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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오태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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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6월 <바다, 내 언어들의 희망 또는 그 고통스러운 조건>

저자의추천 작가 행사, 책 머리말, 보도자료 등에서 저자가 직접 엄선하여 추천한 도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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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개
1.
  • 지금 택배로 주문하면 12월 26일 출고 
박주하의 이번 시편을 읽는 것은 폐우물 속에 머리를 밀어 넣고 어둠을 주시했을 때 듣는 환청의 경험과 비슷한 값을 지닌다. 그 스산하고 아득한 울림은 기억나지 않아 안타까운 슬픈 꿈결 같기도 하고, 전생의 뒤안길을 배회하는 황폐한 영혼의 통점을 지시하는 성싶기도 하다. “저 나무들은 얼마나 목숨이 가렵고 아팠을까”(「허공은 나무가 꾸는 꿈」)는 시집을 관류하는 생태의 비밀을 품는다. 이 낮은 톤의 음성은 타자를 향한 연민으로 가공되어 있을지언정, 과연 그것은 자기 연민의 시치미 떼기 형식이라는 점에서 막막한 자백과 다르지 않다. 때 되어서 잎을 틔우고 꽃을 피우는 나무의 행위가 선택 이전의 것이듯, 그러한 인식은 배후에 숙명성의 징후를 짙게 드리울 수밖에 없다. 그녀의 자백은 시집 여기저기에서 다른 온도와 채도로 변형·생성된다. 때로 “읽자마자 잊히는 서문” 같은 날들 속에서 “먼저 저무는 법을 연습”(이상 「조용한 사람들」)하는 피로한 체념의 모습으로, 때로 “불 꺼진 방”에서 “집이 늦도록 슬픔(못-필자)을 빼”(이상 「사람의 집」)는 적막한 저항의 포즈로, 때로 자아를 지우기 위해 “더 깊이 어두워지는 맨발”(「없는 꿈을 꾸지 않으려고」)처럼 자의식의 위태롭고 하염없는 침전으로 나타난다. 또 그것은 “복사꽃 그늘 밑을 들춰 보”거나, “느릿느릿 끝나지 않는 환생을 기웃거리”(이상 「언젠가 왔었던 바닥」)는 장면에서 보듯이 체념도 저항도 자의식의 침전도 아닌, 그저 화려하고 덧없는 교란과 도착倒錯의 환상으로 물성화되기도 한다. 내성內省의 쓸쓸한 깊이와 처연한 환멸, 시집을 펼쳐 든 첫 번째 인상이다. 젊을 무렵, 어쩌면 화쇄류처럼 분류하는 운명에 가파르게 맞섰던 그녀의 그에 대응하는 자세가 이제 이처럼 외롭고 고즈넉하다. 인환人?의 봄날 저녁, 내부의 어둠을 응시하면서 전신으로 운명의 등피燈皮를 닦고 있을 박주하라는 텍스트와 개성은 더 화창하게 개어도 좋을 터이다.
2.
  • 지금 택배로 주문하면 12월 27일 출고 
“불쑥”과 “슬쩍” 사이, 범상하면서 범상하지 않은 언어의 긴장과 환멸 속에 이인원이 조성하는 언어 생태계가 자리 잡는다. 혀를 내밀 듯 “불쑥” 열린 붉은 산수유 열매와, 옷섶을 여미듯 “슬쩍” 핀 노란 산수유꽃 사이의 형언 못 할 간격이라니. “불쑥”의 폐쇄파열음 ‘ㄱ’이 질식할 것 같은 흥분과 교란의 표지라면, “슬쩍”의 그것은 참기 어려운 미혹과 수세(守勢)의 기호다. 늙음에 대한 섬세하고 당돌한 시치미 떼기, 혹은 생(生)에 대한 잔인한 환유. 아닌 것처럼 보여도, 그녀의 모든 시편은 과연 이 “수십 년 만의 폭설”이 품는 “불쑥”과 “슬쩍”의 간격 어디쯤 놓여야 할 듯싶다.(?눈 녹은 자리?) 그리고 그것들은 대개 삶의 숙명적 허무와 아이러니를 향한다. 양악 통증에 시달리는 어금니의 이빨 자국 같은 아픈 생을 영원히 상환할 수 없는 차용증으로 비유하는 모습이 그러하며(「A4」), “꽃을 사칭한 열매”와 “열매를 차용한 꽃” 사이를 배회하는 ‘나무’의 덧없는 그리움과 자의식이 그러하며(「꽃사과를 보러 갔다」), “나무들의 슬하”에 당도하기 위해 기꺼이 “연골 다 닳은” 채 “마지막 무릎걸음”을 하는 장엄한 광경이 그러하다(「나무는 무릎이 없다」). 성애의 환상을 담은 극채(極彩)의 프레스코화도 이면에는 그것이 밑그림처럼 보이지 않게 깔려 있을 터다(「홀소리들 3」). “불쑥”과 “슬쩍” 사이의 매혹적인 거리에서 그녀의 자백은 외설적이지 않으면서 위태롭다. 위태롭지 않은 사상(事象)은 너무 무뎌서 과녁을 꿰뚫을 수 없다. 이러한 모험은 삶과 세계와 언어에 대한 겸허하고 절박한 성찰을 전제로 한다. 동시에 그것은 시인 이인원이 밀고 가야 할 윤리이고 미덕이다.
