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릭 부스
Eric Booth
예술 교육계의 아버지이자 미국의 가장 창의적인 교사. 연극 배우였던 에릭 부스는 1970년대 말부터 링컨센터 예술 교육원에서 교육 참여 예술가로 일하기 시작하면서 이 일에 매료되어 지금까지 다양한 활동을 펼쳐 왔다. 미국 전역의 오케스트라와 실내악단을 컨설팅하고, 예술 교육자들을 위한 연수 프로그램을 개발했으며, 예술과 창의성을 주제로 기업인들에게 강의를 하기도 했다. 줄리아드 음대, 스탠퍼드, 케네디 센터 등 유수의 대학과 예술 관련 기관에서 예술가들의 교육적 역량을 키우는 데 힘을 쏟아 온 에릭 부스는 2012년 뉴잉글랜드 음악원에서 최초로 〈예술 교육 명예 박사 학위〉를 받았고, 2015년에는 미국 내 예술 교육 분야의 가장 저명한 상인 〈Arts Education Award〉를 수상했다. 대표작으로는 『일상, 그 매혹적인 예술The Everyday Work of Art』, 『음악을 가르치는 예술가The Music Teaching Artist’s Bible』, 『삶을 위해 연주하라Playing for Their Lives』 등이 있다.
디자인 열린책들 장상호
음악을 가르치는 예술가
THE MUSIC TEACHING ARTISTT’S BIBLE
학교에서, 문화 센터에서, 연주회장에서
음악가는 사람들에게 무엇을 가르쳐야 하는가?
종래의 예술 교육은 청취자들이 작품을 따라가면서 인식하고 분류하고 감상하는 데 도움이 되는 정보를 제공한다. 이러한 접근법이 도움이 되는 측면도 없지는 않지만 대개는 청취자들의 경험에 제약을 가한다. 특히 예술가가 안내해야 하는 사람들이 음악 청취 경험이 별로 없는 새로운 청중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더욱 그렇다. (……) 좋은 예술 교육은 다양한 방안과 전략을 제공하여 청취자들이 새로 듣는 음악과 자신만의 고유한 내적 연계를 만들도록 인도한다. 위대한 예술 교육은 새로운 예술 작품을 만날 때 필요한 〈사고 습관〉을 개발해 주며, 그러한 사고 습관은 머리만이 아니라 마음과 영혼으로 음악과 연계를 맺게 한다.
본문에서
●●● 이 책은 교육자로 활동하는 예술가들이 예술을 통해 세상을 더 나은 방향으로 바꿀 수 있는 필수적인 방안들을 품격 있게 제시하고 있다. 예술의 사회적 역할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읽어야 하는 필독서이다.
조셉 폴리시, 줄리아드 음대 총장
●●● 음악계에서는 교육 활동을 벌이는 예술가의 역할과 위상이 점점 커지고 있다. 부스의 책은 효과적인 예술 교육법을 제시하는 동시에, 급성장하고 있는 이 분야의 중요성을 생생하게 확인시켜 준다.
마린 올솝, 볼티모어 심포니 오케스트라 음악 감독
●●● 에릭 부스는 〈삶〉을 위해 음악을 〈연주〉하는 음악인들이 어떻게 더 알차고 재미있는 방식으로 청중을 음악으로 깊이 초대하는지 보여 준다.
바비 맥퍼린, 음악가
문화예술교육 총서, 아르떼 라이브러리
이 책은 문화체육관광부·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과 함께 기획·제작하였습니다.
이 전자책은 ㈜한국출판콘텐츠의 ‘2017 전자책 제작 지원’ 선정작입니다.
The Music Teaching Artist’s Bible
by Eric Booth
Copyright © 2009 by Oxford University Press, Inc.
Korean Translation Copyright © 2017 by The Open Books Co.
All rights reserved.
The Music Teaching Artist’s Bible was originally published in English in 2009.
This translation is published by arrangement with Oxford University Press through EYA (Eric Yang Agency).
The Open Books Co. is solely responsible for this translation from the original work and Oxford University Press shall have no liability for any errors, omissions or inaccuracies or ambiguities in such translation or for any losses caused by reliance thereon.
일러두기
• 별도의 표기가 없는 한 각주는 옮긴이주다.
『음악을 가르치는 예술가』야말로 공연 예술계에 속한 사람들, 즉 연주와 교육을 겸하고 싶은 예술가, 소통하는 법을 아는 예술가와 연주회를 기획하고 싶은 사람들과 교육자들, 그리고 가르치고 소통하고 격려하고 옹호하고 영감을 주고 조언을 주고…… 더 간단히 말해 삶을 바꾸려는 열망을 지닌 예술가들을 통해 변화할 준비가 되어 있는 모든 연령층의 청중들이 가장 고대하던 책이다. 청중과 효과적으로 소통할 수 있는 방법을 아는 예술가와 일하기를 꿈꾸는 연주회 기획자의 한 사람으로서 나는 드디어 이 책이 출간되어 정말 반갑다. 게다가 저자는 예술 교육의 대가다. 말로 형언할 수 없을 만큼 황홀하다!
─ 케네스 피셔Kenneth C. Fischer,
미시건 대학교 대학 음악 협회 회장
에릭은 늘 그래 왔듯이 특별한 통찰을 예술과 교육에 접목시킨다. 미국 내 예술 교육을 향상시키기 위한 그의 심오한 헌신과 지성과 유머, 그리고 경이로운 글솜씨를 예술과 교육에 녹여낸 『음악을 가르치는 예술가』는 음악 교육에 종사하는 많은 이들에게 필독서가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 스티븐 자이델Steven Seidel, 하버드 프로젝트 제로의 감독,
하버드 교육 대학원 예술 교육 프로그램 대표
미국의 예술과 예술 교육 생태계에서 중요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교육 참여 예술가들은 너무 오랜 세월 동안 무관심의 대상, 당연한 존재로 간주되어 왔다. 확신컨대, 각 주의 예술 관련 기관들을 비롯하여, 대부분 이미 에릭 부스를 알고 있고 그에게 기대고 있는 기관들, 그리고 예술 참여 확대라는 소명을 완수하기 위해 교육 참여 예술가에게 의존하는 모든 기관들은 예술 교육의 초석을 놓은 『음악을 가르치는 예술가』를 환영할 것이다. 『음악을 가르치는 예술가』야말로 예술 교육이라는 분야가 필요로 하는 책이자 우리가 신뢰하는 저자의 책, 잘 들여다보아야 할 책이다.
─ 조너선 카츠Jonathan Katz, 전 미주 예술 위원회 연합 최고 경영자
예술 교육이 긴급히 필요하다는 인식과, 예술 교육에 대한 급증하는 관심은 많은 교육 참여 예술가들에게 깊은 영향을 미쳤다. 현장에서 작곡과 연주 활동을 하는 나 또한 예외가 아니다. 나는 링컨센터를 비롯한 여러 기회를 통해 에릭 부스에게 에너지와 영감을 받은 행운을 누렸다. 그의 참신한 아이디어와 집약된 경험을 기반으로 한 유익한 정보와 격조 높은 조언을 담고 있는 『음악을 가르치는 예술가』가 출간되어 진심으로 반갑다. 에릭 부스의 『음악을 가르치는 예술가』에는 우리 같은 교육 참여 예술가들이 인생에서 중요한 일을 경험하고 해낼 때 늘 참고할 수 있는 좋은 지침들이 담겨 있다. 그러나 이 책은 그러한 지침들을 〈미리 결정된 형식〉이 아니라, 예술 교육이라는 소명이 갖고 있는 수많은 가능성을 따스하게 열어 주고 우리를 그 세계로 초대하는 형식으로 제시한다. 나는 이전까지 자기중심적으로 활동해 왔던 나의 음악가 동료들이 이 책의 아이디어를 이용하여 더 폭넓고 활기차며 흥미진진한 예술의 삶을 〈새롭게 펼치리라〉 확신한다. 모든 예술가들이 자신의 소명 중 하나를 예술 교육이라고 보게 되는 새로운 시대가 오기를 고대한다.
─ 존 딕John Deak, 작곡가, 뉴욕 필하모닉 부수석 베이시스트
에릭 부스의 『음악을 가르치는 예술가』는 의학계의 필독서인 그레이의 『인체 해부학』과 마찬가지로, 음악계의 교육 참여 예술가뿐 아니라 모든 교육 참여 예술가를 위한 필독서다. 에릭은 여러 해 동안 다양한 예술 분야에서 교육 참여 예술가로 활동하며 힘들게 얻은 배움과 경험, 현장에서 본 생생한 사실들, 강력한 통찰뿐 아니라 즉시 활용할 수 있는 실질적 테크닉까지 모두 여러분 앞에 놓아 주고 있다. 나는 확신한다. 출간 즉시 책장 모서리가 잔뜩 접힌 이 책이 모든 위대한 교사들의 책장에 놓이리라는 것을.
─ 리사 피츠유Lisa Fitzhugh, 아츠 콥스Arts Corps 창립자이자 대표
『음악을 가르치는 예술가』는 예술 교육의 다양한 분야 사이에 놓인 간극을 좁혀줄 뿐 아니라, 예술 교육이라는 신흥 분야를 본격적으로 다루는 최초의 기본서이다. 예술과 교육 분야는 더 많은 수의 교육 참여 예술가, 그리고 더 탁월한 교육 참여 예술가를 절실히 필요로 하고 있고, 따라서 교육 참여 예술가들에게는 이 책이 필요하다. 에릭 부스는 미국 예술 교육의 권위자이며, 그의 글은 교육 참여 예술가 워크숍만큼 생생하다.
─ 로버트 린치Robert Lynch,
예술을 후원하는 미국인의 대표이자 최고 경영자
『음악을 가르치는 예술가』는 교육 참여 예술가가 되기를 원하는 모든 음악가, 혹은 이 신흥 분야에서 더 효과적으로 일하는 방법을 궁금해하는 모든 음악가들의 필독서다. 에릭 부스는 현장에서 수십 년간 경험을 쌓은 교육 참여 예술가로서, 그리고 교육 참여 예술가의 전문성 향상을 개척한 사람으로서 이 중요한 책을 쓸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이다. 『음악을 가르치는 예술가』는 모든 음악가와 음악원, 그리고 모든 교육 참여 예술가의 서재에 기막히게 어울리는 책이다.
─ 바버라 셰퍼드Barbara Shepherd,
케네디 센터 교육분과 국립 파트너십 대표
『음악을 가르치는 예술가』는 에릭 부스가 교육하는 예술가들에게 제공하는, 정감과 영감과 실용적 정보 가득한 지침서다. 더 중요한 점은, 부스의 통찰이 21세기를 위한 새로운 음악인, 활기를 되찾고 온전히 참여하는 음악인의 역할을 향한 길을 제시해 준다는 점이다.
─ 빌 아이비Bill Ivey, 밴더빌트 대학교,
커브 예술 기획 공공 정책 센터대표, 국립 예술 기금 전 회장
『음악을 가르치는 예술가』는 매력적이고 도발적이면서도 실용적 가치가 큰 책이다. 매력적인 문체와 도발적 아이디어로 가득 찬 이 책에는 예술 관련 일을 하는 모든 교사들을 위한 충실한 정보가 담겨 있다. 예술가들 중 에릭 부스의 예술 교육을 경험해 본 사람들은 이 책에 대한 기대와 경탄으로 가득 차 있다. 우리 모두를 가르치신 분이 쓰신 책이다.
