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화성군 우정면 석천리 돌패기에서 태어나(1942), 서울사범학교를 졸업하고 약 8년간 서울의 초등학교에서 교사로 일했다. 교직생활 중 성균관대 동양철학과를 졸업했으며 믹구으로 유학해 꿈고 사랑을 이루기 위한 길고 먼 인생 여정을 시작했다.
사고무친의 미국 땅에서 주유소 파트타임 근무부터 시작해 로스앤젤레스 'National Technical School' 자동차정비학과를 수료하고, 버지니아 리치몬드에서 주유소 영업을 시작해, 리치몬드에서 정비공장, 그 후 다시 로스앤젤레스로 돌아와 주유소를 운영했다. 미국 땅에 첫발을 딛고 일하면서부트 오랜 꿈이었던 정비회사를 설립하고, 정비회사 신축공사를 완료하던 날은 세상을 다 얻은 듯 벅찬 감동을 맛보았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할 행복만이 남았다고 생각할 때 폐암 말기와 간암 말기 선고를 받게 되었다. 의사들은 그에게 남은 삶이 고작 3개월 남짓이라 했다. 그로부터 글자 하나하나를 더듬어가며, 항암치로의 쓰라린 고통을 참아가며 쓰고 지우길 꼬박 5년 ..., 2008년 12월, 죽음의 고비를 수없이 넘기면서 마침내 그는 가족들에게, 그리운 모국 사람들에게 들려줄 실화소설 <구리반지>를 출간하게 되었다. 미국에 온 지 어느덧 37년, 29살의 혈기 넘치던 젊은이는 머리가 하얗게 센 할아버지가 되었다.
살면서 너무도 많은 비바람과 높은 시련의 산들을 넘어 여기까지 오는 동안 푸르던 젊은 날은 어느새 지나가고 노년에 접어들었지만 후회 없는 삶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세상의 편견과 곱지 못한 시선에도 굴하지 않고 끝내 함께할 영원한 사랑을 선택한 우리야말로 보석보다 아름다운 삶을 살아온 게 아니냐고, 내 사랑 혜찬이의 손을 꼭 잡은 채 난 가슴속으로 뜨겁게 외쳤다.
“세상에 나서 오직 한 사람, 당신을 진정으로 사랑했다.
언젠가 우리 이별의 날이 오더라도 당신이 있었기에
나는 가장 멋지고 성공한 인생을 살았다고 말할 수 있을 거야.
사랑해, 혜찬! 영원까지 함께할 단 하나의 내 사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