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물은 감정이 있다.
감정을 표현하고 싶은 욕구. 시인은 그 감정을 표현해야만 한다. 심지어 무생물에게도 감정이 있다고 전제하고선 그 감정과 교감하려 한다. 나에게 ‘시’란 조동일 교수가 말한 “세계의 자아화”를 “존재와 내 감정과의 교감”이라는 말로 대신하고 싶다.
중학교 2학년부터 시를 썼다.
시집을 내기 위해 어릴 적 작품들을 뒤적거려 보니 무슨 슬픔이 그리 많았는지 울고만 있었다. 사춘기 시절, 세상이 무서웠나 보다. 아니 어쩌면 세상은 그대로였는데 내가 너무 여렸다 보다. 하지만 그 여린 마음은 어른이 되어서도 여물지는 못했다. 커서도 울기는 마찬가지였다. 국문학을 전공하면서 본격적인 시를 썼고, 교사가 되어 교육현장을 그렸지만 여전히 눈물 투성이었다. 교육노동자라는 각오로 거리에 서서 힘차게 팔뚝질도 해댔지만 눈물은 여전했다.
나에게는 따뜻함이 있었다.
어머니, 눈물 뒤에는 늘 어머님이 계셔서 그 눈물을 닦아주고 있었다. 알고보니 내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내 눈물을 닦아주고 있었다. 그래서 늘 희망이 있었고, 힘이 있었다. 나는 시를 쓰며 그 힘을 보여주고 싶었다.
시인은 예술가다.
노래를 좋아하고, 술을 좋아하지만, 예술가는 아닌가 보다. 시를 쓰고 싶다고 그냥 써 지는 것이 아니듯, 시인에겐 눈물 뒤에 강인한 힘을 보여주는 능력은 있어야 하는데 나는 부족했다. 위대한 시인은 나중에서야 그 힘을 깨우치게 하는 사람인데, 민중의 마음을 움직이게 할 수 있는 힘이 있는 사람인데, 나는 당연히 위대한 시인은 못된다.
시인이기 전에 말하고 싶은 생명체였다.
감정을 나누려는 사람이었다. 그렇게 한번 한번 또 한번 내뱉은 내 감정들을 모아 이 책을 만들었을 뿐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어릴 적 서툰 작품들도 그냥 담았다. 그래도 “책”이라기에 너무 유치한 것들은 싣지 않았지만 최대한 그 때 그 감정 그대로, 발가벗듯 실었다. 혹 그 때 나처럼 말하고자 하는, 아니 말해야만 살아갈 수 있는 후배들에게 나도 그런 시를 썼다고 위로가 될 것이라는 위안으로 실었다.
고마운 사람들,
내 곁에서 감정을 나누어 준 이들에게 감사를 드린다. 이 책이 나올 수 있도록 곁에서 응원해 준 모든 이들에게 인사를 드리며 작품을 전하고 싶다. 아니 앞으로 더 작품을 쓸 수 있게 해줄 다가오는 이들에게도 전하고 싶다. 그럴 수 있도록 내 삶의 부분들과 부지런히 교감을 나눌 것이다.
“그래놓고선 시간은
수많은 사람들을 데리고 온다
그들과의 인연이 추억이 되고
차곡차곡 기억”이 될 것이고 또 다른 내 시가 될 것이라 약속하며...
2019년 7월