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사합니다”
코로나19가 온 우주를 덮쳤다. 나의 세상도 예외는 아니다. 일중독자인 사람이 반년을 넘게 일하지 않고 지내는 것은 끔찍함을 넘어 우울증이 생길 지경이다. 아이를 셋 낳는 동안에도 이렇게 쉬어 본 적이 없다. 일뿐만 아니라 배우기를 좋아해서 공부할 것을 신청해 두었는데 그것도 물 건너갔다. 많은 것을 잃었다. 처음 한두 달은 견딜만했다. 그동안 못 놀았으니 실컷 논다고 생각했고 곧 괜찮아 질 것이라 여겼다.
두 달이면 코로나19가 싹 물러가겠지.
예상과는 달리 점점 심해져 가는 상황이 오고 실낱같은 작은 희망은 환상이었고, 그것은 깨졌다. 기한이 없음에 넋 놓고만 있을 수가 없었다. 나의 마음을 위로할 무엇인가가 필요했다. 나는 작년에 감사일기를 쓰는 동안 사인을 바꾸었다. 철들고서부터 사용하던 흘림체 유자를 thankyou로 바꾸었다.
“모든 것에 감사하자.”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사하자.”는 의미다.
감사하는 삶을 살겠다고 바꾼 사인이었지만 코로나19가 고통의 시간을 주고 있는데 감사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진정성이 있는지 의문이 갔다. 그때 오프라 윈프리의 “당신이 가장 덜 감사할 때가 바로 감사함이 가져다 줄 선물을 가장 필요로 할 때다.” 이 글이 눈에 들어왔다. 그녀의 고단했던 성장과정을 알고 있고, 성공해서 많은 사람에게 영향력을 미치는 지금 경험에서 나온 그녀의 말을 믿어보기로 했다.
이 상황이 견디기 힘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소소한 일상에서 감사함을 찾아보기로 하고 감사일기를 다시 쓰기 시작했다. 자연스럽게 내 생활에 집중하게 되고 나를 더 사랑하게 되고 주위를 돌아보게 되었다. 평소에는 보이지 않던 것이 더 선명하게 보이고, 작은 것이 아름답고 소중하게 여겨졌다. 또 작은 일에 감사를 넘어 감동이 왔다. 강의를 많이 할 때는 오전, 오후, 저녁까지 3강도 했고 하루에 2강씩은 기본으로 할 때가 많았다. 그렇게 일이 넘칠 때도 감사함을 몰랐다. 강의를 워낙 좋아하다 보니 그냥 신났고 재미있다고만 생각했다. 4월까지 쭉 강의가 없다가 5월부터 강의 의뢰가 오기 시작했다. 코로나 이후 첫 강의는 감사를 넘어 감동으로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지인강사 역시 강의가 시작되었고, 우리는 기쁨의 수다를 한참이나 나누며 앞으로 감사하면서 살자고 다짐했다. 감사일기를 쓰면서 마음의 평화가 왔고 쓰다 보니 작은 일에도 진심으로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감사하면 감사한 일이 생긴다.”는 말처럼 신기하게도 감사한 일이 자꾸 생겼다.
지금 코로나로 힘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은 것에 감사하고 감동까지 오는 이 순간을 책으로 엮고 싶었다. 책쓰기를 시작하고 딱 한 달 만에 출간 계약까지 하는 기적이 일어났다. 감사의 힘, 감사의 기적이라고 말 할 수밖에 달리 설명할 방법이 없다.
나는 맑은 공기, 좋은 사람과의 만남 그리고 맘껏 할 수 있었던 강의가 넘쳐도 감사한 줄 몰랐다. 지구촌의 대부분 사람들이 나와 같은 생각을 했을 것이다. 바이러스로 화나고 아프고 미칠 만큼 답답하지만 함께 잘 극복하기를 바라며 부족하지만 코로나시대 힘든 상황 속에서 찾은 소소한 감사의 글이 작은 위안이 되길 바란다. 또 감사의 힘으로 평화와 감사가 함께 하기를 희망한다.
서울 작업실 애당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