫다, 저건 싫다, 라는 건 배부른 소리로 도저히 교사의 집에 있는 고양이 따위가 할 말이 아니다.
주인의 말에 의하면 프랑스에 발자크*라는 소설가가 있었다고 한다. 이 남자는 몹시 사치스러운 자였는데, 다만 음식에 사치를 부린 것이 아니라, 소설가인 만큼 문장에 사치를 부렸다고 한다. 발자크가 어느 날 자신이 쓰고 있는 소설 속 인물의 이름을 붙일 생각으로 여러 가지 이름을 붙여 보았지만, 아무리 해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때 친구가 놀러 와 함께 산책을 나갔다. 친구는 처음부터 아무것도 모른 채 따라갔는데, 발자크는 전부터 고민하던 이름을 찾아낼 생각이었기 때문에, 거리에 나오자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게 앞 간판만 보고 걷고 있다. 그런데 역시 마음에 드는 이름이 없다. 친구를 데리고 걷기만 한다. 친구는 이유를 모른 채 따라간다. 그들은 아침부터 밤까지 파리를 탐색했다. 돌아오는 길에 발자크는 문득 어느 바느질 가게의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그 간판에 마르쿠스라는 이름이 쓰여 있는 걸 보고 발자크는 손뼉을 쳤다. “이거야, 바로 이거야. 마르쿠스는 좋은 이름이군. 마르쿠스 앞에 Z라는 머리글자를 붙이면, 더할 나위 없는 이름이 만들어져. Z가 아니면 안 돼. Z. Marcus는 참으로 멋지군. 내가 지은 이름은 잘 지었다고 생각해도 왠지 부자연스러워서 별로야. 간신히 마음에 드는 이름을 찾았군.” 그는 친구의 괴로움은 완전히 잊고, 혼자 기뻐했다고 하는데, 소설 속 인물의 이름을 짓기 위해 하루 종일 파리를 탐험해야만 한다면 상당히 수고스럽다. 사치도 이 정도라면 훌륭하지만 나처럼 굴과 같이 서재에만 틀어박혀 있는 주인을 가진 신세는 전혀 그럴 마음이 들지 않는다. 뭐든 좋다, 먹을 수만 있다면 하는 마음이 드는 것은 처지가 그렇기 때문일 것이다. 때문에 지금 조니가 먹고 싶어진 것도 결코 사치스러워서 그런 것이 아니라, 뭐든 먹을 수 있을 때 먹어 두자는 마음에서, 주인이 먹다 남긴 조니가 혹시 부엌에 남아 있지 않을까, 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부엌을 돌아다녀 본다.
오늘 아침에 본 떡이 그대로, 오늘 아침 본 그대로의 색으로 그릇 바닥에 들러붙어 있다. 고백하건대 떡이라는 것은 지금까지 한 번도 먹어 본 적이 없다. 맛있어 보이기도 하고, 또 조금은 왠지 기분 나쁘기도 하다. 앞발로 위에 있는 채소를 긁어모았다. 발톱을 보니 떡이 걸려 끈적끈적하다. 냄새를 맡아 보니 가마솥의 밥을 밥통으로 옮길 때와 같은 냄새가 난다. 먹을까, 말까 하며 주위를 둘러본다. 행인지 불행인지 아무도 없다. 하녀는 노상 같은 얼굴을 하고 하네를 치고 있다. 아이들은 안방에서 “무슨 말씀이세요, 토끼님”*이라고 노래하고 있다. 먹는다면 지금이다. 만약 이때를 놓치면 내년까지는 떡이라는 것의 맛을 모른 채 살아가야만 한다. 나는 이 순간 고양이지만 하나의 진리를 터득했다.
‘얻기 어려운 기회는 모든 동물로 하여금, 좋아하지 않는 일도 억지로 하게 한다.’
나는 사실 그렇게 조니를 먹고 싶지 않다. 아니, 그릇 밑바닥을 들여다보면 볼수록 어쩐지 기분이 나빠서, 먹기 싫어졌다. 이때 만약 하녀라도 부엌문을 열었다면, 안쪽에서 이쪽으로 다가오는 아이들의 발소리가 들렸다면, 나는 깨끗이 그릇을 포기했을 것이다. 그리고 조니에 대해 내년까지 머리에 떠오르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도 오지 않는다. 아무리 머뭇거려도 아무도 오지 않는다. 빨리 먹어라 먹어라 하고 재촉하는 듯한 느낌이 든다. 나는 그릇 안을 들여다보면서, 빨리 누군가 와주기를 빌었다. 역시 아무도 와주지 않는다.
나는 결국 떡을 먹어야만 한다. 마지막으로 온몸의 무게를 그릇 밑바닥에 떨어뜨리듯 하여, 덥석 떡 모서리를 한 치 정도 물었다. 이 정도로 힘을 줘서 물면, 대부분은 끓어질 텐데, 놀랐다! 이제 됐지 싶어 이를 빼려는데 빠지지 않는다. 다시 한번 물어뜯으려 했지만 꼼짝을 할 수 없다. 떡은 요물이란 것을 깨달았을 때는 이미 늦었다. 늪에 빠진 사람이 다리를 빼려고 조바심 내면 낼수록 부글부글 깊이 가라앉는 것처럼, 물면 물수록 입이 무거워지고, 이가 움직이지 않게 된다. 씹는 맛은 있으나, 씹는 맛이 있을 뿐 아무리 해도 마무리가 되질 않는다.