─ 리처드 디시Richard Deasy, 예술 교육 파트너십 대표
교사가 될 생각이 없는 사람들조차도 사실상 교사이다. 그러니 용기를 내어 여러분의 내면에 깃들어 있는 교육자의 자질을 발견하고 그것을 수용하시라. 그리고 영감 가득한 『음악을 가르치는 예술가』를 읽으시라. 이 책에서 에릭 부스가 나누어 주는 아이디어들을 통해 여러분은 더 충실하고 탁월한 교사, 더 나은 예술가로 거듭날 것이다!
─ 앤 마이어 베이커Anne Meier Baker,
미국 전문 합창 협회 회장이자 최고 경영자
음악 교육계가 서로의 입장 차 ─ 클래식 음악 대 현대 음악, 예술을 위한 예술 대 학습을 위한 예술, 공식 자격증이 있는 교사 대 객원 예술가 ─ 로 생명력을 잃어 가고 있는 상황에서 에릭 부스의 『음악을 가르치는 예술가』는 음악 및 음악가와 교육과의 진정한 연계를 지역 사회와 공교육의 맥락에서 회복시키고 통합시킨다. 『음악을 가르치는 예술가』는 꼭 필요한 신선한 공기처럼 삶 속에 녹아 있는 음악을 잃어버린 연주회장과 학교에서 〈생생한 음악을 다시 살릴 수 있다는 확신〉을 활짝 열어젖힌다.
─ 아널드 에이프릴Arnold Aprill, 시카고 예술 교육 파트너십Chicago Arts Partnerships in Education(CAPE)의 설립자이자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음악을 가르치는 예술가』는 마치 성경처럼 새로운 종류의 예술가의 계보를 밝힌다. 저자인 에릭 부스는 그 역사를 살아왔고, 그래서 교육이 어떻게 예술가의 삶을 바꾸어 놓는지, 그리고 교육 참여 예술가들이 어떻게 예술과 교육을 바꾸어 놓을지 명료하게 볼 수 있는 선지자이다.
─ 닉 랩킨Nick Rabkin,
컬럼비아 칼리지 시카고의 예술 정책 센터 전무
음악가들과 다른 분야의 공연 예술가들은 언제나 무대와 스튜디오에서 교육에 종사해 왔다. 그러나 오늘날 학교와 연주장의 현실은 오랜 세월 동안 이루어져 온 관행에 대한 접근법을 정교하게 다듬어야 할 필요에 직면해 있다. 오늘날의 음악인들은 청취자를 음악에 참여시키는 기술, 음악 기량의 지속적 발전을 담당하는 일선 학교의 교사와 협력하기 위한 규칙, 그리고 음악에 대한 대중의 관심과 애정을 기르는 방안을 필요로 한다. 『음악을 가르치는 예술가』는 교육 참여 예술가들이 어떻게 해야 교사들, 지역 사회의 예술가들, 청중들 그 밖에 다른 사람들과의 최상의 연계를 통해, 예술적이고 교육적으로 유익한 경험을 아동과 성인들에게 전달한다는 커다란 목적에 가장 잘 복무할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에 통찰력 가득한 대답을 제시해 주고 있다.
─ 마이클 블레이크슬리Michael Blakeslee,
음악 교육 전국 연합 부대표
바흐의 평균율 클라비어곡집이 클라비어의 새로운 길을 열었던 것처럼, 부스의 『음악을 가르치는 예술가』는 예술의 새로운 시대로 가기 위한 방안을 집대성한 총체적 경로이다. 부스는 새로 부상하고 있는 예술 교육의 실천들을 성문화함으로써 음악가들과 교육자들의 음악에 대한 이해와 참여를 심화하는 동시에, 음악인들의 역할이 넓어질 새로운 시대를 포용하는 데 꼭 필요한 도구들을 제시하고 있다.
─ 제시 로젠Jesse Rosen,
미국 오케스트라 연맹 최고 경영자
에릭 부스가 제시하는 교육 참여 예술가용 지혜와 실질적 조언은 교육 참여 예술가뿐 아니라 모든 교육자와 강사들에게 큰 울림을 갖게 될 것이다. 그의 『음악을 가르치는 예술가』는 청취자들로 하여금 모든 종류의 음악과 연계를 맺게 할 때 예술가가 어떠한 역할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폭넓은 정의를 제공해 준다. 그뿐 아니라 부스는 청중이 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리고 더 넓은 예술 경험, 사람들이 발견해 주기를 고대하는 예술 경험으로 가득 찬 세계 속에서 그 경험을 배운다는 것이 무슨 함의를 갖고 있는가에 대한 성찰에 큰 영감을 준다.
─ 마크 스코르카Marc Scorca,
미국 오페라 협회 회장 및 최고경영자
예술 교육의 대가 에릭 부스는 예술 교육 분야의 중요한 시도들을 기록하고 타인들에게 통찰과 영감을 제공하기 위해 자신의 열정과 창의성과 전문성을 너그럽게 나누어 준다. 여러분이 자신의 일을 타인들과 공유하기를 원하는 열정적인 청년 예술가라면 이 책을 꼭 읽어야 한다!
─ 제임스 언더코플러James Undercofler,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 대표 및 최고 경영자,
이스트먼 음악학교 전 학장
드디어 에릭 부스가 우리를 위해 자신의 지혜를 집대성해 냈다! 에릭과 함께 일하는 특권을 한 번이라도 누려 보신 분이라면 『음악을 가르치는 예술가』의 모든 페이지에서 그의 목소리를 듣게 될 것이고, 책에 들어 있는 지침들과 지혜를 늘 성찰할 수 있게 되어 신이 날 것이다! 그리고 이 책을 통해 부스를 처음 알게 되고 예술 교육 분야에 처음 입문하게 되는 것이라면 여러분은 정말 행운아다.
─ 레니 부어스틴Leni Boorstin,
로스앤젤레스 필하모닉 지역 사회 업무 책임자
에릭 부스는 오랜 세월 동안 예술을 통해 교육을 변화시키기 위한 운동의 최전선에서 일해 왔다. 예술가들에게 더욱 창의적이고 생산적인 교육 체제가 필요하다는 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음악을 가르치는 예술가』에서 에릭은 변화의 동력이 교육 참여 예술가라는 진실, 그리고 이 중차대한 교육 변화의 중요한 동력을 추진하는 실천과 가치들을 명료하게 밝힌다. 그는 예술 활동과 교육을 겸하는 음악가가 해야 할 일에 대한 특별한 통찰을 우리에게 넉넉히 나누어 준다. 최근 몇 년 동안의 거대한 개혁 시도들은 기대 이상의 변화를 이끌어 내지 못했다. 그러나 심오한 변화가 진행 중이다. 에릭은 예술과 교육의 변화를 위한 긍정적인 힘을 확인하고 명료하게 설명할 수 있는 최상의 전문가다. 음악과 교육에 종사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꼭 필요한 시기에 발간된 『음악을 가르치는 예술가』의 통찰과 미덕, 실천으로부터 커다란 혜택을 입을 것이다.
─ 데이비드 오팰런David O’Fallon,
미니애폴리스 맥페일 음악 센터 대표
여러분은 당장 달려가 부스의 『음악을 가르치는 예술가』를 사야만 한다! 내게 효과적인 교육의 비결을 가르쳐 준 단 한 사람을 고르라고 한다면 그는 단연코 에릭 부스이다. 부스는 예술 교육을 발전시키는 내 여정에서 걸음걸음마다 직접 나를 이끌어 주신, 열정적이고 헌신적인 멘토이다. 이제 세상은 『음악을 가르치는 예술가』를 통해 내가 그랬듯이 부스의 생생하고 구체적인 지침을 배울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 것이다. 이 책에는 의미 있고 보람찬 교육의 여정을 시작하고 그 안에서 기회를 발견하고 지속적인 발전을 기하기 위해 여러분이 알아야 할 모든 것들이 들어 있다. 『음악을 가르치는 예술가』는 틀림없이 예술 교육을 우리 교육자들의 의식에 중요한 실천 방안으로 각인시킴으로써 우리의 여정을 밝히는 바이블이 될 것이다.
─ 아이리 요시오카Airi Yoshioka,
교육 참여 예술가, 다모클레스 트리오 바이올리니스트, 볼티모어 카운티 메릴랜드 대학교 교수
음악계의 교육 참여 예술가의 세계에서 최상의 지침을 받고 싶을 때 이를 요청할 수 있는 전문가는 에릭 부스밖에 없다. 부스는 탁월한 전문성을 갖고 있는 교육 참여 예술가인 동시에 예술 교육이라는 지형의 고지대와 저지대를 그리는 탁월한 지도 제작자, 현장의 크고 작은 난제들에 대해 검증된 전략을 나누어 주는 현장 가이드, 그리고 초심자나 노련한 전문가를 가리지 않고 커다란 영감을 주는 위대한 스승이다. 부스의 『음악을 가르치는 예술가』는 분명 음악을 가르치는 예술가, 그리고 이들과 함께 일하는 모든 이들의 필수 지침서가 될 것이다.
─ 필립 알렉산더Phillip Alexander,
엠파이어 스테이트 파트너십 지원 연구 분과의 수석 프로그램 기획관
에릭 부스의 『음악을 가르치는 예술가』가 때맞추어 출간되었다니 정말 반갑다. 지금이야말로 모든 장르의 음악가들이 청중들뿐 아니라 자신이 사는 사회의 문화와 연계를 맺으면서도 자신의 분야를 희생시키지 않고 활동할 수 있는 방안을 절실히 찾고 있는 시점이기 때문이다. 학교와 사회에는 음악가들이 줄 수 있는 기술과 정신이 절실히 필요하다. 이러한 간극에 다리를 놓는 적임자로 에릭 부스보다 탁월한 전문가는 없다. 부스는 예술 교육 분야의 진정한 리더이자 영감의 제공자이다. 이 책에서 에릭은 심오하면서도 실용적인 정보를 제공할 뿐 아니라, 그 정보가 지향해야 할 목표, 다시 말해 누구나 온갖 종류의 문화 예술을 기쁘게 즐길 수 있는 풍토를 만든다는 목표를 명료하게 밝혀 준다.
─ 닉 재피Nick Jaffe,
『교육 참여 예술가 저널』 편집장
교육 참여 예술가들은 성공적인 예술 교육 프로그램의 심장이자 영혼이며, 에릭이 예술 교육 분야에서 쌓아 온 경험과 지식 또한 그러하다. 그의 『음악을 가르치는 예술가』는 실질적으로 행정가들, 예술가들, 교사들, 기부자들, 기금 제공자들 그리고 수혜자 등 예술계 전체를 위한 〈입문서〉이다. 이 책을 읽지 않는 것은 교육 체계 전체에 폐를 끼치는 일이다.
─ 크리스 실바Chris Silva,
뉴욕 포킵시 바데이본 1869 오페라 하우스 대표
에릭 부스는 탁월한 현장 교육 참여 예술가다. 비전 가득하고 도발적이며 매우 유용한 지식이 가득 담긴 『음악을 가르치는 예술가』는 예술과 교육 간의 심오한 연계들을 탐색해 온 부스의 성과물이다. 음악을 가르치는 예술가뿐 아니라 모든 독자들에게 이 책은 놀랍고 매력적이며 영원히 도전적인 지침서다. 내 아버지 레너드 번스타인은 분명 에릭 부스의 이 탁월한 책과, 교육 참여 예술가들의 작업이 함축하고 있는 놀라운 힘에 열광했을 것이다.
