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 처음 이 이야기는, 공주 이야기를 재해석하는 단편 청탁으로 〈잠자는 숲속의 공주〉를 다시 쓰기 하려다 시작되었다.
이런 변주를 생각했다. 주인공인 공주는 한 사람이 아닌 쌍둥이인데 만일 그 중에 한 사람이 잠들었다면? 그 공주를 잠에 빠지게 한 것이 마녀의 물레가 아니라 타자기였다면? 잠들지 않은 공주가 위기에 처해 잠든 쌍둥이 공주를 어떻게든 깨워야만 했다면?
하지만 하나둘 뼈대를 세워가는 과정에 〈잠자는 숲속의 공주〉의 색깔은 조금씩 희미해졌고, 결정적으로 단편으로는 맺을 수 없는 분량으로 점점 가지를 뻗어나갔다. 결국 한편의 독자적인 이야기가 될 운명이었던 것 같다.
책에 관한 책, 특히 이야기에 대한 이야기를 좋아한다. 서사시, 구전 설화, 오페라, 연극, 소설, 만화, 영화 등 우리가 이야기를 들여다보는 창문의 형태는 때마다 변하더라도 이야기 자체는 사라지지 않는다는 점까지 포함해서.
물성을 가진 책만 생각해도, 한때 전리품으로 약탈하거나 당하기도 하고, 불온한 것으로 여겨져 태워지거나 금지당하는 등의 위기는 늘 있었다. 그래도 여전히 존재하는 것은 물론 책을 벗어나 다른 장르로도 부지런히 재구성된다. 이야기가 선사하는 감격은 어떤 자원으로도 대체 불가능해서가 아닐까.
당장 일이십 년 후 지구의 안위가 염려되는 이 시점에, 먼 미래의 있을지 없을지도 모를 소설을 둘러싼 이야기라니 사실 지나친 낭만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쓰는 행위를 통해 상상하지 않는다면, 그 낙관을 어디에서 발견해야 좋을지 막막했음을 고백해본다. 사실 챗GPT에게도 물어보았다. 우리가 인간을 복제하는 그런 시대에 살아도 소설이란 걸 읽고 있을까? 인공지능의 대답과는 별개로, 나는 이야기의 끈질긴 생명력을 감히 바라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