미학자 메이테이 선생이 일찍이 내 주인에게 ‘자네는 답답한 남자로군.’ 하고 평한 적이 있는데, 과연 맞는 말이다. 이 떡도 주인과 마찬가지로 몹시 답답하다. 물어뜯어도 물어뜯어도, 10을 3으로 나누는 것처럼 영원히 나누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렇게 번민하는 동안 나는 저절로 제2의 진리와 마주쳤다.
‘모든 동물은 직관적으로 사물의 적합 부적합을 미리 안다.’
진리를 이미 두 개까지 만들어 냈지만, 떡이 들러붙어 있어서 전혀 유쾌하지 않다. 이가 떡 속에 박혀, 빠질 듯이 아프다. 빨리 물어 끊고 달아나지 않으면 하녀가 올 것이다. 아이들의 창가도 그친 듯하다. 분명 부엌으로 달려올 것이다.
번민 끝에 꼬리를 휘휘 흔들어 보았지만 아무런 효과도 없다. 귀를 세우기도 하고 누이기도 했지만 소용없다. 생각해 보면 귀와 꼬리는 떡과 아무런 관계도 없다. 요컨대 흔들어 손해, 세워서 손해, 누여서 손해라고 깨달았기 때문에 그만두었다. 가까스로 이것은 앞발의 도움을 빌려 떡을 떼어 내는 게 제일이라는 생각이 떠올랐다. 우선 오른발을 들어 입 주위를 이리저리 쓰다듬는다. 쓰다듬는 정도로 떨어질 것이 아니다. 이번에는 왼발을 뻗어 입을 중심으로 급격히 원을 그려 본다. 그런 주술로 마물은 떨어지지 않는다. 인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좌우 번갈아 움직였지만 역시 이는 떡 속에 여전히 박혀 있다. ‘아아, 귀찮아.’ 하면서 양발을 한꺼번에 사용한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이때만은 두 뒷다리로 설 수 있었다. 왠지 고양이가 아닌 듯한 느낌이 든다. 고양이든 아니든 이렇게 된 이상 상관할 게 뭐냐, 떡이라는 마물이 떨어질 때까지 해야겠다는 기세로 얼굴을 마구 할퀴어 댔다. 앞발의 운동이 맹렬하기에 자칫하면 중심을 잃고 쓰러질 것 같다. 쓰러질 것 같을 때마다 뒷발로 균형을 잡아야 하므로, 한 곳에 있을 수가 없기에, 부엌 안 여기, 저기를 뛰어 다닌다. 나로서도 잘도 이렇게 요령 좋게 서 있구나 싶다. 제3의 진리가 별안간 눈앞에 나타난다.
‘위기에 처하면 평소에 할 수 없던 일을 할 수 있다. 이것을 천우天佑(하늘의 도움)라고 한다.’
다행히 천우를 받은 내가 열심히 떡이라는 마물과 싸우고 있는데, 발소리가 나더니 안에서 사람이 오는 듯한 낌새다. 여기에 사람이 오면 큰일이다 싶어, 더욱 죽기 살기로 부엌을 뛰어다닌다. 발소리는 점점 다가온다. 아아, 안타깝게도 천우가 조금 부족하다. 마침내 아이들에게 들켰다.
“어머, 고양이가 조니를 먹고 춤추고 있어.”
아이들이 큰 소리를 낸다. 이 소리를 제일 먼저 들은 것이 하녀이다. 하네도 하코이타*도 내팽개치고 부엌으로 “어머나.” 하고 뛰어든다. 안주인은 가문이 표시된 바탕이 오글오글한 평직의 비단옷을 입고 말했다.
“짜증나는 고양이군.”
“이 바보 녀석.”
주인마저도 서재에서 나와 한마디를 한다.
‘재미있어, 재미있어.’ 하는 것은 아이들뿐이다. 그리고 모두 약속이나 한 듯 깔깔 웃는다. 화가 나고, 괴로운데, 춤을 멈출 수가 없어 곤란했다. 겨우 웃음이 그칠 듯해지자, 다섯 살 난 여자아이가 “엄마, 고양이도 고약하네.”라고 말했기 때문에 기울어진 형세를 만회하는 기세로 또 마구 웃어 댔다. 동정심이 부족하다는 인간의 행실에 대해 꽤 보고 들었지만, 이때만큼 원망스러운 적은 없었다. 마침내 천우도 어디론가 사라지고, 원래대로 네 발로, 눈을 희번덕거리는 추태를 부린 데는 두 손 두 발 다 든 모양이었다. 과연 죽어 가는 것을 보고만 있어서는 가엾다고 생각했는지 주인이 하녀에게 명령했다.
“떡을 떼어 줘라.”
하녀는 더 춤추게 하자는 눈빛으로 안주인을 본다. 안주인은 춤은 보고 싶지만, 죽이면서까지 보고 싶은 마음은 없었기 때문에 잠자코 있다.
“떼어 주지 않으면 죽을 거야, 빨리 떼어 줘.”
