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리 베르그손은 1859년 10월 18일 파리에서 출생했다. 18세에 고등 사범 학교에 입학하고 22세에 철학 교수 자격 시험에 합격한 후 고등학교 교사로 근무하다가 1889년에 「의식에 직접 주어진 것들에 관한 시론」으로 박사 학위를 취득한다. 1896년에 『물질과 기억』을 출판한 후 1898년에 고등 사범 학교 전임 강사로 재직하고 1907년에 『창조적 진화』를 출판하며 국제적 명성을 얻게 된다. 제1차 세계 대전 발발 후에는 프랑스를 대표하는 외교 사절로서 전쟁 방지를 위해 활동하고 1922년부터 국제 연맹 산하의 지적 협력 위원회(유네스코의 전신) 의장으로 활동한다. 1932에는 전쟁과 인간 본성에 관한 윤리적 고찰인 『도덕과 종교의 두 원천』을 출판한다. 1941년 1월 3일 제2차 세계 대전 중 점령당한 파리에서 폐렴으로 사망한다.
베르그손의 철학은 두 측면을 갖는다. 하나는 고대 그리스 철학과 근대 자연 과학에 대한 반성과 비판에서 출발하여 서구 철학의 지성주의적 편향을 폭로하는 것으로, 베르그손은 이를 ‘공간적 사고’라고 부른다. 다른 하나는 실재의 본모습으로 회귀하여 직관적 사고를 통해 진정한 시간의 모습인 ‘지속’을 발견하는 것이다. 지속은 생성에 대한 베르그손적 명칭이다. 베르그손은 19세기 중반에 나타난 다윈의 진화론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았으나 이를 유물론적 과학주의의 입장에서 기계론적 우주론으로 발전시킨 스펜서의 철학에 반대하고 창조와 생성을 전면에 부각시키는 생명 형이상학을 수립한다. 프랑스 내에서는 내성적 방법을 강조하는 멘 드 비랑과 라베송의 유심론 철학의 계보를 잇고 있으나 창조와 생성의 형이상학이라는 거시적 관점에서는 베르그손 자신의 독창적 관점을 수립한다. 생성에 대한 강조는 ‘형상’이나 ‘실체’, ‘관념’과 같은 전통적인 실체주의의 태도를 역전시키는 것인 동시에 당시까지 진리의 모범으로 군림한 고전 물리학에 대한 반발이기도 하다. 베르그손은 고전 물리학의 기계론적 태도를 비판하지만 에너지 물리학이나 장이론 등 당대의 새로운 물리학에 대해서는 열린 태도를 보여 준다.
베르그손의 저서는 모두 당대 가장 논쟁적인 주제들과 씨름하면서 이루어진다. 물론 그것들은 사회, 정치적인 것이기보다는 학문적 논쟁과 관련된다. 그의 네 권의 주저 중에서 첫 저서인 『의식에 직접 주어진 것에 관한 시론』(이하 『시론』)은 심리 물리학과의 대결을 시도하며 두 번째 저서 『물질과 기억』은 경험주의 심리학, 세 번째 저서인 『창조적 진화』는 생물학과 물리학 그리고 네 번째인 『도덕과 종교의 두 원천』은 사회학과 인류학에 대한 숙고의 산물이다. 첫 저서인 『시론』은 의식의 질적 특징을 모두 양적으로 설명하려는 심리 물리학을 비판하고 베르그손의 독특한 개념인 지속을 최초로 제시한다. 여기서 베르그손은 시간의 흐름에 따른 의식 상태의 변화를 관찰하면서 그것들의 본성이 양화되지 않는 독특한 존재 방식을 가진다고 주장한다. 물론 표층의 감각에서 자아는 물질계와 유사하게 양적 취급이 가능하지만 심층에서는 내적인 환희나 미적 감정과 같은 심오한 감정들이 보여 주듯이, 모든 요소들이 서로 침투하면서 유기적 전체를 이룬다. 매 순간 변화하면서도 과거가 현재를, 현재가 미래를 예고하는 방식으로 시간적으로 연속되어 언제나 하나의 전체성으로 작용하는 것, 이러한 것이 의식 상태의 지속이 보여 주는 존재 방식이다. 이러한 의식의 시간은 가역성과 순간성, 그리고 결정론에 지배되는 과학적 시간과는 판이한 존재 방식을 갖는다. 의식 상태들의 지속은 의식 속에서 기억이라는 특징적인 양태로 보존된다. 『물질과 기억』은 이러한 기억의 작용 방식을 다룬다. 정신은 관념 연합론이 주장하듯이 원자적 관념들의 합이 아니라 그 자체로 역동적인 활동이다. 우리의 기억은 마치 눈덩이가 쌓이듯이 아무것도 잃어버림이 없이 모든 것을 고유한 질 자체로 보존하는 연속적 흐름이다. 의식적으로 드러나지 않는 기억도 사실은 잠재적 무의식 속에 보존되어 있다. 그러므로 기억의 보존보다는 그것이 어떻게 상기되는가 하는 것이 이 책의 중심 주제이다. 이 책에서 베르그손은 전통적 의미에서 실체로 이해된 정신과 신체의 관계를 탐구하는 것이 아니라 ‘기억’이라는 실증적 현상을 토대로 정신과 신체의 새로운 정의를 시도하고 있다. 따라서 이 책에는 과학적 탐구와 형이상학적 탐구가 공존한다. 기억의 문제는 당대에 심리학과 생물학에서 커다란 관심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심신 이론의 문제 외에도 이 책은 철학의 근본적 문제들, 특히 실재론?관념론의 대립 문제, 행동에 기초하는 인식 이론에 대해 매우 풍부한 시사들을 던져 준다. 특히 들뢰즈는 이 책에 제시된 ‘잠재성(무의식)의 현실화(상기)’라는 도식을 강조하면서 베르그손의 철학 전체를 해석하는 핵심 사상으로 보았고 이를 또한 자신의 철학의 근본 뼈대로 삼았다.
