곤도 후미에 近藤史惠
1969년 오사카에서 태어나 유치원생 때부터 스스로 책을 찾아 읽을 정도로 책 읽기를 좋아했다. 인형 놀이를 하면서 이야기를 만든 것을 시작으로 고등학생 때는 친구와 교환 소설을 쓰기도 했다. 이때부터 말의 아름다움과 화려함이 극대화된 가부키에 심취하여 오사카 예술대학 문예학과에 입학해 가부키를 연구했다. 졸업 후에도 가부키 연구를 계속할 생각으로 가벼운 아르바이트를 했으나 일이 너무 지루한 나머지, 기분 전환상 쓴 『얼어붙은 섬』이 제4회 아유카와 데쓰야상(1993년)을 수상하면서 화려하게 작가의 길로 들어섰다. 그 후 가부키를 소재로 한 『잠자는 쥐』, 『사쿠라 아가씨』, 『도조지 이인무』 등의 소설을 썼다. 그리고 맛있는 음식에 얽힌 미스터리 시리즈 『타르트 타탱의 꿈』, 『뱅 쇼를 당신에게』, 『마카롱은 마카롱』과, 에도시대의 정취가 묻은 시대 미스터리 ‘사루와카초 사건 수첩’ 시리즈 등을 썼다. 자전거 로드레이스 배경의 청춘 미스터리 『새크리파이스』로 2008년 제10회 오야부 하루히코상을 수상했고, 이 작품은 제5회 서점대상 2위에 선정되기도 했다.
평소 동물 애호가로 유명한 곤도 후미에는 “관심 있는 것을 쓰는 게 가장 재미있다”며 경찰견 셰퍼드를 주인공으로 한 온화한 코지 미스터리 『샤를로트의 우울』(2016년)을 발표했다.
그녀의 작품들은 난해한 트릭이나 반전을 내세운 미스터리가 아닌 사건에 얽힌 독특한 인물들의 심리로 사건을 해결하여 ‘읽고 나면 마음이 따뜻해지는 미스터리’라는 평을 주로 듣는다.
그녀는 현재 태어나고 자란 오사카에서 검정 푸들을 키우며 살고 있다.
옮긴이 박재현
1971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상명대 일어일문학과를 졸업하고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 외국어 전문학교 일한 통번역학과 졸업 후 일본도서 저작권 에이전트로 활약했다. 현재는 출판 기획 및 전문 번역가로 활동 중이다. 옮긴 책으로는 『니체의 말』 『괴테의 말』 『아들러 심리학을 읽는 밤』 『버텨내는 용기』 『배움은 어리석을수록 좋다』 『마을을 지켜라』 『울지 않는 새는 하늘에 빠진다』 『고충증』 『녹스머신』 『토막 난 시체의 밤』 등 이 있다.
CHARLOTTE NO YUUTSU
ⓒ Kondo Fumie, 2016
All rights reserved.
Original Japanese edition published by Kobunsha Co., Ltd.
Korean publishing rights arranged with Kobunsha Co., Ltd.
through BC Agency, Seo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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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ents
샤를로트의 우울
샤를로트의 친구
샤를로트의 남자 친구
샤를로트와 고양이 집회
샤를로트와 사나운 개
샤를로트의 집 지키기
옮긴이의 말
문고리를 잡는 순간,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평소와는 뭔가 다른 느낌. 가끔 이럴 때가 있지만 대개는 그저 기분 탓이거니 한다.
그러나 그날의 느낌을 또렷이 기억하는 건 예감이 빗나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문을 열자, 평소 현관에서 기다리는 샤를로트가 보이지 않았다.
혼자 집 지키는 게 싫어서 애처롭게 낑낑거리며 우리를 배웅하고, 돌아오면 뒷발로 서서 미친 듯이 기뻐 날뛰는 그 아이가 말이다.
나는 소리 높여 아이를 불렀다.
“샤를로트!”
고스케가 불안한 듯 중얼거렸다.
“무슨 일이지?”
내가 부츠를 벗는 동안 고스케가 앞서 현관을 지나 거실 문을 열었다.
그가 숨을 삼켰다.
“왜 그래? 고스케.”
그의 어깨 너머로 거실을 들여다보고서야 왜 그런지 알았다. 집 안의 모든 게 뒤죽박죽 헝클어져 있었다.