주인은 다시 하녀를 돌아본다. 하녀는 맛있는 음식을 먹는 꿈을 꾸는데 중간에 누가 깨웠을 때처럼, 마음에 없는 얼굴을 하고 떡을 잡고 확 잡아당긴다. 간게쓰 군은 아니지만 앞니가 몽땅 부러진 줄 알았다. 아프고 안 아프고가 아니라, 떡 속에 굳게 박혀 있는 이를 인정사정없이 잡아당기니 견딜 재간이 없다. 나는 ‘모든 안락은 어려움을 통과해야만 한다.’라고 하는 제4의 진리를 경험했다. 두리번두리번 주위를 둘러봤을 때 집안사람들은 이미 안방으로 들어가 버린 후였다.
이런 실패를 겪자 집 안에서 하녀와 얼굴을 마주치는 것도 왠지 겸연쩍다. 차라리 기분 전환으로 신작로 이현금 선생 댁의 미케코라도 방문하고자 부엌을 통해 뒤쪽으로 나왔다.
미케코는 이 근방에서 유명한 미모의 소유자다. 나는 고양이임에는 틀림없지만 인정이라는 것은 대충 알고 있다. 우리 집주인의 괴로운 얼굴을 보거나, 하녀에게 심하게 야단맞아 기분이 언짢을 때는 반드시 이 이성 친구를 방문하여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한다. 그러면 어느 틈에 마음이 후련하고 지금까지의 걱정도 고생도 모조리 잊고, 다시 태어난 듯한 기분이 된다. 여성의 영향이라는 건 실로 막대하다. 삼나무 울타리 틈으로, 있나 하고 바라보니, 미케코는 설날이여서 새로운 목걸이를 하고 예의 바르게 툇마루에 앉아 있다. 등이 굽은 정도가 말로 표현하지 못할 정도로 아름답다. 곡선미의 극치이다. 꼬리가 말린 정도, 다리가 꺾인 정도, 나른하게 귀를 가끔 흔드는 모습 등도 도저히 형용하기 어렵다. 특히 해가 잘 드는 곳에 따뜻한 듯이, 품위 있게 앉아 있으니, 몸은 정숙 단정한 태도인데, 벨벳을 능가할 정도의 매끄러운 온몸의 털은 봄 햇살을 반사하여 바람이 없는데도 살랑살랑 미동하는 것처럼 보인다. 나는 잠시 황홀하게 바라고 있다가 정신을 차리면서, 낮은 목소리로 앞 발짓을 하여 불렀다.
“미케코 씨, 미케코 씨.”
“어머, 선생님.”
미케코가 툇마루에서 내려온다. 붉은 목걸이에 단 방울이 딸랑딸랑 울린다. 아, 설날이 되니 방울까지 달았군, 참으로 좋은 소리구나 하며 감탄하고 있는 사이에, 내 옆으로 와서 꼬리를 왼쪽으로 흔든다.
“어머, 선생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우리 고양이족 사이에서 서로 인사를 할 때는 꼬리를 막대기처럼 세워서, 그것을 왼쪽으로 빙 돌린다. 동네에서 나를 선생님이라고 불러 주는 건 미케코뿐이다. 나는 앞에서 말한 대로 아직 이름은 없지만, 교사 집에 살기 때문에 미케코만은 존경하여 선생님 선생님이라고 해준다. 나도 선생님이라는 말이 그리 기분 나쁘지 않았기 때문에 “네, 네.” 하고 대답한다.
“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아주 멋지게 꾸미셨군요.”
“네, 작년 말에 저희 집 선생님이 사 주셨어요. 예쁘죠?”
라며 딸랑딸랑 소리를 낸다.
“과연 좋은 소리군요, 저는 태어나서, 그렇게 멋진 것은 본 적이 없어요.”
“어머, 모두 달고 있는걸요.”
또 딸랑딸랑 소리를 낸다.
“소리가 좋지요? 전 기뻐요.”
딸랑딸랑 딸랑딸랑 연달아 소리를 낸다.
“당신 집의 선생님은 당신을 몹시 귀여워하는 모양입니다.”
내 처지와 비교하여 은근히 부러운 마음을 드러낸다. 미케코는 천진난만한 녀석이다.
“정말 그래요, 마치 자기 자식처럼요.”
미케가 티 없이 웃는다. 고양이라고 웃지 않는 건 아니다. 인간만 웃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다. 내가 웃을 때는 콧구멍을 삼각형으로 만들어 목젖을 떨며 웃기 때문에 인간이 알 리가 없다.
“대체 당신 집의 주인은 뭔가요?”
“어머, 주인이라고요, 이상하네요. 선생님이세요. 이현금 선생님이요.”
“그건 저도 알아요. 그러니까 신분이 뭔가요? 예전에는 훌륭한 분이셨죠?”
“네.”
“그대를 기다리는 동안 섬잣나무姫小松…….”
장지문 안에서 선생이 이현금을 타기 시작한다.
“좋은 목소리죠?”
미케코는 자랑한다.
“좋은 것 같은데, 저는 잘 모르겠어요. 대체 무슨 곡이죠?”
“뭐더라? 저건 어쩌구 저쩌구라는 거예요. 선생님은 저걸 몹시 좋아하세요……. 선생님은 저래 봬도 예순둘이에요. 상당히 건강하시죠?”
예순둘인데 살아 있을 정도니 건강하다고 하지 않으면 안 된다. 나는 “네.”라고 대답했다. 조금 맥이 빠지는 듯하지만 특별히 명답이 떠오르지 않았으니 어쩔 수가 없다.
