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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양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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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9월 <너무나 정치적인 시골살이>

양미

‘양미’ 또는 ‘빨간거북’으로 불리기를 좋아한다. 고등학교 1학년 때 1987년 6월항쟁 시위대를 쫓아다니며 계급 정체성을, 순전히 데모를 잘하고 싶어 들어갔던 대학에서 젠더 정체성을 알게 됐고, 단지 더 넓은 다른 세상이 궁금해 찾았던 동네 성당에서 만난 선배들과 함께했던 빈민 지역 공부방 활동으로 내가 서고 싶은 위치를 알게 됐다. 1992년 대학을 그만두고 사회운동 활동가가 됐다.
사회운동은 생계를 책임져주지 않았기 때문에 비디오 가게 점원, 주유소 알바생, 신발 공장 시다, 전자제품 조립 공장 노동자, 속옷 생산 공장 시다·재단·검품 노동자, 재고품 할인 전문 물류업체 경리로 일했다. 스물여섯 살에 생계 때문에 ‘진짜’ 직장인이 되기로 하고 홈쇼핑 전화 상담원이 됐다. 파견법이 통과된 후 첫 번째 ‘공식적, 합법적’ 파견직 노동자였다. 10년 동안 홈쇼핑 회사에서 파견직, 계약직을 거쳐 정규직 대리로 일하면서 마르크스의 “자본주의는 정상적으로 작동할 때조차 나쁘다”라는 말의 의미를 깨달았다. ‘합리성’이라는 말로 나와 타자들을 착취하는 일을 그만두기로 하고 자발적 백수가 됐다.
민주노동당 지역위원회에서 평당원, 교육부장, 여성위원회, 노동위원회, 환경위원회, 대의원, 성평등강사단으로 활동했다. 서울여성노동자회 활동을 하면서 한국까르푸노동조합·이랜드일반노조 서대문·마포·은평·용산 지역대책위원회 활동도 했다. 파업 중이었던 이랜드홈에버 여성 노동자들이 고립되지 않기를 바랐고, 파업 자금을 보태고 싶어서 《우리의 소박한 꿈을 응원해 줘》를 공동 기획하고 글도 썼다. 이때의 문제의식을 담아 활동을 함께했던 동지들과 서울서부지역비정규노동센터라는 단체를 만들고 상임활동가로 5년 동안 활동하며 일터를 넘어 삶을 고민하는 노동운동을 꿈꿨다. 인권교육센터 들 활동회원, 《은평시민신문》 시민기자, 생활재·천연화장품·술 만들기, 여성/노동/인권 교육, 독립영화 제작·배급·상영·비평 활동을 하기도 했다.
2015년에 시골로 터를 옮겼다. 지금은 시골에서 아이들에게 인권과 환경을 주제로 놀이와 수업을 하고, 글도 쓰고, 텃밭을 일구고, 때때로 임금노동을 하며 살아간다. 어디에서 무엇을 하든 항상 만나는 이들과 모임을 만들고 수다와 공부하기를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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