─ 알렉산더 번스타인Alexander Bernstein,
레너드 번스타인 오피스 부사장
『음악을 가르치는 예술가』에서 에릭 부스는 교육 참여 예술가들과 교육자들이 실행해 왔고, 부스 자신이 오랫동안 지지해 왔던 〈지식 전에 참여!〉라는 지혜로운 금언을 따라 일해 온 성과물을 통합하여, 〈교수법 강의서〉에 대한 통념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혁신적 〈교과서〉를 만들어 냈다. 에릭 부스는 교육 참여 예술가들의 전문성을 향상시키는 전문 조력자로서, 늘 자신이 〈가르치는 내용〉의 탁월한 모범을 보이는 동시에, 우리가 재미있는 이야기와 유머와 새로운 지식을 가지고 앞으로 나아가도록 부드럽지만 단호하게 인도해 왔다. 그의 『음악을 가르치는 예술가』 또한 현장에서와 똑같은 마법을 우리에게 발휘한다. 우리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이 책에 몰두해 새로운 것을 배우고 새로운 방식으로 사유하게 된다. 『음악을 가르치는 예술가』는 주로 음악계의 교육 참여 예술가들에게 초점을 맞추고 있지만, 이 책에 나오는 대부분의 중심 내용들은 모든 교육 참여 예술가들, 그리고 이들을 뒷받침하는 일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도 유익하다. 에이 플러스 스쿨 프로그램A+ Schools Program은 교육 참여 예술가 연수 1차 자료로 이 책을 쓸 예정이다.
─ 게리 하월Gerry Howell,
에이 플러스 스쿨 프로그램 대표
에릭 부스의 가르침은 여러분의 삶을 바꾸어 놓을 것이다. 에릭이 『음악을 가르치는 예술가』에서 나누어 주는 지혜는 이미 수많은 음악인들과 앙상블들이 음악에 대한 애정을 세상 사람들과 공유하도록 도움을 제공해 왔다. 개인 레슨을 하건, 예술가의 현장 학습을 기획하건, 음악 경력을 시작하건, 여러분은 가장 깊은 고민에 대한 대답을 이 책에서 찾게 될 것이다. 『음악을 가르치는 예술가』는 21세기 모든 음악가들의 필독서가 되어야 한다!
─ 데이비드 월리스David Wallace 줄리아드 음대 교수,
뉴욕 필하모닉 수석 교육 참여 예술가
에릭 부스는 과감하게 경계를 가로지르는 전문가의 길을 선택한 저명한 교육 참여 예술가이다. 그는 놀랍도록 풍부한 음악 교육 실천 방안들을 『음악을 가르치는 예술가』에 집약해 놓았다. 이 모든 방안들은 교육에서 음악이 담당하는 역할의 변화를 감지하는 저자의 날카로운 감식안, 그리고 저자가 미국 내 유명한 음악 교육 기관과 오케스트라와 음악원을 지도하기에 유리한 지점에 위치해 있었다는 사실에서 나온 소중한 열매이다. 부스는 음악계에 존재하는 문화 엘리트주의와 전문 용어 중심의 높은 수준과 음악계에 대한 편견 어린 풍문이라는 장벽을 뛰어넘어, 음악이 청중과 성공적으로 소통하는 모습을 기획하려는 열망에 가득 차, 생산적인 분류 체계와 충실한 비유, 탁월한 사례를 바탕으로 한 원칙들, 그리고 현실적이고 실용적인 조언들을 제시한다. 그가 제시하는 조언들은 예술계 안팎에서, 그리고 예술 교육이라는 소명에 헌신하는 모든 교육자들에게 큰 의의를 갖게 될 것이다. 『음악을 가르치는 예술가』에는 시공을 초월하는 보석 같은 지혜가 담겨 있을 뿐 아니라, 21세기 어느 곳에서나 어떤 환경에서나 음악을 가르치는 사람들에게 유익하고 긴요한 정보가 가득한 실전 매뉴얼의 역할도 수행한다. 특히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 부스는 교육 참여 예술가들의 네트워크를 통해 지역 사회와 청소년들의 예술 교육에 기여하는 국제적 운동을 향한 기적 같은 비전을 제시한다. 『음악을 가르치는 예술가』는 음악 교육이 교육의 창의성과 상상력, 미적 감식력과 지역 사회 봉사를 발전시키기 위한 매개체이자 전범의 역할을 하겠다는 원대한 기획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
─ 래리 스크립Larry Scripp,
뉴잉글랜드 음악원 음악 교육 프로그램 감독,
음악을 통한 교육 연구 센터 대표
에릭 부스의 깊은 사유에서 나온 아이디어와 풍부한 경험을 글을 통해, 그리고 그를 직접 만남으로써 체험하는 것은 언제나 특별한 기쁨이다. 부스의 『음악을 가르치는 예술가』는 심오하고 유기적이며 목표 지향적인 사유가 온갖 종류의 경계를 지혜롭고 즐겁게, 그리고 실질적으로 넘어설 수 있는가를 다시 한 번 생생히 보여 준다. 예술 공교육계에는 특정 분야의 전문가들이 제공할 수 있는 경험과 지식으로는 감당할 수 없을 만큼 해야 할 일이 늘 많다. 부스의 『음악을 가르치는 예술가』는 자기 나름의 역량을 총동원하여 아동과 청소년의 예술 교육을 담당하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 이 분야에서 각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부스가 음악계의 교육 참여 예술가들에게 제공하는 조언은 〈섬세하다〉. 이러한 조언을 통해 음악계의 교육 참여 예술가들은 학교라는 환경에서 완벽한 성공을 거둘 수 있도록 대비할 수 있다. 부스의 『음악을 가르치는 예술가』는 인간의 영혼으로 들어가는 창문을 활짝 열어 놓는다.
─ 리처드 버로스Richard Burrows,
로스앤젤레스 통합 학군의 예술 교육 대표
에릭 부스는 연주자들에게 빛을 밝혀 주신 분이다. 그분은 모든 청취자들이 위대한 예술 작품의 문을 열 수 있는 열쇠를 갖고 있다는 것을 굳게 믿고 있었다. 청취자들의 역량에 대한 그분의 따스하면서도 단호한 믿음은 연주회장 공연과 찾아가는 공연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을 뿐 아니라 두 공연이 절대로 다른 것이 아니라는 우리의 믿음에 심오한 확신을 더해 주었다.
─ 조나 시로타Jonah Sirota와
키아라 4중주단 단원들
이 책을 오랜 세월 내가 가르쳤고, 나와 함께 일해 왔던 음악가들에게 바칩니다. 이들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그리고 언제나 너그럽게 내 스승이 되어 주었습니다. 앙상블과 오케스트라, 워크숍, 학교, 그리고 다양한 만남을 통해 제게 도움을 준 이들도 아주 많습니다. 지면 관계상 이 책의 내용에 직접적으로 도움을 준 이들만 언급하는 것을 너그러이 이해해 주기 바랍니다. 데니즈 딜렌벡Denise Dillenbeck, 세라 존슨Sarah Johnson, 리처드 마노이아Richard Mannoia, 파올라 프레스티니Paola Prestini, 레이철 셔피로Rachel Shapiro, 미스티 톨Misty Tolle, 데이비드 월리스, 타니아 위테크Tanya Witek 그리고 아이리 요시오카에게 이 책을 바칩니다. 헌신적이고 탁월한 이들의 손에 미래를 남기게 되어 참 다행입니다. 나는 당신들에게 무한한 자부심을 느낍니다. 감사합니다.
예술 교육 분야는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따라서 이 분야에 대해 합의된 정의는 아직 존재하지 않는다. 5년 전만 해도 〈교육 참여 예술가teaching artist〉라는 용어는 객원 예술가, 전속 예술가, 혹은 심지어 예술가 교육자라는 종래의 용어를 선호했던 사람들에게서 논란을 촉발시킬 정도로 생경했다. 예술 교육이라는 일의 다양성과 역동성을 감안하면, 차라리 합의된 정의가 없는 편이 낫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든다. 창조성이나 예술이라는 낱말에도 합의된 정의가 없기는 마찬가지다. 때때로 심오한 진리를 포착할 단일한 용어는 존재하지 않기도 한다. 당연한 이치다. (레너드 번스타인Leonard Bernstein은 자신이 정의하는 예술에는 세 가지 속성이 있다고 말했다. 복잡하고 심오한 진리를 담고 있다는 것, 그 진리는 다른 어떤 방식으로도 표현할 수 없다는 것, 그 진리가 없다면 세상은 더 나빠진다는 것.) 교육 참여 예술가 같은 용어의 그 진정한 함의를 포착하려면, 말보다 참여하는 사람들이 있는 공간에서 들을 수 있는 것이 되거나 몸짓으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이 되거나 그림이 되거나, 공연물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번스타인의 말대로 교육 참여 예술가가 없는 세상은 더욱 나빠질 것이다.
현재 예술 교육계에서는 자신을 교육 참여 예술가라고 공언하면 교육 참여 예술가가 된다. 말이 난 김에 짚고 가자면, 원래 〈전문직profession〉이라는 낱말 자체가 〈공언하다, 천명하다〉라는 어원을 갖고 있다. 전문직이라는 말은 학위나 자격증을 통해서가 아니라 특정한 일을 한다고 공언할 때 비로소 그 의미가 살아난다는 뜻이다. 표명된 전문직이 생계비를 벌게 해주느냐의 여부는 원래 자격증이 아니라 그가 해낸 일의 질에 달려 있었다. 예술 교육이라는 분야에서도 마찬가지다. 공식적으로 증명할 수 있는 자격증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여러분이 교육 참여 예술가로서 일을 한다는 것은 탁월함을 보인다는 뜻이며, 그 탁월함을 배가시키는 것은 경험이다.
내가 투박하게 정의하는 교육 참여 예술가란 〈예술의 기량을 가르치는 일을 넘어, 타인을 예술적으로 교육하는 일을 경력의 일부로 적극 선택하는 예술가〉이다. 그렇다. 이러한 정의는 거의 모든 화가와 음악가들을 포함하며, 또한 마땅히 그래야만 한다. 누구나 살아가면서 어떤 방식으로건 자신이 누군가를 가르치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가족, 친구, 낯선 사람과 동료에게 음악에 대해 말한다는 것 자체가 가르치는 일이다. 타인에게 모범을 보이는 것 또한 교육 행위이다. 앞으로 이 책에서 지속적으로 이야기하겠지만 가르친다는 행위의 80프로를 차지하는 것은 가르치는 사람의 정체성, 곧 됨됨이이며, 좋건 싫건 음악가가 보여 주는 본보기들이야말로 음악가가 된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가르친다는 것이 나의 신념이다. 그리고 음악이라는 형식 자체를 위해서도 음악가는 연주할 때 못지않게 타인을 가르칠 때도 예술적이어야 한다는 것이 나의 바람이다.
