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두기
1. 이 책에 수록된 시들은 2012년부터 2017년까지 교육부와 국가평생교육진흥원이 주관한 ‘전국 성인문해교육 시화전’에서 수상한 작품들 가운데 엄선해 엮은 것입니다.
2. 잘못된 맞춤법과 띄어쓰기는 바로잡지 않고 시화전에 출품된 원고의 표기를 충실히 따랐습니다.
3. 이 책의 인세 중 일부는 배움의 기회를 놓친 전국의 문해 학습자를 위한 성인문해교육 활성화에 쓰입니다.
차례
책머리에
1부
사느라고 참, 애썼네
사무치는 그리움들이 가슴을 울리는 시
장하다 우리 딸! _김춘남
사십 년 전 편지 _조남순
아버지 생각 _박기화
영감님께 보내고 싶은 편지 _이경례
나의 꿈 _이분녀
꿈꾸는 새색시 _박복순
따뜻한 한글 _임남순
손자 선생님 _배영순
무서운 손자 _강춘자
나의 보물, 동백나무 한 그루 _조매현
할미 꿈 _김생엽
새 인생 _이명순
새가 된 당신 _이순례
희망 _김옥희
참 보고 싶다 _허양순
듣고 싶다 _배정동
감사해요 희망학교 _조미정
“……” _이맹연
70년 만에 보내는 편지 _박순덕
영감 보고 있소? _김금준
라일락 향기 담아 _서순자
첫 답장 _박순자
사랑해 말한 날 _이순자
엄마의 웃음 _고예순
우리는 1학년_박점순
2부
창밖에 글자들이 춤춘다
어제와 다른 오늘에 마음이 설레는 시
내 눈이 바빠졌습니다 _양소환
내 인생의 시작 _임화자
망태기에 담은 꿈 _오옥선
친구 _김예순
행복 _김종윤
새로운 하루의 시작 _최천례
전화번호부 _유점례
때늦은 공부 _김용녀
눈 감으면 _박옥남
한글이란 치료제 _유형임
별 _여현정
나의 행복 _변상철
나의 인생살이 _김영기
나는 행복한 여자 _최복심
오, 홍천! _한미숙
반딧불이 _이정해
학교 가는 길 _김정애
문자 보내기 _김복남
벽장 속 내 가방 _김우례
도깨비 글 창고 _천여임
처음엔 그랬제 _조경자
글도 쓸 줄 아는 예쁜 손 _김형심
꼬부랭이 “ㄹ” _홍순애
축복 _조덕선
내 이름 찾기 _안춘만
3부
시란 놈이 꽃 피었다
자연이 말해주는 것을 받아쓴 시
생강 거둬들이듯 _송순희
매미 _성천모
소리꽃 피다 _장금례
글자비 _강춘자
나도 목이 마르다 _양정자
콩나물시루 _이계례
한글 나무 _박순자
자전거 타는 날 _정연녀
콩밭에서 공부하다 _이귀례
모와 한글 _장병옥
난쟁이 민들레 _정정자
겨울 바다 _김연기
행복한 나비 _박금자
우리 동네 _양덕녀
내 고향 _김순자
놀이터 _사토 후키코
수박 _김송순
하늘공원에 앉아 _박말례
글자로 다시 시작한 내 인생 _박흥례
거북이 글씨 _박은진
어린 시절 _안양임
배추흰나비 _백복순
호박시 _김순이
응원 _이분옥
이슬비 _정길임
우야노 우야노 _오중이
4부
내가 제일 무서운 놈 잡았다
다시, 희망으로 살아가게 하는 시
88세 초등학생 _박태순
이제는 꽃으로 _조연순
좋은 날 _이기조
82세에 시작하는 꿈보따리 _정진섭
생명이 있는 한 배우고 싶다 _김성순
몽당연필 _박재연
꽃피는 나의 인생 _박명숙
인생 업그레이드 _고초강
꿈보따리 _최영금
이제는 내 나라 대한민국 _진나영
숨찬 시계 _임영매
夢 _하마모토 미카
무지개 _양성순
쑥쑥 자라는 꿈 _이윤임
터널 _모리 타마에
내 나이 _이시카와 스미코
학교 가는 길은 행복의 길 _김춘자
꿈나라 여행길 _김현자
부녀회장의 꿈 _서선옥
내가 제일 무서운 놈 잡았다 _윤복녀
늦은 나이에 길을 나섰습니다 _노옥엽
나는 _김숙이
행님과 아우 _서무자
희망 _이효령
화가 소개 및 책에 실린 그림
책머리에
‘엄마의 꽃시’가 제게 왔습니다.
