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의 아이들』 재판에서 나의 증인이 되어 준
카를로 보와 주세페 웅가레티에게
1
톰마소는 누구인가
톰마소, 렐로, 추카보, 그리고 몬티디피에트랄라타 거리 빈민촌에 사는 아이들은 평소처럼 밥을 먹고 적어도 삼십 분은 일찍 학교 앞에 도착했다.
하지만 빈민촌에 사는 다른 오줌싸개 녀석들이 벌써 그곳에 와 있었다. 녀석들은 주머니칼을 갖고 진창에서 놀고 있었다. 톰마소, 렐로 그리고 다른 아이들은 책가방이 진창에 닿는 줄도 모른 채 그 주변에 쭈그리고 앉아 녀석들의 놀이를 구경했다. 이윽고 두세 녀석이 공을 갖고 나타나자 다른 아이들은 둔덕에 책가방을 내던지고 학교 뒤편, 마을의 중앙 광장 격인 공터로 달려갔다.
공터 근처에서 렐로는 편을 가르기 위해 인근 2구역에 사는 녀석 하나와 동전 던지기를 했다. 하지만 톰마소는 공을 차고 싶지 않아서 다른 두 아이들과 함께 땅바닥에 죽치고 앉아 경기를 구경했다.
“어이, 카를레, 선생님 오셨냐?”
톰마소가 옆에 있는 키 작은 녀석에게 물었다.
“난들 알아!”
녀석이 어깨를 으쓱이며 대답했다.
“오늘은 누구야? 청소 당번 말이야.”
잠시 후 톰마소가 물었다. 그는 몸에 열이 있어서 지난 이삼 일 학교에 결석했더랬다.
“내가 알기로는 렐로야.”
카를레토가 말했다.
“야, 담배 좀 내놓을래?”
톰마소가 근처 석회암 위에 쭈그리고 앉아 담배를 피우는 녀석을 불쑥 돌아보며 성난 목소리로 물었다.
톰마소는 자리에서 일어나 반대편 골문 쪽으로 갔다. 렐로는 허리를 구부리고 두 팔과 두 다리를 벌린 채 엉거주춤 서 있었다. 그는 언제라도 뛰어나갈 태세로 얼굴을 잔뜩 찌푸리고 온 신경을 경기에 집중했다.
“렐로!”
톰마소가 불렀다.
“저리 비켜, 뭔데?”
렐로가 톰마소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으며 대답했다.
“저, 너 오늘 학교 청소 당번이냐?”
“맞아.”
렐로는 톰마소의 말에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 짧게 대답했다.
톰마소는 골대 역할을 하는 자갈 더미 옆에 앉았다. 잠시 후 렐로가 뒤돌아서서 톰마소를 쳐다보았다.
“비켜, 자식아, 근데 왜 그래?”
렐로는 이렇게 말한 뒤 이내 등을 돌리고 경기장 가운데를 주시했다. 다른 아이들이 죽어라 고함을 내지르며 공 쪽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톰마소는 더 이상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조용히 침묵을 지키며 말라붙은 진흙땅에 다리를 꼬고 앉아, 담배꽁초를 주머니에서 꺼내 불을 붙였다.
잠시 후 렐로는 톰마소에게 다시 힐끗 눈길을 던졌다가 그가 담배 피우는 걸 보았다. 렐로는 말없이 계속 경기를 주시하다가 잠시 후 가라앉은 쉰 목소리로 말했다.
“한 모금 빨게 해 줘, 토마.”
톰마소는 서둘러 몇 모금 더 빨고 일어나 렐로에게 다가가서는 담배를 건넸다. 렐로는 경기에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담배를 받아 눈을 찡그려 가며 피우기 시작했는데, 여전히 여차하면 뛰어나갈 태세였다.
톰마소는 두 손을 반바지 주머니에 찌른 채 렐로 뒤에 서 있었다. 끈으로 질끈 동여맨 반바지는 가랑이가 너무 넓어서 치마 같았다.
그때 아이들이 골문 가까이 우르르 몰려왔고, 기진맥진 뛰어다니던 아이들 중 하나가 공을 찼다. 아이가 그리 힘껏 차지 않아서 공은 자갈 더미 근처로 데굴데굴 굴러갔다. 조금만 몸을 숙여도 공을 잡을 수 있었기 때문에 굳이 그럴 필요가 없었는데도, 렐로가 유난을 떨며 뛰어들더니 공터 가운데로 공을 다시 찼다. 그러고는 내던졌던 담배꽁초를 집어 들고 흡족한 얼굴로 몇 모금 빨았다.
“센데? 레.”
톰마소가 렐로를 치켜세웠다.
렐로는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지만 불량스럽게 담배를 피우며 자신이 정말 뭐라도 된 것처럼 으쓱했다.
“야, 레, 오늘 나도 청소 당번 할 수 있는지 선생님한테 물어봐 줄래?”
잠시 후 톰마소가 짐짓 무관심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봐서.”
렐로는 벌써 시들해졌는지 경기에 열정을 덜 보이며 이렇게 대답했다. 톰마소는 다시 렐로 옆에 앉았다. 하지만 오래 그러고 있지는 못했다. 학교 근처 공터 저쪽에 있던 아이들이 몇 분 후에 소리를 지르며 손짓을 했기 때문이다. 선생님이 도착했고 아이들이 교실로 들어갈 시간이었다. 공놀이를 하던 아이들은 몇 번 더 공을 차다가, 쌓아 놓은 책가방 더미에서 자기 가방을 먼저 잡으려고 서로 밀치며 앞다투어 달려갔다. 아이들은 부서진 철책을 지나 조그만 학교 운동장 안으로 들어갔다.
2시에서 2시 30분 이후 피에트랄라타는 다시 정적에 잠겼다. 그 지역에 사는 개구쟁이 어린아이들이나 일하러 나온 몇몇 아낙네들만 눈에 뜨였다. 태양과 쓰레기, 쓰레기와 태양밖에 없었다. 아직 3월이라서 저 아래 로마 뒤로 태양이 빨리 저물었다. 땅거미가 졌고 공기가 얼어붙을 듯 쌀쌀했다. 아이들이 다시 학교 밖으로 나올 때는 거의 해 지는 시간이었다. 빈민촌은 여전히 한산했다. 노동자들은 더 늦게야 일터에서 돌아올 것이고, 영화관은 조금 전에야 문을 열었으며, 바 두세 곳은 좀 더 있어야 희망 없는 단골손님들로 북적거릴 것이기 때문이다.
학교에서 줄지어 나온 아이들이 빈민촌 맨땅을 다진 안마당들 사이로 흩어졌다. 초라한 담벼락, 교수대처럼 줄지어 늘어선 빨랫줄과 빨래통, 그 옆에 60센티미터쯤 쌓인 검은 진흙, 학교 안에서보다 조금 더 밝을 뿐인 햇빛.
그날 청소 당번이었던 렐로는 선생님과 단 둘이 남았다. 일주일에 몇 번씩은 이런 일이 있었다. 선생님은 벌이나 상으로 청소를 시키는 게 아니라 내키는 대로 청소 당번을 골랐기 때문이다. 아무튼 책상 사이사이를 빗자루로 대충 쓸어 내고 교탁과 그림에 묻은 먼지를 털어 내자면 적어도 삼십 분은 더 학교에 머물러야 했다. 렐로는 이제 청소에 익숙했기 때문에 해야 할 일을 순식간에 후다닥 해치웠다. 그리고 청소가 끝나자 혼자 집으로 향했다.
어둑어둑한 초원을 지나자니 조금 무서운 생각이 들어 렐로는 뛰기 시작했다. 홍합처럼 반짝거리는 검은 두 눈망울 앞에서 역시 같은 색깔인 검은 머리카락이 나풀거렸으며, 미제 꽃무늬 셔츠가 바지 위에서 펄럭였다. 근처 채소밭에서 일하던 농부들은 이미 일을 접고 집으로 들어갔고, 새순이 돋은 벚나무와 아몬드 나무가 심긴 메시도로에는 인적이 끊겼다. 그러나 농가 뒤에서는 클라우디오 빌라1)를 흉내 내며 노래하는 청년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더 멀리서 군인들에게 저녁 자유 외출을 알리는 군 기지의 트럼펫 소리가 들려왔다.
수로의 교각 아래에 톰마소가 있었다. 그는 아직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책가방을 옆으로 둘러멘 채 그곳에서 렐로를 기다렸다.
“토마, 뭐 해?”
렐로가 톰마소에게 말을 건네며 그 앞을 지나 교각의 작은 철제 계단을 먼저 기어올라 갔다.
톰마소는 늘 기름때에 찌든 듯한 둥근 주근깨투성이 얼굴로 아무 말 없이 렐로의 뒤를 따라갔다.
렐로는 뒤따라오는 노예를 단 한 번도 뒤돌아보지 않고 앞서 가는 주인처럼 다리를 먼저 건넜다.
“야, 레, 뭐가 그리 급해? 개자식!”
톰마소가 심통 맞은 표정을 지으며 뒤에서 말했다.
하지만 렐로는 이미 다리 반대편으로 내려가느라 여념이 없었다. 그는 토끼풀밭으로 뛰어내린 후 갈대밭으로 들어가는 오솔길을 달리기 시작했다. 톰마소는 렐로를 뒤따라 헐레벌떡 달렸다.
“기다려, 개새……!”
톰마소가 소리쳤다.
하지만 렐로는 톰마소가 전혀 안중에 없다는 듯 쏜살같이 질주했다. 그는 톰마소와 거리가 상당히 벌어져서야 발걸음을 늦추고 갈대와 버들가지 사이를 유유히 걸어가기 시작했다. 이윽고 톰마소가 따라붙자마자 그는 다시 밭두렁 내리막길을 달려갔다. 이미 싹이 돋기 시작한 브로콜리가 비탈진 밭을 따라 잡목 사이에 줄지어 심겨 있었다.
또다시 톰마소와 거리가 벌어지자 렐로는 고원으로 올라가서 걸음을 늦췄다. 하지만 이번에는 분수처럼 땀을 뻘뻘 흘리는 톰마소가 자신을 따라잡도록 내버려 두었다. 둘은 산등성이 아래 허름한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마을로 내려갔다. 종합병원 하수가 아니에네 강으로 흘러들어 가는 지점 조금 못 미쳐, 피에트랄라타와 몬테사크로 사이 거리에 그들이 살았다.
빈민촌에서는 이미 켜진 몇몇 불빛이 진창에 반사되었다. 다른 아이들은 집 문 앞에서 놀았고, 식구 열 명 혹은 열한 명 정도가 같이 지내는 집 안 작은방들에서는 여인네들이 다투는 소리와 아이들이 우는 소리만 들려왔다.
렐로와 톰마소를 보자 친구들이 놀다 말고 그들에게 다가왔다.
“너희, 밥 먹었니?”
피부가 온통 빨갛고 머리가 흐트러진 추카보가 그들에게 물었다.
“먹긴 뭘 먹어!”
렐로가 소리쳤다.
“꺼져! 지금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이란 말이야! 야, 너 장님이냐?”
톰마소도 쏘아붙였다.
“아, 그럼 서둘러. 우린 갈 테니까. 알았냐?”
추카보가 성질을 참지 못하고 말했다.