유리 절단기로 잘린 창. 바닥에는 흙 묻은 발자국이 여럿 찍혀 있었다. 서랍은 죄다 열려 있었고, 서랍 안의 것들이 모조리 밖으로 나와 있었다.
나는 비명을 지르듯 아이의 이름을 불렀다.
“샤를로트!”
우리가 샤를로트와 함께 살기 시작한 것은 2년 전부터였다.
당시 나는 두 번째 불임 치료에 실패했다. 너무 울어서 눈이 퉁퉁 부은 내게 고스케가 말했다.
“마스미. 우리 개를 키워볼까? 아이는 차차 생길 때까지 기다리고.”
애당초 아이를 원했던 것은 나다. 고스케도 아이를 좋아하지만 나만큼 집착하지는 않는다.
개라……. 그 제안에 분명 마음이 흔들렸다. 우리가 사는 집은 작지만 마당이 있는 단독주택이어서 개를 키우는 데는 어려움이 없다. 단지 ‘당장 그러자’고 말하지 못한 건 이제껏 개를 키워본 적도, 만져본 적도 없기 때문이었다.
고스케는 예전에 집에서 개를 키웠다. 그래서 이 제안에 신이 나 있었다.
“그래, 개를 키우자. 휴일에는 차에 태워 함께 바다에 가는 거야. 도그런(개 전용 운동장-역주)에서 공 던지기를 하고 매일 산책도 하고.”
“너무 큰 개는 싫어.”
“그래도 치와와나 토이푸들 같은 건 내가 싫은데.”
그런 작은 아이라면 그래도 키울 수 있겠다 싶었는데, 그는 저렇게 말했다.
“사실 래브라도나 골든레트리버가 좋은데…… 대형견이 싫으면 시바견이나 비글은 어때? 굳이 혈통 있는 순종을 고집할 필요 없이 잡종이라도.”
그건 동감이었다. 잡종견은 매우 귀엽다. 여하튼 복슬복슬한 강아지는 보기만 해도 저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그런데 그러기로 했어도 잡종 강아지를 어디서 어떻게 분양받는지는 몰랐다. 치와와나 닥스훈트라면 애완견 숍에서 팔지만, 대체 어디서 찾아야 할까?
고스케가 개를 좋아하는 삼촌에게 물어보기로 했다.
집에 놀러 온 삼촌은 우리가 개를 구한다는 얘기를 듣고 눈을 반짝였다.
“셰퍼드를 키워보는 거 어때?”
우리는 서로의 얼굴을 보았다.
“힘들어요. 저도 마스미도 개에 관해서는 초보인걸요. 그런 어려운 개는 못 키워요.”
고스케가 먼저 그렇게 말해주어 가슴을 쓸어내렸다.
“초보라서 권하는 거야. 실은 경찰견을 은퇴하는 아이가 있는데, 가정집에서 사랑으로 돌봐줄 사람을 찾고 있어. 경찰견이라서 대소변도 잘 가리고, 참을 줄도 알고. 가장 힘든 게 강아지를 훈련시키는 거야. 그러니 너희는 이미 훈련받은 성견을 키우는 게 좋아.”
경찰견이었다니 틀림없이 똑똑하겠지. 조금 마음이 움직였다.
“여러 건의 어려운 문제를 해결한 암캐인데, 이제 은퇴시키기로 했대.”
“그럼 노견인가요?”
“아니, 아직 네 살이야. 고관절에 장애가 생겨서 수술을 받았어. 그래도 평범하게 산책할 수 있어서 반려견으로 키우는 데는 문제없어.”
삼촌은 그 아이를 키우고 싶어 안달 난 것 같았다.
그러나 삼촌 댁에는 이미 보더 콜리가 세 마리나 있었다. 거기에 한 마리 더 키우는 건 무리라고 판단한 모양이다.
“게다가 너희는 맞벌이라 개를 혼자 남겨두는 시간도 길지. 그걸 봐도 성견이 낫지.”
사실 홀로 집을 지키게 하는 게 마음에 걸렸다.
“한번 만나보는 거 어때? 그래서 싫으면 거절하면 되지.”
왠지 마음이 설렜다. 삼촌이 말한 대로, 직접 보고 나서 결정하면 된다. 나는 삼촌에게 말했다.
“그럼, 만나볼게요.”