이 책의 목적은 음악가인 여러분이 공연장, 학교, 방과 후 프로그램에서, 그리고 동료들, 친지들, 낯선 사람들과의 대화에서 예술적이고 효과적인 교육을 수행하도록 조언을 제공하는 것이다. 나는 이 책을 통해 교육과 예술이 서로에게, 여러분의 인생과 음악에, 그리고 우리 문화 전반에 어떤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할 수 있는지 여러분 스스로가 새롭게 정의할 수 있도록 도움을 드리고 싶다.
이 책은 대부분 음악 예술 교육을 다루고 있다. 그러나 이 장에서처럼 일부 내용에는 음악뿐 아니라 무용, 연극, 시각 미술과 문학에 종사하는 교육 참여 예술가들과 관련된 것들도 포함된다. 예술로서의 예술 교육이 관심을 갖는 바들을 하나의 분야로 다루기 위함이다. 다른 예술 분야를 다루고 있는 부분들은 새롭게 부상하고 있는 예술 교육이라는 전문직의 배경을 제시한다. 음악계의 교육 참여 예술가들은, 즉 음악을 가르치는 예술가들은 예술 교육이라는 직종의 본질적이고 주도적인 부분을 차지한다. 다양한 예술 분야 사이에는 분명 차이들이 존재한다. 그러나 예술 교육을 본격적으로 다루는 최초의 시도인 이 책을 통해 나는 모든 분야의 교육 참여 예술가들을 위한 기초, 다시 말해 예술 분야 전반을 아우르는 진리를 제공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진리는 음악 예술 교육뿐 아니라 예술 교육의 진보를 위한 협력의 토대이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교사를 꿈꾸는 사람이 배움의 역사와 심리뿐 아니라 초등학교 이전과 이후의 아동의 발달, 그리고 다양한 철학적 접근법을 공부해야 하는 것처럼, 음악을 가르치는 예술가 또한 심도 있게 일을 하기 위해서는 예술 교육 전반의 역사와 실천을 배워야 한다. 음악 예술 교육을 철저히 파헤치기 전에, 예술 교육의 큰 그림 및 공유된 비전을 밝히기 위해 예술 교육 전반의 맥락을 제시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음악 예술 교육에 종사하는 분들에 대한 직무유기다.
내가 늘 되새기는 교육 참여 예술가의 정의에는 두 가지가 더 포함된다.
• 교육 참여 예술가는 21세기 예술가의 모범인 동시에 교육에서 능동적 참여 학습을 보여 주는 본보기이다.
• 교육 참여 예술가는 미국 예술의 미래이다.
나는 이 선언을 진리로 믿고 있다. 이 책을 다 읽을 때쯤 여러분 또한 나의 믿음을 공유하시게 되길 바란다.
앞에서 교육의 80프로는 교육자의 정체성이라고 말했다. 80프로라는 수치는 통계치가 아니라 일종의 상징적 허구이다. 80프로라는 수치는, 말이나 활동 등 우리가 어떤 방법을 사용하여 타인을 가르치건 타인을 바꾸는 잠재력을 촉발시키는 것은 개별 교사의 식별력과 태도라는 진리를 암시한다. 이 숫자가 의심스럽다면 여러분의 인생에서 만났던 위대한 스승들을 떠올려 보시라. 여러분 인생의 방향을 바꾸도록 독려했던 것은 그 스승의 유인물이나 해설을 곁들인 공연, 혹은 뛰어난 커리큘럼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것은 스승의 됨됨이,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이들이 지니고 있었던 예술 교육이었다. 이 책이 주는 메시지를 채택하는 순간 여러분 또한 타인들에게 끼칠 이러한 종류의 영향력을 개발하는 여정에 들어서게 된다. 예술을 주로 여흥이나 오락의 수단으로 키우는 문화적 풍토에서, 여러분은 음악 예술에 새로운 활력을 부여하는 사명에 능동적으로 기여하게 될 것이다. 여러분은 현 문화 풍토가 심각하다며 좌절하고 마는 예술 종사자가 아니라 해결책을 제시하는 역할을 맡게 될 것이다.
먼저 예술과 오락 간의 차이를 명확히 짚고 가야 할 것 같다. 오락은 예술의 대립 개념이 아니다. 오락이 예술의 적이라는 편견은 금물이다. 이러한 편견을 유지하는 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오락과 예술의 차이는, 오락이란 기존에 알고 있던 것에서 유래한다는 것뿐이다. 예술은 어렵고 모르는 것, 오락은 이미 알고 있는 것이라는 뜻이다. 오락에 대한 여러분의 반응이 웃음이건 눈물이건 흥분이건, 오락은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것을 확인해 준다. 오락은 〈맞다, 세상은 당신이 생각하는 바 그대로 존재한다〉라고 말한다. 오락 산업이 제공하는 상상력 넘치고 역동적이며 흥미진진한 콘텐츠를 통해 우리의 세계관을 확인받는 일은 근사한 느낌을 준다.
반면 예술은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것 너머에서 발생한다. 예술적 경험에 내재하는 것은 세상이 존재하고 있거나 존재할 수 있는 방식에 대한 우리의 감각과 인식을 확장시키는 능력이다. 예술은 관찰 대상뿐 아니라 그 근원적 창조 행위에 참여할 수 있는 개인의 역량 ─ 존재하지 않지만 가능한 것들에 대한 인식의 확장 ─ 속에 깃들어 있다.
베토벤의 후기 현악 4중주곡을 듣고 있는 세 사람을 상상해 보자. 한 사람은 이 곡을 통해 인생이 바뀌는 예술적 체험을 하고 있다. 그는 인간의 정신과 영혼의 무한한 역량, 그리고 이를 담아내는 심오함에 대한 인식을 넓히고 있는 것이다. 옆에 앉은 또 한 사람은 꽤 즐거운 저녁 시간을 보내고 있다. 아름다운 음악을 향유하고 4중주단의 조화로운 하모니에 경탄하다가도, 생각이 딴 곳으로 흘러 자신이 처한 문제를 고민하기도 하고 바이올린이 참 귀여운 악기라고 생각하다가 다시 돌아와 아름다운 음악을 느끼며 편안함을 만끽한다. 마지막 사람은 아내의 성화에 못 이겨 연주회장에 끌려온 터라 연주가 끔찍하다. 그는 음악에서 아무것도 얻지 못한다. 음악을 통해 의미 있는 접속을 직접 만들어 내는 개인적 역량에 따라, 같은 공연이 예술이 되기도 하고 오락거리나 고행이 되기도 한다.
이 내면의 역량이야말로 연주되는 음악 못지않게 예술과 오락 사이의 차이를 결정하는 요인이다. 전문가가 무엇인가를 예술이라고 말한다는 이유만으로 그것을 예술이라 할 수는 없다. 많은 사람들은 대중음악 콘서트에서 저녁을 보내면서 얼마나 강력한 예술적 경험을 했는지 생생하게 이야기한다. 반면 〈예술 음악〉이라고들 인정하는 클래식 음악회에서 교향곡을 들은 경험을 재미없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나는 록 콘서트가 끔찍하지만 10대들은 분명 그러한 공연을 예술로 받아들이는 것 같다. 예술은 몰입 경험을 촉발시키는 작품뿐 아니라 몰입이라는 경험 자체 속에 깃들어 있다. 예술은 대상을 나타내는 명사뿐 아니라 행위와 과정을 나타내는 동사 속에 살고 있다.
교육 참여 예술가들은 이런 의미에서 예술의 〈동사〉적 측면을 개발할 임무를 부여받은 전문가이다. 이들은 자신의 기량을 발휘하여 최상의 음악 공연이나 재현의 예술적 의미를 성공적으로 창조하는 개인의 역량을 자극하고 안내하며 키우고 뒷받침할 수 있다. 교육 참여 예술가들의 지식과 실천은 새로운 관객층을 클래식 음악에 참여시키는 일뿐 아니라, 클래식 음악이라는 분야를 문화적으로 의미 있는 미래로 이끄는 일에 꼭 필요하다. 예술가의 창조가 작품이나 공연이라는 〈명사〉를 생산하는 예술 매개체를 통해 이루어지는 반면, 교육 참여 예술가의 창조는 예술 참여라는 〈동사〉적 매개체를 통해 이루어진다.
수백 년 동안 우리는 예술을 명사, 즉 돈을 내고 보러 가는 공연이나, 집과 박물관 같은 특정 공간에 품위를 더해 주는 작품으로 정의해 왔다. 그러나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의 대중은 대부분 이 명사들에 대한 심오한 이해와 참여를 통해 개인적 의미를 창출하고 이들이 담고 있는 예술성을 파악하는 방법을 알지 못한다. 많은 미국인들은 예술적 경험을 창조하는 동사로서의 예술을 적절한 방식으로 경험하지 못한다. 이들은 자신이 예술을 경험할 능력이 없고 그런 능력을 개발할 수도 없다고 느끼기 때문에 예술에 무관심하거나 적대적인 태도를 보인다. 오늘날 동사로서의 예술은 명사로서의 예술 못지않게 중요하다. 탁월한 교육 참여 예술가들은 명사로서의 예술뿐 아니라 동사로서의 예술을 가지고 일하는 법을 알고 있다. 동사로서의 예술을 다루는 능력은 혼합의 능력이며, 바로 이러한 능력을 통해 교육 참여 예술가들은 예술이라는 풍요로운 세계로 새로운 관객을 초대하는 데 있어 소중한 자원이 된다.
대부분의 미국인들은 예술 공연이 비싸다고 생각한다. 당연한 이야기다. 동사로서의 예술에 대한 내적 역량이 부족한 탓에 연주회에서 얻을 수 있는 경험이 기껏해야 오락 정도의 수준이라면, 훨씬 저렴한 비용으로 즐길 수 있는 더 자극적인 오락거리가 널려 있기 때문이다. 음악의 미래는 실물 경제가 아니라 경험 경제에 달려 있다. 꽤 많은 시간과 주의력과 돈 ─ 그리고 위험 부담 ─ 을 투자 가치가 있는 보람찬 경험에 쏟으려는 사람들이 주를 이루는 사회가 와야 한다는 뜻이다. 교육 참여 예술가들은 개인이나 특정 집단의 사람들, 그리고 예술 단체들이 음악의 미래를 좌우할 이 목표를 이루도록 도움을 제공할 기량을 갖고 있는 전문가들이다.
교육 참여 예술가들은 또한 예술가이기도 하다. 이들은 대부분 〈최고의〉 예술가들이다. 최고의 예술적 역량을 갖춘 교육 참여 예술가야말로 21세기 예술가의 모범이다. 교육 참여 예술가들은 모차르트의 초기 피아노 작품을 썩 잘 연주하는 능력만으로는 관객을 참여시키기에 더 이상 충분치 않다는 현실을 인식하고 적극적으로 대처한다. 음악가들은 청중이 모차르트가 창조한 풍성한 세계의 수액을 빨아들이도록 이끌 기량을 추가적으로 개발해야 한다. 교육이나 하는 예술가는 일류 예술가가 아니라는 식의 거들먹거리는 태도가 여전히 팽배해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바 아니다. 하지만 거기에 대해 왈가왈부할 생각은 없다. 그저 그런 태도가 틀려먹었다고 말할밖에.