“그래, 가라! 왜, 우리가 길도 모를까 봐? 우리를 데려갈 거 아니잖아, 안 그래? 자식들아!”
톰마소가 신랄하게 말했다.
“너희를 데려갈 생각은 아니었지!”
추카보는 곧 순한 양이 되어 말했다.
“가고 싶으면 너희도 서둘러. 아니면 우리끼리 간다!”
추카보는 몬테사크로를 향해 오른손을 칼처럼 뻗은 뒤 오른손바닥을 왼손으로 서너 번 힘껏 때렸다.
그사이 렐로는 자신이 사는 판잣집으로 달려들어 갔다. 채 일 분도 안 돼서 그는 피망이 든 바게트를 손에 들고 다시 나왔다. 그러고는 다른 녀석들에게 고갯짓을 하며 빵이 가득 든 입으로 “가자!” 하고 말했다.
렐로를 보고 톰마소도 자기 집으로 뛰어들어 갔다. 하지만 그의 어머니는 아직 저녁 식사 준비를 해 놓지 않았다. 톰마소는 화가 나서 울음을 터뜨릴 것 같았지만 불평할 시간이 없었다. 주린 배를 이끌고 곧바로 밖으로 뛰어나와, 이미 저만치 걸어가고 있는 친구들 사이에 용감히 끼어들었다.
아니에네 강 뒤로 몬테사크로로 가는 길이 나 있었는데, 아스팔트가 피자 조각처럼 변해서 자갈 먼지를 일으켰고 오물과 쓰레기로 더러웠다.
강물은 악취 나는 비탈 아래로 흘러내려 갔으며, 종합병원 하수가 흘러드는 곳에서는 특히 고약한 냄새가 났다. 강 반대편에 또 다른 비탈이 솟아 있었는데 크고 작은 집들, 공사장, 빈민촌이 군데군데 보였다. 아니에네 강 저쪽, 티볼리 언덕 방향으로 차가운 바람이 휘몰아치는 들판이 펼쳐져 있었다.
방향을 몇 번 틀자 공사장과 건물들이 촘촘하게 나타나기 시작했다. 건물들이 여기저기서 하늘 높이 올라가는 듯했고, 강을 끼고 채소밭과 풀밭 사이사이에 공사장 웅덩이가 깊이 파여 있었다.
비계(飛階)가 설치되고 땅이 파인 공사장 너머로 깨진 작은 길이 노멘타나 거리까지 이어졌다. 바테리아 거리 위쪽으로 아니에네 강에 새로 놓인 다리 바로 앞에 노멘타나 거리가 있었다. 두 길이 만나는 교차로 바로 아래에 소나무로 둘러싸인 움푹한 공터가 하나 있었다. 그곳에 놀이공원이 있었는데 불빛만 요란했지 정작 사람들은 적었다. 그들은 유독 축구 게임장 천막 주변에서만 어슬렁거렸다.
“한판 할 거지, 레?”
추카보가 아이들로 빽빽이 들어찬 천막을 보고 소리쳤다.
렐로는 좋다고 고갯짓하며 이미 다른 아이들이 모두 차지한 게임 테이블로 뛰어갔다.
두 명씩 짝을 이룬 아이들이 온통 땀에 젖은 흐트러진 복장으로 다리를 벌린 채 재빨리 몸을 움직이고 있었다. 반면 테이블 주변 칸막이에 기댄 채 지루하고 빈정거리는 표정으로 구경하는 아이들은 윗옷 깃을 치켜세우고 두 손을 주머니에 넣은 채 움츠리고 있어야 했다. 3월의 차가운 저녁 공기가 장난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톰마소와 친구들은 테이블에 자리가 나기를 초조하게 기다리며 빽빽하게 서 있는 손님 무리를 비집고 들어갔다. 손님들은 기다리면서 몸을 푸는 동안 요란하게 응원하고 있었다.
“으싸, 벨레노!”
“힘내, 트레레. 본때를 보여 줘!”
그들은 기다리기 지루했던 탓에 습관적으로 입에서 나오는 대로 소란스레 응원했다.
몇몇은 톰마소와 친구들처럼 인근 아니에네 강변 빈민촌에 사는 아이들이었다. 하지만 대부분은 몬테사크로나 바테리아, 노멘타나의 새 고층 건물에 사는 부잣집 아이들과 학생들이었다. 네 명이서 하는 테이블 하나에 자리가 나자 렐로, 톰마소, 추카보, 세르지오, 카를레토는 우르르 달려들어 더러운 배로 테이블 가장자리를 문지르며 나아갔다. 그들은 먼저 기다리던 네다섯 아이들의 항의를 들은 척도 하지 않고 테이블을 점령했다.
“야, 우리 차례야, 여기서 한 시간이나 기다렸단 말이야!”
한 학생이 가슴을 앞으로 내밀며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피콜라상하이 빈민촌의 네 아이는 녀석을 거들떠보지도 않은 채, 그들처럼 배고파 보이고 멸치처럼 마른 초라한 주인을 아주 호감 어린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주인은 말없이 손을 내밀어 돈을 받아 들고 공이 나오는 구멍을 열었다.
톰마소만이 성가신 표정으로 학생 녀석을 돌아보며 말했다.
“돼지 같은 자식! 꺼져!”
그러고 나서 톰마소는 게임할 준비를 했다. 하지만 다른 네 명이 자기들끼리 죽이 맞았는지 벌써 게임기 손잡이를 잡고 있었다. 렐로와 카를레토, 추카보와 세르지오가 각각 한편을 이루었다. 톰마소도 테이블 가장자리를 배로 문지르며 나아갔다. 때가 꼬질꼬질한 주근깨투성이 작은 얼굴에서 두 눈이 분노로 이글거렸다.
“뭐야, 나는 할 수가 없잖아?”
톰마소는 다른 친구들을 향해 험악한 표정을 지으며 침울하게 말했다.
“비켜!”
렐로가 짜증을 부리며 성급하게 말했다.
“싫어, 안 돼. 서로 말을 맞추고 시작해야 하잖아!”
톰마소가 단호하게 말했다.
“꺼져!”
추카보가 톰마소의 옆구리를 떠밀어 게임 테이블 가장자리에서 밀쳐 내며 소리쳤다.
“이 자식들이!”
불쾌해진 톰마소는 눈물과 분노를 삼키며 싸울 듯한 태도로 소리쳤다. 하지만 이미 다른 아이들은 톰마소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고 게임을 시작해 버렸다.
그러자 톰마소는 한쪽으로 물러나 친구들을 째려보며 마음속으로 욕을 해 댔다.
‘이 나쁜 자식들, 쪼다 새끼들아! 너희 같은 자식들을 누가 믿겠어!’
톰마소는 게임을 지켜보며 경멸로 가득 찬 비난 어린 태도로 한바탕 욕을 퍼붓고 나니 기분이 조금씩 풀렸다.
“도대체 누구한테 게임을 배운 거야!”
한 친구가 헛치자 톰마소가 빈정대며 소리쳤다.
다른 친구들은 톰마소를 전혀 안중에 두지 않았고 그의 말을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모두들 게임에 정신이 팔려 공이 부서져라 손잡이를 움직였다.
“좀 보고 해라! 쪼다 새끼야!”
카를레토가 실수하자 톰마소가 소리쳤다.
“멍청한 라지오 놈!”
톰마소는 입을 크게 벌리고 주변 사람들에게 들리도록 할 수 있는 한 큰 소리로 웃음을 터뜨렸다.
“우아, 우아, 우아.”
톰마소는 두 손을 반바지 주머니에 넣은 채 배를 움켜잡고 꿈틀거리는 애벌레처럼 몸을 비틀어 대면서 웃었다.
“꼴들 좋다!”
웃음이 좀 가라앉은 그는 더욱 진한 경멸을 담아 비아냥거렸다.
“난 갈 테니, 잘들 해 봐! 이 머저리 넷을 보자고 내가 여기 있어야겠냐!”
톰마소는 심술 맞게 다시 큰 소리로 웃으며 게임장 천막을 기어 나온 후 놀이공원을 살피러 갔다.
조명이 환한 공터에는 사람들이 별로 없었다. 소형 오토바이를 탄 청년들, 몇몇 군인들, 그리고 선원들뿐이었다. 그들은 하릴없이 빈둥대며 험악한 분위기로 무리 지어 돌아다녔다. 누구는 노래를 흥얼거렸고, 누구는 표적으로 삼은 아가씨들과 노닥거렸다. 톰마소는 그들처럼 소나무 숲을 어슬렁거리다가 잠깐 멈춰 서서 사람이 거의 없는 꼬마 범퍼카 트랙이나, 손님 두세 명을 태우고 돌아가는 비행기들을 바라보았다. 산바람 탓에 얼굴이 창백해진 손님들은 의자에 옹크리고 앉아 있었다.
톰마소는 천천히 공원 안쪽에 도착했다. 아니에네 강 다리 바로 아래에서 끝나는 공원 안쪽 소나무 숲에서는, 엄청난 쓰레기가 쌓여 있는 비탈이 시작되었다.
톰마소는 그곳에서 동정을 살피기 시작했다. 다리 위쪽, 무덤 기둥같이 생긴 작고 흰 기둥 아래 두 창녀가 있었다. 둘 다 성깔 있어 보였는데, 한 명은 붉은 외투를 입었고 다른 한 명은 지저분한 산발을 하고 검은 니트 스웨터를 입었다. 둘 다 작달막했고 다리가 짧았으며 임신한 듯 배가 불렀고 뚱뚱했다. 거무스름한 얼굴에 털이 많았고 이마가 원숭이처럼 좁았으며 손에 핸드백을 들었다.
창녀들은 다리 위에 가만히 서 있거나 몇 걸음 서성이곤 했다. 한편 게임장에서 나온 선원 네다섯 명이 소나무 사이로 패잔병들처럼 올라오고 있었다. 그들은 가파른 오솔길을 기어올라 와 다리 위에 서 있던 창녀들에게 다가갔다. 선원들은 부도수표라도 받은 듯 사납게 쏘아붙이는 창녀들과 잡담을 몇 마디 주고받았다. 임신한 창녀들이 그들의 돈이 필요하지 않다는 듯 튕기는 걸 보는 게 재미있는 모양이었다.
이윽고 선원들이 창녀들을 샀고 비탈 아래로 다시 내려가기 시작했다. 창녀와 선원 두 쌍이 내려갔고, 다른 선원들은 다리 위에서 자기 차례를 기다리며 담배를 피웠다. 창녀들이 몇 발자국 떼어 놓았을 뿐인데 두 선원은 벌써 소나무 숲 빈터에 날쌔게 내려가 있었다. 창녀들은 잔뜩 찌푸린 얼굴로 아래를 힐끗거리며 퉁퉁한 양처럼 네 발로 기어 내려갔다. 다소 미끄러운 내리막길에서 한 발 한 발 조심스레 걸음을 떼는데, 케틀드럼2)처럼 생긴 구두가 자꾸 벗겨졌다. 마침내 그녀들도 아래에 도착했다. 핸드백을 꼭 움켜쥔 창녀들은 두 선원과 함께 톰마소 앞을 지나 더 아래로 향하는 다른 비탈 쪽으로 갔다. 수풀이 우거진 아니에네 강변으로 내려가는 비탈이었다.