|
|
『창조적 진화』는 베르그손의 저서들 가운데서도 가장 잘 알려져 있으며 베르그손은 이 책을 통해 국제적인 명성을 얻는다. 이 책은 프랑스 철학 내부의 과학 철학 전통을 반영하면서 우주적 규모의 자연 철학을 전개하고 있다. 베르그손은 창조와 진화라는 화해하기 어려운 개념을 재조명하여 전통적 사고방식을 전도시킨다. 진화는 기존 요소들의 점진적 축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완전한 새로움의 출현으로서 창조와 생성의 증거라는 것이다. 실재는 고정된 본질이나 법칙에 종속된 것이 아니라 연속적 변화와 질적 비약으로 나타난다. 그렇다면 생명의 진화는 결정론적인 방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고 우발성과 창조의 영역에 열려 있다고 해야 한다. 따라서 베르그손은 생명 진화 속에서 창조의 개념을 심화시키면서 인간의 삶과 세계의 진행에 있어서 결정론을 부정하고 자유의 존재 근거를 확보하려 한다. 『창조적 진화』는 지속의 개념에 바탕을 둔 생성 형이상학을 제시하는데 이는 첫 저서 『의식에 직접 주어진 것들에 관한 시론』에서 나타난 의식의 흐름에 대한 고찰의 연장선상에 있다. 여기서 베르그손의 관심은 심리학으로부터 생물학과 우주론으로 이동하여 이 새로운 분야를 최초의 지속의 직관을 통해 새롭게 조명하는 것이다. 즉 『창조적 진화』에서 베르그손은 심리학, 생물학, 우주론을 연결하는 통일된 지속의 형이상학을 시도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책에서 중요한 것은 지성의 계보에 대한 고찰이다. 진화선상에서 볼 때 지성은 물질에 적응하는 생명의 능력이고 진화의 산물로서 다른 동물에도 지능의 형태로 존재한다. 이런 이유로 베르그손은 인식론이 생명 이론과 필연적으로 관련된다고 주장한다. 지성에 대한 고찰은 근대 철학 전반을 수놓은 엄격한 지성 만능의 사고방식을 생명과 관련시켜 다시 생각하게 해준다. 결국 지성은 물질에 관한 인식으로서는 유용하지만 생명에 대해서는 불완전한 인식이고 이 경우에는 직관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지성과 직관의 관계에 대해서는 『사유와 운동자』에서 최초로 명확한 규정이 나타난다. 이 책은 오랜 기간에 걸쳐 발표된 논문들을 모아 놓은 것이어서 『창조적 진화』 이전에 쓰여진 것들도 있고 이후에 쓰여진 것들도 있다. 이전에 쓰여진 것 가운데 잘 알려진 것으로는 1903년의 「형이상학 입문」이라는 논문이다. 이에 의하면 지성은 ‘분석’을 토대로 하며 실재의 외적, 상대적 인식에 만족한다. 즉 실재의 가장자리를 돌 뿐이다. 지속은 사유되거나 분석되지 않고 내적 의식에 의해 ‘직관’될 뿐이다. 직관은 지속하는 실재의 모습을 내부로부터 파악한다. 사물의 본성은 직관적으로만 파악되는 유기적 단일체이며, 직관은 사물을 그 유기적 전체성 속에서 파악하는 한 절대적 인식일 수 있다. 이 논문에서는 형이상학과 과학의 관계도 상세히 설명한다. 형이상학은 과학과 공동 작업을 할 수 있다. 그것은 여러 학문들의 종합이 아니다. 과학은 개념과 분석을 토대로 부분들에 대한 정확한 지식을 주지만 형이상학은 개념을 넘어서서 직관에 의해 사물의 핵심에 도달한다. 과학이 외적 관찰과 관계한다면 형이상학은 내적 관찰을 토대로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창조적 진화』에서 지성은 단지 상대적 인식이 아니라 물질에 대해서는 절대적인 인식으로 평가가 격상된다. 한편 『사유와 운동자』에서 주목할 만한 또 다른 논문인 1922년의 「문제의 위치」에서 베르그손은 형이상학은 과학보다 우월하지 않으며 그것들은 둘 다 실재 자체에 근거한다고 함으로써 지성과 과학에 대한 평가를 격상시킨 『창조적 진화』의 입장을 재확인한다. 이런 과정은 베르그손의 철학이 반과학주의라거나 반지성주의라는 편견이 잘못된 것임을 보여 주고 과학과 형이상학의 올바른 관계 설정을 유도한다.