대형견을 싫어하던 나의 달라진 태도에 고스케가 놀랐다.
샤를로트는 임시로 보호 중인 어느 노부부의 집에 있었다.
툇마루에 누워서 질겅질겅 부드러운 헝겊 인형을 깨물고 있었다. 우리를 보고는 조심스럽게 꼬리를 흔들었다.
암캐라고 들었는데 그 모습을 보니 그런 듯했다.
거기에 있는 건 귀여운 여자아이였다. 개를 키워본 적 없는 내게는 셰퍼드라면 씩씩하고 용맹스럽다는 인상밖에 없었다.
개는 우리를 보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이 사람들은 손님일까, 아니면 새로운 가족이 될 사람들일까’ 하고.
그 순간부터 나는 사랑에 빠지고 말았다.
나는 샤를로트의 빼곡하게 난 털을 살며시 쓰다듬으며 말했다.
“내가 엄마가 되어줄까?”
샤를로트는 대개 착했지만, 때때로 나쁜 아이였다.
삼촌이 말한 것처럼 훈련이 잘돼 있었다. 산책을 나가도 내 곁에 착 붙어 보폭에 맞춰 걸었다.
처음에는 무서워하던 사람도 곧 샤를로트의 영리함에 놀랐다.
하지만 영리하다는 건 교활한 짓도 금방 배운다는 뜻이기도 했다.
샤를로트는 곧 알아챘다. 이 집에서는 경찰견 때처럼 모든 지시를 지키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차에서 내려 도그런까지 데려가 목줄을 풀어주자 자유로워진 샤를로트는 기쁜 듯 깡충깡충 뛰었다. 공을 던지면 온몸으로 기쁨을 표현하며 공을 가지러 달려갔다가 우리에게 가져왔다.
덩치는 커도 개치고는 겁이 많아서 친한 아이에게는 먼저 다가가 인사하지만, 으르렁거리거나 짖기라도 하면 한달음에 도망쳤다.
작은 토이푸들이 컹 하고 짖는 순간, 깽 하고 비명을 지른 적도 있다.
셰퍼드는 당연히 늠름할 거라 생각했기 때문에 나와 고스케는 배를 잡고 웃었다. 겁 많은 점이 오히려 우리 같은 초보 주인에게는 참으로 다행이었다. 대형견은 도그런에서 가해자가 될 가능성이 높다. 만일 반격하는 아이였다면 한층 더 주의를 기울여야 했을 것이다.
그런데 집으로 돌아올 때가 가장 문제였다.
“샤를로트, 이리 와!”
그렇게 불러 돌아온 건 처음 몇 번뿐이었다.
샤를로트는 곧 못 들은 척하는 걸 배웠다. 부르면 일부러 멀어져 친해진 개에게 놀자고 꾀고는 했다.
두 번, 세 번 불러도 못 들은 척했다.
“샤를로트!”
고스케가 날카로운 목소리로 부르며 달려가면 꼬리를 말고 귀를 뒤로 당기면서 난처한 얼굴로 올려다보았다.
— 화내지 마요, 화내지 말아요.
그런 얼굴을 하면 도저히 화낼 수가 없었다. 우리는 쓴웃음을 지으며 샤를로트를 데리고 돌아왔다.
집에 있을 때도 잘 그랬다.
평소에는 매우 얌전해서 소파에서 꾸벅꾸벅 졸거나 창밖 마당을 바라보는 일이 많았지만, 때때로 깜짝 놀랄 만한 장난을 치기도 했다.
외출했다가 돌아오면 쿠션이 찢어져 솜이 거실 가득 널려 있거나, 소파의 가죽이 찢겨 너덜너덜할 때도 있었다.
그럴 때 샤를로트는 대개 테이블 밑에 숨어 있었다.
찢어진 쿠션에 손을 가져가면 커다란 몸을 움츠리고 코로 낑낑거렸다.
— 미안해요. 망가뜨릴 생각은 없었는데…… 놀다 보니 그렇게 됐어요.
납죽 귀를 눕히고 우리의 얼굴을 올려다봤다. 그러곤 테이블 밑에서 얼굴을 내밀어 우리의 입가를 핥았다.
어느 날에는 방에 장난친 흔적도 없는데 샤를로트가 테이블 밑에 숨어 있었다.
온 방 안을 샅샅이 뒤지고 나서야 형체를 알 수 없을 정도로 너덜너덜해진 내 모자를 발견했다.