그들이 어디로 가는지 살피기 위해 톰마소는 어둠에 몸을 숨긴 채 그들을 따라갔다. 폐지와 쓰레기, 못 쓰는 냄비들이 널려 있는 덤불이나 지저분하기 짝이 없는, 낡은 다리 아래 작은 동굴로 가는 게 분명했다.
그들을 따라붙은 결과 톰마소는 예상대로 그들이 그 조그만 동굴로 가는 걸 확인했다. 그는 휘파람을 불고 혼자 킥킥거리면서 다시 뛰어 돌아가, 회전목마와 꼬마 범퍼카 사이를 지나서 불을 환하게 밝힌, 놀이공원 한가운데 공터에 도착했다. 하지만 거기에는 친구들도, 축구 게임장 천막도, 주변 구경꾼들도 없었다. 도대체 어디로들 간 걸까.
‘이 빌어먹을 쪼다 새끼들!’
톰마소는 화가 나서 생각했다. 그는 아니에네 강변 덤불로 다시 혼자 내려가면서 천천히 여기저기를 기웃거렸다. 그렇게 어기적거리며 걷다가 렐로를 보았다. 렐로는 울타리에 몸을 기댄 채, 범퍼카를 타고 트랙을 돌아다니는 두 선원을 지켜보고 있었다.
톰마소는 반가운 나머지 발뒤꿈치를 들고 살금살금 다가가 두 손으로 렐로의 눈을 가렸다. 렐로가 몹시 성내며 그를 뒤로 거칠게 밀치는 바람에 톰마소는 트랙 가운데로 나자빠질 뻔했다. 톰마소는 웃음을 터뜨렸다. 하지만 렐로는 여전히 독기 품은 눈으로 노려보며 투덜거렸다.
“이 개새……!”
“야.”
톰마소가 말했다.
“창녀들이 뭐 하고 있는지 알아?”
톰마소는 잠시 뜸을 들이다가 덧붙였다.
“보러 갈래, 레?”
렐로가 어깨를 으쓱했다. 톰마소는 순간 어색하게 웃었다.
“난 보러 갈 거야.”
톰마소가 울타리를 배로 문지르고 기지개를 펴면서 말했다.
“창녀들이 선원들과 함께 있거든.”
그는 눈을 반짝이며 덧붙이고는 울타리 가장자리를 두 손으로 잡고 몸을 밖으로 내민 채 매달렸다.
그러다가 갑자기 뒤쪽 길로 뛰어내려 강을 향해 걸어가더니 멀리서 렐로를 흘끗 쳐다보며 따라오라고 까닥까닥 고갯짓을 했다.
톰마소가 15미터 정도 앞서서 소나무 숲에 접어들었고 렐로는 아무 말 없이 뜀박질해서 톰마소를 따라잡았다. 으쓱해져서 짐짓 점잔을 떨던 톰마소는 말라붙은 덤불 쪽으로 가기로 했다. 둘은 오솔길로 숨어들어 폐지와 오물로 덮인 비탈로 내려갔다. 비탈 중간쯤에서 조금 길을 돌아 작은 동굴 근처에 도착했다. 동굴 입구 바로 앞에 두 창녀와 선원들이 있었다. 동굴 안에 적어도 두 뼘 정도 높이로 똥이 쌓여 있었기 때문에 들어갈 수가 없었다. 희미한 달빛이 비치는 가운데 창녀들이 무너져 내린 동굴 벽에 기대서 있었고, 선원들은 등줄기에 돌멩이를 맞은 두 마리 도마뱀처럼 창녀들 위에서 꿈틀거렸다.
톰마소와 렐로는 커다란 떨기나무 아래 앉아 잎이 모두 떨어져 나간 나뭇가지 사이로 두 커플을 쳐다보았다. 톰마소는 지저분한 풀 몇 포기 위에 다리를 뻗고 드러누웠다.
“너도 해, 레!”
잠시 후 톰마소가 저항할 수 없는 분위기로 렐로를 바라보며 말했다. 렐로는 무릎을 꿇고 톰마소가 하라는 대로 했다.
“억지로 그럴 건 없어!”
톰마소가 교활하게 말했다.
“그래! 난 하고 싶지 않아!”
렐로가 대답했다.
“근데 오늘도 하지 않았어? 학교에서 말이야.”
“입 닥쳐, 역겨운 자식!”
렐로가 화내며 말했다.
“말해 봐, 했잖아.”
톰마소가 고집스럽게 재차 물으며 렐로를 놀리려 했다.
“찌그러지면 어떻게 하려고?”
톰마소는 풀밭 위를 데굴데굴 구르며 숨 막히게 웃어 댔다.
“상관없어!”
톰마소가 너무 큰 소리로 말해서 동굴에 있던 두 커플이 동작을 멈추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톰마소는 웃음을 진정하고 렐로 옆에서 하던 일을 다시 시작했다. 렐로는 눈 위로 앞머리를 내려뜨린 채 잔뜩 움츠리고 있었다.
“근데 말이야, 사실.”
잠시 후 톰마소가 말했다.
“나도 한 번만 해 보고 싶어!”
그는 무시해도 좋을 정도로 하찮은 욕구를 떨쳐 버리고 싶다는 듯 태연하게 말했다.
“내일 너한테 100리라 주면 너 대신 하게 해 줄래?”
“고작 100리라로 되겠어?”
렐로가 빈정거렸다.
“200리라! 됐지?”
톰마소가 말했다.
*
다음 날 아침 톰마소는 6시에 일어났다. 아직 날이 어두웠다. 보슬비가 내리고 바람이 조금 불었다. 태양이 떠오르고 날이 밝은 후, 다시 비가 내렸다가 이윽고 해가 났다.
정오쯤 되자 온통 비에 젖은 피에트랄라타가 햇살에 반짝거렸다. 공터의 마른 흙 위로 초콜릿 빛깔 진흙이 새로 덮였다. 그곳에서 사내아이들이 공을 차며 새끼 돼지들처럼 굴러다니고 있었다.
톰마소는 한 손에 고철을 담았던 빈 자루를 들고, 다른 손을 바지 주머니에 찔러 넣고 있었다. 티부르티나 비탈을 따라 널려 있던 쓰레기 더미에서 고철을 주워다 팔아 번, 꼬깃꼬깃한 100리라짜리 지폐 두 장이 호주머니에 들어 있었다.
“야, 괜찮으면 나도 공 좀 차자.”
톰마소가 입과 다리를 쫙 벌리고 있는 한 아이에게 소리쳤다.
“안 돼, 싫어! 지금 우린 짝이 딱 맞는단 말이야!”
아이들이 요란스레 소리쳤다.
“빌어먹을! 짝이 맞건 안 맞건 뭐가 어때서? 너희가 국가 대표 팀이라도 되냐?”
톰마소가 소리쳤다.
“저리 비켜, 방해 말고, 씨……!”
한 아이가 고장 난 축음기에서 나오는 것 같은 목소리로 외쳤다.
그에 대한 대답으로 톰마소는 두 골문 중 하나로 천천히 발을 끌며 몇 발자국 이동했다. 그는 골대 역할을 하는 자갈 더미 중 한 군데에 자루를 던지고 아이들이 몰려 있는 공터 한가운데로 들어갔다.
사과처럼 생긴 한 녀석이 톰마소에게 와서 반쯤 우는 소리를 내며 목청 터질 듯이 소리쳤다.
“꺼지지 못해? 나쁜 자식아!”
그 순간 저쪽에서 공이 굴러오자 톰마소가 녀석을 밀쳐 냈다. 그 바람에 녀석은 진창에 엉덩방아를 찧었다. 톰마소는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를 정도로 깔깔대고 웃으며 키 작은 강아지 다리같이 생긴 안짱다리로 공을 향해 달려갔다.
“대스타가 들어오셨다!”
다른 친구 두세 명과 함께 공터 가장자리에서 빈둥거리던 한 소년이 두 손을 깔때기 모양으로 입에 가져다 대며 소리쳤다. 더러운 종잇조각들과 부서진 변기 조각들이 널려 있는 채소밭의 망가진 울타리 앞 그늘진 곳에서, 그 소년은 꾀죄죄한 차림으로 다른 녀석들과 함께 앉아 있었다.
톰마소는 허풍 섞인 그 말을 못 들은 척했다.
“발 고린내!”
그 소년이 벌떡 일어나며 톰마소 형의 별명을 소리쳐 불렀다. 형도 톰마소처럼 둥근 주근깨투성이 얼굴이었고 늘 퀴퀴한 발 고린내를 풍겼다.
“네가 뭐라도 되는 줄 아냐?”
톰마소는 밧줄과 끈으로 묶어 놓은 조각배 두 척같이 생긴 발로 진창을 차며 연신 뛰어다녔는데, 다른 아이들 가슴에 진흙이 튀건 말건 상관하지 않았다.
구경하던 소년은 재미있다고 느꼈는지 곧 다시 일어났다. 얼굴은 여드름투성이였고, 앞을 응시하는 실눈에 부드러운 웃음이 떠올랐다. 마음속 깊이 이 상황을 즐기는 듯한 눈빛이었다. 그가 두 손을 헐렁하게 늘어진 바지 주머니에 찔러 넣자 티셔츠 아래로 배꼽이 보였다. 그는 입술을 혀로 핥으며 아이들이 축구하는 공터 가장자리로 더 바싹 붙었다.
“발 고린내, 네가 다리 벌리고 뒤뚱뒤뚱 걷는 거 모르지? 폼이 꼭 오리 같다는 거 모르지?”
토마토소스를 발라 놓은 것처럼 얼굴이 빨개져서 땀을 뻘뻘 흘리며 뛰어다니던 톰마소가 이번엔 뒤를 돌아보았다. 눈이 촉촉해진 그는 이마 한가운데 작은 주름 하나를 만들며 빈정거렸다.
“침미, 가만 있는 사람 건드리지 마, 알겠어? 내가 판도르피니3) 같다는 거 몰라?”
톰마소가 소리쳤다. 그러고는 고개를 숙인 채 공을 쫓아 아이들 사이로 다시 뛰어들었다.
“소리 한번 요란한데!”
침미오는 경기가 점점 더 흥미진진해진다는 표정으로 툴툴거리며 말했다.
“웃긴다, 웃겨. 엄마가 뇨키4)라도 만들어 줬냐!”
그는 문득 어떤 생각이 떠올랐는지 천천히 덧붙였다.
“자식아, 나한텐 오줌싸개처럼 보인다!”
“나쁜 자식!”
이미 열 받을 대로 받은 톰마소가 소리쳤다. 공을 쫓아 떼 지어 우르르 몰려다니는 아이들 틈에서 그의 큰 머리가 둥둥 떠다니는 듯했다. 두 눈에 눈물이 글썽했고 납작한 입에 독기 어린 작은 미소가 떠올랐으며 누런 치아도 드러났다.
또 다른 녀석이 나타나 톰마소에게 괜한 심술을 부리던 녀석에 합세했다. 그는 스물다섯 살 정도 되어 보였고, 목까지 내려오는 곱슬머리에 스카프를 불량스럽게 맸으며, 얼굴은 배고픈 여우처럼 누랬다. 두 녀석이 나란히 골문 가까이 섰다.
그는 두 손을 호주머니에 찔러 넣은 채 이마, 입, 앞머리, 바지 앞자락을 앞으로 쑥 내밀고 있었다.