|
|
여기서는 베르그손의 윤리학과 미학 저서를 소개하겠다. 베르그손은 1932년에 마지막 저서 『도덕과 종교의 두 원천』을 출간한다. 사상 최초의 세계 대전이 남긴 상처를 뒤로 하고 베르그손은 전쟁을 야기하는 인간의 본성에 대해 심층적 사색을 기울인다. 이 책은 윤리학적 주제들을 다루는데 그 자체로서 다루기보다는 사회학적이고 인류학적인 토대와 접목시킨다. 따라서 도덕과 종교가 밀접한 관계 속에서 탐구된다. 도덕은 종교의 교리들에서 영감을 받으며 반대로 종교는 일정한 도덕의 체계를 신비적 실체로 응고시킨 것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베르그손은 이 현상들을 모두 생명이라는 더 심층적인 근원에서 탐구한다. 책의 전체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닫힘과 열림이라는 개념쌍이다. 그리하여 닫힌 도덕과 닫힌 종교, 그리고 열린 도덕과 열린 종교라는 네 가지 현상을 탐구한다. 이러한 이원적 현상은 바로 닫힌 사회와 열린 사회로부터 유래하며, 이는 다시 생명이 보여 주는 두 가지 근본적인 현상들에서 유래한다. 닫힌 사회는 진화의 역사 속에서 물질적 환경에 적응하고자 하는 생명의 보수적인 성향에서 비롯한다. 열린 사회는 진화 속에서 생명이 추구하는 미래를 향한 개방과 도약, 가능성과 기대 등과 관련된다. 닫힌 사회들은 서로 대적하고 있기 때문에 끝없는 전쟁의 근원이 된다. 반면에 열린 사회는 단지 사회의 보존을 위한 체계가 아니라 예외적 인간들의 자발적이고 헌신적인 행동에 의해 인류애를 향해 개방되는 사회이다. 이 책은 국제 연맹에서 활동한 베르그손의 경험을 토대로 쓰여졌으며 칸트의 『영구 평화를 위하여』를 잇는 국제적 평화의 모색을 위한 통찰이 담겨 있다. 베르그손의 유일한 미학 저서 『웃음, 희극의 의미에 관한 시론』은 1901년에 쓰였다. 시기적으로는 『물질과 기억』 그리고 『형이상학 입문』 사이에 위치하는데, 특히 『물질과 기억』의 영감이 두드러진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에서 ‘희극론’이 소실된 이래 예술 이론에서 비극론은 상당수가 있으나 희극론은 비교적 드문 편에 속한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매우 희귀한 내용을 다루는 책이라 할 수 있다. 베르그손은 희극성이 감성을 배제한 순수한 지성에 호소한다고 말한다. 웃음은 또한 사회적 의미를 가지는데 사람들에게 웃음을 자아내는 행동은 사회적 합의에 맞추어 교정되고 개선되어야 한다는 무의식적 강제를 보여 준다는 것이다. 희극성의 원천은 ‘삶에 대한 주의’에서 벗어난 기계적 작용 즉 습관의 뻣뻣함이다. 그것은 영혼과 생명의 부드러움과 대조되는 육체의 뻣뻣함에서 기인한다. 웃음은 비극보다 훨씬 더 삶에 가까이 있다. 예술이 일반성이 아니라 실재 자체인 개별적인 것에 도달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면 실용성을 목표로 하는 일상적 삶은 일반성에 더 주목한다. 희극은 삶에 더 가깝기 때문에 개별적인 것이 아니라 일반적 전형(몰리에르의 「수전노」 등)에 주목한다. 비극의 주인공은 개별성 자체로부터 보편성(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 왕」)을 갖지만 희극의 주인공은 하나의 전형을 재현한다. 즉 캐리커처처럼 과대한 일반화를 통한 전형을 창조한다. 이 책에서 우리는 생명과 지성, 개인과 사회, 영혼과 육체, 예술과 삶으로 나타나는 베르그손의 이분법을 재확인할 수 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