낡은 편견을 고수하겠다는 분들은 뭐 그렇게 하시라. 하지만 이들이 낡은 고정 관념에 사로잡혀 있는 동안, 최고의 자리에 오른 젊은 예술가들은 교육 기량을 키우는 일에 지대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 이들은 19세기와 20세기의 교육 관련 편견을 고수하는 데는 관심이 없다. 나는 최고의 오케스트라와 예술 단체에서 일하는 수많은 음악가들을 만난다. 뒤늦게나마 교육 역량을 키우려 분투하는 이 음악가들은 예술 교육을 장려할 기회나 환경을 제공하지 못했던 음대나 음악원에 분개한다. 꼭 필요한 기량의 범위를 확대하기를 원하는 뛰어난 젊은 예술가들은 일거리를 구하게 될 뿐 아니라, 21세기 예술의 잠재력을 다시 정의하게 될 것이다.
앞에서 나는 예술 경험을 세계가 존재하거나 존재할 수 있는 방식에 대한 감각을 확장시키는 역량이라고 정의했다. 여러분은 나의 이러한 정의가 배움의 정의와 매우 유사하다는 점을 눈치채셨을 것이다. 예술이나 배움 모두 본질적으로는 새로운 대상과 개인적으로 의미 있는 관계를 만드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사실 〈예술 교육〉이라는 말 자체가 불필요한 동어 반복이다. 예술과 교육 모두 동일한 근원적 경험 행위를 가리키기 때문이다. 예술 교육이란 그 근원적 경험을 목표와 매개로 삼아 우리를 안내하는 입증된 방식이자, 예술성과 매력, 효력, 새로운 가능성을 열 전망으로 가득한 방식이다.
내 경험으로 볼 때, 많은 음악가들은 예술 교육의 이러한 정의에 원칙적으로 동의하면서도 자신은 쏙 빠져나간다. 이들은 자기는 언변이 없다고, 가르치는 일을 싫어한다고, 어린아이만 보면 소름이 끼친다고, 음악을 잘 연주하고 생계를 유지하는 일만으로도 벅차기 때문에 새로운 기량까지 배울 여력이 없다고 말한다. 이들은 언변이 뛰어난 동료를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그 사람 덕에 자신은 연주만 해도 된다고 생각한다. 나는 청중과 소통하는 연주회가 진행되는 내내 이런 음악가들이 사람 좋은 미소를 띠고 앉아 연주할 차례만을 고대하는 모습을 수없이 지켜보았다. 이들의 관심사는 온통 연주뿐이다. 이런 음악가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딱 두 가지다. (1) 당신이 그런 태도를 버리지 않는 한 당신의 앙상블[1]은 살아남지 못한다. 청중도 수입도 점점 줄어들 것이고 음악에 대한 흥미까지 잃게 될 것이며 결국 당신은 자신뿐 아니라 동료 연주자들까지 수렁으로 끌고 들어갈 것이다. (2) 교육 참여 예술가의 세계에서 음악가가 맡아 할 수 있는 역할은 다양하다. 말재주가 없고 여덟 살짜리 아이들이 소름 끼치게 싫은 것이 문제가 아니다. 음악가들은 누구나 청중의 역량을 키우는 예술 교육 작업에 참여함으로써 클래식 음악의 미래가 달려 있는 이 중대사에서 성공을 거두어야만 한다. 이는 매력적인 소수 음악가들만이 아니라 모든 음악가들의 책무이다. 예술 교육 분야에는 음악가마다 고유의 역할이 있다. 무안해하지 않고도, 자신의 장기가 아닌 일을 억지로 하지 않고도 기여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는 뜻이다. 이 책의 견해와 조언들을 받아들인다면 편안하고 창의적이면서도 탁월한 방식으로 기여할 수 있는 중요한 방안들을 무한히 찾아낼 수 있다.
앞에서는 여러분이 음악계의 교육 참여 예술가로서 기량을 키우는 문제에 대해 심사숙고해야 할 근거들을 제시했다. 4장에서 개진할 근거는 여러분이 보기에도 훨씬 더 매력적일 것이다. 교육 참여 예술가로서 기량을 키우면 예술가로서 더 향상될 수 있다는 점 말이다. 음악을 가르치는 예술가로서의 발전은 음악가로서의 발전으로 이어진다. 그와 관련된 자세한 이야기는 4장에서 할 작정이다. 분명한 것은, 음악 예술 교육의 보람은 이타적인 성격을 띠고 있으며(우리 문화가 음악이라는 형식을 수용하는 데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는다), 경제적으로 이로울 뿐 아니라(음악가로 살면서 수입을 늘릴 수 있는 몇 안 되는 확실한 방법 중 하나가 음악 예술 교육이다) 개인적으로도 의미심장하고(직접적인 보람을 정기적으로 부여한다) 심지어 예술적이다(새로운 종류의 창조적 충족감을 제공한다).
이 책에서 기술하는 기량을 채택하고 이를 적용시키는 작업을 통해 여러분은 예술 교육의 과거뿐 아니라 예술 교육이 움트고 있는 현재와 창창한 미래에 참여하게 된다. 미국에서 학교가 설립된 이래 예술가들은 학교로 들어가 활동해 왔다. 50년 넘는 세월 동안 교육을 목적으로 만든 음악 프로그램들이 교실과 강당에서 실행되어 왔다. 최초의 주도적인 전국 예술 교육 네트워크인 영 오디언스Young Audiences(YA)는 예후디 메뉴인Yehudi Menuhin의 아동을 위한 거실 공연으로 시작되어, 현재는 전국에서 활발하게 활동 중인 33개의 지부와 5200명의 교육 참여 예술가를 거느리고 있다.
영 오디언스 초창기 시절, 수많은 음악가들이 개인적으로나 단체를 통해 훌륭한 프로그램을 개발해 냈고 대담한 실험도 시도했다. 예술 교육이 본격적인 분야가 된 시기는 1980년대였다. 레이건 행정부에서 학교의 예술 교육비를 삭감하는 정책을 펴면서 예술 단체들은 이에 대한 대응의 일환으로 학교에 직접 예술 서비스를 제공하기 시작했고 예술가들은 그 중추가 되었다. 링컨센터 예술 교육원Lincoln Center Institute(내가 교육 참여 예술가가 되는 법을 배우기 시작한 곳이다)과 시카고의 어번 게이트웨이스Urban Gateways 같은 예술 교육 단체들은 교육 참여 예술가들을 양성하여 일선 학교로 보내기 시작했고 그 인원은 점점 더 늘어났다.
교육 참여 예술가라는 용어를 공식적으로 만든 사람은 1970년대 초 링컨센터 예술 교육원의 준 던바June Dunbar라는 이야기가 있다. 그녀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아무래도 제가 〈교육 참여 예술가〉라는 용어를 처음 만든 것 같아요. 당시 링컨센터의 교육부라는 곳에서 전임자들이 쓰던 끔찍한 용어들을 바꾸려고 생각해 낸 말이 교육 참여 예술가라는 말이거든요. 이들은 학교에서 활동하는 예술가를 가리켜 〈자원 전문가resource professional〉라는 말을 썼어요. 타자기 수리공이나 배관공 같은 기술자를 묘사하는 표현 같기도 하고, 아니면 무슨 교육 관료 같은 느낌이 나서 기분이 좋지 않았죠. 어쨌거나 제가 만든 교육 참여 예술가라는 용어가 더 직접적이고 구체적으로 들렸고 입에도 잘 맞았어요. [실제로 〈자원 전문가〉라는 말은 링컨센터 교육 프로그램을 개설할 때 받은 연방 정부 보조금과 관련해서 쓰던 용어를 차용한 것이더군요.]
결국 〈교육 참여 예술가〉라는 새 용어를 통해 초점은 유관 기관과 자금 지원 당국의 필요와 결부된 〈자원 전문가〉라는 정체성에서 예술과 교육의 고유한 혼합을 실천하는 정체성으로 옮겨 갔다. 우리는 아직 이 용어를 정의하려 고군분투하고 있지만, 확실한 것은 〈교육 참여 예술가〉라는 신조어가 〈예술가〉를 중심에 놓는다는 것이다. 예술가야말로 교육 참여 예술가라는 용어가 내포하고 있는 진정한 정체성이기 때문이다.
초창기 몇 년 동안 교육 참여 예술가들은 일선 학교에서 일하는 음악 및 미술 교사들과의 불편한 긴장 관계에 직면했다. 많은 음악 교사들은 현장 음악가들을 학교로 끌어들이는 방침이 자신들의 일을 대체하는 값싼 수단이라며 불안해했다. 객원 자격으로 학교를 방문하는 교육 참여 예술가들은 학생들의 음악적 기량을 발달시키도록 꾸준한 도움을 줄 수도, 학생들이 평생 음악을 좋아하는 습관을 만들도록 곁에 있어 주지도 못한다는 것이 현직 음악 교사들의 불만이었다. 타당한 주장이었다. 애석하게도 초창기 시절 일부 교육 참여 예술가들은 이러한 갈등을 건강하게 풀어내지 못했다. 이들은 일선 교사들을 무시하는 오만한 태도를 견지한 채 학교로 들어갔고, 학교 현장의 현실을 충분히 배우고 수용하지 않았으며, 학교 현장의 음악 교사를 예술가로 그리고 학생들의 창조적인 삶을 풍요롭게 하기 위한 최상의 협력자로 존중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러한 긴장은 최근 몇 년 동안 거의 사라진 듯하다. 학교 예산을 삭감하는 조치가 떨어져도 교육 참여 예술가가 음악 교사의 자리를 빼앗지 않는다는 것이 입증되었기 때문이다(오히려 교육 참여 예술가는 음악 교사 재임용의 옹호자가 된다). 예술 교육의 전문화를 통해 이 직종을 존중하는 태도와 알찬 준비, 일선 교사와 좋은 협력 관계를 구축하려는 경향, 그리고 학교 문화라는 풍토에서 성공할 수 있는 더 광범위한 방편들이 만들어질 수 있다.
전국에서 시행되는 수백여 가지 프로그램을 보고 난 지금, 나는 이제 학생들을 위한 최상의 음악 교육은 교육 참여 예술가와 학교 내의 예술 과목 담당 교사, 식견을 갖춘 담임 교사 세 사람의 공동의 노력을 통해 이루어진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교육 참여 예술가는 낯설고 강렬한 에너지를 학교로 들여옴으로써 교육을 촉진시키고 새로운 영감을 제공할 수 있다. 교육 참여 예술가는 학교와 전혀 다른 문화, 예술을 창조하는 데 평생을 바치는 이들이 존재하는 문화가 학교로 보내는 사절이다. 이들이 들여오는 헌신적인 태도와 예술가로 살아가기 위해 감당하는 위험들은 이들의 80프로, 즉 교실로 들어서는 이들이 주는 느낌에서부터 이미 풍겨 나온다. 음악 교사들은 이들이 해놓은 후속 작업으로 학생들의 기량을 꾸준히 향상시킬 수 있다. 이러한 교육 환경을 통해 어린 음악가들은 충족감을 맛보고 성공의 실마리를 얻게 된다. 단 학교가 이들에게 시간과 지원을 허용한다는 조건만 충족된다면 말이다. 식견을 갖춘 담임 교사는 교육 참여 예술가와 음악 교사가 해놓은 일을 학생들과 학교에 중요한 다른 많은 교육에 통합시킬 수 있다. 다시 말해 학교의 교사는 맥락과 연계를 제공한다.