“저래 봬도, 원래는 신분이 몹시 높았대요. 늘 그렇게 말씀하세요.”
“허, 원래는 뭐였어요?”
“그러니까 덴쇼인 님의 기록을 맡았던 사람의 여동생이 시집간 집의 시어머니의 조카딸이래요.”
“뭐라고요?”
“저기 덴쇼인 님의 기록을 맡았던 사람의 여동생이 시집간 집의…….”
“그렇군요. 잠시만요. 덴쇼인 님의 여동생의 기록을 맡은 사람의…….”
“어머, 그게 아니구요, 덴쇼인 님의 기록을 맡았던 사람의 여동생의…….”
“됐어요, 알았어요, 덴쇼인 님의, 맞지요?”
“네.”
“기록을 맡았던 사람의, 맞지요?”
“그래요.”
“시집간.”
“여동생이 시집을 갔어요.”
“그렇죠, 틀렸네. 여동생이 시집간 집의…….”
“시어머니의 조카딸이래요.”
“시어머니의 조카딸인가요?”
“네. 알겠죠?”
“아니요, 뭔가 복잡해서 종잡을 수가 없어요. 그러니까 덴쇼인 님의 뭐가 되는 거죠?”
“당신도 어지간히 못 알아듣는군요. 그러니까 덴쇼인* 님의 기록을 맡았던 사람의 여동생이 시집간 집의 시어머니의 조카딸이래요, 아까부터 계속 말했잖아요.”
“그건 잘 알겠는데요.”
“그것만 알면 되죠?”
“네.”
어쩔 수가 없어서 항복했다. 우리는 어쩌면 논리에 밀려 거짓말을 해야만 하는 경우가 있다.
장지문 안에서 이현금 소리가 딱 그치고, 선생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미케야 미케야, 밥 먹어.”
미케코는 기쁜 듯이 말한다.
“어머, 선생님이 부르시니 저 가요, 괜찮죠?”
괜찮지 않다고 해도 소용없다.
“그럼 또 놀러오세요.”
방울을 딸랑딸랑 울리며 툇마루 가까이까지 달려갔다가 갑자기 돌아와서 걱정스럽게 묻는다.
“당신 안색이 몹시 안 좋아요. 무슨 일이죠?”
조니를 먹고 춤을 췄다고 말할 수가 없다.
“뭐, 별다른 일은 없어요. 조금 생각을 했더니 머리가 아파서. 실은 당신과 이야기라도 하면 나을 거라 생각해서 찾아 온 거예요.”
“그래요. 몸조리 잘 하세요. 잘 가요.”
조금은 헤어지기 섭섭한 듯 보였다. 이것으로 조니 때문에 잃은 기력도 완전히 회복했다. 기분이 좋아졌다. 돌아가는 길에 예의 차밭을 지나가려고 서리가 녹기 시작한 차밭을 밟으며 대나무 울타리가 부서진 곳에서 얼굴을 내밀자 또 인력거꾼네 구로가 시든 국화 위에서 등을 산처럼 만들고 하품을 하고 있다. 요즘은 구로를 보고 두려워할 내가 아니지만, 이야기를 걸면 귀찮기 때문에 모르는 척하고 지나가려고 했다. 구로의 성질상 다른 사람이 자신을 경멸했다고 판단하면 결코 잠자코 있지 않는다.
“어이, 이름 없는 촌뜨기, 요즘 별나게 잘난 체하는 거 아니야? 아무리 교사네 밥을 먹는다고, 그런 오만한 얼굴 하는 거 아니야. 사람을 바보 취급하다니 너무하는군.”
구로는 내가 유명해진 것을 아직 모르는 듯하다. 설명해 주고 싶지만 도저히 이해할 녀석이 아니므로, 우선 인사를 하고 할 수 있는 한 빨리 물러나야겠다고 결심했다.
“이봐, 구로 군, 새해 복 많이 받아. 여전히 건강하네.”
나는 꼬리를 세우고 왼쪽으로 획 돌린다. 구로는 꼬리를 세운 채 인사도 하지 않는다.
“새해 복 많이 받으라고? 설날이어서 새해 복을 받는다면, 너 같은 녀석은 일 년 내내 복을 받겠구나. 조심해, 이 풀무처럼 씩씩거리는 녀석.”
풀무처럼 씩씩거리는 녀석이라는 건 욕설 같은데, 나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좀 묻겠는데 풀무처럼 씩씩거리는 녀석이라는 건 무슨 의미지?”
“흥, 네 녀석은 욕설을 듣는데도, 그 의미를 묻다니 어이가 없군. 그러니까 설날 촌놈이라는 의미다.”
설날 촌놈이란 시적이지만, 그 의미에 있어서는 풀무의 어쩌고보다도 한층 불명확한 문구이다. 참고를 위해 조금 더 물어보고 싶었지만, 물어봤자 명료한 답변을 얻지 못할 게 뻔했기 때문에, 얼굴을 마주한 채 말없이 서 있었다. 다소 따분한 상황이다. 그때 갑자기 구로네 안주인이 커다랗게 소리친다.
“어머, 선반에 올려 둔 연어가 없어. 큰일이군. 또 저 빌어먹을 구로가 훔쳐 간 거야. 정말 얄미워 죽겠다니까. 돌아오기만 해봐라, 아주 혼내 줄 테니까.”