자기 장난감이나 헝겊 인형을 망가뜨렸을 때는 이렇게 숨지 않는 걸 보면, 샤를로트는 해도 되는 일과 해선 안 되는 일을 분명히 아는 것 같다.
역시 우리가 미숙한 주인인 걸까?
우리는 샤를로트의 장난이나 잔꾀를 잘 받아주었다. ‘이 아이는 지금껏 혹독한 훈련을 견디고 사람을 위해 최선을 다해 살아왔으니 이제 조금은 게으름을 피우고 나쁜 짓을 해도 된다’고 생각한 것이다.
무엇보다, 샤를로트는 용서받을 수 있는 일과 그렇지 않은 일을 잘 알았다. 도그런에서는 장난을 쳤지만 길가를 걸을 때는 내 곁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장난을 치기는 하지만 사람에게 이빨을 드러내거나 하지는 않았다. 동물 병원의 진찰대 위에서도 놀랄 만큼 얌전했다.
그런 걸 보면 샤를로트는 확실히 잘 훈련받은 개였다. 평소 거의 짖지 않았는데, 가끔 자지러지게 짖을 때가 있었다.
처음 그렇게 짖은 건 샤를로트가 우리 집에 온 지 불과 3개월밖에 안 됐을 때다.
금요일 늦은 오후, 그날 나는 감기로 회사를 쉬고 위층 침대에서 잠들어 있었다.
장차 아이가 생길 때를 대비해 샤를로트는 2층 침실에 들어오지 못하게 했다.
깜빡 잠이 들었을 때 개 짖는 소리가 들렸다.
처음에는 샤를로트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지금껏 짖은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짖는 소리가 뜻밖에 가까웠다. 나는 지끈거리는 머리를 누르면서 가운을 걸치고 아래로 내려왔다.
샤를로트는 창가에서 맹렬히 짖고 있었다. 용수철처럼 몸을 튕기면서 창밖을 향해.
“샤를로트, 조용.”
그렇게 꾸짖자 샤를로트는 입을 다물었다. 그러나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 없다는 듯 곧 다시 짖기 시작했다.
“안 돼!”
단호히 꾸짖자 다시 잠자코 있었다. 분하다는 눈초리로 나를 올려다보았다.
— 왜 알아주지 않아요?
무슨 이유가 있어서 짖는 것 같은데, 그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그저 샤를로트는 애가 타는 듯 필사적으로 무언가를 전하려고 했다.
당황스러웠지만, 나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여러 차례 꾸짖자 샤를로트는 포기하고 자신이 좋아하는 수건이 깔린 잠자리로 가서 납죽 엎드렸다.
주눅 든 얼굴로 나를 올려다보았다.
왠지 그 표정이 마음에 걸렸다. 하지만 더 이상 짖지 않기에 마음을 놓고 2층으로 올라갔다.
아무리 단독주택이라도 큰 개가 짖으면 제법 시끄럽다. 이웃에게 민폐다.
그런데 그날 밤 알게 되었다.
맞은편 빈집에 도둑이 들었다는 사실을.
그 뒤로는 샤를로트가 짖을 때마다 주위에 주의를 기울였다. 샤를로트가 짖는 데는 다 이유가 있으니까.
다음에 짖은 건 늦은 밤이었다. 고스케가 밖으로 나가보니 한 집 건너 옆집에서 희미하게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고스케는 인터폰을 눌러 집주인을 깨웠다.
아무래도 그 집 남자가 담뱃불을 켜둔 채 잠이 들어 이부자리를 태운 것 같았다.
샤를로트가 짖지 않았다면 큰일이 벌어질 뻔했다.
맞은편 집 노인을 붙들고 주택 수리업자가 집요하게 강요하여 현관에서 입씨름을 벌이고 있을 때도 샤를로트는 짖어댔다. 샤를로트가 짖는 소리를 듣고 밖으로 나온 이웃 주민이 그 업자를 쫓아냈다.
가장 최근에 있었던 사건은 우리 부부가 집을 비웠을 때 일어났다.
그 무렵에는 샤를로트의 영특함을 인근 주민들도 다 알게 되었다. 샤를로트가 짖는 소리를 듣고 옆집 아주머니가 밖으로 나와 보니 우리 집 마당에 어떤 낯선 남자가 들어와 있었다고 한다.
