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나는 지독하게 말을 못했다. 월급을 주지 않는 사장에게 돈 달라는 말이 입에서만 맴돌았다. 돈을 받지 못한 거래처에서 전화로 따지면 내 잘못인 양 한마디도 못했다. 중고차 사는 데 명의만 빌려달라는 친구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해 대신 빚쟁이가 됐다. 직장에서도 내 의견을 말하기보다 시키는 대로 하는 게 편했다. 부당한 일을 당해도 내 목소리를 내기보다 참고 넘어갔다. 할 말을 제때 못해, 그 못한 말이 쌓이니 더 말하기 힘들었다. 그런 악순환이 결국 자신감도 떨어트렸다.
29살, 현석이의 도움으로 인테리어 현장 공사관리 업무를 맡았다. 경력이 없었던 때라 친구의 지시를 받으며 하나씩 배웠다. 현석이는 4년 차, 나는 신입이었다. 당연히 업무 역량이 달랐다. 근로자는 나보다 현석이의 지시를 따랐다. 생소한 도면을 아무리 들여다봐도 이해가 안됐다. 소장님도 도면을 이해해야 관리감독을 할 수 있다고 했다. 현장 업무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던 나는 공부보다 몸으로 뛰는 걸 선택했다. 작업 중인 근로자를 찾아가면 그들은 나에게 필요한 걸 말했다. 그들이 요구하는 자재를 구해 주고, 작업에 방해되는 것들을 정리해 주는 잡다한 일이었다. 현석이는 저대로 바빴고, 나는 나대로 바빴다. 얼마 뒤 그러고 다니는 걸 알게 된 현석이가 화를 냈다. 화를 내는 현석이의 심정도 이해가 갔다. 기껏 어렵게 자리를 만들어 줬더니 일용직에게 시켜도 되는 일로 하루를 보냈으니 말이다. 나라고 공사관리자 역할을 하고 싶지 않았던 건 아니었다. 일머리를 몰랐던 때라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지 막막했다. 바쁜 친구를 붙잡고 꼬치꼬치 묻기도 미안했다. 현석이는 더 말하지 않았다. 직장을 못 구하고 있던 나를 데리고 오긴 했지만, 일을 배우고 내 자리를 만드는 건 내 몫이었다. 친구와 비교되는 경력과 부족한 지식 탓에 근로자에게 당당하게 작업지시를 못 내렸고, 대신 몸으로라도 때우며 친구를 돕는 게 최선이라고 합리화했다.
현석이와는 6개월 동안 근무를 했고, 나만 원하면 정직원으로 추천해 주겠다고 했다. 제안은 고마웠지만 다른 현장을 가도 스스로 당당해지지 못할 것 같았다. 그렇게 스스로 직장을 잃었다. 30살이었다. 직장이 필요했다. 이번에도 친구의 소개로 직장을 소개받았지만 전공과는 다른 일이었다. 직업이 없던 당시로써는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내 의지보다 먹고사는 게 먼저였다. 그렇게 시작한 일을 17년째 이어오고 있다. 하고 싶은 일 대신 ‘해야 하는 일’을 시작하게 되면서 당연히 자신감도 없었다. 행동에 자신감이 없으니 말수도 적어졌고, 목소리도 작아졌다. 잘못한 일이 생기면 더 주눅이 들었고, 실수를 안 하려고 더 소심하게 행동했다. 평생 그렇게 살아도 이상할 것 같지 않았던 일상에도 작은 변화가 찾아왔다. 43살이 되던 해, 책을 읽으면서부터였다. 손에 잡히는 대로 읽었다. 매달 읽은 권수가 늘어갔다. 1월 1일부터 시작된 독서는 6개월 만에 100권을 읽었다. 그즈음 책만 읽던 손에 펜을 들었다. 자만심이 생겼던 것 같다. 비슷한 내용의 책을 여럿 읽으니, 이 정도는 나도 쓸 수 있을 것 같았다. 책 쓰기 수업을 들은 후 무턱대고 쓰기 시작했다. 돌이켜보면 기초공사 없이도 제대로 된 건물을 올릴 수 있겠다는 조급함과 자만심이었던 것 같다. 결국 몇 개월 못가 포기했다. 대신 오기가 생겼다. 제대로 써보고 싶었다. 다시 땅을 파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조급해하지 않고 하나씩 순서와 방법을 지키기로 했다. 그렇게 제대로 글을 쓰기로 마음먹었고 4년을 이어오고 있다.