신년의 한가로운 공기를 멋대로 뒤흔들어, 평온한 세상을 속되게 변모시켜 버린다. 구로는 고함치려거든 고함치고 싶은 만큼 고함치라는 뻔뻔스러운 얼굴로, 네모난 턱을 앞으로 내밀면서, 저걸 들었느냐고 신호를 한다. 지금까지는 구로를 응대하느라 알아채지 못했는데, 보니 그의 발밑에는 한 토막에 2전 3리에 하는 연어 뼈가 흙투성이가 되어 나뒹굴고 있다.
“자네 여전하군.”
지금까지의 사정은 잊고, 그만 감탄의 말을 했다. 구로는 그 정도의 말로는 좀처럼 기분을 풀지 않는다.
“뭐가 여전해, 이 자식. 연어의 한 토막 두 토막으로 여전하다니 뭐야? 사람을 깔보다니. 이래 봬도 인력거꾼네 구로다.”
그는 팔을 걷어붙이는 대신 오른쪽 앞발을 거꾸로 어깨 언저리까지 들어올렸다.
“자네가 구로 군이라는 사실은, 처음부터 알고 있었네.”
“알고 있으면서, 여전하다는 건 뭐냐, 뭐냐고?”
계속해서 열기를 뿜는다. 인간이라면 멱살을 잡혀 끌려 다닐 판이다. 조금 난처하여 내심 곤란해하고 있는데, 다시 예의 안주인의 커다란 목소리가 들린다.
“잠깐 정육점 아저씨, 이봐요 정육점 아저씨, 용건이 있어요, 아저씨. 소고기를 한 근 즉시 가져다주세요. 알았어요? 소고기 부드러운 부분으로 한 근이요.”
소고기를 주문하는 소리가 사방의 적막을 깬다.
“흥, 일 년에 한 번 소고기를 주문하면서, 쓸데없이 큰 소리를 내다니. 소고기 한 근이 동네방네 자랑거리니 처치 곤란한 계집이군.”
구로는 비웃으며 네 발로 버티고 선다. 나는 대꾸할 말도 없었기 때문에 잠자코 보고 있다.
“한 근 정도로는, 성에 차지 않지만, 할 수 없지, 좋아, 받아 두면, 곧 먹어 주지.”
마치 자신을 위해 주문한 것처럼 말한다.
“이번엔 정말로 맛난 음식이군. 훌륭하군, 훌륭해.”
나는 가급적 그를 돌려보내려 한다.
“네 녀석이 알 바 아니야. 닥쳐. 시끄러우니까.”
구로는 말하면서 갑자기 뒷다리로 부서진 서릿발을 내 머리에 휙 퍼붓는다. 내가 놀라서 몸에 묻은 진흙을 털어 내고 있는 사이에 구로는 울타리를 빠져나가, 어디론가 모습을 감췄다. 아마도 정육점의 소고기를 노리고 갔을 것이다.
집에 돌아가자 방 안이, 전에 없이 봄기운이 느껴져 주인의 웃음소리조차 쾌활하게 들린다. 뭐지? 하며 활짝 열린 툇마루로 올라가 주인 옆으로 다가가 보니 낮선 손님이 와 있다. 머리를 반듯이 가르고, 가문이 표시된 면 하오리에 두꺼운 면직물로 만든 하카마*를 입은 몹시 착실해 보이는 서생 풍의 남자이다. 주인이 손을 쬐는 작은 화로 귀퉁이를 보니 옻칠을 한 담뱃갑과 나란히 ‘오치 도후越智東風를 소개합니다. 미즈시마 간게쓰’라고 쓰인 간게쓰의 명함이 있기에, 이 손님의 이름도, 간게쓰 군의 친구라는 것도 알 수 있었다. 주인과 손님의 대화는 도중부터 들었기 때문에 전후는 잘 모르겠지만, 아무래도 내가 앞서 소개한 미학자 메이테이 선생에 관한 것인 모양이다.
“그래서 재미있는 취향이 있으니까 부디 같이 가자고 말씀하시기에…….”
손님은 차분하게 말한다.
“뭔가요, 그 서양 요리점에 가서 점심을 먹는 데 취향이 있단 말인가요?”
주인은 차를 더 따라 손님 앞에 내민다.
“글쎄, 그 취향이라는 것이 그때는 저도 몰랐는데, 어쨌든 그분이 하는 일이니, 뭔가 재미있는 게 있을 거라 생각해서…….”
“그래서 같이 갔나요?”
“네, 그런데 놀랐습니다.”
주인은 그거 보라는 듯이, 무릎 위에 올라앉은 내 머리를 딱 때린다. 조금 아프다.
“또 바보 같은 연극 비슷한 것이죠? 그 남자는 그게 버릇이죠.”
주인은 갑자기 안드레아 델 사르토 사건을 떠올린다.
“헤헤, 자네 뭔가 색다른 것을 먹지 않겠나, 라고 말씀하시기에.”
“뭘 먹었나요?”
“우선은 메뉴를 보면서 여러 가지 요리에 관한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주문하기 전에요?”
“네.”
“그다음에?”
“그다음에 고개를 갸웃하더니 보이를 보시고, ‘아무래도 색다른 것은 없어 보이는군.’ 하셨어요. 보이는 지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오리 로스나 송아지 찹 등은 어떻습니까?’ 하고 묻더군요. 선생님은 그런 진부한 걸 먹기 위해 일부러 여기까지 온 게 아니라고 말씀하셨고, 보이는 ‘진부하다’라는 의미를 몰라 묘한 얼굴을 하고 잠자코 있었어요.”