아주머니가 비명을 질러서 남자는 도망쳤다. 자칫하면 큰일이 될 뻔한 사건이었다.
함께 생활하며 보니 어눌한 데도 있는 샤를로트였지만, 그런 일이 있을 때마다 생각했다.
이 아이는 우수한 경찰견이었다고. 그리고 이런 믿음직스러운 아이와 함께 지내게 된 데 감사했다.
우리는 샤를로트만 있다면 안심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 집은 엉망으로 헝클어져 있고 샤를로트는 없다. 나는 미친 듯이 가슴이 뛰는 걸 느끼며 샤를로트를 불렀다.
어쩌면 아이는 과감하게 도둑과 맞서 싸우다 죽임을 당했을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이 스치자 숨도 쉴 수 없었다.
어떤 것을 도둑맞아도 상관없다. 제발 아이만은 무사하기를.
“그대로 있는 게 좋겠어.”
고스케가 거실에 들어가려는 나를 말렸다.
“지금 경찰 부를게.”
“하지만…… 샤를로트가……”
내 목소리는 점점 높아졌다. 그때 고스케가 주위에 귀를 기울였다.
“쉿, 조용해봐.”
입을 다물자 2층에서 희미한 소리가 들렸다. 낑낑거리는 애절한 소리였다.
나는 당장 2층으로 달려 올라갔다. 침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침실은 거실만큼 헝클어지진 않았지만, 그래도 옷장이 다 열린 채로 안을 뒤진 흔적이 있었다.
“샤를로트!”
다시 낑낑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침대 밑을 들여다보았다.
빛나는 눈과 귀에 익은 숨소리. 온몸에 힘이 쭉 빠져 털썩 주저앉았다.
“샤를로트…… 다행이야.”
샤를로트는 천천히 나와서 몸을 낮추고 내 입을 살며시 핥았다.
경찰이 오자 샤를로트는 다시 침대 밑으로 숨었다. 무서운 생각이 들었던 걸지도 모른다.
경찰은 족적이나 지문을 채취했다. 다행히 도둑맞은 건 현금 5만 엔 정도로, 예금 통장이나 인감은 무사했다.
그런데 이웃의 탐문 수사를 마치고 돌아온 형사의 말을 듣고, 나는 깜짝 놀랐다.
“아무도 개 짖는 소리를 듣지 못했다고 하네요.”
경찰이 돌아가고 나서야 샤를로트는 2층에서 내려왔다. 소파에 앉은 내 무릎에 턱을 얹고 응석을 부렸다.
나는 샤를로트의 머리를 살며시 쓰다듬어주었다.
“무서웠어? 이젠 괜찮아.”
그러나 샤를로트가 왜 짖지 않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이전에는 집에 아무도 없으면 누가 들어오기만 해도 격렬히 짖었는데.
“아는 사람이었던 걸까?”
마음을 진정시키기 위해 홍차를 끓이면서 고스케가 중얼거렸다.
“그럼 왜 이렇게 겁먹고 있겠어?”
“그 뒤에 호된 일을 당했다거나……”
나는 주의 깊게 샤를로트의 발과 등, 머리를 살폈다. 빼곡하게 난 털을 가르고 살갗을 만졌다.
“다친 데는 없는 것 같아.”
“여하튼 샤를로트가 무사해서 다행이야.”
고스케의 말에 나도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샤를로트의 등을 쓰다듬었다.
“네가 말할 수 있으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 수 있을 텐데.”
샤를로트는 살짝 고개를 들어 내 입가를 핥았다.
그로부터 2개월 뒤의 어느 휴일이었다.
샤를로트는 햇볕이 쏟아지는 창가에 몸을 누였다. 때때로 잠꼬대처럼 소리를 내면서 앞발을 움직였다.
꿈이라도 꾸는 걸까.
나는 부엌에서 빵 반죽을 하고 있었다. 땀범벅이 되어서 반죽을 조리대에 치댔다. 피곤하지만 기분 전환이 되었다.
비록 큰 소리라도 익숙한 소리면 샤를로트는 놀라지 않았다. 그래서 태연히 잠자고 있었다.
텔레비전을 보던 고스케가 소리를 높였다.
“오, 제약 회사 사장 집에 들었던 강도와 공범자 모두 체포됐나 봐.”