29살의 나는 가진 게 없다는 이유로 당당하지 못했다. 그래서 말을 아꼈고 주눅이 들어 지냈다. 43살의 나는 책을 읽고 글을 쓴 덕분에 그때 갖지 못했던 용기를 내게 되었다. 내가 쓰는 글에는 당당해지기로 했다. 글을 잘 써서 당당했던 건 아니다. 엉망으로 써도 자신에게 당당하자 다짐했다. 내가 쓰는 글은 나를 위해 쓴다. 그래서 억울했던 상황, 실수했던 경험, 상대방에게 상처 준 말, 전하지 못했던 마음, 해주고 싶은 이야기를 하나씩 적어 나갔다. 두루뭉술하게 적으면 얻는 것도 두루뭉술하다 했다. 그래서 과거의 내가 갖고 있던 문제에도 눈을 돌리게 되었다. 현석이와 함께 일하기 전부터 나는 매사에 자신감이 없었다. 아르바이트로 번 돈을 못 받아도 당당하게 요구하지 못했고, 실수를 바로잡기보다 인정하고 도망치기에 급급했다. 글을 쓰면서, 구체적으로 적으면서 과거의 나를 선명하게 들여다보게 되었다. 내가 가진 문제와 마주하게 되면서 무엇을 바로 잡아야 할지 알게 되었다.
그동안 제대로 말을 못했던 건 단순히 말주변이 부족해서가 아니었다. 자신감이 없었던 거였다. 말을 잘 못한다고 스스로 단정 짓고 나니 단점 있는 사람이 되어 버렸다. 한 번 생긴 단점은 평생 따라다녔다.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이미 스스로 만든 단점이 벽이 되어 입을 막았다. 단점은 단점에 집중하게 했다. 글은 나의 단점도 드러냈지만, 그동안 몰랐던 장점도 알게 했다. 나는 말은 못했지만 잘 들었다. 입은 닫고 있었지만, 마음은 열고 있었다. 타인에 대한 배려니, 이해니 그런 건 아니었다. 말을 못하니 어쩔 수 없이 선택한 게 침묵하고, 들어주고, 인정하는 것이었다. 월급을 못 준 사장에게도 사정이 있었겠지, 나를 질책하는 선배도 나에게 애정이 있어서라고 인정했다. 글을 쓰면서 과거의 나를 바라보는 관점을 달리했다. 잘못했던 나를 바라보기보다 잘했던 나를 바라보게 되었다. 단점 있는 나를 고치기보다 내가 가진 장점에 집중하기로 했다. 그렇게 ‘못하는 건 접어두고’ 잘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며 살고 있다.
누구나 단점 하나씩은 갖고 있다. 단점을 단점이라고 인정하고 사는 사람이 있지만, 단점 때문에 정작 중요한 걸 놓치고 사는 나 같은 사람도 있다. 자신이 어떤 단점을 가졌는지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떤 장점을 가졌는지 아는 것도 꼭 필요하다. 어쩌면 우리에게는 단점을 고치려는 노력보다 장점에 집중하고 발전시키는 노력이 인생을 더 가치 있게 만들어 준다고 생각한다. 말주변이 없는 내가 말을 잘하려고 노력하는 것보다 책을 읽고 글을 쓰면서 이전에 없던 자신감을 되찾는 노력이 더 가치 있다고 믿는 것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