최근 들어 주목할 점은, 세 사람을 삼각형의 각 꼭짓점에 위치시키는 경우 음악 교사가 맨 위의 꼭짓점에 위치한다는 합의가 음악 예술 교육 분야 내에 존재한다는 것이다. 교육 참여 예술가와 음악 교사, 담임 교사로 이루어진 삼인조는 최적의 조합이며, 여기서 중추는 음악 교사이다. 교육 참여 예술가와 담임 교사는 열의로 충만한 음악 교사가 제공하는 교육에 자원을 보태는 역할을 수행한다. 교육 참여 예술가는 학교 내 음악 프로그램 강화를 거침없이 주장하는 등 학교 교육의 강력한 옹호자가 되어 가고 있다.
미국 내 교육 참여 예술가의 숫자는 1980년대 내내 증가했고 이들의 전문성 또한 증대되었다. 이 시기 동안 대부분의 음악 교육 프로그램은 가르치는 데 타고난 재능을 보이는 예술가들을 고용했고, 〈이 일의 성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예술가들을 쫓아냈다. 예술 교육을 단련 가능한 실무이자 독립된 예술 분야로 보는 개념이 차차 등장하기 시작했다. 초창기 몇 년 동안 음악 프로그램을 주관하는 단체나 학교에서는 아이들과 잘 지내는 능력을 보이는 특정 예술가들을 고용한 다음 교실에서 마법을 발휘하라고 요구했다. 교사와 아이들을 만족시킨 교육 참여 예술가는 탁월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교육 참여 예술가들을 고용하는 프로그램의 특정한 요구에 기여할 수 있도록 이들을 교육하는 데 초점을 맞추는 연수 프로그램들이 없지는 않았다. 이러한 연수 프로그램은 대개 하루나 이틀 정도에 신속하게 훈련을 마치는 전략적 형식을 띠고 있었다. 예술 교육 분야로 처음 진입한 신참은 실전 경험을 쌓으며 필요한 것을 배우기를 바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더 깊이가 있는 프로그램도 있었지만 나흘이나 닷새 이상 훈련을 제공하는 프로그램은 극히 드물었다. 일단 교육 참여 예술가를 고용하고 나면, 지속적으로 전문성을 향상시키는 훈련을 제공하기가 쉽지 않았다. 전문성 향상 프로그램은 일관성도 없었고 그때그때 문제를 해결하는 데 초점을 맞추었다. 가령 다중 지능이나 학습 장애에 대한 두 시간짜리 단발성 워크숍이 전형적인 연수 프로그램이었다(이러한 상황은 지금도 여전하다). 헌신적인 교육자도 자신이 시행하는 교육에 다중 지능이나 그 밖에 다른 요소들을 추가하려면 여러 해가 걸리는 상황에서, 교육 참여 예술가들이 받은 훈련이라고는 후속 교육도 없는 단발성의 짧은 워크숍이 전부였다.
1990년대 들어 교육 참여 예술가들은 새로운 도전에 직면하게 되었다. 예술을 위한 (임의적인) 전국적 표준이 꿰어 맞추는 식으로 급조되었고, 거의 모든 주가 나름의 (의무적) 예술 교육 표준을 서둘러 마련하는 분위기가 형성된 것이다. 예술 교육을 위한 전국적 표준을 만드는 과정은 합의해야 할 필요성을 느낀 적이 없는 예술 교육 분야에 어렵지만 건강한 도전을 제기했다. 학교의 예술 교육 표준은 새로 도입된 예술 표준에 맞출 법적 의무가 있었기 때문에 각 주들은 예전의 관행을 유지할 수 없었다. 따라서 1990년대 말부터 학교 현장에서 일하던 교육 참여 예술가들은 이러한 변화에 영향을 받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꽤 많은 교육 참여 예술가들이 각 주에서 예술 교육 표준을 개발하는 일에 참여했다. 이제 교육 참여 예술가들의 일은 〈교실에서 마술을 부리는 것〉에서 〈주의 표준에 맞추어 교육하는 것〉으로 변모했다. 처음에 나는 다른 많은 사람들처럼 예술 교육이라는 섬세한 작업을 법제화된 규범을 수용하는 쪽으로 바꾸어야 한다는 데 분개했다. 〈표준〉이라는 단어에 멈칫했던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표준을 마련하는 일을 하면서 느낀 바는 애초의 내 예상과는 전혀 달랐다. 실제로 예술 교육의 표준은 유익했고, 내가 가르치고 싶었던 것들과 잘 맞았던 것이다. 교육 참여 예술가들은 이 표준을 통해 일선 교사들과의 대화를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이 표준을 통해 나는 무엇보다 예술가들 스스로가 가장 높은 표준을 이미 지키고 있다는 것을 다시금 깨닫게 되었다. 결국 표준을 적용시킨다는 개념 전체가 예술적인 진정성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경험을 통해 나는 앞으로 이 책에서 개진하게 될 교훈을 알게 되었다. 교육 참여 예술가들은 학교나 다른 기관들의 요구를 과도하게 수용할 때보다, 진정한 예술적 실천에 기반을 두고 교육을 할 때 최고의 기량을 보인다는 교훈이다. 예술이라는 분야는 헤아릴 수 없을 만큼의 깊이와 유연성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예술의 진정성을 잃지 않으면서도 다양한 환경에서 효과적으로 예술 교육을 제공할 수 있는 방법을 교육 참여 예술가들은 언제나 찾아낼 수 있다는 것이 나의 믿음이다.
1990년대 교육 참여 예술가들이 직면한 도전은 또 있었다. 교사와 다른 전문가를 위한 교육 참여 예술 워크숍을 개발해 달라는 요청이 그중 하나이다. 또한 교육 참여 예술가들은 그들이 학교에 있는 동안 학생들에게 미칠 영향을 확대하고 심화하기 위하여 교사들과 함께 능동적으로 계획을 짜는 유능한 협력자가 되기를 요청받았다. 더불어 교육 참여 예술가들은 종종 협력자로 참여하는 기관이 하는 일의 역량을 향상시키는 촉진자 역할을 부여받았다. 이들은 당시 전국에서 생겨나고 있던 예술 교육 실험에 참여하여 프로그램 설계자, 데이터 수집자, 혹은 연구자로 일했다. 이들이 참여했던 예술 교육 실험으로는 엠파이어 스테이트 파트너십 프로그램, 에이플러스 스쿨, 번스타인 센터 스쿨스Bernstein Center Schools, 애넌버그 이니셔티브Annenberg Initiative 프로그램, 시카고 예술 교육 파트너십Chicago Arts Partnerships in Education(CAPE) 프로젝트, 그리고 게티 교육 협회Getty Education Institute와 갈레프 재단이 이끄는 프로그램 등이 있다.
교육 참여 예술가들이 해결해야 했던 또 하나의 난제는 평가라는 문제였다. 학생들이 배운 내용을 기록하고 설명하는 방안을 개발하는 일이었다. 많은 교육 참여 예술가들은 이 일을 어려워했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불쾌하다고 여겼다. 시험을 치른다는 느낌을 주는 평가 개발이 교육 참여 예술가의 가장 근본적인 목적에 위배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예술가들은 본디 작품의 질을 평가하는 데 뛰어난 자질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다. 따라서 교육 참여 예술가들은 예술 참여를 통해 이루어지는 배움을 설명해야 하는 제도권의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 최상의 예술가적 식견을 드러낼 수 있는 실용적이고도 확실한 방안들을 찾아냈다. 교육 참여 예술가들은 또한 예술 교육의 필요성을 옹호하고 홍보하는 역할까지 겸해야 했다. 이에 따라 예술 관련 프로그램에 자금을 대는 이들이 예술 교육 작업을 후원하고 이해하는 방식을 변화시킬 수 있도록 예술 교육의 적절한 사례를 제시하는 일도 습득해야만 했다.
21세기 들어 교육 참여 예술가들이 마주하고 있는 가장 큰 도전은 오늘날 미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가장 큰 예술 교육 실험인 통합 예술이다. 예술 교육은 다른 과목과 만나고 있다. 음악 교육을 사회 과목 커리큘럼에 통합하는 식이다. 두 과목을 통합하는 목적은 각 과목에 대한 이해를 향상시키는 것이다. 도박이나 다름없는 작업이다. 여기서 패하는 경우 예술은 다른 과목의 시녀로 전락해, 예술이 청소년들의 삶에 미치는 영향이 줄어들 것이다. 반면 철저하고 탁월한 준비를 통해 승리하는 경우 예술은 미국의 학교 교육에 훨씬 더 크게 이바지하게 된다. 이 도박 같은 모험의 결과를 속단하기는 아직 이르다(20장을 참고하시라). 지루한 교과에 생기를 불어넣기 위해 예술을 이용하거나, 반대로 통합 프로젝트에서 예술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극단적 접근법이 실패하는 모습을 나는 무수하게 보아 왔다. 물론 음악이 제공하는 근원적 접근법을 통해 역사와 음악 공부 둘 다 좋은 결실을 맺는 모습도 보았다. 음악과 미국사를 통합했던 수업이 떠오른다. 사람들의 생존에 음악이 어떻게 사용되어 왔는가라는 주제를 중심으로 한 수업이었다. 학생들은 남북 전쟁 당시의 언더그라운드 레일로드Underground Railroad[2]에서 부르던 노래들과 노동요, 저항의 노래들, 그리고 스스로에게 생명줄처럼 느껴지는 소중한 노래들을 조사했다. 이러한 음악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역사에 대한 학생들의 관심이 더욱 깊어지고 넓어졌다. 이들의 참여가 예술적이었기 때문이다. 자신과 역사가 연계되어 있다는 것을 깊이 느꼈다는 뜻이다.
이 모든 새로운 도전들을 통해 교육 참여 예술가들은 전보다 한층 높아진 기대를 한 몸에 받게 되었고, 이와 더불어 예술 교육을 성공으로 이끌기 위해 이들이 알아야 할 것들도 훨씬 많아졌다. 교육 참여 예술가들은 각 주의 표준을 다루고 촉진자 역할을 담당하고 평가를 수행하며 기금 조성을 위해 예술 교육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강력한 협력 관계를 구축하고 다른 과목과 이들의 예술적 기량을 통합하는 방법 등 모든 것을 알고 있으리라는 기대를 한 몸에 받았지만 실상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이들에게는 훈련이 필요했다. 무엇보다 훈련을 이들의 예술적 열망과 연계시켜야만 했다. 그렇지 않을 경우 예술 교육을 위한다는 미명하에 예술가들을 질식시키게 된다.
결국 교육 참여 예술가를 위한 전문 개발 프로그램이 등장하기 시작했고, 그 후로 교육 참여 예술가들은 활동 범위를 확장하는 작업을 성실히 이행해 왔다. 교육 참여 예술가의 계보는 더욱 풍성해지고 있는 중이며, 성장을 거듭하는 이 세계로 들어오는 예술가들을 환영하고 있다. 예술 교육이 성장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 주는 사례는 많다. 우선 동종 업계에 종사하는 이들이 평가하는 전문 저널인 『교육 참여 예술가 저널Teaching Artist Journal』이 있다(이 저널의 본부는 컬럼비아 칼리지 시카고이며 테일러 앤드 프랜시스Taylor & Francis 출판사가 발행하고 있다. 인터넷 주소는 http://tajournal.com[3]이다). 2002년 이 저널을 처음 시작했을 때 나는 저널을 내자고 교섭하는 과정에서 미국 내에 존재하는 교육 참여 예술가가 얼마나 되는지 아무도 모른다고 실토해야만 했다. 그저 1만 5000여 명 정도의 사람들이 예술 교육으로 생계비의 꽤 큰 부분을 벌고 있다고 추정할 뿐이었다. 그러나 실제 숫자는 그보다 더 낮거나 네 배가량 높았을 수도 있다. 교육 참여 예술가들을 위한 전국 단체도, 연간 열리는 콘퍼런스도 전혀 없기 때문에 대중의 눈에 띄는 증거가 많지 않다는 점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출판인이었던 로런스 얼바움Laurence Erlbaum 씨는 결국 나와 악수를 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좋습니다, 저널을 출간합시다. 하지만 한 가지 말해 둘 게 있습니다. 우리 회사에서 발간하는 82개 저널 중에서 이 저널은 존재하는지 알 수 없는 독자층을 겨냥한 최초의 잡지가 될 거라는 점입니다.〉 그로부터 4년 내에 『교육 참여 예술가 저널』은 이 출판사의 베스트셀러 저널 상위 10프로에 드는 기염을 토했다.