“그랬겠지요.”
“그리고 제 쪽을 보시더니, ‘자네 프랑스나 영국에 가면 덴메이초天明調*나 만요초万葉調*를 많이 먹을 수 있는데, 일본에서는 어디를 가도 판에 박힌 듯해서, 서양 요릿집에 들어갈 마음이 들지 않는다.’며 기염을 토하셨는데……. 대체 그분은 서양에 가신 적이 있나요?”
“뭐, 메이테이가 서양에 갈 턱이 있나. 그야 돈도 있고, 시간도 있으니, 가려고 하면 언제든지 갈 수 있지만. 아마 앞으로 가려는 곳을, 과거에 가본 것으로 한 말장난이겠지요.”
주인은 스스로도 그럴싸하게 말했다고 생각했는지 상대에게 웃음을 촉구하는 웃음을 짓는다. 손님은 그렇게까지 감복하는 기색도 없다.
“그렇습니까, 저는 또 어느 틈에 서양에 다녀오셨나 싶어, 그만 진지하게 들었습니다. 게다가 보고 온 것같이 달팽이 수프 이야기와 개구리 스튜를 형용하시니까요.”
“그야 누군가에게 들었겠지요, 거짓말하는 데는 꽤나 명인이니까.”
“아무래도 그런 것 같아요.”
그는 화병에 꽂힌 수선화를 바라본다. 약간 유감스러운 기색이다.
“그러니까 취향이라는 것은, 그것이었군요.”
주인이 확인을 한다.
“아니, 그건 그저 서론으로, 본론은 지금부터예요.”
“흐…응.”
주인은 호기스러운 감탄사를 끼워 넣는다.
“곧 ‘달팽이나 개구리는 먹으려 해도 먹지 못하니, 뭐 도치멘보* 정도에서 타협하는 것으로 하지 않겠나, 자네?’ 하고 말씀하시기에, 저는 그만 별생각 없이, ‘그게 좋겠어요.’라고 말해 버려서.”
“흥……, 도치멘보라니 묘하군요.”
“네, 정말 묘하지만, 선생님이 너무 진지하셔서 전혀 알아채지 못했어요.”
마치 주인에게 경솔함을 사과하는 듯이 보인다.
“그러고 나서 어떻게 했나요?”
주인은 개의치 않고 묻는다. 손님의 사죄에는 전혀 동정을 나타내지 않는다.
“그러고 나서 보이에게 도치멘보를 2인분 가져오라고 하자, 보이가 ‘멘치보* 말입니까?’ 하고 다시 물었지만, 선생님은, 더욱 진지한 얼굴로 멘치보가 아니라 도치멘보라고 정정하셨습니다.”
“그렇군. 그 도치멘보라는 요리는 도대체 있는 건가요?”
“글쎄, 저도 좀 이상하다고는 생각했지만 자못 선생님이 침착하고, 게다가 아시는 대로 서양 사정에 훤하시고, 특히 그때는 서양에 다녀오셨다고 굳게 믿고 있었기 때문에, 저도 거들어 도치멘보라고 보이에게 가르쳐 주었어요.”
“보이는 어떻게 했나요?”
“보이가 말이죠, 지금 생각하면 실로 우스운데요, 잠시 생각하더니, ‘참으로 안타깝지만, 오늘 도치멘보는 죄송하게 됐고 멘치보라면 2인분 금방 됩니다.’라고 말했어요. 선생님은 몹시 아쉽다는 듯이, ‘이래서는 모처럼 여기에 온 보람이 없군. 어떻게든 도치멘보를 마련해서 먹게 해줄 수 없겠나.’라고 보이에게 20전 은화를 건네며 말했죠. 보이는 그렇다면 하여간 요리사와 상의하고 오겠다며 안으로 들어갔어요.”
“몹시 도치멘보가 먹고 싶었나 보군요.”
“잠시 후 보이가 나와서 ‘대단히 죄송하게도, 주문하시면 만들겠습니다만 다소 시간이 걸릴 겁니다.’라고 하자, 메이테이 선생님은 침착하게 ‘어차피 우리들은 설날이라 한가하니, 조금 기다려 먹고 가지 않겠나.’ 하며 주머니에서 엽궐련을 꺼내서 뻐끔뻐끔 피기 시작했어요. 저도 할 수 없이 품에서 《니혼신문》*을 꺼내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보이가 또 안으로 상의하러 갔습니다.”
“쓸데없이 시간이 걸리는군요.”
주인은 전쟁 통신을 읽는 듯한 기세로* 앞으로 다가앉는다.
“그러자 보이가 또 나와서, ‘근래에는 도치멘보 재료가 부족하여 가메야*에 가도 요코하마 15번지*에 가도 살 수 없어서 당분간은 어렵겠습니다.’라고 미안한 듯 말했어요. 그러자 선생님은 ‘그거 곤란하군, 모처럼 왔는데.’ 하시며 제 쪽을 보며 계속 말씀하시기에 저도 잠자코 있을 수 없어, 참으로 유감이군요, 유감스럽기 짝이 없군요, 라고 장단을 맞췄어요.”
“지당해요.”