3.
  • 지금 택배로 주문하면 12월 27일 출고 
누군가 문 두드리는 소리를 듣는다면, 심리적 환경에 따라 갈리겠지만, 대개 기대나 설렘, 또는 긴장 등속의 정서를 느끼게 된다. 유독 자신이 무언가로부터 유폐되었다고 느꼈을 때, 그래서 자의식의 아득한 심연 속에 홀로 유영하고 있을 때 그것은 실체가 뚜렷하지 않을지언정, 어떤 불길한 예감의 사늘한 온도를 띨 수 있다. 문을 여는 순간은 낯선 세계와 조우하는, 낯선 세계에 자신의 맨살이 속절없이 발각되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그녀가 여기에 있다. 『노크 소리가 나는 몇 초간』은 정재분이 자신이라는 육신의 만다라曼茶羅에 예기치 않게 틈입하는 세계에 대응하는 육필의 기록이다. 그녀는 언어적 신기新奇를 맹신하는 언어의 엽색가처럼 세계를 관음觀淫하려 들지도 않으며, 오래된 이데올로기로 세계를 보채거나 교열校閱하려 들지도 않는다. 그녀에게 세계는 그저 “다 읽지 못한 자막”(「고독」)의 속력으로 안타깝게 스쳐 지나가거나, “구두 굽이 부러졌을 때”(「구두 굽이 부러졌을 때」)처럼 잠깐 낭패를 본 공간이다. 이처럼 도발하거나 회피하지 않으며, 세계를 “사소한 것들의 알리바이”(「장갑을 벗다」)를 위한 현장일 뿐으로 인식하는 자세는 차라리 흔치 않다. 이는 정재분의 분명한 미덕이다. 하여 이 미덕이 그녀의 세계로부터 “선연한 것은 젖멍울처럼 아리다”(「데스벨리」)와 같은 명징하고 아름다운 떨림과 각성을 예인하는 풍경은 필연적이다. 이때 누군가 문 두드리는 소리를 듣는 동안은 불편한 긴장과 예감에서 삶과 언어가 가장 깊은 지점에 비장秘藏한 진실을 엿보는 기쁜 고통으로 확장될 가능성을 품는다.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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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창렬의 시편에는 그리움의 정서가 촘촘히 배어 있다. 그의 그리움은 그것이 세계를 향하든 자신을 향하든, 아니면 언어를 향하든 하염없고 아스라한 어떤 빛깔로 선염(渲染)되어 있다.”
5.
  • 지금 택배로 주문하면 12월 27일 출고 
시집 《울 엄마》에서 무엇보다 두드러져 보이는 부분은 토박이말의 명석한 쓰임이다. 자음과 모음이 교응하고 간섭하면서 조성된 소리맵시는 시의 의미공간 안에서 작용하여 애초에 전달하려는 의도를 능률적으로 반향한다. 이러한 시인의 미덕은 앞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특히 식물적 상상력으로 짜인 시편에서 제대로 발휘된다. 이는 두말할 나위 없이 토박이말을 발굴하고 채집하는 그의 오랜 수고에 따른 소산일 것이다.
6.