“새끼야, 어때, 아직도 대들 용기가 남았냐? 넌 그렇게 비겁하게 십 년 세월을 끌고 왔지?”
한 집안의 가장일 수도 있는 사람이 생전 처음 총을 쏘는 풋내기 같은 태도로 소리쳤다.
“뭐! 십 년! 그런데 어쩌지, 난 열세 살이 조금 안 됐는걸!”
톰마소는 약 올라 죽겠는지 울 것 같은 표정으로 우습다는 듯 소리쳤다.
“아, 그러세요.”
침미오가 ‘그래, 너 잘났다.’라는 듯이 험악하게 말하고는 웃음을 터뜨렸다.
“피콜라상하이에서는 두 살 때 벌써 삥 뜯고 다니는 거 아냐? 고린내 나는 족속들이니까 말이야!”
“네 여동생 데려와!”
톰마소가 콧소리 섞인 목소리로 흥얼거리듯 소리쳤다.
덩치 큰 녀석은 태도를 누그러뜨리고 짐짓 착한 척하며 코와 턱을 스카프로 닦았다.
“모르는가 보지, 침미? 네 여동생, 좀 헤프게 굴던데. 잘 좀 지켜! 내 여동생이라면 내일부터 집 밖으로 못 나가게 할 거야! 아예 철 팬티를 사서 입힐 거라고!”
톰마소가 말했다.
“근데 말이야, 너한테 휘파람을 가르친 사람이 네 엄마라는 거짓말을 들었는데?”
침미오가 간드러지게 소리쳤다.
“엄마는 끌어들이지 마, 자식아!”
톰마소가 즉각 튀어나가며 두 사람에게 몇 발짝 다가갔다.
“어쩌려고? 네가 산적 티네아라도 되냐?”
시궁창에 던져 버리고 싶은 중국인을 바라보는 듯한 눈빛으로 젊은 녀석이 말했다.
그 순간 멀리서 또 다른 불량배 무리가 지나갔다.
“카고네! 왜 거기서 쓸데없이 시간을 낭비하는 거야? 여기 어른들한테 오지 않겠어?”
그들 중 하나가 나이 많은 카고네 녀석에게 소리치는 목소리가 겨우 들려왔다.
“어이, 우리가 손 좀 보고 있는 거 안 보여?”
카고네가 쾌활하게 소리쳤다.
“그런데, 지금 로마에 가는 거야?”
침미오는 발 고린내에 대해 순간 잊어버리고 소리쳤다.
“돈 벌러 가는 중이야!”
멀리 있는 무리 중 하나가 소리쳤다.
“우리도 끼어 볼까, 카고?”
침미오가 친구에게 말했다.
“그래, 가자!”
카고네가 대답했다.
“야, 기다려어!”
뿔뿔이 흩어져 내려가는 무리를 향해 침미오가 목청 터져라 외쳤다.
“우리는 피에트랄라타의 무법자다!”
무리 중 하나가 유쾌하게 소리쳤다.
“가자! 황야의 무법자들이여!”
또 다른 소년이 소리쳤다.
“버스다, 버스가 왔어!”
침미오가 피곤을 타고난 듯한 무거운 발걸음으로 카고네와 나란히 친구들에게 걸어가며 말했다. 굽 높은 신발을 신은 카고네와 함께, 침미오는 절뚝거리며 211번 버스 정류장으로 뛰어가기 시작했다. 굶주린 사람들과 군인들을 가득 태운 버스가 몬테사크로에서 오고 있었다. 다른 친구들도 휘파람을 불며 승냥이 떼처럼 달려갔다.
여기저기서 정오 사이렌이 숨 가쁘게 울려 댔다.
이미 땀에 흥건히 젖은 톰마소는, 키가 자신의 턱 아래밖에 오지 않고 피부가 불그스름하고 옷차림이 남루한 꼬마 녀석들을 헤치고 공터를 누볐다. 고개를 숙이고 혀를 쑥 내민 아이들은 일 년째 이발을 하지 않아 머리털이 눈까지 덮인 채로 공을 향해 달려들었다. 아이들은 일제히 공격에 가담했다가 다시 일제히 수비에 가담했다.
풀풀 나는 먼지를 잔뜩 뒤집어쓴 아이들 정수리 위에서 톰마소의 머리가 종횡무진 움직였다. 공은 늘, 아니 대개 톰마소의 발 아래 있었다. 그런데도 그는 공을 차지하기만 하면 빼앗기지 않기 위해 드리블을 한다거나 아이들 정강이를 걷어차며 심술을 부렸다. 게다가 이따금 아이들의 해진 옷을 잡아당기기까지 했다. 아이들은 화를 참지 못하고 요란하게 소리 지르며 항의했다. 하지만 톰마소는 전혀 개의치 않고 비열한 짓을 하면서 계속 공을 찼다. 아침 돈벌이가 잘되어서, 그리고 지금 하는 고난이도 동작 덕분에 기분이 좋아져서 아이들을 한껏 조롱했다.
“나도 한 가닥 하는데!”
톰마소는 입술이 얇은 입을 활짝 벌려, 깨진 누런 치아 네 개를 보여 주면서 소리쳤다.
아직 젖을 떼지 못한 강아지 같은 어린 녀석 하나가 그의 앞을 가로막으며 소리쳤다.
“개새끼!”
톰마소는 뜀박질을 멈추고 공을 내팽개쳤다. 얼굴이 더 시뻘게진 그는 속이 뒤집히는지 입을 아래로 꾹 다물었다.
“너, 뭐라고 했어?”
그가 어린 녀석에게 말했다.
단추가 떨어진 바지에 채반보다 구멍이 더 숭숭 뚫린 스웨터를 입은 아이가 그 자리에 멈춰 섰다. 겉으로는 거만을 떨었지만 그의 눈빛이 흐려졌다.
“제기랄! 개새끼…….”
그 아이는 톰마소에게도 잘 들릴 정도로 크게 중얼거렸다.
“요걸 그냥……. 꺼져, 알겠어?”
톰마소가 목에 핏대를 세우고 가까이 다가가면서 아이를 위협했다. 그렇게만 말했다면 어린 녀석은 제풀에 꺾여 다시 공을 쫓아갔을 것이다. 하지만 톰마소는 “알겠어, 자식아!” 하고 되풀이하며 꼬마의 코 아래를 손가락으로 살짝 쳤다. 그러자 얼굴이 시뻘게진 녀석이 누군가가 뒤에서 파이프로 바람을 집어넣은 것처럼 피부가 터질 듯 씩씩거리더니 마구 소리쳤다.
“나쁜 자식, 도둑놈, 개새끼……! 누가 너를 끼워 준댔어! 꺼져, 꺼져 버리란 말이야, 나쁜 새끼!”
얼굴이 창백해진 톰마소는 아무 말 없이 꼬마의 머리가 돌아갈 정도로 따귀를 세게 날렸다.
그러고 나서 올빼미 같은 눈으로 꼬마를 노려보며 말했다.
“잘 봐, 네 녀석 머리가 떨어져 나가게 따귀를 갈길 테니까!”
어린 녀석은 결국 따귀를 맞고 고개가 반대편으로 돌아가고 나서야 그 말을 이해했다. 그제야 어떤 상황인지 깨달은 아이는 창자가 꼬이도록 요란을 떨었다.
아이는 그 자리에 서서 가슴을 내밀고 입을 크게 벌린 채 닭똥 같은 눈물을 닦으면서 계속 울었다.
녀석이 너무 요란하게 울어 대자 화가 난 톰마소는 아이의 코를 손가락으로 거칠게 찌르면서 소리쳤다.
“울음을 그치지 않으면 본때를 보여 줄 거야.”
그래도 꼬마가 울음을 그치지 않았기 때문에 울화가 치민 톰마소는 두 차례 더 아이를 때렸다. 게다가 녀석을 세게 밀쳐 넘어뜨리기까지 했다. 아이의 작은 몸이 진흙땅에 내동댕이쳐졌고, 아이는 짧은 두 다리를 하늘로 향한 채 쓰러졌다. 톰마소는 가까이 다가가 아이의 갈빗대를 두세 차례 짓밟았다.
꼬마는 진흙땅을 데굴데굴 구르며 누가 자기를 잡아먹기라도 하듯 소리치기 시작했다. 이윽고 녀석은 벌떡 일어나 뒤도 돌아보지 않고 집 쪽으로 허둥지둥 달려갔다.
“형을 부르러 간 거야, 이제 넌 죽었어!”
다른 아이들과 함께 친구가 맞는 장면을 지켜보고만 있던 다른 꼬마 녀석이 말했다. 톰마소는 불량스러운 걸음걸이로 협박하는 말을 거만하게 중얼거리며 골문 쪽으로 가서 던져 두었던 자루를 집어 들었다. 그는 서두르는 기색을 보이지 않으려고 하면서 공터를 거쳐 버스 정류장 쪽으로 갔다.
톰마소는 성난 시선들을 뒤로하고 아직 분이 풀리지 않은 눈으로 아이가 들어간 작고 초라한 집 쪽을 흘끔거리며 혹시라도 아이의 형이 나오지 않는지 살폈다. 톰마소는 아니타 아줌마의 노점 가까이에 이르러 위험에서 벗어나자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노래는 그의 발걸음처럼 힘이 없었다. 그는 여전히 흘끔거리며 이따금 뒤를 돌아보았다. 한쪽 눈으로는 “빨리, 얻어터지기 전에 피해!”라고 말했고, 다른 눈으로는 “나도 한 가닥 하는데! 제아무리 판도르피니라 해도 나한테는 못 당할걸!”이라고 말했다. 그는 입을 벌려 누런 치아를 드러낸 채 노래했다.
“맛있는 사과, 사과…….”
톰마소는 아니에네 강 쪽으로 펼쳐진 더러운 채소밭 벚나무 사이를 거닐며 쉰 목소리로 노래했다.
*
저 멀리 몬테사크로의 집들 뒤편, 강 뒤쪽에서부터 진한 먹구름이 하늘을 뒤덮었다. 조금 전까지 비에 젖은 하늘을 가득 채웠던 빛은 먹구름에 덮였고, 이젠 더러운 들판에 반사된 빛이 남아 있을 뿐이었다.
조금 전 울렸던 사이렌 소리를 듣지 못한 톰마소는 날이 저물어 저녁이 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는 이미 온통 흙투성이가 된 신발을 신고 흙탕물을 튀겨 가며 채소밭과 둑 사이에 파인 샛길을 따라 달리기 시작했다. 그는 수로교를 지나 빗물에 축축이 젖은 아름다운 녹색 언덕을 잰걸음으로 걸어 피콜라상하이에 도착했다.
‘자식들은 벌써 갔겠지, 나쁜 자식들!’
톰마소는 어느새 판잣집들 사이를 내려와 마을 중간에 있는 질척한 작은 공터로 가면서 화가 나 생각했다.
그는 곧장 렐로의 집으로 갔다. 그곳에는 아무도 없었다. 얼마나 오래 굶었는지 짖을 힘도 남아 있지 않은 늙은 검정개 한 마리만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개는 널빤지가 너무 낡아 썩은 내를 풍기고 경첩이 떨어져 나간 작은 문 아래에서 일어나 주변을 돌아보더니 작고 녹슨 철조망 쪽으로 갔다. 개는 오줌과 수프 찌꺼기가 섞인 그곳 진창에 드러누웠다.