글자를 처음 배운 어머니들이 쓴 시를 읽고
제 생각을 보태가면서 저는 설레고 떨렸습니다.
삶이 이리 생생할 수 있다니요.
어제와는 다른 오늘을 보여주는 ‘엄마의 꽃시’는
살아 있는 것들에 대한 존엄과 위엄을,
절대 포기할 수 없는 인간에 대한 믿음과
희망을 깨닫게 해주는 당당한 인생의 발언들입니다.
우리 어머니는 이렇게 말씀하시곤 했습니다.
“살다가 보면, 먼 수가 난다.”
세상에는 우리들이 써보지 않은 이런 ‘수’가
또 얼마나 많을까요.
고백하건대, 저는 ‘엄마의 꽃시’ 앞에 한없습니다.
고개 숙여 목이 메입니다.
삶은 얼마나 무궁 무궁인지요.
때로 삶은 또 얼마나 근사한지요.
2018년 4월 어느 봄날
김용택 씀
장하다 우리 딸!
김춘남
오늘은 문해학교 입학하는 날
엄마 생각이 많이 났어요
우리 아들 입학식 때 손잡고 갔던 학교를
엄마도 없이 나 혼자 갔어요
장하다 우리 딸! 학교를 가다니
하늘나라 계신 엄마 오늘도 많이 울었을 낀데
엄마! 울지 마세요
춘남이 공부 잘하겠습니다
엄마가 살아 계셨더라면
서명도 못 하냐고 무시하던 택배 아저씨도
이름도 못 쓰냐고 눈 흘기던 은행 아가씨도
우리 엄마한테 혼났을 낀데
언젠가 하늘나라 입학하는 날
내가 쓴 일기장 펴놓고
동화책보다 재미있게 읽어드릴게요
어젯밤 얼마나 뒤척였을까요. 밤이 얼마나 길었을까요. 오늘 아침 내가 왜 이러지, 내가 왜 이리 허둥대지. 연필과 공책을 챙길 때 얼마나 떨렸을까요. 얼마나 수많은 생각이 얽히고설켰을까요. 살아온 날들 그 구석구석들이 얼마나 눈보라처럼 휘몰아쳐 왔을까요.
내가 지금 왜 이런다냐, 이게 뭔 일이다냐. 아침저녁으로 보던 산천이 왜 이리 낯설다냐. “엄마, 엄마!” 떨리는 목소리로 엄마를 부르며 “엄마! 나 장하지. 춘남이 공부 잘할게요.”
어제와 다른 오늘이, 이런 날이 내게 있다니.
살다 보니 별일도 다 있다.
» 김춘남 님은 함양군 안의중학교 성인문해학교에서 글을 배우셨다.
사십 년 전 편지
조남순
사십 년 전 내 아들
군대에서 보낸 편지
언젠가는 읽고 싶어
싸움하듯 글 배웠다
뜨는 해 저무는 하루
수없이 흐르고 흘러
뒤늦게 배운 한글 공부
장롱 문을 열어본다
사십 년을 넣어둔
눈물바람 손에 들고
떨리는 가슴으로
이제야 펼쳐본다
콧물 눈물
비 오듯 쏟아내며
사십 년 전으로 돌아간다
어머니, 어머니, 우리들의 어머니 장롱 속에는 무엇이 들어 있을까요? 어머니 장롱 속에는 어떤 슬픔이 쌓여 있을까요? 어느 날 그 장롱 속에 바람이, 햇살이 들이칠까요? 눈물이 가득 고인 우리 어머니 장롱 속.
» 조남순 님은 울산푸른학교에서 글을 배우셨다.
아버지 생각
박기화
단발머리 까만 교복 하얀 에리 제쳐입고
아침 일찍 종종걸음 학교 가는 아이들
담장 너머 그 모습이 너무나도 부러워서
꼴망태 둘러메고 눈물콧물 흘렸어요
농사일로 고생하는 부모님이 안쓰러워
말 한마디 못해보고 논일 밭일 일만 하다
연로하신 아버지께 뒤늦게서 원망하니
마음 아파 슬피 울던 울 아버지 생각나네
그렇게도 메고 싶던 그 책보는 아니지만
더 좋은 가방 메고 문해학교 다니면서
평생 쌓인 한을 풀며 새 인생을 시작하니
하늘 계신 아버지가 새록새록 그리워요
저는 아직도 ‘칼라’를 ‘에리’라고 합니다. ‘에리’는 일본말입니다. ‘에리’가 달린 새하얀 상의에 검정 치마를 입고, 까만 구두에 가방을 든 여학생 복장은 중학교를 가지 못한 또래 소녀들에게는 꿈같은 복장이었습니다. 부러움과 선망의 복장이었습니다. 그때 그 복장은 아니더라도 학교 가시는 어르신들의 설레는 마음이 선명하게 그려진 시입니다.