3개월 전, 시내에 강도 사건이 있었다.
제약 회사 사장의 집에 3인조 남성이 숨어들어 현금과 귀금속 등 1천만 엔 상당의 금품을 훔쳐 달아났다.
그중 한 사람은 사건 당일에 잡혔지만, 나머지 두 사람은 여태 체포되지 않았다. 도둑맞은 물건도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
텔레비전을 보면서 고스케가 의외라는 듯 말했다.
“호오, 범인 중 한 사람은 전직 경찰이었대.”
“전직 경찰?”
잘 치댄 반죽을 그릇에 넣고 발효되기를 기다렸다.
“이전에 징계 면직된 경관 같아.”
“그래…… 현직이었다면 굉장한 스캔들이었을 텐데.”
현직이 아니라도 경찰에 비난의 화살이 쏟아질 테지만, 징계 면직된 사람이라면 변명의 여지는 조금 있었다.
인터폰이 울렸다. 나는 고스케에게 말했다.
“미안. 손에 밀가루가 묻어서 그런데, 좀 나가줄래?”
“아, 그래.”
인터폰 수화기를 든 고스케가 묘한 얼굴이 되었다.
“경찰인데, 두 달 전 일로 왔대.”
“그래?”
“일단 들어오라고 했어.”
고스케가 문을 열러 가는 동안에 나는 손을 씻었다.
소란스러운 기색을 느꼈던지 샤를로트가 거실을 나갔다. 조용한 방에서 계속 낮잠을 자려는 걸까.
형사 둘이 거실로 들어섰다. 그들에게 소파를 권하고 그 맞은편에 나와 고스케가 앉았다. 형사는 곧 이야기를 꺼냈다.
“댁에 들었던 빈집털이를 체포했습니다.”
“진짜요?”
도둑맞은 것은 현금뿐이라 돌려받을 수는 없겠지만, 역시 범인이 체포되었다니 마음이 놓였다.
그러나 이어진 형사의 말은 의외였다.
“뉴스 보셨습니까? 제약 회사 사장 집에 들었던 강도범이 이 집에도 들어왔었습니다.”
나와 고스케는 얼굴을 마주 보았다. 자산가의 집을 턴 범인이 어째서 우리 집을 표적으로 삼았는지 알 수 없었다.
우리의 의문을 알아차렸을까? 형사가 설명하기 시작했다.
“얘기가 좀 긴데요. 처음에 잡힌 범인은 나가오카라고 하는데, 그가 주범입니다. 훔친 물건을 갖고 오토바이로 도망쳤는데 그 모습이 목격된 지 두 시간 만에 체포됐습니다. 나머지 두 사람은 각자 흩어져 전차로 도망치는 바람에 수사망을 빠져나갔지요. 그런데 체포된 나가오카에게는 훔친 물건이 없었습니다.”
“그걸 둘 중 한 사람에게 넘겼다는 건가요?”
형사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저희도 그렇게 생각했는데 나머지 두 사람, 미야지와 기리무라를 잡고서야 알았습니다. 그들도 그걸 손에 넣지 못했단 걸요. 나가오카가 도망치는 중에 어딘가에 숨겼던 겁니다.”
형사는 손깍지를 끼면서 이야기를 이어갔다.
“범위는 한정되어 있었습니다. 훔친 집에서 체포당한 지점까지 약 3킬로미터였거든요. 나가오카는 구치소에 있으니 연락을 취할 수 없고. 그래서 미야지가 생각해냈지요. 경찰견을 이용하면 찾을 수 있겠다고요. 그는 전직 경찰관이었거든요.”
나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댁이 비었을 때 숨어든 건 금품이 목적이 아니라, 개가 목적이었던 거죠.”
다시금 숨을 삼켰다.
“미야지는 이전에 댁의 개를 돌보던 조련사였답니다. 그래서 잘 다룰 수 있다고 생각한 모양입니다.”
그렇다면 샤를로트가 꼬리를 흔들며 다가가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 아니, 오히려 자연스럽다.
“그런데 댁의 개는 짖지도 않고 미야지가 불러도 나타나지 않았답니다. 두 분을 주인이라고 생각한 거겠죠.”
그게 아니라면, 미야지가 내뿜은 이상한 기운을 알아차린 걸까?