“더러워!”
톰마소가 기분 나쁘다는 듯 중얼거렸다. 그는 방향을 바꿔 조금 위에 있는 자기 집 쪽으로 다시 올라갔다.
“엄마, 먹을 것 좀 있어요?”
톰마소는 집으로 들어가 자루를 내던지면서 물었다.
하지만 냄비는 작은 화덕 위에서 아직 끓고 있었다. 엄마는 건넛방에 있었다. 말이 건넛방이지 방 하나짜리 오막살이에 꾀죄죄한 회색 커튼 하나와 각종 널빤지 조각들을 얼기설기 못질해 이어 붙이고 그 위에 판지를 댄 간이 벽으로 공간을 나눠 놓았을 뿐이다.
톰마소는 무릎을 꿇고 궤짝 안을 뒤졌다. 다 부서져 가는 찬장 하나와 화덕 그리고 등받이 없는 의자 두 개가 그 작은 방에 있는 살림살이 전부였지만 그것도 겨우 들어갔다. 그는 궤짝에서 꼬깃꼬깃한 만화책을 꺼내 읽기 시작했다.
집 안에는 어린아이 둘이 더 있었는데, 톰마소의 남동생 티토와 토토였다. 그들은 톰마소가 들어오자 조용히 형을 지켜봤다.
톰마소가 만화책을 읽는 걸 보고 한 아이가 네 발로 기어서 그에게 가까이 다가왔다. 아이는 퉁퉁 부어오른 얼굴로 형을 위아래로 물끄러미 훑어보았다. 콧물이 흘러서, 가운데는 하얗고 가장자리는 검은 땟국물이 얼굴에 덕지덕지 묻어 있었다. 거의 흰빛이 나는 작고 파란 두 눈은 장님 눈 같았고, 곱슬머리 아래로 보이는 두 눈 주변은 먼지와 콧물로 범벅되어 더러웠다.
티토는 네 발로 엎드린 자세에서 가만히 위를 올려다보며, 배에서 올라와 목구멍을 겨우 빠져나온 소리, 그르렁거리는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아이는 웃고 있었다. 톰마소가 자기를 봐 주지 않자 아이는 조금 더 가까이 다가와 형의 무릎 위에 고개를 올려놓고 넓적다리 위에 턱을 받쳤다. 귀찮아진 톰마소가 무릎으로 살짝 걷어차자 아이가 바닥으로 넘어지며 궤짝에 머리를 박고 말았다.
아이가 벌렁 나자빠진 채로 막 울음을 터뜨리려는 순간, 아침에 찬장 아래 떨어뜨렸던 빵 조각이 아이의 관심을 끌었다. 아이는 배를 뒤집은 후 두세 번 시도한 끝에 빵 조각을 잡아 빨아 먹기 시작했다.
그사이 또 다른 어린 동생 토토는 빗물을 받기 위해 방 가운데 갖다 놓은 양동이에 가득 담긴 빗물을 장난감 삼아 놀고 있었다. 지붕에 씌워 놓은 방수포 조각 두 개 사이로 빗물이 떨어졌다. 그러다가 아이는 왠지 주둥이 주변에 파리 한 마리가 날아다닐 때 강아지들이 그러는 것처럼 여기저기 깡충깡충 뛰어다녔다.
식사가 준비되자 톰마소는 수프 네 스푼을 급히 떠먹고 안에 채소가 조금 든 자기 몫의 빵을 집어 들고 씹으면서 밖으로 나왔다.
밖에서는 다른 데보다 빗물이 조금 더 마른 공터 가장자리에서 추카보와 세르제토가 작은 칼을 들고 놀고 있었다.
“렐로 봤니, 세르제?”
톰마소가 할 수 있는 한 상냥하게 물었다.
“아니.”
세르제토가 톰마소를 쳐다보지도 않은 채 무뚝뚝하게 대답했다. 그 순간 추카보가 방심하는 틈을 타 세르제토가 칼을 낚아챘다.
“나 학교 간다!”
톰마소가 심통 난 목소리로 외쳤다.
“가라! 누가 잡냐?”
추카보가 작게 중얼거렸다.
톰마소는 다소 과장되게 노래를 불렀다. 그는 바지 주머니 속 100리라짜리 지폐 두 장을 꽉 쥔 채 피에트랄라타까지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렐로의 어머니는 아니타 아줌마였다. 그녀는 버스 정류장 근처에서 땅콩과 사탕을 팔았다. 그곳에 도착한 톰마소는 곧장 아니타 아줌마에게 갔다.
“렐로 보셨어요, 아줌마?”
“로마에 감초를 사러 갔어, 곧 올 게다.”
톰마소는 보도 한쪽에 좌판을 벌인 아줌마의 발치에 가 쭈그리고 앉았다. 벌써 저녁이 다 된 듯했고 날씨가 쌀쌀했다. 피에트랄라타에 부는 차갑고 어두운 바람 속에서 보도 위 노점은 더욱더 작아 보였다. 노점 위에는 비가 올 때를 대비한 작은 천막과, 좀이 슬고 곰팡이가 핀 작은 종이 상자들이 있었다. 톰마소는 각 상자에 들어 있는 한 움큼의 사탕, 땅콩, 먼지가 낀 얼마 남지 않은 감초를 침을 삼키며 훔쳐보았다. 좌판 한 귀퉁이에 걸려 있는 작은 봉투에 루핀5) 네 개가 들어 있었다. 아니타 아줌마는 등받이 없는 의자에 앉아 코를 박고 물건들을 지켰다. 아줌마는 너무 뚱뚱해서 다리를 오므리지 못했다.
삼십 분쯤 지나자 렐로가 막대 사탕이 가득 든 꾸러미를 들고 나타났다. 그는 제 엄마와 실랑이하다가 결국 잔돈을 넘겨주었다. 50리라를 심부름비로 챙기려다 제 엄마와 말다툼이 벌어졌던 것이다. 렐로는 침을 뱉은 뒤 톰마소를 보지 못했는지 그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고 쌩하니 자리를 떴다.
톰마소는 지루한 표정으로 어정쩡하게 기지개를 켜면서 일어나 렐로를 따라갔다.
“레!”
톰마소가 불렀다. 렐로가 아랍 소년 같은 낯짝을 돌려 그를 힐끗 쳐다보았다. 마른 옆구리와 찢어진 반바지 위에서 미제 꽃무늬 셔츠가 펄럭였다.
“뭔데?”
“저, 우리 얘기 끝냈잖아…….”
톰마소가 부드럽게 말했다.
렐로는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듯 톰마소의 눈앞에서 손가락을 오므려서 흔들었다.
“200리라를 마련했어.”
톰마소가 은근히 말했다.
“아하.”
렐로는 기억났다는 듯 오므렸던 손가락을 풀고 바지 속에 손을 집어넣어 긁으면서 생각에 잠겼다.
“받아!”
톰마소가 돈을 내밀었다.
렐로는 냉큼 돈을 받지 않았다. 손을 주춤하며 톰마소가 내민 200리라를 경멸 어린 시선으로 씁쓸하게 쳐다보았다.
“뭐야? 200리라를 주겠다고? 200리라로 대체 뭘 하겠어?”
렐로는 불쾌한 듯 화난 목소리로 말했다.
“젠장, 뭘 할 건지 난들 알아? 우리 그렇게 얘기 끝냈잖아?”
“야, 내가 무슨 얘기를 했다는 거야? 액수를 올리지 않으면 난 생각 없어.”
톰마소가 엄지와 검지를 비비며 잠시 렐로를 뚫어져라 바라보다가 다시 학교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50리라 더 있어. 야, 나한테 꼭 이래야겠냐?”
렐로는 침묵을 지켰다. 톰마소는 화가 났다. 그는 50리라를 꺼내 렐로에게 내밀었다.
“가져가, 제길!”
렐로는 250리라를 잽싸게 낚아채 반바지 주머니에 감춘 뒤, 흡족한 마음을 숨기려고 일부러 이마를 찡그리고 지루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벌써 학교에 갈 시간이 다 됐다. 다시 햇빛이 조금 나서 피에트랄라타의 흙탕물을 비췄다. 아이들이 등교 시간을 기다리며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었다. 이윽고 학교 종이 울리자 모두들 밀치고 떠들면서 안으로 들어갔다. 거의 빈 빈민촌이 태양 아래 조용해졌다.
수업이 끝난 후 아이들 모두 들어갔던 때보다 더 요란스레 떠들면서 학교를 나왔다. 톰마소는 1층 조그만 교실에 혼자 남았다. 빈민촌이 세워졌을 때 개자식들 십여 명이 ‘만세’ 혹은 ‘타도’라는 말과 욕설을 앞에 붙여 자신들과 친구들의 이름을 책상 위에 새겨 넣은 탓에 남은 나무판 중에는 멀쩡한 것이 없었다.
톰마소가 걸레로 책상들을 천천히 닦기 시작했다. 대충 걸레질하다가 멈춰 서서 구멍이 숭숭 뚫리고 낙서로 지저분한 책상을 손바닥으로 북북 문지르느라 오 분 동안 책상 두 개 이상을 못 닦았다. 톰마소의 신경은 선생님에게 가 있었다. 그는 그곳에서 선생님을 보려고 렐로에게 그 많은 돈을 주었다. 칠이 다 벗겨진 벽과 빛이 희미하게 들어오는 작은 창문 두 개 사이로 냉기가 들어와 얼굴이 하얘진 톰마소는 선생님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톰마소는 선생님이 자신의 시선을 눈치채지 못하자 걸레질을 멈췄다. 선생님이 톰마소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걸 보면 적어도 자신을 봐 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선생님은 교탁에 몸을 숙인 채 학생 기록부에 뭔가를 쓰기만 했다. 그의 머리에 포마드가 발려 있었고, 가르마가 끝나는 뒷머리에 머리카락 네다섯 올이 갈대처럼 삐져나와 있었다. 톰마소는 앞의 책상 두 줄을 천천히 청소한 뒤 세 번째 줄 책상에 앉아 쉬면서 걸레로 장난을 치기도 하고 잉크병을 책상 구멍에 박기도 했다.
톰마소는 의자에 뭉개고 앉아 그런 식으로 계속 청소를 했다. 선생님은 여전히 아무렇지도 않은 척 학생 기록부에 뭔가를 쓰고 있었다. 톰마소는 일부러 의자에 걸레를 떨어뜨렸다. 의자 등받이에 몸을 천천히 미끄러뜨리면서, 다리를 쭉 펴고 머리를 어깨에 묻고 두 손을 넓적다리 위에 올려놓았다. 그 자세로 의자에 몸을 비비면서 치마같이 생긴 낡은 반바지 밖으로 다리를 반쯤 드러냈다.
톰마소는 그 자세에서 시선을 들어, 선생님이 뭔가 말해 주기를 기다리는 듯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젠장!’
화가 나서 샐쭉한 톰마소는 차가운 표정으로 생각했다.
그는 그 자세를 조금 더 유지한 채 선생님을 바라보며 다리를 점점 더 길게 뻗었다. 한쪽 다리는 책상 아래로 뻗고 다른 쪽 다리는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성난 표정을 바꿔서 지루하지만 억지로 즐거운 척하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눈뜬장님이야 뭐야, 근데 자나?’
