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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최진배

출생:198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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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9월 <포가튼 미얀마>

최진배

1987년 서울 출생이고, 노원구 공릉동에서 유년기와 학창 시절을 보냈다. 대학에서 정치외교학을 공부했다. 그렇지만 사는 일은 전공과 별반 관련 없었다. 졸업 후 여러 직장을 거치며 말단 사무직, 물류창고 관리, 영업사원 등으로 일했지만, 오래 다니지 못했다. 그러다 한국국제협력단(KOICA) 해외봉사단으로 스리랑카와 미얀마에서 4년을 일했다. 미얀마에서 일하던 중 협력 기관 현지 직원이었던 지금의 배우자를 만나며 미얀마에 정착을 결심한다. 혼인신고와 결혼식 준비를 위해 아내와 잠시 한국에 귀국한 사이 코로나19가 전 세계를 강타하고, 이듬해 미얀마 군부가 불법 쿠데타까지 일으키며 한국에 발이 묶였다. 한국어-미얀마어 프리랜서 번역가로 활동하면서 한국 사회에 미얀마 시민혁명 소식을 알리기 위해 페이스북 뉴스 그룹 <미얀마 투데이>를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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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말

<포가튼 미얀마> - 2024년 9월  더보기

망각의 늪에 빠진 미얀마 “미얀마” 세 글자를 포털 사이트에서 검색해본다. 가장 상단에 떠오르는 이미지 검색 결과는 황금빛 불탑. 곧이어 아래 황녹적 삼색 깃발 가운데 하얀 별이 뜬 미얀마 국기도 보인다. 그 외 대부분은 ‘버간(Bagan)’과 ‘인레 호수(Inle Lake)'를 위시한 유명한 사원과 관광지 사진들이다. ‘미소의 나라’, ‘마지막 남은 순수의 땅’, ‘자원부국’ 같은 키워드도 뒤를 따른다. ‘오랜 시간 군부독재를 경험하고 민주주의로 체제를 전환하려 노력 중’이라는 요약 설명까지 읽으면 이미 미얀마에 대해 꽤나 많이 알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던 어느 날, 미얀마를 상징하는 키워드가 돌변했다. 놀랍지만 생경하지는 않은 단어들이다. ‘쿠데타’, ‘시민혁명’, ‘학살’, 그리고 ‘내전’… 전에는 좀처럼 저녁 뉴스의 꼭지를 차지하지 못하던 국가 미얀마는 듣기만 해도 속이 불편한 단어로 뉴스 편성에서 존재감을 드러냈다. 테라와다 불교(상좌부 불교) 종주국과 동남아의 자원부국 이미지는 봄의 혁명과 세 손가락 경례, 총성과 피 웅덩이 속 주검들이 대체했다. 끊임없는 유혈진압과 총칼 아래 쓰러져가는 시민. 세계시민은 분노하며 그릇된 욕심으로 권력을 찬탈한 군부를 손가락질했다. 이윽고 국제사회는 연일 군부가 자행하는 학살과 만행을 비난하며 성명서를 날리고 규탄 목소리를 높였다. 강력한 경제제재, 군부 수뇌부가 보유한 해외 계좌동결, 공적개발원조 중단 같은 해묵은 칼도 꺼내들었다. 그러나 세계와 미얀마 사이에 놓인 물리적 거리는 너무도 멀었다. 국제사회가 멀찌감치 떨어져 꺼내든 무딘 칼은 군부에 작은 생채기조차 입히지 못했다. 결국 미얀마 시민은 생계를 버리고 무기를 들었다. 오랜 시간 반목한 버마족과 소수민족은 ‘화해’와 ‘미래’를 말하며 공동전선을 펴고 무장혁명에 돌입했다. 미얀마 곳곳에서 크고 작은 전투가 벌어지며 시민군과 소수민족 무장단체는 군부 병력을 쓰러뜨렸다. 과거 혁명과는 다른 양상에 기대감이 들어섰다. 이번에야 말로 절대 악惡 군부를 몰아내고 마침내 진정한 민주주의를 쟁취할 수 있다는 기대감. 하지만 반세기 이상 힘을 길러온 군부는 좀처럼 무너지지 않았다. 세계가 미얀마 군부를 비난하고, 시민군이 때리면 때릴수록 도리어 군부는 무고한 민간인을 향해 맞은 양의 곱절이 넘는 폭력을 행사하며 배짱을 부렸다. 전국에서 산발적으로 일어나는 무력분쟁으로 발생한 국내실향민(IDPs)은 이미 2백만 명을 훌쩍 넘었다. 자유와 인권 회복을 위한 열망을 가진 시민은 인력과 정신력이 우위에 있었지만 군부를 압도할 무기가 부족했다. 군부는 낮은 사기, 극도로 넓은 전선, 길어진 보급로, 끊임없는 시민군의 게릴라 공격에 시달렸지만, 오랜 기간 축적한 자본과 화력, 특히 비대칭 전력이라고도 부를 수 있는 공군력을 지니고 있다. 