“만일 개가 짖었다면 미야지는 어떻게든 찾으려고 했겠지요. 그러나 소리조차 나지 않아서 포기했다고 하더군요. 개가 집에 없다고 생각했답니다.”
나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어쩌면 우리는 가장 소중한 보물을 도둑맞을 뻔했다.
“정말 똑똑한 개예요. 저희도 놀랐어요.”
형사는 그렇게 중얼거렸다.
형사가 돌아간 뒤, 샤를로트가 슬며시 거실로 들어왔다. 무언가를 말하고 싶다는 듯 내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나는 그 커다란 몸을 꼭 끌어안았다.
“다행이야. 네가 무사해서……”
나는 마음속으로 몇 번이고 되뇌었다. 내 곁에 있어줘서 고마워, 라고.
그로부터 일주일 뒤의 일이다.
둘이서 샤를로트를 산책시키고 있을 때였다. 고스케가 갑자기 말했다.
“아무래도 마음에 걸려.”
“어? 뭐가?”
“샤를로트 말이야. 샤를로트는 진짜로 거기까지 알았을까?”
나도 놀랐었다. 그러나 그렇다고밖에는 생각할 수 없었다.
“당신은 어떻게 생각해?”
“샤를로트의 명예를 위해서라면 그렇다고 해두는 게 좋겠지.”
“뭐야, 말해줘.”
고스케는 결심한 듯 고개를 끄덕이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샤를로트는 단순히 경찰이 싫었던 게 아닐까?”
“뭐?”
그럴 리 없다. 샤를로트는 경찰견이었다. 물론 혹독하게 훈련을 받았을 테지만, 그와 동시에 사랑도 듬뿍 받았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이토록 사랑스러운 개가 될 수 없다.
내가 그런 반론을 하자 고스케는 귀를 기울였다.
“맞아, 마스미가 말한 대로야. 그래서 싫다고 말하기는 했어도 미워하는 게 아니라, 뭐라고 말하면 좋을까…… ‘이제는 상관하고 싶지 않다’고 생각한 거라면?”
순간 알 것 같았다. 혹독한 훈련과 힘든 일.
낮잠 자고 놀기 좋아하는 샤를로트로서는 다신 돌아가고 싶지 않은 날들이리라.
“어쩌면 조련사였던 사람이 부르는 소리를 못 들은 척했을지도 몰라.”
도그런에서 우리가 불러도 못 들은 척했듯이.
“도둑이 든 날도 경찰이 돌아갈 때까지 샤를로트는 2층에서 내려오지 않았어. 그리고 일주일 전에 형사가 왔을 때도 거실에서 슬그머니 나갔고.”
분명 고스케가 말한 대로다.
“확인해볼까?”
내 말에 고스케는 눈을 부릅떴다.
“어떻게?”
“요 근처 파출소까지 가보는 거야.”
나는 샤를로트를 데리고 방향을 바꿔 파출소로 걸어갔다.
파출소가 보이자 샤를로트의 모습이 달라졌다. 안절부절못하고 발걸음이 느려졌다.
파출소 앞에 이르자 이번에는 반대로 발걸음이 빨라지며 서둘러 지나가려고 했다. 나는 걸음을 멈췄다.
“샤를로트, 멈춰.”
일단 지시에는 따랐지만 샤를로트는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귀가 납죽 눕고 꼬리를 말고 꺼리는 듯 뒷걸음질 쳤다. 이런 모습은 거의 보인 적이 없었다.
고스케와 나는 마주 보고 웃었다.
“정답이네.”
다시 발걸음을 내딛자 샤를로트는 꼬리를 쫑긋 세워 살랑살랑 흔들었다.
생각났다. 도둑이 든 날, 침대 아래서 나온 샤를로트의 얼굴은 나쁜 짓을 저지르고 혼나기 전의 바로 그 얼굴이었다.
나는 샤를로트의 목덜미를 톡톡 두드렸다.
“뻔뻔한 아이라도 사랑해. 샤를로트.”
샤를로트는 마치 웃는 듯한 얼굴로 나를 올려다보았다.
샤를로트가 실내견이라고 하면 많은 사람들이 화들짝 놀란다.
쫑긋 귀가 선 셰퍼드. 셰퍼드치고는 다소 몸집이 작지만, 그래도 체중이 25킬로그램이 넘는다.
공원에서 샤를로트를 보기만 해도 울음을 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