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 막히는 숲과 성을 배경으로 벌어지는 주인과 하인의 관계, 에로티시즘, 실종, 살인. 소설은 우리 입맛을 다시게 하는 자극적인 소재와 추리소설의 전형을 갖추고 있다. 하지만 어찌 보면 흔해 보이는 이 전형적인 테마들이 발레조의 손을 거치며 새롭게 태어난다. 바로 발레조라는 작가가 보여주는 구성과 문체의 힘 덕분이다. 발레조는 ‘광기와 통제된 구성’을 좋아한다고 한다.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이 두 가지는 『서쪽의 성』에서 동시에 추구된다. 또한 작가는 다중적 시점을 이용하고 있다. 일단 화자는 랑베르의 후손으로 보이는 어느 인물인 듯하다. 하지만 화자의 언어는 작중 인물들의 언어와 미묘하게 뒤섞이고, 한 문단 안에서도 도대체 누가 말하고 있는 것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여러 가지 목소리가 동시에 폭발하는 느낌을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