주인이 찬성한다. 뭐가 지당한지 나는 모르겠다.
“그러자 보이도 안타까웠는지, 조만간 재료가 오면 부디 방문해 달라고 했어요. 선생님이 재료는 뭘 쓰는지 묻자, 보이는 헤헤헤헤 웃으며 대답을 안 하는 거예요. ‘재료는 일본파 하이쿠 시인이겠지?’ 하고 선생님이 되묻자 보이는 ‘네, 그렇습니다, 그래서 요즘은 요코하마에 가서도 살 수 없으니, 정말로 안타깝습니다.’ 하고 말했어요.”
“아하하하, 그게 반전인가요? 이거 재미있군.”
주인은 평소와 다르게 커다란 목소리로 웃는다. 무릎이 흔들려 나는 떨어질 뻔했다. 주인은 거기에도 개의치 않고 웃는다. 안드레아 델 사르토에 걸려든 것은 자신 한 명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갑자기 유쾌해진 것으로 보인다.
“그러고 나서 둘이서 밖으로 나오자, ‘어떤가 자네, 감쪽같이 속였지? 도치멘보를 사용한 점이 재미있었지?’ 하며 아주 득의양양했어요. 탄복할 뿐이라고 답하고 헤어지긴 했는데, 실은 점심시간이 지났기 때문에 몹시 배가 고파 혼났어요.”
“그거 곤란했겠군.”
주인은 처음으로 동정을 표한다. 여기에는 나도 이의는 없다. 잠시 이야기가 끊기고 내 목 울림 소리가 주인과 손님 귀에 들린다.
도후 군은 차가워진 차를 쭉 들이마시며 진지하게 이야기를 꺼낸다.
“실은 오늘 찾아뵌 것은, 선생님께 부탁드릴 일이 있어서예요.”
“응? 무슨 용건으로?”
주인은 지지 않고 시치미를 뗀다.
“아시는 대로, 제가 문학과 미술을 좋아해서…….”
“훌륭해요.”
주인은 기운을 돋운다.
“동지들이 모여 요전부터 낭독회라는 것을 조직해서 말이죠. 매월 한 번 모여 이 방면의 연구를 앞으로 계속할 생각인데, 이미 제1회는 작년 말에 열었어요.”
“잠깐 묻겠는데, 낭독회라고 하면 뭔가 가락이라도 붙여서, 시나 문장 종류를 읽는 것처럼 들립니다만, 대체 어떤 식으로 하나요?”
“처음에는 고인의 작품부터 시작해서, 차차 동인의 창작 같은 것도 할 생각이에요.”
“고인의 작품이라 하면 백낙천*의 「비파행」* 같은 것 말인가요?”
“아니요.”
“그럼 어떤 걸 했나요?”
“부손憮村*의 「슌푸바테교쿠」春風馬提曲* 종류인가요?”
“아니요.”
“그럼, 어떤 것을 했나요?”
“저번에는 치카마쓰*近松의 정사극을 했어요.”
“치카마쓰? 그 조루리浄瑠璃*의 치카마쓰인가요?”
치카마쓰라면 한 사람밖에 없다. 분명 희곡가 치카마쓰다. 그걸 다시 묻는 주인이 상당히 어리석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주인은 아무것도 모르고 내 머리를 정성스레 쓰다듬는다. 사팔뜨기가 다른 곳을 보고 있는데 자기를 보고 있다고 착각하여 자신에게 반했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는 세상이니, 이 정도의 잘못은 결코 놀랄 것도 없다고 쓰다듬는 대로 가만히 있었다.
“네, 맞아요.”
도후 군은 주인의 안색을 살핀다.
“그럼 혼자서 낭독하나요, 또는 역할을 정해서 하나요?”
“역할을 정해서 주고받는 식으로 해보았어요. 가급적 작중 인물에 감정을 이입해서 그 성격을 발휘하는 걸 제일로 삼고, 거기에 손짓 발짓을 더해요. 대사는 가급적 그 시대 인물을 담아 내는 것이 주이고, 아가씨든 사환이든, 그 인물이 나온 것처럼 해요.”
“그러니까 연극 비슷한 거 아닌가요?”
“예, 의상과 무대 배경이 없는 정도예요.”
“실례지만 잘됐나요?”
“뭐, 제1회치고는 성공한 편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얼마 전에 했다는 정사극이라면……?”
“뱃사공이 손님을 태우고 요시와라吉原*에 간다는 내용이에요.”
“대단한 장면을 했네요.”
주인은 교사이니 만큼 조금 고개를 갸웃한다. 코에서 내뿜은 히노데* 연기가 귀를 스쳐 얼굴 옆으로 돈다.
“뭐, 그렇게 대단한 것도 없어요. 등장인물은 손님과 뱃사공, 창녀와 잔심부름꾼과 뚜쟁이와 유곽을 단속하는 관리뿐이니까요.”
도후 군은 태연하다. 주인은 창녀라는 말을 듣고 잠시 얼굴을 찌푸렸지만, 잔심부름꾼, 뚜쟁이, 유곽을 단속하는 관리라는 단어에 대해서 명료한 지식이 없는 듯 우선 질문을 한다.
“잔심부름꾼이라는 것은 유곽의 계집종에 해당하나요?”