톰마소는 머릿속으로 크게 소리 지르며 생각했다.
그는 다시 걸레를 집어 들고, 창문 쪽 벽을 따라 나머지 책상들을 후다닥 닦았다. 나머지 두 줄은 거의 뛰다시피 걸레질을 했다. 그러고 나서 밖으로 나가 빗자루를 가져와서 교실 여기저기를 되는 대로 쓸기 시작했다.
톰마소는 나지막이 휘파람을 불고 입을 실룩거리며 비질하는 동안 선생님이 한순간 눈을 들어 자신을 쳐다본 것을 알아차렸다.
톰마소는 비질을 멈추고 교탁 가까이 다가가 선생님 앞에 서서 그가 자신을 봐 주기를 기다렸다. 선생님이 시선을 들자 톰마소가 말했다.
“화장실에 다녀와도 될까요?”
“다녀오렴.”
선생님이 작게 말했는데, 속으론 “내가 너한테 뭐라고 하든? 네 마음대로 해. 그런데 고작 그 말을 하러 온 거니? 그런 거야?” 하고 이야기하는 듯했다.
하지만 톰마소는 화장실에 가지 않았다. 벽에 기대 놓았던 빗자루도 다시 잡지 않았다. 책상에 앉아서 바지를 만지작거리며 또다시 자세를 취했다.
톰마소는 지저분한 셔츠를 입고 있었다. 그 셔츠는 넝마장수도 받지 않을 만큼 너덜너덜해졌기 때문에 톰마소의 어머니는 소매를 잘라 내야만 했다. 그래서 그 아래 다른 셔츠를 껴입었다. 밑에 입은 셔츠의 소매는 아직 멀쩡해 보였지만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나머지 부분은 너덜너덜했다. 톰마소는 계속 선생님을 의식했다. 넝마나 마찬가지인 셔츠를 정리한다는 핑계로 바지를 묶은 끈을 풀고 손으로 배를 문지르며, 청소하느라 허리춤에 돌돌 말려 올라간 옷자락을 끌어내렸다. 다른 손으론 바지와 허리끈을 잡고 있었다.
선생님은 심각하고 어두운 표정으로 고개를 천천히 들더니, 들릴락 말락 한 소리로 이렇게 물었다.
“렐로의 어머니께 무슨 일이 생겼니?”
“저, 제가 듣기론 아프시다는데요.”
톰마소는 계속 배 부분에서 반바지를 정리하며 대답했다. 선생님은 대화를 멈추고 다시 교탁으로 고개를 숙였다. 이제 날이 어둑어둑해졌다. 창문으로 희미한 햇살이 들어왔지만 차가운 교실 안은 어둡기만 했다.
심통 난 톰마소는 음흉하기도 하고 당황하기도 한 표정으로 꼼짝 않고 계속 책상에 앉아 있었다.
‘뭘 망설여, 멍청아, 내가 허약해 보여? 내가 렐로보다 못 해? 이봐, 난 이 교실에 있는 그 누구보다 나아! 뭘 생각해, 내가 할 줄 모른다고 생각해? 내가 제일 먼저 당신을 알아봤어, 눈뜬장님아! 당신이 시작하기도 전에 내가 렐로에게 말해 줬다고, 멍청아! 렐로는 바보 멍청이라는 걸 모르나 보지! 나는 할 줄 알아, 하지만 그 자식은 아니야!’
톰마소가 그렇게 생각하면서 점점 더 화를 내는 동안 선생님은 학생 기록부를 휴지로 닦아 내고 덮은 다음 일어섰다.
“가자, 시간이 됐구나.”
선생님이 말했다. 그는 엉거주춤 기지개를 켜면서 교탁 뒤 옷걸이에 걸어 놓은 먼지 방지 외투를 집어서 입었다. 톰마소는 경악과 분노로 가득 찬 표정으로 그를 보았다.
‘나쁜 자식, 오늘 저녁은 뭐가 그리 급해!’
하지만 선생님은 진지하게 다시 고갯짓을 하더니 서랍에 학생 기록부를 넣고 문으로 향했다.
톰마소는 달려가서 화장실 한구석에 빗자루와 걸레를 갖다 놓고 선생님을 따라갔다. 선생님은 교실에서 나와 아스팔트 자국이 군데군데 남아 있는 학교 건물 앞 맨땅으로 내려가고 있었다.
“잘 가라, 푸칠리!”
선생님은 늘 그렇듯이 작은 목소리로 진지하게 말했다. 학생들보다 더 야윈 선생님이 버스 정류장으로 발길을 옮겼다.
“안녕히 가세요, 선생님.”
톰마소가 멀찌감치 떨어져서 말했다. 그리고 작은 목소리로 “빌어먹을!” 하고 덧붙였다.
그는 길 끝에서 계속 선생님을 노려봤지만 그래도 분이 풀리지 않았다. 그는 아니타 아줌마의 노점으로 향했다.
‘나와는 엮이기 싫다, 이거지? 당신은 무서운 거야! 게이 자식! 렐로가 뭐가 좋다는 거지. 아버지도 없는 배고픈 바보 자식이 말이야, 누구 자식인지도 모르는 자식을 말이야! 그에 반해 난 훌륭한 소년이야, 렐로처럼 이가 득실득실하지도 않다고! 게이 자식아!’
톰마소는 화가 나서 생각했다.
톰마소는 보도 위에서 아니타 아줌마 옆에 옹크리고 앉아 211번 버스를 기다리는 선생님을 내내 지켜보았다. 그는 머릿속에 떠오르는 말을 골똘히 생각하는 듯 화난 표정으로 선생님을 노려보았다.
211번 버스가 도착하자 선생님은 버스를 타기 위해 줄 서 있는 사람들 속에 끼어들었다. 톰마소는 그를 지켜보다가 그가 탄 버스가 출발하자 갑자기 벌떡 일어섰다.
‘아, 그래? 그랬다, 이거지? 잘났다, 잘났어! 하지만 내가 당신한테 본때를 보여 주겠어, 빌어먹을! 당신을 쪼그라뜨리겠어! 알았어, 젠장! 제아무리 예수님이라 해도 당신이 십 년 정도 감방에서 썩는 걸 막지는 못할 거야!’
그러고 나서 톰마소는 아니타 아줌마에게 한마디 인사도 없이 버스가 사라진 방향에 있는 티부르티나 쪽으로 뛰어갔다.
그사이 렐로는 다른 두 소년들과 함께 빈민촌에서 빈둥거리고 있었다. 그들은 길에서 주운 담배꽁초를 피우면서 근방을 폼 나게 쑤시고 다녔다. 군용도로로 들어선 그들은 풀이 없는 비탈에서 나무 궤짝 더미로 불장난을 하려고 페코라로 산에 올라갔다가 경주하면서 다시 내려왔다. 제일 먼저 아래에 도착한 녀석이 목청 터져라 다른 친구들을 부르기 시작했다.
“빨리 와, 어서!”
산 아래 성당 옆에 집채만 한 큰 자동차 한 대와 귀부인이 있었다. 차 안에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 줄 물건들이 그득했다. 그들은 뭔가를 얻어 내기 위해 귀부인 주변을 둘러싸고 춤추듯 분주히 움직였다.
“저요, 저요! 아줌마! 저요!”
운전사가 분유 두세 통을 그들에게 나눠 주었다. 녀석들은 분유통 겉봉을 잡아 뜯어내고 분유를 한 움큼씩 집어 숨이 막힐 정도로 입안에 쑤셔 넣었다.
그러고 나서 그들은 분수로 달려가 물을 마시고 입안에 든 가루를 녹였다. 하지만 이내 진이 빠져서 서로를 향해 가루를 불면서 목 뒤쪽으로 뱉어 내기 시작했다. 그들은 빵 가게 점원처럼 허연 분유를 뒤집어쓴 채 영화관 근처에 도착한 뒤 주변을 살피며 몰래 숨어들 틈을 찾았다.
룩스 영화관 입구에서 렐로는 톰마소가 뛰어가는 걸 보았다. 이미 녹초가 된 톰마소는 사람 얼굴을 보고 다니지 않았다. 반바지는 다리 위에서 너덜거렸고 두 팔은 힘없이 옆구리에 축 늘어져 있었다. 렐로는 톰마소가 왜 그리 기운이 없는지 알아채고 눈살을 찌푸렸다. 그는 톰마소를 더 자세히 보려고 몇 발자국 다가갔다.
“그런데 저 자식, 어디 가는 거지?”
렐로가 생각을 집중하며 중얼거렸다.
렐로는 이리저리 머리를 굴린 끝에 톰마소를 미행하기로 했다. 그는 톰마소를 따라 룩스 영화관에서 티부르티나 군 기지까지 피에트랄라타 거리를 달렸다. 톰마소가 뒤를 돌아볼 위험은 없었다. 그는 누군가가 뒤에서 후려치기라도 하는 듯 구부정한 자세로 앞만 보고 내달렸기 때문이다.
군인들의 자유 외출 시간이어서 바가 있는 길모퉁이에 병사들이 북적거렸다. 렐로가 톰마소를 시야에서 놓치지 않으려면 속력을 내야 했다. 톰마소가 모퉁이를 돌아 잰걸음으로 티부르티노테르초를 향해 내려가기 전에 겨우 그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근데 어디…… 가는 거지?”
렐로는 비탈길 맞은편을 지나며 점점 더 수상하다는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톰마소는 페코라로 산으로 올라가는 오르막길을 달리고 있었다. 그는 길 끝, 티부르티노 광장이 있는 곳에 도착하자 잠깐 멈춰서 주변을 둘러보다가 지나가는 차들을 헤치고 길을 건넜다.
렐로는 낮은 담벼락에 바싹 붙어 울타리와 진흙땅 사이에 몸을 숨겼다. 곧이어 그는 톰마소가 시야에서 사라지기 전에 티부르티노 광장에 도착하기 위해 달리기 시작했다.
렐로는 다시 부서진 낡은 탑 뒤로 몸을 숨겼다. 탑 윗부분은 변전소였고, 탑 아래에는 한 가족이 살았다. 이미 가로등이 켜진 공터 전체가 탑 뒤에서 보였다. 광장 바로 앞쪽에 두에밀라 바를 비롯해 집들이 모여 있었고 뒤쪽 광장 내부는 안뜰처럼 완전히 폐쇄되어 있었다.
톰마소는 바로 그쪽으로 가고 있었다. 안쪽 소나무 정원 한가운데에, 정면에 네모난 기둥들이 줄지어 서 있는 건물 한 채가 있었다. 몹시 낡은 옛 파시스트 체육관이었는데 지금은 군대 막사로 사용되었다.
렐로는 분노로 얼굴이 하얗게 질렸고 앞머리가 이마에서 찰랑거렸다.
“스파이 자식!”
그는 톰마소를 노려보며 한숨을 쉬었고, 눈물을 쏟을 지경이었다.
사실 톰마소는 체육관 앞 계단을 두 개 올라 밤색 기둥들이 늘어선 복도 아래를 지나갔다. 정문 옆에서 무장하고 서 있는 헌병 앞에서 톰마소는 넝마 뭉치처럼 작아 보였다.
2
신의 도시에서의 밤
“야, 알도, 렐로 봤냐?”