학교! 공부! 가방! 선생님! 책상! 의자! 책! 공책! 연필!
동무들을 만나러 가방 메고 씩씩하게 학교에 가시는 우리 어머니 여러분! 화이팅!
» 박기화 님은 대전평생학습관에서 글을 배우셨다.
영감님께 보내고 싶은 편지
이경례
서방님이라 부르기도 부끄럽던 새색시 시절
세상을 떠난 당신께
편지 한 장 고이 적어 보내고 싶었습니다
혼자 남겨진 세상살이 어찌 살아왔는지
적어 보내야지, 보내야지 하다가
여든다섯이 되었습니다
사진 속 당신은 늘 청년인데
나는 어느새 당신을 영감이라고 부릅니다
늦깎이 공부를 하니
어깨 너머로 배운 글이 많이 서툽니다
열심히 공부해서
정갈한 편지 한 장 써 보내겠습니다
“사진 속 당신은 늘 청년인데 / 나는 어느새 당신을 영감이라고 부릅니다.” 이 구절에 한 사람의 인생이 실려 있습니다. 무거워서 들 수 없는 세월이 들어 있습니다. 그 무거운 인생을 들고, 지고, 이고 여기까지 오셨습니다. 그 무게를 누가 짐작이나 하겠습니까? 여든다섯이라는 나이가 느껴지지 않는 깨끗한 마음이, 그 순결한 마음이 여기 이 글에 고스란히 담겼습니다.
똑똑한 글씨로 또박또박 써보세요. ‘사랑하는 나의 서방님’이라고. 세월이, 그 많은 세월의 무게가 날개를 달고 날아오를 것입니다. 사랑하는 서방님이 웃고 계실 저세상까지 날아갈 것입니다.
» 이경례 님은 군산시 늘푸른학교에서 글을 배우셨다.
나의 꿈
이분녀
어릴 적 나의 꿈은
남의집살이 안 하고
배불리 밥 먹는 것이였네
젊은 때 나의 꿈은
새벽부터 일어나 밭일하며
자식새끼 배불리 밥 먹이고
학교 내 힘으로 보내는 것이였다
지금의 내 꿈은
삐뚤거리는 글씨로
죽은 남편 묘 위에
‘고맙다’는 글 한번 써서
그리운 남편 옆에서 잠드는 것이라네
시를 읽어갈수록 눈시울이 뜨거워지고 눈물이 고입니다. 어머니, 어머니, 우리들의 어머니라고 부릅니다. 손을 잡고 싶습니다. 이 세상 어떤 시들이 어머니들 시 같겠습니까? 어떤 시인들이 이렇게 쉽게, 살아온 세월을 구구절절 노래했습니까? 시를 누가 시라고 했습니까?
“고맙다”는 그 말 한마디가 이렇게 가슴을 울릴 줄을 어찌 우리가 알았겠습니까? 고마움이 무엇인지, 고마움이 어떤 것인지, 이분녀 시인님은 우리에게 가르쳐주었습니다. 좋은 글로 삶의 고마움을 일깨워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어머니!
» 이분녀 님은 삼척시 평생학습관에서 글을 배우셨다.
꿈꾸는 새색시
박복순
어린 나이에 시집을 와
꿈이란 말도 모르고 살았다
그저 히히낙낙
아이들과 남편만을 바라보고
밥하고 설거지하고
살림만이 나의 전부였다
꽃다운 서른 나이에
훌쩍 가버린 당신
애들이나 다 키우고 가지
원망도 많이 했지만
이젠 당신이 보고 싶습니다
보고픔 대신 시작한 한글 공부
이제 시작하지만
열여덟 꿈꾸는 새색시 모양
설레임은 어쩔 수 없다
나이 들었다고, 사랑마저 나이 들어 시든 것은 아닙니다. 사랑은 순정이어서, 사랑은 순결이어서, 우리 가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