지역의 전문 단체를 구축하려는 교육 참여 예술가들의 노력은 30여 가지가 넘는다. 뉴잉글랜드 예술 및 교육 전문가 컨소시엄NECAP, 샌프란시스코 베이 에리어San Francisco Bay Area에 조직된 교육 참여 예술가 조직과 (미니애폴리스와 세인트폴에 있는) 아티스트 투 아티스트Artist to Artist 등의 단체들이 그 사례이다. 예술 교육 관련 강의는 맨해튼 음악 학교, 줄리아드 음대, 컬럼비아 칼리지 시카고와 많은 다른 음악 학교에서 제공되고 있으며, 새로운 예술 교육 프로그램이 서던 메서디스트 대학교에 있는 메도스 스쿨Meadows School에서도 막 시작되었다. 교육 참여 예술가를 개발하고 뒷받침하는 새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새로운 예술 단체들에 대한 소식이 매달 들려온다. 교육 참여 예술가 연합은 뉴욕 주에 본거지를 둔 온라인 사이트다(http://www.teachingartists.com). 교육 참여 예술가에 대한 최초의 전국적 조사 연구가 진행 중이며, 여러 주들이 지역에서 활동하는 교육 참여 예술가의 신원과 이들의 요구를 조사하기 시작했다. 교육 참여 예술가가 일하는 환경 또한 학교 공간을 넘어 확대되고 있다. 이들의 활동 무대는 (창조적 노화 운동의 일환으로 무용계의 교육 참여 예술가 수전 펄스타인Susan Perlstein이 창립한) 노인 센터, (전문성 개발과 창의력 훈련을 제공하는 목적의) 기업 그리고 의료계와 대학을 망라한다. 나는 유네스코가 최초로 마련한 세계 예술 교육 콘퍼런스에서 폐막 연설을 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유네스코가 이 전례 없는 행사를 조화롭게 마무리하기 위해 교육 참여 예술가에게 관심을 돌린 것이다! 이 얼마나 의미심장한 변화인가!
아직 충분한 체계를 갖추지는 못했으나 성장을 거듭하고 있는 예술 교육 분야로 오시라. 예술 교육 분야는 여러분의 참여를 필요로 하고 있다. 예술도 음악도 미국의 교육도, 그리고 여러분의 통장도 마찬가지다.
내 소개를 좀 해야 할 것 같다. 교육 참여 예술 분야로 가는 정해진 경로가 없기 때문에, 내가 교육 참여 예술을 알게 된 과정을 밝히는 것이 도움이 될 듯해서다. 나는 원래 연극 학교에서 연극을 전공한 후 성실히 연극 활동을 하는 연극인, 일주일에 여덟 차례나 치러 내야 하는 공연을 끔찍해하는 배우로 살았다. 1970년대 말 나는 막연한 호기심으로 링컨센터 예술 교육원에서 연극계의 교육 참여 예술가로 일하기 시작했다. 그곳에서 미적 교육이라 불리는 접근법을 배웠다. 나는 이 일에 매료되어 적극적으로 뛰어들었다. 예술 교육을 공부하면서 온갖 종류의 일을 맡아 했고, 프로젝트를 시작했으며 많은 단체들과 함께 작업하고 글을 쓰고 대화를 나누고 실험도 했다. 1980년대 초부터는 교육 참여 예술가 연수 프로그램을 시작했고 계속해서 교육 참여 예술가로서 내 일의 범위를 확장해 왔다. 열정을 가지고 일을 할 때면 늘 그렇듯이 일은 일로 이어졌다. 내가 종사해 온 예술 교육은 대부분 전국적 콘퍼런스와 대규모 단체들과의 작업이고 최근 몇 년 동안에는 연설도 하게 되었지만, 나는 여전히 교실의 학생들, 현장의 교육 참여 예술가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매년 교육 참여 예술가의 일을 깊이 생각하는 일을 빠뜨리지 않도록 유념하고 있다. 현장에서의 실천이야말로 예술 교육이라는 연금술의 중심을 차지하는 〈현자의 돌〉이기 때문이다. 1년 중 수많은 시간을 도로 위에서 보내다 보면, 연극 리허설을 하고 공연을 준비하는 일이 힘에 부치는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나는 매주 시 한 편을 완성한다. 무슨 일이 있어도 창작이라는 내 본연의 임무를 잊지 않기 위한 나만의 방편이다. 내가 이끄는 모든 프로젝트와 행사들은 이 책에서 여러분이 알게 될 원칙에 늘 기반을 두고 있다. 이 책에 제시한 사례들은 음악과 관련된 것이 많지만 이 원칙들만큼은 모든 예술 교육에 예외 없이 적용된다.
얼마 전 나는 『포춘』지가 선정한 500대 기업의 이사들을 위한 한나절짜리 워크숍을 주관했다. 〈예술과 별개의 창의성〉이라는 주제의 워크숍이었다. 서글픈 현실이지만 미국의 주류 사회는 창조와 창의성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예술은 자신들이 생각하는 창의성과 전혀 무관하다고 생각한다. 재계가 내게 요청하는 가장 흔한 워크숍이나 연설은 바로 이러한 인식의 격차를 주제로 한 것들이다. 이 경우 내가 해야 하는 일은 워크숍에 참가하거나 연설을 듣는 청중들의 인식 격차를 좁히는 것이다. 단 이때 방식은 창의력과 예술 간의 내재적 연관성을 스스로 발견할 때까지 예술이라는 문제를 직접 언급하지 않으면서 이들의 인식을 교정하는 것이어야 한다. 나는 교육 참여 예술가로서의 내 기량을 이용하여 예술 같은 가볍고 모호한 문제에 근무 시간을 쓰는 것은 낭비라는 이들의 편견을 뚫고 들어가 이들이 소중한 한나절을 투자한 것이 결코 아깝지 않도록, 창조성이 무엇인지 확실히 깨닫게 한다. 워크숍 당일 우리는 짧지만 재미있는 낱말 게임을 벌였다. 낱말 게임이란 참가자들에게 낱말의 목록을 주고 단계별로 수정하게 하는 것이다. 참가자들은 단계마다 내가 간략히 설명하는 지침에 맞추어 낱말 목록을 여러 차례 수정했다. 드디어 마지막 단계의 지침을 내리는 순간이 왔다. 참가자들 각자가 과거에 겪었던 중요한 경험에 따라 낱말을 수정하라는 지침이었다. 이 마지막 단계의 지침을 수행하는 단계 중반쯤에서 참가자들은 깨달았다. 자신들이 〈시〉 비슷한 것을 짓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그러나 너무 늦었다! 이들은 이미 창작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들은 자신의 시를 완성해서 다른 참가자들과 돌려 보고 비교하며 나에게 가장 잘 쓴 시를 골라 달라고 했다. 결국 우리는 좋은 시를 골라내기 위해 평가의 규칙을 마련해야 했다. 시들은 모두 아름다운 예술 작품이었다. 예술과 창조를 별개로 생각하는 편견을 교정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이들에게 필요했던 바였다. 이 모든 것은 교육 참여 예술가로서의 나의 기술에서 나온 것이었다.
나는 오랜 동료 에드워드 빌러스Edward Bilous(작곡가이자 줄리아드 음악 문헌 정보학과[4] 학과장이다)와 함께 줄리아드 음대의 예술 및 교육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1994년과 1995년의 모스 펠로우십Morse Fellow-ship과 연계된 프로그램이었다. 이 프로그램은 두 가지 과정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하나는 학점 이수 과목을 통해 일선학교 학생들을 위한 음악 수업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1년짜리 과정, 또 하나는 모스 펠로우 자격으로 뉴욕 시 두 곳의 학교에서 1년 혹은 그 이상 동안 꾸준히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개발 프로그램을 실행할 수 있는 실습 과정이었다. 나는 음악적 배경이 거의 없고 악보도 읽을 줄 모르며 읽는 법을 배워 본 적도 없다. 줄리아드 음대는 내가 음악계의 교육 참여 예술가에 대한 훈련을 연구했던 최초의 기관이었다. 당시까지 내가 예술 교육을 가르쳤던 분야는 내 전공 분야인 연극이나 아니면 여러 예술이 혼합된 분야뿐이었다. 음대에서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주관하던 시간들은 내게 음악가들을 예술 교육 분야로 끌어들이는 방안 ─ 그리고 끌어들이지 말아야 할 사람들을 끌어들이지 않는 방안까지! ─ 을 탐색할 뜻깊은 기회였다.
나는 이제 수백 회의 연수 프로그램을 주관해 오면서 수천 명의 음악가들, 수백 명의 앙상블 연주자들, 미국 최고의 오케스트라 연주자들과 만났고 함께 일했다. 나이트 재단의 매직 오브 뮤직 프로그램Magic of Music Program과 멜런 재단의 오케스트라 포럼Orchestra Forum을 통해 유수의 오케스트라 팀들과도 함께 일했다. 지난 10년 동안은 뉴욕 필하모닉 소속 교육 참여 예술가들의 전문성 개발 프로그램을 이끌었다. 이들 중 다수는 내가 줄리아드 음대에서 만들었던 교육 참여 예술가 양성 과정을 이수했던 졸업생들로서 현재 음악가이자 교육 참여 예술가로 활동하고 있다. 그중에는 12년 동안 나와 함께 예술 교육 일을 해온 사람들도 있다. 재능과 역량이 뛰어난 사람들을 12년 동안이나 가르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동시에 무서운 일인지) 상상할 수 있겠는가? 그 덕에 나는 우리가 좋아하는 예술 교육 분야를 더욱 깊이 연구할 수 있는 추진력을 얻었다. 나와 오랜 세월을 함께해 온 제자들이 선생인 나에게 큰 가르침을 주었고, 그 덕에 이 책을 쓸 수 있게 되었다. 이것이 내가 이름을 넣은 분들과 다른 분들 뿐 아니라 그들에게도 이 책을 바치는 이유이다(나의 제자 중 하나인 데이비드 월리스는 이 책의 26장인 〈청중 참여 연주회〉 편의 공저자이기도 하다. 그의 저서 『손을 뻗다: 관객과 소통하는 공연에 대한 음악가 가이드Reaching Out: A Musician’s Guide to Interactive Performance』를 읽어 볼 것을 적극 추천한다). 예술 교육 분야에서 일을 했던 30년간의 경험은 내게 효력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이 무엇인지 가르쳐 주었고, 이 책에는 그에 대한 지식이 담겨 있다.