톰마소가 근처를 지나가던 알도에게 물었다.
“누굴 봤냐고?”
알도는 침이라도 뱉고 싶을 만큼 아주 불쾌한 태도로 대답했다. 그는 너무 시건방지게 굴었던 게 미안했던지 한마디 덧붙였다.
“춤추러 갔을 거야.”
“고마워, 자식아!”
톰마소는 가던 길을 갔다. 학교와 공산당 사무실로 이어지는 길이었다. 사람들은 일요일에 공산당 사무실에 모여 춤을 추곤 했다. 길 양편으로 진흙과 자갈을 깔아 놓은 것을 보도라 부를 수 있다면, 양쪽 보도는 옷을 잘 차려입은 젊은이들과 군 기지의 군인들로 바글댔다. 겨울이었지만 땀이 날 정도로 더웠다. 피에트랄라타와 아니에네 강 인근 들판을 자욱하게 덮은 안개는 목욕탕의 희뿌연 김 같았다. 톰마소는 팔꿈치 높이에 있는 가죽 점퍼 호주머니에 두 손을 찔러 넣은 채 도로 한가운데로 걸어갔다. 그는 다리가 아프기라도 한 듯 한 발씩 천천히 내디뎠고, 몸을 구부정하게 앞으로 숙인 것이 몹시 지쳐 보였다.
“야, 카치티, 렐로 봤냐?”
톰마소가 잡담하고 있는 다른 녀석에게 또다시 물었다. 녀석은 여름옷을 입었고 축축한 곱슬머리를 콧등까지 내려뜨렸다.
“아니.”
녀석이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하지만 톰마소는 떠보려고 그냥 해 본 질문이었기 때문에 대답을 듣지도 않았다. 그는 렐로 그 망할 놈의 자식이 무도회장에 있다는 것을 이미 알았다.
공산당 사무실은 분홍색 페인트로 칠한 단층집이었다. 작은 창문 세 개가 쭈르르 일렬로 나 있었고, 길가 작은 마당 쪽으로 문이 하나 있었다. 모두 똑같이 생긴 열 채 혹은 열두 채 정도 되는 주변 집들처럼 공산당 사무실 역시 집 앞에 지저분한 작은 마당이 딸려 있었다. 그 집들은 강제 퇴거당한 사람들의 집들로, 넓은 부지 한가운데에 일렬로 배치되어 있었다. 잎이 모두 떨어진 비틀린 떨기나무 몇 그루와 널빤지로 만든 공중 화장실 몇 개가 여기저기에 있었다.
문과 창문은 모두 열려 있었고 작은 앞마당에 불빛이 반사되었다. 집 안팎은 아이들, 풋내기 청년들, 젊은 아가씨들, 술 취한 노인들로 북새통을 이루어 마치 광장 같았다.
“레, 이 자식아!”
톰마소는 집 안으로 들어가다 채반처럼 구멍이 숭숭 뚫린 벽 한쪽에 렐로가 기대서 있는 것을 보고, 폐에 바람을 잔뜩 집어넣으며 심통 난 얼굴로 소리쳤다.
“이따 보자!”
그러고 나서 렐로는 이내 그 자리에 톰마소를 말뚝처럼 세워 두었다. 세 젊은이와 카치니6)처럼 생긴 한 노인으로 구성된 악단이 삼바를 연주했기 때문이다. 렐로는 군중을 헤치고 쏜살같이 달려 나가더니 검은 벨벳 옷을 입은 소녀 앞에 제일 먼저 가서 섰다. 그는 소녀에게 인사하지도 않았고 춤을 청하지도 않았다. 그러다가 잠시 후 벌레를 문 딱따구리처럼 오른쪽, 왼쪽으로 소녀를 돌리면서 삼바 춤을 췄다. 소녀가 회전하는 동안 렐로는 껌을 씹고 엉덩이를 실룩거리며 장딴지가 꽉 조이는 미제 바지를 입고 버클 달린 뾰족한 신발을 신은 다리로 한 스텝씩 뒷걸음쳤다.
악단은 품삯을 받고 연주하는 듯했다. 특히 하모니카를 연주하는 청년은 모로코 사람처럼 피부가 검었고 고양이가 야옹거리며 반짝이는 이빨을 드러내듯 치아를 드러냈다. 1미터가 조금 더 되는 높이의 칸막이 뒤에 간이 술집이 있었다. 술집에는 술통 하나와 테이블 하나, 이미 술이 떡이 되게 취해서 서빙을 하는 늑대 인간이 하나 있었다.
테이블 앞에 카고네, 부처, 나자렛 놈 그리고 소매치기 두세 명이 더 있었다. 솜털이 보송보송한 풋내기들이 아니라 스물네다섯 살 정도 돼 보이는 청년들이었다.
“야, 저 자식 언제 움직일 거래? 젠장, 일 년쯤 걸리겠다!”
톰마소의 말에 카고네는 대답하지 않았다. 녀석은 다른 친구들과 함께 사진을 보는 데 정신이 팔려 있었다.
“카고네, 왜 가서 저 멍청한 자식을 불러오지 않는 거야? 늦었잖아!”
톰마소가 노래를 흥얼거리듯 다시 말했다.
하지만 카고네 역시 자리를 뜨기에는 할 일이 너무 많았다. 그는 눈썹을 추켜올린 채 톰마소를 지그시 바라보다가 냅다 침을 뱉으면서 말했다.
“4시가 안 됐잖아!”
“4시야! 밤이 다 됐다고!”
“개새……!”
카고네가 나지막이 말했다. 그러고는 한 친구가 보여 준 사진을 다시 들여다보았다.
카고네는 눈을 살짝 내리깔고 사진을 노려보다가 누구도 상상 못 할 표정을 지었다. 이미 주름이 몇 개 잡힌 늘어진 뺨과 턱, 찢어진 상처처럼 보이는 입, 거의 흰빛을 띨 정도로 옅은 아랫입술과 윗입술, 눈썹 없는 촉촉한 두 눈, 목까지 내려오는 지저분한 곱슬머리에 이미 듬성듬성 머리카락이 빠진 머리통, 이렇게 생긴 그가 술통 위에 턱주가리를 받친 채 한바탕 웃어 댔다.
“야, 네가 운동선수라도 되냐?”
카고네는 턱이 빠질 정도로 웃으며 말했다.
나자렛 놈은 카고네의 손에서 사진을 잡아채며 그를 노려보았다.
“머저리 자식!”
나자렛 놈은 끓어오르는 불쾌감에 아랫입술을 실룩거리며 말했다.
“머저리 자식!”
다른 말을 찾지 못한 나자렛 놈이 또다시 외쳤다. 그가 닭대가리 같이 생긴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며 카고네를 바라보는데, 꼭 이런 말을 하는 것 같았다.
“그러는 너는 나은 줄 아냐?”
카고네는 여전히 배꼽을 잡은 채 나자렛 놈에게 안됐다는 눈길을 던지며 소리쳤다.
“산타칼라에나 가서 쉬어, 어서!”
“넌 크게 실수하는 거야! 넌 잘못 알았다고!”
무리 중 세 번째 녀석인 부처가 불쑥 끼어들었다. 그 말과 함께 그는 지갑을 주머니에서 꺼내더니 손가락으로 조심스럽게 그 안을 뒤지기 시작했다. 그러고 나서 마침내 사진 한 장을 꺼냈다. 사진에는 부처 자신과 다른 두 친구 그리고 카고네가 보였다.
그들은 수영 팬티를 입고 줄지어 있었다. 뒤쪽 줄은 서 있었고, 앞쪽 줄은 옹크리고 앉아 있었다. 모두들 웃통을 벗은 채 카메라 렌즈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멋있는 육체미를 한껏 보여 주기 위해 모두들 근육을 부풀렸다. 나자렛 놈은 가슴을 활짝 펴고 옆구리에 손을 얹은 자세에서 어깨를 앞으로 들이밀고 있었기 때문에 마치 터져 버릴 것처럼 보였다. 카고네는 말린 대구처럼 비쩍 마른 게 꼭 할머니 같았다. 그 모습을 보고 이번엔 부처와 나자렛 놈이 턱이 빠져라 웃어 댔다. 웃음이라기보다는 목구멍을 사포로 가는 고함 소리 같았다. 그들은 배꼽을 잡고 웃느라 허리가 휘었고 테이블 아래로 데굴데굴 구르다시피 했다.
카고네는 흐릿한 눈빛으로 눈썹을 추켜올리고 입술을 삐죽 내민 채 아무렇지도 않은 척 그들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도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고 있는 게 분명했다.
톰마소도 얼굴이 시뻘게지도록 웃으며 그들이 웃음을 멈추기를 기다렸다. 그들이 좀 진정했을 때 톰마소가 점퍼 안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냈다.
“자식들아!”
톰마소가 동정적인 태도로 말했다.
“여기, 이 멋진 몸들을 봐.”
톰마소는 인내심을 발휘하며 소리 지르다시피 덧붙였다. 악단의 연주 소리와 삼바 춤을 추는 녀석들이 발 비벼 대는 소리로 주변이 시끄러웠기 때문이다.
첫 번째 사진에는 톰마소와 렐로, 추카보, 카를레토가 있었는데, 오스티아 해변에서 찍은 것이었다. 추카보와 카를레토는 탈의실 계단에 앉아 물에 젖은 머리통 뒤로 집게손가락과 새끼손가락을 세워 뿔을 만들었다. 톰마소는 나무 난간에 기댄, 어정쩡한 자세로 앉아 있었다. 사진 한가운데에는 꽉 조이는 수영복을 입고 약간 비켜서서 문에 기댄 채 귀염을 떨며 자못 진지하고 멋지게 서 있는 렐로가 있었다.
톰마소는 친구들이 볼 틈도 거의 주지 않고 그들의 코밑에다 대고 사진을 흔들었다. 그는 그 사진을 지갑에 넣고 다른 사진을 꺼냈다. 이번 사진에는 그와 렐로, 추카보가 있었다. 모두들 옷을 잘 차려입고 가리발디 다리를 나란히 걸어가고 있었다. 그것은 여름에 찍은 사진이었다. 고개를 돌려 흘끗 그들을 쳐다보는 여행자 무리가 그들 뒤로 보였다. 셋 모두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걸어가고 있었다. 날이 좋아서 모두들 셔츠 차림이었다. 셔츠 사이로 가슴이 드러나 보였다. 이 사진 역시 다른 친구들은 자세히 볼 틈이 없었다. 톰마소가 그들의 코밑으로 사진을 들이밀고 썩은 내만 맡게 한 뒤 곧장 빼내 갔기 때문이다.
“머저리 자식들!”
톰마소가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그는 상황을 끝내기 위해 마지막 사진을 꺼내며 카고네에게 눈을 찡긋했다.
그것은 증명사진보다 크기가 조금 더 작았다. 톰마소는 엄지와 검지로 사진 가장자리를 잡았다. 그는 사진을 높이 들어 올리더니 부처와 나자렛 놈이 볼 수 있게 사진을 돌렸다. 독수리 문장이 있는 베레모 차림에 얼굴이 검은 무솔리니의 사진이었다.
부처와 나자렛 놈은 톰마소의 기를 세워 주기 싫어서 사진을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그러다 흘끗 사진을 보고 사진 속 인물이 누군지 확인하고 나서야 조금 놀라워했다.