  • 지금 택배로 주문하면 12월 30일 출고 
남편이 그녀의 삶 속에 “점자처럼”(「점자 같은」) 각인된 운명의 반려자라면, 가족사에서 삶의 향방에 가장 분명한 영향을 드리운 이는 아버지였던 듯싶다. 그가 “아주 오래 전” 그녀에게 한 “너 하고픈 대로 다 해라”라는 발언은 “씨말”이 되어 세상을 타진하고 견뎌내는 축심(軸心)이 된다. 세계에 대응하는 그녀의 태도는 “엄마”에게는 “거리귀신”이 든 “역마직성”(이상 「말타령」)으로 경계와 근심의 구실로 소용되지만, 아버지에게는 그녀의 실체를 인정하고 격려하는 근거로 작동한다. 그녀는 자신의 내부에 깃든 그것을 ‘말(馬)’이라는 상관물로 평생을 부양하고 조련한다. ‘말’은 “앞만 보고 내달리”기도 하고, “순종하고픈 그런 말”이기도 하면서 “냅다 뒷발질도 해”(이상 「말, 말」)댄다. 또 그것은 ‘말(言語)’로 언어유희의 수단이 되면서, “워워 고삐를 당겨도 멈”추지 않고 “불빛 아래 늘어진 그림자 속”에서 “화폭에 남아 있는 풀들”(이상 「어둠의」)을 무심히 뜯고 있을 따름이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의 ‘말’이 아직 ‘말’이 되지 않았음을 잘 안다. “말이 될 때까지”(「말, 말」) 그녀에게 “도착하지 않을” “야간열차” 같은 “허기”(이상 「밤의 정체」)를 견디고, “맑은 하늘”에 걸린 “낮달” 같은 “외로움”(이상 「낮달」)에 시달리는 것 역시 숙명인지 모른다. 그것을 체감할 때마다 그녀는 자신의 안에서 끊임없이 “되새김질”하는 초식성의 동물처럼 “선한 눈”(이상 「아버지」)을 가진 아버지를 직접 만나러 모란공원으로 향한다. 거기에서 “길쭉한 손가락으로 엉킨 실을 차근차근 풀어주던”(「To Me, He Was So Wonderful」) 아버지의 손길을 감지하는 순간은 그녀에게 불쑥불쑥 “허기”와 “외로움”으로 도지는 삶의 신산(辛酸)을 이겨내는 힘을 충전하는 시간이며, 자신의 파경을 다시 맞추는 시간이다. 시집 『말, 말』에서 적지 않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게 성에 관한 담론이다. 성을 관찰하는 백명숙의 시각은 문명과 윤리의 위리안치(圍籬安置)에서 벗어나, 그것이 지닌 골목과 골목을 그저 환하고 유쾌하게 드러낸다. 위트와 해학으로 조명하는 그녀의 성은 고답적인 준론峻論에서 벗어나 있기 때문에 생생하고, 여항의 패설(稗說)에서 비껴나 있기 때문에 환하다.
7.
  • 지금 택배로 주문하면 12월 27일 출고 
이가을의 시를 읽는 것은 감각의 장원(莊園)에 들어가는 것과 같은 뜻을 지닌다. 그녀의 영지 안에서는 생의 무수히 혼잡스런 기표들도 감각의 다채로운 화성으로 환원된 채, 초끈(super-string)처럼 진동한다. 의미의 계면에서 그것들은 우주의 비밀스러운 시공에 참여하기도 하는데, “숲에는 발을 위한 별들의 무반주”(「냄새의 무반주」)가 그렇다. 시집의 도처에서 감각의 보행은 유리창에 맺힌 아침 비처럼 경쾌하고 청신하게 떠오른다. “불온한 꽃의 전주”(「나의 오른쪽이 왼쪽에게」)와 “구름 장례식장”(「그들만의 장례식」)과 “너무 붉어 슬픈 칸나”(「우리들의 나쁜 식사」)의 자못 비장한 칸타타도, 그러니까 레퀴엠보다는 유머레스크에 더 가까울 수밖에 없다. 이 언어의 페로몬은 시인의 사회(社會)에서 이가을을 가장 이가을답게 장식한다.
8.