양측이 몸을 엉키고는 있지만 상대를 찍어 누르지는 못하는 지지부진한 싸움이 어느새 두 해를 넘겼다. 전쟁의 사상자는 흐르는 시간에 비례해 증가했다. 지금 이 시간에도 많은 사람이 현재 진행형으로 목숨을 잃고 있지만, 미얀마 사태는 점차 고질적인 문제로 치부받기 시작했다. 이런 와중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다. 21세기 동부 유럽에서 벌어진 침략전쟁에 전 세계는 충격과 공포에 빠졌다. 미얀마와 달리 우크라이나 전쟁 양상은 열전熱戰이고 전면전이었다. 그리고 전쟁의 영향이 세계경제와 사회에 직접적 타격을 가하는 국제전이기도 했다. 즉각 우크라이나 소식은 언론과 사회전반에서 비중 있게 다루는 주요 의제로 부상했다. 그러는 사이 아시아 저편의 미얀마는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점점 흐릿해졌다. 잊힌 전쟁터로 전락한 것이다. 다시 포털 사이트에 미얀마를 검색해본다. 여전히 황금빛 불탑 이미지가 가장 먼저 뜬다. 뉴스는 미얀마 관련한 주요 국제정치이슈나 아웅산 수찌 여사의 재판 같은 소식을 드문드문 전했지만 매일 일어나는 현장 소식은 더 이상 싣지 않는다. 고질병을 앓는 사람의 만성慢性 증상은 으레 관심에서 멀기 마련이다. 비정한 당연함 속에서 미얀마는 더욱 더 깊은 망각으로 빠져들고 있다. 필자는 미얀마 쿠데타 발생 후 한 달 반이 지난 2021년 3월 16일부터 소셜미디어 페이스북에서 ‘미얀마 투데이’라는 이름으로 그룹을 만들어 지금까지 현장 발發 미얀마 소식을 전하고 있다. 더불어 온라인에서 한국시민을 대상으로 모금운동을 하여 미얀마 현지 활동가들을 지원하는 일도 병행한다. 두 가지 일 중에서 미얀마 투데이의 주된 활동은 단연 현장 소식을 전하는 일이다. 미얀마에서 발생한 일을 담은 영상과 사진, 현지 언론보도, 현장의 제보를 모아 한국어로 번역해 공유하는 자유 미디어 활동이 미얀마 투데이가 지난 2년 동안 지속해온 과업이다. 이 일을 시작한 계기는 단순하다. 뉴스와 신문에서 모두 담지 못하는 미얀마 사람들의 이야기, 온라인에서 연대하며 인연을 쌓아온 현장의 활동가 동지들이 겪고 있는 일이 잊히지 않기를 바랐다. 잔혹한 폭력에 속절없이 당한 희생자들, 두려움 속에서도 용기를 끄집어내 항거하다 쓰러진 사람들이 이 세상에 존재했고, 그들이 어떻게 세상을 떠났는지를 기록으로 남기고 싶었다. 혹자는 너무 지엽枝葉적이라 했지만 누군가에게는 세상 전부였던 역사, 그 처절한 역사를 자유로운 소셜미디어를 통해서나마 알리고 싶었다. 『포가튼 미얀마』는 이러한 미얀마 투데이의 과업과 연장선에 있다. 콘텐츠가 빠르게 소모되는 온라인상에서 다하지 못한 이야기를 지면을 이용해 조금이라도 풀어내는 것을 목표로 이야기를 썼다. 본문에서는 미얀마 현장에서 실제로 일어난 일과 실존인물을 바탕으로 하여 필자가 만든 가상의 인물들이 겪는 일련의 이야기를 통해 지난한 미얀마 시민혁명 2년을 정리했다. 첫 번째 장은 쿠데타 직후의 혼란 상황을 현장에 있던 미얀마 청년의 시선으로 쓴 일지日誌 형식으로 풀어냈다. 이어 두 번째 장은 필자의 시점에서 미얀마 청년들이 왜 무기를 들기로 결심했는지, 어떻게 싸우다가 쓰러져 갔는지를 서술했다. 작중 벌어진 사건과 등장인물이 겪는 고난은 필자가 실제 벌어진 사건을 취재하며 현장 활동가를 인터뷰하고, 현지 자유언론 보도 등을 참조해 구성했다. 마지막 장에서는 우리나라에 널리 알려지지 않은 미얀마 시민 혁명 속 이야기를 정리했다. 글을 쓰며 미얀마 사태를 장황하게 분석하거나, 어쭙잖게 향후 전망을 짚는 일은 지양하고, 최대한 현장에 있는 사람의 이야기에 초점을 맞추려 노력했다. 본문에 등장하는 인명人名과 지명地名 또한 버마어 원음에 최대한 가깝게 표기하였기에 기존에 언론에서 소개된 표기법과는 어느 정도 차이가 있다는 점을 감안해주시길 바란다.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점점 흐릿해지며 잊힌 전쟁터로 전락한 미얀마, 그러나 망각을 이기는 건 노력하는 관심이다. 졸작 의 미약한 날갯짓이 우리사회가 미얀마 시민혁명에서 산화한 희생자와 현장에서 싸우고 있는 위대한 혁명가들을 되돌아 볼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희망한다. 미얀마 민주주의 만세. 2023년 9월 공릉동에서 최진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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