“개새……, 치워! 이 재미없는 참견쟁이를 왜 여기서 보여 주는 거야, 스파이 자식아!”
부처가 투덜거렸다. ‘스파이’는 발 고린내 이후 톰마소에게 붙은 새로운 별명이었다. 부처는 하품을 하고 기지개를 펴면서 다른 것에 관심을 돌리려 했다. 그는 톰마소가 무솔리니를 보면서 하는 말을 전혀 듣지 않았다.
“여기 봐, 그는 진정한 남자였어!”
톰마소는 찬양하는 눈빛으로 사진을 바라보며 건방을 떨었다.
카고네가 생각해 보니 화가 치미는지 갑자기 말했다.
“나 참, 렐로 그 머저리 자식은 뭐 하는 거야?”
“내 말이 그 말이야.”
톰마소는 조심스럽게 다시 사진을 지갑에 넣으며 천천히 씁쓸하게 말했다. 삼바는 끝났지만 악단이 몇 곡 더 연주했기 때문에 커플들은 모두 제자리에 서 있었다. 짝이 없던 남자들은 지금 벽을 따라 움직이며 춤추는 여자들에게 다음 파트너가 돼 달라고 눈짓을 보냈다.
카고네가 홀 한가운데서 침을 튀겨 가며 소리쳤다.
“렐로, 이 자식아!”
하지만 렐로는 커플들 무리 한가운데에 있어서 그 소리를 듣지 못했다. 아니, 설사 들었더라도 못 들은 척했다. 카고네는 톰마소를 데리고 석회 타일이 깔린 조그만 홀 주변을 돌아다니며 렐로를 찾았다. 누군가가 똥침을 놓기라도 한 듯 춤추던 사람들이 펄쩍 뛰었다. 그들은 무릎을 조금 구부리고 까치발을 하더니 깡패들처럼 다리를 이쪽저쪽으로 차기 시작했다.
카고네와 톰마소는 곧 렐로를 발견했다. 피에트랄라타에서 제일가는 춤꾼인 렐로는 자신의 진가를 보여 주기 위해 찰스턴7) 춤곡이 나오기만을 기다렸다. 심각한 표정으로 얼굴을 찌푸리고 있던 렐로의 파트너는 렐로보다 한술 더 떴다. 그녀는 허벅지가 드러나도록 한 손으로 치마를 쳐들고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춤을 추었다.
“야, 이 자식아.”
카고네가 렐로 옆으로 다가가며 소리쳤다. 렐로는 대답하지 않았다. 두 친구는 렐로가 마음껏 춤 실력을 뽐내는 걸 가만히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밖은 숨이 막힐 정도로 더웠다. 해는 이미 저물었고, 피에트랄라타와 주변 들녘을 덮은 안개 속에 노을이 약간 남아 있을 뿐이었다.
그들은 사람들로 점점 더 북적이는 거리를 따라 내려갔다. 저녁이 되자 소리치고 노래하는 젊은이들과 환호성을 질러 대는 소년들로 거리가 넘쳐났다.
어린아이들한테 둘러싸인 세 친구는 줄곧 좌판 앞에 앉아 있는 렐로의 어머니 앞을 지나 길 끝에 있는 버스 정류장에 도착했다.
렐로는 자신의 어머니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친구들이 버스 정류장 차양 기둥에 몸을 기대자, 그는 계속 껌을 씹으면서 엄살을 부렸다.
“아이고, 피곤해서 못 살겠다!”
렐로가 끝도 없이 하품을 해 댔다.
버스가 오지 않았다. 자신들을 기다리는 멋진 계획을 생각하고 흡족해진 톰마소는 눈을 빛내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카고네는 렐로 옆에서 넝마처럼 정류장 기둥에 기대서 있었다. 외투 옷깃을 세운 그는 곱슬머리가 안개에 젖어 더러웠다. 그는 닳고 쭈글쭈글하고 기름때가 묻은 외투를 입었다. 외투가 정강이까지 내려와서 사제처럼 보였다. 그는 조금 더 정직하게 보이려고 일부러 그런 우스운 복장을 한 듯했다.
카고네는 창녀와 깡패 사이에서 태어난 자식이었다. 형제가 두세 명 더 있었는데 로마로 뿔뿔이 흩어졌다. 아버지는 이 년을 감방에서 보냈고 한 달 내내 밖에서 지냈다. 카고네는 아버지를 거의 보지 못했다고 말할 수 있었다. 그의 어머니는 그가 오줌싸개일 때부터 몸을 팔았다. 그녀의 포주가 캄포부오치에 살았기 때문에 그녀는 가리발디 다리에 가서 손님을 기다렸다. 사람들은 그녀를 ‘할멈’이라고 불렀는데, 머리카락이 하얗게 셌기 때문이다.
카고네는 열서너 살쯤에 어머니가 창녀라는 것을 알았고, 자신이 좀 더 덩치가 커지기를 기다렸다. 이삼 년 후 그는 어머니에게 가서 멱살을 잡고 “날마다 500리라씩 나한테 줘, 그러지 않으면 죽여 버릴 거야.” 하고 말했다 한다. 그녀는 놀라서 그 돈을 주겠다고 약속했다. 카고네는 절대 농담을 할 줄 모르는 성격이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포주 몰래 매달 1만 5000리라를 아들에게 줬고, 카고네는 얌전히 굴었다. 사실 그가 저지른 몰염치한 행동은 빵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었고, 단지 몸에 밴 나쁜 습관 때문이었다.
*
로마 전역에 비가 왔다. 테스타치오에서 포르타포르테세와 룬가레타에 이르는 테베레 강 유역은 특히 더했다. 보슬비가 내려서 포장도로에 닿기도 전에 흩어졌다. 큰길과 골목길 들은 후덥지근한 물안개로 가득했다. 아벤티노와 몬테베르데 지역 등에도 안개가 자욱했다.
저녁 6시 혹은 7시쯤 됐다. 톰마소, 렐로, 카고네가 13번 버스를 타고 가다 콰트로카피 다리 앞 작은 공원에 내렸을 때, 그곳은 거의 텅 비어 있었다. 거리에 일찍 나온 창녀들만 주위를 배회했고 소형 오토바이들이 가리발디 다리에서 카라칼라까지 부르릉거리며 달렸다. 다리 바로 건너 룬가레타는 일요일 저녁의 열기로 혼란스러웠다. 레알레, 에스페리아, 폰타나 혹은 몇 군데 싸구려 교구 영화관에서 나온 젊은이들이 저녁 먹으러 가기 전에 바람을 조금 쐬면서 떼 지어 몰려다녔다.
모두들 외투와 스카프를 폼으로 걸치고 있었다. 렐로는 사실 외투나 점퍼가 없어서 못 입고 나왔는데도 그 옷들을 걸치지 않고 외출하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빨강과 파랑 줄무늬 스웨터에 자잘한 붉은 꽃무늬가 들어간 회색 실크 스카프를 목에 둘러맨 렐로는 멋지고 활기차 보였다.
미스 본부는 루체 뒷골목에 있었다. 하지만 톰마소와 친구들은 그곳까지 갈 필요가 없었다. 골목 모퉁이에서 우고를 만났기 때문이다.
우고는 담배에 불을 붙이고 있었다. 그는 담뱃불을 붙이려고 모퉁이에 서 있었고, 인상을 찌푸리고 있어서 뻣뻣하게 웨이브 진 곱슬머리 아래로 얼굴이 잔뜩 주름져 있었다.
“어이?”
톰마소가 한 손을 엉거주춤 들면서 소리쳤다. 우고는 담배를 한 모금 깊이 빨면서 성냥개비를 던졌다.
이윽고 우고는 입술 사이로 혀를 내민 다음 젖은 입에서 잘 떨어지지 않아 짜증나게 하는 담배 찌꺼기를 뱉어 냈다.
“왔냐, 자식들.”
우고가 세 사람에게 손을 내밀며 말했다. 톰마소는 역한 냄새라도 맡은 듯 코를 찡그리며 곧장 본론으로 급히 들어갔다.
“여기는 어때?”
톰마소는 골목에 있는 미스 본부로 가려고 하면서 물었다.
“거기에는 지금 아무도 없어.”
“어째서!”
우고의 말에 톰마소가 대꾸했고, 다른 두 명은 궁금하다는 눈빛으로 그들을 지켜보았다.
“콜레타가 폰치아니 광장에서 기다리래.”
우고가 덧붙인 뒤 톰마소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룬가레타로 내려갔다.
“왜?”
톰마소가 우고를 따라가면서 불만스럽다는 듯 물었다.
우고가 비스듬히 돌아섰다. 그는 주기도문을 외우기라도 할 것처럼 두 손을 모았다. 그러고 나서 손가락 끝이 가슴을 향하도록 돌렸다. 그는 손가락 끝을 꽉 누른 자세에서 두 손을 가슴과 턱 밑에 대고 의문스럽다는 듯 대여섯 번 흔들었다. 그가 불쑥 한마디 던졌다.
“뭐가 그리 궁금해!”
우고는 침을 뱉고는 미지근한 빗물에 반짝거리는 룬가레타로 다시 걸어 내려갔다.
폰치아니 광장에 엔리코, 미치광이, 살바토레가 있었다. 톰마소는 그들을 금방 알아볼 수 있었다. 사람들이 그 작은 광장을 많이 찾지 않아 한산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바셸라리 거리 모퉁이에 있는 바 근처에 모여 있었다.
톰마소와 친구들은 그들에게 가서 악수를 청했다. 하지만 그 세 녀석들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벽에 등을 기댄 채 한쪽 다리는 펴고 다른 쪽 다리는 벽에 발을 대고 있거나 꼬고 있었다. 약속 장소가 그곳이어서 기다리기 지루했던지 그들은 하품을 했다. 그들은 아주 편안해 보이면서도 비아냥거리는 듯한 표정을 바꾸지 않은 채 오른손을 슬쩍 들어 보였을 뿐이다.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였는지 그들은 길 건너에서 나무통을 놓고 올리브를 파는 노점상을 지켜보고 있었다.
“콜레타는?”
우고가 그냥 물어보았다.
“올 거야.”
세 녀석들 중 두 눈에 환한 불빛이 켜져 있는 것 같은 녀석이 대답했다.
“그럼 우리뿐이야?”
톰마소가 불쾌하다는 듯 말했다.
“우리뿐이면 뭐가 어때서?”
우고가 되받아쳤다.
인상을 구긴 채 주변을 노려보던 톰마소는 우고의 말에 씁쓸하게 웃었다. 톰마소의 평평한 입이 벌어지며 쪼개지고 누런 치아가 보였다.
한편 눈빛이 네온 불빛 같은 미치광이가 친구들 시선을 받으며 피곤하지만 단호한 걸음으로 올리브 장수에게 다가갔다.
“아저씨, 올리브 50리라어치만 주쇼!”
아브루초 지방 어디 작은 마을에서 왔을 촌뜨기 아저씨는 돈을 든 미치광이 녀석의 손을 보고 우선 돈을 받으려고 손을 내밀었다. 미치광이는 그에게 돈을 주었고, 올리브 장수는 동전을 주머니에 넣으면서 국자로 올리브를 푸려고 했다. 그때 그는 갑자기 그것이 사용가치가 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