  • 지금 택배로 주문하면 12월 30일 출고 
시인의 상상력이 얄궂고 맹랑하다. 매화는 사군자의 필두(筆頭)로, 수천 년 이어온 동양적 인문과 교양의 한 기호다. 특히 매운 품격(品格)과 맑은 아치(雅致)는 눈 쌓인 밤 달빛 아래 성근 갈필(渴筆)의 검은 가지가 겨우 두세 낱 꽃과 꽃눈을 간신히 받들고 있을 때를 으뜸으로 친다. 그런데 권자미는 그 춥고 오롯한 묵적(墨跡)의 품격과 아치를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유린한다. 하물며 이 시는 표현기교가 헐겁고 거칠며, 시상의 흐름이 속돼 보이는 구석마저 눈에 띤다. 상상의 질도 어디서 많이 본 듯 낯이 익다. (이런 류의 시에서는 매화도 능수홍매, 월영매, 겹옥홍매, 흑룡금매 따위로 구체화시키는 방식이 이미지를 선명히 등사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나 싶다) 이 모든 흠집과 의심에도 불구하고 끝내 이 시를 젖혀두지 못하고 눈길을 빼앗기고 만 것은 무엇 때문일까. 낱말의 감칠맛 때문인 듯하다. ‘수상그르다’는 사전에 ‘좀 수상쩍다(suspisious)’로 나온다. 의미는 ‘수상쩍다’와 대동소이해 보이지만, 어감에 있어서는 거의 딴판이다. ‘수상쩍다’는 대상이 위험한 짓을 저지를지 모른다는 의구심과 경계심이 짙게 배어 있다. 이에 비해 ‘수상그르다’는 의구심과 경계심도 없달 순 없겠지만, 거기에 차이점이 강조되면서 대상을 향한 개구진 호기심 같은 것이 짙게 투영된다. 발음을 할 때 입안에 침이 고이는 것 같은 흐벅진 감정이 들게 하기 때문이겠다. 이러한 뉘앙스와 시의 내용이 서로 절묘하게 간섭하면서 봄빛 낭자한 분위기를 한껏 끌어올린다. 또 빼 놓을 수 없는 게 ‘회창거리고’다. 말할 나위 없이 ‘휘청거리고’의 작은 말이다. 그러나 느낌은 사뭇 다르다. ‘애첩처럼 휘청거리고’와 비교해 보면 그 맛깔의 차이를 선명히 느낄 수 있다. “애첩처럼 회창거리고”의 “회창거리고”는 간드러짐, 낭창스러움 따위 의미를 거느리면서 분위기에 요염하게 편승한다. 시는 언어로 이루어진 형식이다. 시의 발착점도 언어고 시의 종점도 언어다. 그러나 이 당연한 명제를 만족시키는 시를 찾기는 뜻밖에 쉽지 않다. 대부분의 시에서 언어는 의미를 매개하는 수단 정도로 소용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시의 언어가 비유와 상징의 본능에만 맡겨져 있다고 믿는다면, 그건 요령부득이다. 시의 언어는 그 이상이다. 권자미는 언어 자체가 지니는 질감과 온도를 느끼고 그것을 상황과 때에 맞춰 부릴 줄 아는 솜씨를 지녔다. 이는 그가 살려 쓸 만한 미덕이다.
9.
  • 지금 택배로 주문하면 12월 30일 출고 
시인의 시를 펼쳐 들면 모국어의 진경산수화眞景山水畵속을 노는 성싶다. 아무래도 신발끈을 고쳐 매야할까보다.「 춘일春日」의발묵潑墨은아슬아슬해서눈물겨우며, 설채設彩는향내가모시빛깔로아득할 따름이다. 세필細筆과 갈필渴筆로 맵시를 엮은, 새물내 밴 솜씨 가운데서도“욜랑욜랑”의 멀미나는 목마름이라니. 하염없다. 언어는 사전 속의 뜻에 덧대 스스로 온도와 채도彩度와 주파수를 품는다. 시가 언어의 몸이라는 당연한 명제 앞에서, 그걸 눈치채고 요량있게 부릴 줄 아는 시인이 현대시사에서 매우 드물다는 현실은 참기 어렵다. 이때 오탁번 시인이 미나리꽝의 미나리 다듬듯, 맑은 물로 씻어 무청 다듬듯 개간해 밝힌 언어의 지평地平은 차라리 아스라한, 사늘한 그리움이다. 모국어의 진경시대眞景時代를 시인의 한낱 목간木簡한 편片에서 새삼 구경하게 된 것이 되레 가슴 아리다.
가나다별 l l l l l l l l l l l l l l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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