여러 해 동안 온갖 분야의 교육 참여 예술가들과 작업을 해오면서 나는 어떤 교육이 가장 어렵고 가장 쉬운지, 가장 접근이 용이한지, 가장 재미있는지를 놓고 끝없는 논쟁이 벌어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나는 이 문제에 관해 어떤 사견도 제시하지 않는 것이 현명한 처사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 지면만큼은 내 의견을 솔직히 표현하기 적합한 장소 같다. 음악계의 교육 참여 예술가들, 즉 음악을 가르치는 예술가들이야말로 가장 수요가 많으면서도 가장 찾기 힘든 전문가다.
지난 몇 달 동안 다섯 개 도시에서 예술 교육자들과 나눈 이야기들은 다 동일하다. 음악 예술 교육 프로그램을 확장하고 싶지만 이 일을 해낼 만큼 유능한 음악 교육 예술가들을 찾지 못해 결국 포기하거나 규모를 줄여야 한다는 이야기다. 음악은 이야기로 풀어내기 가장 어려운 예술 형식이다. 음악 예술 교육에 관한 것들은 개발하기가 가장 힘들다. 음악 예술 교육이 음악가들을 훈련시켜 온 지배적 방식과 너무 달라서이기도 하고, 또 음악이라는 분야의 전통 자체와 상반되기 때문이기도 하다. 앞으로 여러 장에서 살피게 되겠지만 음악계의 훌륭한 교육 참여 예술가가 되려면, 먼저 전통적인 사고방식과 음악가들이 선호해 온 습관적 태도, 그리고 의심 없이 수용되어 왔던 전문가적 규범에 의문을 제기해야 한다. 나는 음악 분야에서 이어져 내려온 전통과 음악 예술 교육 사이의 대치 국면이 건강할 뿐 아니라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러한 대치 국면이 배우나 무용가보다 음악가의 일을 더 힘들게 한다는 것만큼은 사실이다. 화가들과 작가들과 미디어 예술가들도 자신의 분야에서 마주치는 난제들을 갖고 있다. 그러나 이 책의 중심 주제는 탁월한 현장 전문가에 대한 수요가 상당히 많은 환경에서 커다란 잠재력을 갖고 음악으로 고군분투하고 있는 음악가들이다.
나는 교육 참여 예술가의 정확한 정의가 불가능하다는 말로 서문을 열었다. 이제 그 불가능한 질문으로 다시 돌아가자. 예술 교육은 예술이라는 동사를 즉석에서 보여 주는 일이다. 교육 참여 예술가가 하는 일을 정의하려고 노력하는 종류의 성찰 또한 마찬가지다. 아래 소개하는 내용은 탁월한 교육 참여 예술가인 내 동료 8명이 예술이라는 동사를 즉석에서 보여 준 결과물이다. 모두들 현직 교육 참여 예술가들이거나 과거에 교육 참여 예술가로 일했던 전문가들이다. 2003년 나는 이들에게 교육 참여 예술가의 정의를 내려 달라고 부탁했고 이들은 다음과 같은 답을 주었다.
교육 참여 예술가는 현직 예술가로 교육을 겸하는 사람이다. 교육 참여 예술가가 되는 데 교육 분야의 학위가 꼭 필요한 것은 아니다. 학위가 있는 사람도 있고 없는 사람도 있다. 교육 참여 예술가들은 생활 방식과 단련, 기량의 역할 모델이다. 이들은 사유하는 방식,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 그리고 존재의 방식에 관한 구전과 경험의 전통을 후세대 교육 참여 예술가들에게 전수한다. 이들은 교육자들이다. 교육이라는 낱말(〈교육하다educate〉라는 낱말은 〈끌어내다〉라는 어원을 갖고 있다)이 지니고 있는 가장 참된 의미로 이들은 〈주입하기〉보다 〈끌어낸다〉. 이들은 창의력의 안내자이자 조력자이며 교량이다. 교육 참여 예술가는 사회 활동가다.
─ 티나 라파듈라Tina LaPadula,
시애틀 아츠 콥스의 교육 참여 예술가
교육 참여 예술가는 예술의 번역자이다. 이들의 주요 책무는 자신이 지닌 예술 형식의 언어와 규칙, 개념, 전략, 과정을 이용하여 타인의 개인적, 집단적 예술 경험을 의미 있는 경험으로 바꾸어 주는 것이다.
─ 리처드 버로스,
로스앤젤레스 통합 학군의 교육 참여 예술가
교육 참여 예술가는 특정 예술 형식에 몰입해 있는(그 속에서 살고 사유하는) 현직 예술가이다. 그리고 자신의 예술을 학교의 학생들과 교사들과 공유하기 위해 상당한 노력을 기울여 온 사람들이다.
─ 주디스 힐Judith Hill, 음악 교육 예술가
교육 참여 예술가는 하나 혹은 그 이상의 예술 분야에 대한 전문성을 갖고, 예술을 습득하는 기량과 관련 지식을 촉진시키기 위해 학생들, 교사들, 다른 전문가들과 함께 일하며 얻은 지식과 경험으로 전문성을 보완하는 사람이다.
─ 리처드 벨Richard Bell,
내셔널 영 오디언스의 교육 참여 예술가
교육 참여 예술가란 현업 전문 예술인으로서, 현업 예술인의 정의에 교육과 배움의 발전이라는 목표를 지닌 교사들과의 협업을 포함시키도록 예술의 범위를 확장시키는 사람이다. 교육 참여 예술가는 이 목표를 이루기 위해 다양한 활동을 기획하여 제공한다. 이러한 활동들은 학생들이 예술 활동을 매개로 기량을 숙련하고 예술의 사회·역사적 맥락을 알도록 인도하는 커리큘럼을 지향한다.
─ 대니얼 윈덤Daniel Windham,
월리스 재단의 교육 참여 예술가
교육 참여 예술가란 학습자들이 자신만의 배움의 미학을 의식적으로 개발하도록 능동적으로 돕는 예술가이다.
─ 아널드 에이프릴
시카고 예술 교육 파트너십의 교육 참여 예술가
예술가가 자신의 작품을 통해 〈가르칠 때〉(여기서 가르친다는 것은 정보를 준다는 뜻이 아니라 가능성을 연다는 뜻이다) 예술이 만들어진다. 이러한 가르침은 현직 예술가가 1차적인 단선적 모형에 맞는 예술 창작의 요소들을 깨뜨리는 데 동의한다는 뜻이며, 이 말은 예술이 가르친 결과물이 아니라 가르치는 과정 자체임을 의미한다. 다른 한편으로 현직 예술가가 자신의 예술 창작을 심오하고 충만하게 하는 미적, 독창적 소통 방식을 개발해 낼 때 비로소 교육 참여 예술가의 진정한 잠재성이 실현된다. 교육 참여 예술가는 예술에 관해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예술적으로 가르친다. 예술적으로 가르친다는 것은 예술가가 학습자 및 환경과 연계를 맺는 방식으로 존재한다는 뜻이다.
─ 린다 듀크Linda Duke,
크래너트 미술관의 교육 참여 예술가
교육 참여 예술가는 예술 작품을 만드는 일과 보는 일에 내재된 창조와 지각, 성찰 과정에 광범위하게 참여하고 이를 깊이 성찰하는 예술가이자, 타인들이 예술 작품을 만들고 예술 작품을 이해하고 예술과 인생 간의 연계를 성찰하는 일을 안내함으로써 자신의 성찰을 행동으로 옮기는 데 전념하는 예술가이다. (……) 교육 참여 예술가는 학습자를 자신의 이미지에 맞게 고치려 하는 대신, 학습자가 현재 자신의 모습을 뛰어넘도록 지원하는 사람이다.
─ 크리스틴 굿하트Christine Goodheart,
예술 교육 컨설턴트
결론을 내리기 위해서는 출발점으로 돌아가야 한다. 어원상 〈예술art〉이라는 낱말은 인도-유럽어의 〈만들다〉라는 낱말에서, 〈가르치다teach〉라는 단어는 그리스어의 〈보여 주다〉라는 낱말에서 파생된 것이다. 따라서 교육 참여 예술가라는 용어는 두 개의 동사에서 태어난 셈이다(교육 참여 예술가가 하는 일은 정보보다는 창조를 다루고 있기 때문에 그야말로 적절한 조합이라고 할 수 있다). 결국 교육 참여 예술가라는 낱말은 〈만드는 방법을 보여 주는 사람〉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자, 이제 음악의 새로운 미래를 만들어 보자.
예술은 인간의 역사가 시작된 지 둘째 날 나타나, 영겁 혹은 그 이상의 세월 동안 지속되어 왔다. 그 긴 세월 동안 본디 ─ 음악과 춤, 미술과 연극 ─ 네 개 분야로 이루어져 있던 예술은 각각 고유한 방식으로 진화해 왔다. 그 시절 이후 예술의 세계에 신참으로 들어온 유일한 분야는 문학이다. 나는 곧잘 예술 교육을 여섯 번째 예술 혹은 각 예술 분야의 격차를 좁혀 주는 소통의 예술이라 부른다.
예술은 구두 전승과 길드의 전통 속에서 진화해 왔다. 예술이 전문적 표현 양식이 된 것은 최근 몇 백 년 사이의 일이다. 예술이 전문화되면서 형식을 갖춘, 제도화된 훈련이 생겨났다. 물론 아직도 수많은 〈아마추어〉 음악과 미술, 그리고 〈민속〉 음악과 〈민속〉 미술은 구전 전통 내에서 번영을 구가하고 있다. 예술 교육은 짧은 역사 속에서 현직 예술가들 사이에서 전승되어 왔다. 1980년대와 1990년대 교육 참여 예술가들의 숫자가 증가하면서 더 많은 교육과 고용 기회가 창출되었다. 21세기에 들어서면서 〈예술 교육의 전문화〉라 불리는 새로운 경향이 나타났다. 그러나 전문화라고 부르는 것은 좀 과장이다. 현실이라기보다 비전에 가깝기 때문이다. 예술 교육 분야는 여전히 조직 체계가 산만하고 개별적이며 정의도 충분히 되어 있지 않다. 심지어 이 분야로 들어가는 명료한 경로도 없고, 내부에는 단일한 분야로서의 방침도 존재하지 않는다. 예술 교육의 질이 떨어지지 않도록 지키는 문지기들은 있지만 이들은 대부분 일자리를 제공하는 특정 단체, 그리고 공식적 직원 명단이 있는 주나 지역의 예술 위원회 직원들이다. 교육의 질을 결정할 때도 유관 단체나 대행 기관들 사이에 합의를 보는 일은 거의 없다. 예술 교육 분야로 새로 진입하는 사람들은 대개 진퇴양난의 상황에 처하게 된다. 교육 참여 예술가로 단체에서 일자리를 구하려면 경력이 필요한데 막상 그런 단체에 고용되지 않고서는 경력을 쌓을 길이 없기 때문이다.
분야를 정의하는 표준적 관점에서 보자면 예술 교육은 이제 막 단일한 분야가 되어 가고 있는 중이다. 현재 동종 직종에 종사하는 이들이 검토하는 전문 저널이 있고, 점점 더 많은 음악 학교들과 음악 대학들이 교육 참여 예술가의 전문적 기술을 개발하는 과목을 제공하고 있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