“아직 충분히 연구하지는 않았지만 잔심부름꾼은 유곽의 하녀이고, 뚜쟁이라는 것은 유곽의 조수 역할 같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도후 군은 아까, 그 인물이 나온 것처럼 목소리를 흉내 낸다고 말한 주제에 뚜쟁이나 심부름꾼의 성격을 잘 이해하지 못한 모양이다.
“그렇군. 뚜쟁이는 유곽에 예속된 자이고, 심부름꾼은 유곽에 기거하는 자로군요. 그럼, 유곽을 단속하는 관리라는 것은 인간인가요? 아니면 일정한 장소를 가리키나요? 만약 인간이라면 남잔가요, 여잔가요?”
“유곽을 단속하는 관리는 남자 인간이라고 생각합니다.”
“무엇을 담당하나요?”
“아, 거기까지는 아직 충분히 조사하지 못했어요. 조만간 조사해 볼게요.”
이것으로 낭독회를 하는 날에는 뚱딴지같은 것이 만들어질 것이라고 생각하며 나는 주인의 얼굴을 잠깐 올려다보았다. 주인은 의외로 진지하다.
“그래서 낭독자는 당신 외에 어떤 사람이 참여했나요?”
“여러 사람이 있었어요. 창녀는 법학자 K군이었는데, 콧수염을 기르고, 여자의 달콤한 대사를 하니 조금 이상했어요. 게다가 그 창녀가 분통을 터뜨리는 부분이 있기 때문에…….”
“낭독에서도 분통을 터뜨려야만 하나요?”
주인은 걱정스럽게 묻는다.
“네, 하여간 표정이 중요하니까요.”
도후 군은 끝까지 문예가를 자처한다.
“능숙하게 분통을 터뜨렸나요?”
주인은 날카롭게 질문한다.
“울화통만큼은 제1회에서는, 조금 무리였어요.”
도후 군도 질세라 대답한다.
“당신은 무슨 역할을 맡았나요?”
“저는 뱃사공이에요.”
“흥…, 당신이 뱃사공이라니.”
당신이 뱃사공을 감당할 수 있다면 나도 유곽을 단속하는 관리 정도는 할 수 있다는 어투이다.
“뱃사공은 무리였나요?”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진심으로 묻고 싶은 부분을 주인은 숨기지 않고 말한다. 도후 군은 특별히 화난 기색도 없다. 역시 침착한 어조로 말한다.
“그 뱃사공으로 모처럼의 낭독회도 용두사미로 끝났어요. 실은 낭독회장 옆에 여학생 네다섯 명이 하숙을 하고 있었는데, 어디서 들었는지, 그날 낭독회가 있다는 사실을, 어딘가에서 탐지하고 회장 창문 아래에 와서 방청한 것 같아요. 제가 뱃사공 목소리를 흉내 내다가, 겨우 신바람이 나서 ‘이거라면 괜찮겠어.’라고 득의양양하게 낭독하고 있는데…… 그러니까 몸짓이 지나쳤나 봅니다, 지금까지 참고 있던 여학생들이 동시에 와 하고 웃음을 터뜨려서, 놀라기도 하고, 쑥스럽기도 하고, 그것으로 맥이 끊겨, 도저히 계속할 수 없어, 결국 그걸로 모임이 끝났습니다.”
제1회치고는 성공한 편이라는 낭독회가 이래서야, 실패는 어떤 것일까 상상하면 웃지 않고는 배길 수 없다. 나도 모르게 목젖이 갸르릉 갸르릉 울린다. 주인은 더욱 부드럽게 머리를 쓰다듬어 준다. 사람을 비웃고 귀여움을 받는 것은 고맙지만, 약간 섬뜩한 부분도 있다.
“그거 참 터무니없는 일을 당했군요.”
주인은 설날 아침부터 조사弔詞를 늘어놓고 있다.
“제2회부터는 더욱 분발하여 성대하게 할 생각입니다, 오늘 온 것도 그 때문으로, 실은 선생님께도 부디 입회를 부탁하려고…….”
“저는 도저히 분통 같은 거 터뜨리지 못해요.”
소극적인 주인은 즉시 거절하려 한다.
“아니, 분통 같은 거 터뜨리지 않아도 괜찮아요. 여기에 찬조원 명부가…….”
도후 군은 보라색 보자기에서 작은 장부를 소중하게 꺼낸다.
“여기에 부디 서명과 날인을 부탁드립니다.”
그는 장부를 주인의 무릎 앞에 편 채 놓는다. 보니 현재 저명한 문학박사, 문학사들의 이름이 가지런히 늘어서 있다.
“네, 찬성원贊成員이 안 될 것도 없습니다만, 어떤 의무가 있나요?”
굴 선생은 우려하는 모습을 보인다.
“의무라고 해도 특별히 부탁드릴 일도 없는 정도로, 그저 이름만 기입하셔서 찬성의 뜻을 표해 주시면 됩니다.”
“그렇다면 입회하지요.”
주인은 의무가 없다는 사실을 알자마자 갑자기 마음이 홀가분해진다. 책임만 없다면 반역의 연판장에도 이름을 써넣겠다는 표정이다. 뿐만 아니라 이런 저명한 학자들이 이름을 올린 곳에 이름만이라도 적어 두는 것은, 지금까지 이런 일을 경험한 적 없는 주인에게는 더없는 영광이므로 기세 좋게 대답한 것도 무리는 아니다.
“잠시 